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공산주의자
18.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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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반대파 강령
- 당의 위기와 그 극복을 위한 방법

■ [옮긴이 해설] 이 글은 1927년에 작성된 통합반대파의 강령 초안이다. 1927년 8월에 트로츠키, 지노비예프, 라데크, 프레오브라젠스키, 파타코프 등을 중심으로 작성되어 9월 3일, 당 정치국에 제출되었다. 반대파는 당 규약에 따라 토론의 기본 자료로 전체 당원에게 인쇄, 배포할 것을 호소했지만 정치국은 9월 8일, 이를 분파주의의 산물로 간주하여 반대파의 요구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독자적으로 인쇄, 배포하는 것도 금지했다. 반대파는 이러한 금지령이 당 규약은 물론이고, 분파 금지를 통과시킨 제10차 당 대회의 결정에도 반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독자적인 인쇄소를 마련하고 비밀리에 인쇄해 당원들에게 배포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당 주류파에 의한 대규모 반대파 탄압의 구실로 이용되어 9~10월에는 프레오브라젠스키 등 고참 볼셰비키인 반대파 간부가 차례로 제명되었다. 이 2개월 동안에만 600명 이상의 반대파 당원이 당에서 축출되었다.

소비에트연방공산당 제15차 당 대회 볼셰비키-레닌주의자(반대파)의 강령 초안 : 당의 위기와 그 극복을 위한 방법

중앙위원회와 중앙통제위원회의 13명의 위원은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에 제15차 당 대회를 위해 볼셰비키-레닌주의자(반대파)의 강령 초안을 제출한다.
이 13명은 인쇄물이나 당 집회에서의 의견 교환에 따라 대회 직전까지 이 강령을 수정할 권리를 보유한다.

서명자 : 무랄로프(Muralov), 옙도키모프(Yevdokimov), 라코프스키(Rakovsky), 파타코프(Piatakov), 스밀가(Smilga), 지노비예프(Zinoviev), 트로츠키(Trotsky), 카메네프(Kamenev), 페테르손(Peterson), 바카예프(Bakaev), 솔로비요프(Solovyov), 리진(Lizdin), 압데예프(Avdeev)

 

제1장 서론

마지막으로 참석한 당 대회(1922년) 연설에서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그런데 우리는 (신경제정책[NEP] 도입 이후) 1년을 견뎌왔다. 국가는 우리 수중에 있다. 그러나 이 국가는 지난 1년 동안 우리가 원한대로 신경제정책(NEP)을 운영해왔는가?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국가가 우리가 원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 국가는 어떻게 작동했는가? 기계가 운전자의 유도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운전자가 바라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 자동차와도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누군가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는데, 마치 수상하고 무법적인 운전자, 누군지 모르지만 아마도 부당 이득자나 사적 자본가, 또는 이들 모두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자동차는 그 자동차의 핸들을 잡고 있는 사람이 생각하는 방향으로만 가지 않고, 종종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레닌,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정치보고', (《전집》, 제33권, 279쪽)

우리는 이 말이 제시한 기준을 우리의 근본적 정치 문제를 검토하는데 적용해야 한다. 자동차一정부, 국가권력一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노동자와 거대한 농민대중의 이해와 의지를 표현하는 우리 공산주의자가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그 방향과 '약간 다른' 것인가?

레닌 사후 몇 년 동안 우리는 여러 차례 당의 중앙기관에, 그리고 나중에는 당 전체에 다음과 같은 사실에 주의를 갖도록 노력해왔다. 즉, 레닌이 지적한 위험이 잘못된 지도부 때문에 크게 증대되었다. 자동차는 노동자와 농민의 이해가 요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당 대회를 앞두고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박해에도 불구하고 가일층 힘을 내 이 사실에 당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상황이 교정될 수 있고, 당 스스로 바로잡을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레닌이 자동차가 종종 우리에게 적대적인 세력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을 때, 그는 대단히 중요한 두 가지 사실에 대해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 것이다. 첫째, 우리 사회에는 우리의 대의에 적대적인 세력들 一 쿨락, 네프맨, 관료 一 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우리의 후진성과 정치적 오류를 이용함으로써, 실제로 국제자본주의의 지원에 의지하고 있다. 둘째, 이들 세력은 매우 강력해서 우리 정부와 경제 기구를 잘못된 방향으로 밀어붙일 수 있으며, 결국에는 자동차의 핸들을 빼앗으려고一처음에는 은밀한 식으로一시도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레닌의 말은 우리 모두에게 다음과 같은 의무를 부과한다.

1. 쿨락, 네프맨, 관료 一 이 적대세력들의 성장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

2. 나라의 전반적인 회복에 따라 이들 세력은 결속하고, 우리의 계획에 자신의 '수정안'을 끼워 넣고, 우리의 정책에 점점 더 큰 압력을 행사하려고 애쓸 것이다. 그 결과, 우리 기구를 통해 자신의 이익을 채우려 할 것이라는 점을 기억할 것.

3. 이 적대세력들의 성장, 결속, 압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해, 보이지는 않지만 이들이 열망하는 사실상의 이중권력 체제를 수립하지 못하게 할 것.

4. 산업노동자와 모든 근로인민에게 이들 계급이 우리 사회에서 준비하고 있는 과정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솔직하게 말할 것. 이것이 '테르미도르 반동'의 위험과 이에 대항하여 싸우는 문제를 푸는 열쇠이다.

레닌이 이 경고를 발한 이래로, 우리는 많은 것을 개선했지만 악화된 것도 많다. 국가기구의 영향력이 증대하고 있지만 그와 더불어 노동자국가의 관료적 왜곡도 증대하고 있다. 농촌에서 자본주의의 절대적이고 또 상대적인 성장과 도시에서의 절대적인 성장은 우리나라 부르주아 분자들의 정치적 자각을 낳기 시작하고 있다. 이 분자들은 일이나 사회적 교류에서 접촉하는 일부 공산주의자들을一매번 실패하지는 않는一타락시키려 하고 있다. 제14차 당 대회에서 스탈린이 내건 '좌익을 향해 발포하라!'는 슬로건은 당내의 우익 분자와 국내의 부르주아-우스트리얄로프 분자와의 결합을 촉진할 수밖에 없다.

'누가 누구를 패배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전선의 모든 부문에 걸친 끊임없는 계급투쟁 즉, 사회주의적 발전과정인가 자본주의적 발전과정인가, 이 두 과정 가운데 어느 것에 부합하는 국민소득의 분배인가, 노동자계급의 견고한 정치권력인가, 아니면 새로운 자본가계급과 이 권력을 나눌 것인가 하는 투쟁으로 결정될 것이다. 대체로 소농, 영세소농, 소(小)소유자가 압도적 다수인 나라에서는 이 투쟁의 가장 중요한 과정이 한동안 단편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계속되다가 결국 일시에 '느닷없이' 표면화된다.

자본주의적 요소는 농촌의 계급 분화와 도시의 사적 무역업자의 증대에서 그 최초 모습을 나타낸다. 농촌의 상층과 도시의 부르주아 분자는 우리의 국가-경제 기구의 다양한 부문과 더욱 더 밀접하게 뒤섞이고 있다. 그리고 이 기구는 새로운 자본가계급이 국민소득에서 자기 몫을 늘리려는 성공적인 노력을 통계상의 불확실함으로 뒤덮는 것을 심심찮게 돕고 있다.

상업 기관一국영,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기관, 사영一은 국민총생산의 10분의 1 이상인 국민소득의 막대한 부분을 삼켜버리고 있다. 게다가 상업 중개인의 자격으로 사적 자본은 최근 몇 년 동안 모든 거래의 5분의 1 이상을 훨씬 상회하여(절대적 액수로는 연 50억 루블 이상) 처리해왔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소비자는 필요로 하는 제품의 50% 이상을 사적 무역업자로부터 입수했다. 사적 자본가에게 이것은 이윤과 축적의 근본적 원천이다. 농산물 가격과 공산물 가격의 '협상가격차'(불비례), 도매가격과 소매가격의 '협상가격차', 여러 농업 부문이나 지역이나 계절에 따른 가격 '차이', 마지막으로 국내가격과 국제가격의 '협상가격차' (밀수)가 사적 이득의 항상적 원천이다.

사적 자본은 대부로 고리를 거두고 있으며, 국채로 돈을 벌고 있다.

산업에서도 사적 자본가의 역할은 매우 크다. 비록 최근에 상대적으로는 줄어들었더라도 여전히 절대적으로는 증대하고 있다. 공인된 사적 자본주의 산업의 총생산은 연 4억 루블을 가리키고 있다. 소규모 공업, 가내공업, 수공업은 18억 루블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다 합하면, 비(非)국영 공업의 생산은 총 상품생산의 5분의 1 이상, 일반시장에서 매매되는 상품의 약 40%를 이루고 있다. 이런 산업의 대부분은 어떻게든 사적 자본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상업자본과 가내기업 자본에 의한 수공업 노동자 대중에 대한 공개되거나 은폐된 형태의 다양한 착취는 대단히 중요하며, 게다가 새로운 자본가계급의 더욱 더 커지고 있는 축적의 원천이다.

세금, 임금, 물가, 신용은 국민소득을 분배하고, 특정 계급을 강화하고, 다른 계급을 약화시키는 주요한 수단이다.

농촌에서 농지세는 대체로 역급수적으로 빈농에게는 무겁고, 경제력이 있는 농민과 쿨락에게는 더 가볍게 부과되고 있다. 대략적인 추정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북부 코카서스, 시베리아와 같은 계급 분화가 고도로 진행되고 있는 지역을 빼더라도) 소비에트연방에서 34%의 빈농가가 순소득의 약 18%를 차지하고 있다. 꼭 같은 18%의 총소득을 농가 전체의 겨우 7.5%에 지나지 않는 최상층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두 그룹이 거의 같은 세금을 즉, 총 조세액의 각각 20%를 내고 있다. 이것으로부터 각 개별 빈농가에 대한 과세액이 쿨락이나 '경제력이 있는' 농가 일반에 대한 과세액보다 훨씬 더 무겁다는 것이 분명하다. 제14차 당 대회 지도자들의 우려와는 반대로, 우리의 조세정책은 결코 쿨락을 '약탈'하지 않는다. 쿨락이 끊임없이 더 많은 화폐와 현물을 자기 수중에 집중시키는 것을 조금도 방해하지 않는다. 

우리의 예산에서 간접세가 차지하는 비율은 점점 더 놀랄 만큼 직접세의 부담을 줄이고 있다. 이것만으로도 세 부담은 부유층으로부터 빈곤층으로 자동적으로 옮아간다. 1925~26년도에 노동자에 대한 과세는 전년도의 2배까지 높아졌지만, 나머지 도시 주민에 대한 과세는 6%나 감소되었다.(〈재정통보〉 Vestnik Finansov, 1927년, 제2호, 52쪽) 주세(酒親)야말로 산업지대에서는 더욱 더 견딜 수 없는 부담이 되고 있다. 1925년과 비교하여 1926년에 1인당 소득 증대는一어느 정도 대략적인 추정에 따르면一계층별로 농민이 19%, 노동자가 26%, 상인과 기업가가 46%였다. 만약 '농민'을 3개의 주요 그룹으로 나누면, 쿨락의 소득이 노동자의 소득은 비교도 안될 만큼 크게 증가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확인될 것이다. 과세 자료에 기초하여 추정한 상인과 기업가의 소득은 쿨락의 소득에 확실히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이런 조작된 수치마저도 계급적 차이의 증대를 뚜렷하게 말해주고 있다.

농산물 가격과 공산물 가격의 '협상가격차'는 지난 1년 반 사이에 더욱 더 벌어졌다. 농민은 그 생산물을 팔아 전전(戰前) 가격의 1.25배 이상을 받지 못했지만, 공산품을 사는데 전전(戰前) 가격의 2.2배 이상을 지출했다. 농민, 그것도 대부분 하층 농민이 부담하고 있는 이런 초과 지불(over-payment)은 작년에 약 10억 루블에 달했다. 이것은 농업과 공업의 갈등을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농촌의 계급 분화를 크게 격화시킨다.

도매가격과 소매가격의 협상가격차는 국영기업은 물론 소비자에게도 손해를 주고 있다. 이것은 제3자가 이득을 보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런 이득을 보고 있는 사람은 바로 사적 자본가이고, 따라서 자본주의인 것이다.

1927년의 실질임금은 기껏해야 1925년 가을과 같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 2년 사이에 러시아는 부유해졌고, 국민총소득도 증대했으며, 농촌의 최상층 쿨락은 엄청난 속도로 자신의 축적을 늘렸다. 그 결과, 사적 자본가, 상인, 투기꾼의 부 축적이 급속도로 늘어났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러시아의 총소득에서 노동자계급이 차지하는 몫이 떨어진 반면에, 다른 계급의 몫이 증대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것은 우리의 전체 상황을 평가하는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우리의 발전에서 나타나는 이런 모순과 적대세력의 성장에 대한 솔직한 설명이 공포심에 사로잡히거나 비관주의에 빠진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내심으로는 우리의 노동자계급과 우리 당이 이러한 어려움과 위험에 대처할 수 없다고 믿는 사람들뿐이다. 우리는 이런 견해를 인정하지 않는다. 위험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 위험을 극복하고, 좀 더 효과적으로 맞서 싸우기 위해서 우리는 이 위험을 엄밀하고 정확하게 지적하는 것이다.

적대세력一쿨락, 네프맨, 관료一의 일정한 성장은 신경제정책(NEP) 아래에서는 불가피하다. 단순한 행정적 명령이나 간단한 경제적 압력으로 이들 세력을 파멸시킬 수 없다. 신경제정책(NEP)을 도입하고 수행하면서 우리 자신은 우리나라에서 자본주의적 관계에 얼마간 양보하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 레닌은 단지 노동자가 알아야 하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우리에게 상기시키기 위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소농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한, 러시아에는 공산주의보다도 자본주의에 부합하는 더 견고한 기반이 있을 것이다. 이것을 명심해야 한다. … 우리는 자본주의의 밑동을 뿌리째 뽑지 않고 있으며, 국내 적(enemy)의 토대와 근거지를 와해시키지 않고 있다.'(레닌, '제8차 전러시아소비에트 대회-인민위원협의회의 활동보고'(12월 22일), 《전집》, 제31권, 518쪽)

이미 말한 것처럼, 이 점에서 레닌이 지적한 더없이 중요한 사회적 사실은 간단히 제거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빈농에 의지하고 중농과 동맹한 노동자계급의 올바른, 계획적, 체계적 정책을 통해 이런 사실에 맞서 싸울 수 있고, 또 극복할 수 있다. 이 정책은 기본적으로 노동자계급의 모든 사회적 진지를 전면적으로 강화하고, 세계 노동자혁명의 준비, 발전과정에 가능한 한 가장 밀착하며, 사회주의의 통제고지를 가능한 한 가장 신속하게 수립하고 확장시키는 것에 있다.

올바른 레닌주의 정책에는 책략을 쓰는 것도 포함된다. 자본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레닌은 자주 적의 의표를 찌르기 위해 부분적으로 양보하거나, 다음에 좀 더 성공적으로 전진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후퇴하는 방식을 썼다. 책략을 쓰는 것은 지금도 필요하다. 그러나 직접적인 공격으로 꺼꾸러뜨릴 수 없는 적에 대항하여 급히 몸을 피하거나 책략을 쓰는 경우에도 레닌은 변함없이 노동자혁명 노선을 견지했다. 레닌 아래서 당은 항상 각 책략의 이유, 그 의미와 한계, 그 이상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를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노동자가 다시 전진을 시작해야 할 지점을 알고 있었다. 레닌이 지도한 시대에는 후퇴는 후퇴로, 양보는 양보로 불렸다. 그 덕분에 책략을 쓰는 중에도 노동자군대는 항상 단결, 투쟁정신, 명확한 목표의식을 유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지도부는 이런 레닌주의 방식으로부터 결정적으로 일탈했다. 스탈린 그룹은 당을 맹목적으로 지도하고 있다. 적의 힘을 비밀에 부치고, 어디서나, 그리고 모든 것에서 성공이라는 공식적 외양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 그룹은 노동자계급에게 아무런 전망도 제시하지 않는다. 아니 설상가상으로 잘못된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이 그룹은 지그재그로 움직이며, 적대분자들에 순응하거나 비위를 맞춘다. 그 결과, 노동자군대의 힘을 약화시키거나 혼란시키고 있으며, 수동성의 증대, 지도부에 대한 불신, 혁명세력에 대한 불신임을 조장하고 있다. 레닌주의적 책략을 쓰는 것에 관해 스탈린 그룹은 처음의 방향에서 그 다음에는 다른 방향으로 급히 옮아가는 줏대 없는 경향으로 꾸미고 있다. 이런 전환은 언제나 당을 놀라게 한다. 이해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매번 당을 약화시켰다. 그 유일한 결과는 시간을 번 적의 전진이었다. 스탈린-부하린-리코프 측의 이러한 책략의 '고전적' 실례는 국제무대에서는 중국 정책과 영-러위원회 정책이고, 국내에서는 쿨락에 대한 정책이다. 이런 모든 문제에서 당과 노동자계급이 진실이나 진실의 일부를 알게 된 것은 철저히 잘못된 정책의 중대한 결과가 당과 노동자계급의 머리 위로 떨어진 뒤일 뿐이다.

이런 2년의 끝 무렵에 스탈린 그룹은 실제로 당 중앙기관의 정책을 결정했다. 이 그룹은 다음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막을 능력이 없음이 충분히 입증되었다고 생각해도 무방하다. ⑴ 우리나라의 발전을 자본주의의 방향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세력의 지나친 성장, ⑵ 쿨락, 네프맨, 관료의 증대하는 힘에 대비되는 노동자계급과 빈농의 지위 약화, (3) 세계자본주의와의 투쟁에서 노동자국가의 전반적인 지위 약화, 소비에트연방의 국제적 지위 악화.

스탈린 그룹은 당, 노동자계급, 농민에게 상황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알리는 대신에 사실을 은폐하고, 적대세력의 성장을 경시했으며, 진실을 요구하고 이를 털어놓은 사람들의 입을 막아왔기 때문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다.

전체적 상황이 우익의 위험을 나타내고 있을 무렵, 좌익을 향해 포화를 집중하고, 노동자혁명의 운명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정당한 경고를 표현하는 모든 비판을 투박하게 기계적으로 억압하고, 우익적 일탈과 노골적으로 결탁하고, 당의 노동자와 고참 볼셰비키 중핵의 영향력을 점차로 약화시키는 것 一 이 모든 것은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의 활력, 당의 경계태세와 결속, 레닌주의의 진짜 유산에 대한 헌신이 요구되는 순간에 노동자계급을 약화시키고 무장해제시키고 있다.

당 지도자들은 오류를 범할 때마다 은폐할 필요에 따라서 레닌을 왜곡, 개조, (재)해석, 보충한다. 레닌 사후, 일련의 새로운 이론이 고안되었는데, 그 의도는 단지 국제 노동자혁명의 정책으로부터 스탈린 그룹의 퇴보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것뿐이다. 이를 멘셰비키, 스메나베히파(Smenovekhovtsy) [잡지〈표지(機制)의 변화〉(Smenavekh)를 중심으로 러시아 망명그룹 내에서 전개된 운동으로 대부분이 멘세비키, 입헌민주당, 10월당출신이었다. 이 그룹의 지도자인 우스트리얄로프는 민족적 볼셰비키주의를 주장했다.-옮긴이] 그리고 결정적으로 부르주아 언론까지도 스탈린-부하린-마르티노프의 정책과 새로운 이론을 ‘레닌에게서 멀어지는’ 움직임(우스트리얄로프), '정치인다운 현명함', "현실주의', 혁명적 볼셰비키주의의 '유토피아' 포기로 보고 환영한다. 또 많은 볼셰비키一레닌의 전우一를 당 지도부에서 제거하는 것을 당의 근본적 노선을 바꾸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로 보고 공공연하게 환영한다.

그 사이에 확고한 계급정책에 의해 억제도 지도도 되지 않은 신경제정책(NEP)의 기본적인 과정이 한층 더 위험한 전환의 근거를 쌓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2500만의 소농 경영이 자본주의적 경향의 근본적 원천을 이룬다. 이 집단에서 점차 벗어나고 있는 쿨락층은 자본의 본원적 축적과정을 실현하며, 사회주의의 진지를 광범위하게 침식하고 있다. 이 과정의 운명은 결국 국가경제의 성장과 사적 경제의 성장 사이의 관계에 달려있다. 산업발전의 뒤처짐은 농민 사이에서 계급 분화의 속도를 크게 증가시키고, 여기에서 비롯하는 정치적 위험을 몇 배로 증대시킨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 쿨락은 '다른 나라의 역사에서 여러 차례 지주, 전제군주(짜르), 성직자, 자본가의 권력을 부활시켜왔다. 이전의 모든 유럽혁명의 경우가 그랬다. 노동자가 허약했기 때문에 쿨락은 공화제에서 다시 군주제로, 근로인민의 정치에서 다시 착취자, 부자, 기생자의 전제정치로 되돌리는데 성공했다.' 마지막으로 ‘비록 쿨락이 지주, 짜르, 성직자와 다퉜을지라도 쉽게 타협할 수 있지만, 노동자계급과는 결코 할 수 없다.’ (레닌, '노동자 동지들, 마지막으로 결전에 나서자!', 《전집》, 제28권, 55~56쪽)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사회주의로 성장하는 쿨락'을 믿는 사람은 딱 한 가지에만 알맞다一혁명을 좌초시키는 것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서로 배타적인 두 가지 근본적인 입장이 있다. 하나는 사회주의를 건설하고 있는 노동자계급의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발전을 자본주의의 방향으로 돌리고 싶어 하는 자본가계급의 입장이다.

자본가계급 진영과 자본가계급의 전철을 밟는 소부르주아 계층은 상품생산자의 사적인 주도권과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다. '경제력이 있는' 농민에게 내기를 거는 이 진영은 협동조합, 공업, 대외무역이 이런 농민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게 하려고 애쓰고 있다. 이 진영은 사회주의 공업은 국가예산에 의지해서는 안 되며, 공업의 발전은 이를테면 농업 자본가의 축적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노동생산성 향상을 위한 투쟁은 영향력이 증대하고 있는 소부르주아가 노동자에 대해 육체적 정신적 압력을 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격인하를 위한 투쟁은 이들에게는 상업자본을 위해 사회주의 공업의 축적을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관료주의에 대한 투쟁은 공업의 분리 분산, 계획 원칙의 약화를 의미한다. 이것은 중공업 우선 정책의 포기를 의미한다. 즉, 대외무역의 독점 폐기를 가까운 전망으로 가지고, 경제력이 있는 농민의 이익이 되도록 다시 조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우스트리얄로프의 노선이다. 이 노선의 명칭은 할부 자본주의이다. 우리나라에서 강력한 이 경향은 우리 당의 특정 그룹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레닌은 다음과 같은 말로 노동자의 노선을 설명했다 : '자본주의에 대한 사회주의의 승리와 사회주의의 공고화는 착취자의 모든 저항을 완전히 진압하고, 이들의 완전한 복종과 권력의 안정성을 확신한 노동자국가 권력이 대규모 집단적 생산과 최신 기술(전체 경제의 전화(電化)에 기초를 둔)에 기초하여 산업 전체를 재조직할 경우에만 보증된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이 경우에만 도시로 하여금 후진적이고 흩어져 있는 농촌 주민에게 농업과 농업노동 일반의 생산성을 증대시키기 위해 필요한 물질적 기초를 창출할 정도의 근본적인 기술적 사회적 원조를 해줄 수 있게 할 것이다. 나아가 본보기의 힘과 자기 자신의 이해에 따라 집단적이고 기계화된 대규모 농업을 받아들이도록 소농을 격려할 것이다.' (레닌, '코민테른 제2차 대회 결의문 - 농업문제에 대한 테제의 최초 초안', 《전집》, 제31권, 161~162쪽)

우리 당의 모든 정책(예산, 조세, 공업, 농업, 대내외무역 등 일체)은 이런 접근방법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이것이 반대파의 근본적인 입장이다. 이것이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다.

이 두 입장 사이에서一매일 첫 번째 입장에 좀 더 가까워지면서一스탈린주의자는 왼쪽으로 짧게 지그재그한 다음에 오른쪽으로 깊게 지그재그하는 것으로 이루어진 노선을 따라가고 있다. 레닌주의 노선은 자본주의 요소와의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생산력을 사회주의적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우스트리얄로프의 노선은 10월혁명의 획득물을 차츰 침식함으로써 자본주의의 토대 위에서 생산력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스탈린의 노선은 생산력 발전의 지체, 사회주의적 요소의 상대적 비중 하락을 이끈다. 따라서 우스트리얄로프 노선의 승리를 용이하게 한다. 스탈린의 노선은 익숙한 말과 표현을 빙자하여 실질적인 퇴보를 은폐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 위험하고 파멸적이다. 경제복구 과정의 완료는 이제 우리 경제발전의 모든 결정적 문제가 단도직입적으로 제기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스탈린주의의 정치노선을 침식시킨다. 왜냐하면 이것이 중국의 혁명이든, 소비에트연방에서 기초적 자본의 재구성을 수반하든 간에 주요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완전히 부적당하기 때문이다.

현 지도부의 미숙한 오류로 상황의 긴박감이 극도로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바로잡을 수 있다. 그러나 당 지도부의 노선을 바꿔야 한다, 그것도 기민하게 레닌이 지시한 방향으로 바꿔야 한다.

 

제2장 노동자계급과 노동조합의 상태

10월혁명은 역사상 처음으로 노동자계급을 거대한 국가의 지배계급으로 만들었다. 생산수단의 국유화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일부의 착취에 바탕을 둔 사회체계 전체를 사회주의적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결정적인 조치였다. 8시간 노동제의 도입은 노동자계급 생존의 물질적, 문화적 조건을 모든 면에서 총체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첫 조치였다. 나라의 빈곤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노동법은 노동자를 위해一예전에는 집단적 방어수단 일체를 박탈당한 가장 후진적인 노동자까지 포함하여一가장 부유한 자본주의 국가도 제공한 적이 없고, 결코 제공하지 못할 법률적 보장을 정착시켰다. 지배계급에게 맡겨진 가장 중요한 사회적 도구라는 지위로 격상된 노동조합은 한편으로 다른 상황에서는 전혀 접근할 수 없었을 대중을 조직하고,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국가의 모든 정치적 방침에 직접 영향을 미칠 기회를 주었다.

당의 임무는 이런 가장 중요한 역사적 획득물의 더 나은 발전을 보장하는 것, 즉 이것들을 진정한 사회주의적 내용으로 채워가는 것이다. 이 길에서 우리의 성공 여부는 국내외의 객관적 조건뿐만 아니라 우리 노선의 올바름과 지도부의 실제적 역량에 의해서도 결정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사회주의적 재구성의 길을 따라 얼마나 전진했는지를 평가하는데서 결정적 요인은 생산력의 증대와 자본주의적 요소에 대한 사회주의적 요소의 우위여야 한다. 이는 전반적인 노동자계급의 생활형편 개선을 동반해야 한다. 이 개선은 물질적 영역(산업에 고용된 노동자의 수, 실질임금의 수준, 노동자의 필요를 위해 지출할 예산의 종류, 주거 상태, 의료서비스 등), 정치적 영역(당, 노동조합, 소비에트, 콤소몰), 마지막으로 문화적 영역(학교, 서적, 신문, 극장)에서 분명히 나타나야 한다. 노동자의 생사가 걸린 이해를 뒷전으로 제쳐놓으려는 것, '편협한 수공업적 직업의식'이라는 경멸적인 욕설에 편승하여 이를 노동자계급의 일반적인 역사적 이해에 대치시키려는 것은 이론적으로 틀린 것이며, 정치적으로도 위험한 것이다.

물론 노동자국가가 잉여가치를 전유하는 것은 착취가 아니다. 그러나 첫째로, 우리는 관료적으로 왜곡된 노동자국가를 가지고 있다. 비대하고 특권적인 행정기구는 잉여가치의 상당 부분을 삼켜버리고 있다. 둘째로, 상업을 통해서, 그리고 협상가격차를 이용하여 성장하고 있는 자본가계급은 국영기업이 창출한 잉여가치의 일부를 착복하고 있다.

대체로 이 경제회복기에 노동자 수와 그 생활수준이 다른 계급의 발전 정도와 비교해 볼 때 절대적으로뿐만 아니라 상대적으로도 향상되었다. 그렇지만 최근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노동자계급의 수적 성장과 그 상황의 개선은 거의 멈춘 반면에, 적(enemy) 계급의 성장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것도 빠른 속도로 계속되고 있다. 이것은 불가피하게 공장 노동자의 상태 악화뿐만 아니라 소비에트 사회에서 노동자계급의 상대적인 비중 저하를 일으키고 있다.

노동자 사이에서 자본가계급을 대리하고 있는 멘셰비키는 노동자의 물질적 초라함을 악의적으로 즐기며 지적한다. 이들은 노동자계급을 소비에트국가에 대항케 하고, 부르주아-멘셰비키 슬로건인 '자본주의로 돌아가자'를 노동자가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려 하고 있다. 노동자의 물질적 상태를 개선하자는 반대파의 주장에서 '멘셰비키주의'를 발견하는 자기만족적인 관료들은 멘셰비키주의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상의 봉사를 하고 있는 것이고, 멘셰비키의 저속한 기치로 노동자를 내모는 것이다.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의 성패 여부를 노동자 대중의 실제 상황과 관련하여 정확하고 정직하게 판단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상태

경제회복기인 1925년 가을까지 임금은 가파를 정도로 상승했다. 그러나 1926년에 시작된 실질임금의 상당한 감소는 1927년 초가 되어서야 겨우 회복되었다. 1925년 가을에 대규모 기업 평균 월 임금은 모스크바 루블로 환산해 29루블 68코페이카에 비해, 1926~27회계연도의 제1/4분기에는 30루블 67코페이카, 제2/4분기에는 30루블 33코페이카였다. 제 3/4분기에 一 잠정적 추정에 따르면 一 임금은 31루블 62코페이카였다. 결과적으로 올해의 실질임금은 대략 1925년 가을 수준을 유지했다.

물론 개별적 범주의 노동자나 개별 지역一특히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一의 임금과 전반적인 물질적 수준이 이런 평균 수준보다 더 높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계급의 다른 매우 광범한 층의 물질적 수준은 이런 평균치에 상당히 못 미친다.

게다가 모든 자료는 임금의 증대가 노동생산성의 증대에 뒤처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 강도는 세지고 있는데, 열악한 노동조건은 여전히 예전과 같다.

노동 강도를 증대시켜야 할 요건은 더욱 더 임금인상을 필요조건으로 한다. 중앙위원회는 사회주의 정책과 일치되지 않는 이 새로운 경향을 합리화에 관한 그 유명한 결의문에서 천명했다(〈프라브다〉, 1927년 3월 25일 자). 제4차 소비에트 대회도 이와 같은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러한 정책은 기술 발전(노동생산성의 증대)에서 유래하는 사회적 부의 증대도 그 자체로는 임금인상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 수가 얼마 늘어나지 않은 것은 각 가정에서 일하는 구성원 수가 줄어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블의 실질가치로 환산하면, 1924-25년 이후노동자계급의 가계비 지출은 줄어들었다. 집세가 올랐기 때문에 노동자는 집의 일부를 임대할 수밖에 없다. 실업도 직간접적으로 노동자 가계에 부담을 주고 있다. 급증하는 주류 소비도 노동자계급 가계를 축내고 있다. 그 결과, 노동자의 생활수준이 분명하게 하락하고 있다. 이제 도입되고 있는생산의 합리화는 해고된 노동자를 흡수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공업과 수송 분야의 발전을 동반하지 않는다면, 불가피하게 노동자계급의 상태를 한층 더 악화시킬 것이다. 실제로 '합리화'는 흔히 일부 노동자를 '내쫓고', 다른 노동자의 물질적 상태도 악화시키게 된다. 이것은 불가피하게 노동자 대중을 합리화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가득 채운다.

노동자의 생활수준이 압박을 받으면, 항상 가장 약한 그룹인 미숙련 노동자, 계절노동자, 여성노동자, 청년노동자 대부분이 고통을 겪는다.

1926년에 거의 전 산업 부문에서 여성노동자의 임금은 남성노동자에 비해 분명 낮았다. 서로 다른 세 산업 부문 미숙련노동자 사이에서 1926년 3월 현재 여성의 임금은 각각 남성 임금의 51.8%, 61.7%, 83%였다. 토탄산업이나 짐을 싣고 내리는 작업 등과 같은 부문에서 여성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는 아직 취해지지 않았다. 청년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노동자 전체의 임금과 비교해 볼 때,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1923년에 그 비율은 47.1%, 1924년에 45%, 1925년에 43.4%, 1926년에 40.5%, 1927년에 39.5%였다(1924~25년도와 1925~26년도의 청년의 경제적 상황개관').

1926년 3월에 청년노동자의 49.5%는 20루블 이하의 보수를 받았다 (중앙노동통계국). 모든 산업시설에 노동자 수가 지정되어있다 하더라도 일정한 수의 청년노동자 고용을 규정하고 있는 법규의 폐지는 청년노동자와 노동자계급 가정에 중대한 타격이었다. 청년실업자수는 크게 증가하고 있다.

농장노동

대략 350만의 농촌 임금노동자 가운데 160만 명의 남녀가 농장노동자이다. 이 농장노동자의 20%만이 노동조합으로 조직되어 있다. 대개 완전히 노예상태와 같은 조항을 담고 있는 임금협약의 등록이 가까스로 시작되고 있다. 농장노동자의 임금은 통상 법정 최저액을 밑도는데, 이는 국영농장에서도 다를 바 없다. 대체로 실질임금은 전전(戰前) 수준의 63%를 넘지 않는다. 노동시간은 10시간 이하인 경우가 좀처럼 드물며, 사실상 무제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임금은 불규칙하게 지불되고, 그것도 지나치게 지체된 뒤에야 지불된다. 고용노동자의 비참한 상황은 후진적인 농민국가에서 부닥치는 사회주의 건설의 어려움 때문만은 아니다. 이것이 또한 실제로一실생활에서一농촌의 하층이 아니라 상층에 각별히 유의하는 잘못된 노선의 결과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 없다. 우리는 쿨락뿐만 아니라 이른바 경제력이 있는 중농에 대항해서도 고용노동자를 전면적, 체계적으로 옹호해야 한다.

주택문제

노동자의 표준적인 거주공간은 대체로 도시주민 전체의 평균 거주공간보다 꽤 좁다. 이 점에서 거대한 산업도시의 노동자는 주민 중에서 가장 적은 혜택을 받았다. 조사된 일련의 도시들에서 사회 그룹별 거주공간 분포는 다음과 같았다.

공장 노동자는 1인당 5.6평방미터, 사무직 노동자는 6.9평방미터, 수공업 노동자는 7.6평방미터, 전문직 노동자는 10.9평방미터, 비(非)노동자 분자는 7.1평방미터였다. 노동자가 최하위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노동자의 거주 면적은 해마다 좁아지고 있지만, 비(非)노동자 분자의 면적은 넓어지고 있다. 주택 건설과 관련한 전반적 상황은 산업의 더 나은 발전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국가계획위원회(고스플란)의 5개년 계획은 5개년 계획이 끝난 뒤에도 주택 사정이 지금보다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위원회도 이것에 일치하는 고백을 하고 있다. 5개년 계획에 따르면, 표준 거주 면적은 1926년 말의 11.3평방아르신(8.1평방미터, 1아르신은 약 7lcm)에서 1931년 말에는 10.6평방 아르신(7.6 평방미터)으로 줄어들 것이다.

실업

산업화의 완만한 성장은 무엇보다도 실업 분야에서 가장 병적인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이 실업은 산업노동자계급의 기본적 대오도 공격하고 있다. 1927년 4월에 등록한 공식 실업자 수는 147만 8천 명이었다(〈트루드〉[Trud, 노동], 1927년 8월 27일자). 실제 실업자 수는 약 200만 명에 달한다. 실업자 수는 취업노동자 총수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산업노동자의 실업자 수도 일시적으로 급속히 증대하고 있다. 국가계획위원회의 5개년 계획에 따르면, 공업은 5년 내내 40만 명 약간 넘는 취업노동자를 흡수할 것이다. 이것은 농촌으로부터 노동자가 지속적으로 유입됨에 따라 실업자 수가 1931년 말에는 무려 300만 명으로 늘어날 것임을 의미한다. 이런 사태의 결과, 부랑아, 거지, 매춘부 수가 증대할 것이다. 실직자에 대한 변변찮은 실업보험 지급은 실직자의 정당한 분노를 야기하고 있다. 평균 실업수당은 11.9루블(즉, 전전(戰前)의 약 5루블)이다. 노동조합의 보조금은 평균 6.5~7루블이다. 그리고 이런 보조금은 실직한 조합원의 약 20%에게만 지불될 뿐이다.

노동법전은 법전 조항 수의 몇 배를 넘어설 정도로 수많은 판독을 거쳤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조항을 폐지했다. 특히 임시노동자나 계절노동자에 대한 법적 보호는 개악되어왔다.

최근 전개된 단체협약 캠페인은 법률적 보장의 거의 보편적인 개악과 임금기준과 임금체계에 대한 하향 조정 압력이 특징적이었다. 정부 경제기관에 강제적인 중재권을 주는 것은 협약의 표리부동한 면을 행정 명령으로 바꾸면서 단체협약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다(〈트루드〉, 1927년 8월 4일자). 노동자 보상에 대한 기업 측의 분담금은 전체적으로 불충분하다. 노동인민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1925~26년도에 대기업에서 노동능력의 상실로 이어진 재해가 노동자 1,000명당 97.6건이나 있었다. 매년 10명의 노동자가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있다.

최근 급증한 노동쟁의의 대부분은 화해적 조치가 아니라 강제적 조치에 의해 해결되었다는 것이 특징적이었다.

공장 안의 관리체제는 변질되었다. 관리기관은 공장 내에서 자신의 무제한적인 권력을 수립하려고 더욱 더 애쓰고 있다. 노동자의 고용과 해고는 실제로 오직 관리기관에게만 맡겨져 있다. 공장 감독과 노동자 사이의 관계가 혁명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은 광경이 자주 발견된다.

생산협의회[생산협의회는 생산현장의 문제를 서로 이야기하는 종업원 회의-옮긴이]는 점차로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노동자가 채택한 실용적인 제안 대부분은 실행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새로 도입한 개선안이 흔히 노동자 수 감소로 귀결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많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생산협의회에 대한 혐오감이 조장되고 있다. 그 결과, 생산협의회에는 거의 참석하지 않는다.

문화적 영역에서는 학교문제를 강조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가 자녀에게 직업훈련은 말할 것도 없고 초등교육을 받게 하는 것마저도 더욱 더 곤란해지고 있다. 거의 모든 노동자계급 지구에서는 줄곧 학교 부족 현상이 늘어나고 있다. 학교가 지출할 비용을 부모에게 요구하는 것은 사실상 무상교육을 폐지하는 것이다. 학교의 부족과 불충분한 유치원 설비는 노동자 자녀의 상당수를 길거리로 내모는 것이다.

노동조합과 노동자

제11차 당 대회 결의문에서 지적된 '공장에서 노동조건 문제를 둘러싼 일정한 이해의 충돌'은 최근에 상당히 늘어났다. 그렇다 하더라도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활동을 포함하여 지난 몇 년 동안 노동조합운동에 대한 당의 모든 실제적 활동은 제14차 당 대회도 인정한 것처럼, 노동조합에 다음과 같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 '노동조합은 자주 편파성을 보이면서 자신의 활동을 통제할 수 없다. 가끔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대중의 경제적 이익을 옹호하고, 노동자 대중의 물질적, 정신적 수준을 가능한 모든 방법으로 끌어올린다는 자신의 원칙과 가장 중요한 임무를 뒷전으로 밀쳐놓고 있다.'

제14차 당 대회 이후에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노동조합의 관료주의화가 한층 더 진전되었다.

10개 산별노동조합의 선출직 집행기구에서 현장 출신 노동자나 전투적인 무당파 노동자의 비율은 극히 적다(12~13%). 노동조합협의회 대의원의 압도적 다수는 조직적 노동과 완전히 분리된 사람들이다(〈프라브다〉, 1927년 7월 23일자). 지금처럼 노동조합과 평조합원 노동자가 사회주의적 산업 관리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던 적은 일찍이 없었다.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 대중의 자주적 행동은 당 그룹의 서기, 공장 관리자, 그리고 공장위원회 의장('3인조') 사이의 협정으로 대체되고 있다. 공장/직장위원회에 대해 노동자는 불신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총회 출석자 수가 낮다.

노동조합에서 출구를 찾지 못한 노동자의 불만은 마음속에 쌓였다. '너무 적극적이어서는 안 된다. 한 입의 빵을 원하면, 말을 너무 많이 하지 말라.' 아주 흔히 이러한 말을 한다(모스크바위원회의 자료, 노동자총회에 대한 보고, 〈정보평론지>, 30쪽 등을 보라). 이런 상황에서는 불가피하게 노동자가 노동조합 조직의 범위를 넘는 행동으로 자신의 상황을 개선하려는 시도가 더욱 빈번해진다. 이것만으로도 현 노동조합 체제의 근본적 변화를 단호하게 명령한다.

가장 중요한 실천적 제안

가. 노동자의 물질적 상황에 대해서

1. 1일 8시간 노동을 연장하려는 모든 편향을 근본적으로 중단할 것. 절대적으로 불가피한 경우에만 시간외 노동을 허용할 것.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용을 남용하거나 정규직 노동자를 '계절노동자'로 취급하는 것을 용납하지 말 것. 이전 규정을 어기며 도입한 불건전한 업계의 노동시간 연장을 모두 취소할 것.

2. 가장 당면한 임무는 임금을 적어도 달성된 노동생산성 증대에 부합하도록 끌어올리는 것이다. 향후 방침은 가능한 한 노동생산성 증대에 부합하도록 실질임금을 체계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다양한 노동자 집단의 임금을 상향 즉, 고임금 집단의 임금을 인하하는 것이 아니라, 저임금 집단의 임금을 체계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통해서 균등화 시켜야 한다.

3. 합리화 조치의 관료적 남용을 철저히 종식시켜야 한다. 합리화는 공업의 적절한 발전, 노동력의 계획적 배분, 그리고 노동자계급, 특히 숙련노동자 중핵을 활용하지 못하는 생산력 낭비에 대한 투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야한다.

4. 실업의 악영향을 완화하기 위해서 (ㄱ) 실업수당은 실제로 해당 지역의 평균 임금에 부합하도록 조정되어야 한다. (ㄴ) 실업의 장기화를 예상해서, 수당의 지급기간을 1년에서 1년 6개월로 늘려야 한다. (ㄷ) 사회 보험기금에 대한 기업의 분담금 축소가 더 이상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사실상의 분담금 지불거부에 대해서는 실질적인 투쟁이 수행되어야 한다. (ㄹ) 사회보험기금을 공중보건위생 법령에 따라 쓰는 것은 중지되어야 한다. (ㅁ) '피보험자에 대해 돈을 아끼려는' 성향과 정력적으로 투쟁해야 한다. (ㅂ) 실제로 실직한 노동자들이 실업수당을 받고 직업안정소에 등록할 권리를 다양한 구실로 박탈하는 모든 규정을 폐기해야 한다. (ㅅ) 산업노동자부터 시작하여 실업수당의 증액을 우리의 방침으로 삼아야 한다. 실업자가 우리나라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을 위해 최대한 유리하게 활용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공공사업 계획을 폭넓게 구상하고 신중하게 세워야 한다.

5. 노동자의 주거 상황을 계획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모든 주택문제에서 확고한 계급정책을 수행할 것. 노동자를 희생하여 비(非)노동자 분자의 주거 상황을 개선해서는 안 된다. 해고된 노동자와 주간 노동시간과 임금이 줄어든 노동자를 퇴거시켜서는 안 된다.

주택협동조합의 더욱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 효과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 주택협동조합은 저임금 노동자가 접근하기 쉬어야 한다. 사무직노동자 상층이 산업노동자용으로 예정된 아파트를 양도받는 것이 허락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주의 정책과 명백히 상반되는 국가계획위원회의 주택건설 계획은 거부되어야 한다. 다음 5년에 노동자 주택문제의 확실한 개선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기업으로 하여금 주택건설 비용, 가계보조수당, 신용대부를 충분히 늘리도록 강제하지 않으면 안 된다.

6. 단체협약은 노동자 모임에서 가짜가 아니라 진짜 토론을 거친 다음 체결되어야 한다. 다가오는 당 대회는 공장 경영진에 강제적 중재권을 주고 있는 제14차 당 대회의 결정을 폐기시켜야 한다. 노동법은 노동자의 최대한이 아니라 최소한의 요구 권리를 규정한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단체협약은 협약기간 내내 산업노동자와 사무직노동자 수를 축소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포함해야 한다(허용할 수 있는 예외는 명확히 규정되어야 한다). 생산 기준은 우수한 노동자가 아니라 평균적인 노동자에 기초하여, 그리고 임금협약의 전 기간에 대해서 산정되어야 한다. 어쨌든 이전 협약과 비교하여 노동자의 상황을 악화시키는 단체협약의 모든 변경은 용납할 수 없다고 선언해야 한다.

7. 임금표준국(The Bureau of Wages and Standards)은 노동조합과 노동자에 의해 좀 더 효과적인 통제를 받아야 한다. 임금과 작업 기준의 계속적인 변경은 중지되어야한다.

8. 안전설비와 노동조건의 개선을 위한 지출이 증액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안전 규정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중형이 부과되어야 한다.

9. 노동법에 대한 모든 해석은 재검토되어야 하며, 노동조건의 악화를 결과한 해석은 폐지되어야 한다.

10. 여성노동자에게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적용되어야 한다. 여성 노동자가 숙련된 기술을 배울 준비를 시켜야 한다.

11. 무보수 실습노동은 금지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청년노동자의 임금을 줄이려는 기도도 금지되어야 한다. 이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12. 어떠한 경우에도 효율적 체제를 위해 노동자의 생활수준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노동자에게서 가져간 '사소한 것'(탁아소, 전차 무료티켓, 장기 휴가 등)은 반환되어야 한다.

13. 노동조합은 계절노동자 문제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4. 노동자를 위한 공장의 의료서비스(공장 부속 의무실이나 진료소 등)를 늘려야 한다.

15. 노동자계급 지구에서 노동자 자녀를 위한 학교 수를 늘려야 한다.

16. 노동자 소비협동조합을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국가적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나. 노동조합 활동에 대해서

1. 노동조합의 활동은 주로 노동조합이 현존하는 경제적 한계 내에서 노동자의 경제적, 문화적 이해를 보호하는 정도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

2. 노동자 대중의 경제적, 문화적 이해에 영향을 미치는 조치를 검토함에 있어서 당 조직은 이런 문제에 대한 노동조합 내 공산당 분파의 보고를 먼저 경청해야한다.

3. 노동조합의 활동은 모든 수준에서 조합원에 대한 진정한 선거, 공개, 신뢰, 책임에 토대해야 한다.

4. 산업의 모든 관리기관은 해당 노동조합 조직과 가짜가 아닌 진짜로 합의하여 구성되어야 한다.

5. 모든 노동조합 대회(전연방 대회를 포함하여)와 노동조합의 선거 기관(전연방노동조합 중앙평의회를 포함하여)에서 생산에 직접 종사하는 노동자가 과반수는 되어야 한다. 이런 기관들에서 무당파 노동자의 비율은 적어도 3분의 1로 늘어나야 한다. 

노동조합 기구 관료의 일정한 수는 정기적으로 생산 활동으로 복귀해야 한다.

노동조합 활동에서 자발적인 활동을 좀 더 이용할 것, 자발적인 활동 원칙을 더 광범하게 적용할 것, 이러한 활동에 공장 노동자를 좀 더 끌어들일 것.

6. 당내의 견해 차이 때문에 노동조합 조직의 선출직 공산당원의 해임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7. 관리기관으로부터 공장위원회와 지방 노동조합위원회의 완전한 독립이 보장되어야 한다. 노동자의 고용과 해고, 그리고 2주 이상 노동자를 다른 일로 전환 배치하는 것 一 이 모든 것은 공장위원회에 알린 다음에야 실행되어야 한다. 이런 영역의 악폐에 맞서 싸우면서 공장위원회는 경영진의 결정에 대해서 해당 노동조합과 고충처리위원회에 호소하는 자신의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

8. 노동자신문 통신원에게는 명확한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부정행위를 폭로했다는 이유로 노동자 통신원을 박해하는 사람들은 엄격하게 처벌되어야 한다.

비판하거나, 독자적인 제안을 하거나, 독자적인 투표를 한 노동자를 직간접으로, 공개적이거나 은폐된 형태로 박해하는 것을 국가에 대한 중죄로 처벌하는 조항을 형법에 삽입시켜야 한다.

9. 생산협의회의 통제위원회 역할은 생산협의회의 결정이 어떻게 실행되고 있는지 감시하고,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이해가 보호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포함하여 확대되어야 한다.

10. 국영기업의 파업 문제에 대해 레닌이 제안한 제11차 당 대회의 (파업을 합법화한) 결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파업에 관한 한, 이권기업도 다른 개인기업과 같은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11. 노동통계의 시스템 전체가 개정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방식의 통계는 노동자계급의 경제적, 문화적 상태에 대해 그릇되고 명백히 수정된 상을 보여준다. 따라서 노동자계급의 경제적, 문화적 이해를 옹호하는 모든 활동을 적지 않게 방해한다.

물론 10월혁명 10주년을 맞은 노동자계급이 처한 가혹한 상황은 결국 나라의 빈곤, 외국의 간섭과 봉쇄 결과, 최초의 노동자국가를 둘러싸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의 끊임없는 투쟁에 의해 설명된다. 이 상황은 일거에 바뀔 수 없다. 그러나 올바른 정책을 따른다면, 바뀔 수 있고, 또 바꿔져야 한다. 볼셰비키의 임무는 우리의 성과 一 물론 진짜 실재하는 성과 一 를 격찬하거나 자기만족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수행 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지, 무엇이 수행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올바른 정책을 따라 무엇을 수행할 수 있는지 하는 문제를 단호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제기하는 것이다.

 

제3장 농민 - 농업문제와 사회주의 건설

'소규모 생산은 … 자본주의와 자본가계급을 끊임없이, 매일, 매시간, 자연발생적으로, 대규모로 낳고 있다.' (레닌, 〈'좌익' 공산주의 - 유아적 혼란〉, 《전집》, 제31권, 24쪽)

노동자국가가 산업의 고도한 발전과 전화(電化)에 의지하여 수백만의 소농과 영세소농 경영의 기술적 후진성을 극복하고, 대규모 생산과 집단화에 기초하여 이들을 조직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자본주의가 농촌에 거점을 마련하여 도시에서도 사회주의의 토대를 침식할 것인가 둘 중 하나이다.

레닌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농민一즉, 타인의 노동을 착취하지 않는 본래의 농민 대중一은 핵심 동맹세력이고, 이 동맹세력과의 올바른 관계는 노동자 독재의 안전, 따라서 사회주의 혁명의 운명에 결정적이다. 우리가 현재 통과하고 있는 단계에 대해서 레닌은 다음과 같은 말로 농민에 대한 우리의 임무를 가장 정확하게 정식화했다 : '중농과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쿨락에 대한 투쟁을 한시도 포기하지 않는 동시에, 빈농에게만 굳게 의지하는 것이다.'(레닌, '피티림 소로킨의 귀중한 고백', 《전집》, 제28권, 191쪽)

스탈린-부하린 그룹은 다음과 같은 주요 방향을 따라 농민 문제에 대한 레닌주의의 수정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1. 강력한 사회주의적 산업만이 집산주의 노선에 따라 농민이 농업을 변화시키는 것을 도울 수 있다는 마르크스주의의 중심 원리 가운데 하나를 포기하는 것.

2. 농촌에서 노동자 독재의 사회적 기반인 농장노동자와 빈농을 경시하는 것.

3. 농업정책에서 이른바 '경제력이 있는' 농민 즉, 실제로는 쿨락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 것.

4. 농민적 소유와 농경의 소부르주아적 성격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직접적으로 부정하는 것. 이것은 마르크스주의 입장에서 사회혁명당 이론으로의 일탈이다.

5. 현재 농촌의 발전에서 자본주의적 요소를 과소평가하고, 농민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계급 분화를 쉬쉬하는 것.

6. '쿨락과 쿨락 조직은 어차피 가망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발전 구조는 노동자 독재의 구조에 의해 미리 결정되어 있기 때문이다.'(부하린, '사회주의로 가는 길과 노농동맹', 49쪽)라는 취지로 사람들을 달래는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

7. '쿨락의 협조적 중핵이 우리 시스템에 접목될 수 있다'(부하린, 앞의 글, 49쪽). '문제는 이렇게 표현될 수도 있다. 즉, 부유한 농민의 경제적 발전 가능성, 쿨락의 경제적 발전 가능성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프라브다〉, 1925년 4월 24일자)는 정책적 판단.

8. 레닌의 '협동조합 계획'을 그의 전화(電化) 계획에 대립시키려는 시도. 레닌 자신의 생각에 따르면, 이 두 계획의 결합만이 사회주의로의 이행을 보증할 수 있다.

공식 정책의 이런 수정주의 경향에 의지하여 새로운 자본가계급의 대표자들은 국가기구의 특정 부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공공연하게 농촌에 대한 우리의 정책 전체를 자본주의의 길로 돌리려고 열망하고 있다. 동시에 쿨락과 그 이데올로기적 옹호자들은 자신의 야망을 생산력 발전이나 상품생산 '일반'의 양적 증대 등을 걱정하는 체하며 은폐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생산력의 쿨락적 발전과 상품생산의 쿨락적 증대는 나머지 대다수 농민 경영 전체의 생산력 발전을 억누르고 방해하는 것이다.

상대적으로 신속한 농업의 재건 과정에도 불구하고 농경의 제1차 상품 생산은 매우 뒤떨어진다. 1925~26년에 시장에 출하한 상품의 총량은 전전(戰前) 수준의 64%에 불과하고, 수출량은 1913년 수출의 24%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의 원인은 농촌 자체의 총 소비량이 증가한 것은 제쳐 놓고(인구 증가와 농경지 분할 때문이며, 곡물생산지 농가의 38%가 추가로 곡물을 산 결과이기도 하다.), 농산물 가격과 공산물 가격의 협상가 격차와 쿨락의 재빠른 식량 축적에 있다. 국가계획위원회의 5개년 계획도 '대체로 공산품의 부족이 도시와 농촌 사이의 상품 등가교환에 명확한 한계를 짓고 있으며, 시장에 내놓을 농산품의 양을 가능한 한 줄이게 하고 있다'(117쪽)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산업의 낙후가 농업의 성장과 특히 농업의 제1차 상품 생산의 증대를 더디게 하고 있다. 이것은 도시와 농촌의 결속(스미치카)을 침해하고, 농민 사이의 급속한 계급 분화를 이끌고 있다.

농민정책의 논쟁점에 대한 반대파의 견해는 그 올바름이 포괄적으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확증되었다. 반대파의 날카로운 비판에 몰려서 가해진 '일반적 방침'의 부분적 수정은 공식 정책이 '경제력이 있는 농민' 쪽으로 계속해서 일탈하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다. 이를 증명하는 것은 제4차 소비에트 대회가 칼리닌의 보고에 근거한 결의문에서 농촌의 계급 분화나 쿨락의 성장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러한 정책의 결과는 빈농의 지지를 잃고, 중농을 획득하지도 못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농민 사이의 계급 분화

최근에 농촌지역에서는 자본주의적 방향의 분화가 상당히 진척되었다.

지난 4년 동안에 경작지가 아예 없거나 얼마 안 되는 농민 그룹은 35~45%가 감소했다. 6~10데샤틴(17~28에이커)의 경작지를 가진 그룹은 같은 기간에 100-120% 증가했다. 10데샤틴 이상의 경작지를 가진 그룹은 150~200%나 증가했다. 경작지가 아예 없거나 얼마 안 되는 농민 그룹의 비율이 감소한 것은 주로 이들이 파산 용해되었기 때문이다. 그 한 예로, 시베리아에서는 1년 동안 경작지가 없는 농가의 15.8%와 경작지가 2데샤틴 미만 농가의 3.8%가 사라졌다. 북부 코카서스에서는 경작지가 없는 농가의 14.1%와 경작지가 2데샤틴 미만 농가의 3.8%가 사라졌다.

말도 농기구도 없는 농가가 중농의 하층으로 출세하는 과정은 대단히 완만하게 진행되고 있다. 소비에트연방 전체에서 오늘날까지 말도 농기구도 없는 농가는 30-40%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은 정말 얼마 안 되는 경작지를 가진 농민 그룹으로 분류된다.

북부 코카서스에서 주요한 생산기구의 분포는 다음과 같다 : 50%의 영세농가에 생산수단의 15%가 속해 있다. 35%의 중농 그룹에 생산수단의 35%가 속해 있으며, 15%의 최상층 그룹에 생산수단의 50%가 속해 있다. 이와 똑같은 생산수단 분포 실태를 다른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시베리아, 우크라이나 등).

경작지와 생산수단 분포의 이런 불균등성은 각 농민 그룹 사이의 불균등한 곡물 저장 분포에서도 다시 확인된다. 1926년 4월 1일 현재 농촌에서 전 잉여곡물의 58%가 6%의 농가 수중에 있었다(〈통계평론〉, 1927년 제4호, 15쪽).

토지 임대는 매년 그 면적이 더욱 더 커지는 양상이다. 토지를 임대하는 농가는 대개,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대경작지 농민이다. 대부분의 경우, 이들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서 토지를 임대한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농기구와 가축이 없는, 경작지가 얼마 안 되는 농가는 대부분 농기구와 가축을 빌려 토지를 경작한다. 토지의 임대조건과 농기구, 가축의 임대조건 모두 거의 노예와 같은 수준이다. 현물 갈취와 나란히 고리대금업도 팽창하고 있다.

농가의 계속적인 분리는 계급분화 과정을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화시킨다. 농기계와 신용대부는 농업의 사회화를 위한 지렛대 구실을 하기는커녕 거의 언제나 쿨락과 부유한 농민 수중에 들어감으로써 농장 노동자, 빈농, 하층 중농을 착취하는 데 기여한다.

최상층 농민 그룹의 수중에 경작지와 생산수단의 이러한 집중 외에도 이 최상층이 고용노동자를 쓰는 정도도 꾸준하게 증대하고 있다.

이에 반해서, 빈농과 일부 중농 그룹의 점점 더 많은 수가 고용노동자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는 가구의 완전한 파산과 용해나, 개별 가족 구성원의 강제적 분리의 결과이다. 이런 잉여 농장노동자는 쿨락이나 '강한' 중농에게 예속되거나, 상당수가 도시로 떠나지만 일자리를 전혀 찾지 못한다.

이런 과정이 상당히 진척되고 있으며, 따라서 중농이 차지하는 경제적 비중의 상대적인 감소로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농은 여전히 수적으로는 농촌에서 가장 큰 그룹이다. 농업에서 중농을 사회주의 정책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노동자 독재의 가장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이다. 한편으로 '더 강한 농민에게 기대를 거는 것'은 실제로 이 중농층의 한층 더한 붕괴에 기대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장노동자에게 적절한 주의를 기울이고, 중농과 동맹하여 빈농에게로 향하고, 쿨락과 단호하게 싸우고, 농촌에서 산업화, 계급적 협동조합, 계급적 신용대부 체계를 향한 진로를 정함으로써만 중농을 농업의 사회주의적 전환 임무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실천적 제안

지금 농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급투쟁에서 당은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농장노동자, 빈농, 본래의 중농 대중의 선두에 서서 이들을 쿨락의 착취 의도에 대항해 조직해야 한다.

농업 노동자계급一노동자계급의 일부이다一의 계급적 입장을 강화하고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산업노동자의 상태에 관한 절에서 지적한 것과 같은 일련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농업 신용대부가 대부분의 농촌에서 부유한 그룹의 특권이 되어있는 사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도 미미한 수준인 빈농 부조기금이 자주 원래 목적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부농과 중농 그룹에 도움이 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끝장내야 한다.

농촌에서 개인농장의 증대는 집단농장의 더 급속한 발전으로 상쇄되어야 한다. 집단농장으로 조직된 빈농을 해마다 체계적으로 도울 기금을 예산에 계상(計上)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집단농장에 속하지 않은 빈농에 대해서도 과세의 완전 면제, 적당한 구획의 토지할당과 농기구 구입을 위한 신용 제공, 농업협동조합 참여 유도를 통해 좀 더 체계적인 도움을 주어야 한다. 계급적 내용을 완전 결여하고 있으며, 실제로 농촌 상층부의 지배적 역할의 강화시킬 '소비에트를 활성화시킴으로써 무당파 농민활동가 중핵을 창출하라'는 슬로건(스탈린-몰로토프) 대신에 우리는 농장노동자, 빈농, 그리고 빈농에 가까운 중농 사이에서 무당파 활동가 중핵을 형성하라는 슬로건을 채택해야 한다.

우리는 선거, 조세 캠페인, 신용이나 농기계 등의 분배 조정, 토지 구획과 그 이용, 협동조합 수립, 빈농에 할당된 협동조합 수립을 위한 기금의 활용 등과 같은 대단히 중요한 정치적, 경제적 문제들에 집중한 실질적, 계획적, 보편적, 영속적 빈농조직이 있어야한다.

당은 모든 수단을 통해, 즉 사려 깊은 곡물 가격정책을 실시하고, 중농이 접근하기 쉬운 신용대부와 협동조합을 조직하고, 가장 수가 많은 이 농민층에게 기계화된 대규모 집단농업의 이로움을 체계적, 점진적으로 알리는 것을 통해 중농의 경제적 향상을 촉진해야 한다.

증대하고 있는 쿨락 계층과 관련한 당의 임무는 이들의 착취 시도를 모든 측면에서 제한하는 것이어야 한다. 착취 분자들에게서 소비에트 선거권을 박탈하고 있는 헌법조항으로부터 어떠한 일탈도 허용돼서는 안 된다. 다음과 같은 조치가 필요하다 : 대폭적인 누진과세 제도, 농촌의 고용노동자 보호와 농업노동자의 임금을 조정하기 위한 입법 조치, 토지 구획과 이용과 관련한 올바른 계급적 정책, 농촌에 트랙터나 다른 생산기구를 공급하는 것에 대해서도 같은 정책이 필요하다.

농촌에서 증대하고 있는 토지 임대제도, 현재의 토지이용 방식, 농촌공동체一더욱 더 쿨락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소비에트의 지도와 통제범위 밖에 있는一에 의한 토지의 처분, 토지 재분할시의 '배상금'에 대한 제4차 소비에트 대회가 채택한 결의문一이 모든 것은 토지 국유화의 토대를 침식하고 있다.

토지 국유화를 강화하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조치 가운데 하나는 이런 농촌공동체를 국가의 지방기관에 종속시키고, 토지구획, 이용과 관련한 모든 문제에 대해 쿨락이 제거된 지방소비에트의 확고한 통제권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 통제의 목적은 쿨락의 발호로부터 빈농과 하층 중농의 이해를 최대한 옹호하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에 기초하여 우리는 농촌공동체에 대한 쿨락의 지배를 없애기 위해서 일련의 보완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특히 지주인 쿨락을 농촌에서 소비에트 권력기관의 감독과 통제에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전면적이고 무조건적으로 복종시킬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

당은 노동자계급 독재의 대들보 가운데 하나인 토지 국유화의 폐기 또는 침식시키는 기미가 있는 모든 경향에 대해서 충격적인 타격을 퍼부어야 한다.

단일 농지세(a single agricultural tax)라는 현행 제도는 대부분의 중농에게 추가적인 세금을 부과하는 일 없이, 극빈농가와 영세농가의 40-50%에 대한 모든 과세를 면제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세금 징수일은 하층 납세자 그룹의 사정(私情)에 맞춰야 한다.

국영농장과 집단농장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상당히 많은 금액이 예산에 계상되어야 한다. 신설된 집단농장이나 그 밖의 집산주의 형태에 대해서 최대한의 편의가 제공되어야 한다. 선거권을 박탈당한 사람들이 집단농장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협동조합의 모든 활동은 소규모 생산을 집단적 대규모 생산으로 전환시킨다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농기계 공급 분야에서 확고한 계급적 정책이 수행되어야하며, 농기계 공급을 미끼로 사기 치는 집단에 대한 각별한 투쟁이 수행되어야한다.

토지 구획에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토지는 집단농장과 빈농가에 할당되어야 한다. 이들의 이해가 최대한 보호되어야한다.

곡물이나 다른 농산품의 가격은 빈농과 본래의 중농 대중에게 적어도 현재 수준을 유지하면서 서서히 이를 개선할 가능성을 보증해야 한다. 가을과 봄 사이에 곡물 가격의 불균형을 없애기 위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이 불균형은 빈농에게 크게 불리해서 상층에게만 득이 되기 때문이다.

빈농기금의 지출을 대폭 증액시키는 것뿐만 아니라 빈농과 하층 중농에게 저리 장기 신용대부를 제공하고, 담보와 신원보증인을 요구하는 현행 제도를 철폐하도록 농업신용의 목표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협동조합에 대하여

농촌에서 사회주의의 건설 임무는 기계화된 대규모 집단적 생산 노선을 따라 농업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대부분의 농민에게 이를 위한 가장 간단한 길은 레닌이 ‘협동조합에 대하여’(On Cooperation)라는 글에서 서술한 것처럼, 협동조합이다. 이것은 노동자 독재와 소비에트체제 전체가 농민에게 제공하는 거대한 이점이다. 증대하는 농업의 산업화 과정만이 이러한 사회주의적 협동조합(또는 집산주의)의 광범한 토대를 놓을 수 있다. 생산방식의 기술혁명 없이 즉, 농기계 없이, 윤작(輪作) 없이, 인조비료 없이 농업의 진정한 집산주의 쪽으로는 좋은 결과나 주요한 성과를 거둘 수 없다.

구입/판매 협동조합은 다음과 같은 경우에만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 (1) 이 과정은 특히 대공업과 노동조합의 사회주의자 부위의 직접적인 경제적, 정치적 영향을 받아 전개된다. (2) 농업협동조합의 판매 기능을 하는 이 과정은 서서히 농업 자체의 집산주의를 이끈다. 농업 협동조합의 계급적 성격은 협동조합에 속하는 다양한 농민 그룹의 수적 비중뿐만 아니라 특히 이 그룹들의 상대적인 경제적 비중에 따라서도 결정될 것이다. 당의 임무는 농업협동조합이 빈농과 중농 그룹의 진정한 조합이 되도록 조치하는 것이며, 이 조합이 증대하는 쿨락의 경제력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이들 부위의 무기가 되도록 조치하는 것이다. 우리는 농업 노동자계급을 협동조합을 수립하는 임무에 체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성공적인 협동조합의 조직화는 참여자가 자주적 진취성을 최대한 누리는 경우에만 생각할 수 있다. 대공업, 노동자국가와 협동조합의 적절한 관계는 관료적인 규제 방식을 제외한 협동조합 조직의 정상적 체제를 전제로 한다.

농촌에 대한 볼셰비키주의의 근본 방침으로부터 당 지도부의 명백한 일탈, 즉 부유한 농민과 쿨락에 의지하는 그 경향 때문에, '빈농의 환상', '식객 근성', '무사안일주의', 따라서 빈농은 소비에트연방을 방어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는 것으로 추정하는 반(反)노동자적 발언으로 이 정책을 은폐하고 있기 때문에一이런 사정 때문에, 우리 당 강령의 약속을 상기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강령은 우리에게 중농과의 동맹이 가지는 결정적 중요성을 모호하지 않게 주장하는 동시에, 다음과 같이 뚜렷하고 간결하게 밝히고 있다 : '농촌에 대한 활동에서 러시아공산당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농촌의 노동자, 반(半)노동자 집단의 지지를 구한다. 무엇보다도 이들을 독자적인 세력으로 조직하고, 농촌에서 당 세포, 빈농 조직, 농촌의 노동자와 반(半)노동자를 위한 특수한 유형의 노동조합 등을 창출하며, 이들을 더욱 도시 노동자계급과 접촉시키고, 농촌 자본가계급과 소(小)소유자적 이해관계의 영향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제4장 국영기업과 사회주의 건설

산업 발전의 속도

'농업을 개혁할 수 있는 기계제 대공업이 사회주의를 실행할 수 있는 유일한 물질적 기초이다.'(레닌, '공산주의인터내셔널 제3차 대회 - 러시아공산당의 전술 보고를 위한 테제', 《전집》, 제32권, 459쪽)

현재 초기 단계에 있으며, 현재 처한 역사적 상황一자본주의의 포위와 세계혁명의 지연一에서 사회주의 발전의 기본적 조건은 가까운 장래에 적어도 다음과 같은 문제의 해결을 보장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급속한 산업화의 속도이다.

1. 국내에서 노동자계급의 물질적 지위는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도 강화되어야 한다(취업 노동자 수의 증대, 실업자 수의 감소, 노동자계급의 물질적 수준의 개선, 특히 기본적 후생 기준에 맞도록 1인당 주거 공간을 늘리는 것).

2. 공업, 운수, 발전소는 성장하는 경제적 잠재력에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나라 전체의 증대하는 수요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작동을 늘려야 한다.

3. 농업은 공업에 원료를 확대 공급할 수 있도록 더 높은 기술 수준에 이를 수 있어야 한다.

4. 생산력의 발전, 기술적 진보, 노동자계급과 근로대중의 더 높은 생활수준과 관련하여 소비에트연방은 앞으로 자본주의 국가들에 점점 더 뒤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따라잡아야 한다.

5. 산업화는 국가의 방어, 특히 군수산업의 적절한 성장을 보증할 정도로 충분해야한다.

6. 사회주의, 국가소유, 협동조합 요소들은 전(前)사회주의적 경제 요소(자본주의적 요소와 전(前)자본주의적 요소)들을 일부는 밀쳐내고, 다른 일부는 종속시키고 전환시키면서 체계적으로 강화되어야 한다.

공업 전화(電化) 운수 분야의 상당한 성공에도 불구하고 산업화는 필수적이고 가능한 발전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산업화의 현재 속도와 다가올 몇 년 동안 예시된 속도는 분명히 불충분하다.

물론 우리에게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일거에 해결할 기회를 주거나, 우리의 경제적, 문화적 수준의 체계적인 향상을 단기간에 끝낼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은 있지도 않고, 또 있을 수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적, 문화적 후진성이야말로 우리나라의 가능한 한 가장 빠른 산업화를 위해서 우리의 축적된 모든 여력의 합리적이고 시기적절한 동원, 우리가 가진 모든 자원의 올바른 활용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인구 증가, 경제, 사회시스템 전체의 필요와 요구에 대한 운수 전화(電化) 건설뿐만 아니라 공업의 만성적 뒤처짐은 나라의 경제적 순환 전체를 무시무시한 바이스처럼 꽉 죄고 있다. 시장성이 있는 일부 농업 생산물의 판매와 수출이 줄고 있다. 수입은 아주 좁은 범위로 제한되어, 물가와 생산원가를 끌어올린다. 또한 체르보네츠(chervonetz)의 불안정성을 초래하고, 생산력 발전을 더디게 한다. 노동자와 농민 대중의 물질적 상태의 모든 개선을 지연시킨다. 실업의 위험한 증대와 주택 사정의 악화를 초래한다. 공업과 농업의 유대를 위태롭게 하고, 나라의 방어능력을 약화시킨다.

불충분한 공업 발전의 템포는 동시에 농업의 성장 지연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농업에서 생산력 수준을 결정적으로 끌어올리고, 시장에 내다 팔 농업 생산물을 늘리지 않고는 어떠한 산업화도 불가능하다.

물가

공산품의 생산원가와 도매, 소매가격을 체계적이고 단호하게 낮추고, 세계시장 가격에 보다 접근시키지 않고는 산업화에 필요한 가속도가 붙을 수 없다. 이것은 더 높은 기술적 수준에서 우리의 생산을 촉진하고, 노동자 대중의 요구를 더 잘 만족시킨다는 의미 모두에서의 진정한 발전을 의미할 것이다.

반대파가 물가를 올리고 싶어 하는 것으로 추정하는 무의미하고 볼썽사나운 항의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 되었다. 물가를 낮추고 싶어 하는 점에서 당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바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정책은 그 의도가 아니라 결과로 판단되어야 한다. 물가를 낮추려는 현재 투쟁의 결과는 지도부의 관록 있는 위원조차 이 정책으로 거액의 돈을 날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여러 차례 제기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올해 1월에 부하린은 ‘10억 루블이 어디로 갔는가?’라고 캐물었다. 같은 주제에 대해 그에 뒤이어 발언한 루주타크는 '도매가격과 소매가격의 차이는 어떻게 되는가?'라고 물었다(1927년 3월 3일 정치국 의사록, 20~21쪽). 상품의 만성적 부족을 고려하면, 도매가격을 대폭, 그것도 관료적으로 투박하게 인하해도 그 혜택은 대부분의 경우 노동자와 농민에게까지 미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영기업이 몇 억 루블씩 손실을 입는 것으로 끝난다. 도매가격과 소매가격의 협상가격차, 특히 사적 무역업자가 관련된 곳에서 필연적으로 확대되는 협상가격차는 너무 어처구니없기 때문에 올바른 정책을 따른다면 이 상업 이윤의 일부를 국영기업이 통제하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의 경제적 경험 전체에서 나오는 부정할 수 없는 결론은 가격 불균형을 가능한 한 신속히 극복하고, 공산품의 생산량을 늘리고, 공업의 발전 속도를 늘려야 할 필요성이다. 이것이 도매가격과 소매가격을 실질적으로 낮추는, 특히 최근에 하강보다는 상승 경향을 나타낸 생산원가 인하에 이르는 주요한 길인 것이다.

국가계획위원회의 5개년 계획(1926~27년도에서 1930~31년도)

다가오는 제15차 당 대회의 의제인 국민경제 발전 5개년 계획의 문제는 당연히 당의 주의를 끄는 초점이 되어야 한다. 국가계획위원회의 5개년 계획은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않은 문서이며, 현재 형태로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문서는 현 경제지도부의 주요 방침에 대한 가장 체계적이고 완성된 표현을 제공하고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공업에 대한 자본투자는 매년 거의 증가하지 않을 것이다(내년에 11억4,200만 루블, 1931년에는 12억500만 루블). 그 결과, 국민경제에 대한 총 투자액에 비례하여 36.4%에서 27.8%로 하락할 것이다. 이 계획에 따르면, 국가예산에서 공업에 대한 순 투자액은 같은 기간에 대략 2억 루블에서 9,000만 루블로 하락할 것이다. 연간 생산 증가율은 전해에 비해 해마다 4~9%로 정해져 있다. 이는 자본주의 국가들의 벼락경기 중에 볼 수 있는 성장률이다. 토지 · 생산수단 · 은행의 국유화와 중앙집중적인 관리에서 비롯하는 거대한 이점一즉, 사회주의 혁명에서 나오는 이점一이 5개년 계획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현재도 빈약한 공산품의 개인적 소비는 5개년 내내 12%밖에 늘어나지 않는다. 1931년에 면직물의 소비는 전전(戰前) 수준의 97%에 이르는 데, 이는 1923년에 미국이 소비한 수준의 5분의 1 정도일 것이다. 석탄 소비는 1926년 독일 소비량의 7분의 1, 1923년 미국 소비량의 17분의 1 정도일 것이다. 선철 소비는 독일 소비량의 4분의 1보다 약간 많은 정도, 미국 소비량의 11분의 1 정도일 것이다. 전력 생산은 독일의 3분의 1, 미국의 7분의 1 정도일 것이다. 종이 소비는 5개년 계획의 마지막 해에 전전(戰前) 수준의 83%에 이를 것이다. 이 모든 것이 10월혁명 15년 뒤의 일이다! 10월혁명 10주년 기념일에 즈음하여 이렇게 빈약하고 철저하게 비관적인 계획을 제출하는 것은 정말로 사회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다. 5개년 계획이 예상한 것처럼, 17%의 소매가격 인하가 실현되더라도 우리나라의 가격과 세계시장의 가격(우리나라의 가격보다 2.5배에서 3배 낮다)사이의 관계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미미한 가격 인하에도 불구하고(게다가 아직까지는 추정에 지나지 않는다) 5개년 계획은 국내의 유효수요와 관련하여 매년 4억 루블의 값어치가 있는 공산품의 부족을 예측한다. 만약 현재의 소름 끼치는 도매가격이 5개년에 걸쳐 22% 인하될 것이라고 추정하면,一적당한 인하 폭 이상이다ㅡ이것만으로도 전부 10억 루블에 달하는 상품 부족을 낳을 것이다. 따라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잘 지켜져, 소매가격을 다시 상승시킬 지속적인 원천이 될 것이다. 5개년 계획은 농민에게 1931년까지 대략 전전(戰前) 분량의 공산품을 1.5배 높은 가격에 제공할 것이라고 약속한다. 대기업 노동자에게는 가격 인하에 대한 근거 없는 기대를 제외하고는, 5개년에 걸쳐 명목임금의 33% 인상을 약속한다. 국가계획위원회의 계획에 따르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노동자가 현재 지불하는 집세를 2~2.5배, 대략 연 4억 루블 인상하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다. 주민의 부유한 계층이 어느 정도 초과적인 구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계획위원회의 관료들은 노동자의 실질임금 삭감으로 상황을 반전시키려 하고 있다. 노동자국가의 책임 있는 기관이 시장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이러한 방식을 제안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이런 완전히 잘못된 전망이 소비자로 하여금 대외무역의 독점을 폐기하는 파멸적인 방식을 통해 우격다짐으로 해결책을 찾게 하는 것이다.

5개년 계획에서 예측한 6,000~7,000베르스타(1베르스타는 1.067km)의 새로운 철도 부설은一예를 들면, 1895~1900년 5년 동안 1만4,000베르스타가 부설된 것에 비해一사회주의적 산업화의 관점에서뿐만 아니라 주요지역의 가장 기본적인 경제적 요구의 관점에서도 위태로울 정도로 불충분할 것이다.

이런저런 방향에서 약간의 조정을 감안하더라도 이것이 우리 경제를 맡고 있는 정부기관의 근본적 방침이다. 실제로 조사해본 현 지도부의 정치노선이란 이런 것이다.

소비에트연방과 세계자본주의 경제

화해 불가능한 적대적 두 사회체제一자본주의와 사회주의一사이의 장기간에 걸친 투쟁의 결과는 결국 각 체제에 상관적인 노동생산성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시장 상황에 영향을 받는 이 노동생산성은 국내가격과 세계가격 사이의 관계로 측정된다. 레닌이 마지막 연설 가운데 하나에서 '우리가 종속되어 있고, 관련되어 있으며, 우리 스스로 끊을 수 없는 국제시장과 러시아시장'에 의해 부과될 '시험'(레닌,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정치보고'(제11차 당 대회), 《전집》, 제33권, 276-277쪽)에 대해 당에 경고 했을 때, 그가 염두에 둔 것은 이런 기본적인 사실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가 어떤 속도로든, 심지어 '달팽이의 속도'로라도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간다는 부하린의 견해는 진부하고 생기가 없는 소부르주아적 환상이다.

우리는 일국에 한정된 경제에 틀어박힘으로써 자본주의의 포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바로 그 폐쇄성 때문에 이러한 경제는 대단히 완만한 속도로 발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결과, 자본주의 육군과 해군('간섭')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값싼 자본주의 상품의 더 약해진 것이 아니라 더 강해진 압력에 부닥칠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들의 기술 수준이 더 높은 상황에서, 대외무역의 독점은 사회주의 건설의 사활에 관계될 만큼 필수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지금 건설 중인 사회주의 경제는 오직 이 사회주의 경제가 기술, 생산원가, 생산품의 질과 가격 면에서 끊임없이 세계경제의 일반적인 수준에 더 가까워질 경우에만 이 독점에 의해 방어될 수 있다. 경제 관리의 목표는 불가피하게 낮은 수준과 발전 속도를 대가로 치르고 폐쇄적이고 자급자족적인 경제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우리의 발전 속도를 최대한 높임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으로,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우리의 상대적 비중을 모든 면에서 늘리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의 것이 필요하다.

1. 수출의 크나큰 의의를 이해하는 것. 수출은 현재, 우리의 경제발전 전체를 위태롭게 할 정도로 뒤처져 있다(세계무역에서 차지하는 소련의 시장점유율은 1913년의 4.2%에서 1926년에는 0.97%로 떨어졌다).

2. 특히 쿨락에 대한 우리의 정책을 바꾸는 것. 이 정책은 쿨락으로 하여금 생산물을 고리대금업자 같이 축적하게 함으로써 사회주의적 수출의 기초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3. 모든 방식으로 산업화를 촉진하고, 우리 경제의 자본주의적 요소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사회주의적 요소를 강화함으로써 세계경제와 우리의 관계를 발전시키는 것.

4. 앞으로 우리의 빈약한 축적여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필요하고 가장 손쉽게 획득한 새로운 유형의 기계 생산一특히 대량생산ㅡ에 서서히, 그리고 신중한 계획을 가지고 투자하는 것.

5. 세계자본주의의 기술적 성과를 체계적으로 이용함으로써 우리의 산업을 능숙하고 슬기롭게 보완하고 자극하는 것.

사회주의의 고립적 발전이나 세계경제와 무관한 발전 속도를 지향하는 것은 전체 전망을 왜곡한다. 이는 우리의 계획적인 노력을 탈선시켜 세계경제와 우리의 관계를 올바르게 관리하기 위한 어떠한 지침도 제공해주지 못한다. 그 결과, 우리 스스로 생산할 것과 외국에서 들여와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결정할 다른 방도가 없게 된다. 고립된 사회주의 경제 이론에 대한 단호한 거부는 다음 몇 년 사이에 비교도 안될 만큼 더 합리적인 자원의 이용, 더 급속한 산업화, 우리나라 기계공업의 더욱 더 계획적이고 강력한 성장을 의미할 것이다. 이는 취업노동자 수의 더 급속한 증가와 물가의 실질적인 저하를 의미할 것이다. 요컨대, 자본주의의 포위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연방을 진정으로 강화시킬 것이다.

세계자본주의와 우리의 관계가 증진되면 봉쇄나 전쟁이 일어날 위험을 앉게 되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앞에서 말해온 모든 것에서 나온다.

물론 전쟁 준비는 해외 원료의 전략적 비축과 예를 들면, 알루미늄 생산 등과 같은 절대로 필요한 새로운 산업의 적시(適時) 구축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장기간에 걸친 심각한 전쟁의 경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산업을 최고도로 발전시키고, 대량생산 능력과 한 가지 생산으로부터 다른 생산으로 기민하게 전환하는 능력 모두를 보유하는 것이다. 최근 역사가 입증한 것처럼, 세계시장에 수천가닥으로 묶여있던 독일 같은 고도로 산업화된 나라는 비록 전쟁과 봉쇄가 전 세계와의 관계를 일거에 끊어버렸더라도 대단한 생명력과 저항력을 보여주었다.

만약 우리 사회체제의 비길 바 없는 이점으로 인해 이 '평화로운' 시기에 우리의 산업발전을 촉진하기 위해 세계시장을 이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훨씬 더 잘 준비되고 더 잘 무장한 어떠한 봉쇄나 간섭에도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정책만으로는 자본주의가 둘러싸고 있는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킬 수 없다. 국내의 과제는 진정한 계급 정책 즉,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진정한 관계에 따라 우리 스스로를 강화시킴으로써 사회주의 건설의 길을 가능한 한 앞당기는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국내 자원은 엄청나서 이를 전적으로 가능하게 한다. 이런 목적에서 우리는 세계자본주의 시장을 이용함과 동시에 우리의 근본적인 역사적 예측을 향후 세계 노동자혁명의 발전과 계속 결부시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노동자혁명의 승리는 자본주의의 포위망을 깨뜨리고, 우리를 견디기 힘든 군사적 부담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우리를 기술적으로 엄청나게 강화시키고, 도시와 농촌, 공장과 학교 등에서 우리의 모든 발전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一즉, 최고의 기술 수준, 그리고 노동과 이 노동의 성과를 누리는 것 모두에서 모든 사회 구성원의 진정한 평등에 기초한 무계급사회一를 실제로 건설할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공할 것이다.

어디에서 수단을 찾을 것인가

진정한 산업화 문제의 더 대담하고 더 혁명적인 해결, 대중의 문화적 수준의 더 급속한 향상 一이 두 문제의 해결이야말로 사회주의 독재의 운명을 좌우한다一을 위한 수단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반대파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근본적 원천은 예산, 신용, 물가의 적절한 운용을 통해서 국민소득을 재분배하는 것이다. 보완적 원천은 세계경제와 우리의 관계를 적절히 활용하는 것이다.

1. 5개년 계획에 따르면, 국가와 지방 모두 예산은 5년에 60억 루블에서 89억 루블로 증가하고, 1931년에는 국민소득의 16%에 이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전전(戰前) 제정시대의 예산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한 비율(18%)보다 더 적다. 노동자국가의 예산은 부르주아국가의 예산보다 국민소득에서 더 큰 위치를 차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차지해서도 안 된다. 물론 이것은 예산이 실제로 사회주의적이며, 보통교육을 위한 지출 증대와 함께 우리나라의 산업화에 대해서 훨씬 더 많은 금액의 책정을 당연시한다. 산업화 필요를 위한 예산에서 순 충당금은 다음 5년 동안 연 5~10억 루블에 이를 수 있고, 또 그렇게 될 것이다.

2. 조세제도는 농민 상층과 새로운 자본가계급 일반의 축적 증대를 따라가지 못한다. 필요한 것은 (ㄱ) 사기업의 모든 초과이득에 과세하여 현재처럼 500만 루블이 아니라, 적어도 1억5,000만~2억 루블까지 징수하는 것. (ㄴ) 수출을 강화하기 위해 전 농가의 약 10%를 이루고 있는 부유한 쿨락 계층으로부터 적어도 1억5,000만푸드(1푸드는 16.38kg, 270만 
톤)의 곡물을 징수하는 것. 이는 1926~27년도에 8~9억 푸드(1,440만 톤 에서 1,620만 톤)에 이른 곡물 비축분에서 대부(貨付) 형태로 징수되어야 한다. 이 비축분의 대부분은 농민 상층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다.

3. 도-소매가격의 체계적이고 꾸준한 인하, 도-소매가격의 '협상가격차'를 줄이는 단호한 정책이 실제로 실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물가 인하가 무엇보다도 노동자와 농민 대중이 필요로 하는 소비재에 적용되는 방향으로 수행되어야 한다(이것은 현재의 관행과는 달리 이미 충분히 낮은 품질을 떨어뜨리는 일 없이 수행되어야 한다). 이 물가 인하는 국영기업이 필요로 하는 축적을 빼앗아서는 안 된다. 주로 상품 생산량의 증대, 생산원가의 인하, 간접비의 축소, 관료기구의 축소를 통해서 수행 되어야 한다. 더 탄력적이고, 시장 상황에 더 적합하며, 더 특화된一즉, 각 상품의 시장 지위를 더욱 고려하는一물가 인하 정책은 현재 대체로 사적 자본과 상업적 기생주의를 조장하는 상당한 금액을 국영기업의 수중에 계속 놓아둘 것이다.

4. 작년에 스탈린과 리코프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연 3~4억 루블을 절감시킬 것으로 추정된 효율적 체제는 실제로 완전히 보잘것없는 결과를 낳았다. 효율적 체제는 계급정책의 문제이고, 대중의 직접적인 압력을 받아야만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노동자는 대담하게 이런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비(非)생산적 지출을 연 4억 루블 줄이는 것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5. 대외무역의 독점, 대외채권, 이권, 기술 원조를 보장하는 협약등과 같은 수단의 능숙한 이용은 추가적인 밑천이 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체 지출의 효율성을 크게 높이고, 최신 기술을 통해 그 효과를 배가시키고, 우리의 발전과정 전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포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진정한 사회주의적 독자성을 강화시킬 것이다.

6. 인원 선발一머리부터 발끝까지一과 이들 사이의 적절한 관계 문제는 어느 정도는 재정적인 문제이다. 인선이 잘못되면 그만큼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해진다. 관료체제는 적절한 인원 선발과 이들 사이의 적절한 관계와 배치된다.

7. 현 경제 지도부의 '추종주의'는 실제로 수 천만 루블의 손실을 의미 한다. 이는 통찰력 결여, 불협화음, 좀스러움, 꾸물거림에 대한 대가이다.

8. 세금 수입만으로는 계속 성장하고 있는 우리 경제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신용은 사회주의 건설 목표에 맞게 국민소득을 재분배하려는 더욱 더 중요한 지렛대가 되어야 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안정된 통화와 건전한 화폐 유통을 가정한다.

9. 투기와 고리대금의 범위를 제한하는 것과 같은 경제에 대한 더 확고한 계급정책은 국가기관과 신용기관의 개인저축 동원을 더 쉽게 할 것 이다. 이는 공업에 장기신용으로 현재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더 폭넓은 자금조달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10. 보드카의 국가 전매는 원래는 전매 수입의 대부분을 산업화, 주로 금속산업의 복구에 충당하려는 목적을 가진 하나의 실험으로 도입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보드카의 국가 전매를 통한 산업화는 결과적으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 실험이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었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소비에트체제에서 보드카의 국가 전매는一짜르체제에서도 그랬던 것처럼一개별 가계의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주로 국영 기업의 관점에서도 반작용적인 요인이다. 결근, 불량품, 낭비, 사고, 화재, 싸움, 부상 등의 증가ㅡ이런 것들이 연간 몇 억 루블의 손실을 더하고 있다. 보드카로 인한 국영기업의 손해는 보드카로 인한 세입에 못지않고, 공업이 배정받는 예산보다 몇 배 더 많다. 되도록 빨리(2~3년 안에) 보드카의 국가 전매를 폐지하는 것이 산업화의 물질적, 정신적 자원을 자동적으로 증대시킬 것이다.

이것이 수단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산업화의 완만한 속도가 자원 부족에서 직접적으로 기인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수단이 부족하지만 존재한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올바른 정책이다.

국가계획위원회의 5개년 계획은 '신경제정책(NEP)의 러시아를 사회주의 러시아로 바꾸는' 임무와 근본적으로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명확히 거부되고, 규탄 받아 마땅하다. 우리는 계급 사이에서 실제로 조세 부담의 재분배ㅡ쿨락과 네프맨에게는 더 무거운 부담을 지우고, 노동자와 빈농은 부담을 덜도록ㅡ를 수행해야 한다.

간접세의 상대적 비중을 축소시켜야 한다. 가까운 장래에 보드카의 국가 전매를 폐지해야 한다.

철도 수송서비스의 재정을 개선해야 한다.

산업의 재정을 개선해야 한다.

등한시한 임업의 활력을 회복시켜야 한다. 임업은 거대한 수입원이 될 수 있고, 또 될 것임에 틀림없다.

기본적인 통화 단위의 무조건적인 안정을 보증해야 한다. 체르보네츠의 안정화는 한편으로 물가 인하와, 다른 한편으로 균형 예산을 필요로 한다. 예산 결손을 메우기 위한 지폐 발행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예산은 결손 없이, 엄격히 목적이 정해져 있어야 하며, 불필요하거나 우연적인 것은 모두 가차 없이 용납하지 않아야한다.

1927~28년도 예산에서 국방(주로 군수산업을 위한), 산업 일반, 전화(電化), 운수, 주택 건설, 농업 집단화로 이어질 조치를 위한 지출을 훨씬 증액해야 한다.

대외무역의 독점을 손상시키려는 모든 기도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경제를 기술적으로 더 강력하게 만들고, 대중의 물질적 상태를 개선시킨다는 목표로 산업화, 전화(電化), 합리화를 위한 확고한 방침을 정해야 한다.

 

제5장 소비에트

그 국가 형태와 무관하게 모든 부르주아 국가의 관료기구는 주민 위에 우뚝 서서, 지배계급 특유의 상호 보호체제를 통해 관료집단을 묶고, 노동자 사이에 지배자에 대한 공포와 복종을 체계적으로 조장한다. 구 국가기관을 노동자 농민 병사 소비에트로 대체시킨 10월혁명은 관료국가의 오랜 우상에 역사상 가장 강력한 타격을 가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 당의 강령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관료주의에 대해 가장 단호한 투쟁을 수행하는 러시아공산당은 이 폐해를 완전히 극복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한다. (1) 소비에트의 모든 구성원을 국가를 통치하는 특정한 임무의 수행에 의무적으로 참여시키는 것. ⑵ 결국 모든 통치 부문을 책임지기 위해 이러한 임무를 정기적으로 돌아가며 수행하는 것. (3)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든 근로 주민을 국가를 통치하는 임무에 점진적으로 참여시키는 것. 이 모든 조치의 완전하고 철저한 실현一빠리꼬뮌이 타오른 자국을 따라 한걸음 더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는ㅡ모든 노동자의 문화적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모든 통치 기능의 간소화는 국가의 폐지를 가져올 것이다.' 소비에트 관료주의의 문제는 단지 형식적 절차나 비대해진 인원의 문제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관료집단이 수행한 계급적 역할의 문제이다. 즉, 관료집단의 사회적 유대와 공감, 그 권한과 특권적 지위, 관료가 네프맨과 미숙련노동자, 지식인과 문맹자, 소비에트 고관의 부인과 가장 무지한 농촌여성 등에 대해 맺고 있는 관계의 문제인 것이다. 관료는 누구의 손을 잡고 있는가? 이것이 수많은 근로인민이 매일 겪는 생활 속에서 검증하고 있는 근본적 문제인 것이다.

10월혁명 직전에 레닌은 빠리꼬뮌에 대한 마르크스의 분석을 언급(〈국가와 혁명〉, 제6장 기회주의자들에 의한 마르크스주의의 속류화를 보라)하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확고하게 강조했다.

'사회주의에서 공무원들은 이미 "관료"나 "관리"(chinovniks : 짜르 시대의 고위관리)가 아닐 것이다. 이들은 선거가 즉각적인 소환권으로 보완되는한, 이밖에도, 이들의 급료를 노동자의 평균임금 수준으로 끌어내린다면, 이밖에도, 의회기관이 "활동하는 기관", 즉 법률을 통과시키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 둘 다를 하는 기관으로 대체된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레닌,〈국가와 혁명〉,《전집》, 제25권, 492쪽의 번역은 적절하지 않다)

소비에트 국가의 기구는 최근에 어떤 방향으로 발전해왔는가? 간소화와 비용을 낮추는 방향인가? 노동자화의 방향인가? 도시와 농촌의 근로대중에게 가까워지고 있는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격차를 줄이고 있는가? 생활조건, 권리와 의무에서 더 많은 평등을 도입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입장인가? 이런 범위에서 우리는 전진하고 있는가? 이런 질문 가운데 어느 것 하나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답변할 수 없다는 것은 아주 명확하다.

물론 실제적이고 완전한 평등은 계급이 폐지되는 경우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신경제정책(NEP) 시기에 평등화 임무는 저지되고 지연되기는 했지만 폐기되지는 않았다. 우리에게 신경제정책(NEP)은 자본주의로 가는 길이 아니라 사회주의로 가는 길이다. 따라서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든 근로주민을 국가를 통치하는 임무에 점진적으로 참여시키는 것이나 더 많은 평등을 위한 체계적인 투쟁은 신경제정책(NEP) 아래에서도 여전히 당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임무이다. 이 투쟁은 나라의 증대하는 산업화와 모든 물질적, 문화적 건설 부문에서 노동자계급의 지도적인 역할 증대에 기초해서만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더 많은 평등을 위한 투쟁은 이행기에 부르주아 국가들에서보다 숙련노동자에게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하고, 전문가의 보수를 인상하며, 교사들에 대해 더 많은 급료를 주는 것 등을 배제하지 않는다.

관료집단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그 수가 늘어났다는 것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스스로를 공고히 하고, 일반주민 위로 발돋움하여, 도시와 농촌의 부유한 분자들과 긴밀하게 맞물리고 있다. 많은 착취분자에 선거권을 부여한 1925년의 '훈령'은 그 최상층까지 관료기구가 부를 축재하고 있는 부유해진 상층 분자들의 집요한 요구에 민감해졌다는 사실의 가장 명백한 표현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실제로 소비에트 헌법을 위반한 이 훈령이 취소된 것은 반대파의 비판 때문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훈령에 따라서 실시된 첫 선거에서는 선거권을 박탈당한 부유한 그룹의 인원수를 가능한 한 많이 줄이려는 의도가 위로부터 조장되었다는 것이 많은 지역에서 벌써부터 나타났다. 그러나 이것도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새로운 자본가계급과 쿨락의 상대적 비중이 계속 높아지고, 관료 집단과 이들이 서로 협력함에 따라, 그리고 대개의 경우 지도부의 잘못된 정책에 따라, 심지어 선거권을 박탈당한 쿨락과 네프맨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배후에서지만 적어도 소비에트 하급기관의 구성과 정책에 여전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925년에 시작되었으며, 부분적으로 반대파의 공격으로 저지된 하층 쿨락, '준(準)쿨락' 분자, 도시 자본가계급의 소비에트 침투 사태는 이를 무시하거나 얼버무린다면, 아주 끔찍한 결과로 인해 노동자 독재를 위협할 수도 있는 심각한 정치적 과정이다.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산업노동자와 모든 근로인민을 국가를 통치하는 임무에 참여시키기 위한 기본적 수단인 시(市)소비에트는 최근에 그 중요한 지위를 잃고 있다. 이것은 계급역관계가 노동자계급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바뀐 것을 반영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소비에트의 단순한 행정적 '재건'을 통해서 이런 현상에 대항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착취자를 단호히 격퇴하고, 예외 없이 소비에트 국가의 모든 제도와 기관에서 노동자계급과 빈농의 활력과 비중을 증진시키는 확고한 계급정책만이 이런 현상에 대항할 수 있다.

우리 국가는 이미 그 자체로 노동자국가이기 때문에 국가가 노동자에게 바싹 다가설 것을 요구할 수 없다는 몰로토프의 '이론'(〈프라브다〉,1925년 12월 13일자)은 상상할 수 있는 관료주의의 가장 악의에 찬 정식이다. 이것은 있을 수 있는 모든 관료적 왜곡을 미리 승인하는 것이다. 소비에트 관료사회의 폭넓은 집단의 공개적이거나 암묵적 공감을 누리는 몰로토프의 이 반(反)레닌주의적 '이론'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현 지도부 아래에서는 사회민주주의적 일탈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이 '이론'과 비숫한 모든 '이론'에 대한 호된 비판은 관료적 왜곡에 대한 진정한 투쟁의 필요불가결한 조건이다. 이러한 투쟁은 단지 일정한 수의 노동자를 관료로 둔갑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구 전체가 일상의 모든 활동에서 노동자와 빈농에게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관료주의에 대한 현재의 공식적 투쟁一노동자의 계급적 활동에 입각하는 것이 아니라 기구 자체의 노력으로 이를 대체하려고一은 어떤 본질적인 성과를 낳지도, 또 낳을 수도 없다. 오히려 많은 경우, 현존하는 관료주의를 촉진하고 강화한다.

최근 각급 소비에트의 내부 생활에서도 분명히 부정적인 여러 과정이 목격되었다. 소비에트는 근본적인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문제의 해결과 점점 더 관련이 없어지고 있다. 집행위원회나 상임간부회의의 단순한 부속기관이 되고 있다. 통치 업무는 집행위원회나 상임간부회의 수중에 완전히 집중되어 있다. 각급 소비에트의 총회에서 문제에 대한 토론은 순전히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소비에트 기구의 선거 사이 기간은 점점 길어지고 있으며, 따라서 소비에트 기관의 독립성은 노동자 대중의 통제로부터 더욱 더 멀어지고 있다. 이것은 모두 모든 문제에 대한 결정에서 관료들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체의 중요한 행정 부문 업무는 대개 1~2명의 공산주의자 수중에 있다. 이들은 각자의 전문가와 부원을 선발하고, 대개는 이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다. 소비에트의 구성원을 올바르게 훈련시킬 수 없다. 업무를 상향식으로 이끈 적도 없다. 이 때문에 소비에트 기구들에는 숙련 노동자가 부족하다는 불평이 끊임없이 나오고, 따라서 더욱 더 관료사회로 권력이 이동하는 것이다.

소비에트의 중요한 행정 분야에 선출된 지도자도 소비에트 의장과 충돌하자마자 해임된다. 이들이 당의 지역위원회 서기와 충돌한 경우에는 훨씬 더 빨리 해임된다. 그 결과, 선거원칙은 무용지물이 되고, 선거인에 대한 책임도 모두 의미를 잃어버린다.

다음의 조치가 필요하다.

1. 반(反)관료주의(chinovnichestvo) 투쟁[치놉니체스트보는 구 러시아의 매우 유해한 형태의 관료주의를 일컫는다.ㅡ옮긴이]에 대해 확고한 정책을 채택하는 것. 즉, 새로운 자본가계급과 쿨락의 착취 권력을 저지하기 위한 진정한 투쟁에 기초하여 당, 노동조합, 소비에트에서 노동자 민주주의의 견실한 발전을 위해 레닌처럼 이 투쟁을 수행하는 것.

2. 노동자국가가一쿨락에 반대하는一노동자, 농장노동자, 빈농, 중농에 더 가까워지고, 국가기구를 근로대중의 근본적 이익에 무조건 종속시킨다는 것을 우리의 슬로건으로 삼는 것.

3. 소비에트를 되살리기 위한 기초로서, 노동자 · 농장노동자 · 빈농 · 중농의 계급적 활동을 증진시키는 것.

4. 시(市)소비에트를 진정한 노동자 권력 기관으로 전환시키는 것, 그리고 광범한 근로인민 대중을 사회주의 건설을 관리하는 임무로 끌어들이기 위한 도구로 전환시키는 것.一지역 집행위원회와 여기에 종속되는 기관의 활동에 대한 시(市)소비에트의 통제를 말이 아니라 실제로 실현시키는 것.

5. 객관적,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면, 선출된 소비에트 관리의 해임을 완전 종식시키는 것. 해임시킬 경우에도 그 이유가 선거인들에게 이해되어야한다.

6. 가장 후진적인 미숙련노동자와 가장 무지한 농촌여성이 어느 국가기관에서도 친절한 배려, 조언, 가능한 모든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확신할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

 

제6장 민족문제

사회주의 발전 속도의 전반적인 지체, 도시와 농촌에서 새로운 자본가계급의 성장, 부르주아 지식인의 영향력 강화, 국가기관들에서 관료주의의 증대, 개악된 당내 제도, 그리고 이것들 모두와 결부된 대국주의(great-power chauvinism)의 성장과 민족주의 일반의 활기一이 모든 것은 각 민족지역과 공화국들에서 가장 병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前)자본주의적 경제형태가 잔존하는 일부 공화국들에서 이런 어려움이 배가되고 있다. 신경제정책(NEP) 아래에서 사적 자본의 역할은 특히 산업적으로 낙후된 변경지역에서 빠르게 증대하고 있다. 이런 지역에서 경제기관은 대개 사적 자본가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이들은 빈농과 중농 대중의 실정을 고려하지 않고 가격을 정한다. 농장노동자의 임금을 인위적으로 낮춘다. 공업과 원료를 공급하는 농민 사이의 사적, 관료적 중개제도를 지나칠 정도로 확장시킨다. 협동조합을 농촌의 부유한 분자들에 매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변화시킨다. 특히 후진적 그룹인 목축업자나 부분적으로 목축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해를 경시한다. 각 민족지역에서 산업 건설 계획 一특히 농업 원료의 가공을 기업화하기 위한 계획一을 실행하는 매우 중요한 임무는 완전히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대국주의 풍조에 의해 고무된 관료주의는 소비에트의 중앙집중화를 각 민족들 사이에서 관리직 할당에 관한 싸움의 원천으로 둔갑시키는 데 성공했다(코카서스연방). 또한 중앙과 변경지역의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고, 실제로 민족회의(Soviet of the Nationalities)의 의의를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렸다[민족회의는 연방회의(Soviet of the Union)와 함께 최고소비에트 회의의 한 축을 이뤘다.ㅡ옮긴이]. 자치공화국에 대한 관료적 후견은 현지인과 러시아인 주민 사이의 토지 분쟁을 해결할 권리를 자치공화국에서 박탈할 정도까지 이르렀다. 오늘날까지, 특히 국가기구를 통해서 자기 생각을 말해온 것처럼, 이 대국주의는 여전히 다양한 민족 노동자의 통합과 단결을 방해하는 주요한 적이다.

빈농에 대한 실질적 지원, 중농 대부분이 빈농, 농장노동자와 더 긴밀한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 빈농과 농장노동자를 독자적인 계급 세력으로 조직하는 것一이 모든 것이 각 민족지역과 공화국에서는 특별히 중요하다. 농장노동자를 실제로 조직화하지 않는다면, 협동조합을 구성하고 빈농을 조직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전통적 예속상태에 있는 동부지역을 후진적 농촌으로 남겨두고, 이들 지역에서 우리 당 조직은 근로인민과의 진정한 관계를 전부 잃어버릴 위험을 무릅써야 할 것이다.

더 후진적이며, 최근 깨어나고 있는 민족들에서 공산주의자의 임무는 민족적 각성 과정이 소비에트 사회주의적 경로를 따르도록 지도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특히 각 지방의 언어와 학교의 발전, 소비에트 기관의 '민족화'를 촉진함으로써 근로대중을 경제적, 문화적 건설 임무로 끌어들여야한다.

다른 민족들이나 소수민족 사이에 알력이 존재하는 지역에서 부르주아 분자들의 성장을 곁들이는 민족주의는 대개 상당히 공격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기구의 '민족화'는 소수민족을 희생시키면서 진행된다. 국경 분쟁은 민족적 원한의 원천이 된다. 당, 소비에트, 노동조합 활동을 둘러싼 상황은 민족주의로 오염된다.

우크라이나화, 투르크화 등은 소비에트연방의 제도, 기관들에서 관료적, 대국적 습성을 극복하는 것에 의해서만 올바르게 진척될 수 있다. 이것이 문제의 한쪽 측면이다. 다른 측면은 민족공화국에서 노동자계급의 지도적 역할이 유지되는 경우에만, 우리 스스로 농촌 하층에 입각하여 쿨락이나 국수주의 분자에 대한 지속적이고 비타협적인 투쟁을 수행하는 경우에만 이 과정이 올바르게 진척될 수 있다.

이런 문제는 도네츠 분지나 바쿠 같은 산업 중심지에서 특히 중요하다. 농촌에 둘러싸인 이곳의 노동자 주민은 대부분이 다양한 민족 출신이다. 이런 경우에는 도시와 농촌의 올바른 문화적, 정치적 관계가 요구된다. (1) 출신 민족이 다른 농촌의 물질적, 정신적 요구에 대해서, 특히 도시 쪽의 주의 깊고 진정으로 형제적인 태도 (2) 농촌지역에 대한 관료적 오만을 키우든, 도시에 대한 반동적 쿨락의 적의를 기르든 간에 도시와 농촌 사이를 갈라놓으려는 모든 부르주아에 대한 단호한 저항

우리의 관료체제는 지방 행정기구의 '민족화'에 대한 표면적 과시의 실제적 수행을 관료, 부르주아 전문가, 소부르주아 교사에게 맡기고 있다. 이들은 도시와 농촌의 상층과 무수한 사회적 관계로 결합되어 있으며, 자신의 정책을 이런 상층의 이해에 맞게 적응시키고 있다. 이는 당이나 소비에트 권력에서 지역의 빈농을 쫓아냄에 따라 이들로 하여금 상업 자본가계급, 고리대금업자, 반동적 신부, 봉건적 가부장 분자의 품으로 뛰어들게 한다. 동시에 이 관료체제는 각 민족의 진정한 공산주의 분자를 대개 '일탈자'라고 비난하면서,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괴롭히며 뒷전으로 밀어낸다. 예를 들면, 그루지야의 영향력 있는 고참 볼셰비키 그룹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 이들은 스탈린 그룹의 불만을 샀지만, 생애 마지막 시기의 레닌에 의해 열렬히 옹호되었다.

민족공화국과 민족지역 근로대중이 실제적인(사회주의) 건설 임무에 직접적, 자주적으로 참여하기를 열망한 이유는 10월혁명이 이들을 앙양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의 관료체제는 지역민족주의라고 고함치면서 대중을 겁먹게 함으로써 이 열망을 마비시키려 하고 있다.

우리 당의 제12차 대회는 '대국주의의 잔재', '소비에트연방 내 민족들의 경제적, 문화적 불평등', '민족적 억압의 가혹한 멍에를 짊어지고 있는 수많은 인민 속에 잔재하는 민족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각 민족공화국과 지역의 책임 있는 지도자가 참석한 민족문제 제4차 협의회(1923년)는 '당의 기본적 임무 가운데 하나는 각 민족공화국과 지역에서 지역 주민의 노동자, 반(半)노동자 부위 사이에서 공산주의 조직을 양성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선언했다. 협의회는 중앙에서 후진적인 민족공화국과 지역으로 가는 공산주의자는 '교사나 유모가 아니라 협력자'(레닌)['사이드-갈리예프[S.G. Said-Galiev]에게 보내는 편지, (1921년 7월 20일자), 《전집》, 제36권, 541쪽, 사이드-갈리예프는 타타르자치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 중앙 집행위원회 의장이다. - 옮긴이]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선언했다. 그런데 최근에 사태는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전개되어왔다. 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서기국이 임명한 각 민족 당 기구의 수장들은 당과 소비에트의 모든 문제에 대한 실질적 결정을 떠맡고 있다. 이들은 비(非)러시아 민족 출신의 적극적 노동자들을 단지 형식적 '대표 역할'을 수행하는 임무로 끌어들여 2류 공산주의자 정도로 끌어내리고 있다(크리미아, 카자흐 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타르, 북부 코카서스의 산악지대 등). 모든 지역 당 노동자를 위에서 인위적으로 '우익'과 '좌익'으로 구분하는 것은 중앙이 임명한 서기가 양 그룹을 제멋대로 지배할 수 있도록 규칙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다른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민족정책 분야에서도 다음과 같은 레닌주의 입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1. 서로 다른 민족 출신 노동자 사이의 민족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비할 데 없이 더 체계적으로, 더 일관되게, 더 활발하게 수행하는 것一특히 새로 동원된 '소수민족' 노동자에 대해서 배려하는 태도로 이들에게 숙련된 기술을 가르치고, 이들의 생활과 문화적 상황을 개선시켜야 한다. 각 민족지역의 후진적 농촌을 소비에트 건설 임무로 끌어들이기 위한 실질적 지렛대는 지역 주민 속에서 노동자 중핵을 형성하고 성장시키는 것임을 확고하게 기억해야 한다.

2. 후진적인 주변지역에서 산업화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경제 5개년 계획을 재검토하는 것. 그리고 민족공화국과 지역의 이해를 고려하여 15년 계획을 세우는 것. 빈농과 중농의 특산물(중앙아시아의 면화, 크리미아 · 압하지야[압하지야(Abkhazia):1992년 그루지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자치공화국{압하스공화국)이지만 국제 사회의 승인을 얻지 못한 상태다. - 옮긴이] 의 담배 등) 개발을 위해서 국가가 수매하는 정책을 채택하는 것. 협동조합의 신용정책과 토지개량정책(중앙아시아, 트랜스코카서스 등에서)도 철저히 계급적 방침에 근거하여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근본적 임무와 조화를 이루며 수행되어야 한다. 축산협동조합의 발전에 더 많은 주의를 쏟는 것. 농업 원료의 가공을 기업화하는 정책을 지역 실정에 적합한 방식으로 수행하는 것. 더 낙후된 지역에 새로운 주민을 이주시키는 우리의 정책을 민족문제에 대한 올바른 정책의 목적에 맞게 개정하는 것.

3. 당, 노동조합, 협동조합 기구들뿐만 아니라 각급 소비에트 기구의 민족화 정책도 계급관계와 민족관계를 진지하게 고려하여 꼼꼼히 수행하는 것. 정부, 협동조합, 그 외 기관들의 활동에서 '식민주의적' 일탈에 대항하여 진정한 투쟁을 수행하는 것. 중앙과 주변지역 사이의 관료적 중개를 폐지하는 것. 코카서스연방의 경험을 관련 민족들의 산업적, 문화적 발전을 촉진시켰느냐는 관점에서 검토하는 것.

4. 소비에트연방 내 다양한 민족의 근로인민이 사회주의 건설과 국제 혁명에 기초하여 최대한 결속하고 협력하여 모든 장애물을 체계적으로 없애는 것. 다른 민족의 노동자 농민에게 주류민족의 언어를 기계적으로 강요하는 것에 대항하여 단호한 투쟁을 수행하는 것. 이 문제에서 근로 대중은 완전한 선택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 모든 민족공화국과 지역의 경계 안에서 모든 소수민족의 진정한 권리가 보증되어야 한다. 이 모든 임무에서 예전의 피억압 민족과 예전에 이들의 압제자였던 억압 민족 사이에서 발생하는 이례적인 상황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5. 모든 민족공화국과 지역에서 당내 민주주의를 일관되게 실행하는 것. 비(非)러시아인에 대해 명령하는 태도나 위로부터의 임명과 전임에 대한 단호한 거부. 비(非)러시아인 공산주의자를 인위적으로 '우익'과 '좌익'으로 구분하는 정책을 거부하는 것. 지역의 노동자, 반(半)노동자, 농업노동자, (반[反]쿨락)농민 활동가에 대한 가장 세심한 진작과 훈련.

6. 특히 중앙의 인민위원회와 국가기관 일반에서 우스트리얄로프적 경향, 따라서 온갖 대국주의적 경향에 대한 거부. 민족문제에 대한 명확하고 일관된 계급정책에 기초하여 지역 민족주의에 대해 교육적 투쟁을 전개하는 것.

 7. 민족회의를 각 민족공화국과 지역의 생활과 긴밀한 관계가 있는 실제로 작동하는 기구, 실제로 이들의 이해를 옹호할 수 있는 기관으로 전환시키는 것.

8. 노동조합 활동에서 민족문제에 대해 그리고 현지 노동자 중핵을 형성하는 임무에 대해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 이런 노동조합들에서 업무는 지역의 언어로 처리되어야 하며, 모든 민족과 소수민족의 이해가 보호되어야 한다.

9. 어떤 일이 있더라도 착취분자에게 선거권을 줘서는 안 된다.

10. 민족문제에 대한 제5차 협의회는 평당원의 진정한 대표에 기초하여 소집되어야 한다.

11. 민족문제에 대한 스탈린의 노선을 비판하고 있는 레닌의 민족문제에 대한 편지(레닌, 《전집》, 제36권, 605~611쪽을 보라.)를 신문에 공표해야 한다.

 

제7장 당

이제까지 우리 당처럼 거대한 승리를 거둔 당은 역사상 단 하나도 없다. 우리 당은 지금까지 10년 동안 노동자계급의 선두에 서서 노동자 독재를 실행에 옮겨왔다. 러시아공산당은 노동자혁명의 근본적 도구이다. 러시아공산당은 코민테른의 지도적 당이다. 우리 당처럼 전 세계적인 역사적 책임을 진 당은 이제까지 단 하나도 없다. 그러나 정확히 이런 이유 때문에, 그리고 권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당은 대담무쌍하게 자신의 오류를 비판해야 한다. 당은 자신이 처한 상황의 어두운 면을 감춰서는 안 된다. 이를 예방하려는 조치를 제때에 취하기 위해서 당은 현실적인 퇴보 위험을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레닌의 시대에는 항상 그랬다. 레닌은 무엇보다도 당이 '자만'해지는 것(레닌, '레닌의 50회 생일을 축하하여 러시아공산당 모스크바위원회가 개최한 집회에서 한 연설',《전집》, 제30권, 528쪽)에 대해 경고했다. 그 어두운 면에도 불구하고, 우리 당의 현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면서, 우리 반대파는 당이 올바른 레닌주의 노선에 따라 그 약점을 극복하고, 역사적 임무의 정점에 오를 것이라는 확고한 기대를 표하는 바이다.

1. 당의 사회적 구성은 지난 몇 년 동안에 더욱 더 악화되어왔다.

1927년 1월 1일 현재, 당원은 대략 다음과 같다.

산업과 운수에 실제로 종사하고 있는 노동자 430,000명
농업노동자 15,700명
농민(절반 이상이 현재는 관청직원) 303,000명
관청직원(절반 이상이 이전에는 산업노동자) 462,000명

이렇게 1927년 1월 1일 현재, 우리 당의 3분의 1만이 현장노동자(실제로 겨우 31%일뿐이다)이고, 3분의 2는 농민, 관청직원, 구 산업노동자, '기타'였다.

지난 1년 반 동안 우리 당은 약 10만 명의 현장노동자를 잃었다. 1926년 동안 당에서 '자동 감소'[일반적으로 당원은 매년 당적을 갱신하게 되어 있으며, 갱신하지 않는 경우는 자동적으로 당적을 잃는다.-옮긴이]한 일반 공산주의자는 2만 5,000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76.5%가 공장 노동자였다(〈중앙위원회 소식〉, 제24, 25호). 이렇게 단순한 당적 갱신을 동반한 최근의 이른바 '감별' 과정의 결과, 공식 자료에 따르면(의심할 여지없이 사실을 최소화한), 약 8만 명의 당원이 당적을 잃었는데, 이들 대다수는 산업노동자였다. '올해 초에 수치상으로 당원의 93.5%가 당적을 갱신했다'(〈중앙위원회 소식〉, 제24, 25호). 이렇게 단순한 당적 갱신에 의해 당원의 6.5%(약 8만 명)가 '걸러졌다.' 이렇게 '걸러진' 당원의 약 50%가 숙련노동자이고, 3분의 1 이상이 반(半)숙련노동자였다. 이미 충분히 최소화된 이런 자료를 최소화하려는 중앙위원회 기구의 시도는 분명히 실패했다. 레닌의 동원을 이제 스탈린의 '감별'이 대신하고 있다.

이에 반해서, 제 14차 당 대회 이후 10만 명의 농민에게 입당이 허락되었는데, 이들 대부분은 중농이고, 농업노동자의 비율은 전체적으로 미미하다.

2. 당 지도기관의 사회적 구성은 훨씬 더 악화되었다. 군(uyezd, 郡) 위원회의 29.5%가 농민(출신에서)이고, 사무직 노동자등이 24.4%이며, 군위원회 위원의 81.6%가 관청을 위해 일한다. 당 지도기관에 현장노동자는 거의 없다. 주(gubernia, 州) 위원회에서는 13.2%, 군위원회에서는 9.8~16.1%이다(소련공산당 중앙위원회 통계국의〈통계평론〉, 1927년 6월 10일자를 보라).

당 자체에서는 당원의 약 3분의 1이 산업노동자이며, 당의 의사결정 기관에서 산업노동자는 단지 10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당에 중대한 위험이다. 노동조합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제2장 '노동자계급과 노동조합의 상태'를 보라). 이것은 소부르주아 계층과 '노동귀족' 출신 '관리자'가 우리에게서 얼마나 큰 권력을 빼앗아왔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은 당의 '탈(賊:)노동자화'(deproletarianization)로 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3. 당 기구와 지도적인 직책 일반에서 구 사회혁명당-멘세비키의 역할이 증대해왔다. 제14차 당 대회 당시에 당 출판부의 책임 있는, 지도적인 직책의 38%를 다른 정당 출신이 차지하고 있었다(제14차 당 대회 의사록, 83쪽). 현재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 볼셰비키당 출판부의 실제적 지도는 '청년' 수정주의 학파(슬렙코프[알렉산드르 슬렙코프(Aleksandr Slepkov, 1891-1937):부하린주의의 대표적인 이론가. 1917년에 콤소몰을 지도했다.〈콤소모르스카야 프라보다〉지의 초대 편집장, 1920년대 중반에는 반(反) 트로츠키주의 캠페인에 종사했으며. 1920년대 말, 부하린주의자로 탄압받아 1930년에 제명, 1937 년에 총살되었다. 1959년에 명예 회복.], 스테츠키[알렉세이 스테츠키(Aleksey Stetsky, 1896-1938):부하린 학파의 젊은 이론가 가운데 한 사람. 1924-27년, 중앙통제위원. 1925년부터〈콤소모르스카야 프라브다〉지 편집장. 1927년에 당 중앙위원. 부하린 실각 이후 스탈린주의로 전향했지만 1938년에 체포되어 총살되었다. 1956년에 명예 회복.], 마레츠키[마레츠키(Maretsky, 1901~1937):적색교수 양성학원 출신의 역사가, 경제학자. 부하린 학파에서 가장 우수한 인물의 가운데 한 사람. 1937년 5월에 총살되었다. 1958년에 명예 회복.] 등)나 구 사회혁명당-멘셰비키 둘 중 하나에 맡겨져 있다. 당 활동가의 상급중핵 가운데 약4분의 1이 구사회혁명당-멘세비키로 이루어져 있다.

4. 관료주의는 모든 분야에서 성장하고 있지만, 특히 당내에서의 성장은 파괴적이다. 오늘날의 '지도적인' 당 관료는 사태를 다음과 같이 보고 있다.

'우리 당에는 당 자체,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아직도 불충분한 당원이 존재한다. 이들은 당이 세포나 지역 단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세포는 기초 단위이다. 그 다음에 지구위원회 등이 있고, 중앙위원회에 이르기까지 계속 위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우리 당은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시각이 당의 모든 실천적 관계와 전체 활동에서 고수되어야 한다.'(〈몰로로트〉(Molot, 망치) 1927년 5월 27일자, 러시아공산당 북부코카서스 지방위원회 제2서기의 연설).

우글라노프, 몰로토프, 카가노비치 같은 고위직에 있는 동지들이 제시한 당내 민주주의의 정의도 본질적으로는 결국 마찬가지인 것이다(〈프라브다>, 1926년 6월 4일자를 보라).

이 '새로운' 생각은 극도로 위험하다. 만약 우리 당이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실제로 인정한다면, 레닌주의 당, 노동자 대중의 당은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5. 지난 몇 년간 당내 민주주의는 볼셰비키당의 전통에 반하여, 일련의 당 대회의 결정에 직접 반하여 체계적으로 폐지되어왔다. 실제로 관리에 대한 진짜 선거는 사라지고 있다. 볼셰비키주의의 조직 원칙은 사사건건 왜곡되고 있다. 당 규약은 상부의 권한을 확대하고, 당 기초 단위의 권리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체계적으로 바뀌고 있다. 군위원회, 지구위원회, 지방위원회의 권한 위임은 중앙위원회에 의해 1년, 2년, 그리고 그 이상으로 연장되어왔다.

지방위원회, 지방 집행위원회, 지방 노동조합협의회 등의 지도부는 사실상 해임할 수 없다(3~5년이나 그 이상 동안). '근본적인 견해 차이를 전체 당의 여론에 호소'(레닌)하는 모든 당원, 모든 당원 그룹의 권리는 사실상 폐기되고 있다. 당 대회나 당 협의회는 모든 문제에 대한 전당의 자유로운 사전 토론 없이(레닌 시대에는 항상 이와 같은 토론이 열렸다) 소집된다. 이러한 토론을 요구하면, 당기 위반으로 간주된다. '볼셰비키 "총참모부"는 자신의 총참모부를 따름과 동시에 지도하는 군대의 믿음직하고 의식적인 의지에 의해 실제로 뒷받침되어야한다'(레닌, '〈이스크라〉에 보내는 편지', 《전집》, 제7권, 116쪽)는 레닌의 경구는 완전히 잊혀졌다. 

당내에서는ㅡ일반적인 방침의 자연스러운 부속물처럼ㅡ경험 많은 당원을 내쫓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제정시대에 지하활동을 경험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내전을 겪었으며, 자존심이 강하고 자신의 견해를 옹호할 능력이 있다. 이들은 주로 무조건적인 복종이 특징적인 신입 분자들로 대체되고 있다. 혁명적 규율이라는 이름으로 위로부터 조장된 이런 복종은 정말로 혁명적 규율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줄곧 혁명 이전의 낡은 권위에 굴종하는 것이 특징인 노동자 중에서 선발된 신참 공산주의자가 이제는 심심찮게 노동자계급 세포나 행정기관에서 지도적인 지위에 올라서고 있다. 이들은 혁명이 가장 곤란한 상황에 처한 시기에 노동자계급의 지도자인 고참 노동자 당원에 대해서 노골적이고 발악적인 적대감을 표하는 것으로 시류에 영합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변화가 국가기구에서 훨씬 더 추악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당의' 소비에트 관료의 완성된 모습을 보는 것은 더 이상 드문 일이 아니다. 이런 관료는 엄숙한 경우에는 10월혁명에 맹세하지만, 자신의 임무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으로 유명하다. 또한 철저하게 소부르주아적 속물근성으로 살고 있으며, 사생활에서는 지도부를 매도하고, 당의 모임에서는 반대파를 '철저하게 문초하고 있다.'

당 상부에 있는 한 당원(특히 서기)의 실질적 권리는 하부 당원 백 명이 가진 실질적 권리보다 몇 배나 더 크다. 당에 대한 기구의 이런 증대하는 대체는 볼셰비키라면 침범할 수 없는 레닌주의의 원칙一노동자계급의 독재는 당의 독재를 통해서만 실현되고, 또 실현될 수 있다一을 부정하는 스탈린의 ‘이론’에 의해 조장되고 있다. ['(당이 아니라) 당 간부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스탈린의 이론. 스탈린은 당의 독재를 대신하는 당 기구의 독재를 이론화했다.]

당내 민주주의의 쇠퇴는 대체로 노동조합이나 다른 모든 무당파 대중조직들에서 노동자민주주의의 쇠퇴로 이어지고 있다.

당내의 견해 차이는 왜곡되고 있다. '반대파'로 비난받는 볼셰비키의 견해에 대한 광포한 논쟁이 몇 달, 몇 년 동안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 볼셰비키들에게는 자신의 진정한 견해를 당 출판물을 통해 설명하는 것도 허락되지 않고 있다. 어제의 멘셰비키, 사회혁명당, 입헌민주당, 분트, 유태민족주의자가 그 위원들이 자신의 중앙위원회에 제출한 문서를 〈프라브다〉지의 지면 위에서 공격하고 비난한다. 이들은 이런 문서에서 전후 관계없이 몇몇 문장만을 떼어내 왜곡시킨다. 그러나 문서 자체는 결코 게재되지 않는다. 당의 구성단위는 이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문서에 대해 '탄핵' 투표할 것을 강제당하고 있다.

당은 대부분이 저속하고 새빨간 거짓말인 반대파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있는' 예외 없이 경멸적인 공식 일람, 또는 개요 조사, 연설에 기초하여 우리의 견해 차이를 판단하도록 강제당하고 있다. '단지 다른 누군가의 말만 믿고 사태를 판단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바보다'라는 레닌의 경구는 '공식 주장을 믿지 않는 사람은 반대파다'라는 새로운 정식으로 대체되어왔다. 반대파에 가까운 현장노동자는 자신의 견해 때문에 실업이라는 대가를 치르도록 강제당하고 있다. 평당원은 자신의 견해를 소리 내어 말할 수 없다. 경험 많은 당 활동가도 출판물에서든 모임에서든 자신의 견해를 표명할 권리를 박탈당하고 있다.

레닌의 사상을 옹호하는 볼셰비키는 '당내에 또 다른 당'(two party) 을 만들고 싶어 한다고 중상적인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런 비난은 당연히 당의 통일을 열렬하게 옹호하는 노동자를 반대파에 대항하게 하기 위해서 고의적으로 꾸며냈다. 스탈린의 노골적인 멘셰비키적 오류(중국혁명이나 영-러위원회 등의 문제에 대한)에 대한 단 한마디의 비판도 "당에 대항하는 투쟁'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스탈린은 중국에 대한 자신의 정책이나 다른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사전에 당에 물어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반대파가 '당내 에 또 다른 당'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이런 비난은 자신의 기회주의 정책을 수행함에 있어서 자유재량권을 갖기 위해 볼셰비키-레닌주의자를 당에서 내쫓는 것이 목적인 자들에 의해 매일 반복되고 있다.

6. 당의 거의 모든 고급교육 활동과 모든 초보적인 정치교육 활동은 이제 반대파를 못살게 구는 과정으로 바뀌었다. 설득의 방법은 대대적인 규모로 강제의 방법으로 대체되었을 뿐만 아니라 당을 기만하는 방법으로도 보완되고 있다. 당의 교육이 단순한 공식 선전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그 일반적 경향은 교육을 적당히 얼버무리는 것이다. 반대파를 못살게 구는 것에 몰두하는 집회, 당 학교, 학습 써클의 참석자 수는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당은 현재 당 기구의 잘못된 방침에 대해서 수동적 저항을 채택하고 있다.

7. 최근 당내에서는 출세주의, 관료주의, 불평등이 성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를 들면, 반(反)유태주의 같은 계급적으로 이질적이고 적대적인 원천을 가진 흙탕물이 당으로 흘러들고 있다. 그저 당의 자기보존도 이러한 모욕에 대한 가차 없는 투쟁을 요구한다.

8. 이런 사실들에도 불구하고, 탄압의 포화는 오로지 좌익만을 겨냥하고 있다. 세포회의에서 연설하거나, 날카로운 대답을 하거나, 레닌의 유언장을 읽으려 했다는 것만으로도 반대파를 제명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 되었다. 제명된 사람들은 흔히 정치적 이해력의 수준에서, 더 중요한 것은 당의 대의에 대한 헌신에서 제명한 자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다. 당밖에 있는一장개석, 퍼셀이나 자기 관료들에 대한 '신뢰 부족'과 '비관주의' 때문에一이런 동지들은 계속해서 당의 중심인물로서 지내고 있다. 이들은 수많은 출세주의자나 속물들보다 훨씬 더 충실하게 당에 봉사하고 있다.

9. 제15차 당 대회가 가까워짐에 따라 현재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는 빗발치는 탄압과 협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당을 위협하기 위한 조치다. 이것은 자신의 정치적 오류를 은폐하기 위해 스탈린-리코프 연합 분파가 가장 극단적 조치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 매순간 당을 기정사실과 대면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0. 중앙위원회의 정치노선('스탈린과의 연대' 원칙에 의해 제14차 당 대회에서 정식화된 노선)은 정도를 벗어나 있다. 중앙위원회의 현 중핵은 동요하면서도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나아가고 있다.[이 문장은 타이프 원고에는 없다. - 편집자] 당내 민주주의의 폐기는 정치노선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의 불가피한 결과이다. 이 노선이 소부르주아 분자들의 압력과 우리 당을 포위한 비(非)노동자 계층의 영향을 반영하는 한, 이 노선은 불가피하게 위에서 완력으로 관철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이론 분야에서는 이른바 '청년학파'가 독점권을 가지고 있다. 이 학파는 기구의 문필 명령을 어느 때라도 실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 수정주의자들이다. 볼셰비키당의 진정한 전통에 고무된 볼셰비키 청년의 가장 우수한 분자는 내쫓겼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박해받고 있다.

조직 분야에서는 서기국에 대한 정치국의 사실상의 종속, 서기장에 대한 서기국의 사실상의 종속은 오래 전에 기정사실이 되었다. 레닌이 유언장에서 밝힌 최악의 우려一스탈린은 충분히 성실하지 않고, '자신의 수중에 집중된 무제한적인 권력'을 공동으로 쓰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1922년 12월 24일자와 1923년 1월 4일자 레닌의 편지)一는 정당성이 입증되었다.

현재 중앙위원회, 당과 국가 일반의 지도기관에는 세 가지 근본적 경향이 존재한다.

첫 번째 경힘은 공공연한 우익적 경향이다. 한편 이 경향은 두 그룹으로구성된다. 하나는, 그 기회주의와 적응성으로 대부분 '경제력이 있는' 중농의 이해를 반영한다. 이들은 중농의 방침을 따르고, 그 이상에 의해 고무된다. 이 그룹에는 리코프, 스미르노프[알렉산드르 스미르노프(Aleksandr Smirnov, 1878-1938):1896년에 페테르부르크의 '노동자 계급해방투쟁동맹'에 참가. 농업문제 전문가. 1907~17년, 중앙위원 후보. 1917년 10월부터 내무인민위원회 임원. 1922년부터 당 중앙위원. 1923년부터 농업인민위원회 부의장, 농민인터내셔널 서기장. 1930년부터 국가경제최고회의(Vesenkha, 베센하)의 임원. 1934년에 제명, 1938년에 총살되었다. 1956년에 명예 회복.], 칼리닌[미하일 칼리닌(Mikhail Kalinin, 1875-1946):노동자 출신의 고참 볼셰비키. 1919년에 사망한 스베르들로프를 대신하여 소비에트 중앙집행위원회 의장에 선출되어 죽을때까지 소련의 형식상 원수 지위에 있었다.], 페트롭스키[그례고리 페트롭스키(Gregory Petrovsky, 1878-1958) : 고참 볼셰비키. 1897년부터 '노동자계급 해방투쟁동맹'에 참가. 1912년에 제4대 두마 의원에 선출. 1918년, 브레스트-리토프스크강화조약 대표단의 한 사람. 1919-1938년, 우크라이나 중앙집행위원회 의장. 1921년부터 당 중앙위원, 1922년부터 중앙통제위원. 1926년에 정치국 위원 후보.], 추바르[브라스 추바르(Vlas Chubar, 1891-1939):우크라이나의 농민 출신 기사, 고참 볼셰비키. 1918-23년, 국가경제최고회의 임원. 1920-22년, 우크라이나 경제회의 의장. 1921년부터 중앙위원. 1923~ 34년, 우크라이나 인민위원회 의장. 1939년에 총살되었다. 1955년에 명예 회복.], 카민스키[그례고리 카민스키(Gregory Kaminsky, 1895-1938) : 1913년부터 볼셰비키. 1923~29년, 전 러시아농업협동조합연합 중앙위원회 부의장. 1925년부터 중앙위원회 후보. 1930년부터 모스크바위원회 당 서기. 1938년에 총살되었다. 1955년에 명예 회복.] 동지 등이 있다. 이들을 둘러싸고, 그리고 이들 부근에서 다소 공공연하게 우스트리얄로프의 학설을 설교하는 '무당파' 정치인인 콘드라티예프[니콜라이 콘드라티예프(Nikolai Kondratiev, 1892-1938):1905년에 사회혁명당에 입당. 1917년 볼셰비키 혁명에 극렬 반대하며, 볼셰비키 규탄 문서를 많이 썼다. 1919년에 사회혁명당을 탈당. 1920년에 농업인민위원회에서 일했다. 1920년부터 경기 연구소 소장이 되어, 경기순환과 장기파동을 연구하여 '콘드라티예프 파'라고 불리는 50년 주기의 대순환이 존재한다고 지적, 국제적으로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조작된 '근로농민당' 사건에 연루되어 1930년 체포, 1938년에 총살되었다. 1987년에 명예 회복.], 사디린[안드레이 사디린(Andrei Sadyrin):국영은행 이사회 위원.], 차야노프[알렉산드르 차야노프(Aleksandr Chayanov, 1888-1937) : 경제학자, 농업경제의 전문가. 협동조합운동에 적극 참가. 1917년, 임시정부 부(副)농업장관. 1919년, 농업경제과학조사연구소 소장. 1923년, 주요 저서 인 《농업경제의 조직화》를 베를린에서 출판했다. 1930년, 친구인 콘드라티예프 와 함께 '근로농민당사건'에 연루되어 1937년 총살되었다.]등 같은 부농의 '실무 대리인들'이 활동하고 있다. 모든 주(州)에, 그리고 대개 모든 군(郡)에도 자신의 보잘것없는 실권과 영향력을 누리는 작은 콘드라티예프나 사디린을 발견할 
수 있다. 일반적인 이 첫 번째 경향의 다른 그룹은 보수가 더 나은 산업노동자와 사무직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노동조합 지도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그룹은 특히 암스테르담 인터내셔널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 그룹의 지도자는 톰스키, 멜니찬스키, 도가도프[알렉산드르 도가도프(Aleksandr Dogadov, 1888-1937 : 고참 볼셰비키, 노동조합운동 활동가. 1921년부터, 전러시아노동조합협의회 중앙위원, 서기, 1929년부터는 제1서기. 1924~1930년, 중앙위원과 조직국 위원. 1937년 총살되었다. 1956년에 명예 회복.] 동지 등이다. 이 두 그룹 사이에는 일정한 알력도 있지만, 국내외 정책 모두에서 당과 소비에트 국가의 경로를 오른쪽으로 돌리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이 두 그룹은 레닌주의 이론에 대한 경멸과 세계혁명에 대한 방침을 포기하는 경향이 특징이다.

두 번째 경향은 공식 기구의 '중도주의'이다. 이 경향의 지도자는 스탈린, 몰로토프, 우글라노프[니콜라이 우글라노프(Nikolai Uglanov, 1886-1937):고참 볼셰비키. 1905년 혁명에 참여했다. 1921년 페테르부르크위원회 서기. 1921-22년, 당 중앙위원 후보. 1923~30년, 당 중앙위원. 1924년 모스크바위원회 서기. 반(反)트로츠키주의 캠페인으로 출세. 1924년 중앙위원회 조직국과 서기국 위원. 1926년 정치국 위원 후보. 1928년 부하린의 우익반대파를 지지했다. 1937년에 총살되었다. 1989년에 명예 회복.], 카가노비치[라자르 카가노비치(Lazar Kaganovich, 1893-1991):1924년, 중앙위원. 1930~52년, 정치국 위원. 스탈린의 오랜 친구로 정부와 당의 다양한 직책을 역임했으며, 대숙청의 주역 가운데 하나로 흐루시초프가 집권하면서 반당분자로 낙인찍혀 1956년 모든 직책에서 해임되었다.], 미코얀[아나스타스 미코얀(Anastas Mikoyan, 1895-1978):1915년부터 볼셰비키. 1918년, 26명의 인민 위원과 함께 영국 간섭군에 체포되었지만, 기적적으로 총살을 면했다. 1926~30년, 통상인민위원. 1930~34년, 보급인민위원. 1934~38년, 식량공업인민위원. 1937-46년, 대외무역인민위원. 1946~65년, 부수상. 1956년 제20차 당 대회에서 '스탈린의 개인숭배'를 비판했다.], 키로프[세르게이 키로프(Sergei Kirov, 1886-1934):고참 볼셰비키, 스탈린주의자. 1921년에 중앙위원 후보. 1923년부터 당 중앙위원. 1926년, 레닌그라드위원회 제1서기로서 지노비예프파를 축출했다. 1930년부터 정치국 위원. 1934년 12월, 지노비예프주의자를 자처하는 청년에 의해 크레믈린에서 암살당했다. 키로프 암살은 대숙청기의 개막을 알린 사건이었다.] 동지이다. 사실상의 현 정치국이다. 양쪽 사이에서 동요하면서도 부하린은 이 그룹의 정책을 '일반화하고 있다.' 이 중도주의ㅡ공식 그룹은 본질적으로 광범한 대중의 어떠한 견해도 전혀 표현하지 않지만 자신이 당을 대체ㅡ성공을 거둔 것이 없지 않은一하려고 한다. '관리자' 계급一당, 노동조합, 산업기관, 협동조합, 국가기구에서一은 이제 몇 만 명을 헤아린다. 이들 중에는 한때 노동자인 즉, 노동자 대중과의 관계를 모두 포기한 '노동자' 관료 수가 적지 않다.

혁명의 운명에 엄청나게 중요한 관리-지도기관에서 수많은 불굴의 노동자 혁명가가 발견되고 있다는 것은 덧붙일 필요도 없다. 이들은 대중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노동자의 대의를 위해서 몸과 마음을 다 바치고 있다. 이들이야말로 이런 기관들에서 진정한 공산주의 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정치노선과 당 체제의 타락이 진짜 거대한 관료계급을 낳고 있다는 사실을 바꾸지 못한다.

이 계급의 실제 권한은 어마어마하다. 바로 이 '관리자'그룹이 '조용하게' '본무에 힘쓰고', 특히 '토론 반대'를 역설하는 것이다. 바로 이 그룹이 우리가 이미 '거의 사회주의에 도달했다', 사회주의 혁명 '강령의 10분의 9'가 이미 완수되었다고 자기만족적으로 선언한다(때로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기도 한다). 당 전체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이 그룹에게 미숙련노동자, 실업자, 농장노동자는 안중에도 없다. 이 그룹은 좌익 즉, 혁명적 레닌주의자 사이에서 주적을 찾으며, '좌익을 향해 발포하라'고 촉구했다.

우선은 이 우익과 '중도파' 경향이 반대파에 대한 공통의 적의로 뭉쳐 있다. 반대파의 제거는 불가피하게 두 그룹 사이의 갈등을 촉진할 것이다.

세 번째 경향이 이른바 반대파이다. 반대파는 당의 레닌주의 분파이다. 우익에서 반대파인 체하려는 애처로운 시도(반대파를 '사회민주주의적 일탈'로 고발하는 등)는 자신의 기회주의를 은폐하려는 지배그룹의 소망에서 비롯된다. 반대파는 당의 통일을 지지한다. 스탈린은 반대파가 '또 하나의 당'을 만들고 싶어 한다는 무고한 죄로一반대파를 왕따시키기 위해一자신의 강령을 유포시킨다. 이에 대해 반대파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레닌주의 러시아공산당의 통일을'이라는 슬로건으로 대답한다. 반대파의 강령은 이 문서에서 설명하고 있다. 당의 노동자계급 부위와 모든 진정한 레닌주의 볼셰비키는 이에 찬성할 것이다.

반대파의 개인적 이탈은 반대파가 레닌의 대의를 위해 투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재의 힘겨운 상황에서 불가피한 것이다. 앞으로도 이 세 경향의 지도자들 사이에서 서로 연관 없는 사사로운 재편이 일어나겠지만, 그것은 사태의 근본적 진상을 바꾸지 못할 것이다.

11. 이상의 모든 사실이 합쳐져 당의 위기를 야기하고 있다. 당내의 견해 차이는 어려운 문제들이 점점 더 광범위하게 속출하면서 레닌 사후 계속해서 심화되어왔다. 당 대오의 기본적 정서는 단결을 지지한다. 그렇지만 현 체제는 당의 단결을 위협하는 진정한 위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당이 이해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스탈린의 권모술수는 모두 예리하거나 중대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당원 대중에게 이런 딜레마를 제기하기 위한 것이다: 당신의 견해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당의 분열을 돕는다는 비난을 감수하거나 둘 중 하나다.

우리의 임무는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당의 단결을 지키는 것, 분열, 추방, 제명 등의 정책에 단호히 저항하는 것, 그러나 동시에 당의 단결이라는 틀 안에서 논쟁 중인 모든 문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토론하고 결정 할 권리를 당에 보증하는 것이다.

당이 처한 현 상황의 오류와 비정상을 폭로하면서도 반대파는 당의 노동자계급 부위의 토대가 되는 대중이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당을 레닌주의의 길로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할 것이라고 깊이 확신한다. 이 과정을 돕는 것이야말로 반대파의 본질적인 임무이다.

 

실천적 제안

1. 레닌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진정한 당내 민주주의에 기초하여 제15차 당 대회를 준비해야 한다.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 '모든 당원은 첫째, 견해 차이의 본질 둘째, 당내의 논쟁 경과를 정말 냉철하게, 그리고 최대한의 성실함으로 검토하기 시작해야 한다. … 가장 정확하고, 그 어떤 검증도 받아들일 수 있는 인쇄된 문서를 확실히 요구하여 양쪽 모두의 견해를 검토해야 한다.'(레닌, '당의 위기', 《전집》, 제32권, 43~47쪽, 새로 번역했다.) 중앙위원회는 모든 당원이 현 당내 견해 차이의 본질과 현 논쟁의 경과 모두를 검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지금까지 당에서 숨겨온 모든 문서를 신문, 특별논집, 팸플릿을 통해 공표해야 한다.

모든 동지와 당원 그룹은 신문이나 집회 등에서 당에 자신의 견해를 주장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 중앙위원회 · 지방조직 · 개별 당원 · 당원 그룹에 대한 테제(강령) 초안은 적어도 제15차 당 대회 두 달 전에〈프라브다〉지(또는 〈프라브다〉지 증보판에)는 물론 지방의 당 기관지에도 게재되어야 한다.

논쟁은 인신공격이나 과장하는 일 없이, 실무적이고 정확히 동지적인 방식으로 수행되어야 한다. 제15차 당 대회 준비를 위한 주요 슬로건은 겉치레가 아닌 진정한 러시아공산당과 코민테른 전체의 레닌주의적 단결이어야 한다.

2. 당과 그 지도기관의 사회적 구성을 개선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를 즉시 채택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제13차 당 대회의 결정을 재확인해야 한다 : '가까운 장래에 당원의 압도적 다수는 산업에 직접 종사하는 노동자로 구성되어야 한다.' 대체로 다음 2~3년 사이에 당은 오직 현장의 남녀 노동자와 농장에 고용된 남녀 노동자만을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사회 그룹 출신은 엄격한 개인 선발로만 당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 적군(Red) 병사와 수병을 노동자계급 · 농업노동자 · 빈농 출신으로만 한정하고, 빈농이나 경제력이 미약한 농민은 최소 2년간의 사회ㅡ정치 활동을 통해 검증한 뒤에야 받아들여야 한다. 다른 당 출신자의 입당은 중지되어야 한다.

지구위원회, 지역위원회 등에는 현장노동자가 50% 이상 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제13차 당 대회의 결정一제14차 당 대회가 사실상 폐기시킨(반대파의 의지에 반하여)一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산업 중심지에서 우리는 현장노동자의 확고한 다수(적어도 전체의 4분의 3)를 손에 넣어야 한다. 군위원회에서도 노동자, 농장노동자, 빈농이 비슷한 정도로 다수를 차지해야 한다.

3. 제10차 당 대회가 채택하고, 1923년 12월 5일에 중앙위원회와 중앙통제위원회, 그리고 제12차와 제13차 당 대회가 재확인한 당내 민주주의에 관한 결의문을 실제로 승인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

우글라노프, 몰로토프, 카가노비치, 지보프(Zhivov) 등이 고안하고 유포시킨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반(反)레닌주의적 정의와 달리, 우리는 '노동자 민주주의는 모든 당원이 당 생활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을 솔직하게 토론할 자유, 이런 문제들에 관한 토론을 조직할 수 있는 자유, 당의 모든 지도적 관리와 위원회에 대한 상향식 선출을 의미한다'(제 13차 당 대회, 트로츠키, '신노선 결의문', 1923년 12월 5일)는 것을 당 전체의 이름으로 단언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당원의 이런 기본적 권리를 실제로 침해하는 사람에 대해 징벌조치를 취해야한다.

일반적으로 모든 원칙 문제에 관한 당내 소수파의 견해는 당 기관지 등을 통해서 모든 당원의 주목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예외는 토론 중인 사태가 비밀을 요할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 결정이 채택된 뒤 볼셰비키의 철의 규율로 실행되어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당의 토론클럽 망이 확대되고, 당 지도부의 오류에 대한 진정한 비판이 당 기관지(토론용 회보, 평론집 등)를 통해 가능해져야 한다.

제14차 당 대회 이후, 당 규약에 삽입되어온 개악된 모든 조항(제25조, 33조, 37조, 42조, 50조 등)은 폐지되어야 한다.

4. 당 기구 전체의 노동자화를 위한 확고한 방침을 채택해야 한다. 현장노동자, 당내외 노동자 대중에게 평판이 좋은 선진적인 공산주의 노동자가 당 기구 전체의 결정적 다수파를 이루어야 한다. 당 기구가 완전히 유급 직원으로 구성되어서는 결코 안되며, 정기적으로 노동자계급 당원들로 충원되어야 한다. 지방조직(지역조직도 빠뜨리지 않고)의 예산은 대부분 당비가 되어야 한다. 지방조직은 당원 대중에게 그 수입과 지출을 정기적으로, 그리고 실제로 결산 보고해야 한다. 유급 기구의 몸집뿐만 아니라 현재 당의 팽창예산은 강력하게 삭감되어야 한다. 당 활동의 꽤 많은 부분은 산업 활동이나 다른 활동 이외의 여유시간에 무상으로 당원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 정기적으로 당 기구에 활기를 다시 불어 넣기 위한 한 가지 조치는 기구에서 일하는 동지들의 일부를 산업 활동이나 다른 일반 활동으로 체계적으로 내려 보내는 것이다. 우리는 서기들이 자신을 면직시킬 수 없게 하려는 경향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서기나 다른 책임있는 직책의 명확한 재직기간을 설정해야 한다. 최상층 그룹의 실제적 타락과 부패, 임명권, '관료끼리의 상호 두둔' 등에 대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해야 한다(예를 들면, 시즈란 [시즈란은 사마라 주(州)의 볼가강 연안 도시이다.], 헤르손, 이르쿠츠쿠, 치타 등).

5. 레닌의 지도아래, 일찍이 제10차 당 대회에서 당내와 노동자대중 사이에서 더 많은 평등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일련의 결의문이 통과되었다. 이미 제12차 당 대회는 신경제정책(NEP) 아래에서 자본가계급과 접촉하는 당 활동가 일부의 타락 위험을 경고했다. 따라서 '한편으로 부르주아 전문가와 관료,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 대중 사이의 불평등(생활조건이나 임금 등에서)一이 불평등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당의 부패와 공산주의자의 권위를 하락시키는 원천이 되고 있는 한ㅡ을 제거하기에 완전히 적합한 실천적 조치를 마련'(제10차 당 협의회의 결의문, 18쪽)해야 한다.

최근에 불평등이 터무니없이 빠른 속도로 확대되어온 사실에 비추어, 혁명주의자인 우리는 이 문제를 다시 제기하고 해결해야 한다.

6. 당내 교육을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저작 연구에 따라 재편성하고, 현재 대량생산되고 있는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잘못된 해석의 유포를 배격해야 한다.

7. 제명된 반대파의 당원 자격을 즉시 회복시켜야 한다.

8. 레닌이 권고한 진의에 따라 중앙통제위원회를 재건해야 한다. 중앙통제위원회의 위원은 (ㄱ) 대중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고 (ㄴ) 기구와 무관하며 (ㄷ) 당내에 권위를 가진 인물이어야 한다.

이럴 때에만 중앙통제위원회에 대한 진정한 신뢰가 회복되고, 그 권위를 필요한 수준까지 높일 수 있는 것이다.

9. 중앙위원회, 중앙통제위원회와 그 기관을 구성함에 있어서 우리는 레닌이 1922년 12월 25~26일과 1923년 1월 4일자 편지(유서)에서 제시한 권고를 지침으로 삼아야 한다. 이들 편지는 자료용으로 모든 중앙위원에게 공표되어야 한다.

레닌은 1922년 12월 26일자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 '노동자계급 출신 중앙위원회 위원들은 주로 지난 5년 사이에 소비에트 기관에서 진급한 사람들보다 더 낮은 지위에 속한 노동자여야 합니다. 이들은 일반 노동자 농민에 더 가까운, 그러나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도 착취자 범주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중앙위원회에 들어간 노동자는 되도록이면 소비에트 기관에서 오래 근무해온 사람들 중에서 나와서는 안됩니다. … 왜냐하면 이런 노동자는 투쟁대상인 진짜 전통과 진짜 편견을 이미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레닌, '대회에 보내는 편지', 《전집》, 제36권, 593-611 쪽)

레닌의 이 편지들은 그가 혁명의 근본문제에 대해서 마지막으로, 그리고 가장 정성들여 심사숙고한 조언을 당에 제시한 시기에 작성되었다 ('보다 더 적게, 그러나 더 낫게', '노동자농민감찰기관을 어떻게 재조직 할 것인가', '협동조합에 대하여').

우리 당의 제15차 대회는 바로 위에서 인용한 레닌의 조언의 관점에서 중앙위원회를 선출해야 한다.

 

제8장 공산주의청년동맹(콤소몰)

잘못된 정치노선과 조직적 억압은 충분한 위력으로, 때로는 더욱 강화된 위력으로 공산주의청년동맹(콤소몰)에게까지 미친다. 청년노동자에 대한 국제주의 교육은 점점 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모든 비판적 사고는 억제되고 박해받는다. 공산주의 청년조직의 지도적 지위에 대해서 당 기구는 무엇보다도 '복종'과 자진해서 반대파를 못살게 굴 것을 요구한다. 일반 활동가들 사이의 노동자 부위, 기본적으로 건강한 이 부위는 이런 체제의 어떠한 자극도 거부한다. 상부에서 추진한 잘못된 정책은 당내에서보다도 여기에서 훨씬 더 많이 소부르주아적 영향력에 길을 내 준다.

최근에 콤소몰은 수적으로 급성장했지만, 그 사회적 구성의 악화라는 대가를 치렀다. 제13차 당 대회 이후, 이 조직 내의 노동자 중핵은 40.1%에서 34.4%로 줄어들었으며, 산업에 종사하는 청년노동자의 가입률은 49.8%에서 47%로 떨어졌다. 청년노동자 일반의 정치 활동도 쇠퇴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의 여러 결정(견습기간 결원 총수의 축소, 견습생에 대한 예외적 임금률 적용, 실업학교의 견습생 수 제한, 또 견습기간의 무급제를 도입하려는 시도도 여기에 속한다)은 결국 콤소몰과 청년 노동자계급 대중 사이의 틈을 넓힐 수밖에 없는 대단히 미숙한 오류가 된다. 왜냐하면 어느 때보다도 청년노동자의 상황을 악화시켰으며, 그것도 제 14차 당 대회의 결의를 어기면서까지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콤소몰은 농업노동자와 빈농의 지지 기반을 더욱 더 잃고 있다. 농촌에서 콤소몰의 문화적, 경제적 활동은 주로 단일 농장경영의 발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농촌 당 세포의 전반적 구성, 적극적인 동맹원, 동맹 내 핵심당원들에서 빈농의 상대적 비중이 체계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도시 청년노동자의 유입이 계속 감소하는 것과 더불어 콤소몰은 농촌의 중농과 부농 청년으로 채워지고 있다.

도시와 농촌 모두에서 소부르주아 분자가 콤소몰의 지도권을 장악하려는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 동맹에서, 특히 농촌 조직에서 사무직 노동자와 '기타' 범주의 그룹이 더욱 더 주목할 만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체 신입당원의 36%가 콤소몰 대오에서 배출되고 있다(〈프라브다〉 1927년 7월 14일자). 그렇지만 콤소몰의 당 중핵 내에서 4분의 1에서 3분의 1이 비(非)노동자 계층이다. 농촌 콤소몰의 당 중핵에서는 중농이 농장노동자와 빈농을 희생시켜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1925년에 20%였던 중농은 1927년에는 32.5%를 차지하고 있다). 이렇게 콤소몰은 차츰 소부르주아 분자에 의한 당의 희석화의 또 다른 원천으로 바뀌고 있다. 노동자 중핵의 지도적 역할이 계속 약화되고, 지식인, 사무직 노동자, 농촌의 부유층 출신 신참에 의한 노동자 중핵의 좌천은 불가피하게 콤소몰의 소부르주아적 타락을 가져올 것이다. 이러한 사태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치들이 필요하다.

1. 청년노동자의 노동과 교육 분야에서 우리가 거둔 혁명적 성과의 점진적 파기를 즉시 중지시키는 것一이들의 상황을 악화시킨 최근의 모든 조치를 폐지하는 것. 이것은 콤소몰의 병적인 성향(취태, 비행(非行) 등)에 대한 투쟁의 주요한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다.

2. 노동자계급의 일반적인 생활수준 향상에 따라 청년노동자의 물질적, 문화적 수준을 임금 인상, 실업학교와 직업교육과정의 계통적 확장 등을 통해 체계적으로, 그리고 단호히 향상시켜야 한다.

3. 다음 몇 년에 걸쳐 도시와 농촌 청년노동자의 100%를 콤소몰에 가입시키기 위해서 이전 당 대회와 콤소몰 대회의 결정을 실행하는 것.

4. 빈농 청년을 동맹으로 끌어들이는 임무를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강화하는 것.

5. 경제력이 미약한 중농을 동맹으로 끌어들이는 것. 그리고 나머지 중농 중에서는 공적인 임무, 특히 쿨락에 맞서 투쟁하는 임무에서 검증된 사람만을 끌어들이는 것.

6. 개인적 치부를 통해서가 아니라 협동조합과 농업의 집산화를 통한 새로운 농촌사회의 건설을 자신의 임무로 하면서, 빈농의 이해에 대한 콤소몰의 옹호를 강화하는 것.

7. 다음 2년 동안 노동자, 농장노동자, 빈농에게서만 충원하게 함으로써 콤소몰내 당 중핵의 사회적 구성을 개선하는 것.

8. 청년 농장노동자와 빈농을 지도부의 지위로 체계적으로, 그리고 단호히 진급시킴으로써 콤소몰의 지도기관을 근본적으로 노동자화하는 것. 대규모 노동자 중심지에서 콤소몰 지역위원회와 지구위원회를 수립하는 것, 그리고 이들 위원회의 사무국은 압도적 다수의 현장노동자로 구성해야 하며, 이때 현장노동자를 실제로 지도적 임무로 끌어들여야 한다.

9. 관료주의에 대해 진지한 투쟁을 수행하는 것. 절대 필요한 최소인원으로 줄임으로써 유급 관료를 단호히 축소하는 것. 동맹 활동의 적어도 반, 산업 중심지에서는 4분의 3을 동맹원의 무급 노력으로 수행하는 것. 동맹의 임무 수행에 더 많은 일반 동맹원을 끌어들이는 것.

10. 콤소몰의 문화, 교육 활동은 동맹이 끊임없이 일반적인 정치활동(소비에트, 노동조합, 협동조합)과 당에 적극 참여하는 것과 긴밀히 결합되어야 한다.

11. 거수기 체제, 위로부터의 명령을 무감각하게 하는 체제, 거짓말투성이이며 유치한 '개요 학습'을 끝내라. 그 대신에 활기찬 토론, 동지적인 의견 교환, 가짜가 아닌 진짜 지식의 습득에 기초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에 대한 진지한 학습을 실시하라.

12. 말이 아니라 실제로 민주적인 제도를 도입하라. 행정적 압력 술책을 폐기하라. 당과 콤소몰의 문제에 관해 독자적 견해를 가진 사람에 대한 박해와 제명을 중단하라. 지구, 군, 주 등의 협의회와 대회의 소집을 규약에 규정된 일정표에 따라 엄격하게 준수하라.

 

제9장 국제정세와 전쟁의 위험

세계무대에서 소비에트연방의 위상

소비에트연방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전쟁은 개연성이 높을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다.

이 전쟁의 위험을 지연시키고, 소비에트연방을 강화시키고 세계의 혁명적 노동자계급을 결속시키기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시간을 버는 것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실천적 임무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결정적인 국가들에서 노동자혁명이 승리를 거두어야만 이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

세계대전의 위험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증대되고 있다.

1. 스스로를 강화하기 위해 자본주의가 지난 몇 년 동안 수행한 투쟁과 이 투쟁에서 얻은 부분적인 성공은 모든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시장의 문제를 초미의 문제로 만들었다.

2. 제국주의 자본가계급은 소비에트연방의 경제력이 성장하고 있음을 의심할 여지없이 확신하고 있으며, 대외무역의 독점으로 보호되고 있는 노동자 독재는 결코 자본가에게 러시아에서 '자유'시장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3. 제국주의 자본가계급은 소비에트연방의 당내 어려움을 추측하고 있다.

4. 영국 총파업의 패배에 뒤이은 중국혁명의 패배는 제국주의자에게 소비에트연방을 뭉개버릴 수도 있다는 희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영국과 소비에트연방의 외교관계 단절(1927년 5월)은 훨씬 전에 준비되었지만 중국혁명의 패배가 이를 재촉했다. 이런 의미에서 단교는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중국에서 진정한 볼셰비키 정책을 취하지 않은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이런 사태를 영국과 우리 사이의 교역 형식이 단순하게 변화한 것이라고 상상하는('우리는 우리가 미국과 교역하는 것처럼 교역할 것이다') 것은 커다란 오류일 것이다. 영국 제국주의가 더 광범한 행동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지금 더할 나위 없이 명백하다. 영국은 소비에트연방에 대한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몇몇 국가 자본가계급의 '도의적 위임장'을 가지고, 폴란드, 루마니아, 발트해 연안국가들, 그리고 아마 유고슬라비아, 이탈리아, 헝가리 등도 어떤 식으로든 우리와의 전쟁에 끌어들이려고 기도하고 있다.

폴란드는 우리와의 전쟁 준비에 영국보다 더 긴 기간을 갖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영국이 폴란드를 조기에 전쟁으로 끌어들일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반소(反蘇)공동전선을 위한 영국의 압력이 유력한 자본가계급 부위의 지지를 얻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요구에 점점 더 완고해지고 있으며, 물론 유리한 순간에는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최근 더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독일의 외교는 그 일반적 '방향'이 서구를 향해 있음이 더 뚜렷해지고 있다. 독일의 자본가계급은 이미 소비에트연방과의 전쟁에서 독일은 처음에는(1914년의 미국이 한 식으로) 아마 '중립'을 지킬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이는 전쟁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득을 보기 위해, 또 나중에 서구 제국주의자들에게 자신의 중립을 비싼 가격으로 거리낌 없이 팔려는 것이다. 독일 자본가계급이 서구로의 이런 방향 전환을 그럴듯하게 얼버무리는 것보다 소비에트연방의 근본적 이해에 더 나쁜 것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독일 자본가계급의 불의의 일격이 결정적인 의의를 가질 것이라는 점을 우리가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완전히 터놓고 '사태에 대해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만이, 소비에트연방의 노동자와 독일 노동자의 경계심을 일깨우는 것만이 이러한 타격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할 수 있고, 아니 적어도 타격을 가하려는 독일 자본가계급을 곤란하게 할 수 있다.

일본의 자본가계급은 독일 자본가계급과 마찬가지로 교묘하게 소비에트연방과의 관계에서 술책을 부리고 있다. 이들은 매우 교활하게 그 흔적을 은폐하고, '우호적인' 체 하고 있다. 이들은 잠시 동안 장작림[장작림(Chang Tso-lin, 1873-1928) : 만주를 지배한(19l6~19년) 중국의 군벌]의 중국동부철도회사(Chinese Eastern railroad) 장악을 지연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은밀하게 중국에서 실권을 잡고 있는 이들은 곧 우리에 대해서 그 가면을 벗어던질 것이다.

근동(터키, 페르시아)에서 우리는 줄잡아 말하더라도 제국주의자들이 우리를 공격할 경우, 근동국가의 확고한 중립을 보증하는 상황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경우, 제국주의자들의 압력을 받고 있는 이들 국가의 정부가 제국주의자들이 필요로 하는 일을 하게 되기 쉬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우리가 공격 받을 경우, 소비에트연방에 대해 완전히 비타협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은 제국주의의 '배후'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이 역할의 의미는 바로 미국이 대소(對蘇)전쟁의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클 것이다.

요약하면, 1923-25년 시기가 일련의 부르주아 국가들이 소비에트연방을 외교적으로 승인한 시기인 반면에, 지금은 외교적 단절의 시기가 시작되었다. 1923-25년의 승인이 반드시 평화가 보장되거나, 믿을 수 있고 장기간에 걸쳐 숨 쉴 시간을 주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현재의 외교적 단절도 그 자체로는 반드시 가까운 장래에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소비에트연방에 대한 공격 가능성이 있는 국제정세의 긴장감이 극도로 팽팽한 새로운 시기에 접어 든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자본주의 세계의 내부 모순은 매우 크다. 세계 자본가계급이 장기간에 걸쳐 우리에 대항하는 공동전선을 지탱하는 것은 대단히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일정 기간 우리에 대항하는 몇몇 부르주아 국가의 부분적 연합은 전적으로 가능하다.

이 모든 것이 우리 당으로 하여금 다음의 조치를 취하도록 다그치고 있음에 틀림없다.

(1) 국제정세가 위험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2) 광범한 대중이 국제정치의 여러 문제에 다시 주의를 갖도록 하는 것.
(3) 전쟁이 일어나면 방어를 위한 소비에트연방의 준비를 가장 열성적이고 모든 측면에 걸쳐 수행하는 것.

공식 사회민주주의를 포함하여 자본가계급의 정당들은 제국주의가 소비에트연방에 대해 준비하고 있는 전쟁의 진정한 성격에 대해서 자국 국민을 속이려고 모든 방면에서 노력할 것이다. 우리의 임무는 지금 가장 광범한 전 세계의 인민대중에게 이 전쟁이 최초의 노동자 독재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자와 노예소유자의 전쟁이자, 사회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전쟁임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 전쟁에서 제국주의 자본가계급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 임금 노예제를 유지하기 위해 싸울 것이다. 그러나 소비에트연방은 국제 노동자계급과 모든 식민지, 반(半)식민지, 종속국가들의 이해를 위해서, 국제혁명과 사회주의를 위해서 싸울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모든 활동은 다음과 같은 기치에서 전개되어왔음에 틀림없다. (1) 노동자 독재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자의 전쟁을 집어치워라. ⑵ 소비에트연방을 공격하는 모든 나라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하라. (3) 소비에트연방에 대해 전쟁을 일으키는 모든 부르주아 국가에 패배를. 자본주의 국가의 모든 정직한 노동자들은 '자국' 정부의 패배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활동해야 한다. (4) '자국의' 노예소유자를 돕고 싶지 않은 모든 외국 병사는 적군에 투항해야 한다. 소비에트연방은 모든 노동자의 조국이다. (5) '조국 방어' 슬로건은 제국주의자들에 대항하여 민족혁명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식민지, 반(半)식민지 국가들을 제외한 모든 부르주아 국가들에서 제국주의의 이해에 봉사하는 거짓 핑계이다. 그러나 소비에트연방에서 '조국방어' 슬로건은 올바르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회주의의 조국과 전 세계 노동자계급 운동의 근거지를 방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6) 우리는 1917년 10월 25일 이후부터 조국방어주의자이다. 우리의 애국 전쟁은 '세계 사회주의 군대의 부대 가운데 하나인 소비에트공화국을 위한' 전쟁일 것이다. '우리의 "애국" 전쟁은 부르주아 국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주의 혁명으로 나아가는 것이다.'(레닌, '우리 시대의 주요한 임무, 《전집》, 제27권, 163쪽) 우리의 조국방어는 노동자독재의 방어이다. 우리의 전쟁은 '자국의' 쿨락, 새로운 자본가계급, 관료, 우스트리얄로프 학파의 전문가, 백군 망명자에 대해서 빈농의 지지를 받으며 중농과 동맹한 노동자와 농장노동자에 의해 수행될 것이다. 우리의 전쟁은 진정으로 정의로운 전쟁일 것이다. 소비에트연방을 방어 하지 않는 자는 그 누구든 의심할 여지없이 국제 노동자계급을 배반한 자이다.

 

중국혁명의 패배와 그 원인

중국혁명의 패배는 실제 세력관계를一물론 일시적일뿐이지만一 제국주의에 유리하게 변화시켰다. 중국에서 새로운 혁명, 새로운 혁명투쟁은 불가피하다. 이것은 상황 전체가 보증하고 있다.

기회주의적 지도자는 사태가 지난 뒤에 이른바 '객관적인 세력관계'로 자신의 실패를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바로 어제, 이와 똑같은 세력관계에 기초하여 중국의 즉각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현 시점에서 중국혁명의 불행한 결과를 가져온 결정적 원인은 러시아공산당과 코민테른 지도부의 근본적으로 잘못된 정책이었다. 그 최종 결과는 결정적인 시기에 중국에는 실제로 진정한 볼셰비키당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중국 공산주의자들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천박하고 비열한 행위이다.

우리가 중국에서 경험한 것은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에 멘셰비키 전술을 적용한 전형적 시도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 노동자계급은 승리를 거둔 자신의 '1905년'(레닌)에 이르지 못했음은 물론 지금까지 1848년 혁명에서 유럽 노동자계급이 수행한 것과 본질적으로 똑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현 국제정세에서 중국혁명의 특이성은 스탈린-마르티노프-부하린의 전체 정책이 기대를 걸었던 이른바 '헉명적' 자유 자본가계급이 중국에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다. 중국혁명의 특이성은 다음과 같다.

(1) 짜르체제 하의 러시아 농민보다 더 억압받고, 국내뿐만 아니라 외국 압제자의 멍에에 짓눌려 신음하고 있던 중국 농민은 1905년 혁명의 러시아 농민보다 더 강력하게 봉기할 수 있고, 또 봉기했다.

(2) 레닌이 이미 1920년에 중국에 대해 제기한 '소비에트' 슬로건은 1926-27년의 상황에서도 그 정당성을 완전히 입증했다. 중국에 소비에트가 존재했다면, 노동자계급의 지도 아래 농민세력을 결집시킬 수 있는 형태가 제공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의 진정한 기관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부르주아 정당인 국민당과 여기서 나오는 중국의 까베냑[루이 까베냑(Louis Cavaignac, 1802~1857 : 프랑스의 공화파 군인. 1848년 2월혁명 이후 육군 장관. 6월, 빠리 노동자 봉기 진압군 총사령관이었다. 12월의 대통령선거에 부르주아 공화파 대표로 출마했지만 루이 나폴레옹(보나파르트)에게 패배했다.]들에 대한 실제적 저항을 조직하는 기관이 되었을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은 자본가계급에 대항하는(노동자계급의 지도 아래)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동맹에 의해서만 관철될 수 있다는 레닌의 가르침은 중국과 이와 비슷한 식민지, 반(半)식민지 국가들에 적용 가능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이런 국가들에서 승리로 가는 유일한 길을 가리킨다.

(3)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즉,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혁명적 민주주의 독재는 제국주의 전쟁과 노동자혁명의 현 시대에 중국에서는 소비에트의 형태를 취했을 것이다. 그리고 소비에트연방의 존재를 고려하면, 비교적 급속히 사회주의 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대안적 전망이 없다면, 불가불 노동자계급을 패배로 이끄는 자유 자본가계급과의 동맹이라는 멘셰비키적 길뿐이다. 바로 이것이 1927년 중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동방의 소비에트, 민족혁명운동이 존재하는 국가들에서 공산주의노동자당의 완전한 독립, '자국의' 자본가계급과 외국의 제국주의자들에 대항하는 :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동맹에 대한 결정一레닌 시대에 코민테른 제2차~4차 대회에서 내린 이 모든 결정은 완전히 잊혀져버렸다.

코민테른 제7차 확대집행위원회 전원회의(1926년 11월)의 결의문은 중국에서 이미 강력하게 전개 중인 사태에 대해 올바른 레닌주의적 평가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마르티노프가 주장한 멘셰비키 방침으로 아주 완전히 전향했다. 믿을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이 결의문은 1926년 3월의 장개석의 첫 반(反)혁명 쿠데타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1926년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 광동 정부가 일련의 지방에서 집행한 노동자 농민의 사살이나 그 밖의 탄압조치에 대해서도, 노동자계급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이뤄진 강제적 중재 조치에 대해서도, 광동 정부의 노동자계급 파업 분쇄에 대해서도, 광동 정부가 고용주 측의 황색 어용노동조합을 보호해준 것에 대해서도, 광동 정부가 농민운동을 억압하고, 모욕하고, 그 확대 발전을 저지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에 대해서도 일체 말하지 않는다. 제7차 전원회의의 결의문에는 노동자를 무장시키거나, 반(反)혁명 총참모부에 대해 투쟁하자는 요구도 없다. 이 결의문에서 장개석의 군대는 혁명군으로 묘사되어 있다. 결의문은 공산당 일간지의 창간을 촉구하지도 않으며, 중국공산당이 진정으로 독자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에 대해서도 의심할 여지없이 명확하게 말하지도 않는다. 이 모든 것을 마무르려고 제7차 전원회의는 공산주의자에게 국민당 정부에 들어갈 것을 재촉했다. 이는 지금의 상황에서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재앙을 가져올 수밖에 없는 조치였다. 코민테른의 결의문은 '민족혁명정부(즉, 장개석 정부)의 기구는 농민과 단결하기 위한 매우 실제적인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이렇게 말하고 있다(이때가 1926년 11월이었다):'대자본가계급의 일정한 계층(!)도 여전히 일정 기간은 혁명과 손잡고 나갈수 있다.'

제7차 전원회의의 결의문은 (장개석의 반(反)혁명 쿠데타가 일어난) 1926년 3월 이후,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가 손문주의를 비판하지 않음으로써 독자적인 노동자당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포기했다는 사실, 러시아입헌민주당의 농업 강령을 채택했다는 사실, 마지막으로 중앙위원회 서기인 진독수 동지가 1926년 7월 4일자 공개편지에서 손문주의를 민족운동에서 노동자와 자본가계급의 '공통된 신념'이라고 인정하는 것에 동의한 사실을 묵과했다.

거의 같은 시기에 가장 책임 있는 지위에 있던 러시아의 동지들은 농촌에서 내전의 발전은 국민당의 투쟁 능력을 약화시킬지도 모른다는 취지의 충고를 하고 있었다. 바꿔 말하면, 이들은 농업혁명의 발전을 공식적으로 금지시킨 것이다.

1927년 4월 5일, 상황이 이미 충분히 명백해졌는데도 스탈린 동지는 원형강당에서 열린 모스크바 당 조직의 집회에서 장개석은 반(反)제국주의의 투사이고, 국민당의 규율에 따르는, 따라서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동맹자였다고 말했다. 상황이 한층 더 명백해진 1927년 5월 중순에도 스탈린 동지는 무한의 국민당이 혁명적 국민당이고, 우익 분자들을 숙청한 혁명의 중심'이라고 말했다.

코민테른 제8차 확대집행위원회 전원회의(1927년 5월)는 이런 멘셰비키적 오류를 바로잡을 힘이 없었다.

반대파는 이 제8차 전원회의에 다음과 같은 성명을 제출했다.

'전원회의는 부하린의 결의문을 잊어버리고, 다음의 몇 가지 방침을 담은 결의문으로 대체하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첫째, 농민과 노동자는 국민당의 좌익 지도자를 신뢰해서는 안 될 뿐만 아니라 병사와 함께 자신의 소비에트를 건설해야 한다. 둘째, 소비에트는 노동자와 선진적 농민을 무장시켜야 한다. 셋째, 공산당은 자신의 완전한 독립을 확보하고, 일간지를 창간해야 하며, 소비에트 결성에서 지도력을 맡아야 한다. 넷째, 토지를 즉시 지주에게서 빼앗아야 한다. 다섯째, 반동적 관료집단은 즉시 면직시켜야 한다. 여섯째, 배신적인 장군이나 다른 반(反)혁명가는 즉결처분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방침은 노동자 농민대표 소비에트를 통해서 혁명적 독재를 수립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이제는 이해하고, 재고하고, 변화할 때이다', 트로츠키,《중국에 대하여》(On China), 241~242쪽)

결코 혁명적 국민당이 아닌 무한 국민당을 당에 경고하려고 한 반대파의 노력을 스탈린과 부하린은 '당에 대항하는 투쟁', '중국혁명에 대한 공격' 등으로 규탄했다.

중국에서 혁명과 반(反)혁명의 실제 경과에 관한 사실을 말하고 있는 전보는 은폐되고 날조되었다. 마침내, 우리 당의 중앙기관지(〈프라브다〉, 1927년 7월 3일자)가 '노동자와 병사들의 우애'라는 표제 아래 중국 장군들에 의한 노동자의 무장해제를 알릴 정도로까지 사태가 악화되었다. 스탈린은 레닌의 가르침을 비웃으며 중국에서 '소비에트' 슬로건을 제기하는 것은 노동자 독재의 즉각적 수립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실제로 레닌은 훨씬 전인 1905년 혁명 당시에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 기관으로 소비에트 슬로건을 제기했다. 반대파가 제때에 제기한 중국의 소비에트 슬로건은 스탈린과 부하린에 의해 '반(反)혁명을 거들고 부추기는 것'이라는 등의 비난을 받았다. 노동자와 농민의 봉기 거점이 '우리의' '혁명적' 장군들에 의해 분쇄되었을 때, 스탈린과 부하린은 자신들의 파산을 은폐하기 위해서 느닷없이 중국의 소비에트라는 슬로건을 제기했다. 그러나 이나마도 다음날 아침에 다시 잊어먹었다.

처음에 중국공산당은 '코민테른의 모범적 지부'라고 선언되었으며, 이에 대한 반대파의 아주 가벼운 비판도一아직은 그 오류가 교정될 수도 있었을 때에一중국공산당에 대한 '악의에 찬 공격'으로 억압받고 규탄되었다. 그러나 나중에 마르티노프-스탈린-부하린의 비참한 실패가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해지자, 이들은 모든 책임을 미숙한 중국공산당에 지우려고 했다.

이들은 처음에는 장개석에게, 다음에는 당생지[당생지(Tang Sheng-chi, 1889-1970) : 호남의 군벌. 1926년 국민당에 입당, 북벌에 참가, 무한을 탈환했다. 1927년 4월 쿠데타 이후 장개석과 갈라서고, 무한의 좌익 국민당 정부의 군 최고사령관을 지냈다.]에게, 그 다음에는 풍옥상[풍옥상(Feng Yu-hsiang, 1882-1948) : 중국의 군벌로 크리스트교를 믿어 '크리스찬 장군'이라고 불린다. 1911년 신해혁명에 참가, 1926년 국민당에 입당. 1926-27년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북벌에 참여했다. 1930년, 왕정위 등과 함께 반(反)장개석 봉기에 나서지만 실패했다.]에게, 또 그 다음에는 '신뢰할 수 있는' 왕정위에게 모든 것을 걸었다. 노동자 농민의 사형집행인인 이들 모두는 차례로 '반(反)제국주의의 투사'이자 '우리의' 동맹자로 환영을 받았다.

이런 멘셰비키 정책이 지금 레닌의 혁명적 가르침에 대한 노골적이며,공공연한 거세로 완성되고 있다. 스탈린-부하린과 '청년학파'는 지금 민족혁명운동에 관한 레닌의 가르침이 요컨대, '자본가계급과의 동맹'이라는 교의와 같다는 것을 '증명'하기 에 바쁘다.

1920년 코민테른 제2차 대회에서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 '착취국가의 자본가계급과 식민지 국가의 자본가계급 사이에 일정한 화해가 이루어졌다. 이 때문에 빈번히一아마 대부분의 경우에도一 피 억압국가의 자본가계급은 민족운동을 지지하는 동시에 제국주의 자본가계급과 완전 일치한다. 즉, 모든 혁명운동과 혁명적 계급들에 대항하여 제국주의 자본가계급과 힘을 합치는 것이다.'(레닌, '코민테른 제2차 대회ㅡ민족, 식민지문제 소위원회의 보고', 《전집》, 제31권, 242쪽)

오늘날, 장개석이나 왕정위와의 동맹이라는 멘셰비키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감히 자신을 인용하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레닌이라면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사태에 대해서 레닌 자신은 1917년 3월에 이렇게 말했다 : '"우리의 혁명은 부르주아혁명이다. 따라서 노동자는 자본가계급을 지지해야 한다"고 플레하노프가 지난날 말한 것처럼, 포트레소프, 그보죠프, 치헤이제 같은 자(청산주의자)들은 말한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우리는 "우리의 혁명은 부르주아혁명이다. 따라서 노동자는 인민들이 부르주아 정치인들의 습관적인 기만에 눈을 뜨게 하고, 말을 믿을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자신의 힘, 자신의 조직, 자신의 단결, 자신의 무기에 의지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레닌, '먼 곳에서 보내는 편지',《전집》, 제23권, 306쪽)

레닌을 '자본가계급과의 동맹'의 주창자로 제시하려는 이런 시도보다 국제 노동자계급에 대한 더 큰 죄악은 없을 것이다. 1926~27년에 중국혁명의 여러 문제에 관한 반대파의 견해만큼 즉각적으로, 또 정확하게 마르크스주의적 예측이 확증된 경우는 혁명투쟁사상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중국혁명에서 일어난 사태의 경과와 그 패배의 원인을 검토하는 것은 전 세계 공산주의자들의 긴급하고 당면한 임무이다.

이런 문제는 내일,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나 다른 동방국가들의 노동자계급운동, 결과적으로 국제 노동자계급 전체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될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세계관의 근거 자체와 맞닿아 있는 이런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다가오는 혁명의 진정한 볼셰비키 중핵이 형성될 것이다.



자본주의의 부분적 안정과 코민테른의 전술

볼셰비키주의의 근본적 원리 가운데 하나는 제1차 세계대전과 우리의 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시대가 사회주의 혁명의 시대라는 것이다. 코민테른은 '세계혁명의 당'으로 창립되었다. 이런 사실에 대한 승인은(코민테른가입) '21개 조항'에 기록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노선을 따라 공산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 다종다양한 독립파와 멘셰비키가 분리된 것이다.

물론 전쟁과 10월혁명이 세계혁명의 시대를 열어젖혔다는 사실의 승인이 주어진 매 순간마다 혁명적 상황이 즉시 준비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멸하고 있는 자본주의'(레닌)는 일정한 기간, 각각의 국가들, 개별적 생산 부문에서 경제를 부분적으로 회복시킬 수 있고, 심지어 생산력을 더욱 발전시킬 수도 있다. 세계혁명의 시대에도 그 고양기와 쇠퇴기가 있다. 때문에 노동자계급과 그 당의 준비성, 반(反)혁명적 사회 민주주의가 미치는 영향력의 정도, 코민테른의 올바른 지도가 그만큼 더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런 혁명의 성쇠는 전체적으로 볼 때, 당면한 역사적 시대에 대한 근본적인 레닌주의적 평가를 변화시키지 못할 것이다. 코민테른의 혁명전략은 오직 이 평가에 근거해서만 세울 수 있다.

그런데도 국제혁명운동의 일련의 패배와 여기서 비롯하는 비관적인 정서로 인해 스탈린 그룹은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현 시대에 대해 완전히 '새롭고', 본질적으로 사회민주주의적인 평가에 이르렀다. 일국사회주의 '이론'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안정'이 몇 십 년 동안은 지속 될 것이라는 가정에서 나온다. 이 '이론'은 본질적으로 '안정'이라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퇴보적 정서의 산물이다. 일국사회주의 '이론'이 사회혁명당 좌우익 모두로부터 환영받았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체르노프도 스탈린과 부하린의 '공산주의적 인민주의'에 관한 주제로 글을 썼다. 사회혁명당 좌파의 기관지는 '스탈린과 부하린은 꼭 인민주의자들처럼, 사회주의가 일국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고 썼다(〈즈나야 보르비〉 [Znamya Borby, 투쟁의 깃발] 제17~18호, 1926년). 사회혁명당이 이 이론을 지지하는 것은 여기에서 세계혁명 방침의 포기를 간파하기 때문이다.

스탈린의 보고에 근거하여 채택된 제14차 당 대회의 결의문에는 다음과 같은 명백히 잘못된 주장이 실려 있다 : "국제관계 분야에서 우리는 한 시기 전체로 바뀌고 있는 "숨 돌릴 기회"의 강화와 확장을 경험하고 있다.'(제14차 당 대회 의사록, 957쪽) 코민테른 제7차 확대집행위원회 전원회의(1926년 12월 7일)에서 스탈린은 똑같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세계정세 평가에 근거하여 코민테른의 전체 정책을 보고하고 있다(스탈린, '다시 한 번 우리 당내의 사회민주주의적 일탈에 대하여'一 원제목은 '러시아공산당의 당내 문제'였다. 속기록, 12쪽). 이 평가가 아주 명백하게 잘못되었음은 이미 입증되었다.

중앙위원회와 중앙통제위원회의 합동전원회의(1927년 7~8월) 결의문은 아무런 단서도 없이 자본주의의 기술적, 경제적, 정치적 안정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정세에 대한 스탈린주의의 평가를 제2인터내셔널 지도자들(오토 바우어, 힐퍼딩, 카우츠키 등)의 평가에 훨씬 더 접근시키고 있다.

제14차 당 대회 이후, 1년 반이 좀 더 지났다. 이 기간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태만 들자면 영국의 총파업, 중국혁명의 거대한 사태, 빈의 노동자봉기가 있었다. 현 '안정'의 조건들 자체에 불가역적으로 의탁한 이런 사태는 자본주의가 얼마나 많은 폭발적 재료를 축적하고 있는지, 그 '안정'이 얼마나 불안정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모든 사태는 일국사회주의 '이론'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자본주의의 '안정' 뒷면은 2,000만 명의 실업자 집단, 거대한 유휴 생산력, 군비(軍備)의 광적인 증대, 국제적 경제관계의 극단적 불안정이다. 현재 유럽에 감돌고 있는 새로운 전쟁의 위험만큼, 평화로운 시기가 장기간 지속되기를 바라는 것의 공허함을 확실하게 폭로하는 것은 없다. '몇 십 년'에 걸친 안정을 꿈꾸는 자는 노동자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에 눈이 멀고, 자본주의의 기술적, 경제적, 정치적 성공에 판단력을 잃어버린 소부르주아 계급뿐이다. 그러나 현실은 모든 '안정'을 파열시킬 전쟁 쪽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 더구나 노동자계급과 동방의 피억압 식민지대중은 이 '안정'을 힘으로 타도하려고 거듭 시도하고 있다. 처음에는 영국에서, 그 다음에는 중국에서, 또 그 다음에는 빈에서.

영국에서 총파업이 발발했다一그렇지만 영국공산당에는 당원이 5,000명밖에 없었다! 빈에서 일어난 노동자 봉기는 혁명에 준할 만큼의 희생자를 냈다一그렇지만 오스트리아공산당에는 당원이 6,000명밖에 없었다! 중국에서 노동자 농민 대중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一그렇지만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부르주아 국민당 지도부의 단순한 부속물로 밝혀졌다! 이것이 현 세계정세의 가장 좌시할 수 없는 모순이다.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안정'을 지지하고 연장시키는 것이다. 우리의 최대 임무는 현 시대가 제기하고 있는 거대한 요구의 최고치로 발돋움하는 각국 공산당을 돕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엇보다도 코민테른 자체의 세계정세의 성격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정한다.

우리의 국제공산당(코민테른)은 전쟁을 방지하기 위한 투쟁, 소비에트연방의 방어, 제국주의 전쟁을 사회주의를 위한 전쟁으로 전화시키기 위하여, 국제 노동자계급 전체를 결집시키는 임무에 전념해야 한다. 이를 위해 공산주의 노동자는 무엇보다도 혁명적 기질을 가진 비(非)공산 주의 노동자, 무당파 노동자, 사회민주주의 노동자, 조합주의 노동자, 무정부주의 노동자, 노동조합주의자를 획득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 순전히 부르주아적인 조직에 몸담고 있는 성실한 노동자도 획득해야 한다. '노동자 공동전선은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하기를 바라는 모든 노동자의 단결을 당연지사로 여겨야 한다. 따라서 이 전선에는 여전히 무정부적 조합주의 등을 추종하고 있는 노동자도 포함된다. 라틴계 국가들에서 이런 노동자는 아직도 상당수에 이른다.' 이것이 레닌 시대 코민테른 제4차 대회의 결정이었다. 이 결정은 오늘날에도 그 충분한 효력과 적용가능성을 간직하고 있다. 제2인터내셔널과 암스테르담 노동조합 인터내셔널 지도자들의 현재 행동은 미래의 전쟁에서 이들의 행동이 그 비열함과 파렴치한 배신에서 1914-18년에 이들이 수행한 역할을 능가할 것임을 더할 나위 없이 명백하게 한다. 프랑스의 폴 봉꾸르[죠제프 폴 봉꾸르(Joseph Paul-Boncour, 1873-1972) : 프랑스의 정치인. 처음에 노동운동가로 시작해서 나중에 정치인으로 변신. 1909년부터 하원의원. 사회당에서 정치를 시작했지만 1931년에 결렬, 사회공화국동맹을 결성. 1932~33년에 수상을 지냈다.]는 전시에 노동자를 부르주아 독재자에게 미리 내주는 법률을 도입했다. 영국의 노동조합회의(TUC) 총평의회는 보이코프[표트르 보이코프(Pyotr Voikov, 1888-1927):고참 볼셰비키, 의교관. 1918년의 짜르 일가 처형에 관여했다. 1924년, 폴란드의 소비에트연방 전권 대표. 1927년 6월, 바르샤바에서 백군에 의해 암살당했다.]의 암살자들을 옹호하고, 중국으로의 군대 파견에 동의했다. 독일의 카우츠키는 러시아의 소비에트 권력에 대한 무장봉기를 주창하고, 독일사회민주당 중앙위원회는 '포탄 캠페인'을 조직하고 있다. 핀란드와 라트비아의 사회민주주의 장관이나 폴란드사회당의 지도자들은 소비에트연방에 대한 전쟁을 지지할 '준비가 언제라도 되어' 있다. 미국의 공식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소비에트연방의 승인을 공공연하게 반대하면서 가장 악독한 반동들처럼 말하고 있다. '자국' 노동자의 사형집행인을 지지하고 있는 발칸반도의 '사회주의자들'은 언제든 '외세'(소비에트연방)에 대항하는 군사행동을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다. 오스트리아사회민주당 지도자들은 말로는 '소비에트연방을 지지' 하지만 빈의 노동자 봉기를 유혈 진압한 자국의 파시스트를 도운 사람들로, 결정적인 순간에는 분명히 자본가의 측에 붙을 것이다. 러시아의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소비에트연방에 대한 간섭을 주장하지 않는 것은 오직 아직까지 개입할 준비가 된 강대국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민주주의의 반(反)혁명적 본질을 은폐하고 있는 이른바 '좌익 사회민주주의'의 지도자들은 주요한 위험이다. 왜냐하면 이들이 다른 누구보다도 사회 민주주의의 기치를 따르고 있는 노동자가 노동운동 안의 이런 자본가계급의 앞잡이들과 결정적으로 단절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카츠[이반 카츠(Ivan Katz, 1889-1956):하노버의 독일공산당 극좌파 지도자, 공동전선 전술에 반대, 1926년 1월에 제명당했다.], 슈바르츠[슈바르츠(E. Schwartz) : 독일공산당의 극좌파 지도자. 독일 제국의회에서 독일과 소비에트연방의 군사동맹을 공격했다.], 코르쉬[카를 코르쉬(Karl Korsch, 1886-1961):독일의 혁명가. 독일공산당 극좌파 지도자. 제1차 세계대전 중 국제주의의 입장. 1919년, 독립사회민주당에 참가. 1920년, 독일공산당에 입당. 1924년부터 국회의원. 1920년대 중반, 독일공산당과 코민테른의 우익화에 반대, 1926년 5월, 독-소 조약 승인에 반대해 제명당했다. 공동전선 전술에도 반대했다. 1928년 이후, 정치활동에서 물러나 철학 연구에 전념. 히틀러 승리 후 망명했다. 저서로《마르크스주의와 철학〉〉,《카를 마르크스》등이 있다.], 로젠베르크[아르투르 로젠베르크(Arthur Rosenberg, 1889-1943):독일의 공산주의자, 역사가, 독일공산당 좌파의 지도자. 1920년 독일공산당 입당. 당내 좌파의 지도자로서 두각을 나타내, 1924년에 중앙위원, 국회의원, 코민테른 집행위원을 지냈다. 1927년 4월에 탈당. 그 후, 저술 활동에 전념, 많은 노작을 남긴다.《바이마르공화국의 성립》(1928년), 《볼셰비키주의의 역사》(1932년), 《바이마르공화국사》 (1935년) 등.]같은 구 코민테른의 구성원들은 극좌주의를 통해 공산주의와의 단절하면서 마찬가지로 배신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공공연한 우익에서부터 자칭 '좌익'에 이르기까지 모든 색조의 완전히 반(反)혁명적인) 이런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들과의 불장난은 전쟁이 다가옴에 따라 점점 더 위험천만해지고 있다. 공동전선 전술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영국 총평의회 배신자들과의 블록이나 암스테르담 인터내셔널과의 화해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이렇게 해석된 정책은 노동자계급을 약화시키고 혼란시켜 배신자임을 부정할 수 없는 자의 신망을 높이고, 우리 자신의 힘을 최대한 강화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좌익을 향해 발포하라'는 슬로건으로 요약되는 잘못된 스탈린주의 정책은 최근 1~2년 사이에 코민테른의 가장 중요한 지부 지도부에서 주요한 역할이 공산주의 노동자의 의지에 반하여 우익의 수중으로 넘어가버린 결과를 빚었다(독일,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코민테른의 좌익 전체에 대한 외과적 제거를 목표로 삼은 이 우익 지도그룹의 정책은 코민테른의 힘을 약화시키고, 우리를 거대한 위험에 직면하게 할 수 있다.

특히 독일에서 우르반스 그룹의 파면은 코민테른의 좌익 전체를 제거한다는 이 정책에서 나온 것이었다. 분별력 없이 이들을 '변절자', '반(反)혁명가', '체임벌린의 앞잡이' 등으로 중상하고 괴롭힌 자들에 답하여 우르반스-마슬로프[후고 우르반스(Hugo Urbahns, 1892-1947):독일의 혁명가. 1924년 이후, 독일공산당의 지도자. 1926년에 마슬로프, 피셔 둥과 함께 제명되어 레닌분트를 결성했다. 나중에 이 조직은 좌익반대파에 결합하기도 했다.] 그룹의 좌익 지지자가 사용한 일부 대단히 논쟁적인 표현을 과도하게 강조함으로써 스탈린 그룹은 독일의 좌익을 또 하나의 당의 길로 집요하게 밀어내고 있다. 스탈린 그룹은 독일 공산주의자 대오의 분열을 완전 기정사실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실제로 우르반스 그룹은 국제 노동자계급운동의 모든 근본 문제에서 레닌주의 견해를 지니고 있다. 이 그룹은 소련을 옹호하며, 결정적인 순간에도 소련을 끝까지 옹호할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 그룹은 광범한 노동자계급 대중과 긴밀히 결합된 경험 많은 다수의 일반 노동자-볼셰비키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독일공산당에 남아있는 많은 노동자계급 공산주의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코민테른 대회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제명된 이 모든 동지들一이들 가운데 제일 먼저 우르반스 그룹一의 코민테른 재가입은 코민테른을 분열시키기 위해 스탈린이 취한 조치를 바로잡는 첫 걸음이다. 레닌은 《'좌익' 공산주의-유아적 혼란〉〉에서 진짜 '극좌주의'의 오류를 폭로했지만, 노동운동 내부의 볼셰비키주의의 주적은 여전히 기회주의라고 말했다. '이 적은 국제적인 규모에서 아직도 주요한 적이다.'(레닌, 좌익'공산주의-유아적 혼란》,《전집》, 제31권, 31쪽) 코민테른 제2차 세계대회에서 레닌은 이것에 덧붙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임무와 비교하면, 공산주의 내 "좌익적" 경향의 오류를 교정하는 것은 쉬운 임무일 것이다.'(레닌,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제2차 대회', 《전집》, 제31권, 231쪽) '좌익'에 대해서 말했을 때, 레닌이 염두에 둔 것은 극좌주의였음에 반해, 스탈린이 말하는 극좌주의와의 투쟁은 혁명적 레닌주의자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주적인 우익 기회주의 운동에 대한 결정적 투쟁, '좌익적' 경향의 오류 교정一이것이 레닌의 슬로건이었다. 우리 반대파도 같은 슬로건을 제안한다.

'사회주의적' 기회주의의 힘은 결국 자본주의의 힘이다. 전후 첫 몇 년의 공황(1918~21년) 중에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나락으로 떨어지자, 공식 사회민주주의도 자본주의와 함께 약화되고 몰락했다. 자본주의가 부분적으로 안정된 시기에 사회민주주의는 일시적으로 강화되었다. 1920~21년 이탈리아 노동자의 패배, 1921~23년 독일 노동자계급의 패배, 1926년 영국 총파업의 패배, 1927년 중국 노동자계급의 패배 등은 그 원인이 무엇이었든, 그 자체가 노동자계급 상층에서 혁명적 분위기의 일시적 쇠퇴의 원인이 되었다. 이런 사태는 일정기간 공산당을 희생시켜서 사회민주주의를 강화시켰다. 그리고 공산당 안에서도 좌익을 희생시켜서 우익의 일시적 우세를 가져왔다. 노동귀족, 노동관료와 그 소부르주아 동료들의 역할은 이러한 시기에 특히 커지고, 특히 반동적으로 된다. 이런 과정은 어느 정도까지 소련공산당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행정상의 '중앙파'는 오로지 좌익을 향해서만 포문을 열어 놓았으며, 순전히 기계적인 방식에 따라 좌익(레닌주의 분파)에 한층 더 불리하게 새로운 세력관계를 만들어왔다. 실제로 당이 아니라 당 기구만이 결정하는 상황이 조성되었다.

이것이 코민테른, 러시아공산당, 소비에트 국가의 정책들에 대한 레닌주의 분파의 영향력이 약해진 일반적 원인이다. 동시에, 10월혁명 후에도 오랫동안 적 진영에 속해 있었으며, 마침내 다소 시험적으로 코민테른 가입을 허락받은 반(半)사회민주주의 우익 분자(마르티노프, 슈메랄[보후미르 슈메랄(Bohumir Smeral, 1880-1941):체코슬로바키아공산당의 우익 지도자. 1921년, 체코슬로바키아공산당을 창설했다. 1922년, 코민테른 제4차 세계대회에 참가한 후 러시아에 체재하며, 코민테른에서 활동했다. 러시아당내 분파투쟁에서 스탈린을 충실히 지지했다.], 라페스, D. 페트롭스키, 페퍼 등)가 점점 더 빈번하게, 더욱더 큰소리로 코민테른을 대표하여 발언하고 있는 일반적 원인이다. 그리고 이들에다가 하인츠 노이만[하인츠 노이만(Heinz Neumann, 1902-1938):독일공산당의 지도자. '제3기'의 이론가. 1927년에 코민테른의 중국 책임자. 1933년에 모스크바로 망명. 1937년, 게페우에 체포되어 다음 해 숙청당했다.] 등과 같은 부류의 명백한 모험주의자의 이름을 덧붙여야 한다. 그렇지만 대중 사이에서는 왼쪽으로 향하는 새로운 움직임, 새로운 혁명적 고양의 요소가 이미 축적되고 있다. 반대파는 이론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이런 새로운 날을 준비하고 있다

 

주요한 결론

1. 영-러 관계의 단절과 국내외의 다른 난관들의 영향을 받아 지배집단의 다수파 내에서 대략 다음과 같은 '계획'이 싹트고 있다. (ㄱ) 짜르시대의 채무 승인. (ㄴ) 얼마간의 대외무역 독점 폐지. (ㄷ) 중국에서 손을 떼기 즉, 중국혁명과 민족혁명운동 일반에 대한 지원을 '당분간' 중단하는 것. (ㄹ) 국내에서 우경화 책략을 실행하는 것 즉, 신경제정책(NEP)을 좀 더 확대하는 것. 이런 대가를 지불함으로써 이들은 전쟁의 위험을 없애고, 소련의 국제적 상황을 개선하고, 국내의 어려움을 끝장내기를(아니 적어도 경감시키기를) 바란다. 이 '계획' 전체는 자본주의의 안정이 몇 십 년 동안 보증된다는 단 하나의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실제로 이것은 '책략'이 아니라, 현 상황에 대한 소비에트 권력의 완전한 굴복을 의미할 것이다一'정치적 신경제정책', '신(neo)-신경제정책'을 통한 자본주의로의 퇴행이 될 것이다. 제국주의자들은 우리의 모든 양보를 받아들이고, 그만큼 더 신속하게 새로운 공격, 심지어 전쟁으로까지 나아갈 것이다. 우리의 양보를 인지하고 있는 쿨락, 네프맨, 관료는 그만큼 더 집요하게 우리 당에 대항하여 반(反)소비에트 세력을 조직 하려고 할 것이다. 우리 쪽의 이러한 '전술'은 우리나라의 새로운 자본가 계급과 외국 자본가계급의 가장 밀접한 결합을 가져올 것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경제적 발전은 국제자본의 완전한 통제 아래 들어갈 것이다一1페니를 빌린 대가는 1루블의 예속이다. 그리고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대부분은 소비에트 국가의 힘에 대한 신뢰를, 소비에트 국가가 인민을 어디로 이끌지 알고 있다는 신뢰를 잃기 시작할 것이다.

가능하다면, 우리는 전쟁을 '돈을 치르고 모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강력해져야 하고, 단결해야 하며, 흔들림 없이 세계혁명 방침을 옹호하고, 코민테른을 강화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만 우리는 정말로 소비에트 권력의 토대를 침식하는 대가를 치르는 일 없이 가능한 한 오랫동안 전쟁을 지연시킬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동시에 전쟁이 불가피한 경우에도 국제 노동자계급의 지지를 얻고, 승리를 거둘 가망이 있다.

레닌은 우리가 돈을 치르고 전쟁을 모면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에서 국제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제국주의자들에게 일정한 경제적 양보를 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혁명의 가장 어려운 순간에서도 레닌은 대외무역의 독점을 폐지한다든가, 쿨락에 정치적 권리를 부여한다든가, 세계혁명 일반에 대한 태도를 누그러뜨린다든가 하는 생각을 한시도 고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국제혁명에 대한 우리의 지원을 전면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으로 단언하고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중국에 '참견할' 권리가 없다든가, 우리는 '가능한 한 빨리 중국에서 벗어나는'게 더 낫다든가, 우리가 '사리에 맞게' 행동한다면, 이들은 '우리를 상관 안 할' 것이라는 등의 말로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모든 '안정화' 경향, 모든 사이비ㅡ정치수완에 대해 단호한 저항을 보여주어야 한다. 일국사회주의 '이론'은 지금 소비에트연방을 중심으로 한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세력 강화를 분명하게 방해하는, 직접적으로 유해하고 파괴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 이론은 다른 나라 노동자를 잠재우고, 위험에 대한 이들의 의식을 무디게 하기 때문이다.

2. 똑같이 중요한 다른 임무는 우리 당의 대오를 강화하고, 제국주의 자본가계급과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들이 우리 당의 분열, 제명, '파면' 등을 공공연히 추측하는 것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전쟁 문제와 가장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왜냐하면 현재, 제국주의자들의 '시험'은 주로 이런 정치-도덕적 방침을 따라 수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 자본가계급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모든 기관은 지금, 우리 당내 논쟁에 아주 이례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당의 지도기관에서, 그리고 가능하다면 당에서 반대파를 축출하려는, 따라서 가능하다면 정말로 이들을 한꺼번에 제거하려는 중앙위원회의 현 다수파를 공개적으로 격려하고 자극한다. 가장 부유한 부르주아 신문인 〈뉴욕타임스〉로부터 시작하여 가장 비열한 제2인터내셔널의 기관지 빈〈아르바이터 짜이퉁〉(오토 바우어)에 이르기까지 자본가계급과 사회민주주의자의 모든 출판물이 반대파에 대한 '스탈린의 정부'의 투쟁을 찬양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국제혁명의 선전가'인 반대파를 단호히 제거함으로써 그 '정치인다운 지혜'를 더욱 입증하도록 이 정부를 격려하고 있다. 다른 사정이 같다면, 아직 실현되지 않은 반대파 제거 등에 대한 적의 이런 희망에 비례하여 전쟁은 그만큼 더 늦게 일어날 것이다. 게다가 가능하다면,一그리고 우리가 전쟁을 이기려고 싸워야한다면一우리가 완전한 단결을 유지하는 경우에만, 우리가 분열이나 제명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바람을 좌절시키는 경우에만 우리는 전쟁을 돈을 치르고 모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은 자본가에게만 득이 될 것이다.

3. 국제노동자운동에서 우리의 계급노선을 교정하고, 코민테른의 좌익에 대한 투쟁을 중지하고, 코민테른 대회의 결정들을 받아들이는 제명자들을 코민테른에 복귀시키고, 영국 총평의회의 배신적 지도자들과 맺은 '우호 협정' 정책을 단호하게 끝내야 한다. 총평의회와의 단절은 현 상황에서 1914년에 제2인터내셔널의 국제사회주의 사무국과 단절한 것과 같은 의의를 가질 것이다. 레닌은 모든 혁명가에게 단절할 것을 최후통첩으로 요구했다. 이러한 총평의회와 계속 블록을 맺는 것은 당시에 그랬던 것처럼, 지금 제2인터내셔널의 반(反)혁명적 지도자를 거들려는 것이다.

4. 무엇보다도 중국, 그리고 다른 일련의 나라들의 민족혁명운동에 대한 우리의 방침을 단호하게 교정해야 한다. 우리는 마르티노프-스탈린-부하린의 정책을 폐지하고, 코민테른의 제2~4차 세계대회 결의문에서 레닌이 약술한 방침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민족혁명운동의 가속기 대신에 제동기가 되어 필연적으로 동방 노동자 농민의 공감을 잃을 것이다. 중국공산당의 국민당에 대한 모든 조직적 정치적 의존관계는 해소되어야 한다. 코민테른은 자기 대오에서 (준(準)가입한) 국민당을 제명해야 한다.

5. 우리는 일관되게, 체계적으로, 그리고 완강하게 평화를 위한 투쟁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전쟁의 위험을 돈을 치르고 모면'하더라도 전쟁을 늦춰야 한다. 이를 위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또 허용되어야 한다(제1항을 참조). 동시에, 우리는 한순간도 팔짱끼는 일 없이 즉시 전쟁에 대한 준비를 갖춰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첫째 의무는 전쟁의 당면한 위험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관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혼란과 견해 차이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6. 우리는 국내 정책에 대한 계급적 방침을 단호하게 교정해야 한다.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빈농의 지지를 받는 노동자와 농장노동자가 중농과 동맹하여 쿨락, 네프맨, 관료에 대항한다는 엄격하게 볼셰비키적인 정책만이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7. 전쟁이 일어날 경우를 대비하여 우리의 전체 경제, 예산 등을 빈틈없이 준비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새로운 격변기에 접어들고 있다. 중국과의 전쟁처럼, 소비에트연방과의 전쟁은 세계자본주의에 일련의 재앙을 의미할 것이다. 1914-18년 전쟁은 사회주의 혁명의 거대한 '가속기(레닌)였다. 새로운 전쟁, 특히 소비에트연방에 대한 전쟁은一우리가 올바른 정책을 취한 다면, 우리는 전 세계 근로대중의 공감을 획득할 수 있다一 세계자본주의 몰락의 훨씬 더 큰 '가속기'가 될 수 있다. 사회주의 혁명은 새로운 전쟁 없이도 발전할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전쟁은 불가피하게 사회주의혁명으로 이끌 것이다.

 

제10장 적군(Red Army)과 해군

국제정세는 소비에트연방의 방어 문제를 점점 더 표면화시키고 있다. 당, 노동자계급, 농민은 다시 적군과 해군에 더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의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상황 모두는 방어 문제와 결합되고 있다. 군대는 사회구조 전체의 축소모형이다. 군대는 가능한 한 가장 첨예한 방식으로 현존 체제의 강점뿐만 아니라 약점도 반영한다. 이 분야에서는 무엇보다도 겉모습을 믿는 것은 확실치 않다는 것을 경험이 가르치고 있다. 특히 이점에서 안이한 기대와 자신감에 치우치는 것보다는 모든 것을 세 번 이상 스스로 점검하고 엄격한 자기비판에 치우치는 것이 더 낫다.

국내에서 계급 사이의 상호관계 문제와 이 분야에서 우리 당의 올바른 정책은 군대의 내적 응집력과 사령부와 병사 대중의 상호관계에서 결정적인 의의가 있다. 산업화의 문제는 우리 방어의 기술적 자원에서 결정적인 의의가 있다. 국제정책과 국제노동운동, 산업, 농업, 소비에트 제도, 민족문제, 당, 콤소몰에 관해서 본 강령에서 주장한 모든 조치들은 적군과 해군을 강화하는데 가장 중요하다.

이 분야에 대한 우리의 실천적 제안은 이미 정치국에 제출되었다.

 

제11장 논쟁의 진짜 쟁점과 가짜 쟁점

스탈린 그룹은 우리의 진정한 견해에 대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고수하지도, 고수한 적도 없는 인위적으로 조작된 견해에 대해서 논쟁하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이것만큼 더 이들의 정치적 방침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도 없다.

볼셰비키가 멘셰비키, 사회혁명당, 그 밖의 소부르주아 경향과 논쟁했을 때, 볼셰비키는 노동자에게 상대편이 고수한 견해의 현실적 성격을 설명했다. 그러나 멘셰비키나 사회혁명당이 볼셰비키와 논쟁했을 때, 이들은 볼셰비키의 진정한 견해를 논파하는 대신에, 볼셰비키가 말한 적이 없었던 것을 볼셰비키 것으로 간주했다.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은 노동자에게 볼셰비키의 진짜 견해를 부정확하게라도 제시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노동자는 볼셰비키를 지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계급투쟁의 구조 전체는 이들 소부르주아 그룹들로 하여금 볼셰비키를 '음모가', '반(反)혁명의 동맹자', 나중에는 '빌헬름 황제의 하수인' 등이라고 단정하면서 싸우지 않을 수 없게 했다. 지금 우리 당내의 소부르주아적 일탈자들은 이들과 같은 식으로 우리가 생각하거나 말한 적도 없는 것을 우리 탓으로 돌리는 것 말고는 어떤 식으로도 우리의 레닌주의적 견해에 맞서 싸울 수 없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진정한 견해를 발언의 자유를 가장해서라도 옹호할 수 있다면, 압도적 다수의 당원이 우리를 지지할 것이라는 점을 스탈린 그룹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정직한 당내 논쟁을 위한 가장 기초적인 조건도 지켜지지 않는다. 세계적 중요성을 가진 중국혁명의 문제에 대해서 중앙위원회는 오늘날까지 반대파가 말한 것을 단 한 마디도 인쇄하지 않았다. 당내의 모든 토론을 억누르고, 반대파가 당 출판물에 접근할 권리를 차단한 다음, 우리에 대해서 지속적이고 일방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는 스탈린그룹은 매일 더욱 더 심해지는 어리석음과 범죄를 우리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평당원은 이런 비난을 점점 더 믿지 않는 경향이 있다.

1. 우리가 지금의 자본주의의 안정은 몇 십 년에 걸친 안정이 아니다, 우리 시대는 여전히 제국주의 전쟁과 사회혁명의 시대(레닌)라고 말하자, 스탈린 그룹은 우리가 자본주의 안정의 모든 요소를 부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2. 우리가 레닌의 말대로, 우리나라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을 위해서는 하나 이상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노동자혁명이 승리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이 모두 주장한 것처럼, 한 나라, 특히 후진국에서 사회주의의 최종적 승리는 불가능하다고 말하자, 스탈린 그룹은 우리가 사회주의와 소비에트연방에서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신념이 없다'는 완전히 잘못된 주장을 편다.

3. 우리가 레닌을 따라 우리 노동자국가의 증대되는 관료적 왜곡을 지적하자, 스탈린 그룹은 우리가 원래 소비에트 국가를 노동자국가로 간주하지 않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코민테른 대회에 앞서 열린 확대집행위원회에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자, '우리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연대하려고 하는 동시에 우리 당, 우리 국가의 노동자적 성격, 그리고 소비에트연방에서 건설의 사회주의적 성격을 부정하는 사람은 누구든 우리에게 가차없이 저지되고 거부당할 것이다.' (코민테른 제7차 확대집행위원회 전원회의에 즈음하여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트로츠키가 연서한 성명, 1926년 12월 14일, 제1항을 보라)一스탈린 그룹은 우리의 성명을 은폐하고, 우리를 계속 중상하고 있다.

4. 우리가 국내에서 어느 정도 실질적인 사회적 기반을 가진 테르미도르 분자가 성장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우리가 당 지도부가 이런 현상과 우리 당의 특정 부위에 대한 그 영향력에 대해서 좀더 체계적이고, 통합적이며, 확고히 저항할 자세를 취할 것을 요구하자, 스탈린 그룹은 우리가 당이 반동화되고, 노동자혁명은 이미 타락해버렸다고 주장한다는 비난을 퍼붓는다. 우리가 코민테른 대회에 앞서 열린 확대집행위원회에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자, '우리가 우리 당의 다수파가 "우익적 일탈"을 대표하고 있다는 비난은 사실은 아니다. 우리는 다만, 소련공산당 내에 지금 어울리지 않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우익 경향과 그룹이 존재하고 있지만, 당은 이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위 성명의 제13 항을 보라)一 스탈린 그룹은 우리의 성명을 은폐하고, 우리를 계속 중상하고 있다.

5. 우리가 쿨락의 거대한 성장을 지적하고, 레닌을 따라, 쿨락은 평화적으로 '사회주의에 익숙해'질 수 없다, 쿨락은 노동자혁명의 가장 위험한 적이라고 계속 주장하자, 스탈린 그룹은 우리가 '농민을 약탈'하고 싶어 한다고 비난한다.

6. 우리가 강화되고 있는 사적 자본의 지위, 그 축적과 영향력이 국내에서 지나치게 커지고 있는 사실에 대해서 우리 당의 주의를 끌자, 스탈린 그룹은 우리가 신경제정책(NEP)을 공격하고, 전시공산주의의 부활을 촉구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7. 우리가 노동자의 물질적 조건, 실업과 주택 부족에 대한 조치의 불충분성에 대해서 당 정책이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하자, 특히 국민소득에서 비(非)노동자 부위가 차지하는 비율이 지나치게 높아졌다고 지적하자, 이들은 우리가 '편협한 수공업 지향적' 일탈과 '참주선동'의 죄를 범하고 있다고 말한다.

8. 우리가 가격 불균형, 상품 기근, 도시와 농촌의 관계 단절 등 그 필연적인 결과에도 불구하고 산업이 국민경제의 필요에 체계적으로 뒤처져 있다고 지적하자, 이들은 우리를 '초산업화론자'라고 부른다.

9. 우리가 높은 생계비를 줄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적 자본가의 광포한 부당이득 행위를 가능하게 하는 잘못된 가격정책을 지적하자, 스탈린 그룹은 우리가 물가인상 정책을 주창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우리가 1년 전에 코민테른 대회에 앞서 열린 확대집행위원회에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자, '반대파는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가격 인상을 요구하거나 제안했던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정책의 주요한 오류가 바로 높은 소매가격이 불가피하게 관련되어 있는 상품 기근의 격하를 충분한 활기를 가지고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고 보았다.'(위 성명의 제5항을 보라)一우리의 이 성명은 당에서 은폐시켰으며, 중상이 계속되었다.

10. 우리가 공공연히 체임벌린의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는 영국 총평 의회의 반(反)혁명가, 영국 총파업 배신자들과의 '우호 협정'에 반대하자, 우리는 노동조합 안에서 공산주의자의 활동과 공동전선 전술에 반대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11. 우리가 소비에트연방의 노동조합이 암스테르담 노동조합 인터내셔널에 가입하는 것이나, 제2인터내셔널 지도자들과의 어떠한 불장난에도 반대한다고 하자,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적 일탈'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12. 우리가 중국 장군들에 근거한 정책, 부르주아 국민당에 대해 중국 노동자계급을 종속시키는 정책, 마르티노프의 멘셰비키 전술에 반대하자, 우리는 '중국의 토지혁명'에 반대하고, '장개석과 공모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13. 우리가 세계정세에 대한 평가에 기초하여 전쟁이 가까워지고 있으며, 이에 대해 제때에 당에 경고하겠다는 결론에 이르자, 스탈린주의자들은 우리가 '전쟁을 바라고 있다'는 부정직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

14. 레닌의 가르침에 충실한 우리가 전쟁의 접근은 우리가 확고한, 명확한, 명쾌한 계급정책을 갖는 것을 그만큼 더 긴급하게 한다고 지적하자, 스탈린주의자들은 우리가 소비에트연방을 방어하고 싶어 하지 않는 '조건부 방어론자', 반(半)조국패배주의자 등이라는 파렴치한 주장을 하고 있다.

15. 우리가 전 세계의 자본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언론이 러시아공산당의 반대파에 대한 스탈린의 투쟁을 지지하고, 좌익에 대한 스탈린의 탄압을 칭찬하고, 중앙위원회와 당에서 반대파를 제명하고 제거하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지적하자, 〈프라브다〉지와 당과 소비에트의 모든 출판물은 매일 자본가계급과 사회민주주의자가 '반대파를 지지"한다고 거짓 주장하고 있다.

16. 우리가 코민테른의 지도권을 우익에게로 넘겨주는 것이나, 수많은 노동자 볼셰비키를 축출하는 것에 반대하자, 스탈린주의자들은 우리가 코민테른을 분열시키려 한다고 비난한다.

17. 충직한 당원인 반대파가 자신의 진정한 견해를 당원들에게 알리려고 하자, 현재의 기형적인 당 체제는 이들을 러시아공산당에서 내쫓아 버렸다. 이들은 '분파주의'라는 비난을 받고 있으며, 당을 분열시키려 한다는 '혐의로 기소되었다.' 당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토론되는 대신에 쓰레기더미 속에 묻혀버렸다.

18. 그러나 최근에 늘 써먹는 비난은 아마도 우리가 '트로츠키주의'를 신봉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코민테른 대회에 앞서 열린 확대집행위원회에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자, '우리가 트로츠키주의"를 옹호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트로츠키는 레닌과 견해 차이가 있었던 근본 문제 모두에 대해서, 특히 연속혁명과 농민 문제에 대해서 레닌이 옳았다고 코민테른에 밝혔다.'(위 성명의 제12항을 보라) 코민테른 전체에 대해서 한 이 성명을 스탈린 그룹은 출판하려고 하지 않으면서, 우리를 계속 '트로츠키주의'라고 비난하고 있다. 물론 앞서 인용한 성명은 실제로 존재한 레닌과의 견해 차이는 물론이고 스탈린과 부하린이 파렴치하게 고안한 견해 차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들은 먼 과거의 견해 차이를 최근 발견한 체하며, 10월혁명 중에 생긴 실무적 견해 차이와 관계 지어 상상하고 있다. 스탈린 그룹은 일찍이 1923년 그룹과 1925년 그룹 사이의 견해 차이를 언급함으로써 본 강령에서 설명된 반대파의 견해에서 주의를 딴 데로 돌리려고 시도하지만, 이런 수법이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견해 차이는 그때 이미 레닌주의에 기초하여 해결되었다. 1923~24년의 논쟁에서 두 볼셰비키 그룹이 범한 오류와 침소봉대는 당내와 국내 사태의 일련의 불명료함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지금은 교정되었다. 따라서 이제는 기회주의에 맞서 공동투쟁하고 레닌주의를 위한 협력에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러시아의 실정〉The Real Situation in Russia(1928)이라는 제목으로 본 강령을 번역하고 출판 한 막스 이스트먼(Max Eastman)에 따르면, 이 단락은 지노비예프와 카메네프의 주장에 따라 강령에 삽입되었다.-편집자]

전후 관계없이 인용문을 떼어냄으로써, 레닌의 오래된 논쟁적 주장을 거칠고 불성실하게 편향적으로, 그리고 일방적으로 발췌함으로써, 훨씬 더 최근의 레닌의 주장을 당 이외에 비밀로 함으로써, 당의 역사나 얼마 전의 사태도 노골적으로 날조함으로써, 그리고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현재 논쟁 중인 모든 문제를 왜곡하고, 따라서 진짜 쟁점을 가짜 쟁점으로 뻔뻔하게 대체함으로써 레닌의 원칙에서 더욱 더 멀리 이탈하고 있는 스탈린과 부하린 그룹은 이것이 트로츠키주의와 레닌주의 사이의 투쟁이라고 믿게 하려고 당을 현혹시키려 한다. 그러나 실제로 투쟁은 레닌주의와 스탈린주의적 기회주의 사이에서 전개되고 있다. 이와 꼭 같은 방식으로 수정주의자들은 '블랑키주의'에 대한 투쟁을 핑계 삼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자신의 투쟁을 수행했다. 스탈린의 방침에 반대하는 우리의 협력과 공동투쟁은 오직 우리 모두가 진정한 레닌주의적 노동자 노선을 옹호하려는 열망과 결심에서 완전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 강령이야말로 '트로츠키주의'라는 비난에 대한 최선의 답변이다. 이 강령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처음부터 마지막 줄까지 레닌의 가르침에 입각해 있으며, 진정한 볼셰비키주의 정신으로 고무되고 있음을 알 것이다.

당은 우리의 진정한 견해를 간파하라. 당은 논쟁되고 있는 문제, 특히 중국혁명 같은 국제적으로 중요성이 큰 문제에 관한 원본에 정통하라. 레닌은 견해 차이가 존재하는 경우, 누군가의 주장을 무작정 믿을 것이 아니라 문서를 요구하고, 논쟁 중인 양측의 주장 모두를 귀담아 들어야 하며, 근거 없는 문제는 제쳐놓고 진정한 견해 차이가 무엇인지 꼼꼼하게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우리 반대파는 레닌의 이 조언을 반복한다.

우리는 제14차 당 대회에서 일어난 사태 즉, 견해 차이가 대회 2~3일 전에 느닷없이 당원 앞에 던져진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 자체를 단호하게 종식시켜야 한다. 우리는 레닌 시대에 항상 그랬던 것처럼, 정직한 논쟁과 논쟁 중인 진짜 쟁점에 대한 정직한 결정의 조건을 만들어내야 한다.

 

제12장 기회주의 반대 - 당의 단결을 위하여

우리는 중앙위원회 다수파가 국내외 정책의 모든 기본적 분야들에서 범한 중대한 오류에 대해 우리의 견해를 솔직하게 제시했다. 우리는 중앙위원회 다수파의 이런 오류가 혁명의 기본적 도구인 우리 당을 얼마나 약화시켰는지 입증했다. 동시에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당의 정책을 그 내부에서 바로잡을 수 있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정책을 바로 잡으려면, 당 지도부가 범한 오류의 성격을 명확하고 솔직하게 규정해야한다.

당 지도부가 범한 오류는 기회주의적 오류였다. 완전히 발전된 형태의 기회주의는一레닌의 고전적 정의에 따르면一 대다수 노동자계급에 대립하여 노동자계급의 상층이 자본가계급과 구성한 블록이다. 지금 소비에트연방에 존재하는 조건들 속에서 이렇게 완전히 발전된 형태의 기회주의는 광범한 노동자 빈농 대중의 이해를 희생시켜서 다시 부활한 토착 자본가계급(쿨락과 네프맨), 그리고 세계자본주의와 타협하려는 노동자계급 상층의 욕구를 표현할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경향이 우리 당의 특정집단에一어떤 경우에는 이제 막 나타나고 있거나, 다른 경우에는 완전히 발달된 형태로一존재한다고 주의를 환기시키자, 이에 입각해서 우리가 당을 중상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은 당찮은 소리다. 왜냐하면 우리는 바로 당을 위협하는 이런 경향에 반대하여 당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당의 이런저런 부위나 중앙위원회가 혁명에 대해 불성실하고, 노동자계급의 이해를 배신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주장도 당찮은 소리다. 잘못된 정치노선도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대한 매우 진지한 관심에서 나올 수 있다. 가장 극단적인 우익의 대표도 자신들이 부르주아 분자와 맺으려고 준비한 타협이 노동자와 농민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타협은 레닌이 완전히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과 같은 적과의 책략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노골적으로 노동자혁명을 포기하는 경향의 대표인 우익 그룹조차도 테르미도르 반동을 의식적으로 바라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것은 환상, 자기위안, 자기기만적인 정책을 전형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중도파'에게 더욱 들어맞는다.

스탈린과 그의 최측근들은 자신의 강력한 기구로 공개적 투쟁을 통해 자본가계급을 무력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자본가계급 세력을 속일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스탈린과 스탈린주의자들은 틀림없이 일정기간 중국의 장군들을 '가지고 놀' 수 있으며, 이들을 혁명을 위해 이용한 뒤 에는 즙을 다 짜낸 레몬처럼 아무렇게나 내던져버려도 된다고 진정으로 믿고 있었다. 스탈린과 스탈린주의자들은 틀림없이 퍼셀을 '가지고 놀' 것이며, 그 역은 아니라고 진정으로 믿고 있었다. 스탈린과 스탈린주의들은 '자국의' 자본가계급에게 '아낌없이' 양보하고, 나중에 이 양보를 똑같이 자유롭게 돌려받을 수 있다고 진정으로 믿고 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그 관료적 자만심에서 사실상 당을 모든 정책 결정으로부터 배제하고, 따라서 당의 어떠한 저항도 피함으로써 스스로를 위해 이러한 책략을 "더 쉽게'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스탈린주의 그룹 상층부가 결정하고 행동한 다음에 당으로 하여금 그 결정을 '검토'하게 한다. 그러나 이것은 책략이 필요하고 적절했더라도 올바른 정치적 책략을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세력 자체를 완전히 마비시키지는 않더라도 약화시킨다. 아니면, 분명히 틀렸더라도 지도부가 구사한 책략의 좋지 않은 결과를 최소화하거나 이겨낼 수 있는 세력을 약화시킨다. 요컨대, 중앙위원회 우익의 화해주의적 경향과 그 중도주의 그룹의 책략은 누적된 결과가 있다. 종합하면, 그 결과는 소련의 국제적 지위 약화, 소비에트연방 내에서 다른 계급과 관련하여 노동자계급의 지위 약화, 노동자 계급의 물질적 생활조건의 상대적 악화, 노동자계급과 빈농의 관계 약화와 그로 인한 중농과의 동맹관계 동요, 국가기구에서 노동자계급의 역할 저하, 산업화 속도의 감속을 의미한다. 테르미도르 반동 즉, 노동자혁명의 길에서 소부르주아적 목표로의 전환이라는 위험한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반대파가 염두에 둔 것은 중앙위원회 다수파의 정책의 그 의도가 아니라 이런 결과였다. 우리 당의 역사와 성격이 제2인터내셔널 소속 정당들과 큰 차이가 있다는 것은 누구에게도 명백하다. 러시아공산당은 세 차례 혁명의 불길 속에서 단련되어왔다. 많은 적들에 대항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했으며, 제3인터내셔널을 조직했다. 당의 운명은 최초로 승리한 노동자혁명의 운명인 것이다. 그러나 혁명은 당내 생활의 템포도 결정한다. 강렬한 계급적 압력을 받아 일어나는 당내의 모든 이데올로기적 과정은 발전하는 경향을 보이며 급속히 표면화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특히 우리 당내에 레닌주의 노선에서 이탈하는 모든 경향에 대해서 제때에, 그리고 결정적인 투쟁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

러시아공산당내의 기회주의적 경향은 현재의 상황에 깊은 객관적 근원을 가지고 있다. (1) 자본가계급의 국제적 포위와 자본주의의 일시적, 부분적 안정이 낳고 있는 '안정적' 분위기. (2) 사회주의를 위해 필요한 길이 틀림없지만 신경제정책(NEP)은 부분적으로 자본주의를 부활시킴으로써 사회주의에 적대적인 세력들도 부활시켰다. (3) 농민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기본적으로 소부르주아 계급의 사회적 영향력이 각급 소비에트뿐만 아니라 당내에도 흘러들지 않을 수 없다. (4) 정치 분야에서 당이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혁명을 위해 절대 필요하지만 일련의 특수한 위험을 낳기도 한다. 레닌 생전의 제11차 당 대회는 사회혁명당이나 멘셰비키당이 불법이 아니었다면, 이 정당들에 속해있을 사람들(부유한 농민, 사무직 노동자상층, 지식인 출신)의 그룹이 지금은 이미 우리 당내에 존재한다는 점을 기탄없이 공개적으로 지적했다. (5) 당이 지도한 국가기구가 이번에는 당을 기회주의로 물들이고 있는 부르주아나 소부르주아 분자들을 당에 많이 공급하고 있다. (6) 우리의 건설 임무에 필요하지만 전문가, 사무직 노동자 상층, 지식인을 통해 우리의 국가, 경제, 당 기구로 비(非)노동자적 영향력이 꾸준하게 흘러들고 있다.

이런 이유로 당의 레닌주의 반대파는 날마다 증가하는 스탈린 그룹의 명백하고 위험한 일탈에 대해서 매우 끈질기게 경보를 울리는 것이다. 당의 위대한 과거와 그 고참 볼셰비키 중핵이 어떤 상황, 어떤 때에도 기회주의적 타락의 위험에 대한 보증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범죄적인 경솔함이다. 이러한 생각은 마르크스주의와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레닌은 이러한 생각을 가르치지 않았다. 제11차 당 대회에서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온갖 종류의 변형을 알고 있다. 신념의 확고함이나 헌신, 그 밖의 뛰어난 도덕적 자질에 의지하는 것은 정치에서는 결코 진지한 태도가 아니다.'(레닌,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정치보고', 《전집》, 제33권, 287쪽)

제국주의 전쟁 이전에 유럽 사회주의 정당의 대다수를 구성한 노동자는 틀림없이 기회주의적 일탈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들은 처음에 그리 크지 않았던 지도자들의 기회주의적 오류를 제때에 극복하지 못했다. 이들은 이런 오류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했다. 매우 강력한 노동관료와 노동 귀족을 낳은 장기간에 걸친 평화적 발전기에 뒤이은 최초의 심각한 역사적 혼란이 기회주의자뿐만 아니라 중도주의자도 자본가계급에게 굴복시키고, 이 결정적인 순간에 대중이 무장해제된 채 방치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노동자는 이해하지 못했다. 전전(戰前)에 제2인터내셔널의 좌익을 이룬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뭔가 나무랄 수 있다면, 그것은 이들이 기회주의를 국내의 자유주의적 노동자정책이라고 부르면서 그 위험을 과장한 것이 아니라, 이들이 당시 사회주의 정당들의 노동자계급적 구성에 너무 많이 의지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본능과 계급모순의 심화에 의지했다. 또 그 실제적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위험에 대항하여 혁명적 평당원을 충분히 효과적으로 결집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런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당 지도부의 노선을 제때에 바로잡을 것이다.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당을 분열시키고 신당을 결성하고 싶어 한다는 비난에 답하는 것이다. 노동자계급의 독재는 노동자 대중과 빈농의 지도자로서 하나로 뭉친 노동자당을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분파투쟁 때문에 약화되지 않는 이러한 단결은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실현하기 위해서 무조건 필요하다. 이것은 주관적인 해석으로 희석되지 않으며, 수정주의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마르크스와 레닌의 가르침에 기초할 때에만 실현될 수 있다.

반대파는 사회주의 건설의 전제조건인 산업화의 일정한 속도를 위해 싸우고, 농촌에서 패권을 쥐려고 열망하는 쿨락의 성장에 맞서 씨우고, 노동자의 생활수준의 시기적절한 향상과 당, 노동조합, 소비에트 내부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고 있다. 반대파는 노동자계급과 그 당의 분리를 일으킬지도 모르는 사상을 주창하지 않는다. 반대로, 소련공산당의 진정한 단결의 토대를 보강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기회주의적 오류를 바로잡지 못한다면, 과시적인 단결에 그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단결은 늘어나고 있는 국내 자본가계급의 상승하는 압력에 직면한 당을 약화시킬 것이고, 따라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행군 중에 적의 포화 속에서 당을 재조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당의 노동자 중핵이 반대파의 진정한 견해와 제안을 알면, 이를 '분파적' 슬로건으로서가 아니라 바로 당 단결의 기치로서 받아들이고 싸울 것이다. 우리는 이를 의심치 않는다.

우리 당은 아직까지 지도부의 오류를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바로잡을 수 없었다. 경제회복기에 우리 산업의 월등히 빠른 성장은 중앙위원회 다수파가 당과 노동자계급을 체계적으로 고무해온 기회주의적 환상의 근본적 원천 가운데 하나였다. 노동자의 상태가 내전 중의 조건과 비교하여 처음에 빠르게 개선된 것은 노동자계급의 광범한 층에 신경제정책(NEP)의 모순을 신속하고 고통 없이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이것은 당이 일찌감치 기회주의적 일탈의 위험을 충분히 간파하는 것을 막았다.

당내 레닌주의 반대파의 성장은 극악한 관료집단 부위로 하여금 볼셰비키주의의 실천에서 전대미문의 방식에 의지하지 않을수 없게 했다. 방금 내린 명령으로 당 세포에서 정치적 문제의 토론을 더 이상 막을 수 없게 된 관료집단의 일부는 제15차 대회를 앞둔 지금, 당내 문제에 대한 모든 토론을 야유, 휘파람, 조명 끄기 등을 통해 산회시키는 것이 일인 갱단 결성에 의지하고 있다.

노골적인 물리적 폭력 방식을 당에 끌어들이려는 이 시도는 모든 정직한 노동자 부위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것이며, 불가피하게 그 조직자 자신에게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극악한 당 기구 측의 어떠한 권모술수도 반대파에게서 당원 대중을 갈라놓지 못할 것이다. 우리 당의 레닌주의적 전통, 국제 노동자운동 전체의 경험, 당대 국제정치의 상태, 국제노동자계급이 인정한 우리의 경제적 건설 임무가 반대파를 지지한다. 회복기 뒤에 불가피하게 더욱 더 첨예화되는 계급 모순은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날 활로에 관한 우리의 견해를 더욱 더 확실하게 할 것이다. 이것들은 레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노동자계급 전위를 더욱 더 강고하게 결집할 것이다.

증대하는 전쟁의 위험은 이미 노동자계급 당원에게 혁명의 근본 문제들에 대해서 더욱 깊이 생각하도록 촉구했다. 같은 식으로 이들은 필연적으로 기회주의적 오류를 바로잡는 임무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 당의 노동자계급 부위는 최근 당 지도부로부터 대거 내쫓겼다. 또 그 목표가 좌익이 우익이고 우익이 좌익임이 입증되었다는 지루한 중상 캠페인의 파멸적인 영향력에 굴복해왔다. 그러나 이들은 곧 깨달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간파하고, 당의 운명을 직접 떠맡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 전위를 돕는 것이 반대파의 임무이고, 본 강령의 임무이다.

가장 중요하고, 가장 긴급한 문제, 그리고 우리 당의 모든 당원을 괴롭히고 있는 문제는 당 단결의 문제이다. 그리고 실제로 노동자혁명의 향후 운명은 이 문제에 달려 있다. 노동자계급의 수많은 계급 적(enemy)은 우리의 당내 논쟁에 열심히 귀 기울이고 있으며, 기쁨이나 초조함을 숨기지 않은 채 우리 대오의 분열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 당의 분열, 또 다른 당의 결성은 혁명에 거대한 위험을 의미할 것이다.

우리 반대파는 또 다른 당을 결성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무조건적으로 배격한다. 또 다른 당이라는 슬로건은 소련공산당에서 레닌주의 반대파를 쫓아내려는 스탈린 그룹의 슬로건이다. 우리의 임무는 새로운 당을 결성하는 것이 아니라 소련공산당의 노선을 바로잡는 것이다. 일치단결 한 볼셰비키당으로만 노동자혁명은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다. 우리는 공산당 내부에서 우리의 견해를 위해 싸울 것이며, 모험가들의 슬로건인 '또 다른 당' 슬로건을 단호히 배격한다. '또 다른 당' 슬로건은 한편으로 당 기구 내 분열을 위한 특정분자들의 욕망을 표현하고, 다른 한편으로 레닌주의자의 임무가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당내에서 레닌 사상의 승리를 획득하는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절망의 정서를 표현한다. 레닌의 노선을 진정으로 옹호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또 다른 당'이라는 생각을 받아들이거나 분열을 암시하는 장난을 칠 수 없다. 레닌의 노선을 다른 무엇으로 대체하고 싶어하는 사람만이 분열을 옹호하거나 또 다른 당의 길을 따라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전력을 다해 또 다른 당 생각에 맞서 싸울 것이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의 독재는 그 중심축으로 단일한 노동자당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의 당, 즉 노동자당을 요구한다. 곧 그 정책이 노동자계급의 이해에 의해 결정되고, 노동자 중핵에 의해 수행되는 당을 요구한다. 우리 당의 노선을 바로잡는 것, 당의 사회적 구성을 개선하는 것一이것은 또 다른 당의 길이 아니라 노동자계급의 혁명정당으로서 당의 단결을 강화하고 보증하는 것에 의해 달성된다.

10월혁명 10주년에 즈음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깊은 확신을 표명한다 : 노동자계급은 지금 그 지도부의 오류를 바로잡고, 노동자혁명을 확고하게 진척시키고, 또 세계혁명의 중심부인 소비에트연방을 방어하는 임무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무수한 희생을 치르며 자본주의를 타도하지 않았다.

 

기회주의 반대! 분열 반대! 레닌주의당의 단결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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