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John
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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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누와 도호쿠인들이 확고하게 분리되기 시작한 것은 1599년의 마츠마에 번이 에도 막부로 승인되고 나서이다.

 

1457년의 코샤마인의 난 당시에는 그러한 분리가 없었고, 다케다 노부히로만 하더라도 훗카이도로부터 매우 먼 지역인 와카사 국(지금의 후쿠이현 남부)의 영주의 아들이었음. 

즉, 1457년에는 와카사국에서 훗카이도 사이의 광범위한 영역이 중립상태로 남아있었다는 것을 시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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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이현의 위치가 어디인가? 교토바로 동쪽의 땅인 것이다. 위의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후쿠이현과 훗카이도의 거리는 한반도 2개 정도 들어가는 거리이다.

 

따라서 1457~1599년으로 가는 사이에 일본문명의 지배권역의 급속한 확장을 시사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러한 시간대에서 교토의 막부체제가 전복되고 도쿄의 에도막부가 들어섰고, 특히 다케다 가문과 에도막부의 창시자 집단은 미카타가하라 전투와 나가시노 전투라는 두차례의 회전을 벌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새끼덜의 거짓부름과는 다르게 되려 도호쿠의 오랑캐집단이 교토의 동부를 수비하던 다케다가문을 물리치고는 상락을 자행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것이고, 청이 명을 박살내듯이 간토와 도호쿠새끼덜이 간사이지역의 문명을 정복한 것이다.

 

아이누족에 대한 지배 확립은 그러한 정복집단이 되려 자신들의 출계집단을 국가주의에 의해서 부인하고, 야만족으로 몰아간 것이다. 

 

비슷한 것으로 금나라새끼덜 또한 정작 지덜의 북경집단으로써의 통치가 확고해지자 되려 동여진족들을 오랑캐 취급하였다. 금사에 그러한 인지가 고스란히 적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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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버러지새끼덜은 헤이안 시대에 이미 모든 아이누들이 야마토문명에 점령되었다고 하지만 그게 바로 개구라인 것이다. 

정작 그 반대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오다 노부나가로 대표되는 도호쿠와 간토의 아이누계 지도집단들이 교토 정권의 동부지역을 사수하던 다케다 가문을 멸하고서는 간사이의 오랜 문명집단을 정복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원동력은 스페인 상선이 간토와 도호쿠에 들어오면서 스페인 부왕령으로부터의 콩키스타도르 새끼덜과 결탁한 이후에 일어난 전형적인 아즈텍 제국식 전복인 것이다.

 

일본의 조총이라는 것도 죄다 스페인 콩키스타도르들이 포루투갈 상인들로부터 당시에 포루투갈이 말라카 정복전 이후에 남아돈 워페어들을 수입한 것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말레이-포르투갈_전쟁

 

포르투갈이 어째서 일본의 간토의 군벌집단을 지지했는지와 그들이 조선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킨 것은 실상은 모두 한가지인 것이다. 스페인은 당시에 모리가가 가지고 있던 은광을 노린 것이었고, 포르투갈은 중국과의 전쟁을 원한 것이다.

 

히데요시 사후 전국을 장악하게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 막부를 세우면서 전국에 있는 금광과 은광을 모두 강제 몰수한다. 그리고 각 광산을 관리할 자를 보내는데 이와미 은광에는 오쿠보 나가야스(大久保長安)를 파견한다. 나가야스는 다시 광산을 전문적으로 경영할 사람을 두고 막부를 위해 본격적으로 은광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17세기 초반에 이와미 은광은 최대 전성기를 맞아 매년 막부에 15톤 가량의 은을 공물로 바칠 수 있었다. 이렇게 일본에 은이 넘쳐나게 되자 이는 은본위제도를 채택하고 있던 명나라네덜란드와 영국포르투갈과 일본이 무역이 하기 좋은 조건이 된다. 또한 무역 거래를 통해 조선에 흘러들어간 일본 은이 조선 후기 경제를 지탱하는 기축통화 역할도 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 새끼가 잡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짓도 금광과 은광을 국가가 몰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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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새끼덜이 말라카를 쳐 먹었을 때에 중국이 정작 그 지배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 따라서 포르투갈과 명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지만 포르투갈이 대패했던 것이다.

백인 버러지새끼덜의 가짜 역사와는 다르게 16세기만 하더라도 명나라는 육상 뿐 아니라 해상에서도 유럽에 전혀 뒤지지 않았던 것이다.

 

포르투갈 상선과 군선들은 중국의 해군들에 비해서 열세였었고, 1521년의 해전에는 그야말로 빤스런을 하게 되는 대패를 당했던 것이다.

 

그러한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야합해서는 당시에 야마토 문명의 후예들과 대치하고 있던 간토오의 하프 이누족 새끼덜이 새로운 워페어를 갖추도록 하고서는 콩키스타도르식 군사육성을 통해서 서유럽식 창병인 아시가루들을 육성하고서는 아즈텍 제국의 재규어전사들과 똑같은 야마토 문명의 전통적인 군사집단인 사무라이 군대를 이끄는 대장군인 다케다 신겐과 그의 사무라이 집단을 쓰러뜨리고는 교토에 입성했던 것이다.

 

다케다 신겐의 본명은 다케다 하루노부로써 아시카가 쇼군가의 아시카가 요시하루의 이름을 딴 것으로 그는 아시카가의 충직한 영주였다고 보여진다.

게다가 다케다 신겐의 시그니처 네임은 후대의 에도 막부새끼덜이 막되먹은 이름으로 쳐 붙인 신겐이라는 엉터리 이름이 아니라 천태종 좌주 사문 신겐(좌주는 불교의 강사, 사문은 수도자를 말한다.)이라는 호국불교의 수도자를 칭하는 태국이나 신라의 낙무아이나 화랑과 똑같은 계율불교의 수도자이자 전사계급임을 자처하는 자였던 것이다.

 

반면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시가루라는 것들은 스페인 군대를 본뜬 농민 징집병, 창병들이다. 

 

다케다 신겐이 대승불교인 천태종을 표방하였다는 것은 그가 이미 몽골의 지배 이후에 대승불교가 된 한반도 세력의 천태종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불교와 마찬가지로 다케다 신겐의 시대에도 중국의 대승불교 집단을 표방하는 천태종 집단과 보다 오래된 기원미상의 원형불교집단인 담마굽타카와 비구승가를 표방하는 일향종이 공존했던 것이다.

 

지명(智明)이 지은 《사분율갈마기( 四分律羯磨記)》 1권, 신라에서 계율을 정립했던 자장(慈藏)의 《사분율갈마기》 1권과 《사분율목차기 四分律木叉記》 1권, 원승(圓勝)의 《사분율갈마기》 2권과 《사분율목차기》 1권, 원효(元曉)의 《사분율갈마소(四分律羯磨疏)》 4권과 《사분율소과(四分律疏科)》 3권, 《사분율종기(四分律宗記》) 8권, 《사분율제연기(四分律諸緣記)》 8권, 《율부종요(律部宗要)》 1권, 경흥(憬興)의 《사분율갈마기》 1권, 《사분율십비니요기(四分律拾毗尼要記)》 3권, 명효(明皛)의 《사분율결문(四分律決問)》 2권 등이다. 이들은 모두 신라시대 고승들의 주석서로서 신라시대에 이 책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승려 입문 득도수계가 사분율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출처 : 한국불교신문(http://www.kbulgyonews.com)

 

불교새끼덜은 요지랄을 하지만 그 것은 역사에 대해서 잣도 모르는 개지랄이고, 실제로 신라시대의 불경이라고 하는 것들의 진짜 출처는 불분명한 것이다. 

그 것들의 실제 연대기는 둔황의 막고굴의 연대인 366년경을 절대로 넘을 수 없는 것들이다.

 

막고굴이 최초로 만들어진 시기는 오호십육국 시대 전진 시대인 366년으로 추정된다. 승려 낙준(樂僔)이 이 곳 암벽에 석굴을 파고 불상을 조각한 것을 시작으로, 그 후 법량선사(法良禪師) 등이 계속 동굴을 파고 수련하게 되면서 이곳은 막고굴(漠高窟), 즉 '사막(沙漠)의 높은[高] 곳의 굴'이라 불리게 되었다. 후대에 들어 한자 '막(漠)'과 '막(莫)'을 통용하게 되면서 이름도 막고굴(莫高窟)로 바뀌게 된다. 오호십육국 시대부터 북조(北朝) 시기사이의 기간에 만든 동굴은 모두 36개인데, 그중에서 가장 오래된 제268호굴, 제272호굴, 제275호굴은 아마도 북량(北涼; 397년 또는 401년 ~ 439년) 시대에 세워진 듯하다.

 

신라 고승들의 주석서라고 하는 것들은 실제로는 수당송대에 만들어진 위서들이다.

 

366년경부터 돌궐 지배계급들이 둔황에서 불사를 일으켰고, 그 것들의 산물들이 곧 대승불교가 된 것이다.  게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증거가 있는 것은 397년 이후의 것만이 검증되었을 뿐이다.

 

소수림왕(~384년 사망)의 시대에 대승불교를 고구려에 전파했다는 개구라는 중화제국주의에 의한 각색인 것이다. 실제로는 한반도 세력은 법장경을 인도로부터 사산조 페르시아 상인들을 통해서 거의 직통으로 받아들였거나 혹은 당시의 캄보디아와 태국을 거쳐서 받아들였을 뿐이다.

 

게다가 중국새끼덜의 개구라와는 다르게 실제로는 장보고라는 놈의 시대에 한국인들이 동북아시아의 해상패권을 장악하는 일이 일어났고, 당송과 한반도의 교역과 청자의 탄생은 모두 그 시절로부터 기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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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후 846년에 사망한 장보고 집단이 바로 위의 지역에서 일본너머의 지역을 뺀 지역의 해상권을 장악했던 것이다. 그러한 연원은 아마도 당나라새끼덜이 남조를 멸하면서 상하이와 저장성의 중국계들의 다수가 전라도와 경상도 해안 지역으로 이주해간 원인으로 본다.

 

게다가 정작 나당전쟁으로 후대에 보고된 전쟁이나 후삼국 시대의 전투로 보고된 것들은 그 진위가 미씸적은 것이다. 그 것들은 실제로는 몽골의 한국정복 당시에 일어난 전투들을 지역의 집단기억을 곡해하기 위해서 시대를 고의적으로 지배집단이 조작한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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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소성 전투만 하더라도 실제로는 고려조와 몽골의 전쟁으로 보여진다. 당시에 아랍의 공성병기를 도입해서는 공성능력이 극히 뛰어나던 몽골에 대해서 농성을 포기하고는 개성을 버린 한국군사들이 장단면 혹은 문산으로 가서는 어가와 가족들은 모두 강화도로 배를 태워서 보내고는 남은 배들로는 임진강에 협선을 띄워서는 몽골의 도하지점을 상류로 제한한 뒤에 성인 장정들은 동두천쪽으로 가서는 남경과 양주의 군세와 합쳐서는 매소성으로 진격해서는 몽골과 회전을 벌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견훤과 왕건의 싸움이었다는 식으로 곡해된 공산 전투와 고창 전투 또한 삼태사 가문새끼덜이 실질적으로 몽골지배 시대 이후에 등장했다고 보면 몽골집단과 경상도 군세의 싸움이었다고 보이는 것이다.

특히 당시에 경주의 이의민계 군사집단들이 한 때에 정권을 차지한 적이 있었고, 이의민계의 무사집단들이 상주에서 북영천, 안동에 이르는 영역에서 경주로 내려오는 몽골 군사와 싸웠던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그러한 싸움의 기억들을 조작하기 위해서 나당전쟁이라는 것은 몽골계 정복집단에 의해서 날조된 것이다. 그 몽골계 정복집단이 후일의 신진사대부 집단이며 바로 곧 조선왕조의 양반이라는 것들인 것이다.

안동의 삼태사 집안 새끼덜 또한 양반으로 대접받은 것이 다 그렇고 그러한 것이다.

 

안동의 삼태사 집안이라는 씨발 새끼덜은 아마도 상주에서 영천과 건천, 경주의 끝자락인 강동면과 안강면과 기계면 일대의 산만디들 사이에서 경주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을 안내한 매국노 새끼덜인 것이다.

 

왜냐면 그 쪽의 산만디들 사이에서 경주로 내려가는 회랑은 현지인들이 아니면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고, 산길을 잘 못 들면 영천에서도 닥치고 동남쪽에 경주가 있으려니 하고서는 남쪽길로 잘못가면 자칫 건천을 통해서 언양으로 빠져서는 삼랑진으로 빠지는 엄한 길로 들기 쉽상인 것이다.

금호강 일대에서 경주로 가는 산길의 정보를 현지인들이 팔아넘기지 않았을 터인데, 안동의 삼태사 가문 버러지새끼들이 팔아먹은 것이다.

 

그리고 그 씹새끼덜은 북안동에서 영천을 통해서 안강이나 강동으로 가는 산길안내를 한 것이다. 그러한 안내가 아니라면 몽골군사들은 안동에서 낙동강을 따라서 대구로 들어간 뒤에 다시 금호강을 따라서는 영천으로 가는 돌아서 가는 길을 택해야 했을테고 그 과정에서 상당한 군사가 꺾였을테지만 안동 김씨, 안동 권씨, 안동 장씨새끼덜이 아따 영천과 경주로 바로 쭉 내려가면 되는 산길이 있당께요 요지랄로다가 엄연한 군사정보인 지리를 팔아먹고는 500년의 부귀를 쳐 누린 것이다. 

 

김조순, 김옥균이 15대조 할배새끼가 그 지랄이나 하던 놈인 것이다.

 

그 지랄이 뽀록이 날까봐 있지도 않은 견훤, 왕건을 날조해서는 호작질을 한 것이다.

 

 

각설하고 장보고로 돌아와서 천태종과 대승불교는 실제로는 장보고계 해상집단에 의해서 한국인들이 중국과 교역하면서 훨씬 후대에 주체적으로 수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고려청자의 시대에 말이다.

따라서 다케다 신겐의 천태종 좌주 사문이라는 칭함 또한 신라구의 시대에 당나라와 송나라로부터 신라 해상집단을 통해서 야마토 문명 집단들이 받아들인 천태종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그 장보고계 해상집단과 후일의 남송계 해상집단이 몽골계 해상집단에게 제노사이드를 당하면서 역사의 기억들이 말살당하고, 소수림왕 대에 대승이 들어왔다는 기록들은 그 이후에 성립한 몽골계 오랑캐 지배집단의 한정된 인지에서 나온 정보 오류인 것이다. 

조선왕조새끼덜이 쓴 고려사라는 것이 대저 오류가 심각한 게다가 인위적인 날조까지 자행된 근거가 별로 없는 위서인 것이다.

 

이성계 새끼가 군사적인 승리를 거두었다는 왜구라는 집단이 실제로는 장보고계 해상집단의 후예들이고, 이성계의 판옥선은 사할린 공략 당시에 몽골놈들이 만들었다고 하는 천척의 수송선단에서 기인하는 배들이고, 그 배들에 최무선이라고 하는 이성계의 똘마니새끼가 화포를 실어서는 장보고계 해상집단들의 후예들을 죄다 학살한 것이다. 그래놓고서는 왜구라고 주작한 것으로 보여진다.

 

http://www.atlas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80

몽골이 사할린섬을 공격한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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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1년 몽골은 국호를 원(元)으로 개칭하고, 만주지역에 탁시알라(塔匣剌)를 군 책임자로 임명했다. 탁시알라는 1273년, 1274년 두해에 걸쳐 사할린 공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몽골군은 연해주와 사할린 섬 사이의 타타르 해협(Strait of Tartary)을 건너지 못했다. 타타르 해협의 가장 좁은 곳의 폭이 7.3km인데, 해전에 약한 몽골군은 이 해협 앞에서 멈춘 것이다.
(중략)
어쨌든 여몽연합군의 2차 원정이 실패한 직후 몽골은 사할린섬 공격을 재개했다.

1282년 아이누족들이 다시 사할린의 니브흐족을 침공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번에는 원 조정이 만주군을 보내기로 했다. 몽골군은 사할린 침공계획을 1284년 9월로 잡았다가 11월로 연기했다. 해협이 얼어붙을때까지 기다릴 작정이었다. 몽골군은 사할린 공격에 성공했고, 이어 1285년과 1286년에도 1만명의 대군을 사할린섬에 파병했다.


이번에는 배를 이용했다. 타타에르다이(塔塔兒帶)와 양울루다이(楊兀魯帶)가 이끄는 몽골군은 1,000척의 배를 동원해 1척당 10명씩 태우고 사할린으로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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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2년에 사할린 공략집단들은 분명히 천척의 수송용 배들을 건조한 것은 확인되는 사실이다. 그리고 판옥선류의 배는 일본에서는 양곡수송선이었던 것이다. 그 수송선에 화포를 탑재하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 최무선이라는 놈인 것이다.

 

전의 글에서도 적었지만 이성계 집단은 바로 그 사할린 공략집단에 군수품을 대던 놈들로써 반도에서 옌볜으로 가는 군수물자의 길목인 회령일대를 경비하던 놈들이다.

 

진포해전은 따라서 그러한 사할린 공략집단의 해군들이 해양도(=전라도의 본명)의 장보고계 해상집단들을 몰살시킨 사건인 것이다.

 

진포해전의 최대 미스테리는 무려 500척이나 되는 선단들이 어디서 쳐 나왔냐는 것인데, 원대까지는 해금령이 강제되지 않았으므로 전라도에서 중국으로 도선하는 것이 허용되었던 것이다. 

그러한 해상무역집단이 후일의 오랑캐 정권새끼덜에게 몰살당한 것이다.

 

진포해전의 집단은 어쩌면 대칸의 후예인 공민왕과 우왕, 창왕을 폐한 새끼가 나라를 전복하는 것에 대해서 일어난 근왕군이었을 것이다. 전라집단은 정작 후일의 남한산성에 인조새끼가 고립되었을 때에도 근왕군으로 남한산성을 구원하러 간 역사가 있는 것이다.

 

 

다시 일본문제로 돌아와서 다케다 신겐이라는 놈이 천태종이라는 것은 그러한 조선조의 사연이 있은 뒤에 길게는 북송대 이후이고 짧게는 충렬카칸국 이후에 한반도에 받아들여진 대승불교가 일본으로 전파된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다만 불교계의 개구라와는 다르게 왕건의 고려조와 천태종의 연관성은 없어보이고, 조선조의 엉터리 비정으로 말미암아서 졸지에 같은 정권이 된 왕건의 북조 멸망 이후에 성립한 충렬카칸국 새끼덜의 불교가 천태종이었다고 본다.

 

조선조새끼덜은 지덜의 이씨왕조의 전제주의 정권을 본따서는 그리고 역성혁명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백제와 신라를 신라와 고려를 분리했지만 정작 신라왕실의 친왕가이던 궁예가 진성여왕계들이 유전병으로 다 죽어서는 계승하게 되었고, 왕건이라는 조선이 지어낸 놈은 실제로는 궁예의 양자이거나 방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경주정권은 남조, 개성정권은 북조라고 보는 것이 맞으며 신라와 고려라는 이름조차도 날조이고, 신라의 어원은 진랍이고, 고려의 어원은 강거 흉노 혹은 거란으로 보여진다.

거란과 고려는 같은 말인 것이다. 거란=고려. ㄱㄹ. 거란의 남부 방언이 고려였다고 본다.

조선조새끼덜이 쓴 사서라는 것의 수준이 요따구인 것이다. 미개인 새끼덜 마.

 

그들의 작명조차도 날조이고, 신라왕릉이라는 것들도 실제로는 후대의 녹화 사업에 의해서 날조되었는지 아닌지는 전혀 확인이 되지 않는다.

 

갈문왕의 어원조차도 산스크리트어 칼라 무니=성스러운 시체 라는 뜻이고, 한자어로는 (묘호)성왕이 되어버린다. 

 

https://blog.naver.com/wewre3/222918246996

 

Kala muni 운명 성자. 

즉 갈문왕이라는 말은 '운명이 다한 성왕'이라는 뜻이 된다. मुनि muni의 뜻이 holy man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왕이라는 이름은 묘호의 의미가 섞인 것이다. 그래서 조선조 병신 새끼 덜은 엉터리로 비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한국어에서 사람을 뜻하는 어미 -이로 끝나므로 굳이 왕자를 붙이지 않아도 되지만 경칭의 차원에서 붙인 것이다. 

갈무니라고 하면 운명이 다한 성자라는 뜻이지만 갈문왕으로 왕이라는 호칭을 붙여준 것이다.

 

게다가 진흥왕의 상식적인 이름은 그의 아들들의 이름을 고려했을 때에 전륜성왕이 되어야 한다는 아이러니까지 있다. 이조새끼덜은 도대체 뭐를 생각해서 역사를 쳐 적었는지 이해가 불가능할 뿐이다.

 

진흥왕=전륜성왕이고,

진흥왕의 아들들=동륜왕자, 사륜왕자, 구륜왕자가 되는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조선왕조 씨발 새끼덜은 꼴랑 몽골놈 튀기새끼덜의 정권 주제에 유교국가를 만든답시고, 고대 한국에서 산스크리트와 불교적인 요소들을 싸그리 기록말살한 것이다. 그리고서는 엉터리 짱개의 대승불교만 겨우 인정해준 것이다. 마치 조선새끼덜이 승첩이나 발행했듯이 말이다.

 

 

하여간 다케다 신겐이라는 놈이 천태종을 표방했다는 것은 그러한 그 모든 조선조적인 오류까지도 답습했다는 뜻이다. 정확하게 말해서 고려조적인 것이 아니나 신라조 시대의 교류의 흔적이 아닌 명백한 조선조적인 워딩이 다케다 신겐의 시그니처였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 것은 충렬왕이라는 놈의 정권 이후에 반도에서 나타난 정서의 파편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게 충렬왕 시절의 것으로 참칭한 사대부새끼덜의 족보적인 가짜 역사에 의한 부분을 제해야 한다고 믿으므로 그 것은 조선조적인 것으로 간주할 것이다.

 

나아가서 조금만 언급하자면 일본서기의 백제관련의 그 모든 개소리들은 또한 조선새끼덜이 곡해한 부분까지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 것들, 일본사라는 것들은 실제로는 조선조의 성립 이후에 그 것들을 베낀 것에 불과하다는 반증이 되는 것이다. 

물론 고려사는 물론이거니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도 모조리 조선조에 쓰여진 것이고 김부식의 이름은 참칭되거나 날조된 것이다.

 

윤관, 윤선도 그 지랄도 모조리 거짓말이고, 실제로는 세종대왕의 에미나이새끼와 그 식솔들이 파평 윤씨의 원조이며, 그 외에 분가들의 원조인 놈들일 뿐이다. 

 

윤선도라는 놈이 왕건 밑에서 개국공신이었다라는 거짓말을 하려니 견훤이 나오고 후백제와 고려의 전쟁이라는 것이 나와야 하는 것이다. 파평 윤씨들의 진짜 세계는 예의 그 이성계 밑에 있던 군관집단들인 원나라의 최후의 군세였다고 하는 사할린 공략집단과 옌볜, 함경도 일대의 군세들이지만 그들은 나하추라는 놈의 말대로 전혀 원나라를 위해서 기동하지 못하고 민좃새끼덜의 분열로 파토가 났던 것이다.

그 분열에 앞장 섰던 놈이 이성계라고 칸다.

 

나하추라는 놈은 가로되,

“하늘이 나에게 이 무리를 거느리지 못하게 하는구나”
라고 하였다고 칸다.

 

그리고 파평 윤씨라는 씨발 새끼덜은 바로 그 무리의 일부이던 놈들이 조선조의 개국공신이 된 뒤에 파평 지역에 분봉된 것이다. 그들이 역사를 곡해하면서 고려조의 문벌귀족이라는 개소리가 나온 것이다.

 

정작 원말명초에 고려에 대한 가이드북인 고려도경의 내용과 시대를 감안하면 되려 개성의 북조정권에서는 쇼군을 막리지라고 불렀던 것으로 보여진다. 최후의 막리지가 아마도 최충헌과 최우였을 것이다.

 

막리지는 엉터리 가짜 고대국가 고구려의 관직명이 아니라 정작 신라-고려조의 한국인 정통왕조의 쇼군의 이름이었을 수 있는 것이다.

조선조새끼덜의 날조와는 다르게 왕건의 개성조는 전혀 유교국가가 아니며 최승로라는 것들도 조선조의 공신집단인 최씨새끼덜의 날조이고, 실제로는 막리지가 천군을 옹립하는 천군과 소도와 대장군 이래의 한국 전통 정치체제만이 존립한 것이고, 무신정권은 특이점이 있는 반란의 시대가 아니라 몽골과 한국인 전쟁접촉시대에 보고된 한국정치사의 일반적인 양상인 것이다.

 

전쟁기에 역사의 정확도와 보고량이 다른 시기보다 압도적으로 많을 수 있다는 일반적인 사실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전쟁을 설명하려면 전쟁의 배경을 설명해야 하고, 전쟁의 배경을 설명하려면 당시의 정세, 정치, 집권집단, 역사등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인 것이다.

 

즉 최충헌과 몽골집단이 싸울 때에 보고된 한반도 정치의 양상은 최충헌으로부터 최소 5명 이상의 집권자들이 일본의 쇼군마냥 집권했다는 것이다.

 

정중부, 경대승, 이의방, 이의민 그 외에도 강릉군이라는 놈과 그 위로는 이자겸과 척준경 까지도 한국 화랑 혹은 한국 사무라이의 계보인 것이다.

 

조선새끼덜에 의하면 문종이라는 놈이 천태종을 도입했다고 하며 당시는 씹선비의 시대였다지만 날조인 것이다. 최충의 9재학당이라는 것도 날조로 본다. 

특히 조선조의 엘리트 집단은 이제현과 이색, 정몽주, 길재의 후인들이 아니면 애초에 고관대작이 될 수도 없던 조까튼 폐쇄적인 집단이었다는 점에서 그들의 역사 참칭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여기서 천태종을 참칭한 다케다라는 놈은 끽해야 한국의 1392년 이후의 최신 날조정보를 받아들인 당시의 일본놈들 중에서는 가장 앞서나간 놈이라는 것이고, 일본새끼덜의 당시의 문명 수준은 조선의 아류에 불과했지만 콜럼버스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해내고나서 후일에 스페인 부왕령과 결탁한 선진집단으로부터 문명요소를 받아들인 자들에게 정복당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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