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노인
18.05.26
조회 수 228
추천 수 1
댓글 0








엄혜진의 인권 이야기

 

나도 프리섹스주의자가 되고 싶다

 

 

여성이라면 한번쯤 프리섹스주의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타자의 이데올로기에 의해 갇혀버린, 거추장스러운 나의 몸이 가장 저돌적으로 탈출할 수 있는 방식으로, 프리섹스주의는 나에게도 한때 막연한 동경이었다.

 

93년, 학내 활동가들 앞에서 직선간부 출마소견을 밝히는 자리였다. 고심하던 차에 던진 출사표의 서두는 이랬다. "나는 프리섹스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 권력 불평등에 맞서 열심히 투쟁하겠다는, 그럴싸한 '정치적'인 선동을 끌어내기 위한 대유법(프리섹스주의=자유주의)이었다. 운동사회의 성적 보수성과 경직성에 대해 의문을 품던 나는 프리섹스주의라는 언급만으로도 내심 만족하면서 우리의 프리섹스주의는 자유주의의 그것과 달라야 하지 않겠냐는 엉성한 견해도 은근히 내비치고 싶었던 듯하다. 평소에 브레지어 안 입고 다니더니, 그게 프리섹스주의냐고 선배들이 진담반, 농담반으로 놀리던 기억이 나는데, 사실 나 스스로도 여성에게 있어 프리섹스주의가 갖는 의미에 대한 깊은 고민을 전제로 한 것은 아니었다. 

 

최근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에서 공개한 사례 중 친분관계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대한 논쟁에서 일부 남성들이 보여주고 있는 입장은, 그 동안 내가 분열해왔던 프리섹스주의에 대한 분명한 해답을 던져주는 듯 하다. 자칭 자유주의자들인 이들 남성들은 이 사례의 가해자가 단지 "플레이보이"일 뿐이며, 관계의 진정성 없는 성적 대상화였다고 주장하는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소녀이데올로기에 물든 보수적 여성들"이라고 윽박지른다. 이 사건이 왜 성폭력 사건인가를 강조하기에는 짧은 지면이 아쉽지만, 성폭력과 성애를 구별짓지 못하는 성에 대한 남성 일방적 관점이 난무하고 있는 아찔한 현실에 대해서는 반드시 짚어야겠다. 성녀, 혹은 창녀로 구분되었던 여성들이 이제는 '프리'하게 '섹스'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비난받고 있다. '순결이데올로기'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여성주의자도 아니라며 마치 진정한 여성주의자는 모두 섹스를 해야 되는 것처럼 기세 등등 남성들만의 프리섹스주의를 설파한다. 그들은 성적 결정권을 박탈당해왔던 여성들의 양가의 갈등 심리를 교묘히 이용하면서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그들만의 성적 기호와 코드와 방식에 따라 움직이는 프리섹스주의를 찬양한다. 알싸한 석양이 유람선 둥실 떠있는 바다를 홍조로 물들이는 가운데 서로 사랑을 고백하는 날, 그토록 낭만적인 분위기에 신나게 몰입해 가는 남자 친구와 다르게 갇혀진 몸의 굴레를 벗어야 할지 말지를, 먼저 자맥질하곤 하는 이 땅 여성들에게 프리섹스주의는 한번도 그녀의 것이었던 적이 없었다. 나의 성적 결정권을 보장받고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성적 권력을 누릴 때, 나도 프리섹스주의자가 되고 싶다. 

 

- 엄혜진(국제연대정책정보센터 활동가이며,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 멤버입니다)

 

출처

https://sarangbang.or.kr/kr/info/hrinput/hr_content.html?seqnum=1058&page=1&order=1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정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날짜
공지 헬조선 관련 게시글을 올려주세요 73 new 헬조선 91058 0 2015.09.21
16859 시끄럽다고 죽인 40대 5 new oldberry1800 481 1 2017.06.14
16858 新고려장' 횡행..노부모 해외에 버리는 패륜자녀들 21 new 安倍晴明 455 9 2017.06.14
16857 레알뻘짓 블로그에 알아낸 사실 7 newfile 노인 650 0 2017.06.14
16856 외국인 만날려면 헬조선에서 다썩고 가라는소리 2 new oldanda 319 6 2017.06.14
16855 효도, 장유유서, 경로사상, 군사부일체, 관존민비, 집단주의가 왜 나쁘냐고? 8 new 볼온한개인주의자 466 8 2017.06.14
16854 백주의 살인 7 newfile 여기는(쌩지옥) 322 7 2017.06.14
16853 외국가도 회피대상 지구쓰레기들 지름길 한국군대 2 new oldanda 267 3 2017.06.14
16852 우리나라만큼 위대하고 좋은 나라는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7 new 볼온한개인주의자 453 9 2017.06.15
16851 징병제 옹호 신종논리중에서 이런거 있죠? 11 new 볼온한개인주의자 300 2 2017.06.15
16850 개독 병신새끼들은 죄다 정신병원에 처 들어가야 마땅 11 new 볼온한개인주의자 330 6 2017.06.15
16849 헬조선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는거 괜찮을까요? 9 new 인피너스 294 5 2017.06.15
16848 왕의 친서를 가지고 미국에 온 조선의 외교 사절 모습을 그린. 2 newfile 安倍晴明 296 2 2017.06.15
16847 인간은 살면서 3번의 실수를 한다죠 7 new imAmericaPolice 313 6 2017.06.15
16846 군대 1년6개월 월70만원 까지 하지만 함정 2 new oldanda 322 7 2017.06.15
16845 이게 헬조선에서 태어난 죄랄까요? 1 new Mihel 332 4 2017.06.15
16844 솔직히 해외생활에서 괴로운게 딱하나 있다면... 10 new Mihel 452 7 2017.06.15
16843 갓본 드디어 공모죄 통과 15 newfile 갈로우 337 0 2017.06.15
16842 노예부심 부리는 놈들이 상당히 많음 2 new 마이드라인 276 1 2017.06.15
16841 이뤄질수없는 갓본을 향한 짝사랑.. 슬픈 짝사랑 7 newfile 갈로우 352 1 2017.06.15
16840 반일 오따꾸 "갈로우"가 올린 731부대 사진은 거짓 5 newfile 安倍晴明 381 8 2017.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