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민족성개조
1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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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공산주의자의 십계

 

■ 이 글은 1931년 4월 혁명(왕정 붕괴와 공화국 수립) 이후의 스페인혁명의 기본 원칙에 대해서 간단히 밝힌 것이다. 이 글의 내용은 스페인뿐만 아니라 비슷한 나라들에도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원칙들이다.

 

    1. 왕정은 권력을 잃었지만 되찾기를 바라고 있다. 유산계급은 여전히 확고하게 권력을 잡고 있다. 공화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블록은 사회주의혁명의 길에서 대중을 제지하기 위해 공화의적 격변에 기초해 있다. 말을 믿지 마라! 필요한 것은 실천이다! 우선, 구체제의 가장 저명한 지도자와 지지자를 체포하고, 왕정과 가장 평판이 나쁜 그 심복의 재산을 몰수하라! 노동자를 무장시키자!

    2. 공화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지지에 의지하고 있는 정부는 그 기반을 오른쪽으로, 즉 대자본가계급과 대지주 쪽으로 넓히려고 기를 쓸 것이고, 교회를 중립화하기 위해 투항조건을 찾으려 할 것이다. 이 정부는 피착취자로부터 착취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립된 착취자의 정부이다. 노동자계급은 자본가계급의 ‘사회주의적’ 공화주의 대리인의 정부에 비타협적으로 반대한다.

    3. 사회주의자의 정권참여는 노동자와 사회주의 지도자의 격렬한 충돌이 더욱 늘어날 것임을 의미한다. 이것은 혁명적 공동전선 정책에 커다란 가능성을 열어젖힌다. 모든 파업, 모든 시위, 노동자와 병사의 모든 접근, 나라의 진정한 민주화를 향한 대중의 모든 발걸음은 이제부터는 ‘질서’의 지지자 역할을 하는 사회주의 지도자의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따라서 공산주의 노동자가 사회주의, 조합주의, 무당파 노동자와 함께 공동전선에 참여하여 자신의 지도하에 이들을 끌고 가는 것이 그만큼 더 중요하다.

    4. 공산주의 노동자는 현재 스페인에서는 매우 작은 소수파에 지나지 않는다. 이들은 즉시 권력을 열망할 수 없다. 현 시점에서 이들은 공화주의-사회주의 정부의 폭력적 전복을 자신의 실천적 임무로 설정할 수 없다. 이러한 종류의 어떠한 시도도 파멸적 모험이 될 것이다. 노동자, 병사, 농민대중은 그만큼 더 철저하고 단호하게 이러한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공화주적-사회주의적 환상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 결과, 이들은 빈말에 속지 않고, 당면한 사실을 직시하고, 제2의 혁명인 노동자혁명을 단호히 준비할 수 있다.

    5. 현 시기에 공산주의자의 임무는 노동자의 다수파, 병사의 다수파, 농민의 다수파를 획득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를 수행할 것인가? 선동을 계속하고, 중핵을 훈련시키고, ‘끈기 있게 설명하고’(레닌의 표현을 쓰자면), 조직화를 통해 수행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대중의 경험과 이 경험에 공산주의자의 적극적인 참여 즉, 광범위하고 대담한 공동전선 정책에 근거해야 한다.

    6. 공산주의자는 공산주의적 선동과 비판의 자유를 직간접적으로 제한하거나 약화시키는 공화주의자-사회주의자 블록이나 그 일부와는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모든 곳의 공산주의자는 온갖 형태의 왕당파적 반(反)혁명에 대한 투쟁에서 최전선에 설 것이지만, 이 투쟁을 위해 공화주의자나 사회주의자와 동맹을 맺을 필요는 없다는 점을 끊임없이 인민대중에게 설명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의 정책은 필연적으로 반동 세력에 대한 양보에 바탕을 둘 것이고, 따라서 이 세력의 음모를 은폐하기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7. 공산주의자는 가장 급진적인 민주주의 구호를 내건다: 노동자 조직의 완전한 자유, 지방자치의 자유, 국민에 의한 모든 공무원의 선출, 18세 이상 남녀에 대한 선거권 허용 등과 노동자 의용군의 창설과 추후로 농민 의용군의 창설, 인민을 위해서, 특히 실업자와 빈농, 그리고 병사의 상태를 개선하기 위해서 왕정과 교회의 모든 재산 몰수, 국가와 교회의 완전분리.

    모든 시민권과 병사에 대한 정치적 특전, 군대에서 장교의 선출. 병사는 인민의 사형집행인이 아니며, 부자의 무장 용병도, 왕실의 근위병도 아닐 뿐더러 혁명적 시민이자, 노동자농민의 피를 나눈 형제이다.

    8. 노동자계급의 중심적 구호는 노동자소비에트(훈타, Juntas)이다. 이 구호는 쉼 없이 선전되고, 끊임없이 보급되어야 하며, 기회 있는 대로 그 실현에 착수해야 한다. 노동자 소비에트는 즉각적인 권력투쟁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장래의 전망이지만, 대중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만, 그리고 공산주의자의 계몽 활동의 도움으로 달성할 수 있는 전망이다. 오늘날, 노동자 소비에트는 노동자계급의 분산된 힘을 모으고, 노동자계급의 통일과 독자성을 위해서 투쟁하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 소비에트는 파업 수당, 실업자 원조, 노동자와의 유혈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병사와의 접촉, 노동자와 빈농의 동맹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도시와 농촌의 접촉이라는 문제를 과제로 삼는다. 노동자 소비에트는 군대의 대표도 포괄한다. 이런 식으로, 그리고 이런 식으로만 소비에트는 노동자봉기의 기관이 될 것이며, 추후로 권력기관이 될 것이 다.

    9. 공산주의자는 즉시 혁명적 농업강령을 작성해야 한다. 그 기초는 빈농과 병사를 위해서 왕정과 교회부터 시작하여 특권계급, 부유계급, 착취자의 토지몰수여야 한다. 이 강령은 각 지방의 상황에 따라 구체적으로 채택되어야 한다. 고유한 경제적 · 역사적 특수성에 따라서 각 지방에서는 그 지역의 혁명적 농민과 긴밀하게 협력하여 농업강령의 구체적 작성을 위한 위원회를 즉시 창설해야 한다. 우리는 강령을 명확하고 정확한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농민의 의지를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10. 이른바 사회당 좌파(이들 가운데에는 정직한 노동자가 많이 있다)는 블록을 만들고, 심지어 다양한 조직을 통일시키려고 공산주의자를 초청할 것이다. 이에 대해 공산주의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는 노동자계급을 위해서, 그리고 명확한 구체적 임무의 해결을 위해서, 어떤 그룹, 어떤 노동자조직과도 손잡고 활동할 준비가 되어 있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우리는 소비에트의 창설을 제안하는 것이다. 다른 정당에 속한 노동자 대표도 이 소비에트 안에서 모든 시기적 문제, 모든 당면한 임무를 토론할 것이다. 노동자 소비에트는 공통된 임무를 위한 동맹의 가장 자연스럽고, 가장 개방된, 가장 정직한, 가장 건전한 형태이다. 노동자 소비에트에서 우리 공산주의자는 우리의 구호와 우리의 해결책을 제의하고, 우리 방침의 올바름을 노동자에게 납득시키려고 노력할 것이다. 각 그룹은 노동자 소비에트에서 완전한 비판의 자유를 누려야 한다. 소비에트가 제기한 실천적 임무를 위한 투쟁에서 우리 공산주의자는 항상 최전선에 설 것이다.’ 이것이 공산주의자가 사회주의, 조합주의, 무당파 노동자에 대해 제의하는 협력의 형태이다.

    자기 대오의 통일을 보증함으로써 공산주의자는 노동자계급과 농민 의 압도적 다수(빈농)의 신뢰를 획득할 것이다. 무장한 이들은 권력을 장악할 것이고, 사회주의혁명의 시대를 열어젖힐 것이다.

L. 트로츠키

카디코이

1931년 4월 15일

 

 

공화주의 정부의 탄압조치

 

■ 이 글은 팸플릿 '스페인혁명과 이를 위협하는 위험'의 부록으로〈반대파회보〉에 게재 된 것으로, 트로츠키가 스페인 좌익반대파 앞으로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러시아의 1917년 2월 체제와 스페인의 현 공화주의체제 사이에는 많은 유사점이 눈에 띈다. 그러나 중대한 차이점도 있다 : (ㄱ) 스페인은 전쟁 중이지 않기 때문에 평화를 위한 투쟁 구호가 없다. (ㄴ) 스페인에는 병사 소비에트는 말할 것도 없고 아직 노동자 소비에트도 없다. 이 구호가 대중에게 제출되었는지를 신문을 통해서는 알 수조차 없다. (ㄷ) 스페인의 공화주의 정부는 처음부터 좌익 노동자들에 대해 탄압조치를 쓰고 있지만, 러시아의 2월 체제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무력은 자유주의 정부의 수중이 아니라 노동자 병사 소비에트가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마지막 사정은 우리의 선동에서 거대한 의의가 있었다. 러시아의 2월 체제는 정치 분야에서 즉시 충분하고 거의 완전한 형태의 민주주의를 실현했다. 자본가계급은 노동자와 병사대중의 호의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스페인의 자본가계급은 대중의 호의뿐만 아니라 구체제로부터 넘겨받은 조직적 폭력 때문에도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다. 스페인에는 집회⦁언론⦁출판 등의 완전하고 무조건적인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새로운 지방자치체 선거 원칙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한편, 혁명적 시기에 대중은 권리상의 모든 불평등, 모든 형태의 치안통치에 특히 예민하다. 이것을 이용해야 한다. 바꿔 말하면, 공산주의자는 이제야말로 자신이 가장 일관되게, 가장 단호하게, 가장 비타협적으로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정당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 소비에트 결성에 즉시 착수해야 한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이를 위한 더할 나위없는 출발점이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지방자치 정부가 있다. 우리 노동자에게는 우리의 권리와 이해를 지키기 위한 우리만의 도시 훈타가 필요하다.

1931년 4월 20일

 

 

카탈로니아연합

 

■ 이 글은 팸플릿 '스페인혁명과 이를 위협하는 위험'의 부록으로〈반대파회보〉에 게재 된 것으로, 트로츠키가 스페인 좌익반대파 앞으로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카탈로니아연합[카탈로니아연합 : 부하린의 우익반대파를 지지하여 1929년 스페인공산당에서 추방되어 결성된 카탈로니아 지역 중심의 조직. 지도자는 호아킨 마우린. 이 조직은 1935년,안드레스 닌이 지도하는 스페인 좌익반대파와 통합하여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POUM)을 결성했다.] 은 전체 스페인 공산주의 조직의 일원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카탈로니아는 전위이다. 그러나 이 전위가 스페인의 모든 노동자계급, 그 이후에 농민과 발맞추지 않을 것이라면, 카탈로니아의 운동은 기껏해야 빠리꼬뮌 식의 장엄한 에피소드로 끝나게 될 것이다. 카탈로니아 고유의 입장이 이러한 방향으로 몰고 있다. 카탈로니아의 폭발이 스페인의 전체 정세가 제2 혁명이 성숙되기 훨씬 전에 일어난다면, 민족분쟁이 격화될지도 모른다.

민족적 소요의 영향을 받아 카탈로니아의 노동자계급이 스페인의 모든 노동자계급과 결합할 기회를 갖기도 전에 결정적 투쟁에 말려들게 된다면, 그것은 가장 커다란 역사적 불행이 될 것이다. 마드리드뿐만 아니라 바르셀로나 좌익반대파의 장점은 이런 모든 문제를 역사적 수준에서 제기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는 사실에 있다. …

1931년 4월 23 일

 

 

카탈로니아 민족주의의 진보성

 

■ 이 글은 팸플릿 '스페인혁명과 이를 위협하는 위험'의 부록으로 (반대파회보〉에 게재 된 것으로, 트로츠키가 스페인 좌익반대파 앞으로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카탈로니아연합의 이른바 '민족주의'에 대하여, 이것은 매우 중요하고 심각한 문제이다. 이 점에서 오류를 범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부를지도 모른다.

스페인혁명은 민족문제를 포함한 모든 문제를 새로운 기세로 제기했다. 민족적 경향이나 환상의 주요 보균자는 소부르주아 지식인이다. 이 들은 대자본의 탈(脫)민족적 역할과 국가 관료집단의 중앙집중화에 대항하여 농민 사이에서 지지를 얻으려고 한다. 모든 혁명적 민주주의운동 일반에서와 마찬가지로, 현 단계에서 민족해방운동의 지도적 역할을 맡고 있는 소부르주아 계급은 필연적으로 이 운동에 다양한 종류의 수많은 편견을 끌어들인다. 이러한 원천에서 나온 민족적 환상도 노동자들 사이에서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이것이 아마 일반적이고 전체적인 카탈로니아와 카탈로니아연합의 현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이상의 것들이 스페인의 대국수주의, 부르주아 제국주의, 관료적 중앙집중주의에 반대하는 카탈로니아 민족투쟁의 진보적, 혁명적 민주주의적 성격을 결코 손상시키지는 않는다.

스페인 전체, 특히 카탈로니아가 현재, 카탈로니아의 민족민주주의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부르주아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을 단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부르주아 제국주의자들은 대지주, 구체제의 관료, 장군들과 동맹을 체결하고, 스페인의 국가사회주의자들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 동업자들은 전부 한편으로 식민지의 계속적인 예속과, 다른 한편으로 스페인 본국의 최대한의 관료적 중앙집중화 즉, 스페인 자본가계급의 카탈로니아인, 바스크인, 그 밖의 민족에 대한 억압을 지지하고 있다. 계급세력의 현재적 조합과 운동발전의 현 단계에서 카탈로니아의 민족주의는 진보적, 혁명적 요인이다. 스페인의 민족주의는 반동적, 제국주의적 요인이다. 이런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무시하며, 전면에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 의의를 은폐하는 공산주의자는 스페인 자본가계급의 무의식적인 하수인이 되어, 노동자혁명의 대의를 잃어버리게 될 위험이 있다.

소부르주아적인 민족적 환상의 위험은 무엇인가? 바로 스페인 노동자계급을 민족이라는 경계를 따라 분할시킬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이것은 매우 중대한 위험이다. 그러나 스페인 공산주의자는 단 한 가지 방식 즉, 지배민족 자본가계급에 의한 폭력을 가차 없이 폭로함으로써 피억압민족 노동자계급의 신뢰를 획득하는 방식으로만 이 위험에 맞서 성공적으로 싸울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정책은 모두 피억압민족 소부르주아계급의 혁명적 민주주의적 민족주의에 대항하여 지배민족의 제국주의적 자본가계급의 반동적 민족주의를 지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1931년 5월 17일

 

 

체계적인 서술이 필요하다

 

■ 이 글은 팸플릿 '스페인혁명과 이를 위협하는 위험'의 부록으로〈반대파회보〉에 게재 된 것으로, 트로츠키가 스페인 좌익반대파 앞으로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동지의 편지에 따르면, 〈위마니떼〉(L′Humanité, 인류 : 프랑스공산당 기관지)의 거짓말이 카탈로니아에서 분노를 야기하고 있다.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분노만으로는 부족하다. 좌익반대파 기관지는 스페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체계적으로 서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사태는 거대한 의의가 있다. 국제공산주의의 중핵은 스페인혁명 이라는 산 경험에 입각하여 재교육될 것이다. 규칙적이어야 하는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편지는 단순한 편지가 아니라 더 정확하게는 일급의 중요성을 가지는 정치적 문서이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스탈린주의자는 카탈로니아연합이 고립감이나 적개심 같은 분위기에 휩싸이도록 만들 수 있다. 이런 분위기만으로도 카탈로니아의 선진 노동자들을 모험과 파국의 길로 내몰지도 모른다.

 

1931년 5월 20일

 

 

스페인혁명과 이를 위협하는 위험

 

■ 이 글은 1931 년 4월, 공화주의혁명이 실현됨에 따라 스페인 공산주의자의 기본 방침을 명확히 한 강령적 논문이다.

1929년 세계공황의 영향으로 금융위기에 빠진 프리모 데 리베라 정권은 다음 해 일순간에 붕괴하고 알폰소 13세에 의해 임명된 베렌게르 장군의 반伴)군사독재 정권이 출범했다. 그러나 이 정권은 프리모 데 리베라 정권의 붕괴로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한 반(反)체제 정당들이나 노동운동의 압력에 노출되었다. 1930년 12월, 공화주의 장교가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곧 진압되었다. 그러나 이 쿠데타 진압 직후 전국에서 전개된 대규모 대중운동은 정권의 안정을 위협했으며, 알폰소 국왕은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정부와 선거를 약속하며 베렌게르를 해임, 임시 문민정부가 출범했다.

국회선거에서 우익 정당의 다수파 획득을 장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알폰소는 4월 12일 지방자치체 선거 실시로 적당히 얼버무렸다. 이 선거에서 주요 대도시는 사회당과 공화주의 정당들을 지지했지만, 지방에서는 카시케제도 덕분에 왕당파 우익 정당이 다수를 차지하며 전체적으로는 과반수를 넘게 득표했다. 그러나 마드리드의 대규모 군중이 왕정 반대를 주창했기 때문에 알폰소는 어쩔 수 없이 퇴위를 선언했다. 4월 14일에 공화정이 선포되고 신정부가 수립되었다. 이것이 4월 혁명이다. 수상에는 사모라, 그 밖의 중요한 직책을 부르주아 중간파 정당(진보당, 급진당) 출신들이 차지했다. 이 내각에 좌익 공화주의 마누엘 아사냐, 사회당의 라르고 카바예로도 입각했다.

트로츠키는 이러한 정세 전개에 근거하여 이 정권이 민주주의혁명의 과제를 달성할 수 없으며, 따라서 공산주의자가 민주주의 구호를 내걸고 싸우는 것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특히 국회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공산당이 적극적으로 국회선거에 참여하여 국회를 혁명 발전의 수단으로 삼을 것을 호소했다. 또 트로츠키는 혁명의 템포 문제에 대해서 상당한 양을 할애하고 있다. 트로츠키는 스페인혁명의 발전 템포가 러시아혁명보다 훨씬 완만하다는 것, 따라서 지금은 소수파인 공산당도 올바른 정책만 있으면 결전을 치르기에 충분한 조직적⦁정치적 준비를 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스페인 사태에 직면한 코민테른 지도부

스페인혁명은 성장하고 있다. 투쟁의 과정에서 그 내적인 힘도 커지 고 있다. 그러나 이와 함께 위험도 커지고 있다. 지배계급과 그 정치적 종복인 공화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유래하는 위험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점에서 공공연한 적들과 이들에 대한 임무의 문제는 아주 명백하다. 그러나 내적 인 위험도 존재한다.

스페인 노동자는 10월 혁명으로 탄생한 소비에트 연방을 확신을 가지고 바라본다. 이런 분위기는 공산주의를 위한 귀중한 자본이다. 소비에트 연방의 방어는 모든 혁명적 노동자의 의무이다. 그러나 10월혁명에 대한 노동자의 신뢰가 10월 혁명의 교훈과 유산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정책을 이들에게 강요하기 위해 악용되는 것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분명히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페인과 전 세계의 노동자계급 전위가 들을 수 있도록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현재의 코민테른 지도부는 직접적인 위험으로 스페인의 노동자혁명을 위협한다. 어떠한 혁명도, 심지어 가장 전도유망한 혁명조차도 붕괴될 수 있다 : 이것은 1923년 독일혁명의 경험, 더 한층 뚜렷하게는 1925-27년 중국혁명의 경험에 의해서도 입증되었다. 이 두 경우, 혁명 붕괴의 직접적 원인은 잘못된 지도부에 있었다. 스페인이 다음 차례 이다. 코민테른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오류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과거의 오류를 은폐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더 심하게 그것들을 옹호하고, 화려하게 꾸미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에게 좌우된다면, 스페인혁명은 중국혁명과 같은 운명을 걷게 될 것이다.

2년 동안, 선진 노동자는 코민테른을 약화시키고 혼란에 빠뜨린 비참한 '제3기' 이론에 홀려왔다. 결국 코민테른 지도부는 퇴각을 알렸다. 그러나 언제? 세계적 위기가 정세의 급격한 전환을 일으키고, 혁명적 공세를 위한 첫 전제조건을 만들어낸 바로 그때이다. 그 사이에 스페인의 내적 발전은 코민테른의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일어났다. 마누일스키는 계속해서一그리고 마누일스키는 지금도 코민테른의 지도자로 행동한다!一스페인 사태는 대체로 주목할 가치가 없다고 선언했다.

(1931년) 4월 혁명 이전에 작성된 스페인혁명에 대한 초고[<반대파 회보> 제19호에 게재된 논문 「스페인혁명」을 말한다.]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취지를 밝혔다. 즉, 다양한 색조의 공화주의와 협력하고 있는 자본가계급은 전력을 다해,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왕정과의 동맹을 지키려고 할 것이다. '물론 유산계급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예를 들어, 독일!) 왕정을 희생시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의 조합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이런 방침은 스탈린주의자에게 一 물론 사태 이후에 一 부정확한 예측에 대해 말할 구실을 제공했다.[저자 : 이 일에서 미국의 스탈린주의자들은 다른 모든 이들을 능가한다. 이 일을 위해 고용된 방자한 관료들의 천박함과 어리석함이야말로 헤라클레스의 두 기둥 같은 느낌 이 든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예측하지 못하는 인간이 타인에게 마르크스주의적 예측이 아니라 사건이 일어날 일시와 형태에 대한 점술적(theosophic) 예측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무지하고. 미신에 사로잡힌 환자가 의학적 기적을 요구하는 것과 같다. 마르크스주의적 예측의 임무는 발전의 일반적 방향성에 맞게 생각을 바꾸고, '뜻밖의 일'에 대해 사전에 준비하도록 돕는 것이다.

스페인 자본가계급이 왕정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은 같은 정도로 두 가지 중요한 이유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 대중적 분노의 격렬한 분출은 자본가계급으로 하여금 대체로 국민의 빈축을 산 알폰소를 희생양으로 삼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자본가계급이 중대한 위험을 수반하는 이러한 책략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오직 대중이 공화주의자와 사회주의자를 신뢰했기 때문에, 그리고 4월 혁명 중에는 공산주의자의 위험을 무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페인에서 일어난 역사적 변형은 한편으로 대중적 압력의 기세와, 다른 한편으로 코민테른의 허약성에 따른 결과이다. 우선, 이런 사실을 시인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더 강해지고 싶다면, 자신의 힘에 대한 과대평가로부터 시작해서는 안 된다一이것이 전술의 기본적 규칙이다. 그러나 이 규칙 이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에게는 없다.

사태 직전에 마누일스키는 대체로 중대한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었다. 그런데 혁명 다음날에 라틴계 국가들에 대한잘못 된 정보의 제공자로 비길 데 없는페리[가브리엘 페리(Gabriel Peri, 1902-1941) : 프랑스공산당 기관지〈위마니떼〉의 해외 편집부원. 그는 스페인 사태를 보도하는 글을 기고했지만, 그 내용이 거짓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스페인 독자들의 반감을 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나찌에 총살되었다.]는 스페인 노동자계급이 거의 만장일치로 공산당을 지지하고 있으며, 스페인 농민이 소비에트를 창설하고 있다는 전보를 잇달아 모스크바에 보내기 시작했다.〈프라우다〉지는 '트로츠키주의자'가 사모라 정부의 추종자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보태면서 이런 허튼소리를 게재했다. 동시에 사모라 정부가 좌익반대파를 투옥했으며, 지금도 계속 투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마침내, 5월 14일에 〈프라우다〉지는 '불타오르는 스페인'(Spain in Flames)이라는 강령적 사설을 게재했다. 이 사설은 스페인혁명의 말로 번역된 스탈린주의자의 두서없음과 오류의 정수(精髓)이다.

 

국회 (코르테스)를 어떻게 할 것인가

〈프라우다〉지는 추상적인 선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반박할 수 없는 진리를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으려고 한다: '공산당은 대중에게 지금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에 대해서 〈프라우다〉지 자신이 제안하는 것은 무엇인가? '반동세력의 무장해제, 노동자계급의 무장, 공장위원회의 선거, 7시간 노동제의 실현 등을 위해서' 노동자를 조직하는 것. '등'―이것이 정말 말하려는 것이다. 위에 열거 된 구호는 어떠한 내적인 통일성도 나타나지 않고, 대중의 발전이라는 필연성에서 나오는 당연한 결론이 없더라도 논의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이없는 것은 〈프라우다〉지의 사설이 국회 선거를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이 정치적 사건이 스페인 국민의 생활에 존재 하지도 않는 것처럼, 또는 노동자가 그것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처럼 말이다. 이 침묵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외면적 양상을 볼 때, 공화혁명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지방자치체 선거를 매개로 일어났다. 물론 이 공화혁명에는 좀 더 깊은 원인이 깔려있으며, 우리는 이것과 관련하여 훨씬 전에 베렌게르 내각의 붕괴에 대해 말했다. 그러나 '의회주의적' 방식에 의한 왕정 타도는 오로지 부르주아 공화주의자와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자의 이익이 되었다. 스페인의 매우 많은 노동자는 이제 사회생활의 기본적 문제가 투표로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런 환상은 경험을 통해서만 일소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경험을 도울 방법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도울 것인가? 국회를 무시하는 것을 통해서인가, 아니면 거꾸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서 인가? 이 물음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위에서 언급한 사설 외에도 〈프라우다〉지는 스페인혁명의 내재적 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과 그 전략의 볼셰비키적 결정을 주장하는 '이론적' 기사를 싣고 있다(〈프라우다〉 5월 7일자와 10일자). 이 기사도 국회에 대해서, 선거를 보이콧할 것인가 참여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 한마디 하지 않는다.〈프라우다〉지는 이 혁명을 민주주의혁명이라고 부르지만, 대체로 정치적 민주주의의 구호와 과제에 대해서는 일절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이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들은 선거에 참여할 수도 있고, 보이콧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무시할 수는 없다.

베렌게르의 국회에 대한 보이콧 전술은 전적으로 옳았다. 알폰소가 일정 기간 동안 다시 군사독재적 방법에 의지하는데 성공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운동이 베렌게르를 그의 국회와 함께 전복시킬 것인지는 사전에 분명했다. 이러한 상황 아래에서 공산주의자는 국회 보이콧 투쟁의 주도권을 잡아야 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마음대로 쓸 수 있던 얼마 안 되는 수저자 주: 좌익반대파는 일간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일간지 기사의 내용을 이루는 생각을 우리는 개인적 편지에서 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부록으로 우리는 편년체로 이러한 편지-기사를 발췌해 싣는다. 단에 의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저자 주: 좌익반대파는 일간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일간지 기사의 내용을 이루는 생각을 우리는 개인적 편지에서 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책의 부록으로 우리는 편년체로 이러한 편지-기사를 발췌해 싣는다.] 스페인 공산주의자가 보이콧을 단호하게, 그리고 제때에 표명했다면, 심지어 이에 관한 간결한 전단을 돌리기만 했더라도, 베렌게르 정부가 전복 되었을 때 공산주의자의 권위는 훨씬 더 커졌을 것이다. 선진 노동자는 '이 사람들은 사태를 예견하는 능력이 있다'고 혼잣말했을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코민테른 지도부에 따돌림 당한 스페인 공산주의자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선거에 참여할 준비를 했다. 게다가 어떠한 확신도 없었다. 사태는 공산주의자의 생각을 뛰어 넘었으며, 따라서 혁명의 첫 승리는 공산주의자의 영향력 증대를 거의 가져오지 않았다.

이제는 사모라 정부가 제헌의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이 의회의 소집이 제2 혁명에 의해 방해받을 것이라고 생각할 근거가 있는가? 조금의 근거도 없다. 대중의 강력한 운동은 얼P}든지 가능하지만 강령도 당도 지도부도 없는 이 운동은 제2 혁명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지금 보이콧을 요구하는 것은 자기고립을 재촉하는 것이다. 지금은 가장 적극적으로 선거에 참가해야 한다.

 

개량주의자의 의회주의적 백치 병과 무정부주의자의 반(反)의회주의적 백치병

의회주의적 백치병은 역겨운 병이지만, 반(反)의회주의적 백치병도 더 나을 것은 없다. 이것은 스페인의 무정부적 조합주의의 운명에서 가장 뚜렷하게 확인된다. 혁명은 곧바로 정치적 문제를 제기하고, 현 단계에서 이것들에 의회주의적 형태를 부여한다. 노동자계급의 주의력이 국회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면, 무정부적 조합주의자도 남몰래 사회주의자나 어쩌면 공화주의자에 투표할 것이다.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스페인에서는 무정부주의자의 반(反)의회주의적 형이상학과 동시에 투쟁하지 않고 의회주의적 환상과 투쟁할 수 없다.

우리는 일련의 기사나 편지에서 스페인혁명의 향후 발전에서 민주주의 요구가 얼마나 거대한 의의를 가지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실업자 구제, 1일 7시간 노동, 토지개혁, 민족자치一중대하고, 기본적인 이런 문제는 모두一무정부적 조합주의자를 포함해서一대다수 스페인 노동자의 의식 속에서 어떤 식으로든 장래의 국회와 결합되어 있다. 베렌게르 시대에는 혁명적 제헌의회를 위해 알폰소가 동의한 국회를 보이콧해야 했다. 처음부터 선거권 문제는 선동에서 제일 먼저 제기되어야 했다. 그렇다, 선거권이라는 평범한 문제가 말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소비에트 민주주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보다 훨씬 더 수준이 높다. 그러나 소비에트는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소비에트 수립을 임무로 삼아야 한다.

예를 들면, 18세 이상 모든 남녀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 구호를 거들떠보지도 않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있다. 그러나 만약 스페인 공산주의자가 이 구호를 제때에 제기하고, 연설, 기사, 팸플릿, 전단 등에서 이를 옹호했다면, 거대한 명성을 얻었을 것이다. 바로 스페인 인민이 국회의 창조적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고, 자각한 노동자나 혁명적 농민이 모두 선거 참여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순간도 대중의 환상을 공유하지 않고, 이 환상 안에 있는 진보적인 것은 모두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혁명가가 아니라 한심한 현학자 일 것이다. 그런데 선거 연령을 낮추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남녀 노동자, 농민 모두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느 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젊고 능동적인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제2 혁명을 일으킬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 젊은 세대를 나이든 노동자에게 의지하려는 사회주의자에 대립시키는 것은 공산주의 전위의 거의 초보적이고 논의의 여지가 없는 임무이다.

게다가 사모라 정부는 국회 에서 양원제를 규정한 헌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아주 막연하게 평등과 정의를 추구하고 있더라도 왕정을 이제 막 전복하고, 열정으로 충만한 혁명적 대중은 인민의 등에 '상원'을 슬그머니 앉히려는 자본가계급의 계획에 반대하는 공산주의자의 선동에 열렬히 호응할 것이다. 이런 대단찮은 문제도 선동에서 거대한 역할을 하고, 사회주의자들에게 막대한 어려움을 주고, 사회주의자와 공화주의자 사이를 이간시키고, 즉 노동자계급의 적을 한동안이라도 분열시키고一이것이 천배는 더 중요한 일이다一노동자대중과 사회주의자 사이를 이간시킬 수 있는 것이다.

〈프라우다〉지가 제기한 1일 7시간 노동 요구는 완전히 올바르고, 대단히 중요하며, 시의적절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상황이나 민주주의혁명의 과제를 무시하면서 이 요구를 적나라하게 제기할 수 있는가? 〈프라우다〉지는 단지 1일 7시간 노동, 공장위원회, 노동자의 무장이라는 말만을 통해, '정치' 무시를 통해, 그리고 모든 기사에서 국회 선거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것을 통해 무정부적 조합주의에 전면적으로 동의하고, 이들을 육성하며, 그 실수를 감싸주고 있다. 한편, 사회주의자와 공화주의자에 의해 선거권을 빼앗긴 청년 노동자一부르주아 입법이 자본주의적 착취를 위해서 이들을 충분히 발전시키고, 하원을 짐 지우려고 하는一는 내일, 이러한 기만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무정부주의에 등을 돌리고 소총을 집으려고 할 것이다. 대중의 핵심을 끌어당기는 현실의 정치적 과정에 대해 노동자의 무장이라는 구호를 대치시키는 것은 스스로를 대중으로부터 고립시키고, 따라서 대중을 무기와 분리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민족자결이라는 구호는 현재 스페인에서 예외적인 중요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 구호도 민주주의 단계에 나타난다. 물론 우리는 카탈로니아인이나 바스크인에게 스페인으로부터 분리할 것을 요구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그들 스스로가 원한다면 그럴 수 있다는 권리를 주장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고 있는지 어떤지는 어떻게 정해져야 하는가? 매우 간단하다. 해당 지역의 평등·직접·비밀·보통선거를 통해서 정하면 된다. 현재 그 이외의 방법은 없다. 앞으로 다른 모든 문제뿐만 아니라 민족문제도 노동계급독재 기관인 소비에트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순간에 노동자에게 소비에트를 강요할 수 없다. 우리는 오직 노동자를 소비에트로 이끌 수 있을 뿐이다. 하물며, 노동자계급이 미래에나 창설할 소비에트를 인민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그동안에 현재의 문제에 답해야 한다. 5월, 카탈로니아의 지방자치 기관은 주(州)임시헌법을 준비하기 위한 대표 선출을 요청 받았다. 이 임시헌법은 카탈로니아와 스페인 전체의 관계를 정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느 때처럼 대자본에 예속되어 있는 소부르주아 민주주의가 비(非)민주적 선거로 카탈로니아 인민의 운명을 결정하려고 하는데 카탈로니아의 노동자가 무관심할 수 있는가? 민족자결 구호는 이것을 보완 하고 구체화하는 정치적 민주주의 구호 없이는 무의미한 정식에 불과하다. 아니 더 나쁘게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기만이다.

 

일정 기간 동안 스페인혁명의 모든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의회주의라는 프리즘을 통해 굴절될 것이다. 농민은 애를 끓이며 농업문제에 대해 국회가 뭐라 할 것인지를 기다릴 것이다. 현재의 상황에서 공산주의자의 농업강령이 국회 토론장에서 발표되는 것이 의의 있는 일임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농업강령을 갖는 것과 국회 토론장에 접근할 수 있는 두 가지 조건을 필요로 한다. 국회가 토지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알고 있다. 토지문제는 농민대중 스스로의 전투적 주도권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대중이 이러한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강령과 지도부가 필요하다. 공산주의자는 대중과 관계를 맺는 하나의 고리로 국회 토론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관계에서 발전할 행동은 국회를 보이지도 않게 할 것이다. 바로 여기에 의회에 대한 혁명적-변증법적 관계의 진수가 있다.

그런데도 이 문제에 대해 코민테른 지도부가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는가? 그 이유는 단지 지도부가 자기 과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스탈린주의자는 중국의 제헌의회 구호를 너무 소란스럽게 배격했다. 코민테른 제6차 대회는 식민지 국가들의 정치적 민주주의 구호를 '기회주의'라고 공식 비난했다. 중국이나 인도보다 훨씬 더 선진국인 스페인의 사례는 제6차 대회 결정의 모든 모순을 폭로한다. 그러나 스탈린주의자는 손발이 묶여 있다. 의회주의에 대한 보이콧을 감히 촉구하지도 못하는 이들은 그저 말없이 이를 무시할 뿐이다. 혁명은 죽게 두더라도 지도자의 무오류성에 대한 평판만은 영원히 합시다![저자주 : 이탈리아의 '프로메테오' 그룹(보르디가주의자들, Prometeo)은 대체로 모든 나라, 모든 인민을 위한 혁명적 민주주의 구호를 거부한다. 사실상 스탈린주의자의 입장과 일치'하는 이 종파적 교조주의는 볼셰비키-레닌주의자의 입장과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국제좌익반대파는 이러한 초좌익적 소아병에 대한 책임을 털끝만큼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스페인의 최근 경험은 이탈리아에서 정치적 민주주의 구호가 파시스트 독재체제의 붕괴 과정에서 틀림없이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 이라는 점을 정확히 중명하고 있다. '프로메테오' 그룹의 강령을 가지고 이탈리아나 스페인혁명에 참가하는 것은 양손을 뒤로 묶고 물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헤엄치는 사람은 늘 익사할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스페인의 전도에는 어떤 혁명이 놓여 있는가?

특히 머리를 혼란시키기 위해서 쓴 것 같은, 위에서 인용한 이론적 기사에서 〈프라우다〉지는

스페인혁명의 계급적 성격을 규정하려고 시도한 다음, 정말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고려한다면(!), 현 단계에서 스페인혁명을 사회주의혁명으로 규정하려는 것은 잘못이다'(〈프라우다〉1931년 5월 10일자). 이 문장이 유일하게 분석을 개괄하고 있다. 정신병원에 갇힐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서 스페인혁명이 '현 단계에서' 사회주의혁명으로 규정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할 사람이 이 세상에 있는지 독자가 자문해봐야 하는가? 그렇다면 〈프라우다〉지는 어떤 점에서 이런 '구분'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는가? 게다가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고려한다면, … 잘못이다"라는 너그럽고 조심스런 형태로 이해하게 되었는가?

이것은 불행하게도 스탈린주의자들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의 사회주의혁명으로의 '성장 전화'라는 레닌의 말을 읽어 알고 있다는 사실로 설명된다. 레닌을 이해하지 않고, 러시아혁명의 경험을 잊거나 왜곡하고 있는 이들은 이 '성장 전화'라는 개념을 가장 철저한 기회주의적 미로의 근거로 삼는다. 이것은一솔직하게 말하자一아카데믹한 세밀한 구분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혁명의 생사가 걸린 문제이다.

아주 최근에서야 스탈린주의자들은 국민당의 독재가 노동자 농민의 독재로 '성장 전화'하고, 이것이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 독재로 성장 전화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와 관련하여 이들은 一특히 스탈린은 이 주제를 깊이 있게 전개했다一혁명의 한 측면에서는 '우익분자'가 점차 분리되고 동시에, 다른 측면에서는 '좌익분자'가 더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 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성장 전화'의 유기적 과정을 이룬다고 생각했다. 유감스럽게도 스탈린-마르티노프의 비할 데 없는 이론은 마르크스의 계급이론과 완전히 정반대다.

사회체제의 성격, 따라서 모든 혁명의 성격도 권력을 수중에 쥐고 있는 계급의 성격에 의해 좌우된다. 어느 계급으로부터 다른 계급으로의 권력의 이동은 혁명적 전복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지, 결코 유기적인 '성장 전화'를 통해 일어나지 않는다. 이 기본적 진리는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처음에는 중국에서, 지금은 스페인에서 유린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베레모로 자신의 머리를 가린 〈프라우다〉지의 박학다식한 천재들이 사모라의 혀 밑에 체온계를 두고 논쟁하는 모습을 본다: '성장 전화'의 과정이 스페인혁명을 벌써 사회주의 단계로 이행시켰다고 인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 그리고 이 현자들은一이들의 지혜를 공평하게 평가하자一결론에 이른다: 아니다, 아직까지는 인정할 수 없다.

〈프라우다〉지는 이런 귀중한 사회학적 개론을 제시하고 나서, 예측과 지도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스페인에서 사회주의혁명은 오늘의 당면한 임무가 될 수 없다. 가장 당면한 임무(!)는 지주와 자본가계급에 반대하는 노동자 농민혁명이다'(〈프라우다〉5월 10일자). 사회주의혁명이 스페인에서 '오늘의 당면한 임무'가 아니라는 것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에 의한 권력 장악을 목적으로 하는 무장봉기는 스페인에서 '오늘의 당면한 임무'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 훨씬 더 낫고, 더 정확할 것이다. 왜 그런가? 바로 계급이 아직 분산된 노동자계급 전위를 뒤 따르지 않고 있으며, 농촌의 피억압 대중이 아직 계급을 뒤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권력 획득을 위한 투쟁은 모험주의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에서 '가장 당면한 임무는 지주와 자본가계급에 반대하는 노동자 농민혁명이다‘라는 보완적 문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즉, 현재의 부르주아 공화주의 체제와 노동계급독재 사이에 '노동자 농민혁명'이라는 독특한 중간적 혁명이 불쑥 우리 앞에 나타난다는 것인가? 게다가 사회주의혁명과 구별되는 이 독특한 중간적 '노동자 농민혁명'이 스페인에서 '당면한 임무'라는 것인가? 새로운 전복을 오늘의 의제로 잡아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무장봉기에 의해서인가, 아니면 다른 수단에 의해서인가? '지주와 자본가계급에 반대하는' 노동자 농민혁명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노동자혁명과 구별되는가? 계급 세력의 어떠한 조합이 그 토대를 이룰 것인가? 제2 혁명과 대조를 이루어 제1 혁명을 어느 당이 지도할 것인가? 이 두 혁명의 강령과 방법은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가?

이러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는 것은 헛수고일 것이다. '성장 전화'라는 말로 사상의 흐릿함과 혼란이 은폐되어 있다. 모든 모순을 은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들은 부르주아혁명이 일련의 유기적 단계를 통해서 사회주의혁명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꿈꾼다. 그리고 이 단계는 국민당, '민주주의독재', '노동자농민혁명', '인민혁명' 등 여러 가지 익명으로 위장되어 있다. 게다가 이 과정 중에서 결정적인 계기, 즉 어느 계급이 다른 계급으로부터 권력을 빼앗는다는 계기가 어느 사이에 사라져버린다.

 

연속혁명의 문제

물론 노동자혁명은 동시에 농민혁명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대의 조건에서 노동자혁명 없는 농민혁명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10 월혁명 이후 러시아의 노동자 독재정부를 '노동자 농민정부'라고 부른 것처럼, 우리의 목적이 노동자 농민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농민에게 말하는 것은 완전히 올바르다. 그러나 우리는 노동자 농민혁명을 노동자혁명 에 대치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양자를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를 제기하는 유일하게 올바른 방식 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른바 '연속혁명'이라는 문제의 핵심을 다루게 된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이 이론에 대한 투쟁에서 계급적 관점과 완전 결별하기에 이르렀다. 중국의 '4계급 블록'을 경험하고 나서 이들이 좀 더 신중해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이들의 혼란은 더 심해졌을 뿐이며, 지금은 전력을 다해 다른 사람을 혼란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현실의 제반사태가'지금 옛 문헌에 대한 철학적 설명을 전문으로 하는 '적색 교수들'의 영역에서 문제를 들어 내리고 있다. 더 이상 역사적 회상이나 인용문을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새로운, 장대한 역사적 경험의 문제이다. 여기에서는 두 가지 입장이 혁명투쟁의 전장에서 맞부딪치고 있다. 현실의 사태가 최종 결정할 것이다. 이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스페인 공산주의자는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투쟁과 결합된 문제의 본질을 제때에 고찰하지 않으면, 이론적으로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스페인혁명의 기본적 문제들에 맞서게 될 것이다.

 

혁명의 '성장 전화'란 무엇인가?

분명히 레닌은 1905년에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독재'라는 가설적 정식을 제기했다. 이제까지 노동자계급에 의한 권력 장악 이전에 독자적인 민주주의적 농업혁명을 기대할 수도 있는 나라가 있었다면, 그 나라는 바로 러시아였다. 이 나라에서는 농업문제가 국민의 전체 생활을 지배했으며, 농민의 혁명적 운동이 몇 십 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위대한 전통과 대중에 대한 폭넓은 영향력을 가진 독자적인 혁명적 농민정당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러시아에서조차 부르주아혁명과 노동자혁명 사이에 중간적 혁명이 일어날 여지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었다. 1917년 4월, 레닌은 여전히 1905년의 낡은 볼셰비키 정식에 매달려 있던 스탈린, 카메네프 등을 향해 여러 차례 이렇게 반복했다 : 밀류코프-체레텔리-체르노프

의 독재 외에 '민주주의독재'는 존재하지도 않고, 존재할 수도 없다. 민주주의독재는 본질적으로 노동자계급에 대한 자본가계급의 독재이다. 이러한 '민주주의독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자계급의 독재뿐 이다. 중간적, 중용적 정식을 꾸며내는 사람은 모두 가엾은 환상가이거나 허풍선이다. 이것이 2월 혁명과 10월 혁명의 생생한 경험으로부터 레닌이 도출한 결론이다. 우리는 이런 경험과 결론에 전적으로 근거해 있다.

그렇지만 이런 조건에서 레닌의 민주주의 혁명의 사회주의혁명으로의 '성장 전화'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스탈린주의자나 적색 교수 같은 수다쟁이들이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실제로 노동계급독재는 사회주의혁명의 개념과 결코 기계적으로 일치하지 않는다. 노동자계급에 의한 권력 장악은 일정한 국가적 환경 속에서, 일정한 시기에, 그리고 일정한 임무를 해결하기 위해서 일어난다. 후진국에서 이러한 당면한 임무는 민주주의적 성격을 갖는다. 즉, 중국에서처럼, 제국주의적 예속으로부터의 민족해방과 토지혁명, 또는 러시아에서처럼, 토지혁명과 피억압 민족들의 해방이다. 조합은 다르지만 현재의 스페인도 같은 사정임을 알 수 있다. 레닌은 실제로 러시아의 노동자계급은 1917년 10월에 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의 집행자로서 정권을 잡았다고 말했다. 승리한 노동자계급은 우선 민주주의적 과제의 해결에 착수했으며, 지배의 논리에 따라 점진적으로만 사회주의적 과제를 처리했다. 노동자계급은 권력을 장 악한지 12년 만에 농업의 집단화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것이 바로 레닌이 말한 민주주의혁명의 사회주의혁명으로의 성장 전화인 것이다.

부르주아권력이 노동자 농민권력으로 성장 전화한 다음에 노동자권력으로 성장 전화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어느 계급의 권력이 다른 계급의 권력에서 '성장 전화'하는 것이 아니라, 총을 들고 빼앗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한 뒤에 노동자체제의 민주주의적 과제는 필연적으로 사회주의적 과제로 성장 전화한다. 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진화적이고 유기적인 이행은 노동계급독재 아래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이 레닌의 중심사상이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이 모든 것을 손상시키고, 혼란시키고, 왜곡시켰다. 지금 이들의 날조로 국제 노동자계급의 의식이 타락하고 있다.

 

두 가지 변종―기회주의와 모험주의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一반복하자一아카데믹한 세밀한 구분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혁명전략의 생사가 걸린 문제이다. 현재 스페인에서 '노동자 농민혁명'이 일정에 올라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새로운 혁명, 즉 즉각적인 권력투쟁이 현재 스페인에서 일반적 일정에 올라 있다 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 현재 일정에 올라 있는 문제는 대중을 공화주의자의 환상과 사회주의자에 대한 신뢰로부터 해방시키고, 이들의 혁명적 결집을 위해서 투쟁하는 것이다. 제2 혁명은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빈농이 뒤따르는 노동자계급의 혁명이 될 것이다. 부르주아 체제와 노동계급독재 사이에는 어떤 독특한 '노동자 농민혁명'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이러한 혁명을 기대하고, 여기에 정책을 순응시키는 것은 노동자계급에게 국민당을 억지로 떠맡기는 것, 따라서 혁명을 파멸시키는 것이다.

〈프라우다〉지의 정신착란적 정식화는 이미 중국에서 끝까지 추구된 두 가지 길, 즉 기회주의의 길과 모험주의의 길을 다시 열고 있다. 현재 〈프라우다〉지는 아직 스페인혁명을 감히 노동자농민혁명으로 '규정'하지는 않지만, 내일 사모라-장개석이 충실한 왕정위[왕정위 (Wang Ching-wei, 1884-1944) : 본명은 왕조명. 중국국민당 좌파 지도자. 무한정부의 수반. 코민테른은 장개석의 1927년 4월 쿠데타 이후, 무한정부를 지지했으나 왕정위는 이 쿠데타로 부터 불과 6주 뒤에 노동자 탄압을 개시했다. 1940년, 일본의 괴뢰정권을 난징에 수립하고 그 주석 이 되었다.]로 대체된다면, 즉 좌파인 레로욱스[알레한드로 레로욱스 가르시아(Alejandro Lerroux Garcia, 1864-1949): 스페인급진당의 지도자. 1933~36년까지 수상]로 대체된다면, 그러한 사태에 직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알 것인가. 그때에 현명한 분석가들一마르티노프, 쿠시넨과 그 패거리들一은 이것이 노동자 농민공화국이고, '조건부로 지자해야 한다(1917년 3월의 스탈린의 정식)거나, '전면적으로 지지"해야 한다(1925-27년에 국민당에 대한 스탈린의 같은 정식)고 결정하지 않을 것인가?

그러나 오늘 어쩌면 중도주의자의 분위기에 더 적합한 모험주의적 가능성도 존재한다.〈프라우다〉지의 사설은 스페인대중은 '정부에도 반항하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에 관해서 말한다. 그러나 스페인공산당은 이 정부의 타도 구호를 오늘의 임무로 제기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프라우다〉지는 그 박식한 기사에서 당면한 임무는 노동자농민혁명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단계'를 '성장 전화'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권력 타도의 의미로 이해한다면, 모험주의적 변종은 완전히 분명해질 것이다. 허약한 공산당이 1927년 12월 광동에서 스스로에게 말한 것처럼(또는 이렇게 말하도록 명령받은 것처럼), 마드리드에서도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 '물론 우리는 아직 노동자독재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실제로 중간적 단계, 즉 노동자농민독재의 문제라면 우리의 힘이 허약한 단계라도 봉기를 시도해보자. 어쩌면 뭔가 나올 것이다.' 실제로 스페인혁명 1년 동안 경시된 범죄행위가 밝혀진 뒤에, 시간 낭비의 책임을 져야할 자들은 자신의 대리인을 아홉 가닥 채찍으로 매질을 하기 시작할 것이고, 이들을 광동형의 비극적 모험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을 예측하기는 어렵지 않다.

 

'7월시기'의 전망

이 위험은 얼마나 현실적인 것인가? 대단히 현실적이다. 이 위험은 혁명 자체의 내적인 조건에 원인이 있는 것으로, 지도자의 태만과 혼란에 불길한 성격을 더한다. 스페인의 현 상황에는 1917년 페테르부르크에서 일어난 전투와 어느 정도 일치하는 새로운 대중적 폭발이 일어날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다. 역사에서, 일치시기'로 통하는 이 전투가 혁명의 붕괴로 끝나지 않았던 것은 전적으로 볼셰비키당 정책의 올바름 덕분이다. 스페인에게 화급을 요하는 이 문제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대혁명으로부터 시작하여 과거의 모든 혁명에서도 ‘7월 시기' 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그 결과는 다양하지만 보통은 부정적이고, 대개는 파국적이다. 이런 단계는 부르주아혁명의 메커니즘 안에 내재되어 있다. 왜냐하면 혁명의 성공을 위해서 대부분의 희생을 치르고, 혁명에 가장 큰 기대를 건 계급이 혁명으로부터 얻는 것이 가장 적기 때문이다.

이 과정의 규칙성은 아주 분명하다. 혁명을 통해 정권을 잡은 유산계급은 이것으로 혁명은 그 사명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무엇보다도 반동세력에 대해서 자신의 온건함을 증명하는데 관심을 기울인다. '혁명적' 자본가계급은 타도된 계급의 호의를 얻으려는 조 치 때문에 대중의 분노를 산다. 대중의 환멸은 그 전위의 혁명투쟁의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매우 빠르게 일어난다. 운동의 선진부위에게는 새로운 공격에 의해 지난번에 충분히 단호하게 수행하지 못했던 것을 해치우거나 바로잡을 수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이것으로부터 준비도 없이, 강령도 없이, 예비대에 대한고려도 없이, 결과에 대한 염려도 없이 새로운 혁명에 대한 충동이 생기는 것이다. 이에 반해서 정권을 잡은 자본가 계급은 인민과의 관계 정리를 꾀하기 위해 이 아래로부터의 격렬한 봉기를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행동한다. 이것이 역사에서 여러 차례 승리를 거둔 반(反)혁명의 자극제가 된 보완적인 반(半)혁명의 사회적⦁심리적 기초이다.

1848년 6월에 일어난 프랑스의 '7월시기'는 1917년의 페테르부르크에서보다 훨씬 더 가공하고 비극적인 성격을 띠었다. 파리 노동자계급의 이른바 '6월시기'는 2월 혁명에서 생겨났다. 2월에 총을 들고 싸운 파리 노동자는 숭고한 강령과 비참한 현실 사이의 모순에 반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참기 어려운 현저한 차이는 이들의 위(胃)와 양심을 매일 공격했기 때문이다. 계획도, 강령도, 지도부도 없었던 1848년 6월시기는 노동자계급의 강력하고 억제할 수 없는 반사작용과 유사했다. 봉기한 노동자는 무자비하게 진압되었다. 그 결과, 민주주의자들은 보나파르트주의로 가는 길을 닦았다.

1870년 9월 혁명과 파리꼬뮌의 거대한 폭발과의 관계는 1848년 2월 혁명과 6월시기와의 관계와 같았다. 18기년 파리 노동자계급의 3월 봉가는 특히 전략적 예측의 요소가 거의 없었다. 상황의 비극적 조합에서 발생한 3월 봉기는 프랑스 자본가계급의 수많은 도발 가운데 하나에 의해 보완되었다. 프랑스 자본가계급은 두려움이 자신의 악의를 자극할 경우에는 그러한 도발에 남다른 재주를 보인다. 부르주아혁명의 속임수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반사적 항의는 파리꼬뒨에서 처음으로 노동자혁명의 수준으로까지 높아졌지만 결국 다시 주저앉았다.

현재, 스페인의 무혈, 평화, 명예혁명(이 일련의 형용사는 언제나 같다)은 바로 우리 눈앞에서 자신의 '6월시기'(프랑스 달력에 따르면 '6월시기', 러시아 달력에 따르면 '7월시기')를 준비하고 있다. 러시아어에서 번역된 것 같은 무의미한 글귀를 자주 남발하는 마드리드 정부는, 실업과 토지 부족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약속하지만, 사회적 병폐 가운데 어는 것 하나에도 손대려고 하지 않는다. 연립정부내의 사회주의자는 공화주의자가 혁명의 과제를 사보타지하는 것을 돕고 있다. 스페인에서 가장 공업화되고 가장 혁명적 지방인 카탈로니아의 우두머리는 피억압 민족과 피억압 계급이 없는 천년왕국을 설교하지만 이와 동시에, 실제로 가장 증오하는 과거의 속박을 일부라도 벗어던지려는 인민을 돕기 위해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용기도 없다. 마시아[프란시스코 마시아 이 류사(Francisco Macia y Liusa, 1859-1933) : 군인이자 정치인. 바르셀로나의 하층 중간계급의 당인 카탈로니아 에스케라(좌익)당의 지도자. 1931~33년 카탈로니아 자치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었다.]는 마드리드 정부 뒤에 숨고, 다시 마드리드 정부는 제헌의회 뒤에 숨어 있다. 마치 삶이 이 의회를 기다리는 것인 양 말이다! 그리고 마치 장래의 국회가 주로 현 상태 (status quo)를 유지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공화주의자-사회주의자 블록의 확대 된 복제품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사전에 드러나지 않는 것인 양 말이다!

노동자와 농민의 반란이 열병처럼 달아오르는 것을 예측하기가 어려운 일인가? 대중의 혁명적 발전과 새로운 지배계급의 정책 사이의 불일치一이것이 비타협적인 충돌의 원인이고, 이 충돌은 앞으로의 발전과 정에서 제1 혁명, 즉 4월 혁명을 장사지낼 것인지, 아니면 제2 혁명을 불러일으킬 것인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만약 볼셰비키당이 페테르부르크의 7월 운동을 '시기상조'라고 평가하고, 대중에게 등을 돌렸다면, 이 반件)봉기는 불가피하게 무정부주의자나 모험주의자, 대중의 반란을 우연히 표현하는 인물의 분산적이고 제 각각인 지도력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고, 따라서 어찌할 도리가 없는, 피 비린내 나는 경련으로 끝나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서, 운동의 선두에서 있는 당이 상황에 대한 전체적 평가를 포기하고, 결전을 치르도록 내버려두었다면, 봉기는 틀림없이 대담한 여지를 취했을 것이다. 노동자와 병사는 볼셰비키당의 지도 아래 7월에 페테르부르크에서 일시적으로 권력을 장악했을 것이다. 그러나 곧 이은 혁명의 궤멸을 준비하기 위해서만 그랬을 것이다. 볼셰비키당의 올바른 지도만이 두 가지 변종의 파멸적 위험―1848년 6월시기형의 위험과 18기년 파리꼬뮌형의 위험一을 피할 수 있게 했다. 1917년 7월에 대중과 당이 받은 타격은 매우 가혹했다. 그러나 결정적 타격은 아니었다. 몇 십 명의 희생자가 발생 했지만 몇 만 명은 아니었다. 노동자계급은 참수당하지도, 쇠약해지지도 않은 채 이 시련을 벗어났다. 노동자계급은 그 전투적 중핵을 거의 완전하게 유지했다. 이 중핵들은 많은 것을 배웠으며, 10월에 노동자계급을 승리로 이끌었다.

정확히 이 '7월시기'의 관점에서 볼 때, 스페인에서 일어날 것으로 생각되는 혁명이 '중간적‘, 중용적 혁명이라는 날조는 끔찍한 위험이다.

 

 

대중의 투쟁과 노동자 훈타

좌익 반대파의 의무는 부르주아혁명이나 노동자혁명과 구별되는 독특한 '노동자 농민혁명'이라는 정식의 정체를 가차 없이 폭로하고 웃음거리로 만들어 노동자 전위가 딱 부러지게 이를 믿지 않게 하는 것이다. 스페인의 공산주의자는 그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환상이자 기만이다. 그것은 내일 여러분의 목을 멜 올가미로 바뀔 악마의 유혹이다. 스페인의 선진 노동자는 그것을 믿어서는 안 된다! 러시아혁명의 교훈과 스탈린주의자의 패배의 교훈을 살펴라.

여러분 앞에 노동계급독재를 위한 투쟁의 전망이 열려 있다. 이 임무를 이루기 위해서 여러분은 노동자계급을 중심으로 결집하고, 이 계급의 도움으로 수많은 빈농을 일어서게 해야 한다. 이것은 거대한 임무이다. 스페인 공산주의자 여러분은 거대한 혁명적 책임을 지고 있다. 자신의 약점에 눈감거나, 환상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 혁명은 말을 믿지 않는다. 혁명은 모든 것을 검증하는데, 그것도 피의 검증을 한다. 자본가계급의 지배를 타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동계급독재뿐이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힘에 더 맞는, 더 '간단하고', 더 '경제적인' 어떤 '중간적' 혁명은 존재하지도 않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존재할 수도 없다. 역사는 여러분을 위해서 어떤 과도적 독재나 둘째 서열의 독재, 에누리 된 독재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이러한 독재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은 모두 여러분을 속이는 것이다. 여러분은 노동계급독재를 위해 진지하게, 완강하게, 끊임없이 준비해야한다!

그러나 스페인 공산주의자의 당면한 임무는 권력 획득 투쟁이 아니라 대중 획득 투쟁이다. 게다가 이 투쟁은 다가올 시기에 부르주아 공화국의 토대 위에서, 그리고 대체로 민주주의 구호 아래에서 전개될 것이다. 노동자 훈타(소비에트)의 창설은 오늘의 으뜸가는 임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훈타를 민주주의 구호에 대립시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짓이다. 교회의 특권이나 수도회·수도원의 전횡에 대한 투쟁一순수하게 민주주의적인 투쟁一은 5월에 대중적 폭발을 일으켰다. 이것은 노동자 대표 선출을 위한 절호의 조건을 창출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기회를 놓쳐버렸다.

현 단계에서 훈타는 노동자 공동전선의 조직 형태이다一농민운동을 지원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파업, 예수회 추방, 국회선거 참여, 병사와의 관계 수립을 위해서다. 노동자계급의 기본적 중핵을 포괄하는 훈타를 통해서만 공산주의자는 노동자계급 내에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확보 할 수 있으며, 따라서 혁명의 헤게모니를 확보할 수가 있다. 노동자계급 사이에서 증대하는 공산주의자의 영향력 정도에 따라서만 훈타는 권력 획득을 위한 투쟁기관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다음 어느 단계에서一그것이 언제일지 아직은 모르지만一노동자계급의 권력기관이 된 훈타는 자본가계급의 민주주의적 제도와 충돌하게 될 것이다. 이때 비로소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조종이 울릴 것이다.

투쟁으로 끌릴 때마다 대중은 늘 당, 분파, 종파를 초월하여 공동행동을 위해 모든 노동자를 결집시킬 수 있는 권위 있는 조직의 필요성을 통감一그리고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一한다. 노동자에 의해 선출되는 훈타는 확실히 이러한 형태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적절한 기회에 대중에게 이 구호를 제기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회는 지금 사사건건 생기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독재 기관인 소비에트 구호를 현재의 실제 투쟁에 대립시킨다는 것은 소비에트 구호를 초역사적인 성체(聖 體), 초혁명적인 성상(聖像)으로 바꿔치우는 것을 의미한다. 개별적인 신자는 그러한 성상을 숭배할지 모르지만, 혁명적 대중은 결코 거기에 따르지 않을 것이다.

 

스페인혁명의 템포 문제

그러나 올바른 전술을 적용할 시간이 아직 남아 있는가?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모든 기회가 유실된 것은 아닌가?

전략의 기본적 노선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전술을 정하는 것 이라면, 혁명의 발전 템포를 정확하게 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올바른 전술이 없으면, 뛰어난 전략도 파멸에 이를 수 있다. 물론 장기간에 걸친 템포를 미리 주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템포는 투쟁의 과정에서 매우 다양한 지표들을 이용하여 검토되어야 한다. 게다가 사태의 진행과정에서 템포가 매우 급격하게 바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경험을 하면서 필요한 교정을 가하기 위해 일정한 전망을 가시적으로 붙잡고 있어야 한다.

프랑스대혁명은 그 정점인 자코뱅 독재에 이르기까지 3년 이상 걸렸다. 러시아혁명은 8개월을 넘지 않고 볼셰비키 독재를 낳았다. 여기서 템포상의 거대한 차이가 확인된다. 만약 프랑스의 사태가 더 빠르게 진전 되었다면, 자코뱅당은 형태를 갖출 시간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혁명 직전에는 아직 당으로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서, 자코뱅당이 혁 명 직전에 권력을 대표 했다면, 사태는 아마 좀 더 급속히 전개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템포를 결정하는 요인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다른 요인도 있으며, 아마 더 결정적일 것이다.

1917년 러시아혁명은 1905년 혁명을 앞세웠다. 레닌은 이를 (1917년 혁명의) 총 예행연습이라고 불렀다. 제2, 제3 혁명의 모든 요소가 미리 준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투쟁에 참가한 세력들은 마치 계획에 따른 것처럼 움직였다. 이것이 절정으로 치닫는 혁명의 상승기를 이례적으로 앞당겼던 것이다.

그러나 1917년 혁명의 템포와 관련한 결정적 요인은 전쟁이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토지문제만으로 몇 개월, 어쩌면 1~2년을 끌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참호 속의 죽음이라는 문제가 더 이상의 지연을 허락하지 않았다. 병사들은 "내가 죽으면, 토지가 다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고 있었다. 1,200만 병사대중의 압력이 혁명을 이례적으로 가속화시킨 요인이었다. 1905년의 '총 예행연습'과 볼셰비키당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없었다면, 혁명의 전(前)볼셰비키 시기는 8개월은커녕, 어쩌면 1~2년이나 그 이상 지속되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반적 고찰은 스페인에서 사태 발전의 가능한 템포를 정함에 있어서 확실한 의의가 있다. 스페인의 현재 세대는 혁명을 알지 못하고, 과거에 '총 예행연습'을 경험한 적도 없다. 공산당은 매우 허약한 상태로 사태에 뛰어들었다. 스페인이 벌이고 있는 전쟁은 없다. 스페인 농민은 막사나 참호에 몇 백만 명이 집결해 있지도 않고, 전멸당할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지도 않다. 이 모든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사태의 더 완만한 발전을 예상하게 하며, 따라서 당이 권력 장악을 준비하는데 더 오랜 기간을 가질 수 있도록 허락한다..

그러나 반대 방향으로 끌어당기는 요인도 있으며, 혁명의 패배에 맞먹는 때 이른 결전 기도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 당의 허약성이 운동에서 자생적 요소의 장점을 두드러지게 한다. 무정부적 조합주의의 전통은 같은 효과가 있다. 마지막으로 코민테른의 잘못된 상황 판단은 모험주의가 분출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역사적 유추에서 나오는 결론은 자명하다 : 스페인의 상황(가까운 과거에 혁명을 경험한 전통이 없고, 강력한 공산당이 없으며, 전쟁을 치르지도 않은)은 노동계급독재의 정상적 분만이 러시아에서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으로 판명됨에 따라 혁명의 유산 위험도 엄청나게 증대할 조건을 창출하고 있다.

잘못된 공식 정책의 결과인 스페인 공산주의의 허약성은 잘못된 지도에서 나오는 매우 위험천만한 결론을 받아들이기 쉽게 한다. 자신의 약점을 직시하기 싫어하는 허약한 사람은 뒤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신경과민이 되어 선수를 치려고 한다. 특히 스페인 공산주의자는 국회를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러시아에서 자본가계급에 의해 거듭 소집이 연기된 제헌의회는 결정적인 충돌 뒤에야 비로소 소집되었으며, 별 어려움 없이 해산했다. 스페인의 제헌의회는 혁명의 발전에서 좀 더 이른 단계에 소집될 것이다. 의석을 획득했다고 가정하더라도 공산주의자는 무시해도 좋을 소수파일 것이다. 이로부터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다: 대중의 일종의 자생적 공세를 이용하여 가능한 한 신속히 국회를 전복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모험은 권력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혁명을 지연시킴에 따라 틀림없이 혁명을 파멸시킬 것이다. 노동자계급은 대다수 노동자가 권력을 얻으려고 열렬하게 노력할 경우에만, 그리고 대다수 피억압 인민이 노동자계급에 대한 신뢰를 갖게 될 경우에만 자본가계급의 수중에서 권력을 빼앗을 수 있을 것이다.

혁명의 의회제도에 대한 문제에서 스페인 동지들은 정확하게 러시아의 경험보다는 오히려 프랑스대혁명의 경험을 참고로 해야 할 것이다. 자코뱅당 독재에 앞서 의회가 세 차례나 존재했다. 이것은 대중이 자코뱅당 독재로까지 상승하는 세 단계에 상응한다. 마드리드의 공화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하듯이, 국회가 실제로 혁명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그렇지 않다, 실제로 국회는 혁명의 발전에 새로운 자극을 주는 동시에 혁명에 대해서 좀 더 정리된 발전을 보장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전망은 사태를 파악하는 데서, 또 신경과민이나 모험주의를 교정하는 데서 매우 중요하다.

물론 이것은 공산주의자가 혁명에서 브레이크 역을 맡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물며 공산주의자가 도시와 농촌의 운동이나 대중의 고양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이러한 정책은 여전히 혁명적 대중의 신뢰를 얻는 과제에 직면해 있는 당을 파멸로 이끌 것이다. 오직 볼셰비키당만이 노동자와 병사의 모든 투쟁을 지도했기 때문에 7월에 대중을 파국으로부터 지킬 수 있었다.

만약 객관적 상황과 자본가계급의 배신이 노동자계급으로 하여금 불리한 조건 속에서 결전에 돌입하게 했다면, 물론 공산주의자는 투사들의 맨 앞에 설 것이다. 혁명정당은 언제나 옆으로 물러나 설교를 늘어놓거나, 노동자를 지도부도 없이 자본가계급의 총검 아래 방치하기보다는 오히려 대중과 함께 패배당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전투 중에 패배한 당은 대중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릴 것이며, 조만간에 원수를 갚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계급을 버린 당은 결코 다시 소생할 수 없다. 그렇지만 스페인 공산주의자는 결코 이러한 비극적 딜레마에 직면 하지 않았다. 거꾸로 정권을 잡은 사회주의자의 수치스러운 정책과 무정부적 조합주의의 비참한 당혹감은 노동자를 더욱 더 공산주의로 밀어붙일 것이라고 생각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따라서 당一올바른 정책을 취한다면一은 노동자계급의 승리를 준비하고, 이끌 중분한 시간을 가질 것이다.

 

공산주의자 대오의 통일을 위해서!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가장 악의적인 범죄 가운데 하나는 허약한 스페인 공산주의자 대오를 체계적으로 분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분열은 스페인혁명의 제반 사태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투쟁에서 유래하는, 지시 형태로 사전에 주입된 것이었다. 혁명은 항상 노동자계급 안에서 좌익에 대한 강력한 흡인력을 만들어낸다. 1917년에 볼셰비키주의의 기풍에 가까웠던 모든 경향과 그룹이, 심지어 과거에 볼셰비키당과 싸웠던 그룹들도 볼셰비키당과 융합되었다. 당은 급속히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매우 격렬한 당내생활도 경험했다. 4월부터 10월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내전 시기에 볼셰비키당내의 여러 경향과 그룹사이의 투쟁은 특정 시기에는 이례적인 첨예함에 이르렀다. 그러나 분열은 일어나지 않았다. 한 사람도 제명되지 않았다.

대중의 강력한 압력이 당을 결합시켰기 때문이다. 당내 투쟁은 당을 단련시키고, 당이 가야할 길을 분명히 했다. 이 투쟁에서 모든 당원은 당 정책의 올바름과 지도부의 혁명적 신뢰성에 대한 깊은 확신을 얻었다. 경험과 이데올로그 투쟁을 통해서 획득된 일반 볼셰비키 당원의 이러한 확신만이 지도부가 필요한 순간에 전당을 투쟁으로 이끌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그리고 당 정책의 올바름에 대한 당 자체의 깊은 확신만이 노동자대중에게 당에 대한 신뢰를 북돋을 수 있는 것이다. 외부에서 강제된 인위적 분열, 자유롭고 정직한 이데올로그 투쟁의 부재, 동료를 적으로 낙인찍는 것, 공산주의자 대오를 분열시키는데 기여하는 신화의 창조一이것이 지금, 스페인공산당을 마비시키고 있다. 공산당은 자기를 무기력하게 하는 관료주의적 통제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공산주의자 대오는 공공연하고 정직한 토론에 근거하여 결속되어야 한다. 스페인공산당의 단합대회를 준비해야 한다.

상황은 소수이고 허약한 스페인의 공식 스탈린주의 관료집단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는 코민테른의 외부에 존재하는 반대파 조직들一카탈로니아연합, 마드리드의 독립그룹[마드리드의 독립그룹 : 1931년 스페인공산당의 관료주의적 방식에 반대해 제명된 그룹. 좌익반대파의 강령에는 찬성하지 않았지만 반대파와의 토론에는 동의했다.]一도 명확한 행동강령이 없으며, 설상가상으로 이 조직들의 상당수가 볼셰비키주의의 아류들이 지난 8년 동안 아낌없이 퍼뜨린 편견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에 의해 복잡해지고 있다. '노동자농민'혁명, '민주주의독재', 심지어 '노동자농민당'에 대해서조차 카탈로니아의 반대파는 필요한 명확함을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은 위험을 배가시킨다. 공산주의자 대오의 통일을 회복하기 위한 투쟁은 스탈린주의의 이데올로기적 타락과 날조에 대한 투쟁과 결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좌익반대파의 임무이다. 그러나 이 점에서도 씁쓸한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스페인의 좌익반대파는 이 임무의 해결에 접근 하지도 못하고 있다. 좌익반대파를 고수하는 스페인 동지들은 아직 독자적인 기관지[편집자 주 : 이 글이 작성된 이후에 국제좌익반대파 스페인지부의 이론 기관지 〈꼬뮤니스모〉(Comunismo) 첫 호가 발행되었다. 이 첫 호에는 정치강령 초안과 노동조합 테제 등이 실려 있다.]를 창간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실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시간의 손실이고, 혁명은 이 죄를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동지들 이 얼마나 곤란한 조건에 처해 있는지 우리도 알고 있다. 이들은 프리모 데 리베라 치하에서, 베 렌게르 치하에서, 사모라 치하에서 끊임없아 경찰의 박해를 받아왔다. 이를테면, 라크르와[앙리 라크르와(Henri Lacroix, 1901-1939) : 스페인의 좌익반대파. 프란시스코 가르시아 라비 드(Francisco Garcia Lavid)의 가명. 노동자 출신, 1925~27년, 소련 체재 중에 좌익반대파가 되었다. 스페인 좌익반대파조직이 벨기에에 망명한 시기의 중심적 지도자 가운데 한사람이다. 1930년 6월 스페인에서 체포되어 왕정 붕괴 뒤에 석방되었다. 1931년 6월의 제2회 대회에서 총서기가 되었다. 1932년 11월 이후, 닌과 결별, 스페인 좌익반대파에 대한 비판에서 트로츠키가 올바르다고 주장 하는 회보를 발행했다. 1933년에 '자금의 부정 유용'을 이유로 스페인지부에서 제명되었다. 그 후 사회당에 가입, 1939년 1월, 스탈린주의자 정보부장교에 의해 교수형되었다.] 동지는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다시 수감되었다. 혁명적 지도부가 되기에는 무기력한 코민테른의 기구는 박해와 중상의 영역에서는 대단한 솜씨를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임무를 대단히 곤란하게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전국에 걸쳐서 좌익반대파의 힘을 결집하고, 잡지와 회보를 창간하고, 청년 노동자를 모아 그룹을 조직하고, 올바른 마르크스주의적 정책에 근거하여 공산주의자 대오의 통일을 위해 투쟁해야 한다.

L. 트로츠키 카디코이,

1931년 5월 28일

 

 

무정부적 조합주의와 카탈로니아 연합

 

■ 이 글은 팸플릿 '스페인혁명과 이를 위협하는 위험'의 부록으로 〈반대파 회보〉에 게재된 것으로, 트로츠키가 스페인 좌익반대파 앞으로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무정부적 조합주의자는 내가 여기서 판단할 수 있는 한, 마드리드 제국주의자들의 바르셀로나 하수인인 마시아대령의 비열한 관리체제에 대해서 화해주의 정책을 취하고 있다. 무정부적 조합주의 지도자들은 카탈로니아의 국내평화를 위한 부관이자, 사실상의 하수인이 되어버렸다.

내가 말할 수 있는 한, 카탈로니아연합은 무정부적 조합주의자에 대해서 화해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공동전선이라는 혁명정책을 무정부적 조합주의자를 옹호하고 추켜세우는 기회주의 정책으로 대체시키고 있다. 그로 인해 마시아체제도 옹호하게 된다. 이 점이야말로 일정 단계에서 대단히 위험할 수 있는 자연발생적 폭발의 원천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노동자를 제지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임무가 아니다. 반대로 공세를 위해 노동자를 결집하고 조직하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무엇보다도 카탈로니아와 그 밖의 후진적 지역의 노동자를 일으켜 세워야 한다. 카탈로니아연합의 임무는 무정부적 조합주의연합의 명성을 쌓아올리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한 비판을 흔들림 없이 수행하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이들이 마시아의 소부르주아적 반(反)혁명과 암묵적으로 연합하고 있음을 폭로하는 것이다.

조급하고 무리한 행동의 제지가 혁명에 대한 멘셰비키적 압살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전략적 노선이 있어야 하고, 선진 노동자가 이를 광범한 대중에게 정력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카탈로니아연합은 아무리 보아도 전략적 노선이 없다. 또한 그 지도자들은 혁명의 근본문제들에 대해 숙고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렇지 않다면 '트로츠키주의'에 대해 그토록 유치하고 어리석은 우려를 할 리 없다. 이러한 우려는 이들의 정치적 사고 수준의 한계를 나타낼 뿐이다.

 

1931년 5월 31일

 

 

카탈로니아연합(노동자농민블록)의 강령

 

친애하는 동지 여러분!

나는〈계급투쟁〉(La Lutte de dasses)지를 통해 카탈로니아연합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른바 노동자농민블록의 강령을 처음으로 읽어 보았다. 나는 이 문서가 〈계급투쟁〉지에 완전하고 정확하게 번역되어 있다고 인정한다. 이 문서는 전체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불쾌한 인상을 준다.

내가 최근에 쓴 '스페인혁명과 이를 위협하는 위험'에서 스페인 문제에 관한 코민테른의 공식 정책을 비판했던 것은 카탈로니아연합에도 완전하게 들어맞는다. 그 뿐만 아니라 카탈로니아연합은 코민테른 지도부가 적어도 말로는 이미 폐기한 오류마저 범하고 있다.

 

1. 이 문서는 '노동자농민블록'이 발행했다. 노동자농민블록이란 무엇인가? 카탈로니아연합의 별명인가? 노동자농민블록 즉, 노동자 농민의 연합은 노동자 전위가 이룩해야 할 거대한 정치적 임무이다. 이 임무는 그 강령에 명백히 나타나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하지 않는데도 '노동자 농민블록'은 혁명조직의 이름이 되었다. 이것은 신판 노동자 농민당에 다름 아니다. 게다가 코민테른 제6차 대회도 좌익반대파의 비판으로 이런 반동사상을 폐기했다.

2. 문서 전체에서 '공산주의'라는 말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대중에게 자신의 공산주의를 숨기는 사람은 이미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3. 이들은 계급 분석을 전혀 시도하지 않은 채, 민주주의혁명, 민주공화국, 인민혁명에 대해 말한다. 정부는 우유부단하고 동요하고 있다는 등의 비난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 정부가 인민의 적인 자본가계급의 정부라고 그 어디에서도 지칭하지 않는다. 사모라 정부에 대한 이들의 비판은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르보프공(公)-케렌스키 내각에 대해 제기한 비판을 쏙 빼닮았다. 이들은 카탈로니아의 마시아정부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다.

4. 문서는 '사회의 합리적 구성'에 대해 말하지만 그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이것은 1848년 이전의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의 어법이다. 게다가 '공화국은 새로운 사회를 조직하는 계기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떤 사회인가? 부르주아 체제인가 사회주의 체제인가? 이 강령은 자본주의와도, 사회주의와도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5. 알폰소에게 외국으로 도망칠 시간을 준 사실이 '임시정부의 첫 번째 심각한 오류'로 제시되어 있다. 오류라고? 이는 사모라가 자신의 혁명 정책을 충분히 '의식"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러시아 멘셰비키가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이러했다. 자본가계급의 의식적인 반(反)혁명 계획을 '오류라고 부르는 것은 대중에게 자본가계급의 결점을 호도하고 은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6.'공화국은 자본가계급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노동자를 위해서도 승리해야 한다.' 속류 민주주의적이고 완전히 잘못된 이 듣기 좋은 빈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자본가계급과 노동자의 이해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공화국이 언제, 어디에 존재했는가? 공화주의 자본가계급에게 우리는 민주주의적 권리와 사회개량을 요구할 수 있고, 요구해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심지어 초민주주의적인(arch-democratic) 부르주아 공화국도 노동자와 농민의 피와 땀을 짜내기 위해 자본가계급이 이용하는 기구라는 것을 끊임없이 폭로해야 한다.

7. 1873년 공화국에 대한 언급은 이런 믿기 어려운 교훈을 곁들이고 있다 : '따라서 권력과 인민 사이에 완전한 분열을 낳았다.' 추상적 인민이 추상적 권력으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혹시 자본가계급이 근로인민과 분리된 것인가? 1873년의 사례는 자본가계급이 더 부드럽고, 더 선량하고, 더 관대하고, 더 상냥해진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부드럽고', ‘더 관대하고', '더 상냥해진' 자본가계급을 단 한순간도 믿지 말라고 대중에게 가르치기 위해서 언급되어야 한다.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다.

8. 이 강령은 '노동자대중은 모든 지방에서 혁명적 훈타에 근거하여 스스로를 조직'하라고 요구한다. 무엇 때문에? 강령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이러한 훈타가 노동자와 빈농의 수중으로 권력의 혁명적 이행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하자 않을 뿐만 아니라 1일 7시간 노동, 생산의 노동자통제, 혁명적 노동자 병사 훈타에 의한 농민봉기의 조직 등 이행적 요구 강령에 대해서도 한마디 말이 없다. 이들은 훈타가 권력을 잡고 있는 계급 즉, 자본가계급에 대항하는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대중의 조직이라는 것을 언급조차 하자 않는다. 여기서 훈타는 스페인의 소부르주아적 전통에 입각하는 혁명조직'으로 간주된다.

9. 강령은 농민봉기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면서 프랑스혁명과 러시아 혁명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코민테른 지도부에 의해 바로 우리 눈앞에서 압살당한 중국혁명의 경험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이 없다. 코민테른은 중국의 농업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했는가? 이에 대해서도 말이 없다. 중국혁명의 교훈에서 배우지 못한 공산주의자는 대중을 가르치거나 대중에게 호소하기 위해 대중에게 말을 걸 권리가 없다. 특히 혁명이 한창인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10. 강령은 '우리는 각 민족의 국가수립을 지지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스페인에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어떤 민족이 관련되어 있는가? 범(況)스페인 국가조직은 '이베리아공화국연합'이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만약 연방제를 의미한다면, 그렇다고 말하 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11. '혁명의 방어는 최고의 법칙이어야 한다.' 누구로부터의 방어인가? 권력을 쥔 자본가계급은 노동자계급으로부터 자신의 혁명을 방어한다. 적들 일반에 대항하여 혁명 일반을 대체로 옹호하는 공허한 언사로 이런 사실을 은폐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본가계급이 혁명의 기치 하에 노동자계급을 목 졸라 죽이는 것을 돕는 것이다.

12. '노동자농민블록 '즉, 노동자 농민당은 강령끝 부분에서 '민주주의혁명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서 전력을 다해 싸울' 것을 약속하고 있다. 이것은 민주주의적 의회제도에 근거하는 부르주아 공화국을 의미하는가? 그러면 그렇다고 말해야 하지만 이 경우에도 적어도 민주주의적인 선거권을 요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베리아반도에서 '합리적인' 공화국이나 '사회의 합리적 구성'이 실현되기 이전에 사모라의 부르주아 공화국은 적어도 노동자와 농민 남녀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13. 사회당이라는 이름은 이 강령에 나오지 않는다. 무정부적 조합주의에 대해서도 한마디 없다. 공식 스페인공산당도 나오지 않는다. '노동자농민블록' 은 진공 속에서 활동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상이〈계급투쟁〉지에 발표된 원문에 근거하여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직접적인 반론이다. 카탈로니아연합이 이미 그 강령에 어떤 변화나 교정 또는 수정을 가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카탈로니아연합이 마르크스주의의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기꺼이 환영할 것이다. 그러 나 현 상태의 강령은 스페인의 토양에 옮겨진 완전한 '국민당주의'를 의미한다. 코민테른의 중국정책이 문제가 되었을 때, 좌익반대파가 비타협적으로 싸운 바로 그 사상과 방법이 이 문서에 가장 파멸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내가 아는 한, 카탈로니아연합의 지도자들은 계획적으로 좌익반대파와 스스로를 분리시켜서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자 않다. 좌익반대파도 위에서 간략하게 분석한 문서 에서 카탈로니아연합의 지도자들이 표명하고 있는 사상이나 방법과 명확하고 엄격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분리해야 한다. 혁명 중에 출발점이 옳지 못한 입장은 불가피하게 자연히 패배의 언어로 번역된다. 현재는 미약한 스페인의 좌익반대파가 노동자계급과 스페인혁명에 거대한 공헌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스페인의 좌익반대파는 자기 대오에 명확성, 성실성, 비타협성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것이 스페인 동지들에 대한 나의 호소이다.

L. 트로츠키

1931년 6월 12일

 

 

스페인혁명의 성격

 

■ 이 편지는 트로츠키가 스페인혁명의 문제를 국제좌익반대파 전체와 각국 지부의 중심적 문제로 삼게 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다. 트로츠키는 스페인혁명의 기본적 문제들을 간결하게 요약하고, 이를 토대로 좌익반대파 각국 지부가 이루어야 할 과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제안하고 있다.

 

현재의 사태 추이는 국제좌익반대파가 견해를 밝힐 수 있고, 또 밝혀야만 하는 하나의 중대한 문제를 의제로 올렸다. 나는 스페인혁명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문제는 나중에 회고조로 비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파국을 미리 막기 위해서 국제좌익반대파가 사태에 적극 개입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세력은 소수이다. 그러나 혁명정세의 이점은 바로 소그룹도 올바로 예측하고 제때에 올바른 구호를 내건다면, 짧은 시간 동안에 거대 한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있다. 나는 사태에 직접 관련된 스페인 지부뿐만 아니라 모든 지부에 대해서도 말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스페인 혁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전 세계 노동자들의 더 많은 주목을 끌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의 노동자 전위 눈앞에서 정치노선이 검증될 것이다. 우리가 정말로 좌익이라면, 우리가 정말로 올바른 혁명사상으로 철저히 다져져 있다면, 우리는 이 힘을 특히 혁명정세에서 뚜렷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정말로 국제주의자라면, 우리는 이 일을 국제적 규모로 수행해야 한다.

두 가지 근본적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해야 한다: (1) 스페인혁명의 일반적 성격과 이로부터 나오는 전략적 방침의 문제, (2) 민주주의 구호의 올바른 전술적 활용과 의회주의와 혁명의 발전 가능성의 문제

나는 스페인에 관한 최근 저술[스페인혁명과 이를 위협하는 위험]을 통해 이런 문제들의 본질을 전부 말하려고 했다. 여기서는 단지 코민테른의 전체 노선에 대해 공세를 취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문제에 대해서 간략하게 내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

스페인에서 이미 완수된 공화주의혁명과 미래의 노동자혁명 사이에 중간적 혁명 즉, '민주주의독재'에 찬성하는 이른바 '노동자농민'혁명을 기대해야 하는가? 긍정인가 부정인가? 전체적인 전략적 방침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에 의해 결정된다. 공식 스페인공산당은 이 근본적 문제에 대해서 이데올로기적 혼란에 휘말려 있다. 이 혼란은 스탈린주의자들에 의해 유포되었으며 아직도 유포되고 있고, 코민테른강령에도 나타나 있다. 우리는 생생한 사실들에 비추어 날마다 이 중도적, 중간적 혁명이라는 허구로 대표되는 모든 공허함, 모든 어리석음을 폭로함과 동시에 그 끔찍한 위험을 폭로할 기회를 얻고 있다.

모든 지부의 지도적 동지들은 좌익인 우리야말로 견고한 과학적 토대 위에 서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상을 가지고 경솔하게 장난치거나, 란다우[쿠르트 란다우(Kurt Landau, 1903~1937) : 오스트리아의 좌익반대파, 후에 독일의 좌익반대파. 1931년 반대파와 결별하고, 독자적인 그룹을 결성했다. 스페인에서 직접 통일노동자당을 지원했다. 1937년 스탈린주의자에 납치되어 암살당했다.]와 그 동료들 식으로 신문에 대고 나불거리는 것은 혁명적 노동자 조직의 본질에 반하는 것이다. 혁명의 근본적 문제들은 기사가 물체의 저항을 조사하거나, 의사가 해부학이나 병리학을 연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연속혁명의 문제는 스페인 사태 덕분에 지금 국제좌익반대파의 중심적 문제가 되고 있다.

민주주의 구호, 선거 활용, 추후의 국회 활용 등의 문제는 일반적 전략문제에 종속되는 혁명적 전술의 문제이다. 그러나 가장 올바른 전략적 정식도 해당 시기에 이들 정식에 대한 전술적 해결책이 없으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

그러나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스페인 사태는 매우 유감스러워 보인다. 프랑스 신문의 긴급보도에 따르면, 카탈로니아연합의 지도자인 마우린은 마드리드 연설에서 자신의 조직은 선거의 '진정성'을 믿지 않기 때문에 선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이것이 과연 사실인 것인가? 만약 사실이라면, 마우린은 노동자계급의 힘을 결집한다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도덕과 소부르주아적 감상주의의 관점에서 혁명전술의 문제들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2주전이라면 나는 부르주아신문이 허튼소리를 지껄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카탈로니아연합의 강령을 알게 되고 나서는 터무니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미리 배제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식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노선에 대해 우리는 우리 대오 내에서 가차 없는 투쟁을 개시해야 한다. 다양한 그룹들과 원칙적으로 공통된 근거가 전혀 없을 때, 이들 그룹과 서기국의 기능, 권한, 특권 등에 대해서 말다툼하는 것은 완전히 어리석고 무가치하다.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프로메테오' 그룹['프로메테오'(Prometeo) 그룹: 이탈리아의 좌익 공산주의자들로 보르디가를 지지하는 그룹. 1929년에 트로츠키주의로 출발했다가 제명된 분자들이 모여 결성했다. 국제좌익반대파는 이 그룹과 항상적인 협력관계를 수립하려고 노력했지만, 공동전선 문제나 민주주의 구호 문제를 둘러싸고 근본적으로 의견을 달리했다.]이다. 이 그룹은 전략과 전술의 모든 근본적 문제에 대해서 볼셰비키-레닌주의자와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그 누구도 이러한 심각한 견해 차이를 조직문제에 대한 떠들썩한 언쟁이나 막후에서 음모를 꾸미다 결국에는 타락해버리는 무원칙한 '블록'으로 입막음하도록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러시아의 경험 이후, 혁명에서 민주주의 구호 문제는 중국의 투쟁과 정에서 다시 제기되었다. 그러나 유럽의 모든 지부가 이 투쟁의 모든 단계들을 자세히 검토할 기회를 갖지는 못했다. 이런 이유로 이 문제에 대한 토론은 일부 동지와 그룹들에게는 다소 아카데믹한 성격을 띠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문제는 바로 투쟁, 따라서 생존 그 자체이다. 이러한 중대한 역사적 전환점에서 우리 스스로를 손발이 묶인 채로 내버려 둘 수 있는가? 전쟁이 발발할 우려가 있었던 중-소 분쟁 중에 소비에트 연방을 지지해야 할 것인지 장개석을 지지해야 할 것인지 여부를 둘러싼 토론에 넋을 잃을 수 없었던 것과 꼭 같이, 오늘날 스페인 사태에 직면하여 우리는 일부 그룹의 종파주의적이고 반(半)바쿠닌주의적인 미신에 대해 간접적인 책임도 져서는 안 된다.

 

나의 실천적 제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모든 지부는 스페인혁명의 문제들을 의제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

2. 우리 지부의 지도자들은 문제를 깊게 파고들기 위한, 특히 공식 정당들의 활동과 이 정당들이 스페인혁명의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을 주의 깊게 연구하기 위한 자료 수집을 임무로 하는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

3. (모든 경향의) 스페인 공산주의에 대한 중요 문서들 전부를 적어도 발췌한 형태로라도 우리의 각국 지부 모두가 참고할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필요한 준비가 갖춰지면 좌익반대파의 각국 지부는 스페인혁명에서 코민테른이 취하고 있는 정책에 대한 공격을 개시해야 한다. 이 공격은 신문 기사, 비판적 결의문, 공개편지, 집회 참가, 개인과 그룹의 저술 등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형태는 모두 엄밀하게 조정되지 않으면 안 된다.

5. 국제서기국뿐만 아니라 각국 지부의 일정한 준비활동에 뒤이어 스페인혁명에 대한 국제좌익반대파의 선언문을 필수적으로 작성해야 할 것이다. 이 선언문은 가능한 한 가장 구체적인 형태로, 그리고 스페인지부와의 긴밀한 협력에 기초하여 작성되어야 한다. 이 선언문은 가능한 한 광범위하게 배포되어야 한다.

 

이상이 나의 구체적인 제안이다. 이를 검토해줄 것을 바라는 동시에 토론이 모든 지부에서 병행되도록 이 편지의 복사본을 각국 지부에 보내 줄 것을 부탁한다.

1931년 6월 18일

 

 

"사모라-마우라를 타도하자!"

 

■ 이 글은 팸플릿 '스페인혁명과 이를 위협하는 위험'의 부록으로 〈반대파 회보〉에 게재된 것으로, 트로츠키가 스페인 좌익반대파 앞으로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라크르와 동지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나는 스페인 정세에 대하여 약간의 보충적인 고려사항을 제안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스페인 공산주의의 다양한 그룹들이 그날의 정치적 문제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충분한 정보가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혁명정세를 분석하는 것은 눈을 가린 채 체스를 두는 것보다도 더 어렵다. 때문에 모든 쟁점들에서 보완적인 검토를 필요로 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 동지에게, 그리고 동지를 통해서 스페인 공산주의자와 국제좌익반대파의 모든 지부에게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스페인혁명을 위협하는 위험에 관한 내 기사의 주요한 부분은 올해 4월의 부르주아 공화주의 혁명과 다가올 노동자혁명 사이에 독특한 '노동 자 농민혁명'이 들어설 여지가 없음을 증명하는데 할애되었다. 말이 난 김에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해두고자 한다. 즉, 이것은 노동자계급의 당이 '최후의 결전'을 치를 때까지 평화적인 세력 규합에 몰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속물들의 반(反)혁명적인 생각일 뿐이다. 중간적 혁명이나 중간적 체제는 있을 수 없지만 파업, 시위, 경찰이나 군대와의 충돌, 격렬한 혁명적 경련 등의 중간적 대중행동은 있을 수 있으며, 또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대중행동에서 공산주의자는 항상 맨 앞에 설 것이다. 이런 중간적 투쟁이 가질 수 있는 역사적 의의는 무엇인가? 한편으로는 부르주아공화국 체제의 민주주의적 변화를 이끌 지도 모르며,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 체제를 건설하기 위해 대중에게 권력 장악을 준비시킬 것이다.

공산주의자가 이런 투쟁에 참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런 투쟁을 지도하기 위해서 이다. 그러자면 공산주의자에게는 혁명 전체의 발전과정에 대한 명확한 이해뿐만 아니라 제때에 예리하고 명확하며 전투적인 구호를 제기할 능력도 요구된다. 이러한 구호는 '강령'에서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결정되어 대중을 전진시키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1917년 러시아에서 화해주의 사회주의자들과 자유주의 자본가계급이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었을 당시에 채택된 '10명의 자본가 장관을 타도하라!'는 볼셰비키의 구호는 거대한 역할을 했다. 실제로 가장 믿음직한 대중은 늘 자본가계급, 착취자, 유산계급을 본능적으로 불신했지만 대중은 여전히 화해주의 사회주의자들을 신뢰하고 있었다. 이 특정한 시기에 볼셰비키당 전술은 바로 이 불신에 기초했다. 우리는 '사회주의 장관을 타도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당시의 투쟁구호인 '임시정부를 타도하라'는 구호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우리는 끊임없이 '10명의 자본가 장관을 타도하라!'는 구호를 반복하여 강조했다. 이 구호는 거대한 역할을 했다. 왜냐하면 화해주의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 대중보다는 자본가 장관들을 훨씬 더 가깝게 생각한다는 것을 대중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구호가 스페인혁명의 현 단계에 가장 잘 들어맞는다. 노동자 전위는 스페인 사회주의자가 권력을 떠맡도록 강요하는데 온 관심을 쏟고 있다. 이 일을 위해서는 연립정부를 분열시켜야 한다. 당면한 임무는 연립정부에서 자본가 장관들을 내쫓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이 임무는 새로운 대중운동 등의 압력을 받은 중대한 정치적 사건과 결합되어야만 일부라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 한 예로, 러시아에서는 이러한 대중운동의 지속적인 압력을 받아 처음에는 구치코프와 밀류코프가, 그 다음에는 르보프공(公)[알렉산드르 구치코프(Alexandr Guchkov, 1862-1936) : 러시아 대자본가와 지주의 이해를 대변한 정당 옥토브리스트(10월 17일 동맹)의 지도자. 제3대 두마 의장. 2월 혁명으로 임시정부의 전쟁장관이 되어 제국주의 전쟁을 지속하지만 거센 반전시위로 사임했다.

파벨 밀류코프(Pavel Miliukov, 1859-1943) : 러시아의 역사학자. 입헌민주당(카데츠)의 지도자. 제3, 제4대 두마의원. 2월 혁명 후, 임시정부의 외상. 4월 18일, 연합국에 전쟁 지속을 약속하는 '각서'를 제출, 이에 항의하는 노동자 병사의 대규모 시위(4월사건)로 사임했다. 『제2차 러시아 혁명 사』(전 3권)를 저술했다.

게오르기 르보프(Georgi Lvov, 1861-1925) : 입헌민주당, 공작. 전러시아잼스트보동맹 의장. 1917년 2월 혁명 후, 7월까지 임시정부의 수상이었다.]이 연립정부에서 축출되었다. 또한 케렌스키가 정부수반에 올랐으며, 정부에서 '사회주의자' 수도 늘어났다. 레닌이 귀국하고 나서 볼셰비키당은 단 한순간도 케렌스키[알렉산드르 케렌스키(Alexandr Kerensky, 1881-1970) : 변호사 출신으로 저4대 두마의 트루도비키(근로자당) 지도자. 임시정부의 법무장관, 제 1차 연립정부의 전쟁장관으로 7월사건 이후 수상을 겸임. 제2차, 제3차 연립정부의 수상, 코르닐로프 쿠데타 이후 전 러시아 최고사령관. 10월혁명 직후, 크라스노프와 함께 볼셰비키 정부에 대한 무력반란을 기획하지만 실패하고 망명했다.]나 화해주의자들과 손을 잡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대중이 자본가계급을 권력에서 밀어내고, 화해주의자들의 정부를 실제로 검증하도록 도왔다. 이것은 볼셰비키당이 권력에 이르는 도정에서 피할 수 없는 한 단계였다.

멀리서 가능한대로 판단해보건대, 의회선거가 실시되면 사모라나 마우인 유형의 우익 공화주의자의 허약성이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며, 급진당, 급진사회당, '사회당' 등 다양한 종류의 소부르주아 화해주의자들이 압도적 다수를 이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당이나 급진사회당은 전력을 다해 우익 동맹자들에게 매달릴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 '사모라-마우라를 타도하라'는 구호는 완전히 시의적절하다. 다만, 다음 한 가지는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 공산주의자는 레로욱스내각 지지를 선동하지 않음은 물론 사회당 내각에 대해 그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때그때마다 가장 단호하고 일관된 계급 적(enemy)에 대해 가장 강력한 타격을 가한다. 그로 인해, 화해주의자들을 약화시키고 노동자계급의 진로를 열어젖힌다. 공산주의자는 사회당 노동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 "우리와 달리 여러분은 사회당 지도자를 신뢰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아무튼 권력을 잡으라고 강제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여러분을 성 실하게 도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정권을 잡는다면, 우리의 올바름이 실제로 확인될 것이다."

우리는 국회 구성과 관련하여 이 문제를 이미 다룬 적이 있다. 그러나 다른 사건 이를테면, 대중에 대한 탄압이 '사모라와 마우라를 타도하라'는 구호를 극도로 날카롭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 이 싸움에서의 승리 즉, 사모라의 사임으로 조성된 새로운 단계는 이후의 혁명발전에서 4월 알폰소의 퇴위와 거의 같은 의의를 가질 것이다. 이러한 구호를 제기하기 위해서는 추상적인 교의가 아니라 대중의 의식 상태와 대중이 여러 부분적 성공에 반응하는 방식에 따라야 한다. '노동계급독재"나 '노동자 농민공화국' 구호를 현 상황에 단순 대치시키는 것은 이런 구호가 대중을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에 완전히 부적절하다.

이와 관련하여 사회파시즘 문제가 다시 제기된다. 극좌 관료집단의 어이없는 이 발명품은 현재 스페인에서 혁명으로 가는 길에 놓인 최대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여기서 다시 러시아의 경험을 돌아보자. 권력을 장악하고 나서도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은 제국주의 전쟁을 수행하고, 자본가를 옹호하는 한편, 병사 농민 노동자를 박해하고, 체포했으며, 사형 제도를 도입했다. 또한 볼셰비키 살해를 묵인하고, 레닌에게 지하생활을 강제했으며, 다른 볼셰비키 지도자들을 감옥에 집어넣고, 이들에 대해서 가장 비열한 중상을 유포시켰다. 이런 일들은 모두 지금 생각해보면, 이들을 '사회파시스트'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 말은 1917년 당시에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주지하는 바와 같이 볼셰비키당이 권력에 이르는 것을 막지도 못했다. 7월과 8월의 끔찍한 박해를 받고서도 볼셰비키당은 ‘사회파시스트'와 함께 코르닐로프에 맞서 싸우기 위해 구성된 기구에 참여했다. 레닌은 9월초, 비밀은신처에서 러시아의 '사회파시스트'에게 다음과 같은 타협안을 제의했다 : "자본가 계급과 단절하고 권력을 잡아라. 그러면 우리 볼셰비키들은 소비에트 안에서 평화적으로 권력을 잡기 위해 투쟁할 것이다."

만약 화해주의자들과 당시의 진짜 '파시스트'인 코르닐로프주의자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면, 코르닐로프주의자에 대항한 화해주의 자들과의 공동투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 투쟁은 반(反)혁명 장군의 공격을 물리치고, 대중을 화해주의자들에게서 단호하게 분리시키려는 볼셰비키당을 도움으로써 혁명의 발전에 거대한 역할을 했다.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본질은 바로 공산주의와 파시즘 사이에서 끊임없이 동요한다는 점이다. 혁명의 와중에서는 이러한 동요가 특히 격렬 해진다. 스페인의 사회주의자를 파시스트의 변종으로 간주하는 것은 이들의 불가피한 좌고우면에서 교훈을 얻을 가능성 일체를 미리 포기하고, 사회주의와 조합주의 노동자들을 우리 스스로 잘라내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스페인의 무정부적 조합주의에 대한 무자비한 비판은 단 한순간도 늦줄 수 없는 매우 긴급한 임무라는 점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무정부적 조합주의의 상층 지도부는 자본가계급에 찬성하는 가장 기만적이고 배신적이며 위험한 형태의 화해주의를 대표하며, 이에 굴종 한다. 일반적인 무정부적 조합주의자는 잠재적으로 매우 중대한 혁명세력이다. 이 점에서 우리의 기본적 임무는 사회주의자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평조합주의자가 그 지도부에 반대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임무는 노동조합 조직의 특수성과 무정부주의 특유의 기만성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편지들에서 다루기로하자.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스페인의 혁명조직과 그룹들의 기사, 결의문, 강령 등을 모으고, 프랑스어로 번역해야 한다. 또한 다른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 모든 지부에 보내야 한다.

1931년 6월 24일

 

 

마우린과 무정부적 조합주의자들

 

■ 이 글은 팸플릿 '스페인혁명과 이를 위협하는 위험'의 부록으로 〈반대파 회보〉에 게재된 것으로, 트로츠키가 스페인 좌익반대파 앞으로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마우린을 가차 없이, 그리고 쉴 새 없이 비판해야 한다. 사태 발전은 우리 비판의 올바름을 완전히 뒷받침할 것이다. 잠깐만 살펴보더라도 마우린이 단지 편협한 생각과 쇠잔한 교의와 유치한 구호를 가진 우스운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가 성공할 것으로 알고 있다는데 있다. 카탈로니아에서 지도세력이 되지 못한다면, 좌익반대파는 스페인에서 지도세력이 될 수 없다.

두 번째 긴급한 문제는 무정부적 조합주의자들에 관한 문제이다. 무정부적 조합주의에 반대하는 팸플릿을 발행하여 스페인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에도 널리 배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여러분은 모나트[삐에르모나트(Pierre Monatte, 1881-1960) : 프랑스의 노동조합운동가로 조합주의 좌파. 1909년에 〈노동자의 생활〉을 창간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반전주의 입장을 견지했다. 1923년 프랑스공산당에 입당하지만 1년 뒤에 탈당했다. 1924년 [노동자혁명] 그룹을 조직하고, 1926년 [조합주의동맹]을 창설했다.]의 기사를 읽어 보았는가? 그는 이 기사에서 스페인의 무정부적 조합주의자들이 볼셰비키 국가를 진정으로 '무정부주의적인' 국가로 대치시킬 수 있다는 자신의 바람을 표현하고 있다. 세계 무정부주의의 운명, 더 정확하게는 러시아혁명에서 떨어져 나간 잔당들의 운명은 오늘날, 스페인 무정부적 조합주의의 운명과 불가분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리고 스페인의 무정부적 조합주의는 필연적으로 가장 비참하고 어쭙잖은 파산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에 스페인혁명이 무정부주의의 묘지가 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무정부적 조합주의의 묘지가 동시에 혁명의 묘지가 되지 않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

마우린이 스탈린주의자의 일시적인 방패역이라면, 무정부적 조합주의는 사회주의자와 공화주의자 즉, 자본가계급의 일시적인 방패역이다. 마우린이 카탈로니아의 선진 노동자를 중도주의 관료집단에게 넘겨줄 수 있는 것과 꼭 같이, 무정부적 조합주의자는 혁명 전체를 자본가계급에게 넘겨줄 수 있다.

지금 무정부적 조합주의에 대한 이론적⦁실천적 투쟁이 일정에 올라있다. 이 투쟁이 공동전선 정책, 노동조합의 단결 등에 근거하여 수행되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무정부적 조합주의 지도자들의 가면을 벗겨야 한다. 특히 한심한 세속신부인 페스타냐[앙헬 페스타냐(Angel Pestana, 1886-1937) : 시계직공 출신의 조합주의 지도자, 전국노동자연맹의 우파. 코민테른에 적대. '30인 선언'을 통해 개량주의로의 전향을 표명했으며, 1933년에 조합주의 당을 설립 했다.]를 폭로해야 한다. 그는 틀림없이 이후의 혁명발전에서 가장 악명 높고 비열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마우린의 연설을 살피는 것은 고통을 수반한다. 그는 우리와 달리 5개년 계획을 혁명의 성과로 간주한다! 그가 아무것도 읽은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덧붙이자면, 로이터 통신사를 위시해 다른 통신사들은 5개년 계획에 대한 나와의 인터뷰나 기사에 관하여 완전한 실패, 거짓말 등을 운운하면서 그릇된 전보를 유포시키고 있다. 이런 파렴치한 행위를 폭로하고 단호히 부정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스탈린주의자에 반대하는 자본가 계급은 이 건(件)에서는 이들의 기만술과 중상을 이용하고 있다.

1931년 6월 29일

 

 

선거 결과와 이것이 가리키는 전술

 

■ 이 글은 팸플릿 '스페인혁명과 이를 위협하는 위험'의 부록으로 〈반대파 회보〉에 게재된 것으로, 트로츠키가 스페인 좌익반대파 앞으로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1. 스페인의 선거 결과 제1보가 게재된 7월 1일자 프랑스 지방신문을 앞에 두고 있다.[6월 국회선거에서 왕당파 정당들이 대패하고, 공화주의 좌파가 다수를 장악했다.] 지금까지는 정말로 모든 것이 정확하게 '계획'대로 사태가 전개되고 있다. 운동은 마치 계획에 따르는 듯이 왼쪽으로 나아가고 있다. 우리의 스페인 동지들이 모든 자료를 취합한 다음, 대단히 신중하게 선거 결과를 분석하기를 바라자. 노동자, 특히 무정부적 조합주의자들이 어떻게 투표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 그 답은 몇몇 선거구의 선거통계에서 아주 명확하게 나올 것이다. 물론 각 지방의 농민이 어떻게 투표했는지를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동시에 각 당이 전국 각지에서 제출한 '농업강령'을 모두 취합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매우 긴급하고도 중요한 일이다.

2. 예상했던 대로 사회당은 대승을 거둘 것 같다. 이는 의회주의 국면의 중심적 문제이다. 사회당 지도자들은 의회의 과반수를 얻지 못해서, 따라서 자본가계급과의 연립정부가 의석통계에 의해 정당화되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사회당이 권력을 잡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히 사회당 정부가 단지 노동계급독재로 가는 길의 한 단계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프리에토의 연설을 뜯어보면, 사회당은 노동자계급을 제지할 수 있는 한, 연립정부를 지지할 작정이다. 그 다음에 노동자의 압력이 너무 거세지면, 일부 급진세력을 핑계 삼아 야당이 되어 노동자를 벌하거나 탄압하는 일을 자본가계급에게 맡겨버리려는 것이 분명하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에베르트와 체레텔리[프리드리히 에베르트(Friedrich Ebert, 1871-1925) : 독일사회민주당의 우파.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사회배외주의자. 1919년 독일의 대통령. 독일혁명을 탄압, 로자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의 암살에 관여했다.

이라클리 체레텔리(Iraklii Tseretelli, 1881-1959) : 멘셰비키 지도자. 1917년 2월 혁명 후, 유형지로부터 돌아와 페테르부르크 소비에트의 의장이 되었다. 5월, 우편전신장관으로 제1차 연립정부에 입각했다. 6월, 제1차 전러시아 소비에트대회 중앙집행위원회 의장. 7월사건 후, 제1차 연립정부의 내무장관. 1918년 그루지야의 멘셰비키 정부 수반이었다.]의 변종을 맞닥뜨리고 있는 것 이다. 에베르트의 방침이 성공을 거둔 반면에 체레텔리는 실패했으며, 두 경우 모두 공산당의 능력과 그 정책이 결정적 요인이었음을 기억하자.

3. 우리는 사회당의 계획(자신들이 지는 역을 맡은 게임)을 각각의 개별적 문제들에서 이들이 쓰고 있는 가면을 벗기면서 즉시 폭로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무엇보다도 스페인 좌익반대파의 일이다. 그러나 이들을 폭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스페인혁명의 현 단계의 성격에 부응하는 명확한 정치적 구호가 있어야 한다. 선거 결과는 이런 구호를 완전히 명백히 한다 : 노동자는 자본가계급과의 연립정부를 분쇄하고, 사회당의 권력 장악을 강제해야 한다. 토지를 얻고 싶다면, 농민은 노동자를 도와야 한다.

4. 사회당은 자신이 의회의 과반수를 얻지 못해서 자본가계급과의 연립정부를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이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18세 이상 남녀의 진정한 평등·보통선거에 근거한 민주적인 국회선거를 요구하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비민주적이고 조작된 국회에 대해 현 단계에서 진실로 대중적이고, 민주주의적이며, 공정하게 선출된 국회를 대치시키는 것이다.

5. 만약 공산주의자가 현 단계에서 국회를 무시하고 소비에트나 노동계급독재 구호를 대립시킨다면, 단지 자신이 진지하게 여길 수 있는 세력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는 꼴이 될 것이다. (신문에 따르면) 국회에서는 단 한 명의 공산주의자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 한다. 물론 혁명적 좌익은 언제나 대의제도에서 보다는 행동이나 투쟁 에서 더 강력한 영향력 을 발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정당의 능력과 의회의 그 대표자 사이에는 일정한 관계가 존재한다. 스페인 공산주의의 허약성은 충분히 드러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계급독재에 의한 부르주아 의회제도의 타도를 말하는 것은 백치나 수다쟁이 노릇을 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혁명의 의회주의적 단계에 근거하여 당세를 불리고, 주위로 대중을 결집시키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이것이 의회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지금 가장 결정적이고 급진적인 민주주의 구호 아래 격렬한 선동을 전개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6. 구호를 제기하는 기준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한편으로는 우리의 전략적 노선을 결정하는 혁명발전의 일반적 방향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의 의식 수준이다. 이러한 요인을 고려하지 않는 공산주의자는 목이 부러질 위험을 무릅써야 할 것이다.

스페인 노동자가 현 상황을 총괄해서 조망하는 방식을 잠깐 검토해 보자. 이들의 지도자인 사회당은 권력을 갖고 있다. 이것은 노동자의 요구와 완강함을 증대시킨다. 모든 파업노동자는 정부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도움을 기대할 것이다. 공산주의자는 바로 이런 길로 노동자의 사고를 지도해야 한다 : "정부에 대해 모든 것을 요구하라. 여러분의 지도자들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당은 노동자 대표단에게 자신들이 아직 과반수를 얻은 것이 아니라고 대꾸할 것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분명하다: 진정한 민주적 선거권 보장과 자본가계급과의 연립정부를 끝장내면, 과반수는 보장된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사회당이 원치 않는 것이다. 이들의 입장은 이들을 대담하고 민주주의적인 구호와 충돌에 처하게 한다. 만약 우리가 국회에 대해 노동계급독재나 소비에트를 단순 대치시킨다면, 노동자를 사회당으로 떠미는 꼴이 될 것이다. 왜냐 하면 노동자나 사회당 모두 공산주의자는 우리를 지배하고 싶어 한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자본가계급과 사회당의 연립정부 종식 구호를 내건다면, 우리는 노동자와 사회당 사이에 쐐기를 박고, 혁명의 다음 단계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7. 우리가 민주주의 구호를 단지 의회주의적 의미로만 한정시킨다면, 위에서 언급한 고려사항들은 모두 그 의미를 상실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공산주의자는 모든 파업, 모든 항의 시위에 참가하여 수많은 계층을 더욱 더 분기시킨다. 공산주의자는 모든 투쟁에서 대중과 함께, 그리고 대중의 선두에 선다. 이러한 투쟁에 기초하여 공산주의자는 소비에트 구호를 제기하고, 기회가 닿는 대로 노동자 공동전선 조직인 소비에트를 건설한다. 현 단계에서 소비에트는 다른 것 일 수 없다. 그러나 소비에트가 노동자 공동전선의 전투조직으로 부상한다면, 일정 단계에서는 공산주의자의 지도 아래 불가피하게 봉기기관이 될 것이며, 그 다음에는 권력기관이 될 것이다.

8. 농업강령을 대담하게 전개하면서 우리는 농업노동자의 독자적 역할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이들은 농촌지역에서 노동자혁명의 가장 중요한 매개자이다. 노동자는 농민과 동맹을 맺지만, 농업노동자는 노동자계급 자신의 일부이다. 이런 중대한 차이를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9. 지주 토지의 즉각적 몰수에 내가 개인적으로 반대할 뿐만 아니라 좌익반대파 전체도 그렇다고 스탈린주의자가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을 〈라베리테〉지[〈라베리테〉(La Verite, 진실) : 프랑스 좌익반대파의 기관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정말로 관료적 참주선동이 다음번에 어느 방향을 향할지 예측한다는 것은 절대로 불7}능하다. 지주 토지의 '즉각적' 몰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구에 의해? 어떤 조직에 의해? 타의 주중을 불허하는 페리는 4월에 스페인 농민이 소비에트를 건설하고, 노동자는 모두 공산주의자를 뒤따르고 있다고 주장했었다. 물론 우리는 소비에트(또는 훈타나 위원회)가 즉시 대지주의 토지를 탈취해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여전히 농민을 일으켜 세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노동자를 사회당의 영향에서 떼어낼 필요가 있다. 이 두 가지는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스탈린주의자는 어쩌면 우리의 이런 태도를 두고 우리가 지주의 토지 소유를 비호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중상에도 약간의 논리가 있어야 한다. 연속혁명의 입장에서 어떻게 지주의 토지 소유를 옹호하는 논리가 나올 수 있는가? 설명을 해보라.

중국의 스탈린주의자가 4계급 블록정책을 추구할 때, 스탈린 지도하의 정치국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앞으로 전보를 보내, '혁명적 장군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 농민운동에 브레이크를 걸라고 요구했음을 상기시키고자 한다. 스탈린과 몰로토프는 농업강령에 약간의 제한조건을 달았다 : 지주의 토지를 몰수하되, 장교의 토지는 제외한다. 그런데 지주와 그 아들과 조카가 모두 장개석 군대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혁명적' 장교를 제외한다는 조건은 결국 지주의 토지를 보호하는 조치였다.

스탈린주의자의 지도 경력에서 이 수치스런 사건을 말소시킬 수 없다. 당시, 정치국 회의록 안에서 이 전보의 복사본을 발견한 반대파는 농업혁명에 대한 이 파렴치한 배반을 폭로하고 규탄했다. 지금 이 신사양반들은 자신들이 중국에서 범한 범죄를 스페인에서 우리에게 뒤집어씌우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천만부당하기 때문에 결코 성공하지 못 할 것이다. 지금 거의 모든 나라에 지부를 가지고 있는 반대파는 이들이 우리에 대한 거짓말과 음담을 마구 유포시키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스페인혁명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좌익반대파는 모든 기본적인 과제들을 해결하고, 거대한 전진을 이룰 것이다. 혁명이 괜히 역사의 기관차인 것이 아니다.

 

1931년 7월 1일

 

 

스페인 공산주의와 카탈로니아연합

 

■ 이 글은 팸플릿 '스페인혁명과 이를 위협하는 위험'의 부록으로 〈반대파 회보〉에 게재된 것으로, 트로츠키가 스페인 좌익반대파 앞으로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가장 유해하고, 위험하며, 정말로 가장 불길한 사태는 카탈로니아, 스페인, 그리고 전 세계 노동자들의 마음속에 우리가 카탈로니아연합의 정책과 견해를 같이 한다거나, 이들을 책임지고 있다거나, 심지어 중도주의 그룹보다 카탈로니아연합에 더 가깝다는 생각을 조장하는 것이다. 스탈린주의자는 전력을 다해 이런 식의 주장을 펴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에 대한 투쟁을 단호하게 벌이지 않았다. 이러한 오해는 우리의 명예를 대단히 실추시키고, 카탈로니아와 스페인 노동자의 발전을 방해하기 때문에 이런 오해를 떨쳐버 리는 것은 그만큼 더 중요하고 긴급하다.

물론 카탈로니아연합에 대한 비판은 주로 카탈로니아의 우리 지지자들에게 달려있는 임무이다. 이들은 명확하고 공개적이며 정확한 비판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한다. 소부르주아적 편견과 무지, 편협한 '지식'과 정치적 왜곡의 혼합물인 우린의 정책을 남김없이 비판해야 한다.

국회선거에서 카탈로니아연합은 약 1만 표를 얻었다. 이것은 많은 것이 아니다. 물론 혁명적 시기에 진정한 혁명조직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1만 표의 의의를 크게 떨어뜨리는 사정이 있다. 국회선거에서 카탈로니아연합은 바르셀로나一가장 중요한 혁명 중심지一에서 지방자치선거 때보다도 더 적은 표를 얻었다. 얼핏 사소하게 보이는 이 사실은 거대한 징후적 의의가 있다. 이것은 가장 외딴 지방에서도一매우 미약할지라도一카탈로니아연합으로 향하는 노동자의 움직임이 있는 반면에, 마우린의 혼란은 바르셀로나에서 노동자를 끌어당기기는커녕 쫓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물론 마시아의 필연적인 파산은 두 번째 차악(lesser evil)인 마우린을 도울 수도 있다. 그러나 카탈로니아연합 현 지도부의 무기력은 국회선거를 통해 완전하게 증명되었다. 혁명 3개월 동안 바르셀로나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지 않기 위해서는 정말로 머 리를 짜내는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다!

혁명정치의 말로 카탈로니아연합을 표현하자면 어떻게 되는가? 공산주의 조직인가? 만약 그렇다면 정확하게 우파인가 좌파인가, 그도 아니면 중도주의인가? 혁명적 노동자, 잠재적 공산주의자가 카탈로니아연합에 표를 던진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들의 생각으로는 아직 명확치가 않다. 그리고 이런 노동자가 동요분자에 의해 지도되고 있다면, 명확성은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 이런 상황에서 가장 단호하고 대담하고 결연한 노동자는 불가피하게 공식 공산당에 의지하려고 할 것이다. 공식 공산당은 바르셀로나에서는 170표, 카탈로니아 전체에서도 약 1천 표 밖에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분자들이 더 나쁜 것 같지는 않다. 반대로, 이런 분자들의 대부분은 우리가 기치를 내걸면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될 것이다.

1917년 혁명 초에 러시아사회민주주의 조직의 대다수는 복합적 성격을 띠었으며, 대오 내에 볼셰비키, 멘셰비키, 화해주의자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모든 정파의 통합을 목표로 하는 경향은 레닌이 도착하기 며칠 전인 3월말에 열린 볼셰비키당 협의회에서 스탈린이 멘셰비키와의 통합을 선언했을 정도로 매우 현저했다. 일부 지방조직들은 10월 혁명 직전까지 여러 경향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카탈로니아연합을 이와 비슷한 종류의 복합적 조직, 미래의 볼셰비키와 미래의 멘셰비키를 모두 포함한 애매한 조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카탈로니아연합 내의 정치적 분화를 일으키려는 방침을 정당화한다. 이 길로 내딛는 제1보는 마우린주의 의 정치적 천박함을 비판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사정을 봐줘서는 안 된다.

그렇지만 카탈로니아연합과 러시아의 통합조직 사이의 유사함은 중요한 점에서 제한적이다. 러시아의 통합조직은 기존의 사회민주주의 그룹을 배제하지 않았다. 모든 조직이 통합조직 안에서 자신의 소신을 위해 싸울 권리가 있었다. 카탈로니아연합 안에서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여기서 '트로츠키주의'는 금지되어 있다. 동요분자들은 자신의 혼란을 옹호할 권리가 있지만, 볼셰비키-레닌주의자는 공개적으로 항의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복합적이고 절충적인 통합조직은 처음부터 좌익을 배제한다. 바로 이 사실로 인해 카탈로니아연합은 중도주의와 우익적 경향의 지리멸렬한 블록이 되었다. 중도주의는 좌익으로도 우익으로도 발전할 수 있다. 혁명 중에 좌익을 배격한 카탈로니아연합의 중도주의는 추잡한 파멸을 하게 되어있다. 좌익반대파의 임무는 가차 없는 비판으로 이 파멸을 앞당기는 것이다.

그러나 대단히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는 사실이 한 가지 더 있다. 카탈로니아연합은 공식적으로는 모든 공산주의 조직과 그룹의 통합에 찬성한다. 이 구호에 대해 온갖 환상을 가지고 있더라도 일반 당원들이 이 통합을 진지하고 성실하게 바라고 있음은 확실하다. 우리는 이 런 환상을 조금도 공유하지 않는다. 우리는 통합을 위해 싸운다. 왜냐하면 통합당의 중핵들 사이에서 외부에서 억지로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페인혁명 자체의 발전에서 생기는 문제와 임무에 근거한 이데올로기적 분화라는 진취적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든 점에서 공산주의자의 통합을 위한 투쟁을 지지한다. 이 통합의 기본적 조건은 통합조직의 중핵들 사이에서 우리의 입장과 구호를 위해 싸울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 투쟁에 끝까지 성실하게 임할 것을 약속할 수 있고, 또 약속해야 한다. 그러나 이 기본적 조건은 카탈로니아연합에 의해 처음부터 배제되고 있다. 즉, 이들은 통합의 기치를 내세우는 한편으로 볼셰비키-레닌주의자를 그 대오에서 추방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공산주의 정당의 통합을 위한 투쟁에서 카탈로니아연합이 지도적 역할을 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우리 쪽에서 볼 때 제일 어리석은 짓이다. 통합대회에서 마우린은 제1 바이올린을 연주할 준비를 한다. 이 역겨운 위선에 침묵을 지킬 수 있는가? 마우린은 좌익반대파와 싸우면서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환심을 사기위해 이들을 흉내내고 있다. 사실, 그는 스탈린주의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 다: "나에게 당신의 축복을 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보조금을 주세요. 그러면 억지 춘향이가 아니라 진심을 다해 볼셰비키-레닌주의자와 싸울 것을 약속합니다.“

마우린의 통합 활동은 스탈린주의자를 공갈 협박하는 한 형태일 뿐이다. 이에 대해 입을 다문다면, 우리는 혁명가가 아니라 정치적 공갈 협박의 수동적인 공범자가 될 것이다. 우리는 공산주의 대오의 진정한 통합을 위한 투쟁을 단 한순간도 소홀하지 않고, 또 공산주의 대오를 우리의 기치로 설득하기 위한 투쟁을 약화시키지 않고 마우린의 역할 즉, 그의 엉터리 '통합'활동을 가차 없이 비판해야 한다.

국제좌익반대파는 지금 곧 활동의 10분의 9를 스페인에 집중해야 한다. 스페인어 주간지와 카탈로니아어 '정기간행물을 발행할 수 있도록, 동시에 팸플릿을 대량으로 배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른 모든 지출을 줄여야 한다. 스페인 좌익반대파를 최대한 지원하기 위해 예외 없이 다른 모든 지출에 대한 제한을 검토해야 한다.

내 생각으로는 국제서기국도 스페인혁명 문제에 90%의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이 세상에 온갖 종류의 란다우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정말로 잊혀져야만 한다. 단 1분도 허비하는 일 없이 모든 반목, 모든 음모와 음모자를 무시해야 한다.

스페인혁명이 일정에 올라 있다. 가장 중요한문서는 지체 없이 번역되고, 필요한 비판을 받아야 한다. 〈국제회보〉의 다음 호는 모조리 스페인혁명에 충당되어야 한다. 동시에 일련의 조직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람과 물질적 수단아 필요하다. 둘 다 모두 찾아내야 한다.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더 큰 죄악은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

 

1931년 7월 8일

 

 

혁명에서 파업의 역할

 

■ 이 글은 1943년 10월〈제4 인터내셔널〉지에 처음 게재되었다. 〈제4 인터내셔널〉은 미국사회주의 노동자당의 이론잡지이다.

 

이 편지의 목적은 스페인에서 일어나고 있는 폭풍 같은 파업 물결[친滅)공화주의 정당들이 압도적 다수를 획득한 1931년 6월의 국회선거 직후, 전국노동자연맹은 일련의 파업을 지령했다. 정부는 포병대를 출동시켜 파업을 진압하게 했다. 그 결과, 수많은 노동자가 사상 당했다.]에 즈음하여 우리의 견해를 나누려는 것이다. 스페인혁명에 관한 두 번째 팸플릿('스페인혁명과 이를 위협하는 위험')에서 나는 일어날 수 있는 전망 가운데 하나로, 혁명운동이 올바른 지도부 없이 맹렬히 발전하고, 노동자계급을 분쇄하기 위해 반(反)혁명세력이 이용할 수도 있는 폭발로 끝이 난다고 지적한 바 있다. 물론 이 전망은 팸플릿에서 지적한 것처럼, 공산주의자의 역할이 혁명운동을 제지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견해 차이가 없다고 확신하지만 나는 이 문제를 더 철저하게 분석하고 싶다. 왜냐하면 이 문제가 커다란 실천적 중요성을 갖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격렬한 힘으로 분출하는 현재의 파업은 어떤 의미로는 그 토대인 혁명 자체의 성격에서 나오는 불가피한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스페인 노동자계급의 압도적 다수는 조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잘 모른다. 새로운 노동자 세대가 자란 독재시기에도 독자적안 정치적: 경험 없이 견뎠다. 혁명은 가장 후진적인, 혹사당하는, 가장 억압받는 근로대중一그리고 이 안에 있는 그 힘一을 각성시킨다. 파업은 근로대중 이 자각하는 형식이다. 파업을 통해 노동자계급의 다양한 층과 그룹 스스로가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며 자신의 힘과 적의 힘을 확인한다. 한 계층이 자각하고, 다른 계층에 영향을 미친다. 이 모든 것이 다 절대로 피할 수 없는 현재의 파업 물결을 만든 것이다. 공산주의자는 특히 파업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파업이야말로 혁명의 창조력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오류에도 불구하고, 그 '과도'와 '과장'에도불구 하고 이런 파업을 통해서만 노동자계급은 스스로 일어서고, 스스로를 부대로 조직하고, 스스로를 하나의 계급으로, 살아있는 역사의 힘으로 생각하고, 느끼기 시작한다. 혁명은 결코 지휘자의 지휘봉에 따라 발전하지 않는다, 과도, 오류, 희생은 모든 혁명의 본질인 것이다.

공산당이 노동자에게 "나는 여러분을 지도하기에는 아직 힘이 너무 없다. 그러니까 조금 기다려라. 너무 압박하지 마라. 파업을 통해 싸움을 시작하지 마라. 더 강해지도록 내게 기회를 달라"고 말했다면, 당은 대책 없이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이며, 자각한 대중은 당을 지나쳐버릴 것이다. 따라서 당은 더 강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약화될 뿐이다.

여러분이 역사적 위험을 올바르게 예측하더라도 이것은 여러분이 추론만으로 위험을 제거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위험은 여러분이 필요한 힘을 가질 경우에만 제거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힘을 갖기 위해서 공산당은 '초보적' 또는 준(準)초보적 파업운동이 발전하는 투쟁의 장에 진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를 제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를 지도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 그리고 투쟁의 과정 자체에서 권위와 힘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현재의 운동이 무정부적 조합주의에 의해 야기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일 것이다. 무정부적 조합주의는 아래로부터 조금도 굽히지 않는 압력을 받는다. 조합주의의 지도적 그룹은 운동을 늦추고 싶어 한다. 페스타냐 같은 개인들은 파업을 청산하는 가장 좋은 방법에 대해 고용주나 행정부와 막후에서 협상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이 신사양반들의 대다수는 내일 노동자의 사형집행인으로 판명될 것이며, 러시아 멘셰비키와 같이 자신들이 노동자를 불질한 '파업 열기에 반대하는 설교를 할 것이다.

이 방향을 따라 무정부적 조합주의자 사이에서 분화가 일어날 것이 확실하다. 더 나아가 가장 혁명적인 분파는 조합주의적 개량주의자와 점점 더 충돌할 것이다. 이로부터 좌익 폭동주의자, 영웅적 모험주의자, 개인적 테러리스트 등이 불가피하게 끓어오를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는 어떤 종류의 모험주의도 조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파업에 맞서 싸우는 우익이 아니라 혁명적 좌익 조합주의 자가 우리에게 더 가깝다는 것을 사전에 확실히 해야 한다. 이것은 온갖 종류의 모험주의적 요소의 극복을 그만큼 더 쉽게 할 것이고, 곧이어 혁명적 조합주의자가 공산주의자는 합리주의자가 아니라 투사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공식 당은 파업 중에 모험주의적 정책을 비난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정보 부족 때문에 이 문제에서 판단이 서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전 시기에 당의 일반적 태도는 이 비난을 아마도 정당화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러나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손을 덴 적이 있는 당이 갑자기 우경화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이 있다. 가장 큰 불행은 노동자 대중이 페스타냐 같은 조합주의자와 꼭 마찬가지로 공산주의자도 위에서 아래로 노동자에게 독단적으로 지시하고 싶어 하며, 따라서 노동자를 아래로부터 위로 끌어올리려 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요약하면, 긴 안목에서 가장 중대한 6월시기의 위험이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자에게 가장 당면한 위험은 추상적인 주장을 하고, '지식인처럼 보이려고하고', 추상적인 말로 구슬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혁명적 노동자는 이를 비관적인 불평으로 간주할 것이다.

좌익반대파는 혁명의 발전에서 생기는 위험은 주의 깊은 경계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담함, 대담함, 더 큰 대담함에 의해서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을 단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1931년 8월 2일

 

 

〈엘 소비에트〉지를 환영한다.

 

■ 이 글은 스페인 좌익반대파의 주간지〈엘 소비에트〉창간에 즈음하여 보낸 인사말이다. 이 주간지 자체는 단명으로 끝났다.

 

친애하는 동지들,

여러분은 주간지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은 중대한 일보전진이다. 이 한 걸음에 뒤이어 즉시 몇 걸음 더 나아가기를 희망하자.

다른 곳에서처럼, 스페인의 공산주의도 우파, 중도파, 좌파 등 3개 분파로 나뉘어 있다. 우파는 그 나라의 조건에 따라 사회민주주의, 노동조합주의나 조합주의 등과 공산주의의 조합을 나타낸다. 다른 나라들에서처럼, 스페인에서도 코민테른의 공식 대표는 중도주의자들 즉,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와 '공산주의적' 기회주의의 여러 양상 사이에서 동요하는 자들 수중에 있다.

코민테른에서 중도주의의 힘은 그것이 소련 국가권력에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이런 현재 상황에서 중도주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적인 경향, 일개 분파일 뿐만 아니라 강력한 관료적 국가기구이기도 하다. 코민테른의 권위뿐만 아니라 그 물질적 자원까지 제멋대로 이용하여 형식적이고, 혼란스럽고, 모순된 정책을 수행함으로써 중도주의는 세계의 노동자계급 전위에게 참혹한 피해를 안겨 주었으며, 이미 몇 번의 혁명을 파국으로 이끌었다.

중도주의 관료집단의 비행 때문에 스페인공산당은 혁명 초에는 비참하기 이를 데 없는 극소수 세력에 지나지 않았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각국 지부에 잘못된 정책을 강요하는 동시에 자신에 대한 어떠한 비판도 허락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노동자전위와 교육을 방해하고, 독자 적이고 자신 있는 강력한 공산당 건설을 가로막고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 눈앞에서 매우 강력하게 발전하고 있는 스페인혁명을 위협하는 주된 위험이다.

볼셰비키-레닌주의자(좌익반대파)의 원칙적 입장의 올바름은 거대한 국제적 사태 발전, 특히 스페인혁명의 전진 전체에 의해 강화되어왔다. 혁명의 발전에서 사사건건 허를 찔린 공식 공산당은 우리의 비판에 입각하여, 우리의 원칙적 노선을 이용하여 자신의 오류를 조금씩 교정하고 있다. 왜냐하면 중도주의 자체는 내용이 없고, 따라서 무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볼셰비키-레닌주의 분파에게는 올바른 원칙적 입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것을 매일의 사건에 올바르게 적용해야 한다. 혁명전략은 거기에 합당한 전술을 요구한다.

주간지의 중요성은 그것이 스페인의 좌익반대파로 하여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을 대 면하게 하고, 그에 대한 전투적 대답을 즉시 제출하게 한다는데 있다. 주간지 창간으로 스페인의 좌익반대파는 더 높은 단계로 올라설 것이다.

특히 격렬한 격동기에 노동자계급은 일관된 혁명적 입장에 근거해서만 결집될 수 있다. 이것이 스페인 레닌주의자들인 여러분의 역사적 사명이다. 여러분은 2배, 3배, 10배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볼셰비키-레닌주의자의 목소리가 나라 곳곳에서, 모든 대중집회에서 울려 퍼지도록 해야 한다. 여러분이 명예로 여겨야 할 임무이다. 혁명은 기다리지 않는다. 사태에 뒤처지는 자에게 재앙이 있을 지어다! 나는 여러분이 뒤처지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1931년 9월 29일

 

 

스페인청년에게

■ 이 글은 미국 공산주의자동맹(CLA)의 청년조직인 [청년 스파르타쿠스동맹]의 월간지〈영 스파르타쿠스〉(Young Spartacus) 1933년 3월호에 게재되었다.

 

친애하는 동지 여러분,

여러분이 독자적인 신문 발행에 착수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청년을 교육시키지 않는 혁명적 경향은 성공하지 못하고 사라질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공산주의는 모든 세대가 그 완전한 실현을 요구하는 대단히 중대한 유일무이한 과제입니다. 노동자혁명은 세대 간의 연속성을 필요로 합니다. 이 연속성을 보증하는 것은 청년의 사명입니다. 즉, 여러분의 사명입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주의의 힘은 과학적 이론과 혁명적 투쟁의 통일에 있습니다. 이 두 레일을 따라 청년 공산주의자의 교육이 진행되어야 합니다. 혁명적 투쟁의 외부에서 마르크스주의를 배운다면, 독서가는 될 수 있어도 혁명가는 될 수 없습니다. 혁명적 투쟁에 참여하더라도 마르크스주의를 배우지 않으면, 위험하고, 불확실하며, 애매모호한 상태에 빠지는 것을 모면하기 어렵습니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마르크스주의를 배운다는 것은 계급의 삶과 투쟁에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혁명이론은 실천에 의해 검증되고, 실천은 이론에 의해 명확해집니다. 투쟁을 통해 획득된 마르크스주의의 진리만이 지력(知力)이 되고, 생명력을 갖게 됩니다.

며칠 전에 소비에트 연방으로부터 받은 편지에 따르면, 끔찍한 박해, 체포, 추방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조직과 새로운 좌익반대파(볼셰비키-레닌주의자)그룹이 모든 산업 중심지에서, 특히 청년 사이에 결성되고 있다고 합니다. 혁명이론에 의지하고 있는한, 어떠한 탄압도 혁명적 연속성을 단절시킬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신문이 이론과 실천의 통일이라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를 나는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이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오류를 저지를 것입니다. 그러나 약간의 혁명적 경험을 가진 노련하다는 우리 역시 필요 이상으로 자주 오류를 저지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오류로부터 배울 것입니다. 제2보, 제3보는 제1보보다 확실해질 것입니다.

나는 공장과 광산에서 투쟁을 전개하다 그 대부분이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감옥이나 유형수용소에 흩어져 있는 우리의 동지인 수많은 러시아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을 대표하여 스페인의 청년 노동자 공산주의자들에게 마음속에서 우러난 인사를 보냅니다.

L.D. 트로츠키 드림

1932년 6월 13일

 

 

스페인의 '코르닐로프들'과 스페인의 '스탈린주의자'

 

■ 이 글에서 트로츠키는 스페인혁명이 비교적 완만한 템포로 발전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실제로 스페인혁명이 정점으로 치달은 것은 이로부터 4년이 지난 뒤였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프라우다〉지는 독일에 대해서 계속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를 만회하려고 9월 9일자에는 스페인에 관한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는 매우 교훈적이다. 분명히 이 기사는 스페인혁명을 간접적으로 밖에 조명하고 있지 않지만 그 대신에,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정치적 경련을 선명하게 비추고 있다.

이 기사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1월 총파업의 패배 뒤, 트로츠키주의자(여기에는 어떤 의식적(儀式的) 모욕이 담겨있다-트로츠키)는 혁명이 패배했으며, 퇴조의 시기가 왔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사실인가? 올해 1월에 혁명을 장사지낼 준비가 된 혁명가들이 스페인에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들은 좌익반대파와 아무런 공통점도 없고, 또 있을 수도 없다. 혁명가는 객관적인 징후가 의문의 여지를 남기지 않게 될 때까지, 혁명기가 끝났음을 인정할 수 없다. 볼셰비키-레닌주의자가 아니라 가련한 인상주의자만이 의기소침해진 기분에 근거하여 비관적 예측을 할 수 있다.

우리는 '스페인혁명과 이를 위협하는 위험'이라는 팸플릿에서 스페인혁명의 일반적 발전 경로와 그 가능한 템포 문제를 검토했다. 1917년의 러시아혁명은 그 정점에 이르는데 8개월이 걸렸다. 그러나 스페인혁명도 이 정도의 지속기간이 필수적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프랑스대혁명의 경우, 거의 4년이 다 되어서야 비로소 자코뱅에게 권력을 부여했다. 프랑스혁명이 완만하게 발전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코뱅 당 자체가 혁명의 불꽃 속에서만 형성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조건은 스페인에도 존재한다. 공화주의 혁명 시기에 공산당은 아직 유아기에 있었다. 다른 이유뿐만 아니라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스페인 혁명이 아마도 의회주의적 단계를 포함한 일련의 단계를 거쳐 완만하게 발전할 것으로 생각했다.

동시에 우리는 혁명의 조수는 밀물과 썰물이 있음을 상기시켰다. 덧붙이자면, 지도부의 수완은 혁명의 쇠퇴기에 공세를 명령하지 않는 것, 그리고 상승기에 퇴각을 명령하지 않는 것에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특히 혁명의 특수한 '국면적' 동요를 그 기본적인 리듬과 혼동하면 안 된다.

1월 총파업의 패배로 인해 스페인에서 혁명이 부분적인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분명했다. 수다쟁이와 모험가만이 혁명의 쇠퇴를 무시할 수 있다. 그러나 겁쟁이와 도망자만이 부분적인 쇠퇴를 이유로 혁명의 청산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 혁명가는 마지막에 전장(戰場)을 떠난다. 아직 살아있는 혁명을 장사지내는 혁명가는 그 누구든 총살되어 마땅하다.

스페인혁명의 부분적인 퇴각과 소강상태가 반(反)혁명을 촉진했다. 중대한 투쟁에서 패배하고 나면 대중은 퇴각하여 사실상 침잠한다. 충분히 단련되지 않은 지도부는 대개 패배의 정도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 모든 것은 반(反)혁명 진영의 과격파를 부추긴다. 이것이 산후르호 장군이 기도한 왕당파 쿠데타의 정치적 메커니즘이다. 그러나 특히 날카로운 채찍질 소리처럼, 대중을 일깨우는 것은 인민의 불구대천의 원수가 불쑥 무대로 뛰어오르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혁명적 지도부는 기습을 당하기 십상이다.

〈프라우다〉지는 '장군들의 반란이 신속하고 손쉽게 진압되었다는 것은 혁명의 힘이 약화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8월 10일의 사태에서 혁명적 고양은 새로운 추진력을 획득했다'고 쓰고 있다. 이것은 완벽한 사실이다. 이 기사 전체에서 이 구절만이 유일하게 올바르다고 말할 수도 있다.

스페인의 공산당은 이 사태에 기습당했는가? 〈프라우다〉지의 기사만을 놓고 볼 때, 긍정적으로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기사는 '노동자가 장군을 패배시키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왕당파의 쿠데타에 대한 노동자의 혁명적 개입이 없었다면, 분명히 산후르호가 아니라 사모라가 추방당했을 것이다. 바꿔 말하면, 노동자는 자신의 영웅적 행위와 생명을 희생하여 공화주의 자본가계급이 계속 권력을 유지하도록 도왔던 것이다. 〈프라우다〉지는 이를 못 본 체하면서 '공산당은… 현재의 반(反)혁명적 정부를 정말로 털끝만큼도 지지하지 않는 식으로 우익 쿠데타에 대항하여 싸웠다'고 쓰고 있다.

공산당이 무엇을 의도하고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 노력의 결과이다. 공화주의자가 왕당파를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유산계급의 왕당파는 공화주의자를 제거하려고 했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이 등장했다. '노동자가 장군을 패배시켰다.' 왕당파가 추방되고, 공화주의 자본가계급이 권력에 머물렀다.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공산당은 어떻게 '현재의 반(反)혁명적 정부를 털끝만큼도 지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인가?

이상의 주장을 볼 때, 공산당은 왕당파와 공화주의 자본가계급의 충돌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이해하는 것인가? 이러한 정책은 자살행위가 될 것이다. 예컨대,1923년에 불가리아 공산주의자들의 경험을 통해 이미 보았다.[반동 짠코프(Tsankov)가 스탐불리스키(Stambuliski)의 '농민' 정부를 전복한 1923년 9월에 불가리아공산당은 중립을 지켰다. 기회를 놓치고 난 뒤에 공산당은 짠코프에 대항하여 봉기를 일으켰지만 분쇄되었다.] 스페인 노동자스스로가 권력을 장악할 만큼 강력했을 경우에만 왕당파와의 결정적인 투쟁에 임하면서도, 자신의 적인 공화주의 자본가계급을 한순간도 돕지 않을 수 있다. 1917년 8월의 러시아 볼셰비키 당은 1932년 8월의 스페인공산당보다 훨씬 더 강력했다. 그러나 실제로 볼셰비키당은 아무리 해도 코르닐로프에 대한 투쟁에서 직접 권력을 획득할 수 없었다. 코르닐로프주의자에 대한 노동자의 승리 덕분에, 케렌스키 정부는 2개월 더 연명했다. 볼셰비키 수병 부대가 코르닐로프에 대항하여 케렌스키의 동궁을 지킨 것을 다시 한 번 상기하자.

스페인 노동자계급은 장군들의 반란을 압도할 만큼 강력했지만, 권력을 장악하기에는 너무도 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의 영웅적 투쟁은 공화주의 정부를一일시적일뿐일지라도一강화 시킬 수밖에 없다. 사태에 대한 분석을 상투적 어구로 대체하는 경망스 러운 주관주의자만이 감히 이를 부정할 것이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불행은 독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에서도 적(enemy) 진영 내에 존재하는 실제적 모순, 즉 살아있는 계급과 그 투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파시스트' 프리모 데 리베라가 '사회파시스트'와 동맹을 맺고 있는 '파시스트' 사모라로 대체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을 가지고 있으니까 왕당파와 공화주의자의 충돌과 관련한 대중의 개입이 스탈린주의자를 깜짝 놀라게 했던 것도 뜻밖의 일은 아니다. 고유한 본능에 따라 계급투쟁에 몸을 던진 대중은 공산당을 투쟁에 끌어들였다. 장군들에 대한 노동자의 승리 뒤에,〈프라우다〉지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조각들을 이어 붙이기 위해 자기 이론의 파편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이것이 공산당은 부르주아 정부를 '털끝만큼도 지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은 허장성세의 주요한 의도이다.

실제로 공산당은 정부를 객관적으로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기사 자체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주관적으로도 정부와 차별화 할 줄 몰랐다.. 이 점에 대해서 기사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모든 당 세포나 모든 지방조직에서, 공산당은 자신의 진면목을 충분히 보여주거나, 스스로를 사회파시스트나 공화주의자의 책략에 대치시키는 데서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것이 성공했으면, 당은 왕당파뿐만 아니라 왕당파의 피난처인 "공화주의" 정부와도 싸우고 있음을 증명했을 것이다.' 모든 스탈린주의 문서에서 나타나는 '모든 세포에서는 아니다', '모든 조직에서는 아니다' 등의 말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것들은 사상의 비겁함을 은폐하려고 고안된 것이다. 1928년 2월 15일, 스탈린은 처음으로 쿨락은 좌익반대파의 고안물이 아님을 인정했다. 그는 〈프라우다〉지에서 '일부 부문에서, 일정 지역에서....' 쿨락이 출현했다고 말했다.

오류는 명령을 실행하는 사람들에게서 발생하는 것으로 인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분명히 '일부 지역에서'만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당은 그 지방조직의 합과 같을 뿐이다.

실제로 방금 든 인용문은 그 관료적 발뺌을 제거해버리면, 다음을 의미한다 : 왕당파와의 투쟁에서 공산당은 '그 얼굴을 드러낼' 줄도 몰랐다. 당은 '사회파시스트'나 공화주의자에 대해서 스스로를 대치시킬 줄도 몰랐다. 바꿔 말하면, 당은 부르주아나 사회민주주의 정부에 대해 일시적인 군사적 지지를 보내는 것뿐만 아니라 투쟁 중에 정부를 희생시켜서 스스로를 강화시킬 줄도 몰랐다.

스페인 공산당의 허약함一코민테른 추종자의 정책으로 인한一은 1932년 8월 10일에 노동자계급이 권력에 이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동시에, 당은 일시적인 공동전선의 좌익으로서 투쟁에 참가하는 것을 피할 수 없게 했으며, 실제로 참가했다. 이 공동전선의 우익에는 공화주의 자본가계급이 참가하고 있었다. 이 연립의 지도부는 투쟁에 재갈을 물리고, 대중을 억누를 경우에는 그 '얼굴'을 드러내는 것을 단 한순간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장군들에 대해 승리를 거두자마자 공산당과의 투쟁으로 나아갔다. 스페인의 스탈린주의자에 관한 한, 러시아 스탈린주의자의 증언에 따르면, '당은 왕당파뿐만 아니라 "공화주의" 정부와도 싸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없었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사태 직전에 당은 자신의 모든 적을 같은 색깔로 칠해버렸다. 투쟁의 최고점에서 당은 스스로 적의 색깔로 염색했으며, 공화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에게 일시적으로 지도적 지위를 잃었다. 관료적 중도주의의 기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만이 이것에 깜짝 놀랄 것이다. 이론적으로(여기서 이 말을 쓸 수 있다면), 관료적 중도주의는 정치적•계급적 구별을 하는 것에 대한 일반적 거부로 스스로를 기회주의적 일탈로부터 보호한다. 후버, 픈 파펜, 반더벨드[하버트 후버(Herbert Hoover, 1874-1964): 미국의 공화당 정치가. 1929~32년 미국대통령. 프란츠 폰 파펜(Franz von Papen, 1879-1969):프로이센의 토지귀족인 융커의 대표로, 가톨릭중앙당의 지도자. 1932년 6월 1일 힌덴부르크에 의해 수상에 임명되었다. 7월 20일 쿠데타를 강행, 프로이센의 브라운 사회민주당 정부를 해산시키고, 자신이 프로이센 총독으로 취임했다. 1933년 1월 히틀러 내각의 부수상이었다.

에밀 반더벨드(Emile Vandervelde, 1866-1938):벨기에노동당과 제2인터내셔널의 지도자. 전시 내각에 입각한 최초의 사회주의자로, 국무장관, 식량장관, 육군장관 등을 역임. 베르사유 조약의 서명자. 1925~27년에 외무장관으로 로카르노 조약 체결에 진력했다.]

간디, 라코프스키도 모두 '반(反)혁명가'이고, '파시스트'이고, '제국주의의 하수인'이다. 그러나 실제로 사태의 돌연한 전환이나 새로운 위험이 발생할 때마다, 스탈린주의자는 어떤 적에 대한 투쟁에 참가하고, 다른 '반(反)혁명가'나 '파시스트'에게 무릎 꿇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전쟁의 위험에 직면하자, 스탈린주의자는 암스테르담에서 외교적이고, 타산적이며, 줏대 없는 결의문에 찬성했다. 이 결의문은 폰 쇠나이히장군[파울 폰 쇠나이 히(Paul von Schoenaich, 1886~1954): 독일의 융커 출신 해군장교, 평화주의자로 변신해 소련에 호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프랑스의 프리메이슨, 간디를 최고의 이상으로 삼고 있는 인도의 부르주아 파텔[V.J.파텔(Valabhbhai Patel,1877-1950):인도국민회의 의장. 인도의 독립운동을 지도했다. 1947년, 독립 후 네루정부의 내무장관.]이 제의했다. 독일 제국의회에서 공산당은 국가사회주의자(나찌) 대통령의 선출을 저지하기 위해서, '사회파시스트' 대통령에게 찬성 투표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느닷없이 선언했다. 즉, 공산당은 스스로를 완벽하게 '보다 작은 악'이라는 근거위에 위치 짓는다. 스페인에서는 위기의 순간에 공화주의 자본가계급에 저항할 수 없음을 드러냈다. 여기서 우리가 다루고 있는 것은 우발적인 오류나 "몇몇' 세포가 아니라 관료적 중도주의의 유전적 결함이라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두 착취자 진영 사이의 충돌에 개입한 노동자대중은 스페인혁명의 중대한 전진을 촉진했다. 아사냐 정부는 대지주의 토지 몰수를 명령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몇 주 전에 이 조치는 은하수만큼이나 멀리 떨어진 것이었다. 만약 스페인공산당이 현실의 계급과 그 정치조직 사이의 차이를 주목했다면, 만약 사태의 실제적 발전을 예측했다면, 만약 적들의 진짜 죄와 범죄행위를 비판하고 폭로했다면, 대중은 아사냐 정부의 새로운 농지개혁을 공산당 정책의 영향으로 간주하고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우리는 공산당의 지도하에 틀림없이 더욱 힘차게 전진할 것이다.

만약 독일공산당이 정세 전체가 요구하고 있던 공동전선의 길로 확신을 갖고 단호하게 들어섰다면, 만약 사회민주당을 그 '파시즘'에 대해서가 아니라 보나파르트주의와 파시즘에 대한 투쟁에서 보인 그 취약함, 우유부단함, 비겁함에 대해서 비판했다면, 대중은 공동투쟁과 공산당의 비판으로부터 뭔가를 배워도 배웠을 것이며, 더욱 단호하게 공산당에 동조했을 것이다.

그러나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현재 정책에 비추어, 대중은 사태가 새로운 전환을 이룰 때마다, 계급 적(enemy)이 공산당의 예측대로 행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 순간에는 공산당도 자신이 가르쳐온 모든 것을 포기한다고 확신했다. 이것이 바로 공산당에 대한 신뢰가 증대되지 않은 이유이다. 그리고 아사냐의 우유부단한 농지개혁이 정치적으로 노동자계급이 아니라 자본가계급을 이롭게 할 뿐이라는 점에서 일부 위험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이다.

예외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는 수준 미달의 지도부를 가진 노동자계급도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유리한 상황은 좀처럼 드물다. 노동자계급은 그만큼 유리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승리를 획득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게다가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지도부는一 모든 나라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리고 매월의 사태가 뒷받침하고 있는 것처럼一 공산당이 자기 대오를 강화하고, 능동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적(enemy)이나 준(準)적 (semi-enemy), 그리고 동맹세력을 올바르게 구별하도록 유리한 상황을 이용하지 못하게 한다. 바꿔 말하면,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노동자혁명의 승리로 가는 길에 놓인 가장 중대한 내부적 방해물이 되고 있다.

1932년 9월 20일

 

스페인 좌익반대파의 문제들

 

■ 이 글은 1933년 2월 4~8일 파리에서 열린 국제좌익반대파의 국제예비회의에서 채택된 '국제좌익반대파, 그 임무와 방법'(The International Left Opposition, Its Tasks and Methods)에 포함된 결의문의 일부이다. 1933년 3월 31일 미국공산주의자동맹(CLA)의 〈내부회보〉(제11호)에 처음 게재되었다. '국제좌익반대파, 그 임무와 방법' 전문은 레온 트로츠키 저작집(1932~33)에 실려 있다.

 

스페인혁명은 공산주의가 급속히 발전할 수 있는 대단히 유리한 객관적 조건을 창출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훈련된 중핵의 부족은 공식 당은 물론이고 좌익반대파에게도 정말로 역사적인 사태의 이용을 매우 어렵게 했다. 비록 스페인 지부가 그 수에서 많은 다른 지부를 능가하지만一이는 틀림없이 (대중의) 혁명적 고양 덕분일 것이다一그 이데올로기적 통일성과 지도부의 성격은 가장 신통찮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스페인 반대파의 지도적 중핵들의 가장 중요한 오류를 확인해야 한다.

노동자계급이 볼셰비키-레닌주의자의 영향력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정상적인 환경을 제공하고 있는 카탈로니아에서 지도적 동지들은 변명할 도리가 없는 방식으로 시간을 낭비했다. 즉, 핵심적인 소수라도 공공연히 자신의 기치를 내걸고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대신에, 이들은 혁명의 가장 결정적인 몇 달 동안 원칙과 숨바꼭질을 했다. 처음에는 소부르주아 민족주의자이자 치졸한 미사여구나 늘어놓는 P}우린과 외교적 흥정을 하다가 아예 그의 꽁무니를 붙들고 늘어졌다.

나머지 지역의 사정도 더 낫지 않았다. 좌익반대파는 공식 당을 무시하고, 중핵들의 마르크스주의 교육을 혁명적 감상주의로 대신한 반면에, 오랫동안 자신과 우익반대파 그룹 사이에 필요한 구별을 짓지 않았다.

참으로 유해한 것은 스페인의 혁명적 전통에서 가장 불완전한 측면의 영향력에 굴복한 지도적 동지들이 국제적 경험을 무시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말로는 좌익반대파와의 연대를 선언하면서도 실제로는 직간접적으로 모든 얼간이와 이탈자들(란다우, 로스메르, 밀[밀(M. Mill)은 주로 러시아어에 정통하다는 이유로 러시아 반대파가 국제좌익반대파의 행정서기로 발탁한 인물이었다. 책략과 개인적 음모 때문에 1932년 서기직에서 해임된 뒤, 스탈린주의의 첩자가 되었다. 아이작 도이처가 『추방당한 예언자』에서 그를 미국인이라고 했지만 그는 실제로 우크라이나인이었다. 그의 본명은 오훈(Okhun)이었다.]등)을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스페인 지부는 자신의 최근 협의회에서 분파나 독자적 정당 문제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취했다. 아무리 줄잡아 말하더라도 의회나 다른 선거에서 자신의 후보자명부 제기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은 좌익반대파의 정책과 반대되며, 실제로 여전히 이상적이지만 역시 유해한 시위에 전혀 대비하지도 않았다.

볼셰비키-레닌주의자와 소원한 길을 가고 있는 스페인 반대파의 지도자들은 자기 조직의 명칭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좌익 공산주의자'라는 명칭을 가정함으로써一이론의 관점에서 분명히 잘못된 명칭一스페인 동지들은 국제좌익반대파와 모순을 빚고 있으며, 동시에 레닌분트[레닌분트(Leninbund)는 1927년 독일공산당에서 제명된 루트 피셔, 아르카디 마슬로프, 후고 우르반스가 결성한 조직이다. 레닌분트는 우르반스가 반대파에 호의적인 사람들을 내쫓고 지도부를 장악한 1930년까지 좌익반대파에 가까운 입장을 취했다.]나 로스메르 그룹 등이 채택한 명칭과 거의 같다. 진정한 혁명가라면 이런 중요한 조치가 정치적 이유도 없이 우연히 취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동시에 마르크스주의자라면 원칙적인 문제에 대한 자신의 계획을 솔직하게 밝히지 않지만 외교적 흥정이나 책략에서 위안을 구하는 정책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국제협의회가 모든 그룹에게 분리나 제명을 포함하여 좌익반대파의 지지자임을 솔직하게 밝힐 것을 요구하자, 스페인 반대파는 좌익반대파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으며, 계속해서 국제좌익반대파의 진정한 발전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따라서 좌익반대파의 내재적 논리에 얼마나 적게 흡수 동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스페인 동지들은 자신의 비난에 대해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려고도 않은 채, 다른 지부의 잘못된 조직적 방침을 비난하지만 동시에 사실상 자기 방식의 완전한 기만성을 증명한다. 중앙위원회 안의 두 그룹 사이에서 갑자기 일어난 투쟁은 스페인 지부를 분열 직전에 이르게 했다. 전체 조직은 두 경쟁 그룹의 어느 쪽도 이제까지 이 격렬한 투쟁[라크르와는 1932년 3월 스페인 좌익반대파의 총서기를 사임했다. 11월에 모든 관찰자에게 명확하지 않았던 쟁점을 둘러싸고 그와 닌 사이에 투쟁이 일어났다. 라크르와는 스페인지부 지도부에 대한 트로츠키의 비판을 옹호하는 회보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1933년 4월, 라크르와 그룹은 해산했다. 그리고 라크르와는 '공금 횡령'을 이유로 스페인 지부에서 제명되었다.]의 원칙적인 근거를 정식화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허를 찔렸다.

자신의 현재 이데올로기적 토대에 근거하는 한, 스페인 지부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다. 오류가 이미 교정된, 원칙적으로 확고하고 혁명적 방식으로 조직된 스페인 조직의 건설은 오랜, 그리고 체계적인 활동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분명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예비회의는 다음과 같은 즉각적인 조치를 제안한다.

ㄱ) 논쟁 중인 문제에 대한 모든 중요한 국제적 문서는 스페인어로 번역되어야 하며, 지부의 모든 성원들에게 숙지되어야 한다. 사실을 은폐하는 것은 중지되어야 한다. 여기서 설명하는 것은 특히 밀의 경우에 적용된다. 스페인 지부의 지도자들은 분명히 국제반대파에 반하여 부도덕한 인물을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국제반대파에 대한 천부당만부당한 암시에 동의한 오류를 옹호하고 있다.

ㄴ) 중앙위원회 안에서 경쟁하는 그룹들 모두 부도덕한 분리나 조직적인 대책에 대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논쟁되고 있는 문제에 대한 토론이 정상적인 경로를 통해 진행되고, 예외 없이 조직의 모든 성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필요한 준비를 해야 한다.

ㄷ) 내부 토론은 회보를 통해 계속되어야 한다. 회보 편집부는 경쟁 그룹 각각에 대해 (공동 편집위원회를 통해) 가장 완전한 중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ㄹ) 국제좌익반대파의 모든 원칙적인 문제는 의제가 되어야 하며, 공감, 반감, 개인적 암시가 분명한 정치적 입장을 대신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ㅁ) 종합적인 토론은 새로운 전국협의회의 기초를 마련해야 한다.

예비회의는 서기국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 스페인 지부의 내부적 전개과정을 지켜볼 것을 지시한다. 아울러 좌익반대파의 임무와 방법에 완전 일치하는 위에 명시된 조치와 다른 적절한 조치를 스페인 지부가 수행하도록 도울 것을 지시한다.

1932년 12월

 

 

스페인 좌익반대파의 모든 성원들에게 보내는 편지

 

친애하는 동지들,

나는 며칠 전에 전국 반(反)파시스트 회의 소집을 위한 조직위원회에 보내는 바르셀로나 중앙위원회의 답변서 사본을 받았습니다. 1933년 4월 5일자로 된 이 편지는 공산주의의 대의에 헌신하는 스페인 반대파의 모든 성원들이 검토해야 하는 문서입니다.

국제 반(反)파시스트 대회나 전국 반(反)파시스트 회의의 주안점은 무엇입니까? 좌익반대파(볼셰비키-레닌주의자)는 암스테르담 반전대회에 대한 문서나 기사들, 그리고 대회이후 발표한 다수의 선언문들에서 이 문제를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은 특히 파시즘과 전쟁에 반대하는 노동자 공동전선을 불가능하게 한 잘못된 정책을 통해 공산주의 노동자 전위를 고립시켰습니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의 파산을 위장하기 위해 코민테른은 이따금 공동전선을 본뜬 가면극을 준비합니다. 무기력한 개인, 평화주의자, 좌익 민주주의자 등과 산재한 공산주의 노동자 그룹을 긁어모은 코민테른은 순전히 연극적인 대회, 협의회, 위원회를 '대중의 공동전선'과 같은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한때 우리 자신도 암스테르담 반전대회에 참여했지만 오직 이 대회의 위선을 폭로하기 위해, 따라서 공산주의 노동자의 주의를 올바른 방향으로 돌리기 위해서였을 뿐입니다. 말할 필요도 없이 다가올 반(反)파시스트 대회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이와 같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바르셀로나 중앙위원회는 볼셰비키-레닌주의자의 입장과 정반대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4월 5일자 편지는 마차 공동전선 정책의 모조품이 아니라 실제로 공동전선과 관련된 것처럼, 좌익반대파가 '공동전선'에 합류했다고 공식적으로 조직위원회에 알리고 있습니다.

스탈린주의자의 현실 미화를 거드는 바르셀로나 중앙위원회의 편지는 견해차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반(反)파시즘 공동전선이 어떻게 실현될 것인지에 대해서 막연한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노동자 대중조직과 관련하여 진실인 이런 기본적인 견해가 부르주아 개인들, 평화주의자, 민주주의적 작가 등과 관련해서는 그 의미를 상실합니다. 게다가 바르셀로나 중앙위원회의 편지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평화주의자는 정확히 혁명적 공산주의자가 할 수 있는 것만큼 전쟁에 반대 할 수 있으며,더 그럴 수도 있다. 이것은 이런 사람들이 자신의 적인 사람들에 대항하는 공공전선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논리적이다.“

이런 말이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의해 작성되었으리라고 믿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국제좌익반대파의 10년간의 활동, 특히 암스테르담 대회에 관한 그 선언문은 말할 것도 없고, 레닌의 정책과 코민테른의 첫 4개 대회의 결정에 대해 일종의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화주의자가 어떻게 혁명적 공산주의자보다 전쟁에 대해 더 중대한 적일 수 있습니까?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정치적 경험은 우리에게 평화주의는 제국주의의 도구라는 점을 가르쳐줍니다. 평화주의자는 평화적인 시기 중에 전쟁을 비난합니다만 전쟁이 터지면 자신의 고립과 무기력에 몰려서 군국주의에 얌전하게 굴복합니다. 그리고 대개 그 추종자로 둔갑합니다. 같은 생각이 반(反)파시즘 투쟁에도 적용됩니다.

공동전선 정책의 목적은 사회민주주의와 조합주의 노동자를 계급 적에 대항하는 공동투쟁 과정을 통해 공산주의 노동자(그리고 공산주의)와 화해시키는 것입니다. 부르주아 진영에서 떨어져 나온 개인들에 관한 한, 공동전선은 중요성이 제일 떨어지는 문제입니다. 이들 가운데 가장 나은 사람은 노동자, 더 확실하게는 노동자 공동전선 정책이 올바르게 수행 되는 경우에, 따라서 대중이 굳건하게 단결될 경우에 노동자를 지지 할 것입니다. 개별 유명 인사를 얻고자 대중적 정책을 포기하는 것은 최악의 모험주의이자 정치적 사기입니다.

스탈린주의 관료집단과 개별 부르주아 사이의 동맹이라는 견해 자체를 폭로하는 대신에 바르셀로나 중앙위원회는 조직위원회가 중앙위원회와 꼭 같이 대회의 임무를 바라본다고 신뢰를 표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중앙위원회는 '기꺼이' 자신의 '충실한 협력'을 제공합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외교적 흥정입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 동료와 우리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왜 마르크스주의자가 최대한의 명료성을 요구하는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서 외교적 흥정에 말려들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누구라도 노동자 정책에서 중요한 이런 문제에 대해서 바르셀로나 중앙위원회가 마르크스주의와 완전히 반대되는 입장을 가진 것이라고 결론내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제좌익반대파(볼셰비키-레닌주의자)의 기본적 견해와 원칙에 반대하는 지도적인 스페인 동지들의 투쟁은 어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지난 3년 동안 중요한 스페인 문제나 국제 문제에 대해 지도적인 스페인동지들이 올바른 입장을 지킨 적이 거의 없었다고 과장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류는 언제든 범할 수 있으며,청년조직에서는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조직, 무엇보다도 그 지도자들은 오류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이때 조직은 전진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불행한 일은 지금 스페인 반대파 중앙위원회 동지들이 쟁점에 대한 토론을 조직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신에 이들은 모든 경우에 견해 차이에 대한 원칙적인 토론을 개인적인 공격과 비열하고, 무의미한 비난으로 대신합니다. 물론 닌 동지 그룹과 라크르와 동지 그룹 사이의 투쟁은 자기 자신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닌, 페르센 등 그룹의 투쟁은 국제좌익반대파 전체에 대항하여 수행되고 있습니다. 닌 그룹이 사사건건 위반하고 있는 마르크스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원칙은 (이들보다) 백배나 더 중요합니다.

어떤 분파투쟁에서도 개인적 갈등과 상호비난이 일어납니다. 즉,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순전히 개인적인 에피소드, 비난, 공감, 반감에 근거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결정하는 혁명가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마르크스주의의 원칙 수준으로 올라설 능력이 없는 소부르주아 급진주의자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소부르주아의 말다툼은 사태를 올바로 파악할 수 없도록 만들고, 따라서 대단히 유리한 객관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전체 조직의 발전을 마비시키면서 오늘날까지 스페인 반대파 지도부를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진정한 볼셰비키-레닌주의자인 스페인 반대파의 일반 성원들이 이 막다른 골목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개인적 말다툼의 앙금을 털어버리고, 그 장점에 근거하여 정치적 견해 차이를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견해 차이의 전체 역사를 검토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부도덕한 중앙위원회의 1933년 4월 5일자 편지를 토론의 중심에 배치해야 합니다. 스페인 반대파의 모든 성원들이 한편으로 바르셀로나와, 다른 한편으로 파리, 브뤼셀, 베를린, 비엔나, 뉴욕 등등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의 근원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바르셀로나 중앙위원회는 반(反)마르크스주의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꿋꿋하게 포기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 편지를 포함하여 나는 스페인 지부의 모든 성원들에게 호소합니다. 왜냐하면 지난 3년에 걸친 지도적인 스페인 동지들과 상호 이해를 이루기 위한 나의 시도가 결과적으로 이룬 것이 전혀 없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산주의자의 인사를 보내며.

1933년 4월 24일

 

 

통일노동자당의 배신

 

■ 이 글은 1936년 2월 통일노동자당이 인민전선의 선거강령 협정에 참여한 것을 '정치적 배반'으로 간주하고 엄중하게 비판한 것이다. 이 선거강령은 혁명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애매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공산당부터 사회당, 부르주아 공화주의 정당까지 참여했다. 이는 분명히 러시아 2월 혁명 이후에 멘세비키가 범한 것과 같은 성질의 정치적 선택이었다. 아울러 제4 인터내셔널 스페인 지부는 트로츠키가 이 글에서 예상한 것과는 반대로 어떠한 대중적 기반도 획득하지 못했다.

 

언제나 어수선했던 스페인의 '좌익 공산주의자' 조직은 수없이 좌우로 동요한 끝에 우린의 카탈로니아연합과 중도주의적 강령에 의거한 '마르크스주의(?)통일'당으로 통합되었다. 이 명칭에 속은 우리의 일부 잡지는 이 당이 마치 제4 인터내셔널에 가까워지고 있던 것처럼 썼다. 어수룩한 상상력에…의지하여 자신의 힘을 과대평가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이 때문에 현실이 잔혹한 환멸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말리지 못하는 것이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스페인의 모든 '좌익' 정당들一부르주아나 노동자계급 정당들 모두一이 공통된 강령에 근거하여 선거블록을 맺었다. 이 강령은 사실상 프랑스 인민전선의 강령이나 그 밖의 같은 유형의 사기 강령과 결코 다르지 않다. 강령에서는 '정치•경제제도의 영향으로부터 사법의 독립'(자본의 영향으로부터 자본주의적 사법의 독립!)이나 '판례 원칙'(!)의 엄격한 지지뿐만 아니라 현법상의 권리를 보장하는 재판소의 개혁'이라는 조항도 볼 수 있다. 이와 별 다를 바 없는 조항이 더 나열되어 있다. 강령은 선거블록의 공화주의 자본가계급이 토지의 국유화를 거부했지만 '그 대신에' 농민을 위하여 통상적인 값싼 약속(신용대부, 높은 농산물 가격 보장 등)에 협력하기로 했음을 알려준다. 또한 강령은 '산업의 부흥(!)'과 중소기업, 소상인의 보호를 선언하고 있다. 그 다음에 어김없이 '은행에 대한 통제'가 뒤를 잇고 있는데一 강령 원문에 따르면, 부르주아 공화주의자가 노동자 통제를 거부하기 때문에一이는 결국… 아사냐나 그와 비슷한 신사양반들 같은 의회의 대리인을 통하여 은행가 자신이 은행을 통제하는 것이 된다. 마지막으로, 스페인의 외교 정책은 '국제연맹의 원칙과 방법'에 준하여 규정된다. 누락된 것이 있는 가?

이 수치스런 문서에 서명한 것은 두 좌익 부르주아정당, 사회당, 노동자총연합, 공산당(물론!), 사회주의청년동맹(저런!), '조합주의당'(페스타냐),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후안 안드라데)이다.

이 정당들의 대부분은 혁명 고양기 중에 스페인혁명의 선두에 서 있었으며, 혁명을 배신하고 유린하기 위해서 가능한 한의 일을 다 했다. 새로운 양상은 마우린-닌-안드라데의 당이 서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 스페인 '좌익 공산주의자'는 '좌익' 자본가계급의 단순한 수행원이 되었다. 이보다 더 불명예스러운 몰락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몇 개월 전, 마드리드에서 후안 안드라데의 책 『개량주의적 관료와 노동운동』(The Reformist Bureaucracy and the Labor Movement)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등의 저자들을 인용하면서 노동관료의 근본적 타락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후안 안드라데는 자신의 책에서 나를 두 번 언급하면서 매번 열렬한 헌사를 보낸다. 그 중에는 나를 자신의 '지도자이자 교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른 상황에서는 나를 기쁘게 했을 이 사실이 현재는 나로 하여금 그만큼 더 단호하게 이렇게 공언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나는 누구한테도 정치적 배신을 가르친 적이 없다. 안드라데의 행위는 단지 자본가계급과의 동맹을 위하여 노동자 계급을 배신한 것일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스페인 '좌익 공산주의자'는 바로 자신의 이름이 암시하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기회 있을 때마다 청렴결백한 혁명가처럼 보이려고 애썼다. 특히 이들은 프랑스의 볼셰비키-레닌주의자가 사회당에 입당하는 것을 큰 소리로 비난했다. 당치도 않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안 된다! 노동자혁명의 기치를 위해 그 대오에서 개량주의적 지도자들에 맞서 비타협적인 투쟁을 수행하기 위해 대중적 정치조직에 일시적으로 가입하는 것一이것은 기회주의다. 그러나 대중을 속이고, 자본가계급을 은폐하는 구실을 하는 고의적으로 부정직한 강령에 근거하여 개량주의 정당의 지도자와 동맹을 맺는 것一이것은 용감한 행위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이보다 더 큰 모독과 타락이 있을 수 있는가?

통일노동자당은 유명한 '혁명적 사회주의당'의 런던사무국(구 IAG)[런던사무국:정식명칭은 [혁 명적 사회주의당의 런던사무국]. 구 국제노동자협회(IAG), 제2 인터내셔널과 제3 인터내셔널에 속하지 않고, 제4 인터내셔널 결성에 반대하는 중도주의 좌익정당들의 연합체. 독일의 사회주의 노동자당(SAP), 영국의 독립노동당(ILP), 스페인의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자당(POUM), 프랑스의 사회주의노동자농민당(PSOP)이 참가.]일원이다. 이 사무국의 지도부는 지금, 독립노동당(ILP)의 서기인 페너 브락웨이[페너 브락웨이(Fenner Brockway,1888/90-1988):영국의 사회주의 정치가. 영국독립노동당의 지도자. 런던사무국의 서기.]의 수중에 있다. 우리는 이미 맥스튼[제임스 맥스튼(James Maxton,1885-1946):1930년대 독립노동당의 지도자.]등의 고색창연하고 교정하기 어려운 평화주의적 편견에도 불구하고 독립노동당이 국제연맹과 그 제재 조치 문제에 관해서 정말로 혁명적인 입장을 취했다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서로〈뉴 리더〉지(New Reader, 독립노동당의 기관지)에 게재된 다수의 뛰어난 기사를 기쁘게 읽었다. 최근의 의회선거 중에 독립노동당은 노동당에 대한 선거 지지도 하지 않았다. 바로 노동당이 국제연맹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이 거부 자체는 전술적으로 잘못이다. 독립노동당이 독자적인 후보를 낼 수 없는 경우에는 언제나 토리당(자유당)에 반대하여 노동당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부차적인 문제이다. 어쨌든 노동당과의 '공통된 강령'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배제되었다. 국제주의자는 일시적인 선거 지지와 함께 국제연맹과 그 '제재조치'에 대한 영국 사회애국주의자들의 아첨을 폭로할 것이다.

우리는 페너 브락웨이에게 실례를 무릅쓰고 이런 질문을 한다: 그가 서기를 맡고 있는 이 '인터내셔널'의 목적은 정확히 무엇인가? 이 '인터내셔널'의 영국 지부는 국제연맹을 지지하는 노동당 후보에 대한 단순한 선거 지지도 거부한다. 스페인 지부는 국제 연맹에 대한 지지라는 공통된 강령에 따라 부르주아 정당들과 블록을 맺고 있다. 이것은 모순, 혼란, 파산이 극에 달한 것 아닌가? 아직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런던 '인터내셔널'의 각 지부는 벌써 정반대 방향으로 끌려가고 있다. (전쟁이라는) 불길한 사태가 일어났을 경우에 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러나 우리는 스페인의 '마르크스주의통일'당으로 되돌아가자. 자본가계급과의… '마르크스주의통일'이라는 이 이름은 얼마나 풍자적인가. 스페인의 '좌익 공산주의자'(안드레스 닌, 후안 안드라데 등)는 스페인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이해 부족을 거론하며 자신들의 협조주의 정책에 대한 우리의 비판을 여러 차례 받아넘겨왔다. 이것은 모든 기회주의자가 이용하는 통상적인 주장이다. 그러나 진정한 노동자 혁명가의 제일의 의무는 자기 나라의 특수한 상황을 마르크스주의의 국제 언어로 번역하는 것에 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주의의 국제 언어는 정말로 일국의 범위를 넘어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저자 주: 마우린과 닌은 자신들의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새로운 정당이 독자적인 후보를 내세우기가 대단히 어렵게 되어 있는 스페인의 선거제도를 들이댄다(중앙위원회의 결의문, 〈라 바탈랴〉지 제234호를 보라). 그러나 이 주장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선거기법은 자본가계급과의 공동 강령과 같은 배신적 정책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이론적 주장이 필요하지 않다. 스페인 노동자계급의 지도자와 좌익 자본가계급과의 블록에는 '민족적인 것'이 조금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은 프랑스, 체코슬로바키아, 브라질, 중국의 '인민전선'과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통일노동자당은 코민테른 제7차 대회가 모든 지부에 그 '민족적 특수성'과 완전히 별개로 강요하고 있는 것과 같은 정책을 비굴하게 수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번에 스페인에 적용된 이 정책에서 진정한 차이는 오직 런던 인터내셔널의 한 지부도 공식적으로 자본가계급과의 블록에 충실했다는 사실에 있다.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나쁘다. 우리에 관해서 말하자면, 우리는 명확함을 좋아한다. 스페인에서 진정한 혁명가는 틀림없이 마우린, 닌, 안 드라데와 그 동료들의 배신을 가차 없이 폭로하고, 제4 인터내셔널 스페인 지부의 토대를 마련할 것이다!

1936년 1월 23일

 

 

스페인에서 제4 인터내셔널의 임무

 

■이 글은 스페인혁명의 새로운 발전에서 제4 인터내셔널의 임무를 제기한 것이다. 트로츠키는 통일노동자당을 준엄하게 비판하면서, 제4 인터내셔널의 임무를 간단한 항목으로 제기하고 있다. 덧붙여서 트로츠키가 '절충주의적인 잡탕'이라고 비난하는 마우린의 '민주적 사회주의 혁명론'은 기본적으로 노동자계급에 의한 권력 장악이 민주주의적 과제를 완수함과 동시에 사회주의혁명을 개시한다는 내용이었다.

 

스페인의 정세는 다시 혁명적으로 되었다.

스페인혁명의 발전은 그 템포가 완만하다. 이 때문에 혁명적 부위는 결정적 순간에 자신의 임무에 부합하기 위해 형태를 갖추고, 자기 주위로 전위를 결집시킬 수 있는 꽤 오랜 시간을 얻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스페인의 '좌익 공산주의자'가 이 예외적으로 유리한 막간을 그냥 놓쳐 버릴 것이며, 자신들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배신자들보다 결코 더 낫지 않음을 드러내왔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에 대한 경고는 결코 부족하지 않았다. 따라서 안드레스 닌, 후안 안드라데 등의 죄가 그만큼 더 크다. 제4 인터내셔널의 지부인 '좌익 공산주의자'가 올바른 정책을 견지했다면, 지금은 스페인 노동자계급의 선두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대신에 이들은 강령이나 전망은 물론이고 어떤 정치적 의미도 없는 우린의 혼란스런 조직에서 하는 일 없이 지내고 있다. 스페인에서 마르크스주의적 투쟁은 안드레스 닌과 안드라데의 정책 전체에 대한 비타협적인 비판을 통해서만 시작할 수 있다. 이들의 정책은 잘못되었을 뿐만 아니라 범죄적이기까지 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대통령 사모라의 해임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정치적 발전이 다시 한 번 첨예한 단계에 돌입했음을 의미한다. 사모라는 말하자면, 지배계층의 '견실한 지주였다. 그는 힌덴부르크가 독일에서 일정 기간 수행한 것과 같은 역할을 다른 상황에서 수행했다. 즉, 이 기간은 한편으로 반동(심지어 나찌도)과, 다른 한편으로 사회민주당이 모두 힌덴부르크에 기대를 걸고 있었던 시기이다.

현대의 보나파르트주의는 계급대립이 아직 공공연한 투쟁에까지 이르지 않은 시기의 가장 극단적인 계급대립을 표현한다. 보나파르트주의는 사이비-의회주의 정부에서 뿐만 아니라 실제로는 '초당적' 대통령제에서도 고무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오로지 상황에 좌우된다. 사모라는 보나파르트적 균형을 대표하는 인물이었다. 계급대립의 격화는 주요 진영이 모두 우선 사모라를 이용하려고 한 다음에 그를 제거하려는 사태를 불러왔다. 우익은 자기 세상일 때 이 일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인민전선'은 성공했다. 그렇지만 이것은 첨예한 혁명적 시기의 시작을 의미한다. 대중의 심각한 소동과 빈번하고 격렬한 시위의 급증은 모두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기만당해온 도시와 농촌의 노동자나 빈농이 혁명적 해결을 위해 계속 전력을 기울이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렇다면 이 강력한 운동에 직면하여 인민전선은 어떤 역할을 수행할 것인가? 인민전선은 배반자나 노예근성에 찌든 인간쓰레기들에 의해 조립되고 작동하는 거대한 브레이크역할을 할 것이다. 그리고 후안 안드라데는 바로 어제 이 인민전선의 철저히 비열한 강령에 서명했다!

사모라의 해임 뒤, 공화국의 새로운 대통령과 협력하여 아사냐는 견실한 보나파르트주의적 지주의 역할을 맡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는 자신의 권력 장악을 도운 혁명대중에 대해 국가의 무기를 더 잘 겨냥할 수 있기 위해서 스스로를 양 진영 위에 세우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만 노동자 조직은 인민전선의 그물에 완전하게 걸린 상태이다. 따라서 (강령과 신뢰할 만한 지도부도 없는) 혁명대중의 혼란은 반(反)혁명 독재에 이르는 길을 활짝 열어젖힐 우려가 있다!

노동자들이 혁명적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는 것은 모든 노동자 조직의 발전에 의해, 특히 사회당과 그 청년조직인 사회주의청년동맹의 발전에 의해 입증되었다. 2년 전, 우리는 스페인 볼셰비키-레닌주의자의 사회당 입당 문제를 제기했다. 이 제안은 안드레스 닌과 보수적 속물들의 오만한 태도를 가진 안드라데에 의해 거부되었다. 이들은 한사코 "독립" 을 원했다. 왜냐하면 방해를 받지도 않고, 의무를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당 입당은 예를 들어, 프랑스의 경우에 비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더 나은 결과를 낳았을 것이다. (물론, 지도적인 프랑스 동지들이 범한 끔찍한 오류를 스페인에서는 피했어야 한다는 조건에서) 그러나 그 사이에 안드라데와 닌은 함께 인민전선을 총총걸음으로 뒤따르기 위해 갈팡질팡하는 마우린과 연합했다.[*저자 주 : 인민전선을 향한〈라 바탈랴〉지의 "전환'은 신뢰를 고취하지 못한다. 월요일에 국제연맹이 약탈자의 도당이라고 말하고, 화요일에는 유권자에게 국제 연맹의 강령에 찬성투표 할 것을 재촉하고(인민전선의 선거협정에는 "국제연맹의 원칙에 일치하여" 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 수요일에는 '어제는 선거운동 문제에 한한 것이었고, 오늘은 독자강령을 다시 내걸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설명할 수는 없다. 진지한 노동자라면, 이렇게 물어보아야 한다.: 그러면, 이 작자들이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어떤 말을 할 것인가? 마우린은 피상적이고, 머리 회전이 빠르고, 변덕스러운 소부르주아 혁명가의 화신 그 자체인 것 같다. 그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고, 거의 이해하지도 않고, 자기 주위 사람들 모두에게 혼란을 퍼뜨린다.] 그러나 혁명적 명쾌함을 위해 매진하고 있던 사회주의 노동자들은 스탈린주의 사기꾼들에게 희생되었다. 두 청년조직(사회주의와 스탈린주의)의 통합은 더할 나위없는 혁명적 에너지가 코민테른의 용병들에 의해 악용되고 탕진될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위대한' 혁명가 안드레스 닌과 안드라데는 마우린과 함께 '민주적 사회주의'혁명 즉, 사회민주주의적 배신을 위한 완전히 무력한 선전을 계속하기 위해 여전히 방관자인 채로 있다.[**저자 주 : 마르크스는 1876년에 "사회민주주의자'라는 용어의 기만성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 사회주의는 민주주의에 종속될 수 없다. 우리에게는 사회주의(또는 공산주의)로 충분하다.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때 이후 10월혁명은 사회주의혁명이 민주주의의 테두리 안에서 수행될 수 없음을 강력하게 입증했다. "민주주의"혁명과 사회주의혁명은 바리케이드의 정반대 편에 있다. 제3 인터내셔널은 이 경험을 이론적으로 확증했다. 스페인의 "민주주의"혁명은 이미 수행되었다. 인민전선은 이를 반복하는 것이다. 스페인의 "민주주의"혁명을 인격적으로 체현하고 있는 것은 카바예로가 있건 없건 간에 아사냐이다. 사회주의혁명은 앞으로 "민주주의"혁명과 인민전선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으로 실현되어야한다. 이 "종합" 즉, "민주적 사회주의혁명"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절충주의적인 잡탕에 지나지 않는다.]

스페인의 다음 단계가 어떤 형태를 취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쨌든 인민전선 파벌에 권력을 부여한 혁명적 고양은 짧은 시간 내에 너무 엄청나게 쇠퇴하여, 반동이 전장을 마음대로 휘젓게 내버려둘 것이다. 아직 어느 정도의 시간, 물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을 가지고 있는 진정한 혁명적 부위는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세력을 결집해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이것은 특히 스페인의 제4 인터내셔널 지지자에게 해당된다. 이들의 임무는 아주 명백하다.

1. 인민전선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지도자들의 정책을 대중 앞에서 무자비하게 비판하고 규탄할 것.

2. "마르크스주의통일노동자당", 특히 구 "좌익 공산주의자"의 지도자인 안드레스 닌이나 안드라데 등의 비열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모든 선진 노동자들이 보는 앞에서 이들을 분명하게 몰아붙일 것.

3. “공개서한"에 근거하여 제4 인터내셔널 기치를 중심으로 결집할 것.

4. 볼셰비키주의 기풍의 분파로 활동하기 위해 사회당과 통합청년조직에 가입할 것.

5. 노동조합 등의 대중조직 안에 분파를 위시한 다른 중핵을 건설할 것.

6. 자생적이거나 반(半)자생적인 대중운동을 예의주시하고, 그 일반적 특징을 연구할 것 즉, 의회주의 도당의 분위기가 아니라 대중의 분위기를 연구할 것.

7. 투쟁에 명확한 표현을 부여하기 위해 모든 투쟁에 참가할 것.

8. 대중에게 항상 전투 대형을 유지할 것을 촉구하고, 특별히 선출되는 행동위원회(훈타, 소비에트)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

9. (카바예로나 마우린 식의) 모든 잡종 강령에 대해서 권력 장악, 노동계급독재, 사회주의혁명 강령을 대치시킬 것.

이것이 노동자혁명의 진정한 길이다. 그밖에 다른 길은 없다.

 

1936년 4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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