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nationalism; 국민주의)의 가장 끝판왕은 스포츠입니다. 비교적 합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서구권 시민들도 nationalism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합니다. 영국의 brexit에서도 볼 수 있고, 미국내 여전히 잔존하는 흑백차별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nationalism이 가장 질긴 경우가 스포츠입니다. 국가별 메달을 집계하는 올림픽 위원회의 모습과, 같은 국적의 스포츠선수에게 맹목적인 응원을 보내는 근대국가국민들의 모습을 보면, 동서양 모두 아직 멀었다고 보입니다. 서양의 선구적인 사상가 중에서도 소수만이 스포츠의 속성을 꿰뚫어보았습니다.
대부분 스포츠의 기원은 사냥이라고 이해합니다. 달리기, 던지기, 들어올리기등 육체적-정신적 강인함에서 세련되게 발전된 것이 스포츠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스포츠의 기원을 사냥에서 찾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냥과 스포츠의 공통점일뿐 사냥이 스포츠로 진화한 "계기"가 더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 진화의 계기는 사회계급의 분화, 특히 유한계급(Leisure class;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계급)의 등장입니다. 사회계급이 없던 야만인 시절, 인류공동체는 남-녀라는 구분만 있었습니다. 생물학적인 특징에 근거해 남성은 사냥을, 여성은 임신 및 육아, 가사를 담당해왔습니다. 인간의 개체수가 증가하면서 야만인과 야만인이 마주치게 되는데, 서로를 죽이고 약탈하는 과정에서 씨족을 넘어선 단위의 공동체가 나타납니다. 약탈에서 승리한 남성들은 피정복된 남성의 노동력과 여성의 출산을 사유재산화합니다. 유한계급의 출현입니다.
유한계급은 직접 노동을 할 필요가 없어졌고, 노동을 한다는 것은 용맹하지 못하고 노예근성이 있는 자들의 전유물로 수치스럽게 여깁니다. 이들은 자신의 용맹함, 남자다움을 증명함과 동시에, 자신은 노동으로 해방되어서 한가롭다는 것을 증명해야됩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과시적소비, 스포츠, 전리품(현대로 와서는 수집품), 사교모임, 자선활동 등으로 증명합니다.
스포츠의 출발은 시간과 돈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었고, 피지배층은 노동을 담당할 뿐이었습니다. 고대 그리스 올림피아 제전의 체육경기는 오로지 그리스 출신의 자유민 남자만 가능했습니다. 그리스의 경우 마찬가지로 서양의 농노와 조선의 노비, 그리고 대중들이 체계적으로 훈련받고 연구하며 스포츠를 즐겼을리 만무합니다. 그들이 운동을 했다면 유한계급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방을 통해 일부 독자적인 발전을 이뤘을 순 있습니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유한계급에 의한 스포츠는 양상이 변합니다. 근대 국가들이 형성되면 nationalism이 들어오기 시작한겁니다. 쿠베르탱은 올림픽을 부활시킵니다. 그 때문에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로 불리며 숭배를 받고 있는 쿠베르탱이지만 그는 사실 인종주의자, 여성 혐오자였습니다. 그는 이런 사실을 숨기지 않았으며 "월등한 인종인 백인종에게 다른 모든 종족은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등의 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또한 자신의 책 <영국 교육>에서 다음과 같이 편협한 종족관을 천명하기도 했습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종족만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솔직한 시선에 강한 근육, 자신감에 찬 행동을 하는 종족이고 또 하나는 병색이 가득하고 비굴하며 체념한 얼굴에 패배한 표정을 하고 있는 종족이다."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첫 번째 종족은 백인 남성이며 흑인을 포함한 유색인종이 두 번째 종족에 해당합니다. 그는 또한 여성의 올림픽 경기 참가를 적극적으로 반대했습니다. "계집애들로 이루어진 올림픽은 흥미 없고 아름답지 않으며 무례한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제1회 아테네 올림픽에는 남성들(대부분 백인)만이 참여했으며 참가 허락을 받은 소수의 흑인, 인디언 등은 순전히 백인의 우월함을 드러내기 위해 이용됐을 뿐입니다. 또한 제3회 올림픽 경기가 열린 미국의 세인트루이스에서는 '인류학의 날'이라는 이름 아래 종족간의 경기가 별도로 이뤄지는 기상천외한 사건까지 벌어집니다.
21세기에 이르러 구베트탱과 같이 편협하고 치졸한 nationalism(민족주의)은 많이 타파되었으나, 새로운 형태의 nationalism(국민주의)는 교묘히 주입되어 건재합니다. 근대에는 오로지 백인우월주의 였다면, 현대에는 백인, 흑인, 아시아인 관계없이 아메리칸 우월주의, 영국우월주의, 한국우월주의로 나타납니다. 미국인들이 흑인 육상선수에게 맹목적인 응원을 보내는 것과, 국가별 메달 개수로 줄을 세우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나마 서구권 국가들은 민족주의를 탈피하여 국민주의 정도까지는 발전했으나, 아직까지 근대를 벗어나진 못한 헬조선은 여전히 민족주의에 매몰되어 있긴합니다. 빅토르 안을 비난하는 편협함을 목도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실 국가는 현대인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공동체이자 서비스 제공자이며 인류의 공동체 확장역사를 볼때 현재 수준에서 이룰 수 있는 가장 확장된 수준의 공동체일 뿐입니다. EU라는 미래지향적인 블록연합체에서 볼 수 있듯, 인류공동체의 다음 단계는 더욱 확장된 모습이 될겁니다. 제1의 물결이 고대국가를 탄생시켰고, 제2의 물결이 근대국가를 탄생시켰으며, 제3의 물결이 EU라는 블록공동체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듯, 인공지능-로봇 혁명이 가져올 제 4의물결은 새로운 공동체로의 확장을 가속화 시킬 것입니다.
일본이든 프랑스든 베트남이든 국가명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더 살기좋은 국가가 좋은 국가일 뿐입니다. 허나, 올림픽과 월드컵은 국기를 가슴에 달고나와서 nationalism과 더 나아가 국뽕을 주입합니다. 스포츠 스타의 훈련장면과 승리의 장면뒤로 태극기가 펄럭이고 다이내믹 코리아와 같은 propaganda를 은연중에 스며들게합니다. 해설자들은 격앙되는 목소리로 편파적인 해설을 할겁니다.
스포츠의 쾌감은 국가간 승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인간끼리 맞부딪혀서 승패가 갈리고 인간 한계를 극복하는 모습에서 나옵니다. 국가대표와 자신을 그리고 국가를 동일시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챔스나 NBA,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등 지역연고의 스포츠에도 목멜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여가생활로서 경기를 감상하고 즐기는 것으로 끝나면 그만입니다. 인간대 인간의 부딪힘을 감상만 하시면 됩니다. 국적에 관계없이 <인간으로서> 올림픽 무대에 오르기 위해 노력한 모든 선수들의 땀과 눈물에 박수를 보내시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순수한 스포츠를 감상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