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을 읽고 민족주의를 생각해보다 _ William J. Duiker {호치민 평전 Ho Chi Minh}
프랑스 지배를 받던 시대에 태어나 1, 2차 세계대전을 다 거치고, 프랑스와의 인도차이나 전쟁과 미국과의 베트남 전쟁에 이르기까지 한평생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공산주의 혁명가 호치민. '반은 레닌, 반은 간디' 라는 평가가 보여주듯 혁명가로서의 모습과 조용한 수도자와 같은 모습이 그에게 동시에 있었다는 것과, 강대국들의 충돌 사이에서 어떻게든 설득과 협상을 통해 해법을 찾아보려고 했던 모습이 인상적으로 남는다.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장하고 활약한 이 인물의 이야기는 과연 역사를 움직여가는 동인은 무엇일까에 대해 또 생각해보게 만든다. 공산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것보다도 더 중심에 있는 것은 '국가'인 것으로 보인다. 공산주의 블럭 내에서도 주도권을 잡기 위해 갈등을 빚었던, 소련의 흐루시초프와 중국의 마오쩌둥의 예를 보더라도. 국가와 국가, 이 거대한 힘들이 군사력이라는 폭력을 휘두르며 맞부딪치는 이 위험한 틈바구니에서 약하디 약한 한 개인은 도대체 어떠한 처신을 해야 하는가? (한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일단 '모여야' 뭔가 할 수 있다는 메아리가 귓가에 울려오는 듯도 하다.)
민족 독립의 한 방편으로서 공산주의를 받아들여 실천했던 혁명가 호치민은 결국 근본에서는 민족주의자라고 볼 수 있을 테다. 식민지 치하에서, 또 강대국들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 민족주의는 절실히 필요했던 사상이었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인데, 지금의 남한을 돌아보면 이 시대에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민족이라는 그 불분명한 테두리 바깥에 있다고 여겨지는 이들에게 폭력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결국, 민족주의라는 것 자체에 대해 점수 매기듯 객관적인 가치 평가를 내리는 것은 부적절하고, 구체적인 역사의 시간/공간 속에서 등장했던 여러 민족주의가 그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절실한 과제에 대해 어떤 대답을 했느냐에 따라 적합성 여부를 따져봐야 할 것 같다. 호치민과 20세기의 베트남에게는 민족주의가 유효했고, 21세기 남한에서 민족주의는 경계해야 할 흐름이라는 말이다.
거칠게 정리해보건대, 현실의 불평등과 억압, 차별을 해소하는 사상과 정책이라면 받아들일 수 있겠으나 반대로 그러한 차별을 심화하고 공고히 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허울 좋은 겉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인정할 수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는 민족주의 뿐만 아니라 다른 사상들에게도 해당하는 것일 터이다.
((((호치민을 평가하는 논쟁의 핵심에 있는 것이, 이 사람을 공산주의자로 볼 것이냐 민족주의자로 볼 것이냐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 나와있는 호치민의 발언을 옮겨볼께요.
"우선 프랑스와 같은 강대국으로부터 독립을 얻는 것은 외부의 도움 없이 이룰 수 없는 만만치 않은 과제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 도움은 반드시 무기 같은 것만이 아니라, 조언이나 연락 같은 것일 수도 있지요. 사실 폭탄을 던지기만 한다고 독립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초기의 혁명가들이 흔히 저지르는 잘못이지요. 독립은 조직, 선전, 훈련, 규율을 통해서 얻어야 합니다. 또한 ...... 체계를 갖춘 믿음, 복음, 실제적인 분석, 그러니까 성경이라고 해도 좋을 만한 것이 필요하지요. 마르크스-레닌주의는 나에게 그런 틀을 주었습니다." (p829)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는 것이 급선무였던 호치민의 청년 시기에 유럽에 머무르는 동안, 마르크스주의를 통해 민족 해방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호치민 평전 윌리엄 J. 듀이커 2003 (푸른숲)
푸른숲이라는 출판사는 역사적 논란이 많은 인물들에 대한 평전이 괜찮더군요. 제가 갖고 있는 히틀러 평전이라던가 마르크스 평전 등등... 한쪽에 너무 치우치지 않고 그렇다고 정확히 객관적이지도 않는 어느 정도 편을 들어주면서도 어느 정도의 객관성도 유지해주는 적절한 모순(?)이 맘에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