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포탄광으로 끌려간 국군포로 이규만
??李蓮順(이연순·46), 白英淑(백영숙·50), 박현주(가명·68), 허금자(가명·45), 李玉春(이옥춘·39)씨는 고향을 그리워하다 돌아가신 국군포로 아버지·남편의 유해를 가지고 한국으로 탈출했다. 『죽어서라도 고향에 가고 싶다』는 故人의 유언을 들어 주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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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명의 국군포로들은 조국 대한민국의 무관심 속에 숨졌고, 그들의 유해가 귀환하는 과정에 대한민국 정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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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7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李蓮順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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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蓮順씨의 아버지는 국군포로 이규만(1932년生, 2000년 사망)씨다. 이규만씨는 1952년 3월25일 19세에 육군 서울수도사단에 입대, 참전했다가 포로가 됐다. 북한은 국군포로들을 기차 화물칸에 실어 북쪽 끝 학포탄광으로 올려 보냈다. 육군에서는 1952년 8월16일 그를 戰死者(병장·군번 8812170)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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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전협정이 끝났지만 학포탄광의 국군포로들은 송환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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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군포로들의 유일한 樂(낙)은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한국 방송이었다. 포로들은 탄광 갱도에 들어가서 라디오를 들었다. 방송을 듣다 발각당해 정치범 수용소로 가거나 총살당해 죽은 사람이 허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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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만씨는 1957년 함경북도 길주 출신의 전쟁고아 이숙옥(1935년生, 2004년 사망)씨와 결혼을 했다. 당시 이숙옥씨는 그가 국군포로 출신인 줄 몰랐다. 첫날밤에 이불이 없어서 이규만씨가 전쟁 때 갖고 온 군인 모포 하나를 덮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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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광에는 각자 계획(목표량)이 있잖아요. 본인이 못 하면 가족들이 채워야 해요. 한번은 아버지가 목표량을 못 채워서 어머니가 들어갔었는데 완전 오소리 굴이었대요. 기어서 들어가 석탄을 캤대요.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천대를 많이 받았어요. 「차라리 남조선에서 죽고 말 것이지 왜 여기까지 와서 옆의 사람에게 피해를 주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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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蓮順씨는 1962년 학포탄광에서 태어났다. 당시 아버지는 發破工(발파공: 굴을 뚫기 위해 폭약을 설치해서 터트리는 일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1964년에 오발 사고가 나서 크게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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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편이 온몸에 튀었다. 오른쪽 뺨은 움푹 파였고, 오른팔의 뼈가 위로 솟아나 비뚤어진 채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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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구가 돼서 일을 못 하게 되자 이규만씨는 함경북도 회령군 창태 임산으로 배치됐다. 그는 가족들을 마을에 두고, 홀로 인적 없는 산 깊숙이 들어가 목탄 굽는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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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kbs.co.kr/news/view.do?ncd=267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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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방부에서 국군포로의 생존을 확인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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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정보를 한국에넘겼다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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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알수록 꼴통같은 병신같은 나라 헬조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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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포로는 아에 관심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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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에서 병사란 그저 총알받이 노예에 불과한 것이죠.
그러니 굳이 지배충들이 돈들여, 노오력하면서 전쟁노예들 몇명 찾아오느니, 그 돈과 노오력할 시간에 그냥 내 배에 기름칠이나 해야겠다는 게 지배충들 생각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