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든 간에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기는 했지만, 현대 사회에서처럼 이에 대한 편견이 심한 적은 없었다. 기독교가 지배한 중세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동성애가 소도미의 일부로 간주돼 금기시되긴 했지만, 동성애를 따로 독립시켜 규제하지는 않았다. "19세기 말 이전에는 동성애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도 않았다"라고 노라 칼린과 콜린 윌슨은 말한다.
19세기 말부터 동성애가 독립된 '죄목'이 된 것은 자본주의의 정착과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시대처럼 노동자들이 중노동에 시달린 적은 없었다. 자본가들은 정치권력의 법적·제도적 지원 하에 노동자들에게 중노동을 강요했다.
과거 유럽의 자본가들은 한국의 노비주나 중세 유럽의 봉건 영주보다 훨씬 더 가혹한 착취자였다. 이들은 공장 벽에 시계를 걸어놓고 일분일초를 아껴가며 노동력을 착취했다. 저임금 때문에 영양분을 제대로 섭취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중노동을 당하다 보니 노동자들의 평균 수명이 줄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19세기 전반 영국에서 중산층 남성의 평균 수명은 50세를 넘은 데 반해, 맨체스터·베스널그린·리버풀에서 남성 노동자의 평균 수명은 각각 17세·16세·15세였다.
출산율 걱정한 자본가들이 생각한 방법
영국 자본가들은 이런 상태가 노동자의 지속적 출산을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했다. 이렇게 가다가는 지구상에서 노동자가 희귀해질 거라고 판단했다.
"자본가 계급은 이런 현실을 걱정했다. 그들은 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채 몇 년도 일하지 못하고 죽어 나가면 자신의 이윤도 위협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 위의 책
그래서 영국 자본가들이 벌인 일들이 많다. 노동자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물론이고, 여성 노동자의 보호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여성 노동자들이 가족 건강과 출산에 바칠 시간을 주고자 1844년에는 이들의 노동시간도 제한했다. 또 노동자 가정의 숫자를 늘릴 목적으로 자위행위·혼외관계·성매매와 더불어 동성애를 금지하는 캠페인도 벌였다. 대중이 이런 성행위로 시간을 보내면 출산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노동계급 가족이 확립되면서 도덕적으로 용인되는 성행위도 형성됐다. 그래서 예를 들어, 사생아 출생률은 1850년과 1901년 사이에 거의 절반으로 떨어졌다. 이것은 가족의 가치를 벗어난 성과 성교(주로 성매매·자위행위·동성애)를 금지하는 캠페인 때문이었다."
영국은 자본주의를 지구상에 퍼트린 핵심 국가다. 그래서 자본주의 국가들이 따르는 규범 속에는 영국적인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19세기에 영국 자본가들이 기독교와 지식인들을 앞세워 동성애 반대 캠페인을 확대하다 보니, 자본주의 세계의 여타 국가들도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은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19세기 말 이래로 세계 각국에 확산되는 요인이 됐다. 동성애자들이 역사상 최악의 편견에 시달리게 만든 요인도 됐다.
14일 서울시청 앞에서 벌어진 일들을 보면 일부 보수파 기독교가 동성애자 인권 탄압의 주역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 구조를 만든 장본인들은 200년 전 지구 반대편에 살았던 이들이다. 현대의 동성애 차별구조를 만든 '조물주'는 19세기 유럽의 자본가들이었다.
결론 : 자본가들이 노동자 부려 먹기 위해 출산율을 높이고 싶어서 금기시 했다
http://m.ohmynews.com/NWS_Web/Mobile/at_pg.aspx?CNTN_CD=A0002454465
전반적으로 섹스리스해진 것도 원인이지. 사회전체에서 섹스가 아주 많이 일어나서 하루에 한 번 정도 하는 것은 일상적인 것으로 간주된다면 그 공급의 상당수는 보지가 아니라 궁둥이로 대는 수밖에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