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나는 생각해본다. 내가 송중기나 박보검처럼 잘생긴 사람이었다면 여타 다름 SNS 관종들과 같이 행동을 하지 않았을까?
자아도취와 행복을 한것을 서로 증명하기 위한 일종의 콜로세움과 같은 SNS 홍수 속에서 당당히 위너의 자리에 올라가며 나 자신의 우월함을 뽐내기 위해 애쓰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조선인은 타인의 시선을 많이 신경 쓰는 편이다. 서양인보다 동양인이 주변 인간관계와 전체적 분위기에 많이 좌우된다고 하지만 전 세계 인터넷 보급률 1위에다 초등학교를 다니면 무조건 스마트폰을 써야지 따돌림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대한민국이란 사회에서는 유독 그런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대한민국이란 작은 울타리에서 지나치게 쓸데 없이 내부 경쟁이 치열하며 대한민국에서만 통용되는 성공의 룰을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국민이라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
훌륭한 프로그래머가 되려면, 훌륭한 과학자가 되려면, 훌륭한 음악가가 되려면, 언수외과탐이란 과목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야 한다. 참 웃기지 않은가? 그래서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의 학업성취 수준은 전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럴 수 밖에. 고등학교까지의 학업 성취 정도로 인생의 모든 것을 결정짓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러고선 그렇게 유능한 인재들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 60~70년대에 머물러 있는 그런 수준의 교육을 빠르고 폭넓게 이식 받고, 한 분야에만 해도 평생 배워도 모자랄 수준으로 방대해진 지식과 학업의 속도를 평생 따라가기에만 급급한 인재로 만들어낼 뿐이다 지금도 여전이 되풀이 중이다.
선진국인 사회 일수록 제너럴리스트보다 스페셜리스트가 대우 받는다. 전 세계의 학문의 한 뿌리, 한 마디가 이미 한 개인이 평생 배워도 못따라갈 정도로 방대해진 시대가 지금 21세기 이다. 그것을 우리 한국의 인재들은 이제 석박 마치고 그제서야 따라가려니 그게 되나? 공부도 스포츠와 비슷하다. 스포츠의 최전성기는 20대이다. 바둑도 이와 비슷하다. 계산력이 최정점에 이를 때가 20대이다. 학문에 있어서 최정점에 이룰 때가 3,40대다. 학문이란 세계는 10,20대 배운 모든 것을 쏟아부어 3,40대 성과를 내야 하는 곳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서야 회사에 들어가서, 유학을 가서 지금 최전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최첨단 기술을 그제서야 익히게 된다.
전 세계가 인정하는 천재들중에 따라다니는 공통점이 있다. 어렸을때부터 한, 두가지 분야에 엄청난 학습량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모차르트가 그랬고, 다빈치가 그랬고, 에디슨도 그랬고 포드도 그랬다.
모차르트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췄지만 그에 못지 않은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이 있었다. 다빈치는 유럽 특유의 도제시스템 하에서 그림에 필요한 기술을 20세 이전에 섭렵하고 의학,과학을 넘나들며 그의 재능을 뽐내었다. 포드와 에디슨은 어렸을때부터 기술쟁이로 자라온 사람들이다. 포드는 대학 문턱도 가지 않았다. 자동차로써 일평생을 일구어온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 굴러다니는 자동차의 가장 근접한 형태와 대량생산 체제를 완성시켜 놓았다.
이에 반면 우리나라에서 천재 타이틀을 얻기란 참 쉽다. 공부 좀 잘해서 서울대, 의대, 해외명문대 나와서 거기다 좀 이쁘고 잘생기기까지하면 좋다. 그래서 비싼값에 매스컴에 잘 팔리면 그것이 천재다. 20대 이전의 언수외탐 시험을 무지 잘쳐서 남들과의 경쟁에서 1등이란 타이틀을 얻은 자에게 천재란 타이틀을 선사해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선 천재가 해마다 약 1만명씩 나오는듯하다.
SNS의 등장 이후로 안그래도 관종이 많은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관종들이 더욱 득실되게 되버렸다. 자기가 맛있게 먹은거, 잘 보고 잘 입은거 하나 하나 모두에게 보여줘야만 직성이 풀리는..... 마치 그런 꼴을 보고 있으면 누가 누가 더 행복한가 SNS로 경쟁하는 것만 같다. 돈자랑, 얼굴자랑, 자식자랑. 한국에서 자랑이란 의미는 조선 반도란 이곳이 행복한 지상낙원이라 스스로 뽕을 놓고 있는 자신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