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요즘 검찰조직과 문단 내에서의 성폭력과 성희롱 문제에 대한 폭로로 한국에까지 확산된 "미투"운동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맨먼저 머리에 든 개인적 감상은, 정말로 외부자로서 한국을 "만난다"는 조건, 그 만남의 구체적 상황 등이 엄청나게 성차/젠더에 달려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어느 사회에 가도 크게 다르지 않지만, 특히 (주로) "남성만이 가는 군대"가 사회 문화를 여전히 지배하는 한국에서는 "그냥 사람"이라고 있을 수 없죠. 남성과 여성은 애당초부터 전혀 다르게 인식되고 대접 받는다는 겁니다. 

 

제가 90년대 초반에, 배고픈 대학생이 되어서 한국으로부터의 (주요 부유한) 관광객들을 상대로 "가이드 알바"를 아주 많이 했는데, 그 상황에서는 별나별 불쾌한 꼴이야 다 봤죠. 술자리에서의 주정과, "백마를 타고 싶은데 적당한 인터걸을 소개시켜달라"는 요구 등은 가장 대표적이었습니다. 아무리 하기 싫어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얼굴에 철면피를 깔고 싫으면서도 알바했지만...제가 만약에 "남자 가이드"가 아닌 바로 그 "돈 주고 타야 할 백마"이었다면 아무리 배고파도 이런 알바자리에서 얼마나 버텼을까요? "백마를 타게 해달라"는 요구를 어떻게든 회피해야 하는 것하고 스스로 "나랑 잘래? 백달러 줄께!"와 같은 말을 듣고 대처해야 하는 상황하고 질적으로 다르니까요. 후자는 얼마든지 평생의 상처가 될 수 있는데...제가 만약에 여성이었다면 아마도 벌써 그 알바하는 단계에서부터 관광 오는 "사장님"들로 대표되는 사회와의 "관계"를 생각하지 않았을 겁니다.

 

90년대에 또 다른 알바 (러시아 보따리장사들의 내한 통역), 그리고 1997년부터 취직, 근무차 계속 한국에 왕래하거나 국내 체류를 하곤 했는데, 그때도 "별나별" 꼴을 다 봤습니다. 한번 1992년인가 1993년인가 김포 공항에 입국했을 때에 "특정국가로부터의 입국자"들을 일일히 확인해야 했던 공항 주재 안기부 직원은 제 성기를 손으로 가볍게 만지면서 "야, 국내에 있을 때에 얌전히 있고 이상한 짓하지 마, 알았지?"라고 웃으면서 훈계 (?)한 적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하도 쇼크를 먹은 다음으로 아예 입을 열지도 못하고 온 몸이 얼어붙듯 했습니다. 그런데 그나마 남성이었기에 이 정도의 "손 인사" (?)로 끝난 것이지 제가 만약에 같은 나이때의 여성이었다면 과연 그 안기부 직원으로부터 어떤 "인사" (?)를 당했을까요?

 

모 "만년의 노털상 후보자"의 상습범 행각에 대한 최영미 시인의 폭로를 읽었을 때에는 한 때에 한국 문단 인사들과 어울렸을 때를 떠올렸습니다. 엄격한 장유유서의 위계적 사회인지라 같은 자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나이가 어렸던 저로서는 이런 저런 곤욕을 치르게 됐죠. 전형적으로 "야, 노래 좀해봐"라고 해서 음치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억지로 노래불러야 했던 상황을 사례로 들 수 있습니다. 몇차례에 걸쳐서 여기 저기에서 술을 먹는 "문인"들과 밤늦게까지 "예의상" 같이 어울려야 했던 것은 당연지사이었고요. 그런데 만약 제가 여자이었다면? 정말 강제된 "노래 자랑"과 술바다로만 끝났을까요? 그냥 "참 괴이한 세계를 한번 봤다"는 정도의 기억아 아니고 훨씬 더 깊은 상처를 받았을걸요?

 

한국의 한 사립대학에서의 근무시절에 대해 지금도 가끔 악몽을 꿀 정도로 불쾌한 기억들은 아주 많이 남았습니다. 학과 "동료"들이 술 먹고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했을 때에는 제일 곤란했죠. 한 술자리에서 모스크바에서 학위를 받은 비교적 젊은 한 "동료"가 "요즘 모스크바에서 여자 값이 너무 올랐다"고 신세 한탄 (?)했을 때에 정말 어디를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만약에 여자이었다면? 과연 "여자 값"에 대한 대화로만 끝났을까요? 그러니까 비정규직으로서 별나별 이상한 꼴을 당해야 했을 때에도 "남자"라는 젠더적 특권이 크게 작용됐을 거라고 봐야 합니다. 

 

옛날에 운동진영에서는 여성운동을 - 예컨대 농민, 철거민, 빈민, 청년 등의 운동들과 함께 - "부문운동"이라고 범주화했지만, 이렇게 젠더이슈를 주변화한다는 것은 아주 큰 문제입니다. 한국을 지금 멍들게 하는 것은 자본주의적인 가부장제지만, 가부장제 그 자체는 자본주의보다 훨씬 긴 역사를 지니고 있죠. 어떤 총체적인 해방도 가부장제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전제조건의 달성 없이 불가능하고, "여성주의적 시각과 입장"은 모든 운동들의 전제가 돼야 합니다. 젠더적 구분짓기, 젠더 차별이야말로 이 사회가 움직이는 기본적 메커니즘이기 때문이죠. 젠더적 시각이 결여되는 해방이론이란 이미 죽은 이론입니다. 요즘 "미투" 운동을 보면서 계속 그 생각을 하게 됐죠....

 

-------------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댓글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날짜
공지 헬조선 관련 게시글을 올려주세요 73 new 헬조선 9197 0 2015.09.21
28191 헬조선올드유저한테궁금한게있는데 456 new 시발넘아 208 2 2017.08.06
28190 그냥 청소년에게 두발과 복장 자율화를 해라 370 new 노인 158 1 2018.10.09
28189 서방과 무슬림이랑 갈등이고 뭐고 테러리스트 난민이 많아지는 현상황이 그거랑 긴밀한 상관이냐? 185 new 개혁주의자 120 0 2018.12.09
28188 ++++++미국사는23살 그냥 해주고싶은 말들..+++++++++++ 121 new ChiAlex 530 5 2017.10.21
28187 역시 부모님의 파워는 강력하군요. ㅋㅋㅋㅋㅋ 113 new 슬레이브 320 3 2017.07.07
28186 커뮤니티에서 친목질이 위험한 이유 112 newfile 갈로우 626 2 2017.08.20
28185 잘못을 엄청 많이 해놓고도 오히려 당당한 사람들이 가끔 있는데 참 기가 찬다 109 new 감성팔이. 24 0 2023.08.24
28184 예전에 국뽕이 고구려는 활기술최강이라고 자위질하는 글이있었는데 107 new 일본앞잡이기무치 238 2 2017.09.01
28183 헬조선 혼혈인 차별 105 newfile 노인 918 11 2017.10.18
28182 여기도 어째 한국처럼 기성세대들이 장악해버린 거 같아 우려스럽네 104 new 감성팔이. 52 0 2023.06.17
28181 애국은 병신들이나 하는 거다 (2) 100 new 헬조선극혐 221 1 2019.01.11
28180 동양여자가 예쁘냐 서양여자가 예쁘냐? 99 newfile 가이우스옥타비아누스 3056 2 2017.07.24
28179 북한과 중국의 핵이 일본의 도쿄권에 떨어지는 순간 미국의 냉전 휴민트는 영원히 아시아에서 청산되게 된다. 98 new John 18 0 2023.08.24
28178 근데 재벌3세들도 보면 95 new 불타오른다 469 0 2017.01.10
28177 헬조선은 한국군 및 미군 성노예에게 손해 배상하라 94 newfile 노인 262 6 2017.10.28
28176 페미니즘을 상대로 한 전선에서는 홍통일체네요 한국 페미니즘이 그릇된 것일까요? 94 new 탈죠센선봉장 284 4 2017.10.27
28175 여기 다른 데서 나 찾는 애가 있어서 왔는데 92 new Delingsvald 192 3 2019.01.13
28174 자랑스러운 가야의 지명을 알아보자 92 new Delingsvald 572 3 2015.10.06
28173 일베에 대한 생각 90 new 좌약식빨간약 477 10 2017.08.04
28172 내가격어본 좃같은한국사람들의특징 88 new 강하게공격하고탈조선하자 417 4 2017.08.20
1 - 1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