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군단은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이 노예상태에 있다고 말하면 선동이라고 한다.
정당한 근로에 대한 임금을 지급해달라는 요청이 빨갱이라고 한다.
한술 더떠서 학술적 전문지식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오용'해서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빼애애애액거리지.
그런데 과연 우리가 노예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 종속되고, 비정규직의 경우 이보다 훨씬 심하지.
같은 근로를 제공해도 임금은 차이나고, 살인적인 근로조건에서 일하면서 고작 140만원을 받는게 현실이다.(2015년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평균 137만원)
살인적인 근로조건이 선동이라고 하는 새끼도 있겠지.
구의역 사건을 보고도 이게 선동이라고 생각하면 자살로서 탈조센하는게 국가를 위한 일일꺼다.
밥도 제대로 못먹어서 라면으로 가까스로 끼니를 때우다가, 결국 죽음으로 마무리된 비정규직 근로자를 보고도
살인적인 근로조건이 아니라고 하면 도대체 어떤게 살인적인 근로조건이라 할 수 있는거냐? 심지어 목숨을 잃는데도 말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같은 비정규직 근로가 소수에 불과한게 아니라 근로자중 1/3이 비정규직이라는 거다.
본래 권리와 의무는 불가분적으로 권리가 커질 수록 그에 따른 의무(책임)도 비례한다.
근데 한국은 절대 그렇지 않다.
자본을 가진 사회 기득권층을 봐라. 권리는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가지면서 의무는 1만큼도 가지지 않고 있다.
이들이 말콤X가 말하는 집노예다.
물론 나도 노예다. 하지만 나는 저항하는 들노예다.
노예로서 생명을 연명하는 것으로 만족하느니
굶더라도 자유와 더 나은 삶을 위해 저항하는 삶을 사는게 낫다.
마지막은 말콤 엑스의 집노예와 들노예로 마친다.
두 종류의 노예가 있습니다. 집 노예와 들 노예 입니다. 집 노예들은 주인과 함께 삽니다.
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습니다. 집 노예들은 오두막이나 지하에 삽니다, 그러나 여전히 주인의 곁에서 생활합니다.
그들은 주인을 자신보다 사랑합니다. 그들은 주인보다도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던져 주인의 집을 지킬 겁니다.
집 노예는 주인이 “여기 좋은 집을 얻었다”고 말하면, “우리가 좋은 집을 얻었군요”라고 말할 겁니다.
주인이 “우리”라고 말할 때 마다, 그도 “우리”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집 노예가 말하는 방식입니다.
만약 주인의 집에 불이나면, 집 노예는 주인보다도 불을 끄기 위해 최선을 다 할 겁니다. 주인이 아프면, 집 노예는 “뭐가 문제이기에 우리가 아픈걸까요?” 라고 말할 겁니다.
우리가 아프다고! 그는 주인이 자신에게 하는 것 이상으로 주인에게 자신을 동화시킵니다.
만약 여러분이 집 노예에게 가서 “도망가자, 탈출하자, 여기서 벗어나는 거야,” 라고 말한다면, 집 노예는 여러분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할겁니다,
“미쳤구나. 벗어나자니, 그게 무슨 말이야? 여기보다 더 좋은 집이 어디있지? 여기보다 더 좋은 옷을 입을 수 있는 데가 어디야?
여기보다 더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어디있어?” 이것이 집 노예입니다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stock_new1&no=2997054&page=1&exception_mode=recommend
물론 나도 노예다. 하지만 나는 저항하는 들노예다.
노예로서 생명을 연명하는 것으로 만족하느니
굶더라도 자유와 더 나은 삶을 위해 저항하는 삶을 사는게 낫다.
영국이 인도를 독립시켜준건 간디의 독립운동때문이 아니라
그냥 2차세계대전후 영국의 힘이 식민지를 더 유지하지 못할정도로 약해졌기 때문이었음
하지만 헬조선의 교과서에선 간디의 비폭력만 강조함.
비폭력으론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함.
미국처럼 총을 들고 피를흘려 싸운자들만이
나와 내가족의 권리를 지키고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는 법임.
비폭력은 맞서 싸울 용기조차 없는 겁쟁이들이
자신들은 야만인처럼 폭력을 쓰지 않는다면서
명분찾으며 자위하는 소리일 뿐이임
이런 겁쟁이들이 권리를 찾기위해 맞서는 사람들의
노력마저 야만과 무법이라 비하하고 이간질시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