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권한과 책임이 반비례한다. 필연적으로, 책임지지 않은 권한에 의해 피해를 받는 사람이 생겨난다. 정신이 똑바로 박힌 사람들의 나라 같으면, 이런 경우 사회나 정부가 피해를 보상하고, 다음부터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책임의 한계를 명확하게 하는 쪽으로 의견이 수렴되나, 한국은 달리 헬인 것이 아니다. 면책의 문화가 만연한 군집에서는 먹튀가 최선의 전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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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로 인해 생긴 사회적 불균형은,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되는데, 피해자들을 욕하면 된다. 국민학교때부터 다들 경험했을 것이다. 새로운 담임이 꼭 하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물건 잃어버리지 않게 단디 간수하라고. 맞는 말이긴 한데, 실재 도난사건이 발생했을 때, 범인을 잡는 것보다 피해자 비난에 더 열을 올리는 경우가 있었다. 자기가 학기 초에 했던 말을 근거 삼아서. 한국인은 피해자를 욕하는 버릇을 이렇게 교육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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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보수라고 불리는 쪽에서 피해자를 비난에 열을 올린다면, 진보쪽에서도 한 대 더 쳐야 헬이다. 한쪽이라도 제정신이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는다. 진보쪽에서 주로 쓰는 방법은 마법단어는 용서이다. “왜 당신은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는 못된 피해자인가요?” 보통 이런 강요를 받는 사람들은 약자이다. 원래 동등한 입장에 있었다가 털렸기 때문에 피해자가 된 사람들도, 피해를 입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결국에는 용서와 화해를 강요받는 약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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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갈등을 화해와 용서로 봉합하고, 미래로 나아가자. 과거의 일은 잊자라는 말을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어떤 사법 체계도 미래의 일을 처벌할 수는 없고, 현재의 적분은 0이다. 그런데 과거마저 처벌할 수 없으니, 화해와 용서는 사법체계를 부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 사법이 작동하지 않을 것이므로, 입법도 의미가 없다. 따라서 정상사고가 가능한 사람들은 책임의 한계가 명확하게 입법되도록 노력하는 대신에, 자녀들에게 이렇게 가르친다. “억울하면 출세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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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화해와 용서가 스스로 일종의 프로토콜을 형성한다. 예의와 태도이다. 이제 한국 사회에는 피해자들이 갖추어야 할 예의와 태도가 있다. 입법과 사법이 작동하지 않는 상태에서 유일하게 작동하는 것은, 벌거벗은 강제력, 행정뿐이다. 행정부가 정해주는 피해보상을 감사히 받아들이고, 피해를 보지 않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어서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 심지어는 자기가 받는 피해를 이야기하는 것 마저, 피해자들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 수 있으므로,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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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도 가해자도 아닌 중립적인 사람들이 보여주어야 하는 행동 또한 정해져있다. 중립적인 관점에서 피해자들의 잘못을 들추어 내고, 중립적인 관점에서 그들을 비난한다. 약자니까, 그들은 두렵지 않으니까, 그래서 니가 어쩔껀데? 그리고 피해자들이 하는 행동 역시 비슷하다. 서로를 비난한다. 그 피해자는, 사회가 아니라, 개인의 노력을 통해서 구원받는 곳이, 지옥이 아닌, 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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