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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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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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지금까지 숱하게 나왔고 더불어 그 질문만큼이나 숱한 답이 나왔지만, '인간은 뭘 하는 존재인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모든 인간이 공유하는 행동이 하나 있다. 먹어야 한다. 링겔을 맞든 입에 관으로 유동체를 쑤셔넣든, 영양을 섭취해야 한다.


당신이 채식주의자건 육식주의자건 먹는 음식에 어떤 가치도 두지 않건 영양제만으로 목숨을 부지하던간에, 당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은, 한 때는 살아 있었던, 혹은 살아 있는 생명 그 자체를 먹는다.


(생각보다 과학발전이 더뎌서 아직 무기물만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인간은 없다.)


다행히도 이 행성엔 먹을 게 많았다. 사람은 풀을 먹고, 과일을 먹고, 돼지를 먹고, 소를 먹고, 개를 먹고, 상어를 먹고, 악어를 먹는다. 

그 전에 전제조건이 있다. 뭔가를 먹으려면 맹렬히 저항하는 그 생물을 때려잡는 수 밖에 없었다. 이 행성에 같이 사는 생물 중에 상대에게 순순히 잡혀먹혀 주는 생물은 없었다. 


(간혹 그런 것 처럼 보여도 그것도 다 자기 잇속을 챙기기 위할 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풀을 먹기 위해선 풀과 싸워서 이겨야 하고, 돼지를 먹기 위해선 돼지와 싸워서 이겨야 했다. 



즉 유사 이래, 아니 그 이전부터 인류의 삶은 '투쟁' 그 자체였다. 인간은 싸워왔다. 투쟁은 곧 생명 그 자체의 증거였다.

사람은 투쟁의 수단을 발전시켜가며, 다양한 도구를 사용했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다양한 투쟁도구들이 사용되었고 점차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사람은 창을 사용했고, 검을 사용했고, 활을 사용했고, 화약을 발견한 뒤엔 투사병기에 대해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져 총알과 미사일을 사용했다.



이 오랜 세월 인간이 사용하던 투쟁병기들은 인간의 사유영역이 넓어지면서, 무기 그 자체의 기능 뿐만이 아닌 특정한 기호적 의미를 띠기 시작했다. 


인간이 현재까지 만들어 낸 문화와 역사를 교육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는 우리 또한 이를 무의식의 영역에서 이해하고, 일상 생활의 표현과 언어 속에서 쉽게 이를 연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동물도 아닌 다른 '인간'을 죽이는 데 최적화된 무기인 '검'은, 인간 사회의 무력, 규율 그 자체를 상징하게 되었다. 이는 경제적 의미도 한 몫을 했다. 일정 이상 경제적 수준이 뒷받침되지 않는 사회는 검을 제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에서도 검은 다양한 군대의 표식으로 사용되고 있고, 제식 그 자체를 상징한다.


'철퇴'를 예로 들어보자. 의사를 일방향,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듯한 공격형태를 띠고, 외부의 충격으로 인해 어떤 변형을 주기도 어려워 보이는 병기인 철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엄한 권력을 상징하게 되었다.


사람이 가장 먼저 생존을 위해 사용했을 병기인 '창'은, 생존 그 자체, 가진 게 없는 제로로부터의 시작, 모든 생물의 목표인 '생존'과 결부되어, 더욱 나아가 '평범함'을 상징하게 되었다.


꼭 냉병기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무기를 보면서 무기의 상징성을 느낀다. AK-47은 압제와 해방을 동시에 상징하고 있는 매우 특이한 경우고, 몇몇 대한민국 현대인은 발터를 보면서 여러 가지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인터넷에서 '죽창을 달라'는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접하게 되는 걸까. 왜 하필 죽창일까. 그들은 왜 도끼나 활, 발터를 달라고 하지 않고 죽창을 달라고 할까. 일단 죽창의 정의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죽창은 '대나무 재질로 만든 창'으로, 날과 손잡이가 통짜로 되어 있다는 게 특징이다. 간단히 말해서, 적당하게 굵은 대나무를 엇나가게 자르면 죽창이다. 죽창을 제조하는 데 들어가는 경제적 노력이나 가치는 제로에 가깝다. 어떤 것이든 간에 날붙이와 대나무숲이 있으면 누구라도 죽창을 만들어낼 수 있다. 죽창은 모든 창 가운데 가장 만들기가 쉽지만, 그만큼 병기로 쓰기에 내구도가 좋지 않다. 물론 사람의 물렁한 살덩이보단 훨씬 튼튼하긴 하지만...

활이나 검을 병기로 제대로 활용하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훈련이 필요하지만, 죽창은 탄성이 적은 창대의 재질과 공격부위의 단조로움으로 인해, 사용할 방법이 크게 다양하지 않다. 죽창은 아예 전술적 이해를 하지 못하면 사용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현대병기나, 오랜 훈련을 거쳐 사용해야 하는 중세병기와는 다르게 사용자 간의 숙련도 편차가 적은 무기이기도 하다. 즉 죽창을 손에 쥔다는 행위는 '평등'을 상징하는 것이다.

죽창에 대한 이해가 이루어진 이 시점에서 다시 묻는다. 왜 그들은 '죽창'을 달라고 할까. 죽창을 달라고 하는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

우리는 흔히 죽창을 달라고 하는 드립을, 뭔가의 불평등을 토로하는 글에서 발견한다. 죽창을 달라고 하는 이들은 불평등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도적 해결을 요구하지 않고, 그저 죽창을 달라고 할 뿐이다. 죽창을 받은 그들은 그걸 가지고 뭘 할 것인가? 뻔하지. 그걸 사용하지 않겠는가? 즉 그들이 제시한 문제의 해결책은 죽창을 사용하는 것이고, 공교롭게도 이미 깎아낸 죽창의 용도는 하나밖에 없다!

앞에 적은 바와 같이 창은 인간에게 있어서 기본적으로 '생존권'을 상징한다. 그런 창들 중에서도 가장 저급인 죽창은 그 창이 가지고 있는 기호적 특징을 극대화시켜 '생존'을 넘어서 '최후의 저항'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창 중에 가장 저급인 죽창을 쥘 단계까지 온 자는 생물의 기본적 욕구인 '생존'을 포기한 자다. 이미 그는 자신이 살고자 하는 희망을 바라지 않는다. 
애초에 그걸 바랄 정도였으면 죽창보다는 그럴듯한 무기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을 것이다. 그가 원하는 건 오로지 '상대의 죽음'이다. 

정리하자면 '죽창을 달라'는 말은 포기 선언이다. 즉 '음 죽창을 달라는 사람들은 기존의 질서에 지쳤다는 뜻이니 우리가 그들을 포섭해서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하겠군!' 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좆을 까면 된다. 그들이 원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니다.

포기선언, '내가 졌다.' 그래서? 뭐? 졌으니 죽으라고? 알았다. 근데 뭐 내가 죽는 건 그렇다고 치고, 넌 왜 안 죽어도 되는데? 이 시점에서 그들에게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 졌으니 판을 엎으면 된다. 이 지독할 정도로 자기 파괴적인 포기선언, 사회구성원들에 의한 사회의 공멸, 그 모든 상징이 '죽창을 달라'는 메타포에 녹아 있다. 

대체 무엇이 그들을 포기하게 만들었는가. 그들은 자신의 처지에 신경쓰지 않고, 왜 오로지 상대의 멸망에만 신경쓰게 되었는가. 뭐가 대체 그들을, 우리를 여기까지 몰고 왔는가. 그들에게 죽창 말고 다른 대안이 있다면, 그들은 죽창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수많은 거짓말에 이미 속은 경험이 있는 그들은 그 대안조차 이미 믿지 않고 아랑곳하지 않은 채로 너나 나나 골통에 박히면 한 방에 가는 죽창을 깎아낼 것인가. 죽창 말고 다른 법은 없는가. 결국 총을 든 쪽이 죽창에 골통이 깨지든가, 죽창을 든 쪽이 총알에 벌집이 되는 방법밖에 없는가.

생각이 많아지는 밤이다. 죽창, 죽창을 다오, 죽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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