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SBS
[리포트+] 대입 수험생도 자소설 쓸 수밖에 없어요
기사입력 2016-10-08 15:05 | 최종수정 2016-10-08 16:31
#1 교무실에서
(담임 교사 A씨가 제자의 대입 자기소개서를 들여다 보고 있다)
‘힘들었던 행사 진행을 끝내고 친구들과 함께 먹었던 아이스크림은 정말 달콤했습니다.’
“선생님, 저 아이스크림 안 먹었는데요?”
“아니야, 이런 문장이 자소서에 들어가야 학생다워. 다른 거 더 보자!”
매년 대입 수시전형에 필요한 자기소개서를 작성할 때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데 학생이 전혀 모르는 내용이 들어가는 겁니다.
담임선생님은 학생다운 문장이라며 수정하고, 또 특정 대학의 성향을 고려해야 한다며 자기소개서 내용을 이리저리 바꿉니다. 결국 학생의 자기소개가 아닌 다른 내용의 자기소개서가 만들어집니다.
● 여전히 인기 많은 대입 자소서 대필
유명 학원가에서 자소서 대필을 해준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수험생, 학부모는 쉬쉬하며 자소서 대필을 업체에 맡기고 있습니다.
사교육 일번지라 불리는 서울 강남이나 종로에서 암암리에 자소서 대필 거래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강남 일대에선 자소서 대필 한 건당 ‘시세’도 정해져 있다고 합니다. 보통 50~60만 원, 200만 원을 넘기는 경우도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수험생이 자소서를 쓰기 위해 대학생 과외를 받는 경우도 흔한 데 명문대생일수록 과외선생님으로 인기입니다.
[입시 컨설팅 업체]
“학부모의 재력이 상당한 경우에는 여러 군데 자소서 대필을 맡긴 뒤, 좋은 부분을 짜깁기해서 완성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 확 바뀐 고3 교실…자소서 쓰느라 '열중'
수시모집 접수가 시작되면서 고3 교실의 분위기도 180도 바뀌었죠. 교실에선 과목 수업이 진행 중이어도 학생들은 자기소개서 쓰기에 열중이고 자율학습시간에도 컴퓨터실에 모여 자기소개서를 씁니다.
최근 대입에서 수시모집 비중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올해 2017학년도 전국 4년제 대학 전체 입학정원 중 70% 이상을 수시모집으로 선발합니다. 이중 학생부종합전형으로 29.5% 즉 7만 2767명을 뽑습니다. 지난해 27.9%에서 2%p가량 더 높아졌습니다.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으로 좁혀 보면 학생부전형 비중은 총 선발 인원의 30~40%대로 더 높습니다. 학생부종합전형은 내신점수와 봉사활동, 자기소개서와 면접 등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교과와 비교과 활동은 고등학교 3년 동안 준비하는 것이지만, 자기소개서는 고3 수험생이 돼서야 쓰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고3이 돼서야 처음 써보는 데 합격 여부에 영향을 미치니, 수험생들은 부담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 '자기'가 빠진 자기소개서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학원뿐 아니라 학교에서도 자기소개서 작성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일부에서는 맞춤법 같은 단순한 첨삭 지도를 넘어 대필 수준의 첨삭 지도가 이뤄지는 겁니다.
수험생의 경험이 부풀려지기도 하고 때론 거짓 활동이 추가되기도 합니다.
[수험생을 둔 학부모]
“학생이 자기소개서를 입력하면 담임교사들이 접속해 수정해주기도 하는데, 교사의 손을 거치면 평범했던 자기소개서도 신화창조 수준으로 다시 태어난다.”
●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는 건가요?
자기소개서 표절이나 대필 작성 폐단을 막기 위해 대학교육협의회는 ‘자기소개서 유사도 검색’을 지난 2011년부터 실시하고 있습니다.
표절로 판명되거나 표절이 의심되는 자기소개서는 해마다 1천 건 이상 적발되고 있습니다.
대교협은 표절 위험(다른 자기소개서와 30% 이상 유사)판정을 받거나 의심(5% 이상 30% 미만)이 되는 수험생 명단을 각 대학에 알려주고 대학별 규정에 따라 입학 전형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대학 측은 표절이나 대필이 확인되면 감점을 주거나 합격취소까지 고려하는 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일부 수험생과 학부모가 자기소개서를 표절이나 대필을 맡기는 이유는 혹시나 하는 희망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대입 관계자들은 한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