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라 자취집에서 간만에 본가로 내려갔습니다. 뭐 친척들 얼굴 간만에 볼겸 내려갔는데... 반가운 인사를 하고나서 얼마 안되고... 절을 할 때마다 주변에서 "누구 어디 대학 갔다, 어디 과로 갔다." 이런 얘기들을 하더군요. 그래도 이 과정에서는 칭찬할 사람에게 칭찬하는 말만 있었습니다. 까는 건 없었어요.
절을 끝내고 식사를 하는 도중, 사촌들에게 "니 어디 대학 갔나?" 라는 질문들이 다소 나오더군요. 다행히 사촌은 지방국립 경영학과로 입학 성공해서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애가 원래 어릴 때 축구를 하다가 도중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해 그만두고 공부의 길을 걸었는데 잘 되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아버지와 돌아갈 때였습니다. 그러면서 아버지께서 "걔(사촌)도 지방국립으로 입학 성공했는데 니가 머리가 좋은데도 노력을 안했으니 이렇게 된거 아니냐." 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잖아도 노력을 안했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은근히 짜증이 나서 그런지 저는 "노력을 안해서가 아니라 노력에 대한 성과가 없었던 거죠. 왜 계속 제게 노력을 안했다고 하세요?" 라고 답했습니다. 사실... 맞는 점도 있어요. 고등학교 2~3학년 동안은 왕따 문제(심지어 제 목에 커터칼을 겨눈 새끼도 있었습니다.),학교 및 집안에서의 성적에 관한 심한 압박으로 인해 실의에 빠져 공부에 의욕을 잃었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 노력하긴 했지만 제대로 하진 않았죠. 결국 전 지금 4등급 지방대에 재학 중입니다... 그래도 지금 대학에 만족하고 생활 그런대로 잘하고 있습니다.
고2~고3 기간에 오히려 의욕을 잃어버려 노력이 소홀했던 점은 분명 제가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지금 대학교 생활 포함해서 그 2년시기만 빼면 전 공부는 성실히 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머리가 좋은데 노력이 부족했다고 하시지만 제 과정은 그 반대였습니다. 중학생때도 전교 10~15등권과 비슷하거나 더 많은 노력을 했는데도 전교 25~40등을 맴돌았고, 운좋게 외고입학에 성공했지만 거기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최고가 7등급이었습니다. 그래도 외고라 해서 더 질 좋은 교육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교사진의 경우 낙하산들이 많아 교사들 인성과 실력 모두 폐급이었습니다. 들어갈 땐 힘들게 들어갔는데... 심지어 몇 달 동안 하루에 1~2시간만 자면서 생활하기도 했는데... 이게 노력의 성과인가 싶었습니다. 한 마디로 사기당했습니다.
중요한 2년동안 역으로 노력이 소홀한 건 제가 잘못되었고 그것에 대한 대가는 받아야 한다는거 저도 압니다. 다만... 그렇다고 무조건 노력을 안해서 이렇게 됬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데 왠지 그게 저의 그 2년 기간을 제외한 여태까지의 노력까지 짓밟는거 같습니다, 근데 이건 단순히 제 생각일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머리가 좋다라... 생각이 깊고 상상력이 풍부한 건 맞지만 그것마저도 평상시 습관처럼 그런 행동들을 했기 때문이고 대학공부 이전의 입시공부는 확실히 노력대비 성과가 적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가 좋은데 노력을 안해서' 라는 말은 저로서는 동의를 할 수 없습니다.
뭐 일단 제가 아버지께 그렇게 답변했더니 아버지께서는 "노력을 안했다는게 아니라 닌 마음먹고 하면 잘 할수 있다는 말이었다." 라고 하셨습니다. 잘 하라는 의도라고 믿지만 한편으로는 열심히 해라는 뜻의 말씀을 하시는 대신 굳이 노력을 안해서 지금 대학에 입학했냐는 말씀을 하신 것에 대해서는 의도를 이해하기 힘듭니다.
<제가 궁금한 건 이 3가지인데 답변 부탁드립니다...
1. 설날에 모였을 때 가족들과 친척들이 사촌들의 학력가지고 "누구는 어디 대학 갔다, 어느 과 갔다." 라는 대화들이 오갔는데 확실한 건 학력이 좋을 때 칭찬을 했지만 학력가지고 까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다만... 저 같은 경우는 아무리 칭찬만 있다고 해도 그 외 좋은 학력을 가지지 못해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끼는 다른 사람들 입장에서는(일단 전 지금 대학에 콤플렉스는 없습니다.) 비참한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되도록 누구의 학력이라 직업이나 재력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보는데 이건 그 사람들이 잘못된 것인가요? 아니면 제가 예민한 것인가요?
2. 고2~고3 기간동안 개인사정으로 공부에 대한 노력이 소홀했는데 이 경우 다른 시기동안 노력을 성실히 했어도 중요한 시기를 놓쳤으니 불성실한 것인가요? 아니면 그래도 성실한 것인가요?
3. 아버지께서 돌아가는 갈에 제게 했던 말씀은 잘 되라는 의도의 말씀이었는데 말실수가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애초에 그런 의도였는데 제 답변에 둘러대신 걸까요?>
: 명절 들어 한국적인 특성에 따라 혹시나 이런 스트레스들을 받을까봐 걱정했는데 역시나군요... 더 난처한건 이게 제 잘못인지 그 사람들 잘못인지 모두 잘못한건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원인이 무엇인지 안다면 제가 고칠게 있으면 반성하고 고쳐나가면 되는데 그 원인을 확실히 모르겠어서 문제입니다. 다들 명절 잘 보내셨길 바라고 올해도 힘을 내요 :) 제 잘못이 있다면 욕을 하셔도 좋으니 그 대신 뭘 잘못했는지 확실하게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p.s. 앞으로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명절 때도 안 찾아가면 폐륜아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