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세계일보
[이슈탐색] 알짜 상품 빼놓고… ‘폭탄 세일’ 소리만 요란
A8면1단| 기사입력 2016-10-07 18:53 | 최종수정 2016-10-07 21:09
‘코리아 세일 페스타’ 불만 속출
“속을 줄 뻔히 알면서도 또 왔네요.”
주부 박모(36)씨는 지난달 29일부터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7일 서울 금천구의 한 쇼핑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의류 매장에서 옷을 고르는 박씨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기대와 달리 가격대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 박씨는 “최대 80% ‘폭탄 세일’을 한다는 얘기에 지난 주말에도 영등포의 한 백화점을 찾았지만 ‘딱 이거다’ 싶은 제품이 없었다”며 “혹시나 해서 와 봤지만 역시나 별로였다”고 말했다.
이른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를 맞아 50∼90%의 할인율을 내세운 업체들이 많았지만 원가격 뻥튀기나 재고상품 떨이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아 허울만 좋은 ‘속빈 강정’이란 지적이 일었다. 사진 = 이창수 기자 |
중국인 유학생 초이미엔(24·여)도 최근 화장품을 사러 서울시내 유명 백화점을 찾았다가 실망하고 발길을 돌렸다. 그는 “고급 브랜드 화장품은 세일에서 제외하고 저가형 상품만 팔고 있었다”고 푸념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쇼핑·관광 축제인 코리아세일페스타를 맞아 50∼90%의 할인을 내세운 업체들이 많았지만 원가격 뻥튀기나 재고상품 떨이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신상품이나 인기 상품은 할인 혜택이 없거나 크지 않아 국내외 소비자들의 불만이 크다. 사진은 5일 코리아세일페스타가 진행 중인 서울시내 한 백화점 의류매장에 고객들이 대거 몰려 북적이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문화체육관광부와 산업통상자원부가 내수 진작과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마련한 2016쇼핑관광축제 ‘코리아 세일 페스타’(9월29일∼10월31일)를 통해 대형 유통업체들이 ‘폭탄세일’에 나섰지만 국내외 소비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다.
파격적인 할인행사를 하는 미국의 블랙프라이데이를 본떠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라고 홍보하거나 ‘역대 최대할인행사’라고 떠들지만 ‘알짜 상품’들은 할인 대상에서 제외하거나 할인율이 낮아 지갑을 쉽게 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이번 코리아 세일 페스타에는 전국 백화점과 대형마트, 온라인쇼핑몰 등 300여개 업체가 참여해 최대 90% 할인된 가격에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업체들은 중국 국경절 연휴(이달 1∼7일) 기간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유커) 20여만명을 겨냥해 9일까지 집중적으로 할인행사를 진행 중이다.
하지만 낮은 재고·물류 비용을 바탕으로 ‘파격 세일’이 가능한 미국과 달리 국내 할인행사에서는 원가 부풀리기 등 ‘할인율 꼼수’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내 한 쇼핑센터의 신사정장 매장에서는 “원가 70만원짜리 정장을 80%가량 할인해 14만원에 판매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취재 결과 해당 제품은 울 10%만 포함된 합성 소재 원단으로 만들어져 애초 판매 가격이 10만∼15만원 정도에 불과한 제품이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보통 할인은 출고가가 아닌 할인 20일 전쯤의 가격인 ‘종전거래가’를 기준으로 잡아야 한다”며 “이번 행사에선 대부분 출고가를 기준으로 잡아 ‘착시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백화점마다 진행하는 ‘10월 정기 세일’에 정부가 테마만 잡아준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이른바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를 맞아 50∼90%의 할인율을 내세운 업체들이 많았지만 원가격 뻥튀기나 재고상품 떨이에 그치는 경우가 적지 않아 허울만 좋은 ‘속빈 강정’이란 지적이 일었다. 사진 = 이창수 기자 |
정작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신상품이나 인기 상품은 행사에서 제외되거나 할인 혜택이 크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신촌에서 여성복을 파는 A(44·여)씨는 “할인율이 높은 제품은 대부분 이월상품이나 시즌 오프성 재고”라고 귀띔했다.
100여개 업체가 참가한 온라인 쇼핑몰 쪽 사정도 마찬가지다. 온라인 쇼핑몰에선 대개 행사 기간 5만∼20만원 상당의 쿠폰을 증정한다고 홍보했지만 유명 화장품이나 인기 가전제품 등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가격이 저렴한 전시용 가전제품을 ‘미끼성’으로 홍보하거나 할인 제품이 인터넷 최저가보다 비싼 경우도 많았다.
업계에서는 “행사 참가 지시가 내려와 층장(백화점 등에서 층을 관리하는 매니저)이 지목한 업체들이 어거지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는 뒷말도 나온다.
한양대 부제만 교수(생산·물류관리)는 “최근엔 상품가격을 인터넷으로 꼼꼼히 비교하는 ‘스마트’ 소비자가 많아 ‘눈 가리고 아웅’식 세일은 국내외 소비자들에게 장기적으로 ‘독’이 될 수밖에 없다”며 “파격 할인을 앞세우기보다는 복잡한 유통구조를 손질하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