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주류 개새끼덜이 모조리 내선일체 친일파 개새끼덜이기 때문에 곡해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불과 1만 9천년 전의 마지막 최대빙하기 시대에 서해안은 거대한 초원이었고, 1만 9천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인과 중국인은 같은 민족이었던 것.
통념과는 다르게 불과 20세기 초반만 하더라도 한국한자와 중국한자어의 차이가 없던 것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애초에 같은 민족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야그를 버러지새끼덜의 온라인에서 한다면 존나게 욕을 쳐 먹겠지만 실상 현대 한국인들이 한글이랍시고 쓰고 있는 언문은 주시경과 친일파 하수인 개새끼덜이 내선일체의 관점에 따라서 만든 완전히 현대적인 인공어인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한글 언문이 쓰였지만 지금의 것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현대 일본어도 실상은 개항이후의 전복세력 새끼덜이 쳐 만든 인공어이고, 아시아에서 전통단절은 서세동점의 시기에 대량으로 자행된 것이다.
남북한의 주시경과 김두봉이 모조리 친일파 개새끼이면서 내선일체와 실력양성론자이던 것들이 다 그렇고 그러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흥선대원군의 시절만 하더라도 중국과 한국인의 차이는 매우 적었고, 특히 언문이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흥선대원군의 시절에 양식이 있는 자들이라면 말은 안 통해도 글로는 중국인들과 대화할 수 있었으며, 당시에 느끼는 한중 양국의 언어차이라는 것은 끽해야 북경인들과 광동인들의 방언차이 정도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민족과 중국인들의 차이를 근본적인 것으로 규정하려고 하던 새끼덜은 실상은 강화도조약을 통해서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명시한다고 주장하던 친일파 개새끼덜의 주장인 것이다.
그와 동시에 대부분의 한국 유물이라는 것도 짝퉁 가짜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라시대에 이두가 있었따고 하는 주장은 별반 증거가 없으며, 반구대에 세겨진 글자들도 죄다 예서로 적어놨을 뿐이다. 고려시대의 향찰이라는 문자는 더더욱 근거가 없으며, 되려 강화도조약이후의 내선일체론자들에 의한 조선자주독립국 사관에 의한 것으로 간주될 뿐이다.
애초에 고려조 역사라는 것 자체가 날조이기 때문이다. 고려조는 졸지에 외세에 의해서 쳐 망해서는 징기스칸의 증손녀 새끼가 제국대장공주라는 식으로 해서는 보지년 통수권자의 만호제 군정지배를 받게 된 나라이며, 몽골 개새끼덜이 존나게 무식한 새끼덜이었기에 몽골 지배 기간동안에 그 모든 것이 박살난 나라인 것이다.
그러하던 것을 정작 원나라의 몽골-여진계 지배집단의 일원이던 이성계라는 새끼가 공민왕을 군사력을 배경으로 쫓아낸 뒤에 하수인 새끼덜을 시켜서는 엉터리로 쳐 짜집기한 가짜 위서가 삼국사기, 삼국유사이기 때문이다. 정작 삼국유사는 씹상도 청도의 운문사 땡중 개새끼가 쳐 적었다는데 정작 경상도의 불교 세력의 사이비 성격으로 봐서는 별반 신뢰할 수 없는 말이고, 삼국사기는 고려조의 김부식이 적었따는 카더라가 있지만 실제로는 조선조 중종 시기의 완질본만이 증거로 남아있을 뿐이고, 그나마도 사림 새끼덜의 배향조인 옥산서원이라는 곳에 쳐 모셔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중종연간에나 반정 기념으로다가 영남사림 개새끼 중에 한마리가 쳐 지은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한 사료 따위로다가 엉터리로 내선일체론자 개새끼덜이 쓴 통사는 애초에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되려 1만9000년 전만 하더라도 오늘날의 화북, 화남과 화중에서 전라도에 이르는 희대의 대평원이 있었고, 그러한 대평원의 사냥감을 따라서 한국인과 중국인이 공통분모를 가지고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1만 2천년 경에도 다시 조금이나마 해수면이 낮아지는 일이 있었고, 중국인과 한국인이 갈라진 것은 생각보다 역사시대에서 얼마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위의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황하, 압록강 한강, 회하하류는 그냥 같은 동네였음. 애초에 삼국사기라고 하는 택도 아닌 개지랄을 일본 개새끼덜이 왜 정사화했을지부터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청나라에서 조선을 떼내기 위해서 세운 조선은 자주국가라는 내선일체 이론에 따라서 삼국을 자주한국국가로 비정하는 것을 일본 개새끼덜이 원했던 것이다.
정작 지질학과 역사학의 경계에 있는 한민족의 정체성은 대서해평야에서 중국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던 민족이다가 간빙기에 되면서 서해가 바다가 되자 그나마 높은 구릉지대가 있는 한반도쪽으로 선사시대인들은 더 많이 이주했을 것이라고 보는데, BCE 3800년에는 서해의 높이가 되려 13미터나 더 높았고, 따라서 지금의 화남과 화북의 태반은 잠겼었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쪽으로 도망친 애들은 오늘날의 산시성까지는 바다를 피해서 도망쳤어야 한다고 칸다.
공교롭게도 산시성이 나중에 중국고대문명인 진나라와 한나라의 중심지가 되었고, 한국과 중국인들은 단지 소싯적에 서해가 바다가 되면서 이산가족이 되었던 애들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구석기 시절에 서해평원에서 코끼리 잡아먹고, 멧돼지 잡아먹던 미개인들은 바다가 갈린 뒤에 좃반도에서 BCE 11000년 경에 단립벼라는 것을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신석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즉 구석기 시절에는 한국인과 중공인의 차이는 아예 없었고 중국년, 한국놈 빠구리 쳐서 애새끼 낳던 시절이고, 신석기가 되어서야 겨우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지만 어차피 배로 서해만 건너면 볼 수 있는 동포였다는 것이다.
일본 개새끼덜의 프레임과는 다르게 정작 당나라 중기인 732년~819년까지 존속된 고구려 유민이었다고 카는 이정기에서 이사도의 4대조에 이르는 정권 시절까지도 중국과 한국의 정권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 있지 않았음.
즉 당나라와 어쩌면 북송시대까지도 그냥 한국인과 중국인은 물건너 동포였었음.
그러한 부분을 불식시키는 일본 개새끼덜의 프레임이 한국 정권이 일부 북방계에서 기인한다는 개소리인 것이다. 한국의 역사가 분명히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 이래에는 북방계 왕조의 지배를 받은 것은 맞지만 그들은 침략세력이며, 본질적으로는 조선왕조의 서인지배집단의 근본과 정렬되는 개새끼덜인 것이다.
오늘날 강남과 대구가 각각 기호학파 엘리트 집단과 영남학파 엘리트 꼰대 집단의 후계자를 자처하듯이 말이다. 그러나 그러한 부분은 경도된 편향적인 것이고, 정작 한국의 서남부 집단은 해양도라고 불리던 시절에는 조선왕조의 해금령이 없어서 여전히 중국과의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헬조센 주류 내선일체론자 개새끼덜의 역사조작을 살피자면 이성계와 최무선이 진포해전에서 학살한 집단은 왜구가 아니라 가튼 전라도 한국인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김정은이 개새끼가 북한내 반대파들을 싸그리 쏴 죽이고, 아오지의 정치범 수용소에 쳐 넣는 것과 다르지 않은 프로세스가 이조 성립 초반기에 존재했다는 것이다.
아지발도라는 놈도 실상은 같은 경상도의 지도자이거나 혹은 당시에 서세동점이 일어나기 전의 여전히 동양이 서양을 앞서던 시기의 마지막 시대의 한국의 자본주의의 성지였던 금관경의 부르주아지들일 일본인 용병대장을 뽑아서는 전제주의적인 국가를 세우려고 하는 이성계 집권세력에 대항했던 군세의 대장이던 자였다고 봐야 하는 것이다.
즉 애초에 오랑캐 왕조이던 이씨 조선의 집권세력들의 심사를 이용해서는 내선일체와 중국과 한국 역사 분리시키라는 개지랄병을 한 것이다. 한국의 민족주의라는 것은 애초에 일제새끼덜의 개수작이었고, 그에 따르면 한국의 민족주의 독립운동가라는 개새끼덜의 저의도 의심스러운 것이다.
정작 그 민족주의자라는 개새끼덜이 한국에 들어와서는 냉전세력이 되고 애초에 미국 하수인이었고, 애초에 파리강화회담에서 제국주의 세력에 들러붙으려던 기회주의자 개새끼인 김구와 김규식, 이승만 그 개새끼가 조병옥이라는 유관순 집안 친구새끼였다는 하수인 새끼를 시켜서는 제주도민 수십만을 총으로 쏴 쳐 죽인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한반도의 언어의 나쇼날리티를 중국이랑 엮는것은 좀 억지같지만,
그래도 한가지 개연성이 있는 것은, 본디 있었던 조선식 한자어를 일본놈들과 친일파들이 죄다 갈아엎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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