해당 학생에게 허락 맡고 전문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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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단 복제, 전재 일절 금지다. 단 나한테 댓글이나 쪽지로 비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겠다는 것을 밝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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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한테 허락 맡아서 사용하게 해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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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욕망의 독안개로부터>
지난해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사고에 대해 한병철 교수는 신자유주의가 이 사건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에 입각한 경제인들과 정치인들이 효율적인 운항을 위해 공식적으로 규제를 완화하고 비공식적으로 부정한 방법을 이용하여 지켜야할 규제를 어긴 것이 이 사건을 일으켰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분석이 옳고 그르다를 떠나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의 지적은 많은 의의와 고민을 제공한다.인간의 자율,인간의 가능성을 최대화시키는 시스템이라고 소개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신자유주의의 메시지를 맹신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강화한다.
철학사적으로 보면,인간의 관심사는 규제,간섭,통제에서 자유,해방,자율로 이동하고 있다.욕망을 억제하고 모든 행위에 대해 주체적으로 통제하는 그런 모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현대 이전의 철학이었다면 현대의 철학은 인간의 욕망과 자유를 긍정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윤리적,존재적 의의를 찾는지를 규명하는 것이다.
한병철은 그런 철학자들의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철저하게 밝혀낸다.통제가 없고 자유가 보장되면 인간이 진정한 행복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성과사회’라는 새로운,더욱 교묘한 착취 사회로써 공격받게 되었다.
학교에서 <피로사회>를 가지고 토론을 한 적이 있다.여러 학년의 토론자가 모여서 토론을 하던 중,3학년 전교 1등 학생이 이런 말을 던졌다.“신자유주의,자본주의가 왜 잘못되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결국 ‘할 수 있다.하면 된다.’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인데 왜 굳이 문제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했다.
나는 이 친구의 말이 솔직하다고 생각한다.우수한 재능과 그 재능을 받쳐줄 노력을 한 학생으로써는 현 체제에 불만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다.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성과사회’를 구성하는 신자유주의,자본주의의 무서움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성과사회는 투쟁 상대를 소멸시킨다.명시적인 타자가 우리를 억압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향해 투쟁하고 연대하며 변혁할 수 있다.하지만 성과사회는 각자의 욕망을 용인하고 자유를 극대화시키는 방법으로 인간을 통제하기 때문에 명시적인 투쟁을 어렵게 만든다.현대 사회에 연대와 투쟁은 허공에다 주먹질을 날리는 것과 똑같은 모습이 되는 것이다.
성과사회는 마치 독안개같다.분명한 형태는 없지만 사람들을 죽인다.그리고 더욱 교묘하게 아름다운 색깔과 냄새로 치장하여 그것이 독인지도 모르게 만든다.뒤늦게 그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안개를 향해 팔을 휘저어도,아무도 관심갖지 않는다.
앞에서 얘기한 세월호로 돌아가보자.세월호는 우리 욕망이 만들어낸 독안개가 죽인 생명들이다.잘살기 위해 남을 짓밟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 욕망들이 하나 둘 모여 그런 사고를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는 현실의 벽에 대해 투쟁하고 주먹질을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하지만,더욱 중요한 것은 그 벽을 만들어내는 독안개를 걷어내고 새로운 안개,세상을 풍족하게 할 새로운 깨끗한 안개를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는 근대에 자행되었던 타인에 대한 착취를 하지 않으면서 우리의 무한한 욕망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신자유주의,자본주의가 제시하는 긍정성으로는 진정한 행복을 이끌어낼 수 없다.이미 현대 사회의 심각한 양극화와 비인간성이 이를 증명하였다.
각자가 추구하는 새로운 안개가 있겠지만,나는 변혁,개혁된 기독교적 가치의 안개를 제시하고자 한다.약자의 편에 서서,이웃과 신을 향한 욕망 외의 욕망을 강하게 비판한 예수의 가르침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본다.세상의 아픔을 끌어안고 무한한 초월의 지평으로 나아가고자 하였던 그의 삶은 현대인들에게 분명 새로운 의의를 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