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s kitchen이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고든 램지(Gordon Ramsay)는
출연자들을 심하게 갈구고 욕하기로 유명합니다.
저는 이 글에서 그의 리더쉽을 한국인들의 권위주의와 한번 비교해보려고 합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대부분의 출연자들은 순순히 그를 존경하고 복종하지만,
드물게는 반항하거나 울거나 도전을 포기해버리는 출연자들도 나옵니다.
그에게 소송을 제기하는 도전자까지 나오기도 했지만,
신기하게도 대부분의 (?) 출연자들은 그를 존경하고 따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헬스키친을 보면서 느끼는 통쾌함이나 재미는 단순히 우리가 그 상황에
처해있지 않은 관찰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현실에 고든 램지와 같은 리더가 존재한다면 어떨까요..
자주는 아니지만 그와 같은 리더를 실제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런 종류의 리더쉽이란 군기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군대 같은 시스템에
가장 적합하겠지요.
외국에는 고든 램지를 비판하는 논객(?)도 등장하였다고 하지만,
시청자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고든 램지를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 듯 합니다.
아니, 그 프로가 유명해진 건 사람들이 고든 램지를 좋아하는 쪽에
가깝다고 봐야겠지요.
고든 램지 리더쉽의 장점이란 무엇일까요?
우선 상벌이 확실하다는 점을 들 수 있겠지요. 또한 그 이전에 그 자신의 호불호가 확실하기도 하고.. 자신의 대부분의 감정을 시원시원하게 표현합니다.
욕설과 거친 행동이 섞여나오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드물지만 간간히 엿볼 수 있는 그의 sweet한 면모를 통해 우리는 그가 거칠지만 나쁜 의도를 가지고 사람들을 갈구는 것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칭찬할 때 극히 논리적이고 절제된 어조로 표현하는 듯합니다. 특별히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개인적인 감정은 많이 절제되는 듯 합니다.
물론 분노나 공격성이 심하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항상 일관되게 보여주는 모습이기 때문에 당하는 입장에서 데미지가 덜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상벌이 확실하다, 거침없이 감정을 표현한다, 공명정대하다.. 등으로 그의 리더쉽을 축약해볼 수 있을까요?
사실 이런 리더야말로 찾아보면 드물지는 않을 겁니다. 그냥 단순하게 무서운 상사라고 한다면 위에 해당이 되는 걸까요?
하지만 저는 고든 램지의 장점과, 그의 행동이 주는 원인 모를 시원함에 또 다른 이유를 찾고 싶습니다.
실제로, 저는 저런 리더가 현실에 있다면 매우 이상적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그가 단순한 꼰대로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전혀 꼰대가 아닙니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자, 우리가 질색하는 꼰대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 어떤 사람이 꼰대가 될 수 있으려면 단순히 아랫사람을 갈구고, 노력을 하라고 쥐어짜고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이면에 어떤 불쾌한 감정을 동반시키는 능력이 있어야 꼰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불쾌함이냐면, 내가 너에게 명령하는 것이 너에게도 도움이 되거나, 우리의 공통적인 고상한 목적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거짓된 생각을 은연중에 주입시킴으로써, 적은 노력으로 상대방을 통제하여 착취하려는 비겁함입니다.
결정적으로 헬스 키친의 고든 램지에게는 그런 면이 없습니다.
시즌1에서 고든 램지가 손님과도 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고든 램지의 성질을 과장하느라고 연출된 장면이라는 말이 있는데, 시청자가 보기엔 주방장이 손님과 싸울 명분이나 이유가 어디 있는가 하는 의아함이 처음엔 들게 됩니다.
하지만 곧 고든 램지의 성질을 표현하는 그 장면마저 유머스럽게 여겨지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고든 램지의 성격상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그는 욕설과 갈굼으로 점철된 부정적인 이미지를 그 자신에게만 내면화한 페르소나를 가졌습니다.
즉, 내가 지금 너에게 욕을 하는 것은 지금 내가 열받아 죽겠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출연자들을 공평하게(?) 갈굽니다.
그는 심지어 인신공격이나 사람의 외모를 이용해서 욕을 만드는 짓도 서슴지 않습니다만, 그렇게 해도 생각보다 반항하는 출연자는 많지는 않습니다.
저는 군경같은 조직에 만일 이런 리더쉽이 있다면 정말 이상적일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사람이 너무 좋은 나머지 정말 진심으로 그를 쫓아다니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이 글을 쓰는 이유는 헬조선에는 이런 리더쉽을 가진 사람이 거의 없거나 혹은 '전혀' 찾아볼 수 없더라는 말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가 갈구는 내용이 논리적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헬조선식의 리더쉽을 봅시다. 헬조선식의 리더쉽이란 중상모략적이라는 말을 써서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아니, 사실은 리더쉽 자체가 부재합니다. 시스템을 위한 개들은 많습니다만..
고든 램지와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헬조선 리더들은 대개 성과주의에 충실하는 것이 너의 인생에도 도움이 될거라는 이상한 생각을 내면화한 자신의 정신상태를 부하에게 이식하려 합니다. 처음에는 좀 그럴싸하게도 들릴 수 있겠습니다만 얼마 못가 허점이 드러나게 됩니다.
여기서부터는 두가지 부류로 갈리게 됩니다. 무책임한 유형과 속물적인 유형입니다.
무책임한 유형이란, 자신의 인도나 갈굼이 실패한 경우 계속해서 인도적이라는 탈을 쓰고서 부하에게 검증되지 않은 실험적이고 이상한 미봉책을 가지고 사람을 개조시키려고 하는 경우입니다.
속물적인 유형이란, 금방 자신의 에고를 드러내고 너는 나에게 해주는 것이 없는 사람이고 너에게서 내가 취할 이득이 없으니 꺼지라는 식으로 행동하는 유형입니다.
나쁘기는 둘다 나쁘지만 굳이 말하자면 저는 속물적인 유형이 좀 더 낫다고 봅니다. 왜냐면 단기적으로는 속물적인 유형이 더 큰 피해를 주지만, 곧 그의 속성이 드러나게 때문에 빨리 떠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고든 램지도 속물적인 유형이 극화된 것으로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만, 그 자신을 거의 동물적인 이미지로 만드는 그에게는 그런 속물적인 유형의 꼰대를 뛰어넘는 단순성이 있습니다. 그 단순성은 고든 램지의 입장에서 일종의 희생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자기자신을 희화화시키는건 엄청나게 자기희생이 따르는 일입니다.
이런 리더는 부하들이 힘들때도 같이 고통스러워 합니다. 혼자서 편한 침대에 누워서 그 상황을 즐기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물론 헬스 키친은 참여하는 출연자들의 입장에서는 불쾌하기만 한 경험으로 기억될 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한번은 그런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 고든 램지 같은 캐릭터의 경우 그 고통이 최소화될 수 있어 보이는 것은 그가 꼰대들처럼 자신의 욕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투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요체는 제가 보기에는 그가 사용하는 언어와 표출되는 행동의 단순성에서 나옵니다. 그것은 온갖 견해와, 꾸밈이나 작위적인 친절, 미해결된 자신의 성격 결함을 타인에게 투사한 것에서 나온 쓸데없는 배려와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순수한 것입니다. 자기자신을 희화화시키는 희생성이 없으면 가능하지 않은 것이죠.
그것은 헬조선 꼰대들이 절대로 따라할 수 없고, 어설프게 흉내내려고도 해서는 안되는 리더쉽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물론, 이러한 인물들이 개인 단위로는 헬조선에도 존재하지만, 이런 인물이 헬조선에서 요직을 차지한 경우는 그야말로 드물 것이라고 예측해봅니다.
이런 가시돋힌 장미 같은 캐릭터 자체가 헬조선에서는 살아남기가 지극히 어렵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을 수는 있지만 위로 올라가기가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에 비하면 헬조선식의 권위주의란 매우 비겁한데, 일단은 복잡하고 임의적이고 변덕스럽게 제시되는(룰이 없다라는 표현이 맞겠지만) 온갖 갈굼과 쥐어짬이 있고, 그 다음에 이 모든 것들이 언젠가는 너의 인생에도 도움이 되는 경험으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약없고 무책임한 명분이 따라옵니다.
극단적인 예) 여직원을 성추행해 놓고, 상사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이 개인의 서비스 스킬을 늘리거나 사회생활 스킬이 늘어나서 당한 여직원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논리.
이러한 억압은 시스템에 의한 일회적인 억압이 아니라서, 한 개인이 상대하는 갑을 만날 때마다 무한정으로 증폭되는 경향이 있는 것이 바로 헬조선의 현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