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챠리
17.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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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올해 29살인 평범한 죠센징으로써, 내가 해왔던것을 기록으로 남기고싶어 이 곳에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탈조선에 대한 궁금증과 생활, 문화 같은것이 궁금하신거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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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탈조선을 마음먹었던건 3년 6개월전, 그러니까 2013년 9월 즈음이었다. 그 전에이야기를 해보자면, 지방 모 전문대에서 호텔조리학과를 나왔는대, 내 나름대로 열심해 했다고 자평 할 수 있다. 내 나름대로, 물론 지잡 전문대였지만, 절반 장학금을 놓치지 않았고, 서울에서 열린 전국 떡만들기 대회에서 팀전 은상을 수상했으며, 교수의 인맥으로 (요리쪽은 보통 교수에 눈에 들면 인턴을 시작한다.)서울 역삼동에 있는 특1급 호텔에서도 인턴생활을 해보았다. 그러나 대기업이 으레 그렇듯, 숨막힐 것 같은 상하관계와 엄청난 작업량에 나는 혀를 내 두를수 밖에 없었고, 그렇게 나 스스로 성공경쟁에서 탈락하는 듯 했다. 그러나 나는 굴하지 않고 홍대에 있는 맛집들에 문을 두드리며, 요리의 꿈을 접지 않았다. 다행히도, 연남동에 있는 한 조그마한 초밥집에 취직을 했는대, 그때 당시에 서울에 11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고 나름 휴가도, 4대보험도 들어주는 기업의 형태를 띈 그런 가계였다. 말하자면 흔히들 말하는 좆소기업인 샘이었다. 얼마나 멋진가? 4.5평의 초밥집에서 주말에만 500만원을 팔아 치우는 괴물같은 초밥집, 저 조그마한 초밥집으로 11개의 점포를 일궈내 조그마한 기업의 형태로 초밥집을 키워낸 사장이라니! 초밥에 ㅊ자도 모르는 상태였기도 하고, 노오오력으로 모든것을 일궈낸 그 무엇인가를 그저 배울 생각으로 인터뷰를 했던게 기억에 남는다. 당시 나는 사장에게 ' 달에 100만원만 받아도 배우는자세로 열심히 하겠습니다' 라고 이야기했고 사장은 ' 그건 최소시급에도 못되는 돈이니 150부터 시작하자.' 라는 말을 들었고, 그때부터 나의 초밥집 인생이 시작되었다.

 

개인이 하는 음식점이 대게 그렇듯, 역시 주 1일 휴일에 하루평균 13시간을 일하는 고된 스케쥴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로운것을 배운다는 점과, 선배들이 말하는 ( 아무리 자그마한 가계였지만 주방 스탭만 5명이 되는 볼륨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생고생하면, 다른지점에서는 하지도 못하는 승진 금방한다' 라는 희망적인 말이 나를 자극했다. 그때만 해도 '노오오오력으로 할 수 있다' 와 '빠른성공만이 인생의 행복' 이라는 헬조센적인 마인드가 가득 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집착과 애증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물론 노력의 가치를 폄하하는건 아니고, 나 역시 무슨일이든 노력이 필요하다는것에는 절대적으로 찬성한다. 아무튼, 그런 마인드가 내가 그 좁은 초밥집에서 1년동안 일했던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아침 6시반에 일어나 출근해서 11시30분에 집에 오는, 그런 다람쥐 쳇바퀴 굴리는 시간이 흘러가는동안 성과가 없었던건 아니다. 150부터 시작한 월급은 어느세 200만원이 되어있었고, 선배들은 나를 인정했으며, 그때가 내나이 23살이었는대, 당시 내 주변에 나 만큼 돈을 만지고 있던 친구들도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나름 나의 성과에 고무되어있었다. 그리고 한 7개월 즈음 되었을 무렵, 나는 더 상위스킬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생선을 잡는법과 회를 뜨는법을 배워 나갔는대, 내 일을 인수인계하던 사람들은 버티지 못하고 하는 족족 나가 떨어지기 일수 였다. 결국 나는 상위스킬을 배우는 것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나의 일을 대신 해 줄 사람이 없었고, 내가 쉬는날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이 하나도 안되있어서, 그것을 장사 할 수 있게 체우는것만으로도 벅찰 지경이 되버렸다. 이때가 내가 이 초밥집에서 나의 미래를 찾을 수 없다 라고 생각하고, 이 집을 나오게 된거 같은대, 그만 둘 때에 사장이 나에게 월급을 240으로 올려주고 직급을 올려주는 대신, 후임을 니가 대리고 와라 라는 제안을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땐 정신적으로도 이미 한계에 부딫치고 있어 도저히 240만원짜리의 노동력을 제공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고, 또 내 후임을 내가 대려오라는거 자체가 웃긴 노릇아닌가? 사장의 제안을 거절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 왔다.

 

그러나 몇주간의 백수기간은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괜히 남들보다 뒤쳐지는거같고, 집에서 꼬긁하며 영화나 보는것도 신물이 날즈음, 뜬금없이 이런 생각 하나가 대뇌에 스치고 지나갔다. ' 혹시, 외국에 나가보는건 어떨까?'

한국식 상하구조, 밑사람에게 일 짬시키기, 나이순으로 계급나누기등등 서열 문화에 너무나 지쳐있었던 나에게 그 생각은 점점 스스로 자기합리화적 이유를 붙여가며, 나름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내가 그동안 모은 800만원.

내인생 처음 스스로 용돈도 아닌, 내 땀과 손으로 번 800만원은 그때 당시 만수르가 부럽지 않을정도로 많은 돈으로 느껴졌었고, '돈이야 칼잡아서 생선목따면 또 나오는거니, 한번 해볼만해!' 라는 미친생각을 했었으므로 나는 그 즉시 인터넷에 이주공사를 찾아보기 시작했고, 그 때부터 나의 인생은 슬슬 꼬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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