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보장 식료품, 주택, 교통과 같은 기본적 생활수단은 국가보조를 통해 국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 의료와 교육도 마찬가지”―진승권, 2003, 『동유럽 탈사회주의 체제개혁의 정치경제학』
“완전고용, 낮은 수준일지라도 경제적 보장, ‘요람에서 무덤까지’ 사회복지”
“소득불평등 수준: 1960년대 중반 소련 최고소득: 최소소득 300배, 평균임금의 100배/ 미국 같은 시기 11,000배 평균임금의 7,000배”
“1970년대 동유럽 지니계수 서방 선진국의 절반”
“무계급 사회는 아니라 할지라도 자본주의 국가들보다는 훨씬 높은 수준의 경제적 평등을 성공적으로 달성한 사회였다고 하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체 국민들에게 기초교육과 의료, 주택, 직업 등 보장, 소득의 평등한 분배와 기초생활용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복지체계를 갖추었다.”
「유엔개발프로그램」의 1999년 연구보고서는 이렇게 말했다:
[먼저, 그 누구도 아닌, 유엔의 연구보고서라는 점에 주목할 것. 그리고 “높은 수준의 기본적 사회보장”, “완전 평생 고용”, “의식주 문제는 안정적으로 해결”, “교육과 의료는 무상으로 보장”, “퇴직자들에게 연금이 보장” 등의 말을 2017년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조건과 비교해 보자.]
“1990년대 이전에 중동부 유럽 그리고 구소련(지금의 독립국가연합) 국가들은 《높은 수준의 기본적 사회보장》을 인민에게 제공하여 주목을 받았다…. 《완전 평생 고용》이 보장되었다. 현금 수입은 적었지만 안정적이고 변동이 없었다. 수많은 기본 소비재와 서비스는 국가 보조금을 받아 공급이 규칙적으로 유지되었다. 《의식주 문제는 안정적으로 해결》되었다. 《교육과 의료는 무상》으로 보장되었다. 《퇴직자들에게 연금이 보장》되었고 많은 종류의 사회보장 프로그램으로 이들은 정기적인 혜택을 누렸다.”
프릴랜드에 의해 “카지노 자본주의의 최대 승리자”로 묘사된 “족벌” 미하일 프리드먼은 1991년 이후 인민의 삶이 질적인 변화를 겪었음을 확실히 인정했다. 심지어 그는 구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를 토로했다:
“예전에 나의 생활은 소련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자유분방했다…. 물론 물질적으로 보면 사람들은 그리 잘 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걱정거리가 없었다. 《진짜 치열한 관심거리는 친구, 정신적 관심사,책 등이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열려있었다.》 《우리는 경쟁에 시달리지 않았다.》 지금 존재하는 불평등과 시기심은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 요즘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우리 청소년들의 삶과 너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