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파라냐쟈냐냐
18.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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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redian.org/archive/54350

 

저는 어린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일 중의 하나는 숲 속을 걷는 것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기억이 생생해서 그런지, 저는 게임하는 요즘의 아이들을 죽어도 이해 못합니다.

답답하면 가벼운 몸으로 집을 나가서 교외 열차로 가까운 숲까지 가고 거기에서 몇시간 보내고 오면 되지, 도대체 집에서 전자기기를 만지작거리는 게 무슨 재미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러기에 숲을 거닐다가 배운 건 하나는, 적어도 레닌그라드 근방 동구의 북부 지역 같으면 비가 절대로 ‘갑자기’ 내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개는 처음에 약하게, 약간의 이슬비 모습으로 내렸다가 그다음 어느 순간 소나기로 돌변합니다. 그러니까 첫 방울이 떨어질 때에 벌써 소나기 올 것을 알아차리고 도피처를 찾는 게 지혜로운 셈이죠?

저는 요즘 세상을 관찰할 때에 지금 이미 사람들을 아주 많이 죽이고 부상시키는 ‘첫방울’들이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그러니까 ‘소나기’가 당장 내년, 내후년에 온다는 것은 아니다 하더라도, 지금대로 가다가는 언젠가 그리 멀지도 않은 미래에 ‘소나기’가 내릴 것이 거의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라는 게 저의 직감입니다.

제가 그 무슨 ‘초능력’을 갖는 것은 아니고 그냥 역사를 배운 약간의 감각을 살려보고 그 역사에서 인류사상 최악의 재앙들이 일어났던 궤적들을 발견해보려고 합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소나기’가 오기 전에, 과연 ‘약간의 방울’들은 언제부터 떨어지기 시작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아주 ‘첫 방울’은 아마도 1890년대 후반의 남아프리카에서의 영국, 독일 두 제국의 식민주의적 충돌과 친독 성향의 보어 공화국과 영국의 전쟁, 즉 1898-1902년간의 보어전쟁이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급속도로 자국의 식민지들을 넓히고 있었던 독일에 대한 위기감을 느꼈던 영국은 1898년에 독일 영향권이라고 할 보어공화국에 대한 대대적인 침략으로 응수(?)했는데, 이 침략은 어떻게 보면 “전쟁사”라고 할 20세기의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합니다.

기관총 등이 대대적으로 사용돼 사망률이 엄청 올라간 것도, 민간인들을 수용소에 집어넣는 “종족청소”의 버릇이 생긴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는 영국의 침략이 독일에서의 군사주의적 분위기를 자극시키는 한편 남아프리카에서의 고전(苦戰)은 영국에서의 군 현대화 프로그램으로 이어졌습니다.

1914년에 서로 본격적으로 부딪칠 두 마리의 대마(大魔)가 말하자면, 그 때부터 본격적인 싸움 자세로 들어가기 시작한 것이죠.

1896년에 영국인의 국지적 침공을 잘 격퇴한 보어공화국 대통령에게 축전을 보내 영국의 “여론”을 들끓게 한 독일황제는, 과연 불과 18년 후에 머나먼 남아프리카에서의 이 두 제국의 “대리 충돌”이 무엇으로 이어질지 알고나 있었을까요?

예감했었겠지만, 이를 세계제패로의 당연한 코스로 여겼을 터인데, 그런 측면에서는 그나 오늘날 미국 정치인들이나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그 다음에는 ‘빗방울’들이 막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조선 독립의 가능성을 거의 원천봉쇄시킨 1902년의 영일 동맹, 또 다시 아프리카에서의 이권을 둘러싸고 일어난 1906년의 제1차 모로코 위기와 불-독 전쟁론의 부상, 제1차 위기보다 훨씬 더 지독했던 1911년의 제2차 모로코 위기와 영-독 전쟁이 거의 당장 일어날 것 같은 1911년7월 27일…

지금 다 망각된 당시에는 하루하루 새소식이었지만, 그 당시 사람들에게는 이미 1910년대초에 세계 곳곳에서 발발되는 위기와 국지 전쟁들은 거의 일상이었습니다.

1913년에 드디어 친러의 세르비아와 친독의 불가리아가 최악의 대리전을 벌였을 때 (제2차 발칸전쟁), 언젠가 영-불-러-일과 독-오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것은 거의 유럽 중론이었습니다. 단, 이 ‘소나기’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을, 그리고 이렇게도 오래 걸리고 이렇게도 엄청난 파괴력을 지닐 줄이야, 거의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두 거대 블록 사이의 충돌이 점차 가까워져가고, 국지전들, 국지적 침략, “위기”들이 계속 발발됐던 “그 때”와 우리가 살아온 최근 몇 년 사이의 타임라인을 대조해보시죠:

2010년: 친중 북조선과 친미 남한 사이의 군사 긴장 고조, 연평도 포격

2011년: 친미/친유럽 남수단이 친중 수단으로부터 분리독립. 대체로 친중적 성격의 리비아 카다피 정권 붕괴-나토의 리비아 폭격과 친미 친유럽 새 정권 등장. 친중 친이란 시리아 정권에 대한 무장저항의 시작, 이 저항에 대한 서방측의 대대적 재정적, 외교적 지원

2012년: 시리아에서의 내전 본격화, 러시아와 이란이 정권에 무기 공급하는 반면 미국의 지역적 동맹국(사우디 등)들이 무장저항세력에 무기공급. “경제전쟁”에 준하는 (친중, 친러) 이란에 대한 미국 유럽 주도의 경제제재(석유 수입 중단 등, 한-일은 부분적 참여), 중국은 불참.

2013년: 말리에 프랑스 군대 투입. 아프리카로의 미군 파견 규모 확대 (2013년 현재 약 3천 명)(관련기사 링크). 친중 북조선과 미-일-한 사이의 군사 긴장 고조. 시리아 정권이 화학무기를 썼다는 (근거가 매우 약한) 주장에 따른 시리아에 대한 미국 침략 가능성 제시, 미국의 무장저항세력에의 무기 공급 결정(관련기사 링크)….

대조해 보면 어떻습니까? 놀라운 것은,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충돌되는 지역들마저도 대체로 같다는 것입니다. 엄청난 자원을 보유하는 아프리카(그 때는 남아프리카, 모로코 등, 지금은 리비아, 말리 등), 지중해 지역의 동쪽 (그 때는 발칸반도, 지금은 러시아 해군의 유일한 국외 해군기지가 있는 시리아), 그리고 중국과 일본 사이의 완충지대 (그 때는 산동, 요동, 조선반도 지금은 조선반도).

굳이 그렇게 이야기하자면 독일의 아프리카 “경영”에 대한 19세기 말 영국 언론의 히스테리적인 어조와, 중국의 아프리카 “진출”에 대한 오늘날 유럽, 미국 주류 언론의 광적인 논조마저도 거의 같다는 것입니다. 좌우간, 한 가지 사실은 분명합니다. ‘첫 방울’들은 이미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런데, 저는 숙명론자는 아닙니다. (아마도 한반도를 거의 황폐화시킬) 열강 사이의 무력충돌의 가능성은 지금 계속 농후해지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들처럼 그저 지배자들의 총알받이 노릇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직은 늦기 전에, 아직 뭔가를 바꿀 수 있을 때에 들고 일어나서 “평화투쟁”을 해야 합니다. 총알받이가 될 사람들에게 그들이 그들을 착취하는 자들을 위해서 죽임을 당할 필요도 누군가를 죽일 필요도 없다는 걸 설명하고, 한반도에서의 사태부터 시리아 사태까지 세계에서 벌이지고 있는 각종 갈등, 위기들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설명하고, 행동적인 저항을 촉구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예컨대 수백만 명의 남한 젊은이들이 “우리가 미국과 중국 세력권 다툼의 희생물이 절대 되지 않겠다”고 전시 동원을 미리 거부하고 전시에 병역을 거부할 의사를 미리 밝힌다면, 이는 남한 정권으로 하여금 훨씬 더 조심스러운 정책노선을 채택케끔 압력을 행사하지 않겠습니까?

좌우간, 우리 계급적 적들이 우리에게 군복을 강제로 입힐 순간, 폭탄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을 “그냥” 기다리는 것보다, 지금 여기에서 투쟁하는 게 맞을 것입니다. 역사공부가 쓸모 있다면 바로 그런 교훈들을 그 과거에서 배우는데 있는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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