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한국의 선비문화는 학문을 이용해왔다.

나는 한국의 문제가 자본주의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그보다는 훨씬 심원한 문제이다.

 

단지 천박한 자본주의의 문제였다면 이렇게까지 풀기 어렵고 복잡한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한국의 한계는 한국의 문화 자체가 무질서, 무정체, 모호함으로

대변되면서 실질적으로는 권위주의를 따르고 있는 것과 관련있다.

그 기저에는 왜곡된 선비문화가 있다.

 

권위주의는 박정희 정권 하에서는 반공주의의 형태를 취했는데,

반공주의는 하나의 사상이 될수는 없다.

반공주의는 공산주의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무엇에 반대한다는 것이 하나의 사상이 될 수 있는가?

 

차라리 실질적으로 기독교 문화에 의존하고 있던 것을 인정하고

대놓고 노골적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했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연히 그건 불가능했다.

그러기에는 국민들이 지식을 숭상하는 선비 문화에 젖어있다.

 

그럼 선비 문화 자체가 학문 자체를 입신양명이나 권력에 이르는 사다리,

혹은 산업발전의 기반 등으로 왜곡시키지 않고

학문 자체를 위한 학문을 했어야 하는데,

또 그렇게까지는 순수하지 않다는게 한국의 선비 문화의 특성이다.

 

한국의 문화는 학문을 숭상하면서도 이상하게 학문의 본질을 왜곡시켜버린다.

 

언제나 그것은 무언가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또는 그렇지 않으면 반대로 극단적인 형이상학에만 치우친다.

이것이 조선조 역사에서도 드러난다.

 

일본의 어떤 여자는 한국이라는 나라 전체가

'여성모드'의 분위기 속에 있다고 표현했다.

 

절묘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 여성모드라는 표현은

단순히 한국의 여성들이 남성들을 누르거나 기가 세다는 말이 아니다.

남녀갈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한국의 개별 여자들이 개별 남자들보다 기가 세다는 뜻으로 쓴 것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일본여자가 여성모드라는 단어를 선별한 데는 무의식적으로는 좀더 중요한 원인이 있다.

 

이것은 한국의 모든 사람들이 여성적 정체성의 페르소나(가면)를 쓰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것과 대칭되는 남성적 페르소나는 어디에 있는가?

 

전체 시스템이다. 말하자면 국가라고도 할 수 있지만 국가라기보다는

뿌리깊은 권위주의적인 분위기 그 자체를 말한다.

 

한국에서는 하다못해 편의점 알바를 하더라도 권위주의적인 말투를 사용하면

손님마저 고분고분해진다. 아주아주 희한한(?) 현상이다.

 

이러한 권위는 심지어는 체격의 크고 작음에서 나오는 것조차도 아니다. 그것은 전체적인 시스템을 아우르는 어떤 분위기 속에서 나온다.

물론 한국인들도 최후까지 가면 육탄전을 벌인다.

 

하지만 최초 싸움의 시작은 누가 경우가 없는 행동을 먼저 시작했는가이다. 누가 더 교양이 있는가 없는가를 의식하는 말싸움이 시작된다.

 

한국인의 무의식을 분석해보면,

이 권위주의 패러다임의 내부적인 결속은 지식의 많고 적음에 대한 우월감과 열등감에 의해 유지되는데 이는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이 계몽주의적인 방식으로

통합되어 있음을 뜻한다.

 

한국의 교육열과 학문에 대한 숭상과 제도가 빚어낸 현상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한국은 학문을 고작 단지 권력을 쥐어주기 위한

사다리 정도로 격하시킴으로써 학문 자체를 욕되게 했다.

 

그런데 이것 자체가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다.

비극은 어디서 또 일어났느냐 하면

그나마 학문에 의한 서열세우기도 공정하지가 않았다는 것이다.

공정하면 불만이 있을 수 없으나 그마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청년층이 무너진 건 이것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과도한 경쟁 때문인 것은 절대로 아니다.

경쟁이 문제가 아니라 공정하지 못한 경쟁이 문제다.

 

청년층이 힘들어하는 것이 과도한 경쟁 때문이라고 말하는건 

청년층을 두번 욕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나약하지 않다.

 

경쟁 자체가 도대체 그렇게까지 문제가 될 이유가 있는가?

경쟁 그 자체가 신경증이나 정신병을 유발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야생의 동물들은 모두 신경증이나 우울증을 앓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된다.

 

경쟁은 공정함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과도한 경쟁 그 자체는 몰락의 원인이 될 수 없다.

경쟁은 인류 역사 이래 늘 있어왔다.

 

법치주의가 국민 정서상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성별과 지위, 나이를 불문한 모든 사람들이 링 위에 올라가

아무런 룰도 없이, 그나마 도덕적이던 사람들 마저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분위기 속에서 끝도없이 치고 받는 카오스가 바로 한국의 경쟁이다.

 

경쟁은 있되 룰이 없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취업되지 않고,

족보를 못구해서 학점이 낮고,

술을 못마셔서 상사에게 미운털이 박히고,

오로지 성과주의와 통계주의에 의해 실력이 평가된다.

 

한국인에게 객관적인 것은 숫자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헬조선의 경쟁이다.

내가 이것을 체감한 것은 최초의 물수능 학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수를 안했던 것이 나 자신에게 가장 미안한 선택이 될줄은 몰랐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에서 탈락했는데,

그것을 가족들에게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청년층의 슬픔이다.

심지어는 그나마 자기 자신조차도 왜 탈락했는지 모른다.

 

그것은 '노오력'의 부족과는 정말로 상관이 없다..

 

우파들이 저지른 죄악은 학문을 고작 입신양명의 사다리용으로 격하시키고, 그 자신이 무력에 의해 정권을 잡아서 학문적 기반에 대해 콤플렉스를 갖게 됨으로써, 교육 제도와 경쟁 시스템을 망쳐버린 것이다.

 

좌파들이 저지른 죄악은 경쟁 그 자체를 악마화한 것이다.

 

 

왠지 진짜로 전쟁이 나지 않으면 여기에서 탈출하는 그림이 그려지지가 않는다는게 요즘의 암울한 분위기다.

 

만일 내가 신이라면,

한국에 전면전이나 핵전쟁이 아닌

국지전, 재래식 전쟁을 일으키는 충격요법을 써서 한국을 구원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