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록물 자체가...쓴것..지식인(?)이 남김..<< 수량이 많지 않다.. 2. 보관자가...개인이다...<< 위기상황(전란,화재)에서..취약하다 3. 왕건이 세운 근세고려는 세워질 때부터 '고구려를 잇는다'는 말을 국책(國策)으로 내세운 나라였다. 4. 이건 추정...당시에도 기록물 모아서 보관 했을텐데....전란등으로 불탓을 껄로..생각...전쟁 너무 많음.... 5. 너무 오래됨....그냥 자연소실...보관 소흘...ㅡ.ㅡ
미개하니까. ㅋㅋㅋㅋㅋㅋ 사실 그렇게 따지면 고려도 미개했고, 대부분의 절간이나 사적지는 영정이후에 보다 본격적으로는 일제시대와 현대에 정비된거임. 백제, 신라만 사서도 문화도 없는 게 아니라 고려역시 매우 희박하고, 조선조에 몇 개 쓰이기는 한데, 씨발 대부분 공산당이념서같은 빨갱이같은 조센유학이념서들. ㅋㅋㅋㅋ
그 외에는 문학부분에서는 중국꺼짝퉁인 김만중의 구운몽이 오오파츠격으로 터무늬 없는 시대에 나오고나서는 대부분의 뎐들은 18세기에 나옴. 허균이 썼다는 홍길동전도 실은 그보다 훨씬 아래인 18세기에 나왔다고함. 18세기에 들어서야 겨우 금석학이라고 그간 여러갈래로 떠돌던 서예학을 계통과 기원에 따라서 아 물론 그 것도 중국짝퉁으로다가 겨우 정리했고, 그게 추사 김정희라는 인간인데 김정희대에 이르러서 서예와 회화가 발달과 계통에 따라서 정리됨. 따라서, 김정희대에 이르러서야 왕실화가들이 그리던 것 뿐 아니라 왕실위주로만 소장되던 서화가 비로소 감정법이 생기고, 따라서 수집가능한 것으로 바뀜.
김홍도나 신윤복이라는 것도 김정희의 제자들이면서 현대적인 감정학을 배운 사람들에 의해서 재조명된 것임. 그 이전에는 짝퉁천국아니면 집안사람들만 문집따위를 보관하고 있었으므로, 기예가 서로 모방되면서 발전하지도 못하는 수준이었음. 그런 폐쇄적인 판에서 학예의 주자학을 해석하는 방법을 두고 다툼한 한심한 종자들이 바로 씹선비라는 것들이었음.
그렇게보면, 실은 조센은 망쪼가 들었다고 사람들이 각자도생을 추구하던 철종연간이후부터나 비로소 문물이라는 것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그 기조가 일제시대에 이어진 것임. 정조이전의 조센왕조는 학예건 기예건 애초에 발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고, 겨우 참신한 것이 나와도 지배계급의 권위에 걸리면 사문난적 이 지랄이나 하던 나라임. 뭐 아청법으로 게임발전못하게 하는 거랑 똑같은 수준인 나라임.
뭐 조금 아는거긴 합니다만, 김부식이 삼국사기를 집편할 당시에 김부식 본인이 혼자 쓴것이 아니라 다른 사서들을 참고했다고 서문에 밝힙니다. 다만 그 참고한 서적들이 현재까지 남아있지 않을뿐이죠. 그리고 말씀하신 고려사는 조선왕조나 되서 편찬한 책입니다. 책이 남았던것 조선왕조의 서고 보관 시스템이 생각보다 잘되있었단거겠죠. 무엇보다도 신라, 백제, 고구려는 전쟁을 통해 망한 국가입니다. 그 뒤에 들어찬 왕조가 그런 국가의 서적을 굳이 보존해줄 필요성을 못느낀거겠죠.
조금 사족을 붙이자면 고려당시 몽골의 침략 때 삼국시대에 있던 유적 대부분이 날아갔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놈의 지옥불반도는 외침 안받은 적이 없어 고려시대 건물인 부석사 무량수전이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이거만 봐도 삼국시대 때 유물 아무것도 안남았구나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국뽕들은 김부식 엄청 싫어하는데 이 인간 없었으면 국뽕들이 빨고있는 고구려 신라 백제 존재 자체도 몰랐을겁니다
다른데도 비스무리하더라고요ㅋㅋ 역사서라고 만든 것들은 대부분 르네상스 지나야 쪼끔 남아있지 나머지는 기독교 믿는다고 싸그리 없어져있고 그랬다네요. 지옥불반도놈들은 기록하는건 좋아하는데 약해 쳐 빠져서 허구헌 날 여진이니 말갈이니 거란 몽골 왜 청 등등 들어와서 연례행사로 국토를 불로 정화시켰죠 결론적으로 이놈의 반도를 맨날 불로 정화시키다보니 그리 애지중지 써논 기록도 싸그리 몽땅 날라간거죠.
그걸보고 배운게 좃선 왕조였고, 외규장각 내규장각 나누고 오대산 사고 등등 복붙을 열라게 해둬서 그나마 기록이 남아있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