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족은 부모님과 나, 그리고 동생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형적인 4인 가족이다.
아버지께선 한X시멘트의 유명한 기술자셨고, 대덕연구단지에 있으셨으며 플라이 애쉬(화력발전 이후 남은 석탄재)기술자로서 이를 이용한 특수 콘크리트를 개발 생산하시는 기술자셨다. 이쪽 기술만큼은 헬반도 안에서는 독보적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의 기술자이자 학위도 가지고 있으시며, 동시에 건축기술 관련 학위도 보유하고 계신다.
뭐 나름 성공한 사업가였고, 기술도 확보하고 있었고 공장도 있으셨고 어릴땐 남부럽지 않게 살긴 했다. 외제차라고는 찾아보기도 힘들었던 시절, 독일 중형차 최고사양을 타고다녔고, 형제가 캐나다 유학과 미국 유학을 다녀올 정도 였으니
그리고 찾아온 경제한파와 건설경기 침체, 대기업 카르텔 형성 등이 우리 가족을 순식간에 짓밟고 지나갔다. 뭐 망한 이유야 다양하지만 저 둘이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상위권에 속한, 어떻게 보면 거들먹거리고 다닐 수 있을 수준의 형편에서 순식간에 마이너스로 떨어져버렸다. 나락으로 추락한거지.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투자는 결코 헛되진 않았다.
나와 내 동생의 가치관이 변하는데 엄청난 영향을 미쳤거든.
먹고 쉬고 일하고 노는데 중점을 둔다. 내 가족의 가치관은 그렇게 변했다. 전술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거다. 돈을 쌓아두기 보다는 이걸 벌어내는 능력을 중시하면서 Contingency plan 을 항상 수립해두고 움직인다. 돈보다는 현물, 지금 당장 사용해서 돈을 벌어낼 수 있고 여차하면 유사시에 사용하여 살아남을 수 있는 장비를 장만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그것이 바로 내 가족의 가치관이다.
그 기반으로 만들어진 인생인거지.
왜 있잖아, RPG게임 한번 해보고 나서 다시 2회차 플레이 할때는 존나 잘하는 것 처럼, 그런느낌이라 생각하면 딱 좋다고 보면 되겠다. 포토메리온 식기류, 컷코 식기류들이 초기비용은 꽤 들지만 오히려 싸구려 접시 여러개 사서 깨먹는 것 보다 훨씬 오래 잘 사용하고 있고, 옷도 마찬가지로 튼튼하고 좋은 외국 제품들을 직구해서 사고
막 가정용으로 나온 청소기 말고 산업용으로 사용하는 싸고 소리 지랄맞지만 기능하나는 끝내주는 진공청소기에, 시외 외곽지역의 신도시 개발지역의 싼 월세집을 돌아다니며, 식단도 늘 공판장을 이용하거나 정부에서 도시농부 프로젝트 따위를 통해 1년에 3~5만원으로 빌려주는 거의 공짜땅을 이용하여 텃밭을 가꾸어 생채소를 가져오며 가공식품 생산업체와 직접 컨택하여 물건을 받아오는 방식을 이용하는 등 최대한 전술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보여지기에 굉장히 그럴싸하고 번듯한 가족으로 보이는거지.
빚쟁이에 쫒겨다니며 살아온 경험도 있기 때문에 내가 사는 곳에는 가족 소유의 집기가 딱히 많지 않다. 그냥 언제든 버리고 도주할 수 있거나, 혹은 싸들고 도주할 수 있는 그런 집기들 뿐이지. 거기에 아버지께서 11.5톤도 한대 들고 있으시니 언제든 바리바리 싸들고 딴데 가서 정착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거다.
Tactical life, 생존주의, 헬조선의 부조리한 현실에도 적응할 수 있으며, 이 사회가 모조리 무너져버려도 살아남을 수 있는 모든 환경에 적응이 가능한 인간상. 그것이 바로 내 가족이 추구하는 인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