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fck123
17.02.02
조회 수 99
추천 수 0
댓글 1








 

 5년 전에 부장이 됐다. 의욕이 넘쳤다. 회식 때 내가 수저를 돌리고 고기를 구웠다. 편한 화제를 꺼냈다. 즐거워들 하는 것 같았다. 미묘한 순간들을 느끼기 전까지는. 내가 집게를 들자 좌불안석인 부서 막내, 내가 말을 멈추자 잠시 흐르는 정적, 내가 화장실 다녀오는 새 수다스러워진 분위기. 나는 좋은 부장 놀이를 하고 있었지만 가장 좋은 부장은 자리에 없는 부장이었다. 충격적인 순간도 있었다. 요즘 집에 힘든 일은 없느냐 굳이 물어서 한참 듣다가 불현듯 이미 지난번에 묻고 들었던 이야기임을 깨달은 순간이다. 엄청 걱정해 주는 척하고 있었지만 술자리가 끝나면 잊어 버릴 남의 일이었다. 나라는 인간은 원래 가족에게조차 무심하다. 나는 미생 오 과장이 아니었다. 마 부장이라도 되지 말자.

 

 지난해 말, 일반직 인사로 한 해 같이 일한 세 명이 떠났다. 파스타집에서 점심을 먹고 ‘이런 날이라고 특별한 말 하는 건 그렇고 이걸로 작별합시다’ 했다. 저녁 회식 한 번 한 적 없다. 어디 사는지 가족 관계가 어떤지도 모른다. 돌아온 후 마음이 안 좋았다. 내 무심한 천성을 핑계로 너무 매정했다. 서운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들이 찾아왔다. 나와 근무하며 좋았단다. 한 명은 내 낡은 법복과 넥타이를 나 몰래 드라이클리닝한 후 갖다 놓았다. 다시 같이 일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단다.

 

 궁금했다. 대체 왜? 실수해도 혼내지 않으셔서 좋았어요. 글쎄다. 내 편의를 위한 거였다. 법원 일은 실수하면 큰일이다. 그런데 실수를 숨기면 더 큰일이다. 바로 얘기하면 고칠 수 있다. 부모가 엄하면 애들은 매사에 숨기기 마련이다. 내가 그랬다. 업무 지시 때 이유도 설명해 주셔서 좋았어요. 마찬가지다. 그러지 않아도 바쁜데 서로 시간 낭비하기 싫어서다. 업무 일정을 함께 협의하니 휴가 계획 미리 세울 수 있어 좋았어요. 그래야 나도 결재 부담 없이 여행 가지. 달랑 이걸로 좋아들 한다. 깨달았다. 내가 이 관계에서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자제함으로써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도 있는 힘, 그건 권력이다. 나도 허례허식 싫어하는 법원장님 덕에 행사 때마다 편했다. 버락 오바마를 봐도 강자의 미덕은 여유다. 의전에 집착하는 인간치고 변변한 인간 없더라.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강변하는 건 아니다. 시대에 따라 옳고 그름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힘은 과거가 가지고 있고 시간은 미래로 흐른다. 과거가 미래에 양보하고 미래는 그런 과거를 존중하는 것, 이것이 발전 아닐까.
 

[출처: 중앙일보] [문유석 판사의 일상有感] 부장님들께 원래 드리려던 말씀






  • 교착상태
    17.02.02
    흠.. 다른건 넘어가고 실수햐도 뭐라 안하는건 사실 업무룰 하다보면 당연히 익혀야 되는 것 중에 하나인데

    센징은 그게 안되기 때문에.특별하다.

    이걸로 권력자인 것은 센징.수직관계에서 어짤수 없는 것이고

    이정도면 양반이겠지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댓글순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수 추천 수 날짜
공지 헬조선 관련 게시글을 올려주세요 73 new 헬조선 9207 0 2015.09.21
12522 Sure, Don't speak korean 1 new 헬조헬조 169 1 2016.06.27
12521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익을 창출하는 일이다 1 new fck123 169 1 2016.12.20
12520 노동자 권리 5등급 국가답다. 1 new 이거레알 199 5 2016.06.29
12519 붉은악마의 실체 1 newfile 헬조선이낳은괴물 351 8 2016.06.29
12518 현실과 가상 1 new 해탈일부직전 171 5 2016.06.29
12517 日 "불법체류자 20% 한국인"… 韓대사관에 자진출국 협조요청 1 new 아캄나이트 204 5 2016.06.30
12516 서울이 도쿄보다 인프라가 2배가 앞선다는 엠팍 1 newfile 제노아 326 3 2016.07.05
12515 영어 단어 하나 알려드립니다. 1 new 국밥천국 217 3 2016.07.04
12514 세월호 근황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 1 new 가난뱅이노예 281 3 2016.07.05
12513 센파시즘국뽕충들특징 1 new 탈아입구 163 3 2016.07.05
12512 제가 이 사이트에서 배운 투표에 대한 생각. 1 new 블레이징 148 6 2016.07.05
12511 헬조선 헬꼰대들 특징 1 new Djkxw 217 3 2016.07.05
12510 [정부규제가 게임산업 발목] 한국, 게임 종주국에서 中속국 전락 1 new 민족주의진짜싫다 153 2 2016.07.05
12509 헬조선의 자기계발서 1 newfile 헬조선타파!! 218 4 2016.07.05
12508 사실 삼성이있기에 헬조센이 왜 더욱못사는지 알수있는거 아닙니까? 1 new 다이쪽본시대 186 3 2016.07.19
12507 취업준비생 54%는 '공시족'…첫 직장 월급은 189만원.. 1 new 진정한애국이란 299 2 2016.07.05
12506 불쌍한 노동자들을 노예화 시키는 것도 다 돈만 있으면 가능한 거임. 1 new 기무라준이치로 181 5 2016.07.19
12505 한국인들은 굉장히 오만하다. 1 new 박세진 326 5 2016.07.07
12504 영동고속도로 추돌사고 1 new 하루빨리탈조선 229 4 2016.07.18
12503 헬조선 훈장 그 불명예 1 new 짱재혁이 117 4 2016.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