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존댓말 또한 심각하게 발전 한 것도 이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상하관계가 분명한 유교 문화가 깊이 스며들어 나이차이가 나면 친해지기 어렵다고도 하지만 실제로는 유교 문화가 아닌 군대문화 때문이다.
(실제로 같은 유교 문화권인 중국과 일본에서도 한국과 달리 나이에 프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중국은 서양처럼 저러한 경우가 충분히 가능하다. 한국이 유난히 나이에 집착을 보이는 것일 뿐이다.)
가끔씩 유교 사회는 장유유서라는 말 때문에 나이 차에 의해 지켜진다고 오해들을 하는데 유교란 사회 질서를 위한 예의를 중요시하는 것이지 연장자의 말에 무조건 따르라는 사상이 아니다. 장유유서를 말하기에 앞서서 가장 선행돼야 하는 것이 연장자다운 행동이다. 이를 정명(正名)이라 한다. 즉, 장유유서를 거들먹거리며 연소자를 깔보는 순간 어른답지 못한 행동을 한 놈이니 유교적인 논리에서도 까일만한 대상이다. 그게 심지어 왕이라고 할지라도. 유교의 근간이 되는 사상으로 맹자는 이를 계승하여 역성 혁명을 주창하게 된다. 특히 맹자의 역성 혁명에 따르면 왕(윗사람)이 정치를 못하면 왕을 갈아엎어야 한다고 하였다. 한편, 옛말에 5살 차이까지는 친구라는 말이 있다. 당장에 절친의 대명사인 오성과 한음도 나이차가 5살 난다.(5살차는 친구처럼, 10살차는 형제처럼, 20살차는 어른처럼 대하라는 말도 있다.)
실제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중 교육 잘 받으신 분)은 1살 차이인 사람에게 깍듯하게 대하는 걸 이상하게 여긴다. 사실 옛 선비들은 나이 차이가 상당한데도 교우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정몽주와 정도전도 5살 차이였고, 송시열과 윤휴는 10살 차이가 났으나 격의 없이 서로를 호나 자로 부르며 친구처럼 지냈다. 이 두 경우는 나중에 사생결단을 내는 정적이 되긴 했지만. '망년지교(忘年之交: 나이를 따지지 않고 사귐)'란 고사성어가 존재하는 것만 봐도 답이 나오는 문제다.) 실제로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부자 간에 나이차이가 20세 미만인 경우에는 아버지의 친구가 아들의 친구이기도 한, 지금의 상식으로는 괴랄한 특이한 상황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던 것이 어느덧 구 일본군의 군대 문화가 해방 후에도 없어지지 않고 징병제와 군사 정권 등으로 한국 사회에 고착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 달랑 1년 차이만 가지고도 서열을 세우려는 문화가 생겨나게 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