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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 전국 시대 정치가의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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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은 재상으로 있으면서 통치집단 내부의 암흑, 정치문란, 민중들의 무법, 불법비리 등 범국가적인 혼란에 맞서 먼저 국가질서를 정돈하는 일부터 손을 댔다. 법규와 제도를 건전하게 다듬고 통치기구의 등급을 제대로 갖추었으며, 각종 법률조항을 형정(刑鼎)에다 새겨 전국에 반포했다(이는 아마 중국 최초의 성문법이 될 것이다). 각종 엄격한 제도를 실행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줄곧 혼란 속에 빠져 허우적대던 정나라에서 이런 조치는 결코 순조롭지 못했다. 백성들은 원망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냈고, 심지어는 노래까지 만들어 자산을 저주했다. 그러나 자산은 나라를 잘 다스렸다. 시정개혁을 굳세게 밀고 나갔다. 그리하여 3∼5년 사이에 정나라의 정치는 큰 효과를 보게 되었고, 백성들은 다시 노래를 지어 자산을 칭송했다.
자산은 이렇게 엄격한 정책을 밀고 나가는 동시에 민심과 정치적 관용도 중시했다. 정나라에는 '향교(鄕校)'라 부르는 교육기구가 있었다. 이 기구는 원래 통치계급 중 하층 대부(大夫)나 사(士) 등 지방귀족을 교육시키기 위해 설치한 것인데,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활동의 장소로 변질되어 당파를 짓고 폭동을 일으키는 일까지 발생했다. 자산의 아버지 자국(子國)은 이 폭동의 와중에서 피살되었다.
대부 연명(然明)은 자산도 아버지처럼 해를 당할까 걱정이 되어 자산에게 향교를 없애자고 건의했다. 자산은 그 건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왜 향교를 없애려 하는가? 조만간 그곳에 모여 권력을 쥔 사람들의 장단점을 논의할 텐데. 그들이 칭찬하는 점은 계속 유지하고 비판하는 점은 고치면 될 터이니, 그곳이 바로 우리의 스승이 될 것이다.
충성스럽게 백성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 백성의 원성도 줄어들 것이다. 위엄과 사나움만 가지고는 원망을 막을 수 없다. 사람은 누구든지 비난을 받으면 그것을 하루 빨리 제지하려 한다. 그러나 이는 마치 넘치는 홍수를 막으려는 것과 같다. 홍수로 인한 피해는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여 어찌해볼 수가 없다. 제방을 터서 물길을 다른 곳으로 흐르게 하느니만 못 하다. 향교를 남겨두는 것은 사람들의 논의를 듣는 것 자체가 좋은 약으로 병을 낫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로써 연명은 자산이 큰 일을 해낼 것이라 믿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공자는 "자산더러 어질지 못하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나는 그자의 이야기를 믿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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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조선 정치가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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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7070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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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 사쓰가 미개한 둠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