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이 글은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가 쓴 ‘재일조선인’들이 어떻게 북한의 역사에 영향을 미쳤나에 대한 첫 번째 연재 글입니다.

(번역자 주: 독자의 편의상 이 글에서는 일본에 있는 북한계 사람들은 ‘재일조선인’, 일본에 있는 한국계 사람들은 ‘재일한국인’으로 하였습니다. 단, 1945년 광복 이전 일본에 있는 한민족에 대해서는 ‘조선인’이라 칭하였습니다.)

1959년 12월 재일조선인들이 처음으로 일본의 니가타에서 소련 선박에 승선했다. 배 안은 축제 분위기였고 목적지는 북한의 원산이었다.

이렇게 일본 내 재일조선인들의 대량 북송이 시작되었다. 이는 1984년까지 계속됐다. 1959년과 1984년 사이 9만5,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그들이 말하는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갔다.

자본주의 국가인 일본에서 대량의 재일조선인들이 탈출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끌었다. 이 시기 이미 거의 모두가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국가로의 자발적인 이주는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그 반대의 예는 없었다. 1950년대 동독 주민들의 대량 탈주, 1956년 헝가리 사태 이후 일어난 헝가리 대량 탈주는 모두 공산주의를 버리고 자본주의 국가들로 가는 사건들이었다.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10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공산권 가장 동쪽에 있는 나라로 가는 것에 대해 놀라거나 당혹스러워했으며 짜증을 내거나 기뻐하기도 했다(정치적인 신조에 따라 다르겠지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이해하려면 1950년대 기이했던 일본의 정치 상황을 봐야한다. 또한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인들의 역사를 볼 필요가 있다.

 

일본으로의 이주

한국과 일본은 이웃 나라였지만 수 세기 동안 두 나라는 요즘 말로 하면 ‘폐쇄적인 이민 정책’을 폈다. 외국인들의 장기간 거주를 금했고 특히 현지 사회로의 통합을 금지했다. 1868년까지 이어진 도쿠가와 막부 시대 당시 조선사람들은 일본을 공무로 가는 것밖에 허용되지 않았으며 그곳에서 정착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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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일본의 조선인 노무자들 / 출처=Japan Focus

과거의 제약들은 19세기 후반이 되면서 서양 제국주의의 등장과 함께 없어졌다. 1880년대 소수의 조선사람들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일제는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가 된 이후에도 조선인들의 일본 이주를 막았다.

1930년 일제는 태도를 바꾸어 조선사람들을 싼 노동력으로 이용하기 위해 일본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특히 대중적인 근·현대 한국의 민족주의적 신화들은 주로 1930년대 조선인들의 일본 이주가 자발적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당시 조선사람들은 일본에 강제로 간 것이 아니다. 임금이 높았고 비숙련이나 저숙련 직업 기회가 더 많았기 때문에 간 것이다.

1945년 일본의 조선인 인구는 250만 명까지 늘어났다. 이 인구의 대부분은 일본에 갓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이중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1945년 이후에 한국의 북쪽인 북한이 되는 지역에서 왔다. 한반도 북쪽 지방에 살던 사람들은 주로 중국이나 만주로 이주했는데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들은 대부분이 한반도 남쪽 지방에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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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창설 / 출처=ournation-school.com

 

무국적 상태

1945년 일제에 의한 식민지 지배의 붕괴는 일본에 있던 조선인들을 새로 독립한 모국으로 돌아가도록 내몰았는데 이들 대부분은 방위산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고 전쟁이 끝나면서 그들은 직업을 잃었다. 그런데도 일부는 일본에 남았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는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인을 합친 인구수가 60만에 달했다.

일본에서 그들은 힘든 상황 속에 놓여있었다. 일본 정부와 사회는 외지인을 여전히 수상해 했고 환영하지 않았다. (일본의 일반 국민이 다수 지지하는) 일본 정치인들은 재일 조선인,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인들과 동화되는 걸 원치 않았고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을 선호했다.

1947년 일본을 지배하고 있던 연합군 사령부는 일본에 남아있던 조선 출신 사람들을 외국인으로 다뤘고 1952년 새로운 일본 정부는 조선 출신으로 일본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무국적이란 사실을 분명히 했다.

공식적, 비공식적인 차별은 조선 출신 사람들 중 사업을 할만한 사람들을 암시장과 부분적으로 합법이던 ‘파친코’와 같은 도박 사업밖에 할 수 없도록 했다. 폐쇄적인 일본의 경영활동으로 인해 길이 막힌 조선 출신 사람들에겐 이것이 유일한 생존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는 조선 출신 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인식에서 말할 것도 없이 큰 영향을 끼쳤다. 물론 대부분 조선 출신 사람들은 도박장을 운영하지 않았고 그 대신 일본 경제 가장자리에 위치하는 비숙련, 저임금의 직장에서 피땀 흘려 일했다.

 

분열의 시작

일본에 있던 조선인 공동체들은 더욱 급진적인 성향이 되어 갔다. 일본의 공산주의자들, 독실한 반인종차별주의자들, 일본의 노동자 권익을 보호하는 사람들은 그들 진영에 조선 출신 계열의 사람들을 포함했다. 하지만 조선 출신 사람들 모두가 이를 좋아하진 않았다. 이들은 일본에 사는 조선 출신 사람들 사이에서도 극도의 좌익 세력이었고, 한민족의 민족주의와도 복잡하게 섞여 있었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든 아니든 일본인들이라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1950년대 초는 당시 공산주의 표준 방식을 따르던 급진적인 재일조선인들 사이에서 언쟁과 충돌로 알려진 시대이다. 이들은 일본의 조선 출신 공산주의자들이 일본 공산당에 합류해야 한다고 했는지 공산주의·민족주의자들은 그들만의 조직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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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조총련 본부 / 출처=Wikimedia Commons

결국, 공산주의·민족주의자들이 이 싸움에서 이겼고 1955년 ‘총련’이라고도 불리는 충실한 친북 단체인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생겼다. 총련은 북한의 조선노동당 해외지부나 다름이 없다. 총련은 규칙을 만들어 조선 출신 사람이 총련에 가입하면 자동으로 해외의 북한 주민이 된다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는 총련의 이런 규칙을 한 번도 완전하게 인정한 적이 없다.

초창기에는 많은 수의 재일조선인들이 총련에 가입했다. 당시 재일동포사회는 단연 공산화돼 있었다. 1960년 기준 40만 명의 재일조선인들이 총련에 가입돼 있었다.

수십 년간 총련은 국가 안의 국가였다. 세금을 거뒀고(원칙적으로는 자발적인 세금이지만 실제로는 강제성이 있었다), 많은 학교도 운영했으며, 일본에서 차별받는 재일조선인들에게 법률자문도 했다. 총련 가입자에게 법적 보호와 어느 정도의 정치적 대변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재일동포사회를 무시하고 있었다. 친한파인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민단)이 있었지만, 한국의 민단 지원은 제한적이었고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미한 수준의 지원이었다.

 

재일조선인 북송의 시작

1950년대 후반 총련의 목표 중 하나는 재일조선인을 최대한 많이 모국인 북한으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총련의 공식적인 입장은 재일조선인들을 위한 곳이 일본에 없으니 위대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 북한으로 점차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일조선인의 90% 이상이 한반도의 북쪽이 아닌 남쪽에서 왔다는 건 아무 상관 없었다. 북한의 정책은 6·25전쟁 이후 북한 경제를 위해 노동자, 그것도 숙련된 노동자가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다수의 재일조선인들은 중요한 기술들을 가지고 있었다. 이로 인해 총련이 이끌고 북한이 후원하는 대대적인 북송 운동이 시작됐다.

일본의 우파 정치인들 역시 재일조선인들이 떠나주길 바랐다. 학술적이지만 읽기 쉬운 책이며 재일조선인들의 북송 관련 주제를 소개하는 데 있어 가장 좋은 책인 ‘Exodus to North Korea(북한으로의 탈출)’의 저자 테사 모리스-스즈키는 최근 연구에서 일본의 고위 정치인들은 문제가 많은 재일조선인들이 순진하게 믿고 있던 낙원으로 가는 것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비밀리에 재일조선인 북송에 대해 대화하기 시작했고 이를 열정적으로 장려했다.

일본 정부, 일본 적십자, 북한 적십자, 국제적십자위원회(ICRC)가 참여한 협상은 1955년 시작됐다. 서로 간의 증오와 불신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많은 재일조선인들이 최대한 빨리 일본을 떠났으면 하는 공통의 목표는 재일조선인들의 북송과 관련된 대화를 잘 진행되게 해주었다.

재일조선인들의 첫 번째 ‘귀향’을 위해 1959년 소련의 선박이 일본 니가타 항에 도착했다. ‘귀향’이라는 용어는 호도된 표현일 수 있는데 이는 북송된 대부분의 재일조선인들은 북송되기 전까지 한 번도 북한 사람이 되어 보지 못했으며 일부 재일조선인과 결혼한 일본인 아내들은 일본인임에도 미지를 향해 그들의 남편을 따라간 것이다.

재일조선인들의 대량북송은 3~4년간 더 진행되었고 1960년에서 1963년 사이에 총 9만3,340명이라는 사람들이 북한으로 이주했다. 재일조선인들의 몇년 간의 북송은 북한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https://kr.nknews.org/재일교포들은-왜-한국이-아닌-북한으로-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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