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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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있습니다.

 

  안노 히데아키의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이하 <나디아>)는 많은 부분 미야자키 하야오의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이미지들을 인용하지만, 그에 비해 (TV 시리즈이므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영화적으로도 느슨하기 짝이 없고 서사의 밀도도 떨어진다. 하지만 일본의 과거사를 말하는 데 있어서만큼은 히데아키가 하야오보다 과감하다. <나디아> 1화의 오프닝 신에서 감독은 19세기 후반에 불었던 제국주의 바람과, 그것이 몰고 올 전쟁의 기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은 아무래도 일본 제국의 위치에 있을 것인데,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미국 등과 달리 일본의 경우 작품 안에서 직접적으로 호명되지 않는 것을 보면 일단은 제국의 대열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장이 비행 대회를 포기하고 나디아를 구하러 가는 신에, 장이 활주로에 서서 비행을 준비하던 일본인을 넘어뜨리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제국의 대열에 일본을 포함시키지는 않았지만, 굳이 일본인이 등장하는 장면을 끼워넣음으로써 히데아키는 이것이 일본과 무관한 이야기가 아님을 암시한 것이다.

 

  한편, <나디아>에는 근대 과학을 바라보는 두 개의 상반된 시선이 등장한다. 그 시선은, 하나는 과학 일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나디아의 시선이고, 다른 하나는 과학의 힘을 동경하는 장의 시선이다. 나디아는 아프리카인으로 근대 과학을 앞세운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침략과 수탈을 겪었고, 장은 프랑스인으로 수탈의 경험 없이 과학이 주는 혜택만을 누렸으니, 과학이라는 공통의 화두에 대해 둘이 이 같은 시선차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초반에 보이는 이 둘의 첨예한 대립은 '과학은 무조건 나쁜 것도, 그렇다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닌,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달려 있는 것'으로 타협하는 선에서 무마된다. 이 타협은 장과 나디아가 노틸러스 호의 일원이 되어 가피쉬를 추격하는 과정 중에 이루어지는데, 이는 노틸러스 호와 가피쉬의 추격전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노틸러스 호는 미래 과학의 힘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가피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노틸러스 호와 가피쉬가 앙숙처럼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은, 노틸러스 호는 과학을 선한 의지를 가지고 부리는 네모 선장의 지휘에, 가피쉬는 그것을 악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가고일의 지휘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학을 멸시하던 나디아와 과학을 동경하던 장의 대립은, 그들이 노틸러스 호를 타고 가피쉬를 추격하는 과정에서 타협점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좋거나 나쁜 것은 과학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지라는 <나디아>의 결론은 결코 새롭지 않다. 그것은 '인터넷은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혁명일 수도 낭비일 수도 있다'거나 'TV는 그것이 무엇을 보여 주느냐에 따라 그것이 지니는 의미가 달라진다'는 식의 우리가 흔히 했던 말의 반복에 불과하다. 다만, 시리즈 초반에 일본 제국에 대해 언급한 부분과 맞물려서 일본의 과거사를 소재로 펼치는 안노 히데아키의 환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나디아>의 결론에 의미를 두고 싶다.

 

  <나디아>를 보면서 내내 궁금했던 것은 왜 하필 감독이 그 배경이 되는 시간을 1889년으로 정했을까 하는 것이었다. 1889년은 카메라까지 갖다 대고 들여다보기에는 아무래도 좀 애매한 구석이 있는 시간이다. 서구의 역사에서 1889년은 산업 혁명이 한창이었던 1800년대 초반과, 두 번의 세계 대전이 있었던 1900년대 초반의 사이에 끼어 있다. 일본의 역사에서도 1889년은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1866년과 일본인들에게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안겨 준 1945년 사이에 애매하게 놓여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렇다고 영화화할 만큼 특별한 사건이 있었다고는 할 수 없는, 1889년은 서구의 역사에서도 일본의 역사에서도, 단지 제국주의 시기 한복판에 놓인 그저 그런 평범한 해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히데아키가 1889년에 카메라를 갖다 댄 이유는? 그 답을 찾기에 앞서 다른 이야기를 먼저 해 보자.

 

  하야오의 작품에서나 히데아키의 <나디아>에서나 남자 주인공들은 과학을 동경하고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때로는 직접 비행기를 만드는 데 뛰어들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은 자신이 만든 1, 2인용 수준의 작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다가 머리 위로 지나가는 거대한 전함을 보고 왠지 모를 불길한 기운을 느낀다.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야오와 히데아키, 그리고 8, 90년대를 살아가던 대부분의 일본인들이 가졌을 과학에 대한 이중적 감정. 그것은 과학에 대한 동경과 두려움이다. 그들이 이처럼 과학에 대한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갖게 된 것은 아마도 80년대 첨단 과학 기술로 국가 경제를 일으켰지만, 한편으로 40년대에는 전쟁과 피폭으로, 60년대에는 환경 오염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고도의 과학 기술이 만들어 낸 양극단을 경험하게 되면서 히데아키는 그 시작점, 즉 근대 과학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기를 떠올렸던 것 같다. 그 시기가 바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근대 국가의 모습을 갖추어 가던 1800년대 후반이고, 이것이 <나디아>에서는 1889년으로 구체화된 것이다. 어쩌면 히데아키는, 일본이 근대 과학을 통해 하늘을 날고자 하는 인류의 소박한 꿈을 이루는 데에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힘으로 대전쟁을 일으키고 세계를 정복하는 제국주의 국가로 발돋움할 것인가의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던 시기, 그러나 불행히도 후자를 선택하고 만 바로 그 시기, 1889년으로 돌아가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과학을 선한 목적으로 사용함으로써, 그것을 악용한 결과로서의 1945년의 전쟁을 막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나디아>는 현재의 전쟁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 역사를 다시 쓰고자 하는 히데아키의 이룰 수 없는 꿈을 담은 작품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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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에서 일본인이 자신의 비행 순서를 기다리다가 날벼락을 맞는 모습. <나디아>가 19, 20세기의 일본과 무관하지 않음을 암시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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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의 모자에는 가고일의 것과 유사한 문양이 그려져 있다. 과학 기술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장은 네모가 될 수도 있고 가고일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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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모가 마지막 출정을 하는 곳은 일본의 시즈오카다. 히데아키가 1889년으로 돌아간 것은 가고일이 돼 버린 일본을 네모로 바꾸고 싶어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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