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만나는 아이들이 있다. 둘 다 고3임.
먼저 한 명은 농업계 마이스터 졸업반이다. 얘는 엄마가 일본인임. 엄마가 통일교 신자라서 한국인과 결혼함.(통일교 교리는 잘 모르니 이들은 타민족끼리 피가 섞여야 세계평화가 온다고 해서 국제결혼을 시키는데 이건 나름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일교라서 그러는지 모르겠는데 아이를 무려 여섯 명 낳았음..집안이 잘 사냐? 물론 아니고 아버지가 농사지음.
그렇다보니까 뭐 아예 대학은 생각해보기 어려운 상황이 됨. 실제로 이 친구의 형들은 둘 다 모두 고졸로 취업했고 이 친구도 물론 고졸취업을 위해서 농업계 마이스터고교에 들어왔다.
내가 이 친구를 보면 참 안타깝게 생각하는게..
한마디로 예체능 분야에서 재능이 엄청나게 뛰어나다. 일단 운동은 초등때는 육상을 해서 소년체전에 나갈 정도였고 그 외에 축구 야구 모두 잘함. 최근에는 볼링에 빠져서 볼링을 치고 있는데 운동신경이 남다름.
여기에 음악도 절대음감 소유자. 한 번 들으면 정확하게 음을 기억해냄.
그리고 미술..얘는 고교에 들어간 이후로 부모에게서 용돈을 받을 적이 없다고 함. 주로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그려서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에 파는 것으로 알바를 하는데 대략 2시간 정도 투자해서 그림그려서 받는 돈이 5만원 수준임. 그러니까 그림을 잘 그리는 수준이 아니라 이미 현재도 그림으로 먹고 살고 있는 수준.
무슨 거창한 도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태블릿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함. 본인 소원이 그래서 새로 나온 '서피스'를 사는 것이라고. 이게 그림 그리는 데 좋다고 함.
이외에 기계도 잘 다뤄서 농기계(우습게 생각하지 마라. 농기계 1억씩 한다)는 물론이고 지게차 자격증도 있다고 함. 무슨 기계든 한 번 보면 순식간에 원리를 파악함.
컴퓨터도 잘 다뤄서 내가 컴에 문제 생기면 얘를 부름. 해킹 관련 도서도 여러 권 읽고 가끔 친구들 스마트폰을 해킹하기도 한다고 함..이건 뭐 그냥 취미니까.
한마디로 다재다능함. 다만 공부는 못함? 왜냐? 공부할 필요성을 못 느낌. 대학 갈 생각도 없고 주위에서 가라는 사람도 없고 형들도 모두 고졸이니 자신도 으레 그려려니 하고 학교공부를 안 함.
일본어도 잘 한다. N1수준인데 실제로 원어민 수준으로 구사함. 어머니가 일본인이니까 일본어 잘 하는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실제로 얘 형제 여섯 중에서 일본어를 할 줄 아는 건 얘밖에 없음. 본인이 노력하지 않고서 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농업계 마이스터고3인 얘는 8월 1일부터 인근의 사료회사로 출근한다. 학교특성상 3학년 2학기는 그냥 없는 듯. 급여도 세후 160+보너스 있고 칼퇴근시켜주고..대우가 썩 나쁘지는 않은 거 같다.
무엇보다 좋은 거는 이게 병역특례회사라는 거..한 2년 다니면 군필자가 되어버림...
나는 그림솜씨가 아까워서 일본이나 미국에 가서 그림을 그리면 어떻겠냐고 하는데
(그림솜씨 수준은 내가 보기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메인 작가 수준도 될 듯. 딱 봐도 프로수준임)
본인은 아직은 특별한 '꿈'이 없다고 한다..일단 병역특례 마칠 때까지는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생각해보겠다고 한다.
다만 한국보다는 평화로운 호주같은 데에서 살았으면 하는 꿈이 있다고 한다..얘가 식육기능사 자격증도 있다는데 혹시 호주 이민가는데 도움되는지 아는 사람있으면 알려주었으면 좋겠다.
뭔가 자족적이고 현실에 적당히 만족한다고 해야할까 그런 스타일임.
그리고 집안이 원래 예술집안임. 어머니의 동생(외삼촌)은 일본에서 이미 여러 편의 애니메이션을 만든 감독임. 좀 마이너한 장르라 내가 기억은 못하는데..들은 말로는 그 회사 사람들이 하나같이 우익이고 혐한이라고 함..뭐 그래도 누나는 한국으로 시집을 왔네..ㅋ
외삼촌을 통해서 미국 디즈니에서 작화가로 일하는 사람도 알고 지낸다고 하는데 그곳에서는 7만불(8천만원) 정도 받는다고 한다. 대우는 확실히 미국이 좋은 듯한데..사실 물가 생각하면 한일에서는 대략 5-6천만원 정도 될 듯한데 많은 건지는 모르겠다.
다른 한 아이는 상고(요즘에는 다 무슨--정보고라고 이름바꿨지)에 들어간 애인데
물론 둘은 원래 중학교에서부터 알던 애들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여기는 남중 하나 여중 하나밖에 없다..모를수가 없음.
한 학년이 20명 정도 되는 초스몰사이즈 학교임.
얘는 올해 고3으로서 여기저기 많이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고 있는데..
얘 특징은 일단 말이 달변이고 말이 엄청 많다. 나와 만나면 얘는 90% 얘기하고 나는 10% 얘기함.
아까 말한 농업마이스터 친구는 대략 이 비율이 70:30 정도 된다.
나뿐만 아니라 어디가서도 화제를 주도하는 스타일인데 약간 '여성적'인 느낌이 드는 친구다. 일단 말을 할 때 손짓을 하는데 이게 한국남자들은 잘 안 하는 짓이거든. 모션이 굉장히 크고 웃을 때도 입을 가리고 웃음. 이건 아마도 이가 컴플렉스라서 그런 것도 있는 듯하다.
주로 은행권에 원서를 내고 있는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명박이 마이스터고 적극적으로 육성했고 그 당시 은행들 압박해서 고졸 대거 받아들인 거는 알 것이다. 그때는 은행 들어가기가 엄청 쉬웠다고 하는데 요즘에는 엄청 어려워짐. 벌써 거의 10군데 이상 원서내고 면접 본 모양인데..아직 안되서 안타까움.
근데 얘는 전자의 애와 달라서 뭐랄까 꿈이 크다고 해야 할까..아니면 현실을 모르고 나댄다고 해야 할까..좀 그런 게 느껴진다.
우선 얼마전에 한국은행에 원서를 넣었다고 하더라고..한국은행이면 대한민국에서 사실상 가장 들어가기 어려운 금융공기업으로 서울대 경제학과 나와서 한은 들어가도 잘 들어갔다고 하는 곳인데 요즘에 블라인드면접이 유행한다더니 고졸 대졸 안 따지고 채용을 한다 한다..아니 그런데 뭐 한은이 장난도 아니고 고졸이 되겠나? 고졸이 되면 이건 노무현 사시 패스하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얘가 무슨 특별한 재능이 있거나 무슨 공인회계사1차라도 딴 것도 아니고 딴 거라고야 무슨 금융3종(펀드투자상담사 같은 것) 전산회계인가? 그런 딱 고졸 수준 자격증만 갖고 있는데 고졸자도 원서도 낼 수 있다고 해서 덜렁 원서를 냈다는데 참 보는 입장에서는 그렇다.
올 봄 면접에서는 다 떨어졌고 이제 가을 면접을 보고 있는데 혹시나 안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이런 주제의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굉장히 심각한 주제라서 사실 내가 꺼내기는 어려운 주제라 얘가 먼저 얘기함)
본인은 스타일이 딱 서비스업이라고 한다..이건 나도 동의한다..그런데 얘가 하고 싶은 게 항공사 스튜어드(전에 조현아 사건 났을 떄 얻어맞었던 남자가 하는 직종)을 하고 싶다는 거다..
뭐 그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위해서는 4년제 대학에 가야 한단다..블라인드 면접이기는 한데 4년제 대학 안 나오고는 사실 합격할 가능성이 없다면서..
뿐 아니라 스튜어드 학원도 다녀야 한대..
근데 얘가 사실 엄청 가난한데다가 상고나와서 취직을 준비한 애라서 사실상 수능 준비도 전혀 안되어있고 가봐야 사실 뻔한 대학(정말 안 나오는 게 나은 대학)밖에 갈 데가 없는데 그렇게 말한다는 것이다.
(스튜어드의 경우는 영어+무술이 필수고 당연히 얼굴관상 자체가 이른바 '서비스업' 관상이어야 한단다)
그러니까 이게 뭐냐..그저그런 대학에 4년간 최소 6천만원을 갖다주고 여기에 학원비니 뭐니 해서 대략 7-8천 정도(보나마나 이런 학원은 서울에만 있을 게 뻔하니까) 돈을 써야 그 얄량한 스튜어드 면접볼 자격이라도 주어지는 모양이다..
아니 그런데 될 수 있냐는 거지..
영어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무술이야 좀 배우면 되겠지만 영어라는 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것도 '돈'으로 발라야 하는 거 아닌가? 혹시 어학연수라도 갖다온다면 7-8천이 아니라 1억짜리 코스가 되는 거지..
얘도 집은 어렵다. 아버지는 노가다하고 엄마도 식당줌마인데 뭐 돈이 얼마나 있겠냐..
그래서 아예 일치감치 실업계 갔던건데 졸업쯤이 되어서야 다시 대학 얘기를 하고 있으니..
참 뭐랄까 난감하더라. 물론 본인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긴 하다. 그래도 가만 보면 '대학'이나 '서울' 같은 뭔가 '그럴싸해보이는 것'에 대한 동경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하긴 우라나라 고3이면 다 그렇긴 하겠지만..
그냥 가까운 국립대라도 가면 좋겠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럴 성적도 안된다. 아예 대입준비를 안 했으니..
갈 만한 데라고는 어디 가서나 놀림받는 '지방사립' 이른바 '지잡'만이 유일한 대학선택지인 거 같은데..참 주변에서 보는 나부터가 조마조마해진다.
결론
일본인 엄마를 둔 애는 뭔가 현실순응적이고 적절히 만족한달까..하프일본인이라 그런지 몰라도 확실히 그런 게 느껴짐. 마이스터고라 일체 학비없이 학교다녔으며(해외연수갈 때 비행기값은 자부담했다고 함. 기숙사생활만 함) 졸업 이전에 취업해서 병역특례로 2년간 메꾼 후 '하고싶은 것'을 할 예정
그냥 오리지널 한국인인 애는 마이스터고가 아닌 일반실업계(이런 데는 물론 돈은 안 내고 다님)를 나왔는데 군대도 현역으로 가야하고 고졸은행시험 다 떨어졌는데 이젠 은행은 가망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스튜어드 쪽 알아보고 있음.
좀 이렇게 말하긴 그래도 뭔가 일본/한국의 대비같은 느낌 안 드냐?
그리고 나도 요즘에 안 건대..마이스터고가 꽤 매력이 있더라..
사실 지금 한국에서 대략 이과 4등급 문과 2등급 수준 대학 아니면 그냥 공무원 학원에 불과한데
마이스터고는
일단 학비 전액 무상(기숙사비까지 일체)
졸업과 동시에 취업(다만 이건 나름 좋은 마이스터에 한정한다..후진 곳은 노답이다)
제일 중요한 거..병역특례..이게 아주 많다..
나도 그래서 아들이 중 3인데 소프트웨어 마이스터고(작년에 전국에 3군데 생김)로 보낼까 고려중이다. 다음달 입학설명회에 가볼 예정임..
학교에서 배우고 싶은 소프트웨어 배우고 졸업과 동시에 병특해서 군대 때워버리고 그 이후에는 경력을 인정받아서 다시 워털루 대학이든지 그런 곳으로 갔다가
본인이 원하는 게임회사(유비소프트나 블리자드 같은 곳)쪽으로 빠지게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생각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