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배경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란의 국왕이었던 무하마드 리자 팔레비는 미·소 냉전하에서 미국에 의지하며 국내의 민주주의를 억압했다. 그러다 1951년 모사데크 수상은 국왕의 외국 석유이권 보호에 불만을 품고 민족주의 기치를 걸고 모든 석유산업을 국유화했으나, 팔레비 국왕은 1953년 모사데크를 제거한 뒤 군(軍)과 치안경찰을 강화하여 독재기구를 확립하였다. 그리고 1963년 농지개혁, 국영공장의 민간 불허, 기업 이윤의 노동자 분배, 여성참정권 도입, 문맹퇴치 등의 목표를 내세운 이른바 '백색혁명'(서구화)의 발족과 함께 '위로부터의 개혁'을 강권으로 추진하고자 했다. 이에 이슬람 성직자들의 반백색혁명 시위와 반정부 운동이 격화되었으나 국왕은 이를 탄압하였고, 당시 종교지도자였던 호메이니도 이때 체포·추방 당했다.
여기에 1970년대 미국이 이란을 중시하는 중동정책을 전개하면서 이란의 석유수출이 급증했는데, 일부 국왕 측근만이 이러한 경제붐에 편승하여 부를 누리면서 경제적 격차가 커져갔다. 당시 시장 상인의 대부분은 파산했으며, 농민들의 경우 생업을 포기하고 건설노동자가 되어 도시로 이동하였다. 이처럼 국정운영의 비민주성을 비롯해 급속한 경제성장에 따른 빈부격차 심화, 서구화 과정에서의 성직자들의 불만 고조로 이란의 왕정체제는 점차 위기를 맞게 되었다.
결국 이란 폭망하면서 제2차석유파동 터지고 , 박정희의 죽음까지 이어졌다는게 역사적인 과정이지
제2차석유파동이 본격적으로 1979년이 되면서 터졌는데 . 석유파동과 더불어 심각한 경제위기까지 오게됨 . 헬조선건국이후 최초로 79년도에 마이너스경제성장율을 찍게됐고
박정희가 폭정할때 석유파동.경제위기 제대로 대응못하니까 그 결과 부마항쟁 과 10.26까지 이어지게됨
10.26없었음 헬조선은 진작에 이란처럼 됐지
근데 김재규가 박정희 죽이고 , 친미수구 전두환정권이 들어서고 미국등 서방애들이 많이 밀어줘서 지금오늘날까지 유지될수있었던거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