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트로츠키주의자2017.04.19 18:55

제 6 장 불평등 및 사회적 갈등의 증대

1. 궁핍, 사치, 투기

소련 정부는 처음에 " 사회주의적 분배 " 를 실시했으나 1921 년 시장체제로 회귀하지 않을 수 없었다 . 그러나 5 개년 계획 기간에 물질적 수단들을 공업생산에 최대한 투입하면서 다시 국가분배 체제로 되돌아갔다 . 과거의 " 전시 공산주의 " 를 다시 실험하는 셈이었다 . 다만 이번에는 더 높은 물질적 기반을 바탕으로 실험을 했다 . 그러나 이 기반도 불충분한 것으로 판명 났다 . 1935 년 계획적 분배체제는 다시 상거래 체제에 자리를 내주었다 . 결국 현실적 분배방식은 소유형태보다는 기술수준과 물질적 자원에 의존한다는 사실이 다시 명백해졌다 .

특히 도급제 도입을 통한 노동생산성 향상은 미래에 소비재가 증가하고 물가가 인하되어 생활수준이 향상될 것을 약속하고있다 . 그러나 이것은 사물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 . 번영했던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이 현상이 일어났다 . 그러나 사회적 현상 및 과정은 연관과 상호작용의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 상품생산에 기초한 노동생산성의 향상은 불평등을 증대시킨다 . 사회 지배층의 번영은 대중의 생활수준 향상을 훨씬 앞지르기 시작한다 . 국부가 증대됨에 따라 새로운 사회분화가 진행된다 .

일상생활의 조건으로 보면 소련 사회는 안정되고 특권을 누리고 있는 소수와 궁핍 속에서 살아가는 다수로 이미 나누어져 있다 . 더욱이 이 불평등의 수준은 극단적이 되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 널리 유통되는 제품들은 일반적으로 값이 비싸면서도 질이 낮다 . 그리고 주요 도시를 벗어날수록 구하기가 더 힘들다 . 이 상황에서 소비재에 대한 투기나 노골적인 도둑질이 성행한다 . 어제까지는 이 행위가 계획적 분배의 결손을 보충했다면 지금은 상거래의 결손을 교정한다 .

소련의 " 친구들 " 은 눈을 감고 솜으로 귀를 막은 후 인상에만 의존하여 소련의 상황을 판단하는 습성이 있다 . 이 습성은 이들의 직업에 의해 단련되었다 . 그러나 우리는 인상에 의존할 수 없다 . 소련의 적들은 악의적 비방을 아주 빈번히 일삼고 있다 . 따라서 관료집단에게 시선을 두어보자 . 이들은 최소한 자신들에게는 적대적이지 않을 것이다 . 따라서 이들이 공식적으로 자기비판을 할 때는 항상 시급한 실제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이다 . 따라서 이들이 빈번히 지껄이는 시끄러운 자화자찬보다 자기비판이 신뢰성이 훨씬 크다 .

잘 알려져 있듯이 1935 년 계획은 초과 달성되었다 . 그러나 주택의 경우는 목표의 55.7% 만 달성되었다 . 더욱이 노동자 주택 건설은 모든 사업 가운데 가장 천천히 그리고 가장 엉터리로 진행된다 . 집단농장 농민들은 과거와 같이 낡은 오두막집에 가축 , 바퀴벌레와 살고 있다 . 반면 고위관료들은 자신들을 위해 건축된 모든 주택들에 " 가정노동자 즉 하인이 쓸 방 " 이 없다고 신문에서 불평한다 .

모든 정부와 사회체제는 건축물을 통해 자신의 기념비를 세운다 . 지금 소련의 특징적 건축물은 각급 소비에트가 사용하는 수많은 궁전과 주택 , 가끔 일 천만 루블까지 나가는 고위관료들의 진짜 궁전 , 고급 극장 , 장교의 클럽 하우스인 적군 주택 , 요금이 아주 높은 호화 지하철 등이다 . 그런데 노동자 주택은 군대 막사 모양에 옛날 그대로 아주 후진적이다 .

국가소유 화물을 운송하는 철도 건설에는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 . 그러나 일반 시민은 이 발전의 성과를 전혀 누리지 못하고있다 . 도로통신부 장관들은 객차와 철도역의 비위생적 상태 , " 참을 수 없는 서비스의 실종‥‥빈번한 열차표 남용 , 도둑질 , 사기 ‥‥ 빈 좌석에 대한 은폐와 투기 , 뇌물 수수 ‥‥‥ 수화물에 대한 강도행위 " 등을 불평하면서 수많은 개선명령을 하달한다 이 사실들은 " 사회주의 운송에 대한 치욕 " 이다 ! 그러나 이 행위들은 자본주의 운송체제에서도 범죄행위이다 . 일반대중이 이용하기에 지극히 어려운 운송수단의 형편없는 수준 , 운송 물품의 격심한 품귀 , 일반 승객에 대한 철도 공무원들의 냉소적인 태도 등이 책임자들의 반복되는 불평에서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 한편 관료집단은 땅 , 바다 , 하늘에서 가장 안락한 운송 서비스를 제공받는다 . 특등객차 , 특별 객차 , 특별 기선 등의 수는 대단히 많으며 최고급 승용차와 비행기들이 현재 이것들을 대체하고 있다 .

레닌그라드 중앙위원회 의장 즈다노프는 청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1 년 후에 " 당 활동가들이 지금의 평범한 포드 승용차가 아니라 리무진을 타고 회의장에 도착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 " 을 약속했다 . 그의 발언은 소련 산업의 발전 정도를 보여주고 있다 . 소련의 기술은 인간 복지에 쓰일 경우 언제나 선택된 소수의 고급 수요를 만족시키는 데 주로 이용되고 있다 . 그런데 일반 시민이 이용하는 전차는 운행이 되더라도 과거와 같이 숨이 막힐 정도로 혼잡스럽다 .

식품산업 인민위원 미코얀은 이렇게 자랑하고 있다 : 가장 높은 수준의 과자와 케이크 등이 생산되면서 저질품들은 급속히 없어지고 있다 ; " 우리 여성들 " 은 질 좋은 향수를 원한다 . 이것은 소련이 화폐경제로 전환하면서 수준 높은 소비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것이 시장 법칙이다 . 그래서 고위층 " 부인들 " 은 가장 수준이 낮은 소비자가 결코 아니다 . 그런데 1935 년 우크라이나에서 조사된 95 개 협동조합 상점 중 68 곳에는 과자나 케이크 등이 전혀 없었다 . 그리고 파이에 대한 수요는 15% 내지 20% 까지만 충족되었다 . 그것도 품질이 상당히 낮은 것들이 그랬다 . 『이즈베스챠』지는 이렇게 불평한다 : " 공장은 소비자의 수요에 관계없이 생산하고 있다 ." 소비자가 힘이 없을 경우 이것은 당연한 현상이다 .

이 문제들을 유기화학의 관점에서 다루고 있는 바크 교수는 " 생산되는 빵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품질이 나쁜 경우가 자주 있다 " 는 것을 알고 있다 . 효모의 신비와 이것의 발효작용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근로 남녀도 그와 똑같이 생각한다 . 그러나 이 저명한 교수양반과는 달리 이들은 신문에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

모스크바에서는 의류 복합기업 (trust) 이 특별 " 패션점 " 에서 다양한 색상의 비단치마를 선전하고 있다 . 그런데 지방이나 심지어 거대 공업도시에서도 줄을 서거나 화가 치미는 경험을 한 후에야 노동자들은 겨우 면셔츠를 구할 수 있다 . 셔츠가 모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 극소수에게 사치성 의류를 공급하는 것보다 다수에게 필요한 기본 의류를 공급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 인류 역사는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

자신의 업적을 열거하면서 미코얀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 " 동물성 마가린 산업이 새로 생겼다 . " 물론 이 산업은 짜르 체제에는 없었다 . 그렇다고 상황이 그때보다 더 나빠졌다고 성급하게 결론 내릴 필요는 없다 . 당시에는 버터를 구경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그러나 대체품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소련에 최소한 두 종류의 소비자 즉 버터를 선호하는 소비자와 마가린으로 때우는 소비자가 있음을 드러낸다 . 미코얀은 다시 자랑한다 : " 필요한 사람들에게 마호르카를 풍족하게 제공하고 있다 ." 그러나 유럽이나 미국에는 이런 저질 담배가 없다는 사실을 그는 덧붙여야 했다 .

불평등 현상이 아주 뚜렷하게 보이는 경우가 또 있다 . 모스크바를 비롯한 대도시에는 특별상점이 개장되었다 . " 광채 (Luxe)" 라는 별로 러시아적이지 않지만 표현력 있는 이름을 가진 사치품 상점이다 . 동시에 모스크바와 지방의 식품상점에는 강도행위가 잇따르고 있다는 불평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 누구나 배를 채워야하지만 소수만 필요를 충족하고 있음을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알 수 있다 .

주부 노동자는 체제에 대해 나름의 견해를 가지고 있다 . 그리고 아주 예민한 관료가 냉소적으로 표현하듯이 그녀의 " 소비자 " 지위 정도는 사회체제의 성격을 결정적으로 나타낸다 . 근로여성과 관료간의 분쟁에서 마르크스와 레닌은 우리와 함께 근로여성의 편에 서 있다 . 자신의 업적을 과장하고 모순을 호도하고 근로여성이 체제를 비판할 수 없도록 목을 조르는 관료집단을 우리는 반대한다 .

마가린과 마호르카는 소련의 불행한 필수품이라고 인정하자 . 그렇다고 현실을 치장하고 미화할 수는 없다 . " 당 활동가 " 를 위한 리무진 승용차 , " 고위관료 부인 " 을 위한 고급 향수 , 노동자를 위한 마가린 , 새로운 귀족계급을 위한 " 광채 나는 " 사치품 상점 , 전시용 진열장으로만 볼 수 있는 고급 과자와 케이크 --- 이런 식의 사회주의는 대중에게 새로 치장한 자본주의로만 보일 것이다 . 이들의 생각은 결코 잘못되지 않았다 . " 일반화된 궁핍 " 상황에서는 생필품 투쟁이 " 과거의 모든 넌센스 " 를 부활시키려고 위협한다 . 그리고 이것은 사회생활의 구석구석에서 부분적으로 부활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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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련의 시장관계는 신경제 정책 시기의 시장관계와 다르다 . 현재의 시장관계는 국영 협동조합과 집단농장이 개별 시민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 이 사이에 중간상인은 직접 개입할 수 없다 . 그러나 이것은 원칙으로만 그렇다 . 국영상점과 협동조합의 소매총매출액은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으며 매매 명세서에 의하면 1936 년 약 1 천억 루블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1935 년 160 억 루블이었던 집단농장의 총매출액은 올해 상당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이 과정에서 비합법 반합법 중간상인들이 어떤 역할을 할지는 확실히 계산할 수 없다 . 그러나 적어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 자영농민 뿐 아니라 집단농장과 이 농장의 농민들은 중간상인에 많이 의존한다 . 가내수공업자 , 협동조합 종사자 , 농민의 수요를 충족시키는 지방 산업들이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때때로 광대한 지역의 고기 , 버터 , 계란 등이 " 투기꾼들 " 에 의해 매점 되는 경우도 예상과 달리 발생하고 있다 . 소금 , 성냥 , 밀가루 , 등유 등 일상적으로 가장 필요한 물품들은 국영 창고에 충분히 있지만 관료화된 지방 협동조합에 의해 몇 주일 또는 몇 달 공급되지 않는다 . 이 상황에서 농민들이 다른 경로로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 소련 언론은 중간상인을 당연한 현상이라고 종종 말하곤 한다 .

기타 형태의 개인기업이나 개인적 자본축적은 경제에서 역할이 더 작은 것처럼 보인다 . 개인 택시기사 , 여관업자 , 수공업자 등은 자영농민처럼 음성적으로 인정된 직업종사자들이다 . 모스크바에도 자영 소기업과 정비소가 상당수에 이른다 . 이들은 경제의 중요한 틈새를 메우고 있기 때문에 묵인되고 있다 . 그러나 이것과 비교되지 않는 많은 수의 개인기업들이 협동조합의 이름을 빌어 영업행위를 하고있거나 집단농장과 건물을 같이 사용하고 있다 . 마치 계획경제의 틈새를 강조하는 특별한 목적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가끔 모스크바의 형사들은 집에서 만든 베레모나 면셔츠를 거리에서 파는 배고픈 여성들을 악의에 찬 투기꾼으로 몰아 체포한다 .

1935 년 가을 스딸린은 이렇게 선언하였다 : " 소련에서는 투기의 기반이 모두 퇴치되었다 . 그런데도 투기꾼이 있다면 이유는 오직 하나밖에 없다 . 즉 각급 국가기구에서 투기꾼들에 대한 계급적 경계심이 결여되어 이들에 대한 자유주의적 태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 이 발언이야말로 관료주의적 사고의 순수한 형태가 아닐 수 없다 ! 투기의 경제적 기반이 퇴치되었다고 ? 그렇다면 경계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 예를 들어 국가가 대중에게 보통 수준의 머리쓰개를 충분히 공급해 준다면 불행한 노점상들을 체포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 이들을 체포할 필요가 지금 존재하는지도 의심스럽다 .

위에서 언급한 개인상인들의 수와 이들의 매출액 규모는 그 자체로는 하나도 경계할 이유가 없다 . 국가소유의 숲 속에서 트럭 운전사 , 베레모 상인 , 시계 제조업자 , 계란 매점자 등의 공격을 두려워 할 이유는 전혀 없다 ! 그러나 단순한 산술적 상호관계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 마치 열병을 앓을 때 돋는 두드러기처럼 행정의 공백이 조금만 있으면 나타나는 투기꾼들의 다양성이나 규모는 소부르주아 경향이 계속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 투기영역이 사회주의의 미래를 위협할 수위는 경제적·정치적 체제의 일반적 위력에 의해 전적으로 결정된다 .

인구의 90% 나 되는 노동자와 집단농장 농민의 분위기와 행위는 주로 이들의 실질임금의 변화에 의해 결정된다 . 그러나 이들의 수입과 소수 특권층의 수입간의 격차 역시 중요한 요소이다 . 상대성 원리는 인간의 소비영역에서 더 직접적으로 관철된다 . 모든 사회관계를 화폐로 환산하면 사회의 다양한 계층들이 전체 국민총소득에서 어떤 몫을 차지하는지가 드러날 것이다 . 장기간 불평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필연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인정될 수 있는 한계와 특정 상황에서 불평등이 사회적 편의에 얼마나 부합하는지는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 국민총생산의 일정한 몫을 차지하려는 불가피한 투쟁은 정치투쟁으로 발전한다 . 현 체제가 사회주의인지 아닌지는 관료집단의 공문구가 아니라 공업노동자 대중과 집단농장의 농민들의 관료집단에 대한 시각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

 

2. 노동계급의 계층적 분화

노동자국가에서는 실질임금에 대한 자료가 특히 면밀하게 연구될 것이라고 생각되기 마련이다 . 특히 인구 범주에 의한 임금 통계가 완전히 명료하게 현실을 해명해 줄 것이며 자료는 누구에게나 일반적으로 공개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 그런데 사실은 근로인민의 가장 핵심적 이해를 반영하는 이 문제는 뚫을 수 없는 베일에 의해 완전히 가려져 있다 . 믿기 힘들겠지만 소련 가정의 가계부는 자본주의국가의 가계부보다 훨씬 더 신비에 싸여 있다 . 심지어는 제 2 차 5 개년 계획 기간에 노동계급 각 범주의 실질임금 곡선을 수립하려는 노력도 성과가 없었다 . 이 문제에 대한 당국과 자료보유자들의 완고한 침묵은 이들이 무의미한 총수치 (total) 를 인용하며 자랑을 늘어놓는 것과 똑같이 현실을 잘 보여준다 .

중공업 인민위원 오도니키즈의 보고서에 따르면 1925 년부터 1935 년까지 노동자의 월간 생산량은 3.2 배 그리고 명목임금은 4.5 배 증가했다 . 그러나 명목임금의 대단해 보이는 수치 가운데 노동계급의 상층부 전문가들의 몫이 어느 정도이며 이 명목임금으로부터 실질임금은 어느 정도인지 그의 보고서나 언론의 논평은 아무 단서도 제공하지 않는다 . 1936 년 4 월 소련 청년대회에서 콤소몰 비서 코사로프는 이렇게 선언했다 : "1931 년 1 월부터 1935 년 12 월까지 청년의 임금은 340% 나 올랐다 !" 그러나 치밀하게 선정된 젊은 훈장 포상자들이 박수에 대해서 너그러운 편인데도 그의 연설은 박수를 전혀 받지 못했다 . 연설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시장가격으로 경제가 이행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노동자 대중의 경제 상황이 더 악화되었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복합기업의 사장까지 포함한다면 일인당 " 평균 " 임금은 1935 년에 약 2,300 루블이었다 . 그리고 1936 년에는 약 2,500 루블이 될 것이다 . 즉 명목상으로는 7,500 프랑인데 실제 구매력은 3,500 에서 4,000 프랑을 거의 넘지 않을 것이다 . 이 수치는 그 자체만으로도 지극히 낮다 . 그런데 1936 년의 임금 인상이 소비재에 대한 특별가격과 일련의 무상 서비스를 해제한 것에 대한 부분적 보상책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 낮아진다 . 그러나 1 년에 2,500 루블 그리고 한달 208 루블은 평균 임금에 불과하다 . 이 점이 중요하다 . 이 수치는 실제 임금 수준의 잔인한 불평등 현상을 감추기 위해 동원된 산술적 허구에 불과하다 .

지난 한해 노동자 상층부 특히 소위 스타하노프 운동원들의 상황은 의심의 여지없이 상당히 개선되었다 . 언론은 의복 , 신발 , 전축 , 자전거 , 잼 등 훈장 포상자들이 구입한 물건들을 열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는데 이것은 충분한 근거가 있다 . 이 혜택들이 보통 노동자들에게는 별천지라는 사실이 입증된다 . 스타하노프운동이 시작된 긴급한 상황을 언급하면서 스딸린은 이렇게 선언했다 : " 세상 살기가 더 쉬워졌다 . 인생이 더 행복해졌다 . 인생이 행복하면 일이 빨리 진행된다 ." 지배층은 도급제에 대해 대단히 낙관적인데 스딸린의 발언은 관료집단의 사고를 아주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 그의 발언은 노동 귀족의 형성이 지난 시기 경제 성공 때문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 그러나 스타하노프 운동원들의 원동력은 " 행복한 " 분위기가 아니라 더 많은 돈을 벌려는 욕심에 있다 . 몰로토프는 스딸린의 발언을 이렇게 교정했다 : " 스타하노프 운동원들이 높은 생산성을 추구하는 직접적 동인은 자기 수입을 늘리려는 단순한 계산에 있다 ." 이 말은 사실이다 . 지난 몇 달간 새로운 노동자 계층이 등장했는데 이들은 "1 천 루블 노동자 " 라고 불리었다 . 이들의 소득이 한 달에 1,000 루블을 넘었기 때문이다 . 한 달에 2,000 루블 이상을 버는 사람들도 있다 . 그러나 하층노동자들은 한 달에 100 루블도 벌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임금 격차만으로도 " 부유한 " 노동자와 " 부유하지 못한 " 노동자의 구분이 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 그러나 이 구분은 관료집단에게는 불충분한 것처럼 보인다 . 이들은 스타하노프 운동원들에게 문자 그대로 소낙비처럼 특전을 퍼붓고 있다 . 이 운동원들은 아파트를 새로 갖거나 살고 있는 아파트를 개조한다 . 대기 기간이 전혀 없이 휴양 시설이나 요양소를 이용한다 . 교사와 의사가 무료로 가정을 방문한다 . 영화관의 무료 입장권을 받는다 . 어떤 곳에서는 기다리는 노동자들을 재끼고 먼저 이발과 면도를 한다 . 이 많은 특전들은 일반 노동자들을 괴롭히기 위해 고의적으로 계산된 것처럼 보인다 . 관료집단의 간절하기까지 한 이 호의의 배경에는 출세주의와 함께 양심의 가책이 자리잡고 있다 . 지방의 관료집단은 이 기회를 열심히 활용하여 노동자 상층부가 자신들의 특권을 동일하게 만든다 . 이를 통해 관료들은 대중적 고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 이 결과 스타하노프 운동원들의 실질소득은 하층 노동자들의 소득보다 20 배 내지 30 배를 상회한다 . 그리고 특히 운 좋은 전문가들의 경우 봉급은 많은 경우 비숙련 노동자 80 명에서 100 명의 봉급에 해당한다 . 임금 불평등에서 소련은 자본주의 국가들을 따라잡았을 뿐 아니라 훨씬 앞지르고있다 !

사회주의적 동기를 순수하게 간직하고 있는 가장 우수한 스타하노프 운동원들은 자신들의 특권에 대해 행복해 하기보다는 불편해 하고 있다 . 이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 일반적 궁핍 한가운데에서 모든 종류의 물품들을 개인적으로 즐길 경우 시기와 악의가 이들을 둘러싸 생활을 오염시킨다 . 이런 종류의 인간관계는 자본주의 공장의 노동자들 관계와 유사할 뿐 착취에 대한 투쟁으로 하나가 된 이들의 사회주의적 도덕과는 거리가 멀다 .

이 모든 것에 불구하고 숙련 노동자의 일상 생활은 쉽지 않다 . 특히 지방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 높은 노동생산성 때문에 7 시간 노동일이 희생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생존을 위한 투쟁에 적지 않은 시간이 소비된다 . 예를 들어 집단농장에서 높은 지위를 누리는 노동자들이 특별히 번영을 누리고 있는 징후가 하나 있다 . 즉 트랙터 운전사나 콤바인 운전사 등이 소와 돼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언론에서 거론된다 . 그런데 이미 이들은 악명 높은 노동 귀족으로 알려져 있다 . 우유 없는 사회주의가 사회주의 없는 우유보다 더 좋다는 이론은 이미 포기되었다 . 국영농장에는 소나 돼지가 얼마든지 있다 . 그러나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기 위해 주머니 경제를 운영해야한다 . 이 사실은 이미 현실로 인정되고 있다 . 또 하나 놀라운 사실이 있다 . 카르코프에서 96,000 명이나 되는 노동자들이 개인 텃밭을 소유하고있다는 사실을 소련 당국은 승리에 들떠 발표했다 . 다른 도시가 카르코프의 기록에 도전하라고 부추기고 있다 . " 자기 소 ", " 자기 텃밭 " 이란 말에는 인간 노동력에 대한 얼마나 끔찍한 강도행위가 암시되어 있는가 ! 그리고 노동자 뿐 아니라 그의 아내와 자식에게도 가해지는 중세식 거름주기와 땅파기는 얼마나 지독한 부담인가 !

그러나 일반대중에게는 개인 소나 텃밭이 없다 . 그리고 대개의 경우 집도 없다 . 비숙련 노동자의 임금은 1 년에 1,200 루블에서 1,500 루블 이하이다 . 이 임금으로는 궁핍을 면할 수 없다 . 물질적·문화적 수준을 측정하는 가장 믿을 만한 지수인 생활조건은 지극히 열악할 뿐 아니라 종종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 노동자 절대 다수는 공동주택에 모여 산다 . 이곳의 장비와 관리 정도는 군대의 막사보다 훨씬 뒤떨어진다 . 공업의 실패와 부진 그리고 제품의 품질 저하 등에 대해서 변명이 필요할 경우 소련 당국은 기자들을 통해 이렇게 생활조건을 공개한다 : " 노동자들은 마루에서 잔다 . 침대에는 빈대가 들끓기 때문이다 . 의자는 망가지고 물을 마실 컵도 없다 ." " 두 가구가 단칸방에서 산다 . 지붕은 비가 샌다 . 비가 오면 그릇 가득히 빗물을 퍼서 밖으로 버린다 ." " 옥외변소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더럽다 ." 이런 식의 묘사는 각 지방들의 상황을 제시하고 있는데 관료집단 마음대로 계속 이어질 수 있다 . 석유산업의 책임자는 예를 들어 이렇게 적고 있다 : 이런 참을 수 없는 생활 때문에 " 직장 이동률은 아주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노동자가 없어서 많은 수의 시추공이 방치되어 있다 ." 특히 살기가 어려운 지역이 있다 . 이곳에는 다른 지역에서 노동규율을 여러 번 어겨 해고되거나 면직된 사람들이 모여든다 . 이렇게 노동계급 밑바닥에는 소외된 부랑자들이 층을 이루고 있다 . 이들에게는 어떤 권리도 없다 . 그러나 석유생산과 같은 중요한 산업분야는 이들을 끌어쓸 수밖에 없다 .

아주 뻔뻔스러운 임금 격차와 자의적 특전을 통해 관료집단은 노동계급 내부에 날카로운 적대감을 심어놓는 데 성공했다 . 스타하노프 운동에 대한 기록은 때때로 소규모 내전에 대한 묘사이기도 하다 . 예를 들어 어느 노동조합의 기관지는 이렇게 적고 있다 : " 기계들을 파괴하고 못쓰게 하는 것이 스타하노프 운동에 대한 좋은 (!) 저항 방법이다 ." 계속해서 읽어보자 : " 계급투쟁이 모든 곳에서 느껴진다 ." 이 " 계급 " 투쟁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은 서로 적이다 . 스타하노프 운동에 저항하는 자들은 " 혼이 나야한다 " 고 스딸린은 공개적으로 협박했다 . 당 중앙위원회 위원들은 지구상에서 " 무례한 적 " 들을 몰아내야 한다고 두 번 이상 위협한 적이 있다 . 스타하노프 운동이 당국과 노동계급 사이에 깊은 소외의 골을 파 놓았다는 사실은 아주 확연히 드러났다 . 또한 자신이 발명하지 않은 격언을 관료집단은 열렬히 외치고 있다 . 이 격언은 , " 분할 통치하라 !" 이다 . 더욱이 노동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강제 도급제 노동은 " 사회주의적 경쟁 " 으로 불린다 . 이 용어는 마치 사회주의를 조롱하는 것처럼 들린다 !

경쟁의 근원은 타고난 생물적 불평등에 있다 . 그러나 경쟁에서 탐욕 , 시기 , 특권 등과 같은 부정적 요인들을 제거할 경우 공산주의적 경쟁은 틀림없이 문화발전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 될 것이다 . 그러나 사회주의 사회를 건설하려면 현재 소련 정부가 사용하고 있는 후진 자본주의의 굴욕적 조치들이 아니라 해방된 인간에게 합당한 방식들이 사용되어져야 한다 . 그렇지 않을 경우 사회주의 건설은 성취될 수 없을 것이다 . 그리고 무엇보다 관료집단의 채찍을 맞으면서 사회주의가 성취되지는 않을 것이다 . 왜냐하면 이 채찍은 구 세계로부터 물려받은 가장 저주스러운 유산이기 때문이다 . 조금의 수치도 없이 사회주의를 얘기하려면 이 채찍이 갈갈이 찢겨져야 한다 . 그리고 대중이 보는 앞에서 모닥불에 던져져야 한다 .

 

3. 집단화 농촌의 사회적 모순

공업 복합기업이 " 원칙적으로 " 사회주의적 기업이라면 집단농장은 그렇지 않다 . 집단농장은 국가가 아니라 일정 수의 농민에 기초하고 있다 . 물론 자영 농장의 분산성과 비교해 보면 커다란 진전이지만 집단농장이 사회주의로 이행할지의 여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 농장 내부의 상황 , 소련의 전반적 상황 그리고 세계정세에 따라 이 문제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

농민과 국가 간의 투쟁이 끝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 현재의 대단히 불안정한 농업 조직은 끔찍한 내전이 벌어진 후 체결된 양자간의 일시적 타협의 산물에 불과하다 . 물론 농민이 경작하는 토지의 90% 는 집단화되었다 . 그리고 농업생산물의 94% 는 집단농장에서 생산되었다 . 실제로 개인소유농장이면서 집단농장으로 위장한 경우가 존재한다 . 그러나 개인소유 농업에 대한 승리는 최소한 90% 완료되었다고 볼 수 있다 . 그러나 농촌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 세력 사이의 투쟁은 개인소유 농장의 농민과 집단농장의 농민이라는 앙상한 대비만으로는 전혀 이해될 수 없다 .

농민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국가는 재산을 개인적으로 소유하려는 농민의 개인주의 경향에 대단히 많은 양보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우선 농민들은 자기가 경작하고 있던 토지를 집단농장에 엄숙히 양도하였다 . 그리고 이 대가로 농민들은 " 영원히 " 토지사용권을 국가로부터 보장받았다 . 이 조치의 핵심은 사회주의적 토지소유의 철폐였다 . 그렇다면 이 조치는 법적인 허구 내지 속임수에 불과한 것일까 ? 각 세력의 역관계에 따라 농민의 토지사용권은 현실이 되어 아주 가까운 미래에 전국적 계획경제에 엄청난 난관을 조성할 가능성이 있다 . 그러나 어쨌든 국가가 특히 작은 개인소유 농장을 다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훨씬 중요하다 . 사회주의화를 침해하고 집단화를 제한한 대신 농민은 아직 마음이 썩 내키지 않지만 집단농장에서 일하는 것에 평온히 동의하고 있다 . 집단농장 노동을 통해 농민은 국가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대신 개인적으로 농업 생산수단을 소유할 기회를 부여받았다 . 이 새로운 관계는 아직 미성숙해서 소련의 통계가 좀더 정직하더라도 이것을 수치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 그러나 농민 소유의 소규모 농장은 농민 개인의 생존에 있어서 집단농장만큼이나 커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 이 결론을 내리게 하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 즉 농촌 전역에는 개인주의 경향과 집단주의 경향이 아직도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 그리고 이 과정은 아직 결말에 도달하지 않았다 . 농민은 어느 경향으로 기울 것인가 ? 이 질문에 대해 농민 자신들도 아직 정확히 아는 것이 없다 .

농업 인민위원은 1935 년 말 이렇게 말했다 : " 현재까지 쿨락 분자들이 곡물 공급에 대한 국가 시책에 강력히 저항하고 있다 ." 다른 말로 바꾸면 이것은 집단농장의 농민 대다수가 " 최근까지 "( 그리고 어쩌면 지금까지 ) 국가에 곡물을 양도하는 것을 자기들에게 불리한 조치라고 간주하여 개인적 상거래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이 점은 집단농장 농민들의 집단적 재산 약탈을 금지하는 엄한 법이 존재하는 것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 집단농장 재산이 200 억 루블 짜리 보험에 들어 있고 대신 집단농장 농민의 개인적 재산은 210 억 루블 짜리 보험에 든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 물론 농민 개개인이 전부 합쳐지면 반드시 집단농장보다 더 부자라는 것은 아니지만 농민이 자신의 재산을 공동 재산보다 더 귀중히 여긴다는 점은 확실하다 . 목축의 경우도 이에 못지 않게 의미가 있다 . 말의 수는 1935 년까지 계속해서 감소하였고 지난 한해 정부의 일련의 조치를 통해서만 약간 증가하기 시작했다 . 그런데 지난 한해 증가한 뿔 달린 소의 수는 이미 4 백만 두에 달한다 . 말의 목표량은 상황이 좋았던 1935 년에도 94% 밖에 달성되지 않은 반면 뿔 달린 소의 경우는 상당히 초과 달성되었다 . 이 데이터의 의미는 말이 집단농장의 재산인 반면 소는 집단농장 농민 대다수의 개인 소유물이라는 사실로 명확해진다 . 초원 지역에서는 농민이 말을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 . 그런데 이 지역에서는 말의 증가가 집단농장의 경우보다 상당히 빠르다 . 더욱이 집단농장은 국영농장보다 말의 수가 더 크게 증가하고 있다 . 이 사실들로부터 개인소유의 소규모 영농이 대규모 사회주의 영농보다 생산성이 뛰어나다고 추론하면 안된다 . 다만 전자에서 후자로의 이행은 야만에서 문명으로 가는 길이지만 도중에 많은 난관이 있으며 이 난관은 단순히 행정적 압력으로 제거되지 않는다는 추론이 가능할 뿐이다 .

" 법은 경제구조와 이것으로 조건 지워지는 문화발전 수준을 능가할 수 없다 ." 비록 법으로 금지되어 있지만 토지는 광범위하게 대여되고 있다 . 더욱이 가장 지독한 착취 형태인 소작으로 널리 대여되고 있다 . 한 집단농장이 다른 집단농장에게 토지를 대여한다 . 또는 외부 사람에게 대여하기도 하고 마침내 재산 증식을 더 잘하는 집단농장 성원에게 대여하기도 한다 . 믿기 힘들지만 " 사회주의적 " 기업인 국영농장도 농토를 농민에게 대여하고 있다 . 이와 관련하여 특히 시사하는 바가 많은 사실이 하나 있다 . 비밀경찰 (GPU) 소유의 국영농장이 이런 짓을 하고 있다 ! 법을 수호하는 이 높은 기관의 보호 하에 국영농장의 책임자들은 과거 지주 - 농노간의 계약을 그대로 본뜬 조건을 임차 농민에게 강요한다 . 결국 관료들이 농민을 착취하는 셈인데 이때 관료들은 국가의 기간원이 아니라 반합법적 지주이다 .

이 추한 현상을 조금도 과장할 필요는 없다 . 물론 이 현상은 통계에 반영되지 않는다 . 그러나 이 현상이 드러내는 엄청난 의미를 놓칠 수는 없다 . 즉 인구의 절대 다수를 포괄하고 있으며 아직도 지극히 후진적인 이 경제 분야에서 부르주아 경향이 발휘하는 위력을 정확히 입증하고 있다 . 한편 새로운 소유관계 구조에도 불구하고 시장관계는 불가피하게 개인주의 경향을 강화시키고 농촌의 사회적 분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

집단농장의 평균소득은 약 4,000 루블이다 . 그러나 농민에게 " 평균 " 수치는 노동자의 경우보다 더 숨기는 것이 많다 . 예를 들어 집단 어민은 1935 년에 전해보다 두 배나 소득을 증대하여 일인당 1,919 루블을 벌었다고 크렘린궁에 보고되었다 . 이 수치는 집단농장농민의 소득보다 높다 . 반면 소득이 가구당 30,000 루블인 농장도 있다 . 물론 개인소유에 의한 소득을 제외한 수치이다 . 일반적으로 이들 대규모 집단농장 농민들의 소득은 " 평균 " 노동자의 임금 그리고 낮은 수준으로 집단화된 농장의 농민 소득보다 10 배 내지 15 배 높다 .

그런데 노동 숙련도나 근면성은 소득 격차에 부분적으로만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집단농장과 개인소유 농장은 모두 극단적으로 서로 다른 조건에 있다 . 기후 , 토양 , 곡물의 종류 , 도시와 공업중심지로부터의 거리 등 각기 다르다 . 도시와 농촌간의 격차는 5 개년 기간에 감소하지 않았다 . 반대로 도시와 새로운 공업지역의 급속한 성장 때문에 더 커졌을 뿐이다 . 소련 사회의 근본적 사회 격차는 집단농장에 그리고 집단농장 내부에 파생적으로 모순들을 만들어 내고있다 . 그런데 이 모순들의 주요한 요인은 차등지대의 존재이다 .

한편 관료집단의 무제한적 권한은 사회적 분화에 상당히 강력한 역할을 하고 있다 . 이들은 임금 , 가격 , 세금 , 예산 , 신용 등의 지렛대를 장악하고 있다 . 중앙아시아 집단농장들 사이의 아주 상이한 소득수준은 집단농장 농민들의 노동생산성보다는 정부에 의해 정해진 가격의 상호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 한 계층의 다른 계층에 대한 착취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감추어졌을 뿐이다 . 처음 조성된 수만 개의 " 부유한 " 집단농장들은 다른 집단농장들과 공업노동자들을 희생시켜 번영하였다 . 그런데 모든 집단농장들을 번영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다수를 희생으로 소수에게 특권을 주는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어렵고 장기간의 시일이 요하는 과제이다 . 1977 년 좌익반대파는 이렇게 선언했다 : " 쿨락의 소득은 노동자의 소득에 비교할 수 없이 증가했다 ." 그리고 이 선언은 지금도 엄연히 진실이다 . 다만 그 형태를 약간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 그리고 집단농장 농민 상층의 소득은 기본 농민과 노동자 소득보다 비교할 수 없이 증가했다 . 현재 각 계층간 물질적 생활수준의 차이는 아마 쿨락을 일소하기 직전보다 상당히 더 커졌을 것이다 .

집단농장의 기본 재산들은 사회주의 소유이다 . 이 때문에 집단농장 내부의 계층적 분화는 개인 소비를 통해 일부 표현되고 있다 . 그리고 또 다른 일부는 집단농장 옆에 붙어 있는 개인소유 기업에 의해 촉진되고 있다 . 집단농장들 사이의 분화는 사회에 이미 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 왜냐하면 부유한 집단농장들은 비료와 기계를 더 자주 제공받기 때문이다 이 결과 이들은 빨리 부유해진다 . 성공하는 집단농장들은 종종 가난한 집단농장으로부터 노동력을 고용하고 당국은 이것을 눈감아준다 . 가치가 다른 농토들이 집단농장에 넘겨지면서 이들간의 분화는 더욱 증진되고 있다 . 이 결과 부르주아적 집단농장 즉 소위 " 백만장자 집단농장 " 들이 등장하고 있다 .

물론 국가권력은 농민의 사회적 분화 과정에 개입하여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다 . 그러나 어떤 방향으로 그리고 어떤 한계 내에서 이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 쿨락 및 쿨락 집단농장을 공격하는 것은 좀더 " 진보적 " 농민층과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는 것일 수도 있다 . 그런데 이 진보적 농민층은 지금에 와서야 정부의 고통스러운 개입에 저항하여 " 행복한 삶 " 을 누리려는 큰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 더욱이 더 중요한 것은 국가권력 자체가 사회주의적 통제력을 점차 상실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 공업과 마찬가지로 농업에서도 국가권력은 강력하고 성공적인 백만장자 집단농장의 " 스타하노프 현장 운동원 " 의 지지와 호의를 구하고 있다 . 국가권력은 처음에는 생산력 발전에 관심을 갖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자기 이익에만 골몰한다 . 집단화가 관료집단의 기생성을 부추기고 이 결과 관료집단이 집단농장의 상층부과 유착하는 현상이 소비가 생산과 밀접히 연관된 농업에서 발생한다 . 집단농장 농민들이 크렘린궁의 엄숙한 기념식에서 지도자들에게 증정하는 감사 " 선물 " 은 지방 권력층에게 주는 진짜 공물의 상징적 표현에 불과하다 .

따라서 생산력의 낮은 수준은 공업의 경우보다 농업의 경우 훨씬 크게 사회주의적 그리고 협동조합적 ( 집단농장 ) 소유형태와 계속 모순을 일으키고 있다 . 이 모순 속에서 등장한 관료집단은 이 모순을 오히려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

 

4. 관료지배층의 사회적 외관

소련의 정치서적들은 잘못된 사고방식이나 사업방식을 " 관료주의 " 라고 비난한다 . ( 그런데 이 비난은 항상 상부가 하부를 겨냥하기 때문에 상부의 자기방어용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 그러나 관료집단을 지배층으로 보면서 연구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 이 지배층의 숫자 , 체계 , 실제 인물 , 특권과 취향 , 국민총생산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 등의 데이터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 그러나 관료집단은 실제한다 . 그런데 이들은 대단히 조심스럽게 자기 정체를 숨기고 있다 . 이 사실은 이들이 지배 " 계급 " 의 구체적 의식을 소유하고 있으나 자신들이 장악한 통치권에 대해 자신이 없다는 점을 증명한다 .

소련 관료집단에 대한 정확한 수치를 입수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 여기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이유가 있다 . 우선 국가가 거의 유일한 고용주인 나라에서 행정기구가 어디에서 끝나는지 말하기가 힘들다 . 둘째로 이 문제에 대해서 소련의 통계 종사자 , 경제학자 , 선전가 등은 이미 말했듯이 특히 집중적으로 침묵한다 . 그리고 서방의 소련 " 친구들 " 도 같이 행동한다 . 1,200 쪽이나 되는 노동관계 자료집에서 웹 부부 (the Webbs) 는 관료집단을 사회적 범주로 언급한 경우는 한번도 없다 . 이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 왜냐하면 이 저명한 " 사회주의자 " 부부는 소련 관료집단의 명령에 따라서 행동했기 때문이다 !

공식 수치에 의하면 1933 년 11 월 1 일 현재 중앙 국가기구는 55,000 명의 지휘 요원들을 두고 있다 . 그러나 이 수치는 최근 극히 이례적으로 증가했는데 국방부 , 비밀경찰기구 등은 제외되어 있다 . 그리고 오소아비아킴 ( 역자 주 : 소련 국방 및 항공 - 화학산업 개발 연구회 ) 과 같은 협동조합 쎈터와 사회기관들도 포함되지 않았다 . 더욱이 각 공화국들도 각자 정부기구를 가지고 있다.국가기구 , 노동조합 , 협동조합 , 군대 총사령부 등과 함께 이중적으로 인적 구성을 공유하고 있는 당의 강력한 총참모부가 존재한다 . 소련과 산하 공화국의 지배층을 40 만 명으로 보는 것은 과장은 아닐 것이다 . 현재 이 숫자가 이미 50 만 명을 넘어섰을 가능성도 있다 . 이 숫자에는 소위 " 지도자 ", " 요인 " 등 엄밀한 의미에서 지도층을 포함하고있으며 직원들은 제외된다 . 물론 아주 중요한 수평적 경계로 인해 위계질서가 확립되어 있다 .

50 만의 관료지배층은 광범위하고 다양한 기초를 가진 묵직한 행정 피라미드에 의해 지원 받고 있다 . 지방 도시와 지구 소비에트의 집행위원회 , 같은 급의 당 기구 , 노동조합 , 공산주의 청년동맹 , 지방 운송기구 , 육군과 해군의 사령부 , 비밀경찰국 등은 거의 2 백만 인원을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 그리고 60 만 개의 도시 및 농촌마을의 소비에트 의장들도 잊으면 안된다 .

기업의 직접 운영은 1933 년에 17,000 명의 책임자와 부책임자의 손에 집중되어 있었다 . ( 이보다 최근 자료는 없다 .) 공장 , 광산 , 제작소 등의 행정적·기술적 인원은 십장까지 포함해서 250,000 명에 이르렀다 . ( 그러나 물론 이들 중에 54,000 명은 엄밀히 말하면 행정 기능과 무관한 전문가들이었다 .) 여기에 각 공장의 당과 노동조합 기구를 포함시켜야 한다 . 공장에서는 잘 알려져 있듯이 " 삼각형 " 방식으로 행정이 수행된다 .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의 행정을 위해 50 만 인원이 종사하고 있다는 주장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 여기에 각 공화국과 지방 소비에트 기구를 담당할 행정요원들을 더해야한다 .

그리고 다른 공식 통계에 의하면 1933 년 현재 소련 경제 전체에 86 만 이상의 행정요원과 전문가들이 일하고 있다 . 공업에는 48 만 , 운송에는 10 만 , 농업에는 9 만 3 천 , 상업에는 2 만 5 천의 직원들이 있다 . 물론 이 수치에는 행정 권한이 없는 전문가들이 포함되어 있다 . 그러나 집단농장과 협동조합은 이 수치에서 제외되어 있다 . 그리고 이 수치들은 지난 2 년 6 개월 동안 진행된 숨가쁜 사회변화 이전의 데이터에 속한다 .

25 만 개의 집단농장 중에서 의장과 당 조직 담당자만 해도 그 수는 이미 50 만을 헤아린다 . 그러나 실제는 이 숫자보다 비교할 수 없이 많다 . 국영농장과 트랙터 - 기계류 정비소 등을 합한다면 사회화된 농업분야의 책임자 총수는 백만 명을 훨씬 넘을 것이다.

1935 년 소련에는 무역 관련 부서가 113,000 개소 , 협동조합이 200,000 개소 있었다 . 이들 부서의 지도자들은 상업 관련 종업원이 아닌 국가 직원이고 더욱이 특정 품목의 독점가들이다 . 소련의 언론조차 때때로 " 협동조합 임원들은 자신들이 집단농장 농민에 의해 선출된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고 불평한다 . 마치 협동조합의 운영이 노동조합 , 소비에트 , 당의 운영과 질적으로 구별될 수 있는 것처럼 이들은 생각한다 . 이 계층은 생산적 노동에 직접 종사하지 않는 대신 행정조치를 취하고 , 명령을 내리며 , 일을 지휘하고 , 사면을 내리고 벌을 내리는데 약 5 백만에서 6 백만 명에 이를 것이 확실하다 . 이 총 수치는 , 그것을 구성하는 항목들과 마찬가지로 결코 정확하지 않다 . 다만 관료집단 분석의 첫걸음으로 유용할 것이다 . 이것은 소련 지도부의 " 총노선 " 이 단순히 허깨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신시키기에 충분하다 .

이 거대한 지배체제의 각 단계에서 공산주의자들은 20% 에서 90% 를 차지하고 있다 . 관료집단 전체에서 공산주의자들은 공산주의청년동맹의 회원들을 포함하여 150 만에서 200 만에 이르고 있다 . 현재 숙청이 계속 중이므로 수치는 더 낮아질 것이다 . 이들이 국가권력의 근간이다 . 이 공산주의자들은 동시에 당과 공산주의 청년동맹의 근간이다 . 볼셰비키당은 과거의 노동계급 전위가 아니라 이제 관료집단의 정치기구에 불과하다 . 나머지 당원들과 청년동맹 회원들은 관료집단의 충원을 위한 예비부대 즉 " 현역 (active) 의 저수지를 이루고 있다 . 비당원 " 현역 " 들도 같은 목적에 봉사한다 . 노동 귀족 , 집단농장 귀족 , 스타하노프 운동원 , 비당원 " 현역 ", 신뢰받는 인물 , 이들의 친지 등은 관료집단의 전체 숫자와 비슷한 500 만에서 600 만 명에 이를 것이다 . 이들의 가족까지 합치면 인적 구성이 서로 겹치는 이 두 집단은 2,000 만에서 2,500 만 명에 이른다 . 가족의 수를 비교적 낮게 잡고 있는 이유는 남편과 아내 그리고 가끔 아들과 딸들이 국가기구의 직책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 더욱이 지배층 부인들은 노동자 여성이나 농민 여성들보다 가족의 수를 제한하기가 훨씬 쉽다 .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낙태 반대 캠페인은 관료집단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고위층 부인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 전체 인구의 12 퍼센트에서 15 퍼센트가 전제 지배집단의 사회적 기초이다 .

여러 개의 방 , 충분한 식량 , 단정한 의복이 아직도 인구의 극소수에게만 향유되는 상황에서 고위직 하위직 수백만 관료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을 주로 자신의 복지를 확보하는 데 이용한다 . 따라서 이 집단의 지독한 이기주의 , 공고한 내부 단합 , 대중의 불만에 대한 두려움 , 모든 비판을 압살하려는 끈질긴 집착 , " 지도자 동지 " 에 대한 위선적이면서도 종교의식에 가까운 복종 등이 특징으로 나타난다 . 특히 " 지도자 동지 " 는 이 새로운 지배집단의 권한과 특권을 확립하고 옹호하기 때문에 무조건적 충성을 누리고 있다 .

관료집단은 노동계급이나 농민에 비해 내부 동질성이 여전히 대단히 낮다 . 농촌 소비에트 의장과 크렘린궁의 고위관료 사이에는 커다란 격차가 있다 . 다양한 범주의 하급관료들은 아주 원시적 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 이들은 서방의 숙련 노동자들보다 생활수준이 낮다 . 그러나 모든 것은 상대적인데 일반대중들의 생활수준은 하급관료들에 비해 대단히 낮다 . 고위관료들과 마찬가지로 집단농장의 의장 , 당 조직가 , 협동조합의 하급관료 등의 운명은 소위 " 선출자 대중 " 에게 전혀 의존하지 않는다 . 직속상관 관료는 부하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하급관료들을 언제든지 희생시킬 수 있다 . 그러나 가끔 이들은 모두 함께 한 단계 승진할 경우도 있다 . 심각한 충격이 외부에서 처음으로 가해지기 전까지는 어쨌든 이 관료집단은 직위의 상호보장체제에 의해서 크렘린궁의 지도부와 같은 이해를 가지고 있다 .

생활조건으로 보면 관료지배층은 시골구석의 소부르주아에서 대도시나 수도의 대부르주아까지 다양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이 물질적 조건에 따라 습관 , 이해관계 , 사고방식 등이 조응한다 . 현재 소련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심리적 특성은 서방 노동조합 관료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 표현방식은 다르지만 대중에 대한 거만한 자세 , 이류 수준의 술책을 교활하게 구사하는 검은 마음 , 보수성 , 편협한 전망 , 사회 평온에 대한 같은 정도의 강한 집착 , 가장 유치한 형태의 부르주아 문화에 대한 숭배 등에서 이들은 동일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 소련의 대령들과 장군들은 대개의 경우 지구상의 다른 대령들이나 장군들과 다른 점이 거의 없다 . 소련의 외교관들은 서방의 외교관으로부터 연미복 뿐 아니라 사고방식도 그대로 모방한다 . 소련의 기자들은 방식이야 특별하겠지만 외국의 기자들과 똑같이 독자들을 우롱한다 .

관료집단의 숫자를 추산하는 것이 힘들다면 이들의 수입 수준을 알아내는 것은 더 힘들다 . 이미 1927 년에 좌익반대파는 " 비대한 특권관료집단은 잉여가치의 상당한 몫을 집어삼키고 있다 " 고 항의했었다 . 좌익반대파의 강령은 무역 관련 기구들의 경우만 해도 " 국민총생산의 10 분의 1 이상을 집어삼키고 있다 " 고 추산하였다 . 그러자 당국은 추산이 불가능하도록 모든 조치를 취했다 . 그러나 바로 이 조치들로 인하여 총경비는 감소된 것이 아니라 늘어났을 뿐이다 .

무역 분야나 다른 분야나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 라코프스키가 1930 년 어느 글에서 말했듯이 , 4 억 루블에 달하는 노동조합의 예산에서 8 천만 루블이 직원의 봉급으로 나가는 사실을 신문에 싣는 문제로 당과 노동조합 관료들 사이에 가벼운 설전이 벌어졌다 . 그런데 이 경우는 합법적 예산을 공개하는 문제였다 . 이외에도 노동조합 관료들은 공업에 종사하는 관료들로부터 돈 , 아파트 , 운송수단 등 많은 선물들을 우정의 표시로 받는다 . 라코프스키는 이렇게 묻는다 : " 당 , 협동조합 , 집단농장 , 국영농장 , 산업 및 행정기구의 기관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갈까 ?" 그는 스스로 자기 질문에 답했다 : " 가설을 세우기 위한 정보조차 구할 수 없다 ."

통제에서 벗어날 경우 기금 횡령을 포함한 권한 남용은 당연한 현상이다 . 1935 년 9 월 25 일 소련 정부는 협동조합의 무능을 문제로 제기하기 위해 몰로토프와 스딸린이 서명한 성명서를 발표했다 : " 농촌의 많은 소비자 단체들의 약탈과 낭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 그러나 이런 성명서는 처음이 아니었다 . 1936 년 1 월 중앙집행위원회 회의에서 재정인민위원은 지방의 집행위원회들이 국가기금을 완전히 자의적으로 지출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 이 인민위원이 중앙기구들의 직권남용에 대해 침묵을 지킨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 자신이 중앙기구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

관료집단 전체가 국민총소득의 얼마를 차지하는지는 추산할 가능성도 전혀 없다 . 이들이 자신의 합법적 수입 수준마저 면밀히 감추거나 직권 남용을 통해 예상하지 못한 많은 기금을 전용하기 때문만도 아니다 . 주요한 이유는 공공사업 , 편의시설 , 문화 , 예술 등 사회복지 분야가 독점적으로는 아니라 할지라도 주로 상부 특권층을 위해 존재하고있기 때문이다 .

관료집단을 소비자로 볼 경우 필요한 변경을 가하여 부르주아지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반복하면 될 것이다 . 관료집단의 개인적 소비재 욕심을 과장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 그러나 과거와 최신의 문명의 이기들을 관료집단이 거의 독점적으로 향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상황은 아주 달라진다 . 과거에는 문명의 성과들이 물론 인구 전체에게 개방되었거나 아니면 최소한 도시의 인구에게 열려져 있었다 . 그러나 이것도 특별한 경우에만 그랬다 . 반면에 관료집단은 이것들을 개인소유인 것처럼 이용하고 있다 . 봉급 , 현물 서비스의 모든 형태 , 반합법적 소득원의 모든 형태 뿐 아니라 극장 , 휴양지 , 병원 , 요양소 , 여름 별장 , 박물관 , 클럽 , 체육기관 등을 계산하면 인구의 15% 내지 20% 가 나머지 인구가 사용하는 재부를 똑같은 정도로 누린다고 결론지을 수 있을 것이다 .

그런데 서방의 소련 " 친구들 " 은 우리가 제시한 수치에 대해서 이견이 있는가 ? 그렇다면 이들은 좀더 정확히 계산할 수 있을 것이다 . 이것에 대해 우리는 하등 개의치 않을 것이다 . 이들이 관료집단에게 소련 사회의 소득과 지출 통계집을 발행하도록 설득하게 내버려두자 .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 하기 전까지는 우리의 견해를 그대로 고수할 수밖에 없다 . 소련의 소득분배는 짜르 시대의 러시아나 서방의 가장 민주적인 국가의 경우보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더 민주적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 그러나 아직도 사회주의와는 공통점이 거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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