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독 하자르설은 대단히 중요한 프레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것은 서유럽 버러지새끼 기독교 사관을 가진 개자슥들이 엉터리로 세뇌해온 중동사에 대한 완전한 수정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그 개자슥들이 말하는 기원전 2,000년 경에 아브라함이라는 버러지새끼가 바빌론의 우르에 살았고, 개독새끼덜이 수메르 문명의 방계쯤 된다라는 것은 모조리 날조인 것이다.
되려 그 개자슥들이 그 지랄을 하게 된 것은 실제로는 로마제국내에서 일어난 오늘날의 이스라엘과 레바논과 시리아, 이집트에 대한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기 위한 날조일 뿐이다. 여기서 중차한 관점 하나는 그 것은 십자군이 아니라 로마의 침략이라는 것이다.
서유럽세력의 아시아에 대한 침략은 십자군 전쟁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일어났던 것이다. 나아가서는 알렉산드로스 3세라는 놈의 정복까지도 논할 수 있다.
그들은 그 침략의 역사에 대한 합리화를 위해서 아브라함이라는 개자슥새끼를 창조해서는 외삽했지만 그 모든 것은 단지 침략세력의 합리화일 뿐이다.
마치 그 것은 애초에 단 한 번도 한민족이 되어 본 적이 없는 고구려가 지금 현대에 한민족 역사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같은 엉터리 논거인 것이다.
고구려가 한민족 역사가 졸지에 된 까닭은 실제로는 몽골 침략에 의한 몽골-여진 지배계층이 고려조에 인스톨되면서 나타난 것이지만 그 것은 다루가치 상전새끼덜의 관점이지 결코 지배당한 고려조 민중적인 관점이 아닌 것이다.
고구려새끼덜의 민중집단은 후대에, 특히 현대에는 단지 중국인이고, 끽해야 조선족일 뿐이다. 조선족 새끼덜이 21세기 현대에는 뭐 한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내셔널리즘에 전혀 호응이라도 하더냐는 말이다.
설사 중국보다 한국에 더 로열함을 느끼는 조선족이 있다고 쳐도 그 역사성은 20세기 후반 이후에나 형성된 것이다. 그 이전 시대의 조선족들은 애초에 조선이나 고려조와의 교역을 위해서 조선말도 조금 익히던 여진족 새끼덜에 불과한 것이다.
요는 12세기경에 침략해온 몽골새끼덜에 의해서 3세기 역사나 6세기 역사가 곡해당하게 되는 외삽을 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작 조선조에는 고구려 버러지들은 건주여진이나 건주좌위로 간주되었다. 정작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이라는 놈은 이성계 집단의 원조이기도 한 함경도 여진족 집단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다고 칸다.
라고 했다고 칸다. 허조의 주장은 고구려 버러지가 어떻게 한민족이랴는 것이지만 세종이라는 놈은 당대의 역사이론인 삼국사기 따위를 쫓아서는 삼국이 정립했으니까 고구려도 우리 역사라고 말은 하고 있지만 삼국사기 자체가 애초에 몽골계 다루가치 지배층새끼덜의 관점인 대단히 경도된 관점인 것이다.
소싯적에 평양성은 그래도 고구려가 아니었냐고 한다면 평양성은 후일에 거란새끼덜에게 전복당해서는 동녕부가 성립되고, 홍건적의 침략이후에 조선과 명의 조약에 의해서 조선에게 양도된 땅으로 본다.
그러므로 고구려 때부터 한국인의 땅이었다는 것은 잣도 모르는 것들이 하는 말이다.
거란과 고려 혹은 구려는 심지어는 같은 어원이 아닌가 하는 의심조차도 있는 단어이다. 즉 거란이 고구려인 것이다.
게다가 지금은 오늘날의 한국이라는 나라의 땅도 아닌 것이다.
다시 로마-바이킹 버러지새끼덜의 거짓부름으로 넘어가서는 애초에 바빌론이라는 곳에 특히 기원전 2천년경에 아브라함이라는 놈이 있었다는 것은 완전한 날조이다.
실제로는 기원전 1200~539년에 페니키아인들이 있었고, 솔로몬이라는 놈은 어쩌면 페니키아의 대왕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후일의 비교적 확고한 카르타고 역사를 참조하자면 솔로몬이라는 놈의 나라의 국가신은 바알신이라고 하는 후대의 로마 개독새끼덜이 마귀로 규정한 신이었을 것이다.
후대의 로마 새끼덜이 바알신을 마귀로 규정한 것은 전세계의 역사학도라면 다 아는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 바르카(기원전 247~183년)라는 놈 때문이므로 아브라함 운지하고는 완전히 다른 시대에 일어난 인지인 것이다.
유다와 시리아 속주의 페니키아인들은 후일에 알렉산드로스 3세의 침략 당시에 싸그리 그리스세력들에게 복속되었고, 곧 신앙까지도 여느 그리스와 이집트의 그리스계 왕조인 프톨레마이오스조의 신앙과 다를바가 없어졌다고 한다.
전에 본인은 유대인 성상 문제가 단지 카이사르라고하는 로마의 포퓰리스트 새끼덜의 개구라에서 나온 거라고 한 적이 있다.
https://hellkorea.com/hellge/1888714
이게 그들의 진실일 뿐이다.
기원전 2000년이 아브라함이라는 개소리가 어째서 광오한 개소리인지는 당시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외연의 상태에 대해서 조금 언급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존나게 미안한 말씀이지만 기원전 2000년 경의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똥송하기 그지없는 거지새끼덜이었고, 끽해야 기원전 600년 경 혹은 기원전 700년 경에 양것들의 개구라인 바다의 민족이니 엘람인들의 침략이니 하는 것들보다 훨씬 후대에나 겨우 인도양을 통해서 버마지역에까지 외연을 넓힐 수 있었던 집단으로 그들이 진짜로 팽창할 수 있게 된 것이 대략 그쯤으로 보면 될 것이다.
비스무리한 시대에 대략 키루스 대제라는 놈의 페르시아가 성립했다고 하는 것이다.
그 이전의 시대에는 그닥 외연이랄 것이 없는 촌동네 병신새끼덜이었고, 심지어는 쿠르드족 야만족새끼덜에게 털려서는 문명이 수백년을 후퇴하던 애들이었다는 것이다.
모술이나 아카바가 쿠르드족 야만족 버러지새끼덜에게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털리는 일은 그 이후에는 영원히 나타나지 않게 되지만 당시만 해도 털렸다는 것이다.
그만큼 당시에는 매우 미약했다라는 것이다. 기원전 2000년경에는 쪽수도 쿠르드새끼덜을 압살할만큼 많지도 않았고, 총생산이 그닥 미개했다는 것이다.
개독개자슥들의 개소리와는 다르게 메소포타미아 문명조차도 고대로 진입한 것은 기원전 7세기에 존재한 키루스 대제의 페르시아 때부터인 것이다.
오늘날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민족들의 연속성 있는 History는 기자의 피라미드세력 또한 지배집단으로써는 죄다 명맥이 끊긴 놈들이고 절대로 기원전 7세기를 넘지 못한다. 페르시아가 성립한 뒤에나 기원전 550~450년경에 끽해야 그리스와 중근동이 갈라진 것이다. 현대 이집트의 기득권은 존나게 잘 쳐 줘봤자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이후의 존재들이다.
기원전 7세기 경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버마지역에 철기와 청동기를 전파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는데, 그 버마지역의 철기, 청동기 집단이 쌀과 돼지, 닭을 가지고서는 오늘날의 중국 윈난성 지역으로 팽창하다가 쓰촨성으로 가서는 거기서 장강을 따라서 내려간 집단이 초나라를 세웠고, 초나라의 방계그룹들은 오나라와 월나라를 세웠고, 쓰촨성에서 북진한 집단은 진나라를 세운 것이다.
지금껏 중국사는 후대의 북방계 집단의 개구라에 의해서 곡해되었지만 춘추를 쓴 공자의 집필의도는 바로 그러한 남방에서 온 이주집단을 기술하려고 한 것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다.
특히 공자의 노나라라고 하는 지역인 공자의 고향이었다고 카는 곡부라고 하는 곳은 중국에서는 쉬저우시의 주변부인 곳으로 쉬저우시는 바로 한고조 유방과 그의 친구들이 탄생한 곳이며, 후일에는 모조리 초나라의 땅이던 곳인 것이다.
공자의 고향의 바로 밑의 호수 너머가 바로 한고조 유방과 소하, 한신, 번쾌가 태어난 쉬저우인 것이다. 즉, 공자의 고향은 기실은 후대에는 초나라의 핵심지역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공자가 가질 수 있는 당연한 역사적인 관점은 초나라세력이 등장해서는 세를 넓히는 시대의 관점이 맞는 것이고, 춘추전국시대의 하남이나 관중, 하북지역에 대한 묘사들은 실제로는 5호 16국 새끼덜의 외삽으로 보는 것이다.
국가명에서 제나라(북제), 주나라(북주), 송나라, 위나라(=북위) 요런 것들은 후대새끼덜의 외삽으로 보는 것이다.
당시에 진나라라고 하는 나라조차도 진시황이라는 놈이 정작 초나라의 진선태후의 자손이었다고 하며, 유방과 항우가 모두 초나라 출신일 정도로 초한지 시대의 역사를 점검하면 초나라 집단의 독주하던 시대가 당시로 보여지며 하남과 하북의 집단이 의미가 있었다고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애초에 중국 문명은 남방계에 의해서 성립했고, 북방계새끼덜은 5호 16국 이후에나 내려온 것들로 이해하는 것이 맞으며, 육도삼략, 자치통감, 사고전서 따위의 고대사에 대한 묘사들은 실제로는 5호 16국 시대 이후에나 존재한 양상으로 간주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파르티아세력이 중국으로 가는 교역로를 발견한 실크로드가 발견된 기원전 205년 이전(=그 이전일 수도 있지만 절대로 다리우스의 아케메네스 왕조가 알렉산드로스에게 망한 기원전 247을 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에 북중국계의 독자적 세력이 있었다는 것은 모조리 날조이다. 5호새끼덜은 끽해야 기원전 205년부터나 인구가속을 하던 오랑캐 버러지들로써 그들이 중국 고대사에서 북방계새끼덜의 땅인 하북이나 하남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은 모조리 날조인 것이다. 게다가 5호의 군사문물 자체가 파르티아로부터 받아들인 것으로 기원전 205년 이전에는 그들의 군사적 승리도 생산가속도 전혀 없었다고 봐야하며, 따라서 5호 집단들이 화북이나 화남에 난입했을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이다.
5호새끼덜이 중국에 도달한 것은 오랑캐 버러지들은 날조가 심하지만 실제로는 부견의 정권이 붕괴한 뒤라고 보여지며 그렇게 볼 때에는 끽해야 기원후 380년 이후일 뿐이다.
초한쟁패전 당시에 하남이나 하북은 별반 중요하지 않은 지역으로써 간주되고 있을 뿐이다. 하남과 하북이 중해지는 시기는 실제로는 적어도 북위, 동위, 서위 이후에나 해당지역의 지정학적 가치가 성립했다고 보는 것이다. 하남과 하북에서 전혀 접전이 벌어지지도, 해당 지역에서 초한쟁패기에 영향을 준 인물은 단 한 놈도 언급되지 않는 수준이다.
은허라는 버러지는 단지 미개인 병신새끼덜의 유적일 뿐이다. 하은주는 물론 모조리 날조이거나 실제로는 역사에 영향을 거의 주지 않은 집단인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포인트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외연이 급격하게 확장된 것은 끽해야 기원전 7세기 이후라는 것이고, 아브라함이니 수메르니 하는 것들의 시대에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적인 요소들이 외세로 알려질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끽해야 알렉산드로스 3세(기원전 323년에 사망)에게 털린 페르시아 집단들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부흥군을 조직해서는 저항하는 과정에서 중국으로 가는 교역로를 발견했다는게 중근동 문명의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냐면 지금껏 백인 버러지새끼덜이 주장해온 이란계 아리안족 이론은 전적으로 날조라는 것이다.
파르티아는 초기에는 명백하게 이란이 아니라 끽해야 투르크메니스탄의 카스피해 유역의 변두리에서 시작했던 놈들이다.
서유럽의 바이킹계 앙시앵레짐새끼덜은 백인의 기원을 아리안족으로 본다지만 그 자체가 애초에 개독새끼덜에 의한 거짓부름에서 파생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되려 백인의 근원집단은 역시나 게르만족과 슬라브족인 나뉘기 이전이던 아틸라의 침략당시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그 바이킹계 개자슥들이 이러한 부분들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 이유는 스칸디나비아새끼덜이 각각 게르만족과 슬라브족들의 위에서 군림하게 되면서 독일과 러시아를 넘나드는 바이킹계 지배집단의 이이제이를 위한 관점으로 여태까지 독일과 러시아인들의 분리를 주장해왔기 때문이다.
어쩌면 게르만족들에게는 로마식 알파벳을 가르치고, 슬라브새끼덜에게는 키질식 알파벳을 가르치는 것조차도 그러한 오랜 민족분리를 위한 바이킹계 지주집단 새끼덜의 고의적인 분리통치 기법에 따른 채택인 것이다.
그러나 정작 오늘날의 체코 따위에서는 로마식 알파벳으로 고슬라브어와 고게르만어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체코어를 표기하는 하이브리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요는 게르만과 슬라브라는 것은 본디 하층집단에서부터 분리된 것이 아니라 지배집단의 사정에 따라서 졸지에 나뉘어진 것이고, 여기에 바이킹계 새끼덜의 독일과 러시아에서의 기득권이 구현되어 있기 때문에 거짓부름을 치는 개독새끼덜의 가짜 역사관을 해당지역의 신민들에게 지독하게 세뇌를 쳐 해 놨다는 것이다.
그러한 프레임을 따르는 이론이 바로 이란계라고 하는 아리안 이론이라는 것이다.
정작 파르티아는 이란이 아니라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탄생하였고, 투르크메니스탄인들은 카스피해를 통해서 후일의 하자르제국 지역과 통교하던 놈들로 보여지며, 따라서 아리안 이론과는 다르게 정작 투르크메니스탄의 백인 민족사는 슬라브 백인사로 흡수된다는 것이다.
위의 지도를 보면 하자르 국의 Samadar, Balanjar와 Derbent와 Baku의 카스피해 서안의 도시들과 투르크메니스탄의 카스피해 동안의 도시들의 교역권 내에서 투르크메니스탄은 후대에 슬라브화 된 집단과 교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파르티아 제국이 성립하기 전에 이미 투르크메니스탄인들은 동쪽으로는 중국과의 교역로를 탐험하는 한편으로는 카스피해의 해륙경제를 발전시켰고, 곧 후일의 하자르집단과 통교할 인프라가 쌓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하자르제국을 멸망시킨 버러지새끼덜이 바로 바이킹새끼덜이고, 그 바이킹새끼덜이 게르만족과 슬라브족을 마치 파키스탄과 인도를 분리하듯이 해서는 천년이 넘게 지배한 것이다.
그 것들의 개소리와는 다르게 이란인들이 아리안족으로 백인의 정통이라고 볼 근거는 극히 희박하며, 다만 이란인화된 투르크메니스탄인들이 어디까지나 비주류로 이란사회에 침투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실 아리안 정통주의는 실제로는 로마제국에 대해서 한 때에 항쟁했던 사산조 페르시아에 대한 적대주의에서 나온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피부색을 가지고서는 개지랄을 한다는 것도 엉터리라지만 정작 동양사적인 관점으로 보자면 투크르메니스탄과 타지키스탄민족이 같다는 관점은 말도 안 되는 개소리인 것이다.
타지키스탄인들과 아프가니스탄의 타지크족과 파슈툰족과 이란인들은 분명히 연관이 있는 것은 맞지만 그 경계를 카스피해 동안너머의 슬라브족 지역으로 연결한 것은 역시나 바이킹 지배집단새끼덜이 게르만 노예들과 슬라브 노예들을 언어, 종교, 역사를 통해서 분리하는 관념에서 나온 관점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의 개소리와는 다르게 아리안민족이 유럽으로 간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알렉산드로스의 원정에 의해서 이란과 박트리아인들, 오늘날의 이란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의 일부와 타지키스탄에 이르는 지역에서 교잡이 일어났을 뿐이다.
그러나 카스피해 서안의 하자르족 지역에 헬라새끼덜이 당도한 적은 전혀 없으므로 아틸라 집단과는 별개로 봐야하며, 아틸라 집단과 로마 집단의 싸움에서부터 게르만족과 슬라브족이 갈라진 것이다.
여기서 통념과는 다르게 곧 바이킹 새끼덜에게 정복당한 하자르제국이 멸망함에 따라서 개독의 연원이 오리무중이 된 것을 로마새끼덜이 개구라로 참칭했지만 정작 개독과 유대교, 그 외에 유일신, 단성론은 싸그리 실제로는 탱그리 신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이킹 버러지새끼덜은 독일인들과 러시아인들이 같은 민족이라는 관념을 가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온갖 종류의 차별화를 가했고, 그러함으로써 게르만새기덜과 슬라브새끼덜이 동유럽을 통해서 활발한 육상교역을 펴지 못하게 이이제이를 함으로써 바이킹의 해상교역 나와바리인 발트해의 교역으로 동서유럽을 쥐고 흔들어 온 것이다.
게임, 킹덤:딜리버런스에서 나오는 룩셈부르크 왕조를 전복하고는 압스부르크로 교체한 것 역시도 룩셈부르크 왕조의 마지막 왕이던 지기스문트라는 놈이 헝가리의 왕을 겸하고, 폴란드와 헝가리에서 게르만과 슬라브세력의 교역을 증진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바이킹 개자슥들이 슈킹한 것이다.
그 헝가리가 바로 아틸라세력이 주둔하던 곳임을 깨닫자.
압스부르크 새끼덜 또한 헝가리왕을 겸하게 되자 또 슈킹을 놓은 것이다. 그러한 방식으로 서유럽과 동유럽을 이간해 온 씨발새끼덜이 바이킹 버러지새끼덜인 것이다.
그 것을 이해해야지만 어째서 유고슬라비아가 발카나이즈 되었냐까지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서유럽과 동유럽의 작위를 모두 얻은 룩셈부르크 왕조나 압스부르크 왕조 집단이 아드리아해까지 팽창해서는 크로아티아 새끼덜을 복속시키기라도 하면 바이킹 새끼덜이 꽉 잡고 있는 지중해교역에 라이벌리가 형성되기 때문에 발카나이즈를 해서는 유교슬라비아를 획책하는 것이다.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그 것은 이탈리아 반도를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만새끼덜이 슈킹한 것과 관련이 있고, 이탈리아내에서 해상집단이던 제노바와 시실리 새끼덜은 죄다 바이킹인 노르만 새끼덜인 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베네치아만이 노르만새끼덜을 물리치고서는 비노르만계 해상세력으로 중세에 존재하였고, 제노바와 베네치아가 철천지 원수인 것은 제노바새끼덜은 노르만=바이킹 새끼덜이고, 베네치아는 로마화된 롬바르드족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가가 바로 제노바의 노르만집안이던 프랑스의 군바리새끼가 나폴레옹이라는 놈인데, 그 씹새끼가 베네치가 공화국을 멸망시킨 것이다.
나폴레옹의 외가가 바로 노르만계의 제노바의 용병집안이었다고 칸다.
나폴레옹 새끼는 한 때에는 줄만 어떻게 타면 영국놈이 될 뻔하기도 했던 제노바의 노르만계 보지년 에미나이가 낳은 새끼였던 것이다.
나폴레옹의 애미가 대가 쎈게 다 이유가 있어서이다. 파리지앵 버러지새끼덜, 문돌이 새끼덜은 지덜이 유럽을 지배하는 줄 알지만 실상은 바이킹계들이 진짜 영향력을 가졌다는 것을 알만한 집안이 나폴레옹 애미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주의적 관점으로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을 평가하지만 바이킹 새끼덜의 오랜 기득권은 애초에 게르만과 슬라브를 나눔으로써 발생해온 것이다.
나폴레옹새끼가 러시아를 건든 것은 실제로는 그러한 유럽사회내의 바이킹 커뮤티니의 일반적인 뜻이었을 수도 있다.
다른 의미로는 표트르 1세의 왕조 또한 바이킹 집단의 왕조였었고, 영국 왕실이야 뭐 대놓고 바이킹 후손집안이므로 신흥 바이킹 집안 왕조인 나폴레옹에게 열등감을 줬을 수도 있다.
게다가 나폴레옹이 롬바르드족 코스프레를 하는 노르만계였다면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바이킹 국가인 영국에게 쩌리 취급을 당했다는 것도 잘 알았을 것이다.
나폴레옹은 확실히 유소년기에는 영국쪽으로 전향하려고 했지만 어쩌다 보니까 프랑스쪽으로 가게 되었는데, 때마침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나서는 그쪽이 출세하기 더 좋게 되니까 프랑스 육군에 박혔던 놈인 것이다.
결론:
하여간 꽤나 길게 썼는데, 오늘날의 북방계 게르만새끼덜과 슬라브새끼덜은 바이킹 지배집단 버러지새끼덜의 입맛에 따라서 divide and rule 되었고, 북방계 백인새끼덜과 아리안계 인도, 아프간 새끼덜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백인을 아리안으로 묘사하는 개지랄 또한 바로 그 바이킹새끼덜의 지배구조에 기인하는 것이다.
정작 러시아와 독일, 이탈리아에서 현지 민족인 척 하지만 잘 까보면 노르만이거나 루스 바이킹새끼덜인 것들이 지금도 존재하는 편이고, 그 버러지덜끼리 해 쳐 먹으면서 런던그라드가 밀란 증권시장의 보유권을 가졌다거나 하는 식으로 노골적으로 바이킹 새끼덜끼리만 해 쳐 먹는 혈연 기득권이 존나게 강한 것이 서유럽 개독사회의 실상인 것이다.
일례로 나폴리 병신새끼덜은 지덜이 북부의 롬바르드족에 의해서 차별받는다고만 믿지만 실상은 이탈리아에서 아주 오랜 혈연집단이던 바이킹과 노르만 새끼덜에게 털리는 것이다.
시칠리아 마피아로 유명한 영화 대부에 나오는 집단들 또한 바로 그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만 새끼덜인 노르만 크샤트리아 새끼덜이 지금도 지랄병을 하는 것인 것이다.
서유럽 사회에서 바이킹 가문이라는 것은 똥남아의 화교가문이라는 것만큼이나 뿌리가 깊지만 정작 서유럽의 주류새끼덜은 아무도 말하지 않는 터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