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https://tayler.tistory.com/227

 

어느 정도는 이 것을 참고하였다.

그런데, 이 글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관산성2.jpg

 

제멋대로 상상하면 이따구 개소리가 되게 된다. 어디 신라의 영역이 파란선 한정이냐는 것이다. 뒤쪽에 죄다 신라땅인데 뭔 개소리를 하냐는 것이다. 충주, 단양, 문경이 죄다 신라땅인데 말이다.

 

백제가 관산성을 공격한다는 것은 완전한 난센스라고 할 수 있다. 차라리 진주까고 창원, 부산까고 경주까지 간다는 것이 낫다고까지 할 수 있다. 뭘 모르는 개자슥들이나 저따구로 설명하지 실상은 한성쪽에서 내려오는 집단이나 상주쪽으로 공격하지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저쪽으로 진입하려고 든다는 것부터 개씹에러. 상주까고, 대구까고, 영천, 군위, 포항쪽에서 또 존나게 삽질하고 싶으면 저리로 오면 된다.

 

물론 관산성이 오늘날 옥천 허브이기는 하지만 옥천 허브 다음은 어디다? 대구지 씨발. 1950년의 북괴군마냥 물밀듯이 쳐들어가서는 다 박살낼 각오가 아니면 택하기 어려운 루트.

 

그냥 적당히 짤짤이 재미만 보고 전술적 승리나 거두려면 남원과 대야성쪽에서 짤짤이 치는게 역시나 정석이다.

 

되려 파란선을 북쪽집단에서 남하하는 선이라고 본다면 충주와 문경을 대체하는 남하루트로 관산성은 선택될 수 있다고 본다. 몽골새기덜이 어쩌면 후대에 경상도로 진입할 때에 충주와 문경으로 오지않고 옥천을 통해서 상주로 난입했다면 말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이후에 충렬 울루스와 이조의 권문세족 집안 버러지새끼덜은 옥천 지역의 역사적 기억을 곡해하기 위해서 관산성전투는 삼국시대에 벌어진거라고 사기를 친 것이다. 

 

상식적으로 정작 몽골 침략 시기의 전쟁에 대한 기억은 너무나도 적다는 것에서도 문제가 있다고 보여지는 것이다.

 

 

몽골군 버러지새끼덜이 황룡사를 태운 경상도로의 기동 당시에 그 것들은 험준한 문경과 충주를 택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평지인 옥천을 통해서 지금의 경부선 루트로 들어오는 길을 택했고, 상주로 난입해서는 대구를 박살내고 경주로 가는 길에 안동 권씨, 안동 장씨, 안동 김씨 새끼덜의 길안내를 받아서는 경주로 난입한 것이다.

 

특히 정작 안동 권씨 개자슥새끼덜의 권행을 입향조로 하는 새끼덜의 집성촌은 정작 세종시 노장리와 청송리에 있다니까 이 씹새끼덜이 옥천을 통해서 경상도로 난입하려는 몽골새끼덜에게 체계적으로 협조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안동 권씨 개자슥 새끼덜은 권겸이라는 놈부터 실질적으로 시작하는 전형적인 매국노 새끼들이 정작 왕건 시절때부터 존재한 것처럼 족보를 꾸민 버러지새끼덜인 것이다.

원 소종 아유르시리다르의 권황후(權皇后)는 고려 출신 여성으로 권겸의 이고, 원 소종의 황후이다.
그러므로, 소종과 인척 관계다.

 

폴 권 조차도 자신의 좃상이라는 놈은 뭐 충렬왕 따라서 북경까지 갔다왔따 그러던 놈임을 인정하지만 말이다. 

 

세종시와 옥천.jpg

 

세종시가 정작 옥천 근처에 있는 곳이다. 대전이라는 지역은 당시에는 물을 댈 수 없어서 한밭이라고 하던 버려진 지역이었고 말이다. 어쩌면 안동 권씨 새끼덜 옥천근처에서 공을 세우고 근처의 땅을 받은 씹새끼덜인 것이다. 

 

실질적으로 안동 권씨, 안동 김씨, 안동 장씨라는 것들이 역사에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몽골 침략 집단 새끼덜이 성립한 이후이다. 특히 몽골 침략 집단 새끼덜이 신진사대부라고 스스로를 참칭한 시대인 조선조에 본격적으로 해 쳐 먹은 집단이지 왕건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는 것이다.

 

고려사를 조금만 이해하면 왕건계 직계 집단은 1009년에 싸그리 요나라집단에게 썰렸고, 이후의 고려왕들은 모조리 고려 현종이라고 하는 놈의 자손이라는 것들이 지배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고려 현종은 이조새끼덜에 의하면 왕건의 사생아의 아들이다 뭐 그 지랄이지만 정작 고려 현종이라는 놈이 왕건의 직계가 맞는지도 확인되지 않는 놈이다.

현종의 다른 이름은 원문왕이고, 그 것은 신라의 원성왕과 같은 작명센스로 지어진 이름이다. 실제로 고려조까지는 신라의 이두가 쓰였다고 국문학계에서는 인정한다. 이두와 향찰이 쇠퇴한 것은 바로 몽골침략 이후부터이고,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쇠퇴한다.

 

애초에 왕건의 세계를 신라조에서 분리한 것부터가 이조 새끼덜이 역성혁명론이라고 하는 실상은 몽골계 지배집단의 선민국가에 불과한 조선왕조를 물타기 하기 위해서 세운 개소리를 이용해서 신라사와 고려사를 분리한 것이다. 

 

신라사에서 무열왕계와 원성왕계가 다른 왕조이듯이 그러한 연장선에서 궁예계가 있었고, 현종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예술사나 경제학적으로 신라말기가 과연 쇠퇴기였냐는 부분이 완전히 날조라고 보여진다. 당시에 신라는 신라구들이 일본정권까지 털어내면서 청해진 세력들이 청자라는 상품을 개발해서는 떼돈을 벌던 희대의 전성기였던 것이다. 

 

즉 조선왕조의 역성혁명론이라는 개소리로 신라하대를 조선시대 새끼덜이 곡해했다고 밖에는 보여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하다면 당시가 전성기라고 본다면 궁예가 신라왕자라는 것이 막장이라고 후대에 거짓되게 고해진 신라하대의 날조라고 하기는 어려워진다. 되려 당시의 한국은 전성기였고, 족보를 주작하기는 힘든 시기였을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받아들인 새끼덜이 후대에 납득하지 못한 것이다. 

 

궁예는 썰대로 경문왕 또한 헌안왕의 아들이 맞고, 조선왕조의 터부를 고려하자면 왕건 또한 궁예의 직계이거나 적어도 양자였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무신정변 시기라는 몽골과 고려가 충돌하던 시기에 보고되고 있는 일반적인 양상이나 고려도경과 같은 원말명초의 기록들을 고려하자면 고려조는 최충헌과 같은 막리지 새끼덜이 존재하던 일본의 쇼군 체제와 별반 다름없는 체제였던 것을 후대의 몽골 오랑캐 유교집단 제사장새끼덜이 곡해한 것이다.

 

고려도경에서는 고려가 아직도 막리지가 다스리는 나라냐는 식으로 묻고 있는데, 거기서의 고려가 고구려의 막리지라고 보기에는 연대가 너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막리지라는 이름은 조선조에 의하면 무신정변이라고 하는 유교적 예법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집권하던 새끼덜이라는 식으로 날조된 특히 그 다루가치 권문세족 사대부 집안새끼덜과 군사적으로 적군이던 집단에 대한 후대의 격하이자 날조인 것이다. 

 

그들에 의하면 문벌귀족으로 묘사된 이자겸조차도 실제로는 고려조의 쇼군이던 막리지이고, 척준경 또한 고려천황을 옹립하고 고려 군사계급의 최고 대가리임을 자처하던 쇼군이자 막리지였고, 이후에 전쟁기내에서 보고되는 양식상으로는 고려에 유교통치 문돌이 집단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것이다.

 

최승로라는 놈이 당나라식 2성 6부제 국가를 만들었다는 것도 모조리 몽골집단 새끼덜의 날조일 뿐이다. 정작 이제현과 이색과 같은 몽골왕 개자슥새끼덜의 체제내에서 2성 6부제적인 관직들이 보고될 뿐이다.

애초에 2성 6부제라는 것은 오랑캐 새끼덜의 승상시스템이라고 보면 한국의 고유 정치체제가 아닌 것이다.

 

한국의 고유 정치체제는 진흥왕 때부터 왕과 화랑도의 가장 마스터인 이사부나 거칠부와 같은 군사계급 우두머리의 연정에 의해서 성립된 것이라고 보는게 맞다고 본다.

 

일본에서는 부시도를 가장 마스터 한 존재로써 쇼군이 존재했듯이 한국은 되려 일본에 전사계급 시스템을 수출한 나라인 것이다. 화랑도가 부시도의 원조라고 보지면 몽골 침략집단에 의해서 대가 단절된 것이다.

 

고려 중기에 성립한 본관이라는 것은 본디는 청주의 경대승, 전주의 이의방, 경주의 이의민, 의종을 옹립했다는 강릉공 온과 같은 각 지역의 화랑도 군사집단의 우두머리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나타남에 따라서 같은 지역의 사무라이 계급과 같은 자들이 본관을 썼지만 나중에 권문세족 집단에 의해서 변질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한 집단이 몽골새끼덜과 전쟁을 했고, 몽골새끼덜은 패자집단의 기록을 아예 말살한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일본사회적인 사무라이 지역 호족들의 수장들의 이름이 정작 각 지역마다 하나씩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 것도 특정 지역에 몰려 있는게 아니라 청주의 경대승, 전주의 이의방, 경주의 이의민, 강릉공 온과 같은 이름들이 각 지역 각각 남아있다는 것은 그러한 수장들을 구심적으로 몽골새끼덜과 저항하던 집단의 존재를 표징하는 것이다.

 

도올과 같은 개자슥새끼덜이나 서울의 엉터리 사학계 개자슥새끼덜은 모조리 몽골침략집단으로부터 기인하는 귀족계급 성분임을 자랑하던 서울의 엘리트 개자슥 새끼덜이기 때문의 그러한 지점들을 현대에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일본사를 참고하거나 그리고 파편화된 고려사 기록들을 참고하자면 이의민이라는 놈은 최충헌에게 털려서 실각되었다고는 하지만 이의민이 대표하는 화랑도 집단들은 경주에 존재했을 것이다. 

 

이의민이라는 놈은 경주지역의 화랑도 집단을 대표해서는 상경한 전형적인 일본사에서 보여지는 호족인 것이다. 경대승이라는 놈 또한 마찬가지이다.

 

여기서 경대승의 근거지인 청주지역이 정작 오늘날에도 보은의 중심지임을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어쩌면 관산성 전투는 경대승계 군사집단들이 몽골새끼덜과 싸우기 불리한 평야지대에서 물러나서는 일부의 이의민계 경상도 무사집단들과 합류해서는 몽골새끼덜과 싸웠던 장소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그에 대해서 후대의 몽골놈들 다루가치 집안 좃에서 나온 개자슥새끼덜인 이조의 귀족집단 개자슥새끼덜이 그 모든 것을 곡해한 것이다.

 

그러한 문벌 집단 개자슥새끼덜이 오늘날 서울의 엘리트 집안 개새끼덜인 것이다. 그 개새기덜은 1980년대까지도 본고사라는 수단을 통해서 한국의 엘리트 문호를 꽉 잡고 있던 개자슥들이다.

역설적이게도 전두환이라는 놈은 학력고사를 만들어서는 그 씹새끼덜이 꽉 잡고 있던 대학 입시를 까라면 까라는 식으로 바꾼 것이다.

 

본고사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알만한 인적 네트워크에 있는 자들끼라만 해 쳐 먹은 시험이고, 그들끼리 과외를 하면서 서울대 현직 강사새끼가 본고사 답안을 유출한다거나 해서는 해 쳐 먹는 시스템이다.

 

안철수라는 놈은 그래서 할배새끼가 매주 주말마다 서울로다가 과외를 보내서는 서울대 새끼덜에게 과외를 받게 했다고 칸다. 그래서 반에서 30등 하던 씹새끼가 서울대에 입학한 것이다.

그 것을 가지고서는 뭐 30등 하던 새끼가 일취월장했다고 개구라나 치는 것이다.

 

학력 고사가 도입되자 선지원 후시험으로 특히 같은 학과에서 모두 같은 시험을 보게해서는 그 자리에서 경쟁시켜서는 부정이 사라진 것이다. 

 

https://namu.wiki/w/%EB%8C%80%ED%95%99%EC%9E%85%ED%95%99%20%ED%95%99%EB%A0%A5%EA%B3%A0%EC%82%AC

여기서 특히 '본인의 지망 대학의 지망 학과에서 시험을 본다'는 말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같은 강의실에서 시험을 치르는 모든 사람이 바로 경쟁자였다는 것. 이 사람들의 운명은 합격하여 서로 동기가 되거나 혹은 낙방하여 재수생이 되거나 둘 중 하나였다. 

 

예비고사 시절에는 그냥 돈만 주면 들어가지는 대학의 농간이 통하던 시절이었고, 안철수라는 씹새끼는 그 마지막 학번새끼인 것이다.

 

 

예비고사를 도입한 가장 중요한 목적은 각 사립대학의 입시 부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대학별고사 체제하에서 입시는 전적으로 각 대학에서 관리 감독하였고, 이에 따라 무학력자가 합격하는 등 입시부정 무제가 끊임없이 야기되었다. 입시부정을 막기 위해 국가에서 대학 입시를 관리 감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고, 결국 일제고사 형태의 예비고사가 시행되게 되었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일제고사로 입시의 공정성을 어느정도 담보하겠다는 것이 예비고사의 주요 도입취지였다.

=>그러나 여전히 당시에는 예비고사의 변별력이 낮았고, 상위권 대학에서는 여전히 본고사 비중이 높았으므로 서울대 씹새끼덜이 본고사 답안 빼돌려줘서 받는 놈이 가는 것이 충분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1970년대에는 예비고사 + 대학별 본고사 형태로 입시가 진행되었다. 도입 초기에 예비고사는 합격, 불합격의 의미만 있었고, 본고사가 당락을 좌우하여 영향력이 없었으나, 1974년부터 예비고사와 본고사 점수를 합산하여 뽑는 방식으로 바뀌었고, 예비고사가 매년 어려워짐에 따라 변별력이 상승하여 70년대 후반에는 본고사보다 예비고사가 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다. 70년대말에는 전문대나 하위권 대학에서 본고사를 출제하지 않고 예비고사 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면서 예비고사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졌다.

 

=>1974년에 합산해서 뽑는 방식으로 바꼈다지만 예술계쪽에서는 대놓고 그냥 그 대학 교수로부터 고액과외 받는 새끼덜이 걸리는 판이었고, 70년대 후반에도 거의 마찬가지였다. 70년대 말에는 전문대나 하위권 대학에서는 본고사를 출제하지 않았다는 것은 되려 상위권 대학에서는 여전히 그따구였다는 뜻이다.

예술계에서는 대놓고 고액 과외 받는 라인으로 부정입학 시켜주는 편법은 2000년대는 되어야 개선될 뿐이므로 1970년대에는 그냥 뻔할 뻔자인 것이다.

전대갈 새끼는 적어도 그 문제에 관해서 한날 한시에 같은 대학 같은 과 지원자들을 모아서는 그나마 논쟁의 소지를 없앤 것이다. 그러나 본고사가 폐지되지 않은 이상 당시에도 시험지 빼돌리기는 있었다고 보는게 맞다.

전우원이라는 놈은 태반의 영어 시험들도 다 빼돌린 것으로 시험치는 거라고 무려 2020년대에 증언하는 바닥인데 말이다.

 

 

따라서 서울의 엘리트 집단임을 자처하는 혈연 집단 개자슥새끼덜은 현대에서 끊임없이 학력을 통해서 기득권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똑같이 과거 시험에 걸려도 4급으로 끝나는 놈이 있고, 장관까지 다는 놈이 있고, 그 부분은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바뀔 수가 없는 불변이기 때문에 나이 쳐 먹고 호불호는 꽤나 갈린다는 것일 뿐인 것이다.

여기서 정작 민주주의라고 적고는 양당의 인원을 대폭 확충해서는 엘리트 집단 전체의 힘을 강화시킨 것이 김영삼이라는 데마고그 새끼의 지방자치제인 것이다. 그로 인해서 한국의 정당새끼덜의 의원수는 300면에서 4000명으로 크게 증가하여서 강력한 스크럼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한 반동적인 가짜 개혁은 술라라는 놈이 원로원 의원 숫자를 2배로 증가해서는 권위주의 세력이자 기성 세대 새끼덜의 힘을 강화시킨 영수파 중심의 반동적 개혁인 것이다. 그러한 반동적인 자기 권력 강화행위를 꼴랑 민주화라고 개구라나 치는 찬양집단 개자슥들이 조중동이라는 씨발 새끼덜인 것이다.

 

김영삼이라는 개자슥은 2배가 아니라 아예 13배로 의원 수를 남발했으니 양대 정당 없이는 한국호가 굴러가지도 않으면 양대 정당만으로만 오로지 출세할 수 있도록 한국호를 극단적으로 과두화시킨 것이다.

 

그러한 엘리트 과두새끼덜이 반동이 바로 1987년의 민주화라고 프로파간다에 의해서 찬양, 고무된 엉터리 체제인 것이다.

 

당연히 무려 4000마리나 되는 화백회의를 뽑아놨으니 존나게 해 쳐 먹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원로원새끼덜은 그대로 300명이고, 2급 지방국회인 광역지방의회, 기초지방의회 그 지랄로다가 위로 붙인게 아니라 아래로 붙였기 하지만 말이다. 결국 그 모든 권한은 정당으로 집중되는 것이다.

 

비유를 하자면 화백회의 1군, 2군, 3군까지 쳐 만들어 놓은 것이다. 물론 모두 유급에 유급 보좌관이라는 또한 당원 새끼덜도 추가된다. 

 

그게 바로 서울 엘리트 개자슥새끼덜이 한 짓이다. 김영삼이라는 개자슥새끼는 실상 거제도의 선주집안 뱃놈새끼 아들내미 버러지새끼가 서울바닥의 몽골계 씹선비 집단의 오랜 족벌임을 과시하기 위해서 사육신 김문기의 후손이 자신이라는 개수작 날조까지 해서는 소싯적 훈구집단으로부터 이어지는 오랜 귀족새끼 집안의 자손이 자신임을 그 지랄을 한 것이다.

 

김문기 포함 논란.jpg

 

김문기라는 놈을 사육신에 쳐 넣어준 것은 정작 박정희라고 칸다. 그러므로 박정희가 김영삼이라는 씹새끼와 정치적 라이벌이었다는 설정조차도 모조리 거짓부름인 것이다.

박정희는 김영삼이 새끼의 족보를 세탁하는 것에 힘을 써줬을 정도로 그들은 단지 당대의 야합하던 씹새끼덜일 뿐인 것이다. 

 

박정희랑 김영삼이란 같은 요정에서 보지년 불러놓고 같은 계곡주 빨았지 씨발 새기덜 마. 한 놈은 군사독재자이고, 한 놈은 민주화세력이라고 조까고 있네 씨발 새끼덜.

 

박정희랑 김영삼이랑 보지년 계곡주 빨고서는 야따 보지 바꿔서도 서로 빨아보자 그라면 아따 행님예 그게 재밌겠네예 요지랄하면 박정희가 빤 보지 김영삼이 빨고, 영삼이가 빨던 보지 정희가 빨았지 씨발 새끼덜 마.

 

아 그럼 영삼이가 박정희 총으로 쏴 죽였냐고. 하다못해 사주해서 킬러 보냈냐구. 영삼이가 한게 뭐가 있는데? 지도 박정희가 한 때에 먹었던 자리 단임제로 꺼~억 한거 빼고 말이다.

심지어 민정당새끼덜이랑 합당도 했자나. 애초에 같은 편이니까 그런 것이지.

 

애초에 서울 집중은 몽골계 침략집단 새끼덜이 한성으로 남하해서는 이조를 세운 이래에 그 씨발 새끼덜이 효율적으로 지방의 한민족들을 착취하기 위한 전제주의를 강화시키는 과정에서 일어난 그 자체로 오랑캐새끼덜의 기득권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한 집단새끼덜이 역사조차 곡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외국인인 마르티나 도이힐러는 관찰자적인 시각에 그들의 사료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국의 귀족집단과 천민 및 상민집단은 왕건이 고려를 개국할 때에 전쟁에 의해서 집권한 가문들과 몰락한 혈통들에 의해서 한국의 귀족집단과 천민들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봤다지만 실제로는 왕건이 고려를 개국했다는 식으로 카더라를 자행한 것이고, 실제로는 몽골 침략 집단 개자슥새끼덜이 케식 지휘성분새끼덜이 개성과 서울의 전제주의를 바탕으로 지방민들을 보이지 않는 선민주의에 의해서 지배하는 체제로 만든 것이고, 그 체제가 집대성 된 것이 조선왕조인 것이다.

 

그러한 조선왕조 오랑캐새끼덜이 일본에 국권을 팔아치웠고, 또한 서울의 귀족집단들은 그에 따라서 조선귀족으로 일본제국내에서 편제되어서는 기득권을 유지한 것이 한국사회의 참역사의 본질적인 골격이므로 애초에 독립운동가라는 조까튼 것들은 없다고 봐도 무관한 것이다.

 

김원봉이 북한에서 취급당한 그게 딱 한반도사내에서 참독립운동가라는 것들 받은 취급일 뿐이다.

 

애초에 이조때부터 복종과 충성심만 강요하는 국가인 한반도내에서 김원봉이나 송진우와 같은 조금이라도 삐딱선을 탄 새끼덜이 이 나라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 지는 뻔한 것이다. 송진우가 김구에게 뒈진 것이 다 그렇고 그러한 것이다.

송진우는 단지 한때나마 기회주의자를 배격한다는 모토를 걸었던 신간회 출신이었다고는 하지만 찬탁, 반탁에서 다른 목소리를 조금 냈다고 김구라는 꼰대 개자슥에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러한 김구라는 개자슥새끼는 인서울 기회주의자새끼덜에 의해서 졸지에 뭐 대단한 공을 세운 놈으로 추존되었다는데, 정작 김구산하에 일본군과 싸웠다는 중대 전력하나 없는 일본군에 총 한 발 안 쏴본 새끼인 것이다.

장준하의 광복군이라는 것은 OSS 스파이새끼덜의 날조로 본다. 장준하라는 놈은 장면, 장택상, 장도영 요런 새끼덜인 골수 친미주의자새끼덜과 같은 집안이라고 요직 좀 해먹던 새끼이고, 전대갈 애비가 독립운동 했다는 수준의 개소리가 광복군이라는 개소리일 뿐이다.

박정희 또한 광복군 출신도 아니거니와 박정희라는 씨발 새끼에게서 진짜 레지스탕스적인 인격이 1이라도 보이던가? 죄다 4.3에서 민중이나 학살하던 우익깡패 개새끼덜인 것이다. 

 

정작 청산리 대첩을 치른 북로군정서계열의 대한국민회와 같은 집단들은 한국과 북한 어디서도 대접을 받지 못하였고, 개국공신 논공행상에서 모조리 배제되었다. 그게 바로 한국과 북한의 서울과 평양의 괴뢰새끼덜이다.

 

그러한 씨발새끼덜이 한국의 양당개자슥새끼덜인 것이다. 그 개새끼덜은 허경영, 심상정보다 더 못한 그냥 개새끼덜일 뿐인 거짓부름 집단일 뿐인 가짜 저항집단일 뿐이다.

 

조상의 눈 아래에서.jpg

 

이게 한국의 지배 엘리트 개자슥새끼덜의 민낯일 뿐이다. 진짜로 전복되어야 할 개자슥 새끼덜은 바로 그 앙시앵레짐새끼덜인 것이다.

 

민주화라는 개소리는 모두 그러한 앙시앵레짐새끼덜의 철저한 거짓부름에 불과하며 그러한 부분의 공산사적인 것이 서울 기득권이라는 것으로 나타나면 경제의 족벌화라는 것으로 재벌이라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다만 마르티나 도이힐러의 약간의 오류를 지적하자면 그 개새끼덜 집단은 실상은 몽골계 새끼덜의 인종차별과 선민주의에 기인한다는 것이고, 여말선초의 모든 집단은 바로 그 오랑캐정권 밑에서 종사하던 개자슥새끼덜이라는 것이다.

 

제주도에서 건국초기에 대학살이 일어난 진짜 본질은 그러한 엘리트 집단새끼덜이 위계질서를 세우기 위함인 것이다.

 

제주도 인민위원회.jpg

 

제주도라는 공간내에서는 그러한 엘리트 집단이 부재했었고, 조선시대에는 어디까지나 서울에서 파견된 제주목사가 그 역할을 했던 것이다. 

따라서 제주시에서는 파견된 제주목사의 지휘에 의해서 부역이나 수행하던 동질집단들이 제주도의 통치권력이 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웠던 것이다. 그게 바로 제주도 인민위원회인 것이다.

 

그러나 전라도에서 온 경찰새끼덜이라는 기회주의적 집단들이 제주도의 공적 권력을 슈킹하기 위해서 노골적으로 그냥 시비를 건 것이라고 보는게 맞는 것이다.

말발굽으로 애새끼 죽인 조차도 고의라고 보는 것이 맞고 애초에 아주 악질적인 개새끼가 그 지랄을 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 설민석이라는 놈조차 뭐 사람들이 쫓아오니까 오인해서 죽였따라는 식으로 쳐 말하는 의식적 동조를 요구하는 논조나 펴는 것이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데, 그러한 인성이 마르티나 도이힐러가 지적하듯이 조산의 눈 아래에서 가진 인격을 가진 한국새끼덜의 본연적인 악질성 정체성인 것이다. 말로 사람 쳐 죽이는 것도 실상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말은 앞에 장애물이 있으면 본능적으로 서게 되어 있다.

말이 발걸음이 walking(걸음), trot(속보), canter(구보), galloping(경주) 이렇게 4단계가 있는데 말이라는 놈이 어지간한 속보단계에서는 사람이 앞에 서면 멈추게 훈련되어 있다. 

본인이 직접 소싯적에 런던의 공원에서 말 훈련시키던 놈들 앞으로 무단횡단해보면서 경험한 것이다.

 

여유를 두고 무단횡단해도 말이 저 멀리서 바로 멈추던데 말이다. 그래서 그 말 기수새끼가 나한테 조금 야리던 것을 보긴했다지만.

 

당시에 제주도민들은 마장에서 말 키우던 놈들과 거래하던 자들인데, 그걸 몰랐을까? 당시에 제주도에 말목장이 존재했는데 말이다. 그 당시에 어린이를 치였다는 그 경찰 개자슥은 그냥 일진 개새끼가 지랄을 하듯이 고의로 쳐서는 어그로를 끈 것이 맞는 것이다.

그냥 말발굽으로 쳐 밟은 것이다. 고삐를 땡겨서는 트롯으로 걷도록 말에게 강제해서는 말이다. 말로써는 고삐를 땡기면서 채찍으로 때리면 정보로 걷도록 그또한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 때에는 발굽으로 밟으라고 명령을 받은 것으로 인지해서 주인이 시켜서 밟은 것이다.

말이 어디 경찰차랑 똑같냐는 말이다. 

 

현대에 그 개자슥들이 엉터리로 지랄을 하는 전라도가 민주화의 성지라는 개소리 또한 전라도의 성격을 알면 할 수 없는 말이다. 전라도는 애초에 친일지주집단의 스트롱홀드였던 곳일 뿐이고, 그 지역민들이 딱히 관대하다는 소문 따위를 나는 들어본 적이 없고 겪어본 적도 없다.

 

차라리 한국내에서 그나마 관대한 지역이고, 텃새가 없는 지역이라면 차라리 부산이 그러한 지역이다. 부산의 상민새끼덜은 애초에 신라, 가야에 속한 집단으로써 이조적인 지랄병이 덜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나마 이조시절에도 개성상인, 의주상인들은 조금은 개방적인 존재였다고 한다면 마찬가지로 동래의 래상들은 그나마 조상의 눈 아래에서 조금은 벗어나서 자본주의적인 정신세계를 가진 집단이었던 것이다.

 

한국 전쟁 당시에 경상도에서 그렇게 학살이 많았던 이유는 애초에 서울바닥에서나 있어야 될 씨발새끼덜과 문화충돌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가 양반사회라고는 해도 실상 경상도 지역에서 특히 산만디쪽 촌동네에서 진짜 양반이나 양반 밑에서 청지기나 힘 좀 꽤나 쓴다는 조까튼 새끼덜을 볼 일은 별로 없었던 것이다.

 

양반에 대한 계급 운동이 별반 일어나지 않은 것도 그들의 태반은 경성에나 가야 실제로는 접점이 일어나는 것들이므로 그냥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 정작 한국전쟁 당시에 대량의 서울계 피난민 개자슥새끼덜이 남하해오면서 문화충돌이 벌어진 것이다.

 

그에 대해서 서울의 위계적 집단 개새끼덜은 그 것들이 양주, 광주 및 경기도와 충청도 지역에서 해먹던 짓거리 그대로의 복종을 경상도새끼덜에게 요구했지만 정작 경상도새끼덜은 그러한 양식의 행동을 몰랐기 때문에 호응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자 그 개자슥새끼덜이 노오예새끼덜에 대한 일반적인 불복종의 의미로 대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불복하는 새끼덜에 대해서 오가작통이라는 FM대로 사실은 조진 것이다. 오가작통이라는 것은 노오예새끼가 한 집안이 잘못하면  그 이웃새끼덜 5개 집안을 모조리 도륙을 낸다는 것인데 연좌된 5개 집안에서 또 5개 집안이 나온다고 치면 결국 실질적으로 마을 하나를 통째로 벌한다는 것인 것이다.

그게 기호지역에서 인지되기로는 몽골계 신진사대부새끼덜이 피정복민인 참 한국인들을 계급적으로 굴종시키기 위한 일반적인 법도였음에 반해서, 진짜 양반을 보기 힘든 기호지역 이남에서는 단지 서울의 정권집단이 파견한 관에 사람이 와서 합법적인 국가 권위로다가 그러는 것 정도라고 인지하는 지점에서 문화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설사 향에서 정착한 향반들이 있더라도 그들은 단지 지주정도로 받아들여졌지 광범위한 몽골계 별종집단들이 중인이나 한량 따위로 존재해서는 온갖 괄세를 하는 씹새끼덜에게 숙이고 댕겨야 하는 것이라고 까지는 지방민들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한국전쟁의 피난으로 말미암아서 그러한 집단이 전면적으로 접촉한 것이다.

 

그러한 양상은 임진왜란 당시에 선조라는 씨발 새끼와 임해군, 광해군이라는 씹새끼덜이 북쪽지역으로 몽진했을 때에도 또한 일어났던 양상이다.

삼북의 여느 사람들 역시도 단지 서울에서 파견한 관새끼덜 정도가 그들이 인지하는 지배계급이었지만 개성에서 남하한 몽골계 선민집단 새끼들인 서울의 위계와 위력으로 집권하는 집단 전부를 접한 것은 임란 당시가 처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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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호의 일진문화라는 것도 바로 그러한 집단들이 서식하는 서울과 경기와 충청도 따위에서나 관찰되는 양상인 문화일 뿐이다.

 

그러나 근자에 부산에서는 해운대에 서식하게 된 서울 개자슥들과 함께 전국구 조폭이라는 한량, 양아치새끼덜이 해방후에는 성립하게 된 것이다. 그게 바로 칠성파 개자슥새끼덜이다.

이강환이라는 개자슥새끼 또한 바로 그러한 서울 앙시앵레짐 하수인 새끼덜의 정체성을 받아들인 해방후에 받아들인 부산꼰대 개새끼이다.

 

서울의 개자슥새끼덜이 말하는 이조적인 신분제 사회가 해체되었다는 것은 그냥 개구라일 뿐이다.

 

해체된 것은 단지 지역유지라는 향반새끼덜이 주로 바로 그 토건족 한량새끼덜이나 전국구 조폭새끼덜이나 심지어는 LH공사와 같은 관에서 성립한 공권력을 휘두르는 새끼덜에게 슈킹당해서 그들의 근거지를 소실한 것 뿐이다.

되려 그러한 지배질서는 서울의 꽌시 자본주의와 함께 더욱 강화되었으며 되려 더욱 전국구화되었다. 한국이 조폭공화국이라는 말도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부산의 해운대 지역 또한 본디는 래상들과 동래 정씨들이 가지고 있던 땅들이었지만 죄다 서울 한량새끼덜과 꽌시새끼덜과 시전새끼덜에게 다 털리고, 달성 서씨라고 해서는 대구에서 쳐 내려온 한량 개자슥 서병수라는 개새끼도 해운대의 버스 종점 부지를 지방민들로부터 슈킹한 것이다.

그러한 행태은 차라리 조선시대의 동래부이던 시절에는 없던 짓이다. 되려 한국전쟁과 이후에 산업화로 인한 교통의 발달로 인해서 한량 개자슥들이 합법적인 사업가랍시고 설쳐서는 지방민들을 위협하는 조까튼 짓만 되려 늘었을 뿐이다.

 

서병수나 김기현 그러한 것들도 모조리 겉으로만 모던한 척 하는 속은 전근대적인 한량 개자슥새끼들일 뿐이다. 삼성가와 현대가 개자슥들도 현대적인 자본주의 집단인 척 하는 실질적인 시전새끼덜의 집안새끼덜인 crony이듯이 말이다.

 

한국호에서 땅을 빼았아서 겸병하는 양상은 되려 조선조 시절보다 더 폐단이 심해졌고, 이제는 돈에 의해서 겸병이 아니라 팔아먹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게 바로 후분양제라는 것이고, 애초에 서울중심의 악질적인 지배집단새끼덜의 위계와 위력에 관의 법률까지 동원한 형태의 재산권에 대한 폭력이 이 나라의 자본주의 메카니즘의 일반적 양태인 것이다.

 

대장동 개발 사건 또한 바로 그러한 식으로 남의 땅을 후려서는 도둑놈 새끼덜의 사업권 내에서 편제시키는 아주 더러운 개새끼덜의 양식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정상적인 나라라면 되려 사업가들이 대장동의 농민들에게 제가 이 땅 좀 개발하고 싶은데요 제발 좀 팔아달라고 통사정을 해야하고 일반적인 신용을 얻기 위해서라면 자신들이 얻게 될 사후이득들을 합당하게 나누자는 제안을 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 땅에 대한 처분권은 주인에게 있으니까 말이다.

 

애초에 이승만이라는 개자슥새끼가 만든 경자유전이라는 법칙조차도 심지어 용도변경권을 가진 지방정부의 제민집단인 공무원 개자슥새끼가 맘대로 사업화해서는 슈킹을 거는 보호라고는 실지로는 존재하지 않는 택도 아닌 양아치 국가가 한국인 것이다.

 

애초에 사유재산이 위협받는 버러지 국가가 뭐가 자본주의 국가란 말이냐. 되려 공산당스러운 노멘클라투라 엘리트새끼덜이 판을 치는 구소련식 양아치 국가지 말이다.

 

그 노멘클라투라새끼덜이 서기장 동무 슈킹하고서는 소련을 전복한 뒤에 러시아를 성립시켜서는 올리가르히가 되듯이 한 것이 한국호의 엉터리 민주화일 뿐이다. 그들은 단지 그들의 한량 양아치 짓에 사사건건 태클을 걸거나 단지 그들이 양아짓을 위에서 보고 있다는 감시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감시자를 슈킹해서는 쓰러뜨린 것이다. 

 

물론 그 감시자 또한 바로 그 모든 한량 양아치새끼덜의 큰 양아치일 뿐인 모든 한량새끼덜의 으르신같은 존재이므로 그 씹새끼덜 또한 존나게 해 쳐먹던 구체제 한량새끼덜이었지만 말이다.

 

박정희는 왜 뒈졌을까? 어쩌면 그 모든 서울의 한량새끼덜이 그 어르신은 너무 오래 해 쳐 먹는다고 쳐 죽인 것이다. 공적공간내에서는 감히 박정희보다 어리거나 격이 덜한 새끼덜이 차마 개길 수가 없으니까 김재규가 총대를 멘 것이다.

 

당시에 박정희라는 놈은 기실 위가 없는 존재인 것이다. 육사 1기 보다 더 높은 전설의 일본육군사관학교 57기인데, 그 윗기수라고 하면 뭐 홍사익, 영친왕 정도가 살아돌아와야 박정희에게 호통이라도 칠 수 있는 으르신이 될 수 있는데, 그런 놈들이 없으니 한국의 으르신 시스템에서는 그냥 아무도 못 말리는 놈이 된 것이다.

백선엽 정도라고 해봤자 백선엽은 꼴랑 만주국 군관학교였고, 박정희는 일본육사로 격이 달랐다고 칸다. 게다가 백선엽은 1920년생이었고, 박정희는 1917년생으로 백선엽이 연하였다고 칸다.

정일권이라는 놈이 박정희와 동갑에 일본육사기수는 2기 더 높았다던데 뭐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아서 한국호의 요직이라는 요직은 다 거쳤지만 어디까지나 똘마니로 끝낸 놈이었고.

 

다만 못 말리는 놈이 되니까 죽였다는 것은 미국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정도가 함정.

 

반면에 전대갈은 박정희와 같은 무소불위의 으르신은 될 수 없었고, 김대중이나 김영삼, 김종필과 동급이거나 심지어는 김종필에 대해서는 기실은 후배였으므로 전대갈 새끼를 박정희마냥 으르신 프린캡스가 될 수 없었던 것이다.

 

 

무신정변시대가 중요한 것은 무신이라고 하던 그 작자들은 후대의 한국 지배집단과는 다르게 조상의 눈 아래에서나 한국인들의 유교화 과정이라는 것을 겪지 않은 자들이었다고 칸다. 그러므로 조선새끼덜은 되려 그들을 불역한 존재로 보고는 무신정변을 일으킨 자들로나 규정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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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반적인 유교사를 논할 때에 성리학이 한국의 통치규범이 된 것은 또한 성리학을 규범으로 만든 쿠빌라이 치세이후라는 것이 일반적인 통사이므로 왕건의 시대에 유교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은 완전한 날조라고 하겠다.

왕건은 877년생에 943년에 사망한 자인데, 주희라는 놈은 1130~1200년생으로 왕건의 시대에는 주희라는 놈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러자 이조 개자슥들이 뻘쭘하니까 쳐 박아넣은 것이 고려조의 역사는 당의 시스템을 본받은 것으로부터 기인하는 당나라 정통론이라는 관념으로다가 후대에 세탁한 것이다.

그 와중에 왕건이 당 숙종의 후예라는 개소리도 외삽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일본사를 봤을 때에 조선의 유교적인 환경과는 다르게 쇼군에게서 기인하는 체제에서 천황들은 종종 바뀌었고, 그 원인 중에 한가지는 일본역사는 조선과는 다르게 사대적이지 않았던 것 또한 원인이라고 보여진다.

왕이 외세 강대국의 백업을 받으므로 제거하기 힘들어진 것이지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슈킹이 더 일반적인 시대가 존재했을 수 있는 것이다.

 

일본사에서 아들이 애비 슈킹한 것도 꽤나 비일비재한 편이다. 조선조였으면 상국이 명나라가 노발대발을 했을테니까 못한 것이지 안한 것이 아닌 것이다.

 

왕건의 시대에 송나라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고, 송이 존재한들 고려조에게 정권 보장을 해주지는 못하던 안보보장을 해줄 수 없는 나라였고, 당나라는 왕건이 30살이던 907년에 쳐 망했다고 한다.

 

일본사에서 사무라이들의 역사에는 하극상은 빈번한 것이다. 무신정권의 무신집단들 하극상을 밥먹듯이 저지르던 새끼들로 묘사된다.

 

 

상식적으로 신라하대라는 시대에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번영하던 시대였고, 다만 진성여왕계 혈통들이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가계들의 혈우병마냥 유전병을 앓았다고 본다. 그에 따라서 다소간의 정권 투쟁이 일어났겠지만 후대의 조선새끼덜의 기술과는 다르게 역성혁명은 아니었던 것으로 본다.

 

다만 일본에서도 다소간 다른 혈통이던 간무천황이라는 놈이 집권하고 나서 나라에서 헤이안으로 천도했듯이 궁예에서 왕건으로 정권이 넘어갔을 때에 경주시대에서 개성시대로 싯켄 집단이 바꼈다고 본다.

 

왕건은 궁예 밑에서 큰 것은 확실하고 양자일지도 모르고 친자일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하극상을 벌여서는 슈킹하고서는 지가 된 놈인 것은 확실한 것이다. 작제건이라는 개소리나 당나라계라는 것은 후대의 사대주의 집단들의 날조라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후삼국의 전쟁이라고 하는 엉터리 것들은 몽골 침략 집단새끼덜의 족보 및 전사 날조에서 일어난 거짓부름일 가능성을 무시못하며, 안동의 삼태사 가문의 라이징은 충렬 울루스 이후의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

 

의종의 마눌이었다는 장경왕후라는 놈은 사후에 국왕의 예로 제사지내지지 못했다는 것 또한 단순한 무신정변이 아니라 장경왕후와 의종을 지지하던 강릉군 온이라는 놈이 여느 일본의 씨족집단간의 슈킹과 마찬가지로 쓰러뜨려졌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굳이 죽은 뒤에 해코지 할 필요는 없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최충헌이 명종의 정통성을 낮추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은 억지라고 본다.

최충헌이 겁날게 뭐가 있다고 그랬다는 것이냔 말이다.

 

https://namu.wiki/w/%EC%9E%A5%EA%B2%BD%EC%99%95%ED%9B%84(%EA%B3%A0%EB%A0%A4)

남편 의종과는 태자 시절 결혼해 왕후가 되었다. 의종과 장경왕후의 사이는 좋았던 걸로 보인다. 자식을 넷이나 두었으며 태자가 태손을 낳아 할머니까지 되었으니 태자비 → 왕후 → 태후 → 태황태후 순으로 정석적인 탄탄대로를 탈 수도 있었겠으나, 남편의 실정으로 크게 몰락하면서 자신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지 못 해 세 자매(장경왕후, 명종비 광정태후, 신종비 선정태후) 중 유일하게 태후 시호를 못받았다. 게다가 의종이 폐위될 당시 의종과 태자 부부, 태손에 대한 이야기는 있어도 왕후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것으로 보아 이미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4]

이후 시동생인 명종이 죽은 뒤, 국왕의 예로 제사지내져야 되지만 최충헌이 이 '경순왕후'의 예에 맞춰서 제사지냈다.[5] 고려사 지 국상조에서 경순왕후(景順王后/敬順王后)라는 명칭으로 등장.

 

 

애초에 무신정변은 문벌귀족이라는 문돌이 집단을 전복한 것 따위는 아니고 되려 강릉군 온이라고 하는 놈이 대표하 강릉의 호족 사무라이 집단이 옹립한 의종을 개경의 호족 군사집단이던 정중부라는 놈이 슈킹하고서는 자신이 쇼군이 되고, 당시에 고려조의 국룰대로 고려 현종의 자손새끼를 아무거나 하나 옹립한 것이라고 본다.

 

고려조의 네이밍은 왕건에게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고려 현종새끼가 거란족들에 의해서 옹립된 놈이기 때문이고, 거란과 구려는 같은 말인 명사로 간주된다.

물론 왕건이 낙타 몇마리를 굶겨죽였다는 것도 후대새끼덜이 이해를 못한 것일 수 있다.

 

강조의 정변으로 여요전쟁이 벌어졌다는 것도 조선새끼덜의 사대주의적인 세계관의 결과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되려 폴권의 말대로 천추태후라는 병신년 때문에 왕건계의 왕조는 1009년에 완전히 망했고, 막리지 강조라는 놈이 천제 순(=현종)을 옹립했다고 보는 것이 맞는 것이다.

 

현종이 천제 건 계열의 사생아라고 카지만 정작 일본사를 참고하며 또한 후대의 정도전이라는 새끼의 이념적인 접근법과 고려와 통일신라는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관점을 배제하자면 현종은 통일신라시절부터 존재하던 어떤 친왕계 씨족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천추태후가 현종에게 불우한 가정사를 제공했다 그 지랄은 그냥 후대에 뼈다구에 살이 붙은 날조일 뿐이고 말이다. 천추태후가 폐위된 것 또한 통일신라이래의 골품제라고 하는 씨족계승시스템에서 도저히 왕이 될 수 없는 김치양이라고 하는 하수인 새끼와의 관계에서 사통한 버러지새끼를 후대로 옹립하려다가 말아먹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그러한 양식은 통일신라에서도 한갖 시중새끼가 스스로 왕이 되었다가 박살이 난 신덕왕새끼와 김치양이 자신의 아들을 천제로 내세우려다가 처단당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되려 신덕왕이나 김치양이 정통성 부족으로 처단당하는 사례를 보건데 신라와 고려왕조에서는 하수인이 위로 오르는 법도는 없었다고 보며, 일본의 천황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천황을 시중하는 문돌이 무리들은 격이 떨어지는 존재로 대우받았다. 

6두품 시중이라고 해봤자 어디까지나 황가의 가노에 불과한 것이다.

 

후대의 서울 문돌이 집단의 개구라와는 다르게 일본이나 한국이나 어디까지나 전사계급의 나라였고, 천황의 수발이나 들던 것들은 대우 못 받는 나라였던 것이다. 

 

한갖 시중새끼가 천황이 되는 격이 되니까 신덕왕이나 김치양과 같은 것들은 인정을 못 받았던 것이다. 그러한 것은 후대의 문돌이 새끼덜의 비정인 문벌귀족의 존재에 완전히 대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울 엘리트새끼덜이 족보 조작을 통해서 문벌귀족이라는 존재가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자아낸 것일 뿐이고, 또한 후대의 경순왕계의 후손을 자처한 것들도 매우 미심쩍스러운 것이다.

 

김치양의 예로 보건데 신덕왕, 경명왕, 경애왕, 경순왕이라는 것들은 정통 신라 국왕이 아니었던 자들로 보여진다. 당시의 전사계급의 신분적 이념상으로는 어디까지나 집안의 식객에 불과한 노오예가 막나간 것으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도 문돌이 새끼가 천황가 밑에서 세습을 하고 지위를 유지한다는 관념은 찾기 힘든 것이다. 뭐 끽해야 음양사 요런 새끼덜이 어디까지나 하수인으로 대우받았을 뿐이다.

 

한갖 시중새끼가 주인의 격으로 오르는 것이 되니 진성여왕계인 헌강왕, 정강왕, 진성여왕, 효공왕이 모조리 유전병으로 요절했으니 당연히 계승권이 경문왕 혹은 헌안왕의 자손이었다고 하는 궁예에게로 넘어간 지극히 정통성에 근거한 것이고, 신덕왕계는 모조리 하수인이 택도 아닌 짓을 하는 것으로 받아졌을 것이다. 

 

효공왕이 서자라서 정통성이 없었다는 것은 후대의 조선새끼덜의 적통주의내에서 엉터리로 해석된 것이고, 효공왕은 진성여왕의 사촌이므로 자격은 충분한 자인 것이다. 일본의 왕통식으로라면 천황가에 입적되기에 충분한 자인 것이다. 

 

되려 어디까지나 헌강왕의 시중이었다는 노오예인 신덕왕이 되려 정통성이 없는 새끼가 경주의 권력을 잡은 것으로부터 계승분쟁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한 계승개념으로 문돌이를 종속적 존재로 인지하는 것은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 따위에서도 존재한 법도이다. 그러나 후대의 권문세족-신진사대부 새끼덜 엘리트 집단은 문돌이인 시중이 맘루크조식 노예 문돌이 취급당하는 궁정질서를 이해못했다고 본다.

 

혹은 후대의 오스만 왕조에서도 문돌이들은 원칙적으로는 종속신분인 것이다. 되려 지방의 호족들인 군사계급들은 적어도 자유민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호족이 왕실을 군사적으로 전복한다면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이지만 종속신분인 문돌 노오예가 왕이 된다고 하면 난리가 나는 것이다. 당장에 군사집단들이 아무도 따르지 않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실력주의에 따라서 군사계급 출신이 아닌 것들은 자유민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사무라이나 화랑 혹은 맘루크 집단들의 무사새끼덜의 신분제에 대한 관점인 것이다.

 

문돌 노예는 이슬람에서는 종종 거세 노오예와도 동급으로 취급되었다.

오스만 투르크에서는 문돌 노예의 최정점인 승상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든지 술탄이 목을 짤라도 되는 그냥 한갖 가노 취급이었다.

그러한 것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생사여탈권의 유무인 무력수단을 가지지 않은 어디까지나 비전사계급 문돌이인 것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 그러한 존재는 언제든지 촌에서 무기를 들고 일어날 수 있는 여느 농민보다 천한 존재인 것이다. 

따라서 농민은 되려 지방 총독 따위의 사법적 절차에 의해서 처벌할 수 있는 존재지만 시중새끼나 승상이라는 것들은 주인이 맘대로 그냥 죽여도 되는 존재였다.

 

그러나 몽골 침략 집단의 자손새끼덜인 권문세족과 사대부집단 새끼덜의 선민주의에 따라서 후대에 잘 못 이해된 것이다.

 

따라서 역으로 신라조에서 천제 철의 시대에 이르는 시대는 일반적인 전사들과 호족들의 시대였던 것으로 간주된다. 왕건의 시대에도 일본의 호족들마냥 기인제도와 사심관제도로 호족새끼덜이 교토나 도쿄로 상경해서는 잠시 머무르다가 다시 돌아가는 형태의 정책이 강요되었다.

게다가 그러한 정책이 있었다는 것은 되려 왕은 별도의 내각을 가지지 않았다는 뜻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일본사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문돌이들로 일루어진 내각과 같은 것을 가지지 않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부의 정치적 요소들은 따라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같은 상경 호족들에 의해서 결정되었던 것이다.

이시다 미츠나리라는 놈 또한 조선시대의 영의정과 같은 내각이자 정부의 수장이 아니라 단지 히데요시가문의 시중이나 집사 하수인정도로 이해되었다.

 

그러한 본질적인 문제 때문에 이시다 미츠나리는 서군의 총대장이 될 수 없었고, 호족이자 사무라이인 모리 데루모토가 총대장이 된 것이다. 이시다 미츠나리는 통일신라식으로 하자면 어디까지나 6두품 버러지인 것이다.

이시다 미츠나리 같은 자가 주인의 명을 출납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시중과 같은 자들이 행정권을 장악해서는 명목상으로는 가노 혹은 식객에 불과한 넘버2가 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통성을 다른 호족이 인정해주냐면 그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문벌귀족은 모조리 후대의 날조이고, 고려시대는 결코 문돌이 사회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문돌이 시중에 불과한 새끼인 이시다 미츠나리를 호족이자 사무라이들의 수장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몰아내는 것과 김치양을 강조가 몰아내는 것은 똑같은 것이라고 본다면 고려시대가 문돌이들의 사회였다는 것도 모조리 후대의 날조이다.

 

적어도 고려 현종의 이후에 세대들은 모조리 강조와 같은 사무라이 쇼군들에 의해서 옹립되는 자들로 보이는 것이다. 심지어 고려 현종의 아들인 덕종과 정종의 경우에는 여느 서유럽 왕자들과 마찬가지로 분봉되는 영지 혹은 사택을 가진 것들이 고려의 왕족들이었다고 기록되었다. 역시나 고려조는 봉건제 사회였던 것이다. 

한국의 후대의 엉터리 엘리트 개자슥들이 곡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바로 그 정종의 동생이었다는 문종의 시대부터가 또한 이자겸이 집안새끼덜이 뜨기 시작하는 시대인 것이다.

 

이자겸이 문돌이라고 비정한 것들도 모조리 후대의 날조이고, 척준경의 성님이 이자겸이라고 보면 단지 쇼군새끼가 자신이 옹립한 천황가와 혈통적으로도 엮인 것일 뿐이다.

 

이자연의 훈위가 상주국上柱國이었다고 하는데, 최충헌의 수대위상주국守大尉上柱國과 같은 의미라고 본다.

 

조선새끼덜은 한국의 고대사가 어디까지나 당나라의 제도에서 증감한 것이라는 사대주의적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이자연에게 문하시중과 같은 당식 관직을 후대에 날조해서 붙였을 수도 있는 것이다.

 

상주국, 수대위상주국, 상국과 같은 직위가 문돌이 직위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자겸은 자신을 조선국공이라고 했다는데 이게 뭐가 문돌이스럽다는 말인가.

되려 연개소문이 자기 자신을 막리지 겸 태대대로라고 한 것과 비슷하지 말이다. 이자겸 또한 태대대로와 일맥상통하는 자신을 왕의 스승이라는 수태사라고 했다고 칸다.

 

그런데, 조선왕실에서는 신료계급의 수장이 왕의 스승이라고 한다는 법도는 없는 것이다. 물론 세자시절에 세자의 스승이던 자들이 있긴 했지만 말이다.

 

수태사라는 직책은 되려 일본에서 쇼군이라는 놈이 모든 부시도의 마스터가 된다는 설정과 매우 유사하다. 즉 이자겸이 화랑도의 마스터이므로 당연히 그를 본받아야 할 천황의 스승 또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https://namu.wiki/w/%EC%87%BC%EA%B5%B0

이 관직은 원래 일본 동북부에 거주하고 있었던 에조(아이누)를 토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토벌부대의 대장 자리였다. 정식 호칭이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었는데, 여기서 '정이'(征夷)란 '동쪽 오랑캐를 정벌한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쇼군에 임명되려면 혈통이 가장 중요했다. 만약 혈통을 알기 힘든 인물이 쇼군으로 임명될 경우 오랑캐 토벌부대의 대장을 오랑캐가 접수하는 안보적인 위기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쇼군은 관직 명칭 때문에 무조건 혈통을 따져야만 했다.

 

의외로 쇼군이라는 직책은 혈통을 요구한다. 고려조 중기에도 혈통을 중시해서는 본관이라는 것이 생겼다니까 일맥상통할 수 있는 것이다.

 

마르티나 도이힐러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천민이라고 낙인 찍힌 집단들은 실제로는 후삼국 시대에 군사적으로 복속된 집단들이라고 했다지만 몽골 새끼덜만이 실제로는 한반도를 군사적으로 정복해서 지배하였다는 상식에 근거할 때에 그리고 그러한 천민들 역시 어떠한 식으로든 혈통을 따져서는 자자손손 유지되었다는 부분은 그들은 그 천민들은 실제로는 고려조나 신라조의 최고 관등위이던 쇼군에 준하는 우두머리였던 것이다. 

 

조선왕조새끼덜의 조작일 수도 있지만 바로 경원 이씨 집안들이 문종밑에서 상주국이자 수태사라고 하던 전대의 정종 새끼의 대에 노비종모법으로 종자를 엄연하게 가르는 제도가 잠시 도입되었다지만 실제로는 조선왕조적인 지주전호제의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쇼군이 될 수 있는 관직에 오를 수 있는 두품을 가르기 위한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고려 정종이 노비종모법을 제정한 것은 조선시대의 노비종모법의 취지와는 다른 김치양과 같은 놈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도록 혈통들을 재정립한 것이었을 뿐일 수 있다.

 

그리고 의민, 의방, 경대승, 최충헌과 같은 자들은 쇼군이 될 수 있는 놈들로 간주되었다는 것이다. 이의민, 이의방, 경대승이 지방출신이었음을 감안할 때에 당시에 쇼군이 될 수 있는 기준이라는 것이 그렇게 빡센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단지 본관을 걸고 해당지역의 군사집단 혹은 사무라이들 혹은 화랑들에게 적당히 얘 자유민 맞음이라고 인정만 받으면 되는 정도.

 

반면에 시종 집단들은 철저하게 엄마를 가려서는 개뼉다구임을 가렸고 말이다.

 

다만 유적으로 보기에 그들 호족무리들 내에서 우두머리 행사를 할 수 있으려면 전주의 이의방 사택으로 의심되는 사택이나 강릉공의 사택일 수 있는 강릉의 사택과 같은 것을 보유한 꽤나 유산계급이긴 했어야 되었을 수는 있다. 

 

한국의 엘리트 사학계 버러지새끼덜은 전시과 제도를 바탕으로 그들의 조상 시스템이 정작 고려조의 성종 때부터 존재한 양 개구라를 쳤는데 그또한 날조이다.

 

전시과라는 것을 고려 경종이라는 놈이 쳐 만들었다는데, 그러한 의미에서 경종이라고 하면 고려중기부터 문벌귀족이 성립되었다는게 그 개자슥새끼덜의 논거인 것이다.

 

그러나 세계사적으로 보건데, 전시과라는 것은 일한국을 개혁하려고 했던 가잔칸(1271~1304)이라는 놈의 국가에서 존재했다는 iqta와 비슷한 것이다.

 

https://namu.wiki/w/%EC%A0%84%EC%8B%9C%EA%B3%BC

그 이유는 일제의 식민사학이 부정한 한국사에서의 중세를 증명하여 작게는 식민사학을 박살내고 크게는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적 정리를 할 수 있고, 고려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통일신라와 조선을 이해할 수 있으며, 한국사회에 뿌리깊게 내려있는 전통관습(가문, 종친회, 성씨, 동성동본 금혼조항, 남존여비, 남아선호 등)의 원인을 밝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시과를 통해서 한국사회의 전통관습이라고 적고 실제로는 몽골계 상전집단의 선민주의에서 기인하는 체제를 고려조의 것으로 곡해하고 서울 엘리트 집단의 정통성을 승자집단의 것을 일반 통사로 만드는 것이다.

 

끽해야 조선 성종 때에 간행된 성화보가 최고본 족보인 것들이 조까고 날조를 한 것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Ghazan

 

정작 세계사적으로 보자면 전시과라는 것은 일칸국의 가잔칸의 시대에 크게 정비되기도 했었던 몽골지배집단의 화폐주의와 함께 발달한 체제이다. 

 

페르시아에 대한 그의 종교적 깊은 영향 외에도 가잔은 일칸국에서 통일된 측정 , 주화 및 무게를 가졌습니다. 그는 왕조의 재정 정책을 정의하기 위해 페르시아에서 새로운 인구 조사를 명령했습니다 . 그는 황무지, 비생산, 버려진 땅을 농작물 재배를 위해 재사용하기 시작했고, 페르시아에서 동아시아 작물의 사용 및 도입을 강력하게 지원했으며, 참마 시스템을 개선 했습니다 . 그는 호스텔, 병원, 학교 및 게시물을 건설했습니다. 조정의 사절 은 일당을 받았고 , 귀족의 사절은 자비로 여행했습니다. Ghazan은 긴급한 군사 정보를 보유한 사절에게만 인력이 배치된 우편 중계 서비스를 사용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몽골군에게 주어졌다.Iqtas는 Ilkhanid 법원에 의해 토지에서 제공되는 수입을 모으는 것이 허용되었습니다. Ghazan은 또한이자 대출을 금지했습니다. 

 

재정 정책에서 가잔은 가자니 디나르를 포함한 통일된 바이메탈 통화를 도입하고 구매 절차를 개혁하여 일칸국의 장인에 대한 전통적인 몽골 정책을 대체 했습니다 . 그는 또한 공개 시장에서 대부분의 무기를 구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가잔칸의 치세에 조정의 사절은 일당을 받았고, 그러한 시스템은 이크타에 의해서 수입을 모을 수 있게 한 자본주의적인 화폐정책으로써 도입된 것이다.

당시의 시대는 현대와는 다르게 산업의 시대가 아니므로 주화에 가치를 부여하고 임대제를 성립시키려면 토지에 가치를 부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잔은 긴급한 군사 정보를 맡은 사절만이 역참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게 했다. 조정은 몽골 병사들에게 이크타를 수여했고, 이크타를 받은 병사들은 땅에서 나오는 생산물로 수익을 얻을 수 있었다.

 

즉 전시과는 정도전이라는 개자슥새끼가 후대에 말한 것처럼 그렇게 악용되려고 한 시스템은 아닌 것이다. 되려 이크타의 목적은 병사들이나 하급관료들에게 생산물에서 나오는 수익이 금전적으로 주어지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그 것은 원나라의 교초가 본위이던 원대의 경제, 사회에만 카운터파트가 되는 것이다. 

조선조 개자슥새끼덜이 말하는 것은 전시과가 아니라 후대의 화폐체제가 완전히 쇠퇴한 물물교환갱제가 되고 만 조선왕조의 과전제 이념으로 엉터리로 개소리를 한 것이다.

 

조선조 개자슥새끼덜의 개소리와는 다르게 적어도 전시과에서는 군인과 향직, 하급 관료들에게도 토지가 지급되어서는 생산물로 수익을 올릴 수 있었고, 이런저란 용역에 대해서 일당을 줄 수도 있었던 것이다.

 

 

  • 구분전: 하급관리, 또는 군인의 유가족에게 생계유지를 위해 지급한 토지.

  • 외역전: 지방의 향리들에게 지급하던 토지로 향직이 세습되므로 사실상 세습되는 토지였다.

  • 군인전: 중앙군인 2군 6위에 근무하는 직업군인에게 지급한 토지. 자손이 군역을 세습할 경우에만 세습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국가에 반납하고 구분전을 지급했다.

 

되려 과전제에서는 전시과에서 발생하는 인센티브를 대대적으로 철폐해버리고 공신집단만이 토지를 가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조선왕조 빠돌이 개자슥새끼덜의 엉터리 가짜와는 다르게 과전제는 수조권을 인정해줘서는 조폭, 한량새끼덜 마냥 삥 뜯을 수 있게 하는 것이 과전법의 분배방식인 것이다. 그 것을 수조권이라고 하는 것이다. 

 

조선왕조가 강고한 가부장제 사회였다는 것은 피수조권을 제어받는 집단들은 실질적으로 그들의 상전들에게 일종의 보호세를 내는 개념인 것이다. 

 

후대에 몽골식 자본주의가 완전히 박살나고 난 이후에 몽골계 상전계급들이 하류 한국인들을 군사적으로 공고하게 종속시키고 현물 삥을 뜯는 방식이 과전제인 것이다.

 

그러나 가잔칸의 치세에 iqta는 몽골제국이 가지는 인센티브 시스템에 카운터파트가 되어서는 화폐의 의한 급여지급과 같은 사안에 필요성에 의해서 토지에서 화폐적 소득을 발생시키는 것에 주안점이 되어진 정책이다.

따라서 과전법과 iqta는 성격이 완전히 상이한 것이다. 전자는 군사지배집단의 현물약탈이라고 하는 농본지대계 사회의 약탈시스템이고, 후자는 적어도 중국과 이슬람식 중세 화폐제의 필요성에 의해서 국가가 토지수익을 제어하는 시스템이다.

 

그러한 전시과를 후대의 조선왕조새끼덜의 체제적 관점으로 해석한 기성세대새끼덜의 그 모든 기술은 다 날조인 것이다. 

재정정책에서 가잔은 가자니 디나르를 포함한 통일된 바이메탈 통화를 도입하고 구매 절차를 개혁하여 일칸국의 장인에 대한 전통적인 몽골 정책을 대체했습니다. 그는 또한 공개 시장에서 대부분의 무기를 구매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에 중국에서 송대부터 교자라는 화폐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금대의 해릉왕대에도 화폐가 도입되었다. 그러한 것에 의해서 고려전기에 전시과가 도입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으며, 가잔 칸이라는 놈의 개혁의 방식과 마찬가지로 iqta는 화폐경제에 카운터 파트가 되는 시스템인 것이다.

 

조선이 과전법으로 넘어간 것은 정도전이라는 개자슥새끼와 훈구파 집권집단의 후대의 거짓말과는 다르게 조선전기의 경제시스템이 물물교환으로 후퇴한 조선새끼덜의 미개함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구분전, 외역전, 군인전이 존재했다는 것은 하급관리 혹은 군인의 유가족, 향리, 군인들에 대한 인센티브를 객관적으로 측정할 화폐제가 존재했다는 반증인 것이다.

일칸국의 가자니 디나르 체제에서 이미 이크타와 함께 대동법과 같은 공개시장에서 구매하는 시스템이 확립되어 있었다.

 

고려전기에는 장보고집단의 상행위가 대단히 활발하면서 송나라와 금나라와 원나라의 화폐가 조선으로 유입되던 시대였으므로 국가는 토지를 수단으로 하급관리 혹은 군인의 유가족, 향리, 군인들에 대한 인센티브를 지급한 것이다. 

 

후대에 정도전이 묘사하는 시대는 원나라새끼덜이 교초를 파탄낸 개막장의 시대이고, 뭐 현대로 비유하자면 달라가 붕괴된 직후와 같은 시대인 것이다. 그러한 공간사에서는 몽골새끼 다루가치 양아새끼덜이 약탈적으로 토지를 후기에 막 후렸다는 막장이었다는 상황의 참고는 되지만 고려중기에 조선조와 같은 몽골계 침략집단에 기인하는 가부장제가 발달해 있었다는 근거로 전시과를 인용하는 것은 완전한 날조인 것이다.

하여간 조선새끼덜의 관점으로 전시과에 대해서 기술한 태반의 것들은 조선조라고 하는 암흑기 시대의 버러지새끼덜이 잣도 모르면서 개지랄을 해서는 지덜의 유교통치시대를 기준으로 다른 시대를 멋대로 비정한 것 뿐이다.

 

그리고 기성세대 사가라는 버러지새끼덜 또한 좃상이나 모시는 구체제적인 관념이나 추종하는 병신같은 새끼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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