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트로츠키주의자2017.04.19 21:52

   제 3 장 사회주의 체제와 국가

 

1. 이행기 체제

소련 정부의 주장에 의하면 사회주의 체제는 소련에서 이미 실현되었다 . 그런데 정말 사회주의 체제가 지구상에서 실현되었는가 ? 아니면 그 동안 달성된 경제적·정치적 성과에 의해 세계 정세와는 무관하게 소련에서 사회주의 체제 실현을 위한 조건이라도 최소한 마련되었는가 ? 앞서 이미 비판적으로 평가된 소련 경제의 주요 지표들이 이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답의 단초를 마련할 것이다 . 그러나 이 해답을 구하기 전에 미리 이 문제에 대한 이론적 기준 점들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 .

마르크스주의는 기술 발전을 진보의 기본 도약대로 간주하고 있으며 생산력의 동학 ( 動學 ) 에 기초하여 공산주의 강령을 제시하고 있다 . 우주의 어떤 재앙이 다가와 가까운 미래에 지구가 파괴된다고 가정하면 다른 많은 것들과 함께 당연히 공산주의적 전망도 포기해야 한다 . 그러나 이 예외적 상황을 제외한다면 기술 , 생산력 , 문화의 발전에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다 . 마르크스주의는 인류 사회의 진보에 대한 낙관으로 가득한데 이것만으로도 종교와 화해할 수 없이 대립하고 있다 .

생산적 노동이 인간에게 더 이상 부담이 되지 않으며 어떠한 자극이 없어도 생산적 노동이 인간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정도로 높은 인간의 경제력 발전수준 , 이것이 공산주의의 물질적 전제조건이다 . 따라서 인간생활에 필요한 재화는 계속해서 풍부하여 부유한 가정이나 " 수준이 있는 " 하숙집의 경우와 같이 어떠한 통제도 없이 인간의 욕구가 충족될 것이다 . 오직 교육 , 습관 , 사회적 여론에 대한 통제만이 계속 필요할 것이다 . 솔직히 말해 진정 이렇게 소박한 전망을 " 유토피아 " 로 간주하는 사람은 머리가 참으로 둔하다고 할 것이다 .

자본주의는 선진 과학기술과 노동계급을 창조하여 사회주의혁명의 조건과 동력을 마련했다 . 그러나 자본주의 뒤에 바로 공산주의가 이어지지는 않는다 .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물질적·문화적 유산만을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 공산주의로 가는 첫걸음인 노동자국가에서는 " 각자의 능력에 따라 " 즉 각자가 일할 수 있고 일하기 원하는 정도에 따라 노동을 허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 더욱이 일의 많고 적음과 무관하게 " 각자의 필요에 따라 " 모든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도 없다 . 공산주의를 달성할 정도로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임금이라는 관습에 의존할 필요가 있다 . 즉 개개인 노동의 질과 양에 비례하여 재화를 분배해야 한다 .

마르크스는 새로운 사회를 향한 이 첫 단계를 " 공산주의의 가장 낮은 단계 " 라고 불렀다 . 그리고 결핍이라는 마지막 유령과 함께 물질적 불평등이 사라지는 공산주의의 가장 높은 단계와 이 단계를 대비시켰다 . 소련당국은 현재 공식적으로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 " 물론 우리는 완벽한 공산주의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 그러나 공산주의의 가장 낮은 단계인 사회주의는 이미 달성되었다 ." 그리고 이 선언을 증명하기 위해 공업의 국가 관리 , 농업의 집단화 , 상업부문의 국영기업과 협동조합을 증거로 제시한다 . 언뜻 보면 이 주장은 선험적인 따라서 가설적인 마르크스 이론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 그러나 달성된 노동생산성과 무관하게 소유형태만 가지고는 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견해이다 . 마르크스에게 공산주의의 가장 낮은 단계란 처음부터 경제발전에서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보다도 높은 수준에 도달한 사회를 의미했다 . 이론적으로는 이 논리에 허점이 없다 . 왜냐하면 최초의 낮은 단계에서도 세계적 차원에서 공산주의는 자본주의보다 더 발전한 체제이기 때문이다 . 더욱이 프랑스인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시작하고 독일인들이 이것을 계속 발전시키고 영국인들이 이것을 완성할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예견했다 . 그에 의하면 러시아인들은 혁명 대열의 한참 뒤에서 따라올 것으로 인식되었다 . 그러나 이 이론적 순서는 실제 사실에 의해 뒤집어졌다 . 그의 역사적 보편 원리를 특정 발전단계를 경과하고 있는 소련에 기계적으로 적용시키려는 사람들은 모두 가망 없는 모순에 빠진다 .

러시아는 자본주의의 가장 강한 고리이기는커녕 가장 약한 고리였다 . 현재 소련은 세계의 경제수준을 능가하고 있기는커녕 자본주의 국가들을 따라잡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 마르크스에 의하면 당대에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의 생산력을 사회화시킨 기초에서 형성될 사회가 공산주의의 가장 낮은 단계 즉 사회주의 사회이다 . 그렇다면 소련은 명백히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다 . 왜냐하면 소련은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기술 , 문화 , 재화의 측면에서 상당히 뒤떨어지기 때문이다 . 따라서 현재 소련이 보여주고 있는 모든 모순적 요소들을 인정할 경우 이 체제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 다만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예비적 체제 (preparatory regime) 로 보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깝다 .

용어를 정확히 사용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현학자의 허세인 것은 아니다 . 결국 모든 사회체제의 힘과 안정성은 이 체제의 상대적 노동생산성에 달려 있다 . 자본주의보다 뛰어난 기술 수준을 보유한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사회주의적 발전을 확실히 보장받을 것이다 . 즉 자동적으로 사회주의 발전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불행하게도 소련 경제는 그렇지 못하다 . 소련의 현 상태를 속물적으로 옹호하는 자들 대부분은 대개 이렇게 논리를 전개한다 : " 현재 소련은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다 . 그러나 이렇게 인정하더라도 지금의 기반으로 생산력이 더 발전하면 조만간 사회주의가 완전히 승리할 것이다 ." 즉 소련이 사회주의를 성취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 이 엉터리 주장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을까 ? 언뜻 보기에 이 논리는 승승장구할 것처럼 보인다 . 그러나 이 주장은 사실 대단히 피상적이다 . 역사를 논할 때 시간은 부차적 요인이 결코 될 수 없다 . 정치에서 현재시제와 미래시제를 혼동하는 것은 문법상 혼동보다 훨씬 위험하다 . 시드니 웹과 같은 속류 진화론자들에게 진화는 꾸준한 축적과 계속적 " 개선 " 을 의미한다 . 그러나 이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 진화는 양질전화 , 위기 , 도약 , 후퇴로 점철되어 있다 . 소련은 생산과 분배의 안정을 확보한 사회주의 첫 단계에 결코 도달하지 못했다 . 이 중요한 사실 때문에 소련의 발전은 순조롭게 진행되기보다는 모순에 가득 찰 것이다 . 경제적 모순은 사회갈등을 유발하고 이것은 다시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생산력 증대를 기다려 주지 않은 채 자기의 길을 간다 . 이것은 쿨락의 경우를 통해 진실로 밝혀졌다 . 쿨락은 사회주의의 진화적 " 성장 " 을 원치 않았다 . 관료집단과 그 이론가들을 놀라게 만들면서 새로운 보완적 혁명을 요구했다 . 그러면 권력과 부를 한꺼번에 쥐고 있으면서 득의만면한 관료집단이 사회주의의 평화적 성장을 원할까 ? 이 점에 대해서는 확실히 많은 의문이 인정될 수 있다 . 어쨌든 관료집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것은 경솔할 것이다 . 다음 3 년 , 5 년 또는 10 년간 소련의 경제적 모순과 사회적 갈등이 진행할 방향에 대해 최종적으로 철회할 수 없이 단정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 이것은 일국적 차원이 아니라 국제적 차원에서 살아 움직이는 사회 세력들간의 투쟁에 달려 있다 . 따라서 매 단계마다 실제 관계들과 경향들의 연관성과 계속적 상호작용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

 

2. 강령과 현실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을 계승한 레닌은 노동계급 혁명의 첫 번째 두드러진 특징을 이렇게 보았다 : 약탈자의 생산수단을 몰수했으므로 이 혁명은 인민 위에 군림하는 관료기구 특히 경찰과 상비군을 쓸어 없애버릴 것이다 . 그는 1917 년 혁명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두 달 전에 이렇게 말했다 : " 노동계급에게는 국가가 필요하다 . 모든 기회주의자들도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그러나 노동계급에게는 오직 사멸해 가는 국가 (dying state), 즉 즉시 사멸하기 시작하고 즉시 사멸할 수밖에 없는 국가만이 필요하다 . 기회주의자들은 이 진실을 덧붙이는 것을 잊어먹는다 ."( 『국가와 혁명』 ) 이 비판은 당시 러시아의 멘세비키 , 영국의 페이비언 사회주의자 (Fabian socialist) 등 개량주의자들에게 향해졌다 . 레닌의 이 비판은 지금 배가된 힘을 가지고 있다 . 그리고 " 사멸 " 할 의사가 전혀 없는 관료 국가를 숭배하면서 소련에 아첨하는 자들에게 향하고 있다 .

격심한 사회적 갈등이 " 순화되고 ", " 조정되고 ", " 통제되는 " 것이 필요할 때마다 사회는 항상 특권층 , 유산자 그리고 관료집단의 이익을 위해 관료집단을 요구한다 . 따라서 아무리 민주적인 부르주아 혁명도 관료기구를 강화시키고 완성시켰다 . 레닌은 이렇게 말했다 : " 관료사회와 상비군은 부르주아 사회의 ` 기생충 ' 이다 . 이 기생충은 사회를 찢어 해치는 내부 모순에 의해 탄생되지만 살아 있는 숨구멍을 막는 데만 소용이 있는 기생충이다 ."

1917 년 정치권력의 장악이 볼셰비키당에게 실제 문제로 대두되었을 때부터 레닌은 이 " 기생충 " 을 일소하는 방안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 그는 이 생각들을 『국가와 혁명』 전체에 걸쳐 설명하고 반복하고 있다 . 착취계급이 타도된 후 노동계급은 낡은 관료기구를 쓸어버리고 대신 고용인과 노동자로 구성된 기구를 창조할 것이다 . 그리고 이 기구는 이들이 관료화되는 것을 막을 조치들을 취하기 시작할 것이다 . 이 조치들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에 의해 상세히 분석되었다 : (1) 언제든지 선거와 선출자의 소환이 가능해야 한다 ; (2) 관리들은 노동자와 같은 수준의 봉급을 받는다 ; (3) 사회 성원 모두가 사회통제와 감독 기능을 수행하여 모두가 잠시 ' 관료 ' 가 되어 어느 누구도 오랫동안 자리를 차지하는 ' 관료 ' 가 되지 않을 체제로 즉시 이행해야 한다 . 레닌이 10 년 후에나 제기될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오류이다 . 이것들은 " 노동계급 혁명을 완수한 직후 바로 시행해야 하는 " 첫 조치들이었다 .

노동계급 독재하의 국가에 대한 이같이 과감한 견해는 볼셰비키당이 정치권력을 장악한 1 년 6 개월 후에 볼셰비키 당강령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 특히 군대에 대한 조항도 여기에 포함된다 . 강력한 그러나 관료가 없는 국가 , 무장력은 있으나 사무라이가 없는 군대체제 ! 군대와 국가관료기구는 국방의 임무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의 계급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이 계급구조가 국방 조직에 전이된 것에 불과하다 . 군대는 사회관계의 모사에 불과하다 . 물론 외부의 위험에 대한 투쟁은 노동자국가 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도 전문화된 군대기구를 필요로 한다 .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노동자국가에게는 특권을 가진 장교집단이 필요하지 않다 . 볼셰비키 당강령은 상비군을 민병대로 대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

따라서 노동계급 독재하의 국가는 인민의 대다수를 억압하는 특별한 기구라는 전통적 의미를 상실한다 . 무기와 함께 물리력은 소비에트와 같은 노동자 조직으로 즉시 그리고 직접적으로 이관된다 . 노동계급 독재가 시행되는 첫날부터 관료기구인 국가는 사멸을 시작한다 . 바로 이것이 볼셰비키 당강령의 진짜 목소리이다 . 그리고 이 목소리는 아직도 죽지 않았다 . 그런데 참 이상하다 . 이 목소리는 거대한 무덤에 있는 망령의 목소리와 같이 아득한 옛날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 .

현재 소련의 국가 성격을 어떻게 보든 의심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 존재한 지 20 년이 다 된 시점에 소련의 국가는 사멸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 사멸 " 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 설상가상으로 이 국가기구는 유례없는 끔찍한 강제기구로 변했다 . 관료집단은 대중에게 자리를 양도하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대중을 지배하여 대중이 통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 군대는 민병대에 자리를 내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원수들을 정점으로 한 특권 장교집단을 낳았다 . 반면 " 노동계급 독재의 무기를 든 수호자 " 인 인민에게는 현재 비폭발성 무기 소지도 금지되어 있다 . 아무리 상상의 날개를 펼쳐도 마르크스 , 엥겔스 , 레닌의 노동자국가 개념과 현재 스딸린이 지배하는 국가는 하늘과 땅 차이이다 . 레닌의 저작들은 물론 검열관의 발췌와 왜곡을 통해 계속 발행되고 있다 . 현재 소련 지도부와 그 이론적 대변자들은 당강령과 현실 사이의 놀라운 차이를 가져온 원인들을 연구하기는커녕 문제도 삼지 않는다 . 그렇다면 이들을 대신해서 우리가 문제를 제기해 보자 .

 

3. 노동자국가의 이중적 성격

노동계급 독재는 자본주의 사회와 사회주의 사회를 이어주는 교량이다 . 따라서 근본적으로 이 체제는 일시적이다 . 노동계급 독재를 실현하는 국가의 우발적이면서 아주 핵심적인 임무는 자신의 해체를 준비하는 것이다 . 이 " 우발적 " 임무를 실현하는 정도는 자신의 핵심적 임무를 실현하는 성공의 척도라고 말할 수 있다 . 즉 계급이 없고 물질적 모순이 없는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 임무의 내용이다 . 관료화와 사회 평화는 서로 반비례 관계에 있다 .

뒤링 (Duehring) 과의 유명한 논쟁에서 엥겔스는 이렇게 말했다 : " 계급지배 그리고 생산의 무계획성으로 야기되는 개인적 생존투쟁이 없어지고 이것들과 함께 나타났던 모든 분쟁과 잔악한 현상들이 없어지면 이때부터는 억압할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 따라서 특별한 억압도구인 국가도 필요 없게 될 것이다 ." 속물들은 경찰기구가 영원히 존재하는 제도인 것처럼 생각한다 . 그러나 실제로는 인간이 철저하게 자연을 통제하여 물질적 곤란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때 인민을 억압하는 경찰은 사라진다 . 국가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 계급지배와 개인적 생존투쟁 " 이 사라져야 한다 . 엥겔스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분리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 왜냐하면 사회체제를 변화시키는 전망을 갖게 되면 몇십 년의 세월 정도는 아주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 그러나 혁명의 무게를 짊어지고 있는 세대에게는 전혀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 생산의 자본주의적 무계획성이 개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가져온다는 것은 사실이다 . 그러나 곤란한 점이 있다 . 생산수단의 사회화는 자동적으로 " 개인적 생존투쟁 " 을 제거하지 못한다 .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 사회인 미국에 사회주의 국가가 성립되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원하는 만큼의 재화를 즉시 제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 따라서 모든 사람들에게 가능한 한 많은 재화를 생산하도록 독려할 수밖에 없다 . 이 상황에서 독려하는 역할은 자연스럽게 국가의 몫이 된다 . 그리고 이 상황은 다시 자본주의에서 확립된 임금노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 물론 다양한 상황에 따라 사정은 달라질 수 있다 . 이 의미를 마르크스는 1875 년에 이렇게 표현했다 : " 부르주아 법은 ‥‥‥ 오랜 분만의 고통을 겪은 후 자본주의의 태내에서 탄생하는 공산주의 체제의 초기단계에서 불가피하게 존재한다 . 경제체제와 이것에 의해 조건 지워지는 사회의 문화적 발전을 법은 결코 초월할 수 없다 ."

마르크스의 이 주목할 만한 견해를 설명하면서 레닌은 이렇게 덧붙였다 : " 소비재 분배와 관련해 존재하는 부르주아 법은 당연히 부르주아 국가를 전제로 한다 . 왜냐하면 규범의 준수를 강제할 수 있는 기구가 없이는 법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 따라서 공산주의 체제하에서는 당분간 부르주아 법이 존재할 뿐 아니라 부르주아 계급이 없는 부르주아 국가도 존재한다 !" 현재 소련의 공식 이론가들에 의해서 완전히 무시되고 있는 이 매우 의미 있는 결론은 소련의 국가 성격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소련이라는 국가를 이해하는 첫걸음을 내딛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 사회주의 건설의 임무를 맡고 있는 국가가 강제력을 동원하여 불평등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면 즉 소수의 물질적 특권을 옹호할 수밖에 없다면 이 국가는 부르주아 계급이 없는 " 부르주아 " 국가일 수밖에 없다 . 이 주장에는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칭찬이나 비난이 전혀 없다 . 다만 사물의 성격을 있는 그대로 부르는 것뿐이다 .

부르주아 분배 규범은 물질적 생산력의 성장을 촉진하면서 사회주의 건설의 목적에 봉사해야 한다 . 사회주의 국가는 시작부터 곧바로 이중적인 성격을 띤다 : 생산수단의 사회적 소유형태를 옹호하는 한 사회주의 국가이다 ; 그러나 생필품의 분배가 자본주의 가치척도에 따라 이루어지고 이 모든 결과들을 바탕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한 부르주아 국가이다 .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이 모순적 성격 규정은 교조주의자들과 현학자들을 공포에 빠뜨릴 지도 모른다 . 그러나 필자는 이들을 위로할 수 있을 뿐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 노동자국가의 최종적 성격은 노동자국가 내부의 부르주아 경향과 사회주의 경향 사이의 변화하는 관계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 후자가 승리하면 경찰기구는 사실상 최종적으로 없어진다 . 즉 국가가 자치 사회 내로 해소될 것이다 . 소련의 관료집단이 그 자체로서 그리고 하나의 징후로서 제기하는 문제가 얼마나 의미심장한 가는 이 측면을 보더라도 충분히 이해가 갈 것이다 !

레닌은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분석을 끝까지 진전시키지는 못했지만 미래 사회주의 건설의 문제들이 어디서 기인하는지를 드러내었다 . 당대에 그는 이 문제들과 직접 씨름을 해야만 했다 . 그가 이 분석에 성공한 이유는 바로 그의 지적 특성에 따라 마르크스의 개념을 지극히 날카로운 형태로 표현했기 때문이다 . " 부르주아 계급이 없는 부르주아국가 " 는 진정한 소비에트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음이 증명되었다 . 국가의 이중적 기능은 국가의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 그러나 경험은 이론이 명확하게 예상할 수 없는 일을 밝혀 주었다 . 부르주아 반혁명으로부터 사회화된 소유형태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 무장한 노동자들의 국가 " 가 아주 유효했다 . 그러나 소비 영역에서 불평등을 규제하는 일은 성격이 전혀 다른 문제였다 . 재산이 없는 사람들은 이것을 창조하고 방어할 생각이 없게 마련이다 . 다수는 소수의 특권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가 없다 . " 부르주아 법 " 을 옹호하기 위해 노동자국가는 " 부르주아 " 유형의 기구를 창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즉 제복의 색깔은 다르지만 예나 다름없는 경찰기구가 필요했다 .

이제 우리는 볼셰비키 당강령과 소련의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 모순을 이해하는 첫걸음을 내디뎠다 . 국가가 사멸하기는커녕 권력을 집중하여 전제군주 체제 상태에까지 이르렀고 , 노동계급의 전권을 위임받은 대표들이 관료화되고 , 관료집단이 새로운 사회 위에 군림한다 . 이 현상의 원인은 과거의 심리적 유물에 있지 않다 . 진정한 평등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는 한 소수 특권층을 탄생시키고 옹호해야할 거부할 수 없는 필요가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운동을 교살하는 관료화 경향은 노동계급 혁명 완수 후에도 모든 곳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 혁명으로 등장한 사회가 빈곤하면 할수록 , 이 " 법 " 의 표현은 더 엄격하고 노골적일 것이며 관료화에 의해 등장하는 통치 형태는 더욱 조야할 것이다 .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사회의 사회주의적 발전에 더욱 위험한 장애물로 등장할 것이다 . 소련 국가기구는 사멸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관료 기생집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었다 . 이것은 스딸린주의 체제의 경찰관이 노골적으로 선언하듯이 구 지배계급의 " 유물 " 때문이 아니다 . 왜냐하면 과거의 유물은 그 자체로는 아무 힘도 없기 때문이다 . 이 현상은 물질적 결핍 , 문화적 후진성 그리고 이 요인들에 의해 존재하는 " 부르주아 법 " 의 지배 등 한없이 강력한 요인들 때문에 발생한다 . 이 요인들은 개인의 생존 보장이라는 가장 직접적이고도 날카롭게 모든 인간을 강제하는 필요에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

 

4. " 일반화된 결핍 " 과 경찰기구

『공산당 선언』을 발표하기 2 년 전 청년 마르크스는 이렇게 썼다 : " 생산력 발전은 공산주의 사회 건설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 왜냐하면 이것이 없이는 궁핍이 일반화될 것이며 이로 인해 생활필수품확보 투쟁이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 이 상황이 되면 과거의 모든 넌센스가 다시 살아날 수밖에 없다 ." 이 사상을 마르크스는 더 이상 발전시키지 않았다 . 여기에는 필연적 이유가 있었다 : 그는 후진국에서는 노동계급 혁명이 결코 일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그리고 레닌 역시 이 사상에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 여기에도 필연적 이유가 있었다 : 그는 소련이 오랜 기간 제국주의 세력에 의해 포위될 것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 위에서 인용한 마르크스의 사상은 그가 공산주의 체제 성립의 전제조건을 역으로 추론한 결과 도출한 추상적 사상이다 . 그러나 이 사상은 현재 소련 체제의 구체적 난관과 질병 증세를 전체적으로 조명해주는 불가결한 이론적 열쇠이다 . 제국주의 세력의 간섭과 내전에 의해 생산력이 파괴된 소련은 절대적 궁핍에 시달렸다 . 이 조건 속에서 " 개인적 생존을 위한 투쟁 " 은 부르주아 계급이 타도된 다음날 당장 사라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후 몇 년 동안 그 정도가 완화되지도 않았다 . 이와 정반대로 때때로 유례없는 잔혹성을 드러내면서 그 정도가 더욱 심해졌다 . 소련의 어떤 지역은 사람고기를 먹어야 할 상황이 두 번이나 있었다 . 이 사실을 다시 회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지금에서야 겨우 짜르 시대 러시아와 그 당시 서유럽 선진국 사이의 생산력 격차를 제대로 인식할 수 있게 되었다 . 내부 혼란과 외부의 재앙이 없는 가장 좋은 상황을 상정하더라도 , 소련은 자본주의를 처음 시작한 서방 선진국이 수세기 동안 누렸던 경제적·문화적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5 개년 계획을 여러 번 완수해야 할 것이다 . 전 ( 前 ) 사회주의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주의적 방식을 적용하는 것 --- 이것이 현재 소련이 직면하고 있는 경제적·문화적 과업의 핵심이다 .

현재 소련은 마르크스 당대의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생산력이 확실히 앞서 있다 . 그러나 무엇보다도 두 체제의 경쟁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절대적 수치가 아니라 상대적 수준이다 . 현재 소련 경제는 비스마르크 , 파머스튼 , 링컨 당시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히틀러 , 볼드윈 (Baldwin), 루즈벨트의 자본주의와 경쟁하고 있다 . 그리고 둘째로 기술수준의 세계적 발전으로 인간의 욕구 수준이 과거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 마르크스 당대의 사람들은 자동차 , 라디오 , 영화 , 비행기 등을 들어본 적도 없었다 . 그러나 이 재화들이 자유로이 향유되지 않는 사회주의 사회는 생각할 수도 없다 .

마르크스의 용어를 빌리자면 " 공산주의의 가장 낮은 단계 " 는 가장 발전한 자본주의가 달성한 생산력 수준에서 시작된다 . 그러나 곧 실행에 옮겨질 소련의 새 5 개년 계획의 표어는 " 유럽과 미국을 따라잡자 " 이다 . 소련의 광대한 영토에 자동차 도로와 아스팔트 고속도로 망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자동차 공장을 이식해 오거나 미국의 기술을 획득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 . 소련 시민 전부가 도중에 전혀 어려움 없이 휘발유 탱크를 채우고 사방팔방으로 자동차를 타고 가기 위해서는 앞으로 몇 년이 더 필요할까 ? 미개사회에는 말을 탄 계급과 맨땅에서 걷는 계급이 양분되어 있었다 . 자동차는 말안장만큼 사회계층을 구분시킨다 . 아주 평범한 " 포드 승용차 " 조차 소수의 특권일 경우 부르주아 사회의 모든 관계와 관습은 그대로 살아남는다 . 그리고 이것들은 불평등을 수호하는 국가와 함께 계속 존재한다 .

마르크스의 노동계급독재 이론에 전적으로 기초하여 레닌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주요한 저서『국가와 혁명』을 완성하였다 . 그리고 이에 기초하여 볼셰비키 당강령을 작성하였다 .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그는 러시아의 경제적 후진성과 제국주의에 의한 포위 상황에서 도출되는 국가의 성격과 관련하여 필요한 모든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 당강령은 관료주의의 부활을 대중의 행정 경험 부족과 전쟁으로 인한 난관의 탓으로 돌렸다 . 그리고 " 관료주의적 왜곡 " 을 극복하기 위해 단순히 정치적 조치들만을 처방으로 제시했다 . 즉 전권을 가진 모든 공직자의 선거와 소환이 언제나 가능해야 하며 , 이들의 물질적 특권이 철폐되어야 하며 , 대중이 국가기구를 적극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등의 일반적 처방만이 제시되었다 . 시간이 지나면 관료는 높으신 양반으로부터 단순한 일시적 기술자로 전락할 것이며 국가는 서서히 그리고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현실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

그런데 당 강령이 이렇게 임박한 난관을 명백히 과소 평가한 이유는 강령이 온전히 국제적 전망에 기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 러시아의 10 월 혁명은 노동계급 독재를 실현시켰다‥‥‥‥ 세계 노동계급에 의한 공산주의 혁명의 시대는 시작되었다 ." 이것이 당강령 서문의 일부이다 . 물론 당강령 작성자들은 " 일국 사회주의 " 를 건설할 목표를 설정하지 않았다 . 이 사고는 당시 스딸린은 물론이고 어느 누구의 머리에도 없었다 . 그러나 당강령 작성자들은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이미 오래 전에 해결한 경제적·문화적 문제들을 20 년이나 되는 긴 기간 고립된 상태에서 해결하도록 강요당할 경우 소련 국가가 어떤 성격을 띨 것인가의 문제는 건드리지도 않았다 .

제 1 차 세계대전 직후 조성된 유럽의 혁명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사회주의혁명은 승리하지 못했다 .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부르주아 계급을 구출하였다 . 레닌과 그의 동료들에게 " 숨쉴 틈 " 에 불과했던 혁명의 고립 기간이 역사적 시대의 길이로 연장되었다 . 소련의 모순적 사회구조와 국가의 초관료주의적 성격은 이 특이하면서도 " 예상하지 못한 " 혁명 휴지기의 직접적 결과이다 . 이 시기에 자본주의는 파시즘 또는 전 ( 前 ) 파시즘의 반동기로 빠져들었다 .

국가기구를 관료주의의 해악에서 구출하려는 첫 시도는 대중의 자치 경험의 부족 , 사회주의에 헌신하는 능력 있는 노동자들의 부족 등으로 실패했다 . 그러나 이 초기의 난관이 지난 후 곧 이어 좀더 근본적이고 심대한 난관이 닥쳤다 . 강제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면서 " 회계와 통제 " 영역만으로 국가의 역할이 축소되어야 한다고 당강령은 주장했다 . 그러나 이 주장은 인민이 최소한 일반적인 물질적 만족을 누린다는 조건을 전제로 했다 . 그러나 이 필요조건이 결여된 상태가 계속되었다 . 서방의 노동자들이 혁명을 성공시키지 못하자 소련 노동자국가에 대한 구원의 손길은 오지 않았다 . 국방 , 공업 , 기술 , 과학 등의 분야에 종사하는 특권집단을 유지하는 것이 시급한 국가의 임무가 되었다 . 이 임무에 나라의 모든 역량이 소모되었다 . 그러자 민주적인 소비에트의 권한은 제한되고 심지어는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10 명이 가진 재화를 빼앗아 한 특권층에게 주는 결코 " 사회주의적 " 이지 못한 국가행정이 이루어졌다 . 그러자 분배를 담당하는 강력한 전문가 집단이 형성되고 발전하였다 .

그러나 최근의 엄청난 경제적 성과들은 왜 불평등을 완화시키지 못하고 더욱 심화시켰는가 ? 그리고 관료화는 왜 " 비정상적 현상 " 에서 이제는 행정의 일상 체제로 굳어졌는가 ? 이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소련 관료집단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체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잠시 알아보자 .

 

5. "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 " 와 " 노동계급 독재의 강화 "

최근 몇 년간 소련 정부는 소련에서 사회주의가 " 완전히 승리 " 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여러 번 발표했다 . 특히 " 쿨락 계급의 일소 " 와 함께 사회주의가 완성되었다는 단언적인 성명서가 있었다 . 1931 년 1 월 30 일 『프라우다』는 스딸린의 연설을 해석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 " 제 2 차 5 개년 계획 기간 중에 자본주의의 마지막 잔재들이 일소될 것이다 ."( 강조는 인용자 ) 이 전망에 기초한다면 국가는 같은 기간에 결정적으로 소멸해야 한다 . 자본주의의 " 마지막 잔재들 " 이 없어지면 국가가 할 일은 더 이상 없기 때문이다 . 이 주제에 대해 볼셰비키 당강령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 " 사회가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고 따라서 국가권력이 사라지지 않는 한 소비에트 권력은 국가의 계급적 성격이 불가피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한다 ." 그러나 일부 조심성 없는 모스크바의 이론가들이 자본주의의 " 마지막 잔재 " 가 일소된다는 사실을 곧이곧대로 믿고 이로부터 국가의 사멸을 추론하자 관료집단은 즉시 이 이론을 " 반혁명 노선 " 이라고 선언했다 .

그렇다면 관료집단의 이론적 오류는 기본 전제에 있는가 아니면 결론 부분에 있는가 ? 답은 양쪽 모두에 있다 . "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 " 가 처음으로 선언되었을 때 좌익반대파는 이렇게 응수하였다 : 기본적 조건인 생산력 수준을 도외시한 채 사회적 법률적 관계들의 형태에 자신을 제한해서는 안된다 . 이 형태는 성숙하지 않았으며 모순적이다 . 그리고 농업에서는 아주 불안정하다 . 법률적 형태들 자체는 기술수준에 따라 근본적으로 다른 사회적 내용을 가지고 있다 . " 경제 구조와 이것에 의해 조건 지워지는 문화적 수준을 능가하여 법률이 존재할 수는 없다 ."( 마르크스 ) 가장 발전한 미국의 기술적 성과가 소련의 모든 경제 분야에 이식되고 이것에 기초하여 소비에트 소유형태가 존재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 사회주의의 첫 단계가 될 것이다 . 낮은 노동생산성에 기초한 소비에트 소유형태는 이행적 체제 (transitional regime) 를 가져올 뿐이다 . 이 체제의 운명에 대해 역사는 아직 최종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

1932 년 3 월 우리는 이렇게 주장하였다 : " 끔찍하지 않은가 ? 이 나라는 재화의 기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 모든 단계에서 생필품 공급이 중단되고 있다 . 어린이들은 우유를 마시지 못하고 있다 . 그러나 당국의 성명서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 ' 이 나라는 사회주의 시기로 진입하였다 !' 이보다 사회주의의 이름을 더 지독하게 훼손하는 것이 가능할까 ?" 현재 소련 지도부의 독보적 선전가 카알 라덱 (Karl Radek) 은 우리의 입장에 대해 독일 자유주의 신문 『베를린 일간』의 소련 특별호 (1932 년 5 월 ) 에 불멸의 명언을 남겼다 : " 우유는 암소에서 나오지 사회주의에서 나오지 않는다 . 강이 우유로 넘치는 나라를 상상하면서 이것을 사회주의로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 대중의 물질적 수준이 상당히 진척되지 않아도 나라는 당분간 더 높은 발전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 이 견해는 소련이 끔찍한 기근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나왔다 . ( 역자 주 : 이 글은 1936 년 8 월 카알 라덱이 소련 지도자들에 대한 테러 음모를 꾸몄다는 죄목으로 체포되기 전에 쓰여졌다 .)

사회주의는 인간의 욕구를 최선으로 만족시키기 위해 계획 생산을 도모하는 체제이다 . 그렇지 않다면 사회주의라는 이름은 필요 없을 것이다 . 암소가 사회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암소의 수가 너무 적거나 암소의 유방이 너무 왜소할 경우 불충분한 우유 공급 때문에 분쟁이 일어난다 . 즉 도시와 농촌 사이의 분쟁 , 집단농장과 농민 사이의 분쟁 , 노동계급 내 다양한 계층 사이의 분쟁 , 근로인민 전체와 관료집단 사이의 분쟁 등이 이것이다 . 농민이 암소를 대량으로 살육하게 만든 것이 암소의 사회화 조치였다 . 궁핍으로 인한 사회 내부의 분쟁은 다시 " 과거의 모든 넌센스 " 를 부활시킨다 . 이것이 소련 정부가 발표한 성명서에 대한 우리 답변의 요지였다 .

코민테른 제 7 차 세계대회는 1935 년 8 월 20 일 통과된 결의문을 통해 이렇게 엄숙히 선언했다 : 공업 국유화의 성공 , 농업 집단화의 달성 , 자본주의적 요소와 쿨락 계급의 일소 등을 통해 " 최종적이고 역전될 수 없는 사회주의의 승리와 노동계급 독재의 전면적인 강화가 소련에서 달성되었다 ." 단정적인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코민테른의 선언은 전적으로 자기모순에 빠져 있다 . 이론적 원칙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회체제로서 사회주의가 " 최종적이고 역전될 수 없이 " 승리했다면 독재의 새로운 " 강화 " 는 명백한 넌센스이다 . 체제의 실제적 요구에 따라 독재가 강화되면 사회주의의 승리는 아직도 멀다 . 독재 즉 정부의 억압이 " 강화 " 될 필요성은 조화로운 무계급 사회의 승리가 아니라 새로운 사회적 갈등의 증대를 말할 뿐이다 . 독재 강화의 근본적 원인은 무엇인가 ? 해답은 간단하다 . 낮은 노동생산성으로 인한 생존수단이 부족이다 .

한때 레닌은 " 소비에트 권력 더하기 전기 ( 電氣 ) 화 " 로 사회주의의 특징을 설명했다 . 이 경구 ( 警句 ) 의 일면적 측면이 당시의 선전 목적 때문에 부각되었다 . 그는 최소한 자본주의 수준의 전기화를 사회주의 건설의 최소 출발점으로 간주하였다 . 현재 소련 시민의 일인당 전기 배당량은 자본주의 선진국의 3 분의 1 수준이다 . 소비에트 정치체제는 대중의 통제로부터 독립한 독자적 정치체제로 바뀌었다 . 이 점을 고려하면 코민테른은 관료집단의 권력 더하기 자본주의 수준 전기화의 3 분의 1 이 사회주의라고 선언하는 일만 남았다 . 이 선언은 사진을 찍은 것만큼이나 정확할 것이다 . 그러나 사회주의는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 1935 년 11 월 열린 스타하노프 운동 간부 회의에서 스딸린에게 연설의 기회가 주어졌다 . 그는 이 회의의 실용적 목적에 부합하여 뜻밖에 이렇게 선언했다 : " 왜 사회주의는 자본주의를 정복할 수 있고 정복해야 하며 반드시 정복하고 말 것인가 ? 왜냐하면 사회주의는 ‥‥‥ 더 높은 노동생산성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 선언은 같은 문제에 대한 코민테른의 3 개월 전 결의문과 그 동안 자주 반복하여 선언되었던 자신의 견해를 우발적으로 거부하고 있다 . 스딸린은 여기서 사회주의의 " 승리 " 를 미래시제로 표현했다 . 사회주의는 노동생산성에서 자본주의를 능가할 때 자본주의 체제를 정복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 동사의 시제 뿐 아니라 사회주의 건설의 사회적 조건도 관료집단에 의해 매순간 바뀐다 . 소련 시민은 " 총노선 " 을 따라 잡느라 고생이 많다 .

마지막으로 1936 년 3 월 1 일 로이 하워드 (Roy Howard) 와의 대담에서 스딸린은 소련 체제에 대해 새로운 정의를 내렸다 : " 우리가 탄생시킨 사회는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 아직도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근본적으로 사회주의 체제입니다 ." 이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규정한 발언에는 단어 수만큼이나 많은 모순이 숨어 있다 . 그는 소련을 "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 " 라고 부른다 . 그러나 소비에트는 국가형태이고 사회주의는 사회체제이다 . 국가형태와 사회체제는 동일한 개념이 아닐 뿐더러 우리 입장에서 보면 상호 적대적 개념이다 . 사회체제가 사회주의적이라면 소비에트 국가형태는 마치 건물을 다 세운 후 발판이 제거되듯이 사라져야 한다 . 스딸린은 자기 말을 이렇게 수정한다 . 사회주의는 " 아직도 완성되지는 않았다 . " " 완성되지 않다 " 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5% 부족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75% 부족하다는 것인가 ? 이 점을 그는 말하지 않는다 . " 근본적으로 사회주의 체제 " 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근본적으로 사회주의라는 것은 소유형태를 말하는가 아니면 기술수준을 의미하는가 ? 그러나 이 정의의 애매함은 1931 년에서 1935 년까지 선언된 비교할 수 없이 단정적인 정식으로부터 후퇴했음을 의미한다 . 논리를 좀더 철저하게 추구한다면 모든 사회체제의 " 근본 " 이 생산력임을 인정할 것이다 . 그리고 현재 소비에트 체제의 근본은 인류 복지를 지향하는 사회주의의 핵심에 충분히 도달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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