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해럴드경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안 시행 1년]‘곳곳 허점’…건물주 권리금 甲질 여전
24면| 기사입력 2016-05-09 11:27 | 최종수정 2016-05-09 22:44
영업가치 법적 인정은 긍정변화
재건축등 핑계 일방 ‘퇴거’통보
표준계약서 활용통해 불이익없애야
이민주(가명) 씨는 지난 달을 끝으로 운영하던 커피 전문점을 접었다. 개점 8주년 되는 날을 불과 며칠 앞두고서다. 오픈 때만 해도 가게가 들어선 경기도 의정부는 카페 불모지였다. 덕분에 손님이 몰렸고 매출은 뛰었다. 단골들의 포인트 카드가 수백장씩 쌓였다. 600만원이던 월세는 지난해 봄 재계약에서 1300만원까지 뛰었다. 5번의 재계약마다 임대료는 건물주가 일방적으로 ‘통보’했고 “권리금은 인정불가”라고 말했다. 주변 점포들의 권리금은 2~3억원에 수준이었다. 이 씨에겐 지난해 개정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 희망이었다. 가게를 접더라도 권리금을 건질 수 있길 기대하며 새 임차인을 직접 찾아 나섰다. 하지만 고가의 임대료 탓에 섣불리 관심을 보이는 곳도 없었다. 대형 프랜차이즈마저 고개를 저었다. 결국 8년간의 영업가치는 인정받지 못하고 가게를 비워야 했다.
임차인들의 권리금 보호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 1년을 앞두고 있다. 상인들의 영업가치를 법의 테두리 안으로 끌고 왔다는 긍정적인 목소리도 있으나, 법안의 틈을 활용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하는 모습이 목격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상임법) 개정안이 시행 1년을 앞두고 있다. 그간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상가 임차인의 ‘영업가치’, 즉 권리금이 처음으로 법적 영역에 들어온 게 개정안의 큰 줄기다.
세입자들이 권리금을 주고 받는 것(양도ㆍ양수)을 방해하는 건물주에겐 손해 배상 책임이 주워진다. 구체적인 방해행위는 ▷세입자와 신규 세입자의 권리금 양도양수를 방해 ▷건물주가 새 세입자로부터 직접 권리금을 받는 경우 ▷임대료를 현저히 높여 계약을 훼방하는 경우 ▷정당한 이유 없이 새 세입자와의 계약을 거절하는 경우 등이다.
법무법인 도담의 김영주 변호사는 “권리금 한 푼 인정받지 못해 울고 나가는 임차인들이 이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며 “영업가치가 법적으로 인정되면서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 교섭, 대화의 여지가 커진 것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에 갈등의 소지가 이전보단 다소 줄었으나, 소위 ‘갑’으로 통하는 임대인과 ‘을’인 임차인 구도는 여전히 거리에 남아 있다.
지난 1994년 인천 남구에 바베큐 가게를 연 최명길(가명)씨는 계약기간 중 아들이 큰 병에 걸렸다. 간호에 몰두하고자 장사를 접으려 했으나 건물주는 “권리금을 인정 못한다”며 새 임차인을 찾아 권리금을 받는 과정을 방해했다. 권리금 양도ㆍ양수를 방해 금지 의무기간(임대계약 종료 3개월 전~종료 시)이 아니었기에 손해 배상을 청구하기도 어려웠다. 결국 최 씨는 20년 넘게 장사하며 쌓은 영업가치를 포기하지 못했다.
임차인들이 완전히 불안감을 지우지 못하는 까닭은 최 씨의 사례처럼 법 곳곳에 ‘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내용은 ▷건물주가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이유로 임차인에게 나갈 것을 요구할 때 권리금 회수가 어려운 점 ▷재래시장, 전대차 상가는 권리금 보호 대상에서 빠진 것 등이다. 상가건물임대차분쟁조정위를 각 시도에 설치하는 것도 다시 논의될 문제다.
이선민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조직국장은 “나쁜 임대인들의 횡포와 이를 부추기는 일부 중개업자들도 여전하다”며 “이들이 악용할 수 있는 요소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임법의 허점을 추가로 보완해야 한다는 논의는 작년 국회에서 있었으나 결실을 맺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상임법 개정을 주도한 민병두 의원실 관계자는 “지난 개정안에서 완벽히 다루지 못한 부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새 국회에서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상가 권리금을 현황을 조사해 최근 발표했다. 정부가 권리금 관련 통계를 만든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이에 따르면 서울과 6대광역시 평균 권리금은 4574만원이었다. 서울(5400만원)이 가장 높고 광주(4851만원), 대전(4302만원), 인천(4189만원)이 뒤를 이었다. 다만, 권리금을 주고받을 때 계약서를 작성한 경우는 11%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 관계자는 “통상 권리금은 구두로만 합의하고 문서화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권리금 보호의 첫 단계는 표준계약서 활용에서 시작한다는 홍보를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