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개로 길러진 아이
소제목 - 사랑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희망을 보여 준 아이들
저자 - 브루스.D.페리 , 마이아 샬라비츠
옮김 - 황정아
이 책을 보고 이제 사랑에 대해 정의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책 내용은 아닙니다)
사랑이란 감정적, 현실적, 스트레스를 합리적인 방향으로 처리할 수 있게
도와주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머니가 아이가 울 때 기저귀를 갈아주거나(현실적 스트레스의 해소)
불안해서 울 때 안아주거나(안전한 상황인걸 스퀸십으로 알려줌)
하는 행위를 부모의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죠.
예수나 붓다같은 분들의 사랑은 전인류에 대한 삶과 죽음의 스트래스
해소의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구요.
그리고 이런 반복 패턴이 마치 반복 운동으로 근육이 생기듯이
뇌가 학습한다는 것이죠. 유아기부터 뇌에 적절한 자극(스트레스)과
해소를 반복해서 뇌의 필요한 근육이 형성된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런 측면에서 어릴 때 아이가 울 때 아이가 원하는 행위를 적절히 해주고
안도감을 느끼게 해주면 커뮤니케이션 체계가 형성이 되서
아이도 어린이 보기에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덜느끼게 되다고 하네요.
반대로, 아이의 우는 행위에 제대로 대응을 못하거나, 방치하면
역으로 아이가 시도때도 없이 운다고 어른 입장에서 느끼게 되거나,
심하면 아이가 커뮤니케이션을 아예 포기해서 아이를 칼로 찔러도
아무 반응도 없게 될수도 있다고 하네요.
제 부모님을 평가해 보자면 아비저는 소시오패스까진 아니어도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에 행복한 감정을 못느끼는 분이셨고
어머니는 실제적으로 일이 잘 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타인이
인정을 하냐, 아니면 화를 내냐에 가치를 두는 분이셨죠. 이것도
자신의 세계에서 가치전도가 상당히 되어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외가쪽을 본다면 할아버진 잘 모르겠고 할머니가 비약해서 말하자면
소시오패스적인 기질이 있으신 분이셨고, 친가쪽은 할머닌 그저
자녀를 사랑하는 분이셨는데 할아버지가 가족을 버린 바람둥이였습니다.
따라서 아버진 감정이 따듯한 아버지가 어떻게 하는지 학습을 못하셨다고
생각이 되네요. 그런 이유에서인지 저를 철저히 방임하시고
상명하복이 안된다고 느끼실때만 크게 화를 내셨죠.
어머닌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학습지, 과외, 학원, 삶의 방향)에
심하게 집착하셨죠. 그중에 남들이 제 행동이나 삶의 방향이
괜찮지 않냐라는 주위의 의문은 무시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당시를 생각해보면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고 스스로의 감정적으로
좋게 느껴지시는걸 선택하셨다고 생각이 되네요.
어머니께 들은 말로는 유아기 때 제가 '착하고 조용한' 아이였다는군요.
어머니 역시 할머니께 어릴 때부터 스퀸쉽이나 유아적 커뮤니케이션을
의미있게 받지 못하셔서 저 역시 그렇게 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완전히는 아니어도 유아적 입장에서의 커뮤니케이션을 일정 포기하는 데에서
안정을 찾는 기제가 발달해간게 아닐까 십네요.
책에선 옛날 미국의 대가족에서 실제로 아이를 돌보는건 네다섯명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엄마가 일하러 가거나 하면 할머니나 고모가
돌보아주는 식이죠. 이런 경우 커서도 사람을 보면 친근감이 들게
된다고 합니다.
한데 저는 흔히 얘기하는 착한 아이로 7세 미만 때 스스로 친구를 찾아
지내지도 않고 때쓰는 것도 없는 그냥 보육교사나 유치원 선생 말잘듣는
아이였거든요. 그 이후에도 항상 사람들하고 지내고 싶지 않은데 학교엔
가야하니 어떻게 하면 무리에서 소외당하지 않을까가 지상 과제였던거
같습니다. 대부분 결과도 심하게 안좋았죠.
책에선 사람하고 관계를 맺는 커뮤니케이션 기술(시각적, 감정적, 언어적으로)
이 역시 어릴 때 많이 형성되어 책에서 나온 문제아동의 경우
저와 비슷하게 치료를 통해서 호전이 되었지만 머리로는 사람과의 관례를
이해해도 그 안에서의 안도감이나 따뜻한 감정을 이해하기는 어려웠다고 하네요.
책에서 나오듯 마국만 해도 인과관계 없는, 단기간에 어른이 보기에 효과를
볼 수 있는 아동교육법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거의 고문에 가까운거죠. 현재 미국의 사회불평등이 저런 것도 대가족 해체에
따른 사랑이란 감정의 가치전도에 원인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대가족 속에서도 그 안의 구성원의 가치관이 어떻느냐에 따라
달라지는거겠습니다만.
헬조선에서는 그놈의 유교때문에 '상명하복'이 사랑의 가치가 되어버린거같아요.
제가 더 말 안해도 이해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정말
답도 없습니다. 지시를 내려주는 사람이 없으면 불안하고, 지시를 따라는데서
안정감이 오고 잘못은 상명하복 안한데서 생기고.
이게 뭡니까? 써놓고 보니까 딱 군대네요. 한국 공동체의 가치는 군대입니다.
이럴진데 그곳에 사는 개인의 인생과 감정이 주체적으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리 만무하죠. 그저 남따라 왔다갔다 하다 사회에서 버려지면 쫑나는거겠죠.
여튼 책은 400여 페이지에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환경의 아이들이
심리학적으로 치유되는 과정이 실려있습니다.
미국이라 그런지 감추지 않고 확실하게 표현하는게 좋았죠.
할아버지가 여러 단체에 홀로 남은 손주 키우는데 도움을 요청해도
답이 없어 자신의 직업이 개사육사인지라 다른 개들과 같이 키운다거나
어머니가 주위의 관심을 받으려고 자녀들을 일부러 아프게, 혹은 살해한다거나
(자녀를 5명씩 살해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3살이었느지, 4살이었는지 튜브로 음식물을 쏟아넣어도 체중이 안오르는
극저체중의 아이가 보모가 스퀸십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주자
급격히 체중이 오른다거나 하는 경우 등..
저에겐 제 과거를 이해할 단서를 제공해주는 가히 인생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병리학적 글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주체적 관계 측면에서
피해 아이에게 항상 자율권을 주고 인간의 여러 감정과 복잡한 인간관계 속에서
아이에게 필요한 뇌적, 사회적 능력을 고민하는 저자에게 깊은 존경심을
느겼습니다.
뭐 헬센징이라면 이런 제 글을 보고 '니가 부모가 되보면 어쩌구저쩌구'
하겠습니다만 그런 사람들에겐 '당신의 뇌가 상명하복을 했을 때 안도감을 주는
호르몬이 나오도록 패턴화되어 있다.' 라고 말해줄 수 있겠네요.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