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John
22.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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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고의 출납과 잔고가 일치해야 하듯이 나왔다는 동네가 있으면 떠났다는 동네도 있어야 말이 맞는 것이다.

 

한국인: 하따 너거동네에 2천년 전에 대규모 디아스포라 함 있었다며?

팔레스타인 새끼: 뭐라냐? 금시초문인데. 원래 이 동네 친이집트 성향 강하고 람세스2세랑 히타이트새끼덜이랑 다이다이 깐 곳인데, 우리 조상이 이집트계라는 말은 좀 알고 있다

한국인: 아 그냐? 이런 조깐노무 유대인 새끼덜.

 

본인이 유대인의 참정체는 이천년전부터 쇠락한 파르티아의 크테시폰의 부르주아지들이었거나 아니면 원나라 찌끄레기라고 보는 이유는 역사를 볼 때에 확실히 쳐 망했다는 동네는 그 동네밖에 없기 때문이다.

 

6~7세기의 하자르라는 것도 특별히 인구이동을 많이 했을 동기가 역사에 없는 놈들이고, 주원장에게 쫓겨난 원나라계 부르주아 새끼덜이 하자르 선조를 참칭했을 가능성이 높다.

 

기실 중국에는 아직도 티벳지역에는 명에게 축출된 이래에 유랑민이 된 놈들이 있다. 소싯적에 KBS 다큐멘타리 차마고도에서 나왔던 종자들.

 

실제로 복드 칸국의 복드 칸은 어린 시절을 티벳에서 보내고는 티벳의 승려를 흉내낸 통치자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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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드칸>

 

원나라의 역사는 모두 명나라에 의해서 기록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기록된 것인지도 의심스럽지만 어쩌면 그러한 부분 때문에 원나라의 황금씨족인 카사르 가문의 방계를 표방한 이성계 집안 새끼덜은 굳이 힘을 들여서 조선왕조실록을 남긴 것이다.

 

그러나 단편적인 부분만 보더라도 쿠빌라이 칸대의 아흐마드 파나카티라는 야그를 들어보면 제법 자본주의가 발달했다고 한다.

 

https://namu.wiki/w/%EC%BF%A0%EB%B9%8C%EB%9D%BC%EC%9D%B4%20%EC%B9%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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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색목인 관료들의 대표 주자로 권신 아흐마드 파나카티(阿合馬, 아허마, 아합마)가 있었다. 이들은 이슬람교를 믿었기에 '회회인'이라고도 불렸는데 돈 불리는거에 아주 뛰어나서 몽골 귀족들이 너나 할거없이 이들에게 돈을 맡기고 싶어했다. 1냥을 맡기면 10년 후에 1,000냥이 되는 수준이었다고…

색목인들은 몽골 왕공 귀족들의 마음을 얻고, 대칸에게 '우리는 재물은 좀 탐하지만 한족들처럼 반란은 하지 않는다.'는 논리로 다가가 점점 조정의 중추를 장악했다. 아흐마드 파나카티는 카라 키타이 포로 출신으로 처음에는 궁에서 잡일이나 하던 자였는데 워낙 민첩하고 영리해서 쿠빌라이 칸에게 중용되어 중서 평장 정사(부총리)로 파격적 출세를 하게 되었다.

그 역시 돈불리는데 귀신이어서 각지의 세율을 제멋대로 정하고 각종 광산 사업을 독점하며, 농기구나 생필품 값을 올려 백성들에게 강매해 폭리를 취했다. 또한 일부러 화폐 가치를 폭락시켜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수법으로 경제를 박살내고 자신의 배를 불렸다.

하지만 방법이야 어찌되었건 국고 수입을 올려 놓았기에 쿠빌라이 칸은 아허마를 총애했고, 대칸의 비호 아래 아흐마드는 조정에 붕당을 조성하고 대저택을 지어 수백명의 미녀를 첩으로 삼는 등 권력을 농단한다. 점점 못할 짓이 없게 된 아흐마드는 아예 조정 인사까지 주무르려하고 심지어 군권까지 넘보았으며 이에 중서 좌승상(국무 총리) 허형은 "아흐마드가 이미 민, 재, 군정 중 이미 두 가지를 장악했는데 군정마저 아허마가 가지게 되면 매우 우려스러울 것"이라 상주했다. 쿠빌라이 칸은 "아흐마드가 반역할까봐 그러는가?"라고 묻자 허형은 "증거는 없지만 이미 모두 갖추었습니다."라고 하며 아흐마드를 경계해야 한다고 답했다.

아흐마드는 이 말을 듣고 크게 앙심을 품었고 "네가 뭔데 증거도 없이 날 모함해? 모반자는 너같은 놈이다! 권력과 여자를 탐하지 않고 깨끗한 척하며 인심을 매수하는 것이 모반의 증거가 아니냐!"라는 어처구니 없는 항변을 했는데 어이없게도 쿠빌라이 칸은 이 궤변을 옳게 여겨 허형을 귀양 보내었다.[21] 또한 최빈이라는 신하가 아흐마드의 악행을 고발하자 모함해 죽였고, 병부상서 장웅비에게는 자신의 정적을 모함해달라 부탁했는데 장웅비가 "무고한 사람을 모함해 얻는 벼슬 자리는 필요 없소이다."라고 거절하니 장웅비를 모함해 사직시켰다.

이렇게 아흐마드가 자신의 반대파. 특히 한족 관리들을 대거 모함해 숙청하는 짓을 일삼자 몽골 왕공 귀족들 사이에서도 아허마를 꺼리는 이들이 생겼는데, 쿠빌라이 칸의 장남 칭김이 대표적이었다. 칭김을 중국어로는 '진가'라고 하는데 유교적 정치 이상을 받아들였고 한족 대신들을 존중했기에 아흐마드를 아주 못마땅해하게 여겼다.

어느날 칭김이 아흐마드의 악행을 지적하며 그를 때린 적이 있었다. 조회 때 쿠빌라이 칸이 아흐마드 머리의 상처를 보고 무슨 일인가를 물으니 아허마는 차마 태자가 때려다고 할 수가 없어서 넘어져서 다쳤다고 답했지만, 칭김은 "아닙니다. 이자가 하도 간악해 제가 때렸습니다."라고 하며 쿠빌라이 칸이 보는 조회 자리에서 아흐마드에게 "이 죽일 간신배 놈! 죽일 놈!"이러며 또 두들겨 팼다고. 쿠빌라이 칸도 사실 내심 아흐마드의 악행을 알고는 있었지만 하도 그 돈 버는 재주가 아까워서 내치질 못했다. 이러다 보니 칭김 태자부터 대신들, 백성들까지 모두 아흐마드를 증오하는 지경이었다.

아흐마드는 명장 바얀을 모함하기도 했다. 아흐마드는 쿠빌라이 칸에게 바얀이 남송에서 압류한 재물과 미녀를 모두 가졌다고 모함했고, 화가 난 쿠빌라이 칸은 바얀의 저택을 압수 수색했지만 나온 재물은 전부 쿠빌라이 칸이 하사한 것뿐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책...나중에 쿠빌라이 칸은 그때 일을 회상하며 "하마터면 충신을 죽일 뻔했다"며 후회했다고.[22]

1282년 쿠빌라이 칸, 그리고 태자 칭김이 도성을 비웠는데 무관 왕저와 고씨 성을 가진 승려가 아흐마드를 암살하려는 거사를 꾸민다. 그들은 80여명의 무사들을 태자부의 사람들인 것처럼 꾸며 아흐마드의 집으로 들어가 아흐마드에게 태자가 왔으니 맞을 준비를 하라 소식을 전했고 태자의 조서를 위조해 추밀원 부사(합참 차장) 장역이라는 자에게 군대를 대기시키라 지시했는데 장역도 아흐마드를 증오하던 사람이라 태자가 아허마를 죽이려는 것인 줄 알고 따랐다.

그날 저녁, 왕저는 무사들을 이끌고 아허마의 집으로 가 "태자께서 오시니 영접하라!"라고 명령한다. 태자라면 오금을 저리는 아흐마드는 밖으로 나와 꿇고 고개를 숙여 대기했고 그틈에 왕저가 망치로 아흐마드를 내리쳐 그자리에서 즉사, 장역이 보낸 병력들은 이건 태자와 무관한 일임을 눈치채고 왕저의 무리를 공격했으나 왕저는 도망가거나 저항하지 않고 의연히 포박되어 왕저와 그 무리들은 처형되었다. 처형장에서 왕저는 "나 왕저는 천하를 위해 해를 제거했다! 오늘 비록 죽지만 내일 사람들이 나의 사적을 기술할 것이다!"라며 당당하게 29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이했다.

아흐마드가 암살되자 조정 대신들로부터 백성들까지 모두 축제 분위기가 되어 모두 덩실덩실 춤추며 기뻐하고 술을 마시는 통에 대도(북경)의 모든 술이 다 거덜날 정도였다고 한다. 민심이 이런 지경이자 쿠빌라이 칸은 그제서야 뭔가 느끼는 게 있었던지 "왕저가 아허마를 죽임은 뭔가 까닭이 있는 듯하다."라며 아흐마드가 간신이었음을 인정했고 그의 시신을 버려두어 짐승의 먹이가 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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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나게 미안하지만 imf 이후에 금융개방을 한 이래에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꼬라지가 아흐마드 새끼가 하는 짓과 똑같은 것이다.

1998년에 삼전 3만원에 샀으면 지금쯤 1냥이 천냥은 아니더라도 1냥이 100냥은 되지.

 

복지 정책 운지하면서 세율올리기나 공급을 장악하고 가격을 올리는 것 등등.

심지어 아흐마드 새끼의 직책마저 요즘으로 치면 경제부총리였다고 칸다.

 

경제부총리라는 것도 imf 이후에 생긴 자리.

 

 

https://namu.wiki/w/%EA%B0%95%EA%B2%BD%EC%8B%9D(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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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팔아먹은 개자슥. 강경식이. 강씨 버러지 새끼.

The Man Who Sold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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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3월 재정경제원 장관 겸 부총리로 임명되었다.그 후 한보그룹 부도 뒷처리, 기아자동차 부도 등 1997년 들어 급증한 대기업 부도 사태를 처리하고자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그로 인해 대한민국은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어야 했다. 결국 그 이후 김인호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과 함께 외환위기의 주범이라는 오명을 안고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1997년 3월에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외환위기 가능성을 시사하며 대책강구를 촉구하는 보고서를 발간했는데, 이를 막은 것이 강경식 전 경제부장관이었다. 이 보고서가 시중에 유포되는 걸 못마땅해하는 눈치라, 강경식 장관이 홍콩 출장 중일 때 전국에 배포했는데, 강 장관이 이를 알고 홍콩에서 대노, 재정경제원에서 해당 보고서를 다시 회수하는 일이 있었다. 결과론이지만 이때 조치를 취했으면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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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과감한 추정으로는 아흐마드 새끼가 중국을 날로 쳐 먹으려고 했고, 그러다가 당시의 몽골 귀족들과 권신들에게 주살당한 것들이 유대인 학살의 진짜 사례이고, 물론 당시에 그들은 유대인이라고 스스로 칭하지도 않았음.

 

그러한 종자들이 축출되고 나서는 서유럽 사회에 침투하기 위해서 유대교라는 예수와의 접점을 명분으로 서유럽 기독교 사회의 바닥에 침투했다고 보여진다.

 

실제로 서유럽에서 유대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도 실제로는 원나라가 멸망한 이후부터 급증하기 때문에 원대의 부르주아 새끼덜이 저 멀리 유럽까지 간 것이다.

 

그리고 아흐마드의 경우에서 보듯이 그러한 집단은 이슬람이나 정교도, 유대교 등으로의 종교 세탁이나 출신지 세탁에 매우 능했다고 한다. 오늘날 부자들이 보이는 양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이다.

아흐마드 본인은 소그드족이라고 했지만 명목상의 소그드라고 카면 오늘날의 파키스탄이지만 파키스탄에는 카라 키타이가 존재한 적이나 심지어 카라 키타이의 피난민이 간 적조차 없기 때문이 카라 키타이의 포로였다는 신분을 고려하면 상당한 나일롱의 신분이 되는 것이다.

 

굳이 지표를 삼자면 실제로는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의 하자르족(공교롭게도 이름이 하자르족)과 파슈툰족 중에서 발루치스탄의 무역업자들과 연계된 내륙쪽의 물류를 하던 파슈툰계이지만 이미 장사의 편리성을 위해서 소그드라고 하는 박쥐같은 정체성을 쓰던 놈이 아닌가 보여진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하자르족과 파슈툰족이라는 것은 몽골과 투르크적인 지표가 강한 자들을 하자라라고 하고, 이란계들은 파슈툰이나 타지크를 표방한다고 한다.

 

https://namu.wiki/w/%EC%95%84%ED%94%84%EA%B0%80%EB%8B%88%EC%8A%A4%ED%83%84%EC%9D%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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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라인은 타 소수민족에 비해 도시화 비율이 높고 주류 사회에 섞여 살아가기 위해 페르시아어를 구사하고 있지만, 하자라인들이 쓰는 페르시아어 방언인 하자라어는 파슈토어나 다리어와는 차이가 매우 커서 의사소통이 그다지 원활하지 않다. 또한 대다수의 소수민족은 수니파 이슬람을 믿는데 비해, 하자라인은 시아파 계열의 12이맘파 이슬람을 믿는다.[6] 또한 눈에 잘 띄는 외모까지 섞여서 아프가니스탄 내에선 가장 심한 배척을 받고 있는 민족이다.

그러나 탈레반이 들어선 이후로는 어차피 그 실상은 무슬림이라 해도 탈레반의 말을 듣지 않으면 온갖 박해를 당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하자라인과 투르크멘우즈베크 등의 튀르크인들이 모두 연합하여 북부 동맹군을 구성, 중앙의 탈레반과 대적하기도 했다. 초창기 탈레반이 인기를 얻은 이유가 하자라인에 대한 집단 학살과 탄압을 내세운 점도 있었는데, 아프가니스탄 내 하자라인 혐오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자라인들 중에는 이러한 처지가 싫어서 이란파키스탄으로 망명한 사람들이 많은데, 이란에서도 몽골에 대한 혐오 감정이 워낙 강한 관계로 주류 종파가 같은 이란 내에서조차 길거리에서 구타를 당한다든지 같은 차별이 많고, 생활수준도 크게 낮다. 그러다보니 사회적인 인정을 받거나 먹고살길을 찾아 이란군 외인부대로 입대하는 경우도 많다. 파키스탄 내에서는 주로 발루치스탄 퀘타에 많이 거주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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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PC로 무장한 주류 새끼덜은 이러한 팩트를 전하려 하지 않지만 아프간이나 무슬림 사회에서 하자라 새끼덜은 소싯적 몽골의 전성기 시절에 조금 흥한 댓가로 천년의 박해를 받아 마땅한 존재로 통하고 있다.

 

 

미군이 아프간에서 주둔하는 동안에 하자라 새끼덜의 처우가 조금이라도 개선되었을까나? 천만의 말씀.

 

되려 탈레반이 집권한 지금이야 뭐 또 뒈지게 쳐 맞아 마땅한 돈놀이 좋아하던 타타르 버러지새끼들의 저주받은 핏줄 새끼덜의 자손새끼인 것이다.

 

 

뭐 입장바꿔서 생각해보자고. 미국같은 곳에서도 레드넥 새끼덜이 혁명을 일으키면 월가 새끼덜이 남아날까? 뭔가의 낙인을 찍어서 천년동안 린치를 당하고, 또 당할 것이다.

 

게다가 유대인의 12지파라고 하는 것은 실제로는 시아파의 12이맘파를 모사한 것으로 보여진다.

12이맘파는 부와이 왕조라고 하는 일시적으로 투르크 세력을 몰아내고 성립했던 왕조에게서 채택된 것이고, 부와이 왕조가 투르크에게 재정복 되었을 때에 바그다드가 함락되었다고 한다.

 

900년경의 바그다드는 전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도시였지만 셀주크 제국이 부와이 왕조를 멸하고 1055년 바그다드에 입성한 이후에 쇠락한 것이다.

 

미국의 모 재단의 연구에 의하면 900년대 초반의 바그다드는 오늘날의 뉴욕만큼 잘 살았다고 한다. 그게 끝난 것이 1055년인 것이다.

 

765년에 바드다드의 인구가 세계 최초로 100만명을 넘겼다니까 이때부터 1055년까지 300년 정도 해 먹은 것이다.

본인의 추정인 크테시폰의 부르주아지들도 실제로는 1055년에야 완전히 멸망한 것이다.

 

 

유대인이라는 집단은 실상은 종족이 아니라 역사상 멸망한 금권주의 세력새끼덜의 찌끄레기 새끼덜이 모이고 이합집산을 한 것들로써 일부는 로마가 망할 때에 당시의 사산조 제국으로 갈아탔겠지만 1055년에 바그다드가 쳐 망하고, 1368년에 대도 연경이 쳐 망할 때의 새끼덜이 유라시아 대륙 서쪽으로 도망쳐서는 하자라 족으로 세탁해서는 서유럽까지 간 놈들로 보여진다.

 

1055년에 셀주크 제국에 의해서 바그다드가 쳐 망하고 나서 곧 셀주크 새끼덜도 카라 키타이와 호라즘에 의해서 쳐 망했는데, 이 때에 획득된 불가촉 천민새끼가 바로 원제국의 경제부총리까지 지낸 아흐마드라는 놈이었던 것이다. 잡혔을 때에는 카라 키타이의 포로였다고 한다.

 

그리고 아흐마드 새끼는 아마도 자신의 바그다드 금융가 출신들을 제법 불러서는 원제국에서 조금 사업을 벌였지만 곧 홍건적들에게 쫓겨나게 되었다. 그 놈들이 다시 서유럽으로 간 것이다.

 

홍건적들은 1357년에 크게 일어나서는 1358년에는 연경을 포위하고 있었지만 결국 함락은 못 시켰다고 한다.

그 뒤에 주원장이 다시 1368년에 함락시키려고 들자 기황후라는 보지년의 편돌이 새끼이던 놈이 빤스런을 한 것이다.

 

이러한 이벤트로 인해서 1359년부터 곧 탈출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다.

대도의 색목인 부르주아지 새끼덜은 1359년부터 1360년대 초중반에 거의 대부분 탈출했을 것이다.

 

혜종이 대세를 돌이키려 했을테지만 어차피 기울어진 대세였고, 곧 혜종 자신도 빤스런을 시전한 것이다.

 

그러한 자들이 오늘날에도 러시아에서는 남아있고, 그들을 러시아인들을 타타르라고 부른다. 주로 금융업이나 유통이 그들의 생계라고 한다.

그 것은 타타르 새끼덜은 곧 정교회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졌음을 의미한다.

 

1000년전의 바그다드보다는 더욱 선명해지는 느낌으로다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고, 러시아에서 타타르의 굴레라고 불리던 시절에 대부분 정교도로 갈아타서 신분세탁을 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집단이 또한 정교도 국가였던 동로마제국까지 진출했지만 동로마는 곧 또한 콘스탄티예의 함락과 함께 콘스탄티예까지 진출한 새끼덜은 발칸반도와 신성로마제국으로 도망갔던 것이다.

 

 

이러한 부분이 뜬금없이 세르비아가 친러시아인 이유이기도 하다. 로마노프 왕가의 마지막 차르새끼의 삼촌이 세르비아공이었던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다.

 

로마노프 방계새끼덜은 동로마제국의 잔당 부르주아그룹에 의해서 세르비아의 지도자 그룹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유대인들의 거부들이라는 것들 또한 반나폴레옹 동맹으로 말미암아서 로마노프 왕조와 영국의 하노버 왕조가 결합할 때에 가장 돌출적으로 등장하였다.

 

그들은 좀더 직계로는 동로마제국의 탈출자지만 더 크게는 러시안 타타르 새끼덜이고, 더욱 근본을 파고 들면 원나라의 대도에서 홍건적에게 맞아 뒈지기 싫어서 탈출한 색목인 새끼덜인 것이다.

 

그 색목인 중에서 접점이 있는 아흐마드라는 놈의 근본을 조금 파헤치면 카라 키타이가 나오고, 곧 당시에 호라즘 제국의 변경이던 아프가니스탄의 타지크계들 밑에 있던 하자라새끼덜로 조금은 연결되지만 이 연결고리는 약한 고리이고, 실질적인 주류 유대인은 러시아의 타타르의 멍에 시절에 정치적으로 야합했던 금권주의 세력인 것이다.

 

유대인 버러지 새끼덜이 공산주의를 아주 혐오하는 이유도 실제로는 그 병신새끼덜이 가장 힘을 잃게 만든 혁명이 레닌에 의해서 초래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정권을 스탈린 새끼가 물려받았던 것이다.

 

 

중요한 지점은 유대인이라는 것은 결코 정주민은 아니고 전세계를 유랑하는 어중이떠중이 새끼덜이지만 아마도 전세계의 역사에서 축출당한 지배층과 금권주의 세력 새끼덜이 끌어내려진 후에 영원히 땅을 잃고 돌아댕기는 신세가 된 놈들의 집단으로 보는 것이 맞다고 본다.

 

 






  • 노인
    22.04.17
    근데, 민족이라는 것이 근대적 유산임.
    그리고 유대인은 혈연적 민족보다는 종교집단으로 보고 있음
  • John
    22.04.17
    유대인은 애초에 모계로만 따지는 민족이 아닌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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