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육헬윤회
15.10.09
조회 수 366
추천 수 5
댓글 10








한국에서는 권한과 책임이 반비례한다. 필연적으로, 책임지지 않은 권한에 의해 피해를 받는 사람이 생겨난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들의 나라 같으면, 이런 경우 사회나 정부가 피해를 보상하고, 다음부터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책임의 한계를 명확하게 하는 쪽으로 의견이 수렴되나, 한국은 달리 헬인 것이 아니다. 면책의 문화가 만연한 군집에서는 먹튀가 최선의 전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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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로 인해 생긴 사회적 불균형은,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되는데, 피해자들을 욕하면 된다. 국민학교때부터 다들 경험했을 것이다. 새로운 담임이 꼭 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물건 잃어버리지 않게 단디 간수하라고. 맞는 말이긴 한데, 실재 도난사건이 발생했을 때, 범인을 잡는 것보다 피해자 비난에 더 열을 올리는 경우가 있었다. 자기가 학기 초에 했던 말을 근거 삼아서. 한국인은 피해자를 욕하는 버릇을 이렇게 교육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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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보수라고 불리는 쪽에서 피해자를 비난에 열을 올린다면, 진보쪽에서도 한 대 더 쳐야 헬이다. 한쪽이라도 제정신이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는다. 진보쪽에서 주로 쓰는 방법은 마법단어는 용서이다. “왜 당신은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는 못된 피해자인가요?” 보통 이런 강요를 받는 사람들은 약자이다. 원래 동등한 입장에 있었다가 털렸기 때문에 피해자가 된 사람들도, 피해를 입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결국에는 용서와 화해를 강요받는 약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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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갈등을 화해와 용서로 봉합하고, 미래로 나아가자. 과거의 일은 잊자라는 말을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어떤 사법 체계도 미래의 일을 처벌할 수는 없고, 현재의 적분은 0이다. 그런데 과거마저 처벌할 수 없으니, 화해와 용서는 사법체계를 부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사법이 작동하지 않을 것이므로, 입법도 의미가 없다. 따라서 정상사고가 가능한 사람들은 책임의 한계가 명확하게 입법되도록 노력하는 대신에, 자녀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억울하면 출세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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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화해와 용서가 스스로 일종의 프로토콜을 형성한다. 예의와 태도이다. 이제 한국 사회에는 피해자들이 갖추어야 할 예의와 태도가 있다. 입법과 사법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작동하는 것은, 벌거벗은 강제력, 행정뿐이다. 행정부가 정해주는 피해보상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피해를 보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 심지어는 자기가 받는 피해를 이야기하는 것 마저, 피해자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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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중립적인 사람들이 보여주어야 하는 행동 또한 정해져있다. 중립적인 관점에서 피해자들의 잘못을 들추어 내고, 중립적인 관점에서 그들을 비난한다. 약자니까, 그들은 두렵지 않으니까, 그래서 니가 어쩔껀데? 그리고 피해자들이 하는 행동 역시 비슷하다. 서로를 비난한다. 그 피해자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노력을 통해서 구원받는 곳이, 지옥이 아닌, 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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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침묘
    15.10.09
    이 화해와 용서의 프로토콜은 학창시절 때 보면, 같이 친하게 노는 친구 그룹안에서 조차도 유용하게 악용되죠. 꼭 실컷 놀리고 괴롭히다가 일정 수위를 넘어섰다 생각되면 "알았아,알았다. 고마하자. 장난이었데이~"하고 얼른 봉합들어가는 친구들 있죠. 이 쪽에서는 더 이상 그러지마라는 확답 받아내려고 추궁을하면 "너 아직까지 그거가지고 꽁해있냐? 지나간 일 아니냐?"며 과거를 버리고 진취적인 미래를 바라보길 강요.
  • 그 진취적 미래라는 게, 현실이 반복되는 미래를 말하는 거죠.

    틀린 말은 아닙니다.
    진취라는 말이 나아가서 take하다라는 뜻이니까요.
    한 발 앞서 나아가, 호구를 취한거죠.

    옆에서도 화해하라고 지랄합니다.
    사회 전체가 양심이 마비되었어요.
  • 불침묘
    15.10.09
    오오, 추가댓글 쓰고있는동안 답글을 써주셨네요. 네,맞습니다. 무한루프를 걸기위한 사기적인 수사표현이죠. '진취적 미래'란 수사표현.
  • 불침묘
    15.10.09
    이런건 '일진과 왕따'같은 극단적으로 다른 그룹사이에서가 아니라 보편적인 같이 노는 '친구패'사이에서 일어나는데, 이 상대적으로 평등한 친구들 사이에서 조차도 여론주도능력에서 권력의 강자와 약자가 나뉘죠. 여론주도자와 여론수용자로. 입담이 좋은 강자가 여론을 주도하니, 자신의 행동을 '친구사이에 할 수 있는 가벼운 장난'으로 수위를 규정하는 것도 자기몫이고, 미안하단듯이 한번 씩~웃고는 "알았다,고마할게,장난이데이~"하며 화해하는 타이밍 정하는 것도 자기몫이며, 이제는 상대방이 '쿨하게'잊어버릴지 말지를 정하는 것도 자기몫이죠. 이 일련의 프로토콜에서 반항하면 같으 노는 친구그룹에서 '꿍한 쫌생이'가 됩니다. 그러나 반항하지 않으면 이 루프를 무한반복하며 고통받게 됩니다.
  • 사실 청소년기는 좀 특수한 구석이 있긴 합니다. 청소년 왕따 문제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기도 해서 헬조선·탈조선의 근거로는 좀 부족하기는 하지요.

    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은,
    성숙한 사회에서는 성인은 그런 짓을 하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성인들도 왕따를 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의 비열한 행위를 사회생활 잘 하네 하면서 격려하지요.
  • 불침묘
    15.10.09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껀, 이 '화해와 용서의 프로토콜'은 일진과 왕따같이 대놓고 폭력과 억압으로 상호관계를 맺는 사이보단 표면적으로는 평등해보이는 친구사이의 상호관계에서 훨씬 교묘하고 은밀한 형태로 악용된다는 점입니다. 우리사회 역시 어쨌든 간판을 내걸고 있긴 민주공화국이고 법치국가이니. 로마귀족이 갈리아에서 잡혀온 노예대하듯, 일진이 왕따한테 그러는거처럼 벌거벗은 적나라한 폭력으로 강자가 약자를 대하긴 힘들죠. 어쨌든 강자가 법을 지키는 척도 해주고 약자를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 대해줘야 하는건데. 그렇게 약자를 같은 그룹의 친구처럼 대해주면서 은밀하게 진행할 수 있는 억압과 착취가 바로 이 글쓰이께서 지적하신 '화해와 용서의 프로토콜'인 것 같습니다.
  • 그런 걸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용서와 화해에는 전제 조건이 있지요. 가해자의 뉘우침과 사죄입니다. 그리고 해당될 때는 보상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생략된 채 용서와 화해가 강요되지요.
    말씀하신 것과 같은 기작인 것 같습니다.
  • 서로 양보하라면서 노비들만 양보해야하는.
  • 윤승찬
    15.10.09
    정말 개념 글이네요.. 새누리당 개같은 놈들과 그리고 그런 놈들을 뽑아주는 대다수의 사람들 보며 이 글이 거의 정답이란 생각이 드네요..
  • 개념글이 감춰져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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