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노인
18.06.24
조회 수 55
추천 수 0
댓글 0








B8B9495C-A1A4-49D8-A90C-92FD400D91FC.jpeg

 

[Why] '헬조선'은 불평분자들 마음속에

 

나도 서울대 가고 싶었다. 일단 폼이 난다. 누가 어느 대학 다니느냐고 물으면 별로 밝히고 싶지 않다는 듯 시큰둥한 목소리로 "S대요"라고 하거나 "울대요" 대답하는 것, 생각만 해도 멋지지 않은가. 그러나 성적표에 적힌 아래위 숫자 중 어느 것이 전체 인원이고 어느 것이 등수인지 구별할 수 없으므로 다소 파렴치한 욕심이었다. 당연히 못 갔다. 그래서 서울대 아래 아래 그 밑에 또 아래 아래에 있는 대학에 갔다(성적이 그 지경이면서 어떻게 대학에는 갔느냐고 물으신다면 국어와 영어가 암기 과목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강했기 때문이다). 대학에 가서 알았다. 중·고등학교 시절 신나게 놀아 젖힌 대가가 얼마나 가혹한지를.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다. 소개팅 자리에서는 석조(石造) 인간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실력이 없어서 못 간 것이라 하나도 분하지 않았고 서울대 다니는 애들이 대접받는 것을 시샘해 본 적도 없다. 서울대 못 간 놈이 비슷한 대접을 바란다면 그건 정말 나쁜 놈이다. 최소한 나쁜 놈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삼성 가고 싶었다. 같은 이유로 역시 못 갔다. 대신 정규직이라는 사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직원 열 명 미만의 회사를 전전했다. 대접 못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인격적인 모독이나 불합리한 근무 조건을 감수해야 했고 임금은 수시로 떼였다. 거래처에 갈 때 든 교통비를 정산받지 못했다.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고 억울했지만 반복되다 보니 견딜 만했다. 어지간한 거리는 걸어서 다녔다. 사장은 어디서 놀다 들어왔느냐고 타박하기 일쑤였고 늦을 수밖에 없는 그럴듯한 이유를 개발하는 게 중요한 일상이었다. 야근하다가 차가 끊기면 택시를 타는 대신 사무실에서 잤다. 처음에는 바닥에서 잤지만 요령이 생기니까 책상을 싹 치우고 그 위에서 자는 비법도 터득했다. 난로에 석유가 떨어지면 파카를 두 겹으로 입고 버텼다. 한번은 너무 추워 석유를 주문했는데 당연히 내 돈으로 냈다. 다음 날 빤히 알면서도 사장은 줄 생각도 안 했다. 물론 받을 엄두도 못 냈다. 그냥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운이 닿아 처음으로 직원이 100명 정도 되는 회사를 다니게 되었을 때 역시 처음으로 교통비 정산을 하면서 눈물이 났다.

청년 실업이 심각한 문제라고 하는데 100% 동의하기 어렵다.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부족한 것이다. 학교에 부스를 설치하고 취업 상담을 하는 업체들에 물어보면 작은 회사에는 전혀 관심을 안 보인단다. 작은 데다 지방이면 절대 안 간다. 학벌이나 실력에 따라 차등의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면 피나게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눈앞의 즐거움을 희생해가며 도서관을 들락거린 애들에 대한 모욕이다. 노력의 대가를 바라는 것이 당연하듯 노력하지 않은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고교생의 70~80%가 대학에 진학하는 기이한 현실에서 단지 4년제를 나왔다고 좋은 일자리를 고집한다면 거울부터 다시 볼 일이다.

'세상은 고수들에게는 놀이터고 하수들에게는 지옥이다'라는 영화 대사가 있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이 대사에 정신이 번쩍 들어야 한다. '헬조선'은 분수(分數)를 상실한 불평분자들의 마음속에 있다. '헤븐 조선' 역시 마음속에 있듯.

조선일보 B7면

 

출처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5101602318&Dep0=www.google.co.kr&utm_source=www.google.co.kr&utm_medium=unknown&utm_campaign=news#Redyho

 

 

 

그러면 눈을 낮춰 봐도 직장 못구하는 자는 뭐라고 해야 함?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최신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날짜
공지 헬조선 관련 게시글을 올려주세요 73 new 헬조선 9207 0 2015.09.21
17436 한빛초교 연필 상해 사건과 자력 구제론 1 newfile edrkczo 74 0 2018.07.19
17435 한국 예술 교육의 문제점 new 노인 88 0 2018.07.19
17434 민주당은 보수지 그 것도 한국의 정통보수다. 3 new DireK 242 8 2018.07.19
17433 좆반도 애국충들이 여기까지 와 있네 1 new 좆반도 76 0 2018.07.19
17432 입보수의 생각과 달리 노무현, 김대중은 진보가 아니다 new 노인 37 0 2018.07.18
17431 "저녁 7시, 아이 담임선생님한테 '카톡' 안 되나요?" new 민족주의진짜싫다 59 1 2018.07.18
17430 [홍세화 칼럼] 이 혐오감정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1 new 민족주의진짜싫다 158 7 2018.07.18
17429 동성애 혐오의 진짜 원인 9 new 노인 133 0 2018.07.18
17428 "대기업 낙수효과, 과거보다 약화…중소·중견기업이 새 판 짜야" new 민족주의진짜싫다 46 0 2018.07.18
17427 예술하는 노동자, 노동요 프로젝트 - 5화. 아프니까 청춘? 아프면 환자! new 민족주의진짜싫다 68 7 2018.07.18
17426 [단독] "안두희, 백범 암살 6일 전 이승만 만났다" new 민족주의진짜싫다 33 0 2018.07.18
17425 [청춘에 희망을!] "더는 좌절하기 싫어요" 타국살이 선택한 청년들 new 민족주의진짜싫다 62 0 2018.07.18
17424 "선진국인데 주 52시간요?"…韓근로시간에 '깜놀'한 크루그먼 new 민족주의진짜싫다 299 7 2018.07.18
17423 웅변학원 대신 상담센터로 아이 데려가는 엄마들 new 민족주의진짜싫다 33 0 2018.07.18
17422 쓸 돈이 없는 삶… 숙박·학원·빵집부터 쓰러지고 있다 new 민족주의진짜싫다 79 0 2018.07.18
17421 관장된 후장 찾습니다 1 new 좆반도 105 1 2018.07.18
17420 한국학교는 왜 상대평가의 천국이 됐을까? 2 new 민족주의진짜싫다 98 1 2018.07.18
17419 참 징그럽게 열심히 살았는데... 씁쓸한 '잔고 0' new 민족주의진짜싫다 61 0 2018.07.18
17418 80년대보다 2018년 현재가 공기오염이 더 심각할까?(퍼옴) newfile 노인 94 1 2018.07.18
17417 현직 웹개발자님들 제 고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new 김진석 79 0 2018.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