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 "부장님보다 더 해요"… 똥군기 '젊은 꼰대' 주의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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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08 오후 7:39
최종수정 2017.03.08 오후 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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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어지는 위계중심 조직문화의 그늘 / 자신 경험·생각 아랫사람에 강요… 흔히 장년층 권위 빗대 ‘꼰대’ 표현 / 최근 대학생·2030 직장인도 고통… 전문가 “젊은세대들 서열문화 답습”
부산에 사는 임모(27)씨는 한 회사 선배의 지속적인 괴롭힘에 스트레스를 받아 소화불량에 걸렸다. 30대의 젊은 나이에도 유독 ‘군기’를 강조하는 그 선배는 임씨에게 무턱대고 화를 내거나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곤 했다. 임씨는 “연차가 얼마 차이 나지 않는 대리 선배가 부장님보다 더 권위적으로 구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새 학기 개강을 맞이한 대학가에도 비슷한 사례가 빈번하다. 서울의 한 4년제 대학교에 다니는 박모(20)씨는 지난달 말 교외로 다녀온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초반부터 기분을 망쳤다. 박씨는 “남 앞에 나서길 어려워하는 성격인데, 선배들이 과 전통이라면서 버스에서 장기자랑을 시켰다”며 “재수를 해 나이가 같은 선배들도 많은데 무척 굴욕적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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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와 20, 3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 비슷한 연령대의 ‘젊은 꼰대’로부터 고통을 받는다는 호소가 끊이지 않고 있다. ‘꼰대’는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이 무조건 옳다며 아랫사람들에게 강요하고, 권위와 서열을 내세우는 어른들을 비꼬는 말이다.
흔히 꼰대라고 하면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지위에 올라 있는 장년층을 떠올리지만 젊은 꼰대로 인한 각종 피해 사례들은 나이나 직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신입생이 입학하는 매년 이맘때에는 대학 선배들의 ‘꼰대짓’을 고발하는 제보가 쏟아진다. 원하지 않는 장기자랑을 시키는 것 외에도 신입생의 복장 규정이나 말투 등을 제한하는 행위, 졸업생 반지를 사야 한다며 수금하는 행위 등이 그것이다. 심할 경우 성희롱이나 성추행 등 성 관련 문제가 불거지기도 한다.
젊은 꼰대는 학교나 직장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도 존재한다. 지난달 친한 동기의 대학 졸업식을 찾은 직장인 음모(28·여)씨는 술자리에서 “여자가 서른 전에는 시집을 가야지, 나이가 생명이다”라는 말을 듣고 귀를 의심했다. 대학 다닐 때에는 그렇지 않았던 한 남자 동기가 졸업 후 1년 정도 사회생활을 하더니 꼰대로 돌변한 것이다. 정작 그 동기는 본인의 말이 ‘뭐가 문제냐’며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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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젊은 꼰대의 등장 원인으로 위계중심의 우리나라 조직문화를 꼽았다. 전상진 서강대 교수(사회학)는 7일 “한국 사회는 굉장히 권위적이어서 어떤 의견 제시도 허용치 않는다”며 “젊은 꼰대는 이러한 조직문화에다 오늘날의 정치·경제·사회적 조건이 결합돼 나타난 사회현상”이라고 진단했다.
곽금주 서울대 교수(심리학)는 “기성세대가 조직의 안정화를 위해 만든 서열중심 문화를 젊은 세대가 자연스럽게 답습하면서 빚어진 현상”이라며 “일종의 ‘청년문화’가 부재한 것도 젊은 꼰대 등장의 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같은 세대끼리 꼰대라는 말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서로를 쉽게 낙인찍고 경계를 나눠 적대시한다는 의미”라며 “이른바 꼰대짓을 하거나 꼰대라고 규정하기에 앞서 공감대 형성이나 차이의 인정 측면에서 부족한 점은 없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주영·송민섭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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