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3693.html

 

행복’을 주제로 만난 두 번째 마음 전문가는 자칭 ‘싸우는 심리학자’이자 <트라우마 한국사회> <불안증폭사회>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인들의 집단심리를 치열하게 파헤쳐온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이다.

김태형 소장은 1990년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과 신자유주의 체제 도입이 한국인의 심리를 급격히 악화시킨 주범으로 본다. 원래 돈에 대해 노골적인 욕망을 부끄러워했던 한국인들은 그 무렵부터 부자가 되거나, 혹은 부자와 결혼하는 게 꿈이 되었다. 돈의 노예가 되어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느끼며 사는데, 이는 대표적인 인지 오류라는 게 그의 지적이다. 신자유주의의 파괴적 확산으로 인간관계와 공동체가 깨지면서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충족돼야 할 사랑과 존중의 욕구가 채워지지 않아 불행한 것인데, 돈이 없어 불행하다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이런 인지 오류를 바로잡고 관계와 공동체 복원에 나서야 한다는 게 그의 행복 처방전이다.

신자유주의와 헬조선의 관계

한국인의 자살률이 높고 출산율과 행복지수는 낮다. 한국인이 불행한 이유는 뭔가.

생명체에게는 기본적인 행복 조건이 있다. 자기 본성을 실현해야 행복해진다. 개는 개답게 살아야 행복하고, 새는 새답게 살아야 행복하다. 호랑이가 풀만 먹고 살면 행복할 수 없다. 생명체는 자기 본성이 있고 그것에 맞게 살아야 행복하다. 한국인들이 불행한 이유는 인간 본성이 전혀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실현돼야 할 인간 본성이란.

인간이 반드시 실현해야 할 본성이 몇 가지 있다. 대표적인 게 사랑과 자유다. 아주 기본적인 본성으로 이것을 상실하면 인간이라고 볼 수 없다. 예를 들어 ‘사랑을 주고받지 못하고 고립돼 있지만 행복하다’는 건 불가능하고, ‘구속받고 억압받는 노예지만 행복하다’는 건 성립할 수 없다. 한국인의 경우, 본성적 측면에서 욕구 좌절이 극단적으로 심해졌다. 그래서 많이 자살하고 출산을 하지 않는 거다.

한국이 인간 본성을 실현하기 어렵게 된 계기는 뭔가.

IMF 구제금융과 신자유주의 도입이 중요한 계기였다. 1987년 민주항쟁을 전후한 시기까지는 인간 본성을 실현하는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더 많은 자유와 더 많은 민주적 권리를 향한 행군의 시절이었으니까. 구제금융 이후 신자유주의 체제가 되면서 인간관계가 악화되고 공동체가 거의 해체 수준이 되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의 심리가 급격하게 나빠졌다. 1990년대부터 20년간 자살률이 4배가 되었다는 게 그 근거다. 구제금융 이후 20년간 한국인의 정신건강이 얼마나 급속도로 악화됐고 불행해졌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신자유주의가 인간관계를 악화한 이유는 뭔가.

신자유주의의 특징은 승자독식 원리다. 1등에게 몰아주고 나머지에겐 너무 적게 준다. 이런 소득 격차가 연예계, 스포츠계, 학계 등 전 영역에서 진행된다. 또한 나머지 사람들끼리 싸우게 만들었다. 인간을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누고, 성과급·업무평가제 등을 도입해 서로 대립·경쟁하는 관계로 바꿔버렸다. 그러니 공동체가 깨졌다. 학교, 직장 동료와의 관계까지 깨지면서 모두 고립자·고독자가 되었다. 이로 인해 여러 사회적 부작용이 생기는데, 대표적으로 이기주의가 심해진다. 그전까지는 ‘우리’를 기준으로 세상을 봤다면, 이젠 ‘나’를 기준으로 보게 된다. 모두가 경쟁관계이니 사람을 경계하고 무서워하고 미워하게 된다.

이런 인간 혐오가 심해지면 대표적으로 생기는 현상이 약자 혐오다. 이게 왜 행복지수를 결정적으로 떨어뜨리냐면,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 욕구는 ‘사랑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매슬로의 욕구 이론’에도 나오듯이, 인간이 생물학적 욕구 다음에 충족돼야 할 첫 번째 단계가 ‘사랑과 소속의 욕구’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면 기본적으로 이 욕구가 충족돼야 한다. 인간은 생물학적 존재와 달리, 배부르다고 행복하지 않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살아야 행복한데 첫 출발이 사랑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게 안 되니까 한국인들이 급격하게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인들은 금융위기 전에도 일중독과 자녀 교육 중독이 심했다. 원래 불안과 공포가 심한 사회가 아니었나.

IMF 구제금융이 일중독의 동기를 더 나쁜 쪽으로 바꾸었다.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이 일중독이다. 그가 일중독인 건 공동체를 위해서였다. 적어도 가족을 위해 희생한 거였다. 그때의 고통은 지금처럼 ‘내가 돈을 못 벌면 이 사회에서 낙오되고 인간 취급을 못 받는다’는 공포에 쫓기면서 일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한 희생은 보람 있지만, 무서워서 쫓기듯이 달려가면 전혀 보람이 없다. 허무한 삶을 피할 수 없다.

한국인들은 현재 상황을 ‘경쟁에서 낙오하면 죽는다’라고 인지한다. 그러다보니 극도의 불안과 공포에 시달린다. 이런 인지가 잘못된 것은 아니지 않나.

‘돈 없으면 사람 취급 못 받고 자식도 교육할 수 없고 인간적으로 살 수 없다’고 생각하는 현실 인지는 맞다. 하지만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게 돈이라고 인지하는 것은 틀렸다. 내가 불행한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사람대접을 못 받기 때문인데, 어떻게 하면 사람대접을 받을지 고민한 결과 그 해답이 돈이라고 착각한다. 사랑과 인정에 대한 욕구, 나아가 자존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불행한데, 돈이 없어 불행하다고 착각하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게 만든 것이 신자유주의 체제다. 북유럽에만 가도 “너 왜 불행해?” 물어보면 “돈이 없어서 불행하다”고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덴마크에서 ‘행복’과 관련된 것을 고르라는 설문을 했는데 ‘돈’이라고 답한 사람은 0%였다. 그들은 사회 시스템이 다르니까 발상도 다르다. 돈이 행복을 좌우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공장 노동자도, 화이트칼라도 똑같이 불행하다

사회안전망이 없어서 돈과 행복의 관계를 착각하는 건가.

사회안전망 이전에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없고 존중을 못 받아서다. 많은 사람을 임상적으로 만나보고 연구해본 결과, 한결같은 문제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거다.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한다는 거다. 그러니 돈에 집착한다. 돈이 좀더 있으면 존중받을 거라고 믿는다. 대기업 공장 노동자들은 연봉이 제법 되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고 자녀를 다그친다. 화이트칼라가 되라고. 울산 공장 지대에 가면 사교육이 어마어마하다. 그럼 4년제 대학을 나온 대기업 화이트칼라는 어떨까? 역시나 행복하지 않고, 자녀를 서울대에 가라고 잡는다. 하지만 막상 서울대 나온 아버지들도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을 유학 보낸다. 한국은 계층과 재산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 불행하다. 각자 자기 위치에서 더 올라가면 행복해질 거라고 착각하는 게 문제다. 행복은 관계, 공동체에 의해 좌우된다. 부탄은 경제가 우리보다 열악하지만 행복지수는 높다. 왜냐면 관계가 좋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는 전세계적 추세인데, 왜 한국인만 더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나.

한국은 5천 년 넘게 한곳에 모여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다. 다른 나라와 달리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나’보다 ‘우리’를 중시하고 관계 욕구의 수준이 굉장히 높다. 관계 욕구 수준이 높다보니 충족되지 않았을 때 좌절감도 크다. 서양은 개인을 중심으로 사고해서 옛날부터 고독이 항상 문제가 됐고, 과거부터 자살이 있었다. 한국인들은 과거에 자살이 거의 없었다. 원래 고독하게 살았던 민족이 좀더 고독해지는 것과, 전혀 고독하게 산 적 없던 민족이 갑자기 급격한 고독을 경험할 때 후유증은 비교할 수 없다. 각종 정신건강 문제와 자살 문제가 급격하게 터져나온 건, 우리의 전통적 심리가 완전히 배신당하고 좌절당한 결과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먼저 의식 혁명을 해야 한다. 모두가 ‘돈이 인간을 평가하는 척도’라는 사고방식에 물들어 있다. 이런 사고방식을 버려야 ‘나를 돈 없다고 무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서 자유로워진다. 다음은, 돈과 이익을 기준으로 맺어지는 관계에서 벗어나 정말 친밀하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요즘은 가정에서부터 돈이나 성적으로 가족을 대한다. 공부 못하고 돈 못 벌면 사람 취급을 안 한다. 가정과 가까운 친구 사이부터 관계와 공동체를 복원해야 한다. 셋째는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된다.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으니 정치적 민주화는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우리는 기층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한 적이 없다. 노동자가 공장의 주인이 된 적 없고,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 된 적 없고, 직장에선 사장에게 직언했다가는 잘린다. 비민주적 군사주의 문화, 권위주의 문화를 공동체를 통해 개선해야 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진보와 민주를 얘기하면서 회사에선 사장에게 무릎이 꿇리면 괴리가 생긴다. 이런 불일치를 해소할 때 정신이 양호해지고 변혁에 대한 의지와 능력이 생긴다.

사회적 차원에서 해결책이 있나.

대대적인 사회개혁을 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관계 회복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어떤 개혁도 성공할 수 없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임금을 조금 올리고 일자리를 좀더 마련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관계 회복을 하지 않으면 인간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언제든 불거져나온다. 문재인 정부 말기가 되어도 내가 여전히 불행하고 불안하고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이 든다면 다시 이명박 같은 사람을 뽑게 된다. 성경에 천국의 모습은 두 가지로 묘사돼 있다. 하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모습이고, 또 하나는 사자와 양이 사이좋게 노는 모습이다.

 

문재인 정부 성공의 조건, 공동체

성경도 천국의 조건을 두 가지로 보는 거다. 하나는 물질적으로 어느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굶주리면서 행복하기 어려우니까. 또 하나는 관계가 좋아야 한다는 거다. 사자가 양을 먹고 있으면 행복할 수 없다. 두 과제 중에서 지금 생산력의 문제는 거의 해결된 반면, 관계 측면은 형편없다. 어떻게 하면 과학기술을 더 발전시킬지 고민할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건강한 인간관계를 보장해주는 새로운 사회체제를 만들 것인지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당신은 한국 사회에서 행복한가.

인간은 이웃의 고통 속에서 행복할 수 없다. 세월호 참사 같은 일을 겪고 박근혜 탄핵을 보면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나. 그럼에도 내가 상대적으로 행복한 이유는, 인간 본성 실현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가정에서부터 그걸 실현하려 애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녀나 친구들과의 관계가 좋고, 사회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알고 그걸 바꾸기 위해 애쓴다. 거기서 오는 만족과 보람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독립운동가이고, 독재정권 때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민주화운동을 한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밝은 미래를 향해 뭔가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아리 자유기고가 [email protected]

사진 류우종 기자 [email protected]

 






  • John
    23.01.19

    3가지 키워드는 자살율과 출산율과 행복지수. 4가지로 늘리면 일중독.

     

    그러나 그 원인 키워드는 신자유주의.

  • 오, 좋은 글
  • 세마
    23.01.19
    이 글 쓴 자는 "인간 본성" 자체를 너무 나이브하게 생각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어차피 인간의 default는 "악(vice)" 그 자체다. 헬조센은 그 "인간 본연의 악"의 첨단을 보여주는 "수라의 땅" 그 자체...


    신자유주의의 극복은, 오히려 인간 본성적 "악"에대한 정확한 이해와 "기술적 관리"가 해법이라고 나는 경험론적으로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그 자원 많은 우크라니아조차도 뭐따문에 지금의 혼란, 더 정확히 말해선 2014년의 극한의 정치적 혼돈과 분란을 겪었는줄 알아? 바로 우크라이나 인민들의 "이기심"이 전혀 제어되지 않았고, 그 이기심이 극한까지 drive out이 되었기 때문이다.


    바로 "자유주의"란 미명하에, 극우 극좌 양 진영의 자유주의자들이 일으킨 사단... 그 후과가 아조프대대 네오나치의 발흥과 내전, 그리고 지금 러시아가 "응징"을 선포한 이 전쟁이고, 결말은 매우 비극적으로 끝날 것이다. 나치에 원한 많은 두 슬라브 형제국 - 러시아 반까이, 폴란드 반까이 쳐서 처 먹고 우크라이나는 결국 지도상에서 소멸된다고, 박상후의 문명개화에서 그렇게 예언되고 있단다.


    한국의 좌우파 양당 정치가들이 밀은 그 빌어먹을 자유주의, 신자유주의 또한, 이 나라를 극한의 혼돈으로 밀어옇게 될 것이다. - 폭주하는 자유주의는 나치즘의 산파다. 지금 벌써 네오나치 정치의 먹구름이 보이고 있지 않던가?


    국가가 지속적으로 생존 가능하려면, 그 인민의 악은, 오로지 "힘"과 "기술"에 의해서 제어되어야 한다. 이 나라가 처한 특수한 상황과 환경에 대응하여. - 나 역시 법가사상을 극렬히 지지하는, 즉 "깡 현실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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