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 발달로 근로시간 측정수단 확대 … 포괄임금제 직종 줄어들까
사무·관리직이나 운전기사처럼 노동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려운 노동자들에게 널리 적용돼 온 임금계약방식인 ‘포괄임금제’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포괄임금제를 둘러싼 쟁점은 ‘노동시간을 정확하게 산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스마트 기술의 발달로 여러 직종의 노동시간을 계측할 수 있는 도구가 개발되고 있는 가운데 법원의 판단은 아직도 오락가락하는 중이다.
◇"근로시간 산정 가능, 포괄임금제 무효"=6일 울산지법은 A병원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조리원 등 9명이 병원을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에서 “근로시간을 산정하는 데 문제가 없다면 포괄임금제 방식의 임금지급계약은 효력이 없다”며 “피고(병원)는 원고 9명 중 6명에게 총 8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포괄임금제는 △사용자와 근로자가 기본임금을 미리 산정하지 않은 채 법정수당까지 포함된 금액을 월급여액이나 일당임금으로 정하거나 △일정액을 법정 제 수당으로 정해 이를 실제 근무한 시간에 상관없이 지급하기로 약정한 임금지급계약을 말한다.
원고들은 “병원에서 근무하며 최저임금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았고, 연장·휴일근로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자 병원측은 “원고들과 임금 개별항목을 구별하지 않고 연장근무수당·휴일근로수당 등 각종 수당을 포괄해 총액으로 지급하는 포괄임금계약을 체결했다”며 “임금총액을 근로약정에 따라 지급했고, 근로기준법상 최저임금에 미달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포괄임금계약을 체결한 만큼 별도의 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병원의 주장이다.
재판부는 그러나 “근로계약에 원고들의 근로시간을 명시하고 있어 근로시간 산정에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며 “근로시간 산정에 문제가 없는데도 포괄임금제 방식의 임금지급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효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병원측에 미지급 임금 지급도 명령했다. 임금을 삭감할 목적으로 포괄임금제를 악용하는 사업장에 경종을 울린 판결이다.
한편 이날 포괄임금제에 대한 정반대 취지의 판결도 나왔다. 광주고법은 금호고속 직행버스 기사 254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임금소송 항소심에서 원심을 깨고 회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버스기사들은 포괄임금계약으로 인해 근기법에서 정한 것보다 초과·심야수당을 적게 받았다며 소송에 나섰다. 소송의 쟁점은 근로시간 산정이 쉽지 않은 버스기사의 경우 포괄임금제를 적용하는 것이 합리적인지, 또는 운행일지를 직접 기록하거나 태코미터를 기록하는 방식으로 노동시간을 산정한 뒤 이를 기초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합리적인지를 따지는 것이다.
원심 재판부는 “기술의 발달로 버스 운행속도와 안정성이 향상되고 운행시간도 정확히 측정할 수 있게 돼 운행거리가 아닌 근로시간을 기준으로 수당을 산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노동시간 산정이 가능한 직종의 포괄임금지급 계약은 무효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노사 간 임금협정은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 적용되는 포괄임금제로서 승무사원들에게 불이익하지 않고 정당하다”며 “임금협정에 따라 받는 월급여에는 연장·야간근로수당이 모두 포함돼 사측이 추가로 수당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노동시간이 아닌 운행거리에 따라 수당을 산정해 온 버스업계의 관행에 손을 들어준 판결이다.
◇'스마트폰 앱'으로도 근로시간 산정 가능=포괄임금제는 노동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한 직종에서 주로 활용된다. 투입된 노동시간보다 일 또는 프로젝트의 완성을 통해 성과가 측정되는 사무·관리직이나 운행의 완수가 중요한 버스·택시 운전기사 같은 노동자들에게 주로 적용된다. 매뉴얼화돼 있는 업무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생산직 노동자들이 근무시간에 비례해 임금을 받는 것과 대비된다.
그렇다면 포괄임금제가 통용되는 직종에서 노동시간을 산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홈플러스 매장관리 직원들이 제기한 초과근로수당 청구소송에서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해당 노동자들이 출퇴근 시간을 기록용으로 사용한 ‘야근시계’라는 애플리케이션의 기록내용을 증거로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연장근로에 대한 사용자의 승인을 얻지 않았다거나 연장근로신청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실제 연장근로한 시간에 대해서는 그에 상당한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스마트 기술의 발달에 따라 스마트폰 앱과 같은 초보적인 프로그램만으로도 대략적인 초과근로시간을 측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가 포괄임금제를 둘러싼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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