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20대는 취업난 그리고 비전 없는 하루하루를 살면서 버티고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각 세대는 그 세대만의 고민과 책임이란 것이 있다. 일제시대부터 전후세대에 태어난 세대에게는 나라를 되찾아야 한다는 그 세대만의 고민과 책임이란 것이 있었다. 그렇기에 일제강점기 시절 대다수는 침묵으로 일관했지만 우리는 친일파를 비난한다. 그 세대의 책임을 회피하겠다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 또 그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에겐 국가 재건이라는 책임이 있었다. 그것이 그들이 해야만 했던, 나라를 되찾았지만 아무것도 없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이 나라를 자신의 자식에게 후손에게 물려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박정희의 군사독재 체제 안에서도 참았다. 억압적이고 또 폭력적인 집단주의 사회, 전체주의 사회였지만 나날이 성장하는 국가 경쟁력과 경제에 그들은 침묵하며 땀으로 대답했다. 지금은 정게할배, 노인네로 불리는 그 세대는 그 세대 나름대로 책임을 다했다. 최소한 민주주의는 후퇴했으나 그들의 후손이 하루 세끼는 먹을 수 있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후에 태어난 세대가 바로 우리가 그렇게도 욕을 하는 486과 586이다. 왜 그 세대들이 욕을 먹는 가 생각해보면 그들은 그 세대만의 책임을 이행하지 않은 채 권리만 추구했다. 나라를 되찾고, 나라를 부흥시켰다면 바로 그 NEXT 가 국가 성장에 필요했다. 그 전 세대가 근세적인 전체주의, 집단주의 문화를 가졌다면 그 세대는 최소한 억압적이었던 집단주의 경제문화를 바꿀 책임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방식은 너무 달랐다. 독재와 군사 정치 아래 만들어진 헌법과 법률은 지킬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민주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결국 그 후에 모든 세대들에게까지 '법'이란 가끔은 어겨도 되는 것이란 시민 의식을 물려주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헬조선의 거리문화, 헬조선의 길거리는 바로 이런 문화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소위 말하는 고급 인력, 고급 교육을 받았지만 대학에서 학업을 열심히 한 세대는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소명이 민주주의라는 일념으로 학업에 전념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이 대기업과 경제 활동을 하게 되면서 한국 대기업은 민주적 문화도 아닌 예전 박통 시대의 전근세적인 문화도 아닌 특유의 문화가 발생했다. 최소한 그들이 대기업에 들어가 경제 일선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면, 자신들의 세대가 일을 할 수 있는 민주적 풍토라는 씨앗을 대기업에 심어야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길거리에 나가 시위를 하던 세대는 대기업의 차장, 부장 급으로 현재 일을 하면서 그들이 그렇게도 욕을 했던 박통 세대 노인네들을 닮아갔다. 앞으로는 민주주의를 외쳤지만, 그들의 인턴과 사원과 대리에게는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제대로된 Next를 만들기 전 외환위기가 터졌다. 지금도 486세대에게는 Next가 없다. 구태여 Next를 추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청년들에게 Next가 없다고 욕하는 그 세대들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창의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기업의 인적성 검사들을 살펴보면 소금물 농도를 푸는 중2 수준의 수학 문제들과 도형 자르기 문제 등이 나온다. 그게 그 세대의 수준이다. 지금 20대는 구태여 Next를 가지지 말아라 Now도 힘들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Next를 찾기 원한다면 다른 선진국으로 나가라 이 나라는 당신의 Next를 들을 사람도, 관심있는 사람도, 가능성도 기회도 없을 것이다. 한줄요약 : 금수저를 물고태어날 노력하지않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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