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
일본인 하면 영어를 아주 못하는 것으로 많이 알려졌습니다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이죠... 그중에서도 동시통역의 신으로 불리는 쿠니히로 마사오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선택한 방법은 아주 단순한 방법이었습니다. 지관 낭독(소리 내어 책을 읽는 행위)을 수백 번 반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어를 정말 모르는 상태에서 책을 보면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일단 이해가 가능한 짧은 문장을 10만 개 이상 수집해서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표현들을 위의 방법으로 암기했다고 합니다. 스스로 그 상황에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 읽어서 문장 속 상황에 실제 있는 것처럼 문장 하나하나를 체화시켜버린 겁니다. (언어의 느낌과 패턴을 체화)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영어 문장에 대한 감각을 익힌 다음 책을 읽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관 낭독을 해서 책을 완벽하게 암기할 정도로 읽었다고 하는데 그 책 속에 나오는 상황과 표현 전체적인 스토리부터 글자 하나하나까지 모두 기억할 정도로 읽었다고 하며, 처음 읽는 책은 500번 정도 읽어야 이게 가능하다고 합니다. 쿠니히로 마사오에 의하면 영어 문장에 대한 감각(문법 감각)을 익히는 방법은 단순하게 읽어서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어 하나하나의 느낌(맛)을 음미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이게 좀 이상한 표현인데 단어 하나하나가 주는 느낌을 기억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계속 읽다 보면 반복하는 과정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해하는 문장과 표현이 증가한다는 것이죠. 결국, 100% 이해를 하게 된다는 겁니다.
책을 암기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책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스스로 외국어에 노출해서 언어적 감각을 터득하는 것으로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쿠니히로 마사오는 이런 식으로 처음 첫 권은 500번 읽어서 완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는데 두 번째, 세 번째 책부터는 이렇게 읽고, 기억하고, 언어적 감각을 체화하는 속도가 두 배로 증가한다고 합니다.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도 같은 주장을 했습니다. 첫 번째 책만 오래 걸릴 뿐 학습하는 속도는 거의 두 배씩 증가한다고, 다만 처음 시작할 때 엄청난 반복 행위가 필수적으로 따라옵니다)
그렇다면 왜 꼭 책을 읽어야 하나? 라는 의문이 생길 겁니다.
이 의문에 관해서는 제2 언어 습득 분야의 세계 최고 권위자이자 읽기 혁명의 저자 스티븐 크라센 교수가 가장 명확한 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크라센 교수(문법 박사)는 원래 (1973년까지) 문법 위주의 학습을 주장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1975년 폴린 판이라는 중국계 대학원생의 연구를 돕게 됩니다. 그녀는 무려 20년 동안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유창한 영어를 구사했지만, 엉터리 발음이 많았고 여기저기 문법적인 실수를 계속 저질렀다고 합니다.
크라센 교수는 그녀의 아들(16세 원어민)에게 그녀가 언어적 실수를 할 때마다 메모를 해두라고 부탁했습니다. 몇 달이 지나서 크라센 교수는 그녀의 언어적 실수가 적힌 목록을 들고 그녀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자신의 언어적 실수에 관해서 문법적 오류를 즉석에서 모두 정정할 수 있었던 겁니다. (그녀는 ESL 프로그램에서 학생들에게 문법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이미 영어 문법을 완벽하게 알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도 일상적으로 계속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던 거죠...,
크라센 교수는 문법을 모두 알고 있다고 해도 문법적 지식으로는 언어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겁니다. 결국, 의식적으로 언어를 학습하는 기능과 무의식적으로 언어를 습득하는 행위는 서로 다른 완전히 다른 시스템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언어 습득은 무의식적인 과정이지 단어나 규칙을 안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이후 크라센 교수는 국제적으로 가장 실력이 좋은 언어 천재들을 추적 조사를 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이 많이 읽고 많이 듣는 단순한 공통점 말고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1995년 크라센 교수는 헝가리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헝가리에서 16개 국어를 구사하는 언어 천재인 카토 롬브를 알게 됩니다. (Polyglot How I Learn Languages의 저자 Kató Lomb) 크라센 교수는 그녀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롬브가 86세 되던 해에 부다페스트에서 롬브를 만나게 됩니다.(그녀는 16개 언어를 구사할 수 있었으며 히브리어를 새로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크라센 교수는 그녀에게 엄청난 비결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아주 평범한 방법으로 언어를 익히고 있었다고 합니다. (책을 읽고 사전을 열어 본다거나 단어를 정리하고 라디오를 듣는 방법) 롬브는 크라센에게 자신이 언어를 익힌 방법을 상세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녀가 다양한 언어를 습득한 방법을 요약하자면 간단한 겁니다. 이해 가능한 입력을 많이 하라는 겁니다. 그 수단이 주로 책이었고 그녀는 책을 아주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롬브의 주장은 크라센 교수가 70년대에 주장한 이론 “이해 가능한 입력 가설”과 같은 겁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의식적인 학습과 무의식적인 습득으로 언어를 학습하지만, 언어를 익히는데 최고의 방법은 학습이 아니라 습득이라는 겁니다. 읽다 보면 자주 반복되는 언어적 패턴이 있죠... 그리고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내용이 나오게 됩니다. 이걸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여서 이해하게 되면 그때 언어 습득이 진행된다는 것이죠.
엄청난 영어 실력을 자랑하는 홍정욱(코리아 헤럴드 대표) 씨가 주장하는 주된 내용도 요약하자면 이런 겁니다. 엄청난 시간을 투자해서 최대한 많이 읽고 모조리 암기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저절로 (영어가) 이해가 되더라... 갑자기 정확한 문법으로 영어를 구사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반복 학습을 통해서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언어 습득이 완료되는 임계점이 있다는 거였습니다. 이 임계점에 도달하는 시간(언어 노출 시간)은 학자들마다 계산 방법이 서로 달라서 논쟁이 있긴 합니다 만, 홍정욱, 슐리만, 리양처럼 단기간에 영어를 습득했다는 사람들의 자서전에서 밝힌 하루 평균 학습 시간과 기간을 계산해보면 하루도 쉬지 않고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서 6개월 밤낮으로 읽고 또 읽고 계속 읽었다는 결과가 나오게 되더군요. 6개월이면 짧은 학습 기간 같지만 사실 공부한 시간을 모두 계산해보면 시간이 무려 3,000시간이 넘더군요. 공통적으로 대략 3,000시간 전후로 막힘없이 회화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보아 이게 인간이 한 언어를 익히는 최소한의 시간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대략 하루에 3시간 정도 원서를 읽는다면 3년쯤 걸리는 시간임)
크라센 교수에 의하면 언어를 습득하는 동안 말을 하지 못해서 답답해하는 것을 사람들이 자주 겪는데 이건 전혀 걱정할 문제가 아니며, 결국 계속 반복적으로 입력 과정이 진행되면 나중에 자연스럽게 말을 할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회화란 언어 습득의 결과로 나오는 것이지 과정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과정을 견디지 못하고 실패했다고 착각하는 겁니다)
결론은 이겁니다. 연기자가 대본 연습을 하듯이 원서를 엄청나게 많이 읽자! 그러면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 추가정보----------
https://blog.naver.com/toapto99/220870199803 <- 몇 년 동안 집요하고 꼼꼼하게 성인의 언어습득에 관해서 여러가지 자료들을 조사하다가 외국어 습득에 있어서 중요한 사실 몇 가지를 알게 되어 과거에 작성한 글을 업데이트 했습니다. 내용이 길지만 결론은 간단합니다. 외국어 때문에 진지하게 고민을 하시는 분이라면 한번 읽어 보세요. 제가 알고 있는 정보를 혼자 알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링크를 걸어 둡니다. 2018년 7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