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민족성개조
1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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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Petty-Bourgeois Moralists and the Proletarian Party] 쁘띠부르조아 도덕론자들과 노동계급 정당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 내부의 토론은 철저했으며 민주적이었다.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충만한 가운데 당대회는 준비되었다. 소수파는 당대회에 참여함으로써 이 대회의 정통성과 권위를 인정하였다. 소수파가 당대회 이후 계속해서 자신의 견해를 펼 수 있도록 다수파는 모든 권리를 보장해 주었다. 그러나 소수파는 당과 독자적으로 대중에게 호소할 수 있는 자유를 요구하였다. 다수파는 당연히 말도 안되는 이 요구를 거부하였다. 한편 당이 모르게 소수파는 수상한 음모를 멋대로 꾸미더니 결국 당과 제4인터내셔널 전체의 노력으로 발간되었던 기관지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전용하였다. 더욱이 기관지 편집진 5명 가운데 2명을 다수파는 소수파에게 할당하기로 동의한 바 있었다. 그러나 지식인 "귀족"들이 노동자당의 소수파로 머물 수 있겠는가? (버넘) 교수를 노동자와 같이 취급하는 것이 결국 "관료적 보수주의" 아니던가!

나에 대한 최근의 반론에서 버넘은 사회주의가 "도덕적 이상(moral ideal)"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물론 이것은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19세기 초 도덕은 "진정한 독일사회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활동 초기부터 이 경향을 비판하였다. 20세기 초 러시아 사회혁명당은 유물론적 사회주의에 대항하여 "도덕적 이상"을 내세웠다. 도덕을 등에 업은 자들이 정치판에서는 흔한 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감스럽게도 입증되었다. 1917년 이들은 부르조아와 외부 제국주의 세력의 손에 노동자들을 완전히 팔아넘겼다.

쁘띠부르조아 교수나 신문쟁이가 고고한 도덕 기준을 말하기 시작하면 돈지갑을 잘 간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오랜 정치경험이 나에게 가르쳐준 바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이 현상이 일어났다. "도덕적 이상"의 미명 하에 쁘띠부르조아 지식인이 이론지라는 노동자당의 지갑을 턴 것이다. 이들 발명가, 도덕론자, 민주주의 옹호자들의 조직방식의 아주 조그만 실제 예를 여기서 엿볼 수 있다.

"먹물" 쁘띠부르조아에게 당내 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자신이 원하는대로 말하고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체제가 바로 이것이다. "먹물" 쁘띠부르조아에게 "관료주의"란 무엇인가? 노동자의 다수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자신의 결정과 규율을 강제하는 체제가 바로 이것이다. 노동자 여러분, 이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쁘띠부르조아 소수파는 혁명적 맑스주의에 대항하여 노동계급 다수파로부터 조직을 분리해 나갔다. 버넘은 변증법적 유물론이 자신의 벌레먹은 "과학"과 합치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섁트먼은 혁명적 맑스주의가 "실제 과업"의 측면에서 보면 중요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이 두 신사의 반맑스주의 동맹에 에이번은 자신이 간수하고 있던 조그마한 둥지를 서둘러 결합시켰다. 이제 이 신사양반들은 당으로부터 훔친 잡지를 "혁명적 맑스주의" 기관지라고 명명하고 있다. 이것이 이데올로기 약장수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독자들은 이 편집자들에게 자신들의 유일한 강령적 작업 즉 버넘의 "과학과 문체"를 출판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만약 이들이 현란한 상표로 엉터리 상품을 판매하는 돌팔이를 닮을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면 스스로이 글을 출판한 의무를 느꼈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은 이 글에서 도대체 어떤 종류의 "혁명적 맑스주의"가 깃들어 있는지를 스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신사양반들은 감히 이 짓을 하지 못할 것이다. 이들은 자기 정체를 드러내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버넘은 자신의 너무도 노골적인 글과 결의문들을 자기 가방 속에 감추는 일에 능하다. 섁트먼은 주변머리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옹호하는 변호사 역을 자청해왔다.

훔친 기관지의 맨 첫 번째 "강령적" 글들은 이 새로운 반맑스주의 집단의 경망스러움과 공허함을 이제 완전히 드러내고 있다. 이 집단은 "제3진영(Third Camp)"이라는 이름을 달고 등장하고 있다. 이 새로운 이름의 정체는 무엇인가? 자본주의 진영과 노동계급 진영이 있다. 그렇다면 쁘띠부르조아들의 안식처인 "제3진영" 이 존재하는가? 논리를 보건데 제3진영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쁘띠부르조아들은 자기 "진영"을 현란한 말로 치장하고 있다. 이제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자! 프랑스와 영국이 한 진영을 그리고 히틀러와 스탈린이 또 다른 진영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섁트먼을 동반한 버넘의 제3진영이 있다. 이들에게 제4인터내셔널은 히틀러 진영에 속해 있다.(스탈린은 이것을 이미 오래 전에 발견했었다.) 그래서 새로운 위대한 구호가 등장한다: 운명의 장난에 고통받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혼란된 평화 애호가들이여, "제3" 진영의 깃발 아래 모이시오!

그러나 정말 큰 문제가 있다. 서로 싸우고 있는 제1진영과 제2진영은 부르조아 세계를 전부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 중립 내지 반중립 국가들은 어디에 속하는가? 미국은? 이탈리아와 일본은?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은? 인도는? 중국은? 중국과 인도의 혁명적 노동자들이 아니라 피억압국인 중국과 인도 말이다. 학교 아동에게나 걸맞는 3 진영 이론은 아주 사소한 것 즉 인류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식민지 세계 를 빠뜨리고 있다!

인도는 영국 편에 서서 제국주의 전쟁에 가담하고 있다. 인도의 볼셰비키주의자들이 아니라 인도에 대해서 가져야할 우리의 입장은 영국에 대한 입장과 같아야 하는가? 섁트먼과 버넘 외에 두 개의 제국주의 진영만이 이 세계에 존재한다면 어디에 인도를 포함시켜야 하는가? 인도가 대영제국의 긴요한 일부이고 제국주의 전쟁에 가담하고 있더라도 그리고 간디를 비롯한 다른 민족주의 지도자들의 배신적인 정책이 존재하더라도 인도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영국에 대한 입장과 전혀 다르다. 이것이 맑스주의자가 해야할 말이다. 우리는 영국에 대항하여 인도를 옹호한다. 그렇다면 비록 스탈린이 히틀러와 동맹을 맺고 있을 지라도 소련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독일에 대한 우리의 입장과 왜 다를 수가 없는가? 해체할 가능성 밖에 남아있지 않은 반동적 사회형태에 비해 발전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더 진보적 사회형태를 왜 옹호할 수 없는가? 우리는 후자를 옹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옹호해야만 한다! 훔친 기관지의 이론가들은 계급적 분석을 기계적 이론으로 대체하고 있다. 이 대체품은 사이비 균형감각으로 쁘띠부르조아 지식인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제국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들에게 대단한 욕을 해대며 나찌에 굴복하고 있는 자신들의 행태를 위장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섁트먼과 그의 동료들은 "제3진영" 의 허풍쟁이 말로서 미국 쁘띠부르조아 여론에 대한 자신들의 투항을 위장하고 있다. 마치 제3진영이 쁘띠부르조아, 노동조합, 인도, 소련 등에 대해서 올바른 정책을 세울 의무가 없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제3진영" 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당, 클럽, 잃어버린 희망의 동맹, "인민전선 ", 이들 중 도대체 어느 것인가?

며칠 전만 해도 섁트먼은 언론에 자신을 "트로츠키주의자"라고 소개했다. 만약에 이것이 트로츠키주의라면 최소한 나는 트로츠키주의자가 아니다. 버넘은 말할 것도 없고 현재 섁트먼의 생각과 나는 공통점이 전혀 없다. 나는 적극적으로 [새로운 인터내셔널]과 협력관계를 맺어왔다. 그리고 이론에 대한 섁트먼의 경망스러운 태도, 허세나 부리는 쁘띠부르조아 현학자 버넘에 대한 그의 무원칙한 영합에 대해 편지들을 보내 항의했었다. 그러나 당시 버넘과 섁트먼은 모두 당과 제4인터내셔널의 통제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쁘띠부르조아 민주주의의 압력은 이들을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만들어 놓았다. 이들이 편집한 잡지에 대한 나의 태도는 다른 모든 쁘띠부르조아 맑스주의 위조품들에 대한 나의 태도와 다를 수 없다. 그들의 "조직방식"이나 정치적 "도덕"은 나에게 경멸감을 일으킬 뿐이다.

노동계급의 적들이 의식적으로 섁트먼을 조종하여 해당행위를 사주했더라도 그의 행위는 그간의 실제 행위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반맑스주의자들과 연합하여 맑스주의에 대항했다. 그는 노동자들에 대항해서 쁘띠부르조아들이 뭉쳐 함께 분파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그는 당내 민주주의를 활용하기를 거부하였으며 다수의 노동계급 당원들을 설득하는 정직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세계대전의 상황 속에서 조직 분리를 획책했다. 이 모든 일들을 마무리짓기 위해 그는 이 조직 분리에 치사하고 더러운 스캔들의 베일을 덮어 우리의 적들이 우리를 공격할 빌미들을 제공하였다. "민주주의자들"이란 바로 이런 작자들이다! 그들의 "도덕"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

러나 이 모든 것은 다 소용없을 것이다. 이들은 파산했다. 불안정한 지식인들의 배신행위와 이들의 민주주의자 사촌들의 값싼 빈정거림에도 불구하고 제4인터내셔널은 앞으로 전진할 것이다. 그리고 당의 성격, 당 강령에 대한 충성심, 혁명적 규율 등의 의미를 이해할 능력이 있는 노동계급 혁명가들 가운데 진정으로 선발된 자들을 결집하고 교육할 것이다. 선진 노동자 여러분! 쁘띠부르조아 "제3진영" 에 대해서 단 한푼어치의 신뢰도 주지맙시다!  

1940년 4월 23일

 

[31. Balance Sheet of the Finnish Events] 핀란드 사태에 대한 대차대조표  

이들은 예상할 수 없었다

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에 체결된 불가침조약을 "우리가" 이미 예상했었다고 섁트먼과 버넘은 주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소련군의 동부 폴란드 점령은? 핀란드 침략은? 아니다. "우리는" 이 사건들을 예상할 수 없었다. 개연성도 전혀 없고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이 사건들이야말로 우리 정치노선의 완전한 대변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고 섁트먼, 버넘 등은 주장한다. 히틀러와 부활절 초코렛 과자를 만들기 위해 스탈린이 그와 동맹을 맺을 필요가 있었다는 인상을 받고 이들은 고민에 빠졌다. 이들은 이 동맹을 "예상했다". (언제? 어디서?) 그러나 이 동맹의 이유와 목적은 예상할 수 없었다.

노동자국가는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에 끼인 채 어느 한 쪽에 대항하여 어느 한 쪽과 조약들을 체결할 권리를 전술로서 행사할 수 있다. 이들은 이 사실을 인정한다. 당연히 이 조약들은 노동자국가가 외부의 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고 경제적 전략적 고지를 점령하고 상황이 허락한다면 자체 기반을 확대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퇴보한 노동자국가는 나름의 관료적 방식으로 이러한 목적들을 달성하려고 시도하며 이러한 시도들은 언제나 세계노동계급의 이해와 모순을 일으킨다. 그러나 히틀러와 맺은 동맹으로부터 될 수 있으면 많은 것을 얻으려는 소련의 시도에 대해서 그렇게도 예상할 수 없었던 의외의 측면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의 운수없는 정치가들인 섁트먼과 버넘이 "이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하나의 문제를 끝까지 철저하게 사고하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1939년 여름 영불 합동 대표단과 질질 끈 협상 과정에서 소련은 공개적으로 발트해 국가들에 대한 지배권을 요구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이 요구를 거절하자 스탈린은 협상을 중단하였다. 히틀러와 합의를 볼 경우 스탈린이 최소한 발트해 국가들에 대한 지배권을 보장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 사건을 통해 명백해졌다. 정치적으로 성숙된 사람들은 바로 이 관점에서 문제를 접근하였다. 그들은 스스로 이렇게 물었다: 스탈린은 이 과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그가 군사력에 의존할까? 등등. 그러나 사건들의 이후 전개과정은 스탈린보다는 히틀러에게 훨씬 더 많이 달려 있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구체적인 사건들은 예상할 수가 없다. 그러나 실제 사건들의 전개방향은 근본적으로 우리의 예상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퇴보한 노동자국가였기 때문에 소련은 제2차 제국주의 세계전쟁의 전야에 대단히 국력이 약화되어 있었다. 히틀러와 맺은 스탈린의 조약은 독일의 공격으로부터 소련을 지키고 일반적으로 소련이 전쟁에 끌려들어가지 않도록 할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폴란드를 점령하는 동안 히틀러는 자신의 동쪽을 보호할 필요가 있었다. 반면 히틀러의 허가를 받고 스탈린은 동부 폴란드를 침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련의 서부 국경을 히틀러의 공격에 대비하여 약간이나마 보충적으로 튼튼히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이 일련의 사건들의 결과 소련은 독일과 국경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 사실로 인해 전쟁에서 승리한 독일로부터 더욱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되었으며 히틀러에 대한 스탈린의 종속은 크게 증대되었다.

폴란드 분할 사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연장되어 진행되었다. 히틀러는 그의 "친구" 스탈린에게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을 점령하겠다는 계획을 넌지시 비추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스탈린은 이 계획을 듣고 식은 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이것은 발트해와 핀란드를 독일이 완전히 지배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로 인해 레닌그라드는 직접적인 위협을 받게 되었다. 다시 한번 스탈린은 자신의 동맹자에 대한 보충적인 안전보장을 확보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안전보장책이 바로 적군의 핀란드 침공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핀란드 지배계급의 심각한 저항에 직면했다. "군사적 유람여행"은 의외로 오래 끌었다. 한편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주요한 전쟁터로 될 위험성이 있었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침략준비를 마친 히틀러는 스탈린이 핀란드와 빨리 평화조약을 맺을 것을 요구했다. 스탈린은 자신의 계획을 축소하고 핀란드를 소비에트화하려는 기도를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유럽 북서부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두드러진 특징들이다.  

 

제국주의 전쟁에 걸려든 작은 나라들

세계전쟁이 일어난 조건 속에서 작은 나라들의 운명을 "민족독립", "중립" 등의 관점에서 제기하는 것은 제국주의 세력이 발명한 신화에 속는 것이다. 문제는 세계지배에 있다. 소련의 생존문제는 사건들이 진행되면서 결말나게 마련이다. 현재는 뒷전으로 물러나 있는 소련의 생존 문제는 일정 시점에서 전면에 등장할 것이다. 약소국들은 이미 강대국들에게 놀아나는 졸(卒) 에 지나지 않는다. 약소국들은 제한적인 의미만의 자유 즉 강대국들 중에 자기 주인을 선택하는 자유만을 가지고 있다.

현재 노르웨이에서는 두 정부 즉 남부에서 독일군의 호위를 받고 있는 친나찌 정부와 북부에서 왕을 모시고 있는 구사민주의 정부 사이에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노르웨이 노동자들이 파시스트 정부에 대항하여 "민주" 진영을 지지해야 했는가? 스페인의 경우처럼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언뜻 보기에 긍정적인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이 노선은 가장 조야한 오류가 될 것이다. 스페인의 경우 고립된 내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 경우 외부 제국주의 세력들의 개입은 그 중요성이 아무리 크다해도 역시 부차적인 성격 밖에 지니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노르웨이에서는 두 제국주의 진영이 직접 충돌하고 있으며 두 노르웨이 정부는 이들 손에 든 보조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적 차원에서 우리는 연합군이나 독일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두 세력의 일시적인 도구에 불과한 노르웨이 정부들 중 어느 쪽을 지지할 이유나 정당성이 조금도 없다.

바로 이와 똑같은 노선이 핀란드에도 적용되어야 한다. 세계 노동계급의 전략적 관점에서 보면 노르웨이와 마찬가지로 핀란드 부르조아의 소련에 대한 저항은 자주적인 국가안보를 위한 행위가 아니다. 영국, 프랑스, 미국의 군사기지로 완전히 변모하기보다는 차라리 소련에 대한 모든 저항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핀란드 정부에 의해서 이 점은 가장 잘 증명되었다. 핀란드나 노르웨이의 자주적 국가안보, 민주주의 수호 등과 같은 부차적인 요인들은 그 자체로 아무리 중요해도 한없이 더욱 강력한 세계적 세력들의 싸움 속에 얽혀 있으며 이 싸움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다. 우리는 이러한 부차적인 요인들을 무시하고 근본적인 요인들에 맞추어 우리의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전쟁에 대한 제4인터내셔널의 강령적 테제는 이미 6년 전에 이 문제에 대한 포괄적인 해답을 제시하였다. 테제는 이렇게 언명하고 있다: "국가안보라는 사고는 특히 민주주의 수호라는 사고와 함께 등장할 경우에 아주 빠르게 약소국과 중립국(스위스, 특히 벨기에, 스칸디나비아 국가들 ) 노동자들을 속이기 위해 활용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계속 말하고 있다: "신이 버린 스위스 마을 출신인 로버트 그림같은 쁘띠부르조아 돌대가리들만이 세계대전이 스위스 독립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진지하게 믿을 수 있다." 그와 똑같이 어리석은 버넘과 섁트먼 등 쁘띠부르조아들도 세계대전이 핀란드를 방어하는 수단이며 소련군의 핀란드 침공과 같은 전술적 사건에 기초하여 노동계급의 전략을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루지아와 핀란드

대자본가에 대항하는 파업투쟁을 벌이면서 때때로 노동자들은 매우 버젓한 쁘띠부르조아 기업들을 파산시킨다. 이와 똑같이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군사적 투쟁을 벌이거나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군사적인 안전보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심지어 완전히 건강하고 혁명적인 노동자국가조차 이러저러한 약소국들의 독립을 유린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국내 또는 국제적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급투쟁의 가혹한 성격에 대해 민주주의적 속물들은 눈물을 흘릴 것이며 이것은 올바른 일일 것이다. 그러나 노동계급 혁명가가 눈물을 흘린다면 꼴불견일 것이다.

1921년 소비에트 공화국은 제국주의 세력의 코카서스지역 침략의 관문인 그루지아를 무력으로 점령하여 소비에트 연방으로 편입시켰다. 민족자결권의 원칙에서 보면 이 무력침공에 반대하는 많은 말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혁명의 영역을 확대하는 관점에서 보면 농민국가에 대해 군사침략을 감행한 것은 전혀 의심스러운 행위가 아니었다. 적들에 의해 포위된 노동자국가의 자기방어를 위해 강제로 다른 국가를 소비에트화시키는 행위는 정당화되었다. 사회주의혁명 수호는 형식적 민주주의 원칙보다 앞선다.

오랫동안 세계 제국주의 세력은 그루지아 합병 문제를 소련에 대항하여 세계여론을 동원하는 구호로 이용했다. 제2인터내셔널은 이 캠페인의 선두에 섰다. 연합국은 소련에 대해 새로이 군사개입을 시도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이와 정확히 똑같은 방식으로 세계 부르조아계급은 소련의 핀란드 침공을 이용하여 소련에 대항하는 세계여론을 동원했다. 이 경우에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민주적 제국주의 세력의 전위로 나섰다. 전쟁에 놀라 정신없이 도망치는 쁘띠부르조아의 불행한 "제3진영" 이 이제 이들의 뒤꽁무니를 쫓고 있다.

그러나 군사개입과 관련한 이러한 주목할만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소련이 1921년의 소비에트 공화국이 결코 아니라는 심오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전쟁에 대한 제4인터내셔널의 1934년 테제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소련 관료체제의 흉칙스러운 발달과 근로인민의 처절한 삶은 세계 노동계급에게 소련의 매력을 극히 감소시켰다." 10월 혁명의 요람인 레닌그라드에 아주 가까운 핀란드에게도 소련의 현 체제는 매력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소련-핀란드 전쟁은 이 사실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드러내었다. 그러나 이 사실로 인해 소련을 제국주의 세력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다. 소련이 관료집단의 손아귀에서 구출되어야 한다는 결론만이 가능하다.  

 

"내전이 어디서 발생했는가?"

"그러나 트로츠키 동지가 약속했던 핀란드 내전은 어느 지역에서 일어났는가?"라고 현재 "제3진영" 의 지도자이며 과거 우리 당의 소수파 지도자였던 인사들은 묻는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약속한 바가 없다. 소련-핀란드 전쟁이 비화할 경우 발생가능한 사태들의 하나를 분석했을 뿐이었다. 소련군이 핀란드의 개별 기지들을 점령하거나 핀란드 전역을 완전히 점령하는 것이나 가능성은 같았다. 개별 기지들의 점령은 부르조아 체제의 유지를 의미했다. 완전한 점령은 노동자와 빈농을 내전에 끌어들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할 사회혁명을 의미했다. 소련과 핀란드 사이에 진행된 초기의 외교 협상들은 소련이 핀란드 문제를 다른 발트해 국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해결할 시도를 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그러나 핀란드의 저항은 군사적 조치들을 통해 목적을 달성시킬 것을 소련에게 강요했다. 스탈린은 핀란드를 소비에트화 하는 것을 통해서만 가장 광범위한 핀란드 대중에게 전쟁을 정당화시킬 수 있었다. 정부 수반으로 소련이 쿠지넨을 임명한 행위는 핀란드가 발트해 국가들이 아닌 폴란드의 운명을 따를 것임을 암시했다. "제3진영" 의 아마추어 글쟁이들이 어떻게 펜을 휘두르든 스탈린은 내전을 부추겨서 소유관계를 전복시켜야 한다는 점을 이해했다.

핀란드 전쟁이 강대국들의 전면전으로 치닫지 않을 경우 그리고 스탈린이 외부 세력의 위협에 의해 후퇴를 강요당하지 않을 경우 그는 핀란드를 소비에트화하지 않을 수 없다고 나는 여러 번 구체적으로 밝힌 바 있다. 핀란드에 대한 스탈린의 과업은 그 자체로는 동부 폴란드를 소비에트화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그런데 군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더욱더 어려웠다. 핀란드는 폴란드보다 전쟁에 대해 대비를 더 확실히 해놓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민족적 관점에서 보면 이 과업은 더욱더 힘들었다. 핀란드는 러시아로부터 민족독립을 쟁취하려는 오랜 투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동부 폴란드의 우크라이나인과 백러시아인은 폴란드에 대항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군에 대해 이들이 저항할 이유는 그만큼 더 적었다. 그러나 사회적 관점에서 보면 스탈린의 과업은 어떤 경우보다 달성하기가 더 힘들었다. 핀란드의 부르조아 계급은 나름의 방식으로 농업 쁘띠부르조아를 육성함으로써 전(前) 자본주의적 농업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이 핀란드 전쟁에서 군사적으로 승리했을 경우 핀란드 소농과 노동자의 도움을 어느 정도 얻어서 소유관계를 전복하는 것은 완전히 가능했을 것이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스탈린은 왜 이러한 구도를 실천에 옮길 수 없었을까? 소련에 반대하는 부르조아 여론이 엄청나게 동원되기 시작했으며 영국과 프랑스가 군사개입을 진지하게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러나 역시 대단히 중요한 사항으로 히틀러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국과 프랑스 군대가 핀란드 영토로 진입할 경우 음모와 기습에 기초한 히틀러의 스칸디나비아 계획이 직접 위협을 받게 될 것이었다. 연합국과 히틀러 양자의 압박을 받아 샌드위치가 된 스탈린은 핀란드의 소비에트화를 포기하고 이 대신 개별 전략 기지들을 점령하는 것으로 군사행동을 한정했다.

놀라서 도망치는 "제3진영" 은 이렇게 논리를 뜯어 맞추고 있다: 트로츠키는 소련의 계급적 성격으로부터 핀란드 내전을 추론했다; 그런데 내전이 일어나지 않은 이상 소련은 노동자국가가 아니다. 사실 사회학적으로 소련을 규정하는 것을 통해 핀란드의 내전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곧바로 "추론 "할 필요는 없었다. 동부 폴란드의 경험에 근거하는 것으로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소련군의 점령 후 일어난 동부 폴란드의 소유관계 전복은 10월 혁명을 통해 탄생한 노동자국가가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구체적 상황 속에서 자기생존을 도모하고자 노력하는 소련 관료집단은 동부 폴란드의 소유관계를 전복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유사한 상황 속에서 이들이 핀란드에서도 똑같은 행동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의심할 근거는 전혀 없었다. 이것이 내가 지적한 내용의 전부였다. 그러나 사태가 진전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혁명과 마찬가지로 전쟁은 급격하게 상황을 변화시킨다. 소련군의 군사적 움직임이 중지되면서 핀란드 내전의 가능성은 사라졌다.

특정 조건을 바탕으로 해서만 미래에 대한 예측은 가능하다. 그리고 예측이 구체적일수록 이 조건 역시 더욱더 구체적이 된다. 예측은 약속된 날짜에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어음이 아니다. 예측은 사태 전개의 명확한 경향만을 개괄적으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다른 차원의 세력과 경향들이 상황의 지배요인이 되기 시작하면서 이 예측된 경향과 함께 작동한다. 구체적인 사건들을 정확하게 예측하려는 사람들은 점장이를 찾아가야 한다. 맑스주의자의 예측은 방향을 파악하는 경우에만 도움이 된다. 나의 예측이 여러 가능한 변종들의 하나일 뿐이며 특정 조건들 속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을 나는 여러번 말한 바 있었다. 핀란드의 운명은 현재 일시적으로 동부 폴란드가 아니라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의 운명을 걷고 있다. 그러나 별로 대단치도 않은 이 개별적인 사실을 "제3진영" 지도자들은 마치 구원의 돌처럼 꼭 부여잡고 있다. 이런 모습은 무미건조한 현학자들의 특허품이다.  

 

소련 방어

스탈린의 핀란드 침공이 소련의 방어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소련의 정치는 보나파르트 관료집단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 이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권력, 명성, 돈에 관심이 있다. 소련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훨씬 더 열심히 방어한다. 따라서 소련과 세계 노동계급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자신들의 이익을 방어한다. 핀란드 전쟁의 전 과정을 통해 이 사실은 너무도 명료하게 드러났다. 소련의 핀란드 침공은 보나파르트 관료집단에게는 하나의 정치적 연관고리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행위에 대해 우리는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조금의 책임도 질 수 없다.

곱절이 아니라 세곱절로 악명높은 코민테른은 스탈린과 연대하여 그의 정책을 방어하며 책임지면서도 그가 어떤 범죄를 저지르든 신경쓰지 않는다. 세계 제국주의 세력이 소련을 분쇄하여 10월 혁명의 조국에 자본주의를 복귀시키고 이 나라를 식민지로 변모시키는 것을 우리는 절대 허용할 수 없다. 코민테른과 우리 정책의 성격은 전혀 다르다. 바로 이 사실이 우리가 소련을 방어하는 근거인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 소련의 패배를 주창하는 자들 즉 소련의 패배를 모험주의적으로 부르짖는 자들은 연합국이 핀란드에 개입할 경우 소련 패배 입장을 소련 방어 입장으로 전환시킬 것이라고 약속한다. 이를 통해 이들은 논리적 난관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이 시도는 경멸스러운 회피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전쟁 상황에서는 변화된 상황에 맞추어 즉시 정책을 돌변시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의하면 핀란드 전쟁이 결정적인 국면에 접어들었을 때 연합국 총사령부는 무르만스크 철도를 공습하는 것을 통해서만 핀란드를 진지하고 재빠르게 원조할 수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전략의 관점에서 이것은 올바른 결론이었다. 연합국 공군이 전쟁에 개입하는 문제는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데 이 문제가 매달려 있는 실에는 "제3진영" 의 원칙적 입장 역시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애초부터 우리는 전쟁에 참가하고 있는 기본 계급진영에 따라 우리의 입장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 결론은 제3진영의 결론보다 훨씬 더 믿음직스럽다.  

 

이미 차지한 진지를 적에게 넘겨주지는 않는다

패배주의 노선은 이러저러한 범죄를 저지른 정부를 벌주는 것이 아니라 계급 역관계로부터 도출되는 결론이다. 전쟁에 대한 맑스주의 노선은 추상적인 도덕적 감상적 고려가 아니라 다른 체제들과 상호관계에 있는 특정 체제를 사회계급적으로 평가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는 이탈리아의 아비시니아 침공에 대해 아비시니아를 지지했다. 네구스가 무솔리니에 비해서 정치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니라 식민지 억압에 대항해 후진국을 방어하는 것을 통해 세계 노동계급의 주요한 적인 제국주의에게 타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가지 근본적인 이유 때문에 우리는 소련판 네구스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소련을 방어한다. 첫째, 소련의 패배는 제국주의에게 새로이 거대한 자원들을 제공하고 자본주의 체제의 숨이 곧 넘어갈 것같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오랫동안 연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기생적 관료집단이 제거될 경우 소련의 사회적 기초는 무제한적인 경제적 문화적 진보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본주의적 기초는 더욱 쇠퇴하는 것 이외에 다른 가능성들을 보이고 있지 않다.

우리의 소련 방어 노선을 가장 시끄럽게 비판하는 자들의 정체를 가장 잘 드러내는 현상이 있다. 이들은 스탈린이 혁명적 볼셰비키당을 파괴시키고 있을 때, 스페인의 노동자혁명을 교살하고 있을 때, "인민전선 "과 "집단안보"라는 미명 하에 세계 사회주의혁명을 배반하고 있을 때 계속해서 소련을 노동자국가로 간주했다. 이 모든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도 이들은 노동자국가인 소련을 방어할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똑같은 스탈린은 "민주적" 핀란드를 침공하였다. 그러자 공산주의자, 노동자, 농민에 대한 스탈린의 모든 범죄행위들을 은폐하고 승인한 제국주의적 민주주의 국가들의 부르조아 여론이 하늘높이 스탈린을 비난했다. 이런 일이 있자마자 우리의 노선을 근본적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 이들은 즉시 "맞아, 소련의 핀란드 침공은 더 이상 묵과할 수 없어!"라고 즉시 선언해버렸다. 그리고 루즈벨트를 그대로 따라서 소련에 대한 도덕적 무역금수 조치를 선언했다.

가방끈이 긴 도사 버넘은 소련을 방어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가 히틀러를 방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논리는 모순적인 현실을 2차원적 삼단논리의 틀 속으로 우겨넣으려는 쁘띠부르조아적 우둔함의 아주 근사한 표본에 지나지 않는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평화조약 이후 소비에트 공화국을 지지함으로써 노동자들이 호언쫄른 왕조를 지지했는가? 그런가 아닌가? 전쟁에 대한 제4인터내셔널의 강령적 테제는 이 문제를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소련이 이러저러한 제국주의 국가와 맺은 조약은 소련의 혁명정당에게 어떠한 정치적 제한도 가하지 않는다고 확고하게 이 테제는 명시하고 있다. 개별적인 외교적 동맹이 그 자체로 아무리 정당해도 세계 사회주의혁명의 이해는 이것보다 더 중요하다. 소련을 방어하는 행위를 통해 우리는 버넘과 그의 동료들보다 히틀러와 스탈린에 대항해서 더욱더 진지하게 투쟁한다.

버넘과 섁트먼이 독불장군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프랑스 자본주의의 악명높은 똘만이 레옹 주오(Leon Jouhaux)도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소련을 방어한다"는 사실에 대해 역정을 내고 있다. 하기야 그가 역정을 내지 않으면 어느 누가 역정을 내랴! 그러나 소련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그가 대표로 있는 프랑스 노동총동맹(CGT)에 대한 태도와 동일하다: 언제나 노동자들을 속이고 배신하는 레옹 주오와 같은 악당들이 노동총동맹을 대표하고 있을 지라도 우리는 자본가계급에 대항하여 노동총동맹을 방어한다. 러시아 멘셰비키들도 이렇게 고함지른다: "제4인터내셔널은 계속해서 소련을 노동자국가라고 인정함으로써 막다른 골목에 처해있다!" 이 신사양반들은 바로 제2인터내셔널의 회원들이다. 전형적인 부르조아 시장인 후이스만스나 레옹 블렁과 같은 저명한 배신자들이 현재 제2인터내셔널을 주도하고 있다. 이들은 1936년 6월의 예외적으로 유리한 혁명적 상황에서 배신행위를 저질러 지금의 세계대전을 가능하게 만든 자들이다. 멘셰비키들은 제2인터내셔널 정당들을 노동자 정당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관료적 배신자들이 우두머리로 있다는 이유로 소련을 노동자국가로 인정하려들지 않는다. 이 거짓논리는 뻔뻔스럽고 냉소적이다. 스탈린, 몰로토프 등을 위시한 소련 관료집단은 블렁, 주오, 씨트린느, 토마스 등과 비교해서 더 좋거나 더 나쁘지도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이 하나이다: 스탈린과 그의 동료들은 사회주의 체제로 발전할 수 있는 소련의 경제적 기초를 착취하고 파괴시키는 반면에 블렁 등은 자본주의 사회의 철저하게 썩은 기초에 집착하고 있을 뿐이다.

노동자국가는 인정사정 없는 역사의 실험실로부터 등장했을 뿐이며 손가락으로 코를 후비며 반성하듯이 후각을 의심하는 "사회주의자" 교수양반의 상상물이 아니다. 노동계급이 달성한 성과들은 적대 세력들의 압력에 의해서 왜곡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들 모두를 방어하는 것이 혁명가의 임무이다. 이미 차지한 진지들을 방어할 수 없으면 새로운 진지들을 결코 정복할 수 없는 법이다.  

1940년 4월 25일

 

[32. A Letter to James Cannon] 제임스 캐넌 동지에게 보내는 편지  

동지,

버넘의 탈당은 과거 우리 당의 소수파 인사들에 대한 우리의 분석과 예상이 맞았다는 것을 아주 훌륭하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다른 인사들의 탈당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1940년 5월 28일

레온 트로츠키

 

[33. A Letter to Albert Goldman] 앨버트 골드먼 동지에게 보내는 편지  

동지,

버넘은 변증법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변증법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마치 거미줄에 걸린 파리와 같습니다. 그가 섁트먼에게 가한 타격은 더 이상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원칙에 입각한 또는 그렇지 못한 동맹에 대한 아주 중요한 교훈을 이들은 몸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이번도 참 불쌍합니다. 4년전 그는 성부(聖父) 마스티와 복사(服事) 스펙터를 자기 파벌의 보호자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그는 세속화된 카톨릭 신자 버넘과 그의 변호사 섁트먼을 대상으로 똑같은 실험을 했습니다. 옛날에는 우리의 예상이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수년 혹은 수십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제 사건이 진행하는 속도는 열병에 걸린 환자처럼 너무 빨라서 바로 다음날 우리의 예상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섁트먼도 불쌍하게 되었습니다!  

1940년 6월 5일

레온 트로츠키

코요아칸

 

[34. On the " Workers " Party] " 노동자 " 당에 대해서  

질문 : 사회주의노동자당 다수파와 소수파는 조직을 분리할만큼 정치적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보십니까?  

 

트로츠키 : 이 경우에도 문제를 기계적으로가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변증법"이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물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치적 차이들을 있는 그대로 본다면 조직을 분리할만큼 크지는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쁘띠부르조아 써클이 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노동계급과 멀어지는 경향을 소수파가 보였다면 이 사소한 정치적 차이는 완전히 다른 가치,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소수파는 노동계급과는 이질적인 다른 사회계급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다수파는 조직 분리를 피하기 위해서 모든 조치들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소수파는 결국 조직을 분리했습니다. 이것은 소수파의 내적 사회적 감정이 우리와 함께 일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노동계급이 아니라 쁘띠부르조아 경향입니다. 드와이트 맥다널드의 글을 보면 이 점을 새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 노동계급 혁명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어느 누구도 강제적으로 혁명정당에 참여할 의무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단 참여하면 당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인민에게 사회를 혁명적으로 변화시키자고 촉구할 용기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대단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책임감을 우리는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론은 우리의 정치적 행동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도구는 맑스주의 이론입니다. 아직까지 우리는 이것보다 더 좋은 도구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노동자는 자기 연장에 대해서 대단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연장이 가장 좋은 것이라면 아주 조심스럽게 다룹니다. 이 연장을 버리지도 않으며 있지도 않는 황당한 연장을 찾지도 않습니다.

버넘은 속물 지식인입니다. 그는 하나의 당에 들어갔다가 탈당하고 또 다른 당에 들어갑니다. 노동자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혁명정당에 가입하여 인민들에게 사상을 전파하고 이들의 행동을 촉구할 때 이 행위는 전쟁에 나선 장군의 행동과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인민을 어디로 인도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총포가 질이 떨어짐으로 더 좋은 총포가 발명되기까지 10년은 기다려야 한다. 따라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느 장군이 이렇게 말한다면 사람들이 이 장군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버넘이 바로 이런 논리를 가지고 있는 장군입니다. 그래서 그는 당을 버렸습니다. 그러나 많은 실업자들의 존재, 전쟁 등은 여전히 우리의 현실로 남아있습니다. 이 현실은 연기될 수 없습니다. 자신의 행동을 연기한 것은 버넘 혼자입니다.

드와이트 맥다널드는 속물은 아니지만 약간 멍청합니다.

그가 쓴 글을 여기에 인용해 보겠습니다:

"사회에 기여하려면 지식인은 자신이나 남을 속여서는 안된다. 가짜 동전으로 알면서 진짜 동전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수년과 수십 년에 걸쳐 배운 것을 위기의 순간에 잊어서는 안 된다."

좋습니다. 아주 좋아요. 여기 그의 글을 다시 인용합니다:

"모든 이론 , 정부, 사회체제 등에 대해 회의를 하고 대중의 혁명 투쟁에 헌신하는 등 회의와 헌신 모두를 가지고 앞으로 다가올 험난한 세월을 맞이해야한다. 오직 이럴 경우에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지식인이라고 내세울 수 있다."

소위 "노동자"당의 지도자 중의 한 명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을 노동자가 아니라 "지식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는 모든 이론에 대해서 회의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방법론을 연구하고 수립하면서 우리는 이 위기의 시대를 준비해 왔습니다. 우리의 방법론은 맑스주의입니다. 그런데 위기가 다가오자 맥다널드는 "모든 이론을 회의하라"고 말합니다.그리고 맑스주의를 다른 새로운 이론으로 대체하지 않은 채 혁명에 헌신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 새로운 이론은 그 자신의 회의적인 이론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론없이 어떻게 행동할 수 있습니까? 대중의 투쟁은 무엇이며 혁명가는 무엇입니까? 그의 글 내용 전체는 경악스러울 따름입니다. 이러한 인사를 지도자로 허용할 수 있는 당은 진지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시 그의 글을 인용합니다: "그렇다면 파시즘이라는 맹수의 성격은 무엇인가? 트로츠키는 보나파르트주의라는 낮익은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어느 파벌이 한 계급을 다른 계급과 싸우도록 이간질시키면서 권력을 유지한다. 그래서 국가권력은 일시적으로 독자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전체주의 체제들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다. 이미 근본적인 경제적 사회적 구조를 변화시켜 버렸다. 과거의 형태들을 조작했을 뿐만 아니라 이것들의 내적 생명력을 파괴시켜 버렸다. 그렇다면 나찌 관료집단은 새로운 지배계급인가? 파시즘은 자본주의와 비견되는 새로운 사회형태인가? 이것도 역시 진실이 아닌 것 같다."

여기서 그는 새로운 이론을 발명하고 파시즘을 새로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모든 이론에 대해서 회의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한 작업에 사용하고 있는 연장은 중요하지 않지만 일에 대해서는 헌신해야 한다고 노동자들에게 말합니다! 이런 말에 대해서 노동자들은 아주 거치른 말로 반응할 것입니다.

그의 글은 실망한 지식인을 아주 특징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는 전쟁과 앞으로 다가올 끔찍한 시대가 패배와 희생을 가져올 것으로 생각하고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그는 회의주의를 전파하기 시작하면서도 회의와 혁명적 헌신이 통일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혁명이 합리적이며 가능한 것이라는 확신이 없으면 혁명에 헌신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효과적인 이론이 없이는 이러한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론적 회의주의를 전파하는 자는 반역자입니다.

우리는 파시즘의 여러 요소들을 분석했습니다:

1. 국가권력에 가장 커다란 독자성을 부여하기 위해 계급들의 적대관계를 이용한다는 측면에서 파시즘은 옛날 보나파르트주의와 공통된 요소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후자는 부르조아 사회의 상승기에 존재한 반면 전자는 부르조아 사회의 쇠퇴기에 등장하는 국가권력이라는 점을 우리는 언제나 강조해왔다.

2. 사적 소유를 제거하지 않은 채 새로운 기술과 사적 소유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극복하고자 하는 부르조아 계급의 시도가 파시즘이다. 파시즘의 "계획경제"는 사적 소유를 제한하는 동시에 구출하려는 시도이다.

3. 일국 내에 존재하는 새로운 현대 기술의 생산력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뛰어 넘으려는 시도가 파시즘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기술은 일국 내로 제한될 수가 없다. 결과는 전쟁으로 나타난다. 이 모든 요소들을 우리는 이미 분석했다.

버넘과 마찬가지로 드와이트 맥다널드도 당을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 그가 약간 더 게으르므로 버넘보다 나중에 탈당할 것입니다.

한때 버넘은 "좋은 재목"이라고 간주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시대의 노동계급 정당은 당에 기여할 모든 지식인들을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 운동을 위해 디에고 리베라를 구하려고 나는 여러 달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사실 모든 인터내셔널들이 이런 종류의 경험을 거쳤습니다. 제1인터내셔널은 아주 변덕스러웠던 시인 프라일리그라트(Freiligrath)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제2 제3인터내셔널은 막심 고리끼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제4인터내셔널은 리베라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모든 경우에 이들은 우리와 결별했습니다.

물론 버넘은 우리 운동에 좀더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캐넌 동지는 그에 대해서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글솜씨가 있으며 깊지는 않지만 재빠른 사고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사상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면서 이것에 대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곧 이것을 잊어버립니다. 저술가는 잊어버릴 수 있지만 노동자는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인사들을 활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무쏠리니 역시 한때는 "좋은 재목"이었습니다!  

1940년 8월 7일

코요아칸

[35. A Letter to Albert Goldman] 앨버트 골드먼 동지에게 보내는 편지  

동지,

드와이트 맥다널드가 편집하는 잡지 [당파 평론 ] 8월호에 실린 그의 글을 읽어 보았는지요.

이 사람은 속물 지식인 버넘의 제자였습니다. 버넘이 탈당한 후 그는 "과학"을 대표하는 유일한 사람으로 섁트먼의 당에 남았습니다.

파시즘과 관련하여 그는 우리의 노선을 서투르게 해적질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분석을 자기가 새로이 발견한 것처럼 위장하고 일부 뻔한 말들을 우리 것인 양 위장시켜놓고는 비판하고 있습니다. 그의 글 전체는 전망과 균형을 결여하고 있으며 기본적인 지적 정직성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버넘의 고아인 그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냉철하며 회의적인 눈으로 맑스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들을 다시 검토해야한다." 266쪽에 이 글이 나옵니다. 불쌍한 "노동자당"은 이 "검토 "기간 동안 무엇을 해야만 합니까? 물론 드와이트 맥다널드의 연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연구 결과는 버넘과 같이 탈당하는 것일 겁니다.

그 글의 마지막 4줄은 탈당을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모든 이론 , 정부, 사회체제 등에 대해 회의를 하고 대중의 혁명 투쟁에 헌신하는 등 회의와 헌신 모두를 가지고 앞으로 다가올 험난한 세월을 맞이해야 한다. 오직 이럴 경우에만 우리 자신을 지식인으로 내세울 수 있다."

이론적 회의에 기초한 혁명활동은 내적 모순의 가장 후진적인 형태입니다. 혁명투쟁의 법칙들을 이론적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대중의 혁명투쟁에 헌신 "할 수 없습니다. 혁명적 헌신은 이 헌신이 합리적이며 합당하다는 확신 즉 이 헌신이 혁명 목표에 조응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이러한 확신은 계급투쟁에 대한 이론적 통찰을 통해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모든 이론에 대한 회의"는 운동을 개인적으로 포기하기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습니다.

섁트먼은 이런 와중에도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총서기"로서 그는 너무 바빠서 쁘띠부르조아 속물들로부터 "맑스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들"을 방어할 수가 없습니다.  

1940년 8월 9일

레온 트로츠키

[36. A Letter to Chris Andrews] 크리스 앤드루즈 동지에게 보내는 편지  

크리스 동지,

당이 채택한 반(反) 평화주의 입장을 평가한 동지의 글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입장에는 두 가지 커다란 장점들이 있습니다. 첫째, 핵심내용이 혁명적이며 우리 시대의 성격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모든 문제들은 비평의 무기뿐만 아니라 총칼의 비평에 의해서 결정될 것입니다. 둘째, 동지의 글은 종파주의를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사건들과 대중들의 정서에 대비시켜 우리 노선의 신성함을 추상적으로 확인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불쌍한 "노동 행동"지 8월 12일자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강제 징집에 대한 루이스의 투쟁에 우리는 100%의 지지를 보낸다." 우리는 단 1%도 루이스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본주의 조국을 완전히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방어하고자 애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문지원병 제도는 군사적 관점에서 낡아빠졌을 뿐만 아니라 계급적 관점에서 보아도 대단히 위험합니다. 노동자 절대 다수는 이렇게 이해하고 느끼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강제징집을 찬성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 찬성은 "노동계급의 무장화"를 매우 혼란스럽고 모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종류의 종파주의자들은 이 거대한 역사적 변화를 전적으로 거부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강제징집이라고 ? 좋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가 이 제도를 시행할 것이다."라고 우리는 말합니다. 이것은 출발점으로서 아주 훌륭합니다.  

1940년 8월 17일

레온 트로츠키

 

In Defence of Marxism [written by Leon Trots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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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맑스주의에 대해 민족성개조 2018.04.12 90
84 역사 스페인 공산주의자들의 십계 민족성개조 2018.04.10 227
83 역사 스페인 내전의 시작 민족성개조 2018.04.10 79
82 역사 스페인내전 패배 원인 민족성개조 2018.04.10 86
81 역사 스페인 내전의 교훈 민족성개조 2018.04.10 172
80 역사 스페인 내전. 민족성개조 2018.04.10 78
79 역사 동양 식민지들의 독립. 민족성개조 2018.04.04 118
78 역사 은행과 경제에 대하여 민족성개조 2018.04.02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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