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때 망하지 않아서', 좀 비약적으로 말하면 '이순신 장군 때문에' 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거 같습니다.
사실 지금이야 이순신 장군 좋게 보는 편이죠. 정말 답 없는 극렬 국까, 일뽕 아니면 말이죠. 저도 함부로 이순신 삐이이 이럴 수가 없습니다. 국뽕들한테 비난 받고 살해당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고 극뽕 국까를 떠나서 개인적으로는 나쁘지 않게 보니까요.
아무튼 조선 건국 초부터 조선 중기 (대충 14세기~16세기 1392~1592 200년 간, 참고로 조선 건국 1세기 후, 대략 조선 성종 시기에 신대륙 발견 1492, 죠죠 4부에서 문제 냈던 겁니다 깨알 상식 ㅇㅅㅇ) 에는 정도전이 말한 대로 상업 무시하고 농업에만 몰빵한 전형적인 농업 국가였죠. 유럽에서는 늦어도 11~12세기, 십자군 전쟁 이전부터 유럽 내에서 자체적으로 상업이 발전하고 있고 (길드, 한자 동맹, 네덜란드 등) 십자군 전쟁 이후에 동방 무역을 통해 상업이 발달하고 있는데 (십자군 전쟁의 최대 수혜자가 절대왕권 구축한 국왕과 동방 무역 주도한 상인들이고 전쟁에 참가해서 대부분 전사한 영주들(죽은 영주의 영지를 왕이 빼앗아서 왕권 강화), 전쟁을 주도한 교황 몰락) 헬조선만 반대로 가고 있죠,. 그놈의 성리학이라 쓰고 유교 탈레반이라 불러야 하는 좆같은 개소리 때문에. 그렇게 2세기 동안 상업 천대하고 현물 경제에만 의존하고 있었으니 발전이 있었을까요? 오죽하면 인진왜란 때 조선에 파병된 명군이 은을 가지고 와서 거래하려는데 조선이 현물 경제라서 은을 못 쓰니까 약탈했다고 할 정도니까.
그렇게 2백년 간 상업 개무시하고 원시적인 혈물 경제로 겨우 유지된 조선이 임진왜란으로 개박살이 나서 성리학이 아닌 다른 사상을 가진 국가가 등장해서 뭔가 근대적인 변화를 꾀했어야 하는데 (아무리 못해도 일본-네덜란드처럼 제한적이라고 서양과 교류해서 국제 정세를 파악하고 필요하면 직접 기술 배워 오게 하는 등 했어야 하는데 헬조선은 조선 후기에 청나라 통해서 조금씩 이런 게 있구나 정도만 하고 끝났으니까요. 임진왜란 직후에 유럽에서 30년 전쟁 터지고 (1618~1648, 네덜란드, 스위스 독립, 국제법의 근간이 되는 베스트팔렌 조약과 종교의 자유 인정, 다만 이 때는 영방국가 독일에서 영주 기준으로 했기 때문에, 쉽게 말해 나는 개신교도인데 영주가 카톨릭 믿으면 망하는 거임 ㅇㅅㅇ 문제가 다시 터지게 됨) 18세기 (1700년대, 조선은 숙종~정조 시기)에는 7년 전쟁 터져서 프로이센 (독일 통일의 주역 왕국)이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일으켜서 슐레지엔 획득하고 (2차 대전 패망 후 지금은 폴란드 땅이지만) 정조 즉위한 해인 1776년에 규장각 만들 때 미국은 독립 전쟁이 터지는 등 다이나믹하게 변하는데 조선만 청나라 똥꼬 빨면서 문 닫고 사니까 발전이 없는 거죠,
근데 중요한 건 그 발전 없는 상태가 200년이나 지속이 되었다는 겁니다. 제가 아는 상식선에서는 대동법이 원인이죠. 기득권이 양보를 했으니까 그나마 살아남았다고 봅니다. 전란 이후에 바로 기득권들이 다시 자기 권리 되찾겠다고 하면 백성들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임란 전부터 문제였던 방납의 폐단과 군포 문제를 그대로 안고 200년 갈 수가 없죠. 대동법으로 먼저 공납 문제 해결하고 (시험문제 함정인 게 대동법으로 공납 사라졌다고 하는데 무조건 틀렸고 공납이 3개로 나뉘는데 상공, 별공, 진상 이렇게, 그 중에서 정기적으로 내는 상공만 대동법으로 전환하고 수시로 내는 별공, 진상은 그대로 존치) 그 다음에 인조 대에 영정볍 ('영(永)'원히 고'정(定)'한다, 뭘? 조세를. 세종 대 만들어진 공법 중 최하인 4두를 풍흉 상관 없이 고정세로 내고 부족분을 지주에게 결작으로 매기는데 지주가 그걸 농민에게 전가하니까 폐단이 나옴)이 나오고 영조 대에는 그 유명(?) 한 군역법 (2필 > 1필, 키워드 끝) 시행하며 기득권 애들이 자기 권리를 조금씩 내려 놓았죠. 대동법만 해도 토지 결수 기준으로 부과하기 때문에 지주들의 반발이 심했고 숙종 대 황해도를 마지막으로(평안도, 함경도, 제주도는 잉류지역이라 제외) 대동법이 확산되긴 했지만 반발 때문에 100년이 걸린 거죠.
결론은 양란 이후에 경제 개혁(대동법, 영정법, 균역법)을 통해 기득권 애들 걸 조금씩 뺏어 와서 (다만 군역 의무를 지지 않는 양반에게도 포를 내게 하는 호포법은 19세기 흥선 대원군 대여서 문제긴 하지만) 겨우 망해가던 조선 유지한 거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