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한국인은 몽골, 퉁구스, 투르크 등 북방의 유목민과 일절 관계 없다는 것을 슬슬 인정해야 할 떄도 되지 않았나.

한국인이 그 새끼들과 동족이라는 전제로 한국인이 우월한 인종이라는 주장이 한국에 만연한 것 같은데 그런 파시즘적인 주장을 하루라도 빨리 짓밟아 없애야 하지 않나.






  • 17.10.29

     

    노동자-농민의 정부

    노동자-농민의 정부라는 정식은 1917년에 볼셰비키들의 선동에 등장하였으며 10월 혁명 이후 최종적으로 채택되었다. 이 용어는 이미 확립된 노동계급 독재를 대중적으로 풀어쓴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 용의의 의의는 소비에트 권력의 기초인 노동계급과 농민의 동맹을 강조한 데에 있다.

    코민테른의 아류들은 역사에 묻혀 있던 `노농 민주주의 독재'라는 정식을 부활시키려고 했다. 이때 이들은 `노동자-농민의 정부' 정신과는 완전히 다른 순수히 `민주적인' 즉 부르주아적 의미를 이 용어에 부여하여 이것을 노동계급 독재와 대립시켰다.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은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의미하는 `노동자-농민의 정부' 구호를 단호히 거부했다. 이들은 당시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이미 확정했으며 지금도 이 내용은 유효하다: 노동계급 정당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계를 넘어서려고 하지 않은 채 농민과 동맹을 맺는 것은 자본주의를 지지하는 정치에 불과하다; 1917년의 맨셰비키와 사회혁명당, 1925-27년의 중국공산당, 현재 스페인, 프랑스, 여타 다른 나라에 등장한 `인민 전선'이 이런 경우에 속한다.

    1917년 4월부터 9월까지 볼셰비키당은 이렇게 요구했다: 사회혁명당과 멘셰비키는 자유 부르주아지와 관계를 단절하고 스스로 정치권력을 장악하라. 그리고 이 요구를 수용할 경우 노동자와 농민의 소자본가 대표인 이들에게 자본가 계급 타도를 위한 혁명적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멘셰비키 및 사회혁명당 연합정권에 입각하거나 이 정권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는 것은 거부했다.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 정권이 자유 부르주아 입헌민주당 그리고 외국 제국주의자들과 실제로 단절하였다면 이 정권이 구성한 `노동자-농민의 정부'는 노동계급 독재를 더욱 앞당겼을 것이다. 사실 소자본가 민주주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정부 수립을 모든 힘을 다해 거부했던 이유가 정확히 여기에 있었다. 아주 유리한 상황에서조차 소자본가 민주주의자들(사회혁명당, 사회민주주의자들, 스탈린주의자들, 무정부주의자들)은 자본가 계급에 대항하여 독자적인 노동자-농민의 정부를 수립할 능력이 없다. 이 사실을 러시아의 경험은 증명했으며 스페인과 프랑스의 경험이 다시 확인시키고 있다.

    그러나 멘셰비키와 사회혁명당이 `자본가 계급과 단절하고 정권을 장악하라!'고 볼셰비키당은 요구했다. 이 결과 대중의 정치의식은 크게 높아졌다. 정권 장악을 완고히 거부한 이 정당들의 노선은 1917년 7월 극적으로 폭로되었다. 이제 이들은 대중의 눈에 완전히 벗어났으며 볼셰비키당의 승리에 길을 열어 주었다.

    노동계급을 구(舊)지도부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이 제 4 인터내셔널의 중심 임무이다. 붕괴하는 자본주의는 재앙적 모순을 폭발시키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 구지도부의 보수적 정책은 이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채 역사 발전의 가장 주요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 자본가 계급의 정치적 시체로부터 노동계급의 기존 조직들은 단절할 의도가 없다. 제 4 인터내셔널은 이 점을 가장 중심적으로 비난해야 한다. 이 상황에서 구지도부에게 체계적으로 제출된 `자본가 계급과 단절하고 정권을 장악하라!'는 요구는 제 2 인터내셔널, 제 3 인터내셔널, 암스테르담 인터내셔널 정당들과 조직들의 배신적 정체를 폭로하는데 지극히 중요한 무기이다. `노동자-농민의 정부' 구호는 1917년 볼셰비키당의 경우와 같이 부르주아 계급에 대항하는 구호인 한에서만 인정될 수 있다. 따라서 스탈린주의 아류들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의미로 이 구호를 제한하는 것을 단연코 거부한다. 이들은 이 구호를 사회주의 혁명으로 가는 다리(가교)로 삼기보다 혁명의 가장 큰 장애물로 변모시켰다.

    노동자 농민 대중에 기초하면서 이들의 이름으로 활동하는 모든 정당과 조직들이 정치적으로 자본가 계급과 단절하고 노동자-농민의 정부 수립을 위한 투쟁에 나설 것을 요구한다. 공동투쟁에 나설 경우 이들에게 자본가 계급의 반동에 대항하여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동시에 우리는 끊임없이 이행 요구들을 중심으로 선동을 수행할 것이다. 이행 요구들은 노동자-농민의 정부가 근간으로 삼을 강령이 되어야 한다.

    기존 노동자 조직들이 이 정부를 수립할 수 있는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과거의 경험은 그 가능성이 기껏해야 매우 희박하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전쟁, 전쟁에서의 패배, 금융의 붕괴, 대중의 혁명적 압력 등과 같은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을 포함한 소자본가 정당들이 원래 의도와는 무관하게 부르주아 계급과 단절할 이론적 가능성을 미리 단정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이 상황이 현실이 되어 위에서 의미한 바대로 `노동자-농민의 정부'가 수립되었다 치자. 그러나 이 정부는 노동계급 독재로 가는 길에 존재할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 점만은 아주 확실하다.

    그러나 추측에 탐닉할 필요는 없다. 모든 상황에서 노동자-농민의 정부 구호를 중심으로 한 선동은 엄청난 교육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가치는 우연히 주어지지 않았다. 이 일반화된 구호는 지금 시기의 정치 발전과정에 완전히 부응하고 있다. 기존 부르주아 정당들의 파산과 붕괴, 민주주의의 붕괴, 파시즘의 성장, 좀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정치를 향한 노동자들의 지향 등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정치 발전과정의 구체적 내용들이다. 따라서 이행 요구들은 모두 동일한 정치적 결론에 도달한다: 농민과 함께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은 모든 부르주아 정당들과 단절해야한다.

    대중의 혁명적 진출이 경과할 구체적 단계들을 미리 구체적으로 예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제 4 인터내셔널의 지부들은 매 단계들을 면밀히 분석하여 적절한 구호들을 제출해야 한다. 이 구호들은 노동자들의 정치적 독자성에 대한 열망을 돕고 계급투쟁을 심화시켜야 한다. 그리고 개량주의적 평화주의적 환상들을 깨부수어 대중과 전위당의 유대를 강화하고 대중의 혁명권력을 준비해야 한다.

     

     

    소비에트

    이미 말한 바대로 공장위원회는 공장 내에 존재하는 이중권력의 한 구성부분이다. 결국 대중이 지배질서에 더욱더 압박을 가할 때만 공장위원회가 존재할 수 있다. 전쟁 반대 특별 대중 조직들, 가격 위원회, 그 밖의 새로운 운동 중심부들도 마찬가지이다. 이 조직들의 등장 자체는 계급투쟁이 기존 노동자조직들의 정치적 한계를 넘어섰다는 사실을 증언한다.   

    그러나 이 새 기구들과 투쟁 중심들은 곧 조직적 열세를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한 이행 요구는 어느 것도 완전히 충족될 수 없다. 동시에 사회 위기의 심화는 대중의 고통과 불만 뿐 아니라 인내력과 체제에 대한 압력 등을 증폭시킬 것이다. 피억압자의 새 부위들이 더욱더 고개를 쳐들고 요구 투쟁에 나설 것이다. 개량주의 지도자들이 단 한번도 고려하지 않았던 노동에 지친 수백만 `서민'이 노동자 조직들의 문을 끈질기게 두드릴 것이다. 실업자도 운동에 가담할 것이다. 농업노동자, 파산 당했거나 그 직전의 농민, 도시의 피억압 계층, 여성 노동자, 주부, 노동계급으로 변모한 지식인 등 모두는 단결과 지도력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한 도시의 경우만 해도 어떻게 다른 요구들과 다른 형태의 투쟁들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이 문제에 대해 역사는 대답을 내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즉 소비에트가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소비에트는 모든 투쟁 조직 대표들을 하나로 결집시킨다. 이 목적을 위해 어느 누구도 다른 형태의 조직을 제안한 적이 없다. 이 목적을 위해 소비에트보다 더 좋은 조직은 거의 생각할 수 없다. 소비에트는 선험적인 당 강령에 의해 제한되지 않는다. 소비에트는 모든 피착취 인민에게 문을 활짝 열어 놓는다. 이 문을 통해 모든 계층의 대표들이 투쟁의 거대한 물결 속에 합류한다. 조직은 운동과 함께 폭이 넓어지면서 스스로를 새롭게 한다. 노동계급의 모든 정치 조류들은 가장 광범위한 민주주의가 보장되는 조건 속에서 소비에트의 지도력을 쟁취하고자 투쟁할 수 있다. 따라서 소비에트 건설 구호는 이행 요구 강령의 정점이다.

    소비에트는 대중운동이 공공연히 혁명적 단계에 들어선 시점에서만 등장할 수 있다. 처음부터 소비에트는 착취자에 대항하는 수백만 근로인민의 투쟁 구심이 되어 지방 정부와 중앙정부에 도전하고 이들과 경쟁한다. 공장위원회가 공장 내에서 이중권력을 조성한다면 소비에트는 전국적 이중권력 시기를 개막한다.

    한편 이중권력은 이행기의 정점이다. 자본가 정권과 노동자 정권이 서로 화해할 수 없이 대적한다. 이 두 정권 사이의 싸움은 피할 수 없다. 사회의 운명은 이 싸움의 결과에 달려 있다. 혁명이 패배하면 자본가 계급의 파시스트 독재가 등장한다. 혁명이 승리할 경우 소비에트 권력 즉 노동계급 독재와 사회주의 건설이 시작된다.

     

     

    후진국과 이행기 요구 강령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들은 후진국이라는 근본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후진국들은 제국주의 지배 세계의 일부분이다. 따라서 이 나라들의 발전은 결합적(combined) 성격을 갖는다. 즉 가장 원시적 경제형태들이 최신의 자본주의 기술 및 문화와 결합된다. 후진국 노동계급의 정치 투쟁도 같은 방식을 따른다. 즉 민족 독립과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위한 가장 기본적 투쟁이 세계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사회주의 투쟁과 결합한다. 민주주의 구호, 이행 요구들, 사회주의 혁명의 문제들이 이 투쟁에서  곧바로 연결되어 제출된다. 중국의 노동계급은 노동조합 조직을 시작하자마자 곧바로 소비에트 건설을 준비해야 했다. 이 의미에서 이행 강령은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들에게 완벽히 적용될 수 있다. 최소한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할 능력이 있는 곳에서는 이행 강령이 적용될 수 있다.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들의 중심 과제는 봉건적 유산들을 일소하는 농업혁명과 제국주의 지배의 멍에를 벗어 던지는 민족 독립에 있다. 이 두 과제는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민주주의 강령을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민주주의 투쟁에서 대중은 이 투쟁의 한계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중국이나 인도 같은 나라에서는 국회 또는 제헌의회 구호가 여전히 유효하다. 이 구호는 민족해방과 농업개혁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되어야 한다. 노동자들은 민주주의 강령으로 무장해야 한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첫걸음이다. 오직 노동자들만이 농민을 투쟁으로 끌어들이고 이들과 단결할 수 있다. 혁명적 민주주의 강령에 기초하여 노동자들을 `민족'자본가 계급과 대항시켜야 한다. 그리고 혁명적 민주주의 구호를 통해 대중을 투쟁에 동참시킨 특정 단계에서 소비에트는 수립될 수 있으며 수립되어야 한다. 각 시기 소비에트의 역할은 특히 국회와 관련하여 노동계급의 정치 수준, 노동자와 농민의 연대 정도, 노동계급 정당의 정치적 내용 등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조만간 소비에트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를 타도해야 한다. 소비에트만이 민주주의 혁명을 완수하고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다.

    노동계급의 투쟁에서 민주주의 요구와 이행 요구들의 상대적 비중, 이것들의 상호 연관성, 그리고 이들의 제출 순서 등은 각 후진국의 특수한 상황과 이 나라의 후진성 정도에 따라 크게 결정된다. 그러나 후진국에서 혁명운동 발전의 일반 경향은 러시아의 3대 혁명 즉 1905년 혁명, 1917년 2월 혁명, 1917년 10월 혁명에 의해 명확히 드러난 바대로 연속혁명(permanent revolution)의 정식에 따라 결정된다.

    이 나라들의 강력하며 희망찬 혁명을 코민테른은 전형적인 방식으로 말아먹었다. 1925년부터 1927년까지 중국의 대대적인 대중투쟁의 파도 속에서 코민테른은 제헌의회 구호를 제출하지도 않았고 소비에트 수립을 가로막았다. 스탈린의 계획에 의하면 자본가 정당인 국민당이 의회와 소비에트 모두를 대신하기로 예정되었다. 대중이 국민당에 의해 학살당한 후 코민테른은 광동에 소비에트의 우스꽝스러운 모조품을 수립했다. 광동 봉기의 필연적인 실패 이후 코민테른은 공업노동자가 완전히 수동적 태도를 보인 가운데 게릴라 전투와 농민 소비에트 노선을 추구하였다. 이렇게 막다른 골목에 처하자 코민테른은 중일전쟁을 이용하여 `중국 소비에트'를 간단히 청산시켰다. 그리고 농민`적군' 뿐 아니라 소위 `공산'당도 부르주아 국민당에 종속시켰다.

    `민주적인' 제국주의 국가들과의 친선을 위해 국제 노동계급 혁명을 배반한 코민테른은 제 2 인터내셔널보다 더욱 냉소적으로 식민지 대중의 해방투쟁도 동시에 배신했다. 인민전선과 `조국 방위' 과업의 하나는 수억에 달하는 식민지 대중을 `민주적인' 제국주의 세력의 대포 밥으로 만드는 것이다. 인류의 절반을 차지하는 식민지 반식민지 인민들의 해방투쟁의 깃발은 이제 확실히 제 4 인터내셔널의 손으로 넘어왔다.

     

     

    파시스트 국가에서의 이행 요구 강령

    코민테른의 전략가들은 한때 히틀러의 승리를 텔만(Thaelmann,역주: 독일 공산당 지도자)의 승리를 향한 첫걸음에 불과하다고 선언했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상황이 180도나 바뀌었다. 텔만이 히틀러의 감옥에 갇힌 지 벌써 5년이 넘었다. 무쏠리니는 이미 16년 이상 이탈리아를 파시즘의 쇠사슬에 묶어 놓고 있다. 이 기간동안 제 2 인터내셔널과 제 3 인터내셔널 정당들은 대중운동이나 짜르 시대 러시아 혁명정당들과 어느 정도라도 비슷한 진지한 지하 조직을 건설하지 못했다.

    이 실패가 파시스트 이데올로기의 위력 때문이라고 변명하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무쏠리니는 어떤 종류의 이데올로기도 제시하지 않았다. 히틀러의 `이데올로기'가 노동자들을 진지하게 획득한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 한때 파시즘에 취했던 중간계급은 술에서 깰 시간을 충분히 가졌다. 개신교 및 카톨릭 교회의 일부 분파들만이 눈에 들어올 정도로 파시즘에 저항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인종', `피'와 같은 반(半)미치광이 반(半)돌팔이 약장수 이론인 파시즘의 힘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코민테른 등의 이데올로기가 노동계급 운동을 끔찍하게 파산시켰기 때문에 파시즘이 그나마 힘을 발휘한 것뿐이다. 이 사실만이 그간의 사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

    빠리의 꼬뮌 봉기가 학살로 끝난 후 거의 8년 동안 암흑의 반동기가 지속되었다. 1905년 러시아혁명의 패배 이후 근로인민 대중은 거의 비슷한 시기 동안 넋을 잃고 있었다. 그러나 이 두 경우 모두 계급투쟁의 역관계에 따른 물리적인 패배였을 뿐이다. 더욱이 러시아에서 노동계급이 생성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당시 볼셰비키 분파는 생긴지 3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독일의 경우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노동계급의 지도부는 강력한 노동계급 정당들에서 나왔다. 어떤 당은 탄생한 지 70년이나 되었고 다른 당은 거의 15년이나 되었다. 이 두 정당 모두 수백만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었는데 히틀러와 싸우기도 전에 이미 도덕적으로 마비되어 버렸다. 그리고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한 채 항복하였다. 이것은 역사에 없었던 대재앙이었다. 독일 노동계급은 싸움 끝에 적에게 분쇄 당하지 않았다. 자기 정당 지도부의 비겁, 저속함, 배신에 의해서 압살 당했다. 따라서 독일 노동계급이 거의 3세대 동안 믿어왔던 신념을 모두 잃어버린 것은 당연하다. 한편 히틀러의 승리는 무쏠리니에게 더 없는 힘이 되었다.

    스페인과 독일 혁명이 연이어 실패한 이유는 오직 사회민주주의와 코민테른의 범죄적 정치 때문이었다. 지하활동은 대중의 공감 뿐 아니라 선진 대중의 의식적 열정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파산한 조직들로부터 열성을 기대할 수 있을까? 망명 지도자들 대부분은 철저하게 사기가 죽어 있거나 크렘린궁과 소련 비밀경찰의 첩자들뿐이다. 또는 사회민주주의 정당 출신 전직 관료들이다. 이들은 기적이 일어나 노동자들이 자신들을 과거의 지위로 되돌려 놓기를 바라고 있을 뿐이다. 이 신사 양반들이 미래 `반파시스트' 혁명운동의 지도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순간이나마 상상할 수 있는가?

    그리고 오스트리아 노동계급의 전멸, 스페인 혁명의 실패, 소련 국가기구의 퇴보 등 세계적 차원의 사건들 역시 독일과 이탈리아의 혁명적 분출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독일과 이탈리아 노동자들은 정세를 파악하는데 라디오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따라서 스탈린주의 반동집단의 거짓말, 멍청함, 건방짐을 내용으로 한 모스크바 라디오 방송이 전체주의 나라 노동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데 가장 강력한 요인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경우에 있어서도 스탈린은 히틀러의 선전상 괴벨스의 부관에 불과하다.

    파시즘의 승리를 가져온 계급투쟁은 동시에 파시즘 체제 내에 계속 살아남아 있다. 그리고 이 체제를 서서히 좀먹어 들어가고 있다. 대중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불만에 가득하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수백만 노동자들은 희생정신으로 무장하여 두더지의 일과 같은 힘든 혁명사업을 계속 수행하고 있다. 과거의 전통과 높은 기대가 산산조각이 난 끔찍한 경험이 없는 신세대가 투쟁의 전면에 등장하였다. 사회주의 혁명이 전체주의 체제의 비석 아래서 조금씩 자신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숨겨진 혁명적 힘이 공공연한 반란으로 폭발하기 위해서는 노동계급의 전위부대가 새로운 전망, 새로운 강령, 더럽혀지지 않은 새로운 깃발을 가져야 한다.

    바로 여기에 가장 커다란 약점이 존재한다. 파시스트 체제의 노동자들이 새로운 강령을 선택하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강령은 경험에 의해 그 내용이 확인된다. 전체주의 국가에 없는 것이 바로 이 경험이다. 파시스트 체제의 혁명운동에 힘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나라들에서 노동계급의 투쟁이 진정으로 성공해야 한다. 금융체제의 붕괴나 군사적 패배도 이와 비슷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미래에 대대적인 영향을 미칠 주로 선전적인 준비작업이 이 나라들에서 수행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도 확신을 가지고 말할 것이 있다. 즉 일단 일어나면 파시스트 체제의 혁명적 파도는 즉시 거대한 물결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시체에 어느 정도 숨을 불어넣어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가 시작될 지점까지 노동계급의 공세가 진전될 것이다.

    그리고 이 지점부터 제 4 인터내셔널과 정치적 파산 이후에도 존재하고 있는 기존 노동계급 정당들 사이의 화해할 수 없는 차이가 나타난다. 망명인사들의 `인민전선'은 모든 가능한 인민전선들 중에서 가장 냄새가 고약하며 가장 배신적인 부류이다. 이 정치노선은 존재하지도 않는 자유 부르주아지와 연합을 무기력하게 꿈꾸고 있다. 이 정치가 성공했다면 스페인 노동계급이 당한 것과 같은 새로운 패배들이 단순히 계속 이어졌을 것이다. 따라서 `인민전선'의 이론과 실천을 가차없이 폭로하는 것이 반파시즘 혁명투쟁의 첫 번째 조건이다.

    반파시즘 투쟁에 대중을 결집시키는 과정에서 민주주의 구호들을 수단으로 삼는 것을 제 4 인터내셔널은 물론 거부하지 않는다. 이 구호들은 특정 상황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 등과 같은 민주주의 요구들은 독립적 노동자 운동의 일회적이며 일시적인 구호일 뿐이며 부르주아 계급의 하수인들이 스페인에서처럼 노동계급의 목에 거는 민주주의 올가미가 결코 아니다. 혁명운동이 대중적 성격을 보이자마자 민주주의 구호들은 이행 구호들과 결합될 것이다. 과거 노동조합 관료였던 자들이 노동조합을 다시 세우려고 서두르기도 전에 공장위원회가 등장할 것이다. 바이마르에 새로운 제헌의회가 소집되기도 전에 소비에트가 독일을 뒤덮을 것이다. 이 상황은 이탈리아와 기타 전체주의 및 반(半)전체주의 나라들에도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파시즘은 이 나라들을 정치적 야만의 상태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 나라들의 사회적 구조가 바뀌지는 않았다. 파시즘은 봉건지주가 아니라 금융자본의 손에 쥐어진 도구이다. 혁명 강령은 겁에 질린 정치적 파산자들의 심리가 아니라 파시스트 국가에 반드시 존재할 계급투쟁의 변증법에 기초해야 한다. 제 4 인터내셔널은 과거 `제 3기'의 영웅인 스탈린주의자들의 정치적 가면무도회를 혐오한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카톨릭교, 개신교, 유태인, 독일 민족주의자, 자유주의자들의 가면을 쓰고 순서대로 등장한다. 이런 쇼는 매력 없는 얼굴을 숨기기 위해서 진행되고 있다. 제 4 인터내셔널은 모든 곳에서 항상 자신의 깃발을 들고 등장한다. 그리고 파시스트 국가에서 노동계급에게 공개적으로 자신의 강령을 제안한다. 오직 제 4 인터내셔널의 지도력을 통해서만 무쏠리니, 히틀러, 이들의 하수인과 모방꾼들을 타도할 수 있다. 이 사실을 전세계 선진 노동자들은 이미 굳게 확신하고 있다.

     

     

    소련과 이행기의 문제들

    러시아는 10월 혁명으로 노동자국가가 되었다. 사회주의 체제의 필요조건인 생산수단의 국가소유는 생산력이 급격히 증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그러나 동시에 소련 노동자국가의 국가기구는 완전히 퇴보하면서 노동자계급의 무기로부터 노동자계급에 대한 관료적 폭력의 무기로 바뀌었다. 더욱이 관료집단은 소련경제를 파괴하고 약탈하는 악귀가 되었다. 후진적이며 고립된 노동자국가의 관료화와 관료집단의 전능한 특권화는 이론 뿐 아니라 실천에서 일국사회주의 이론의 허구성을 가장 설득력 있게 증명하고 있다.

    따라서 소련은 커다란 모순 덩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퇴보한 노동자국가(degenerated workers state)로 남아있다. 이것이 소련 사회에 대한 진단이다. 이 정치적 진단은 이 사회에 대한 전망을 두 가지로 열어놓고 있다. 첫째 노동자국가 내부에서 갈수록 도를 더해가며 세계 자본가 계급의 도구가 되고 있는 관료집단이 이 새로운 사회주의 소유형태를 타도하고 노동자국가를 자본주의로 다시 추락시킬 수 있다. 둘째 노동자 계급이 관료집단을 타도하여 사회주의의 길을 열어 나갈 수 있다.

    제 4 인터내셔널에게 모스크바 조작 재판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것은 크렘린궁을 장악한 스탈린 일당 지도부의 개인적 광기의 결과도 아니다. 다만 테르미도르 반동의 산물에 불과하다. 즉 소련 관료집단 내부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분쟁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 분쟁은 `인민' 내부의 깊어지고 있는 적대관계 뿐만 아니라 관료집단과 인민 사이의 모순을 반영한다. 피비린내 나는 재판의 `황당한' 성격은 이 모순의 격렬한 정도를 드러내 주고 있으며 같은 정도로 이 모순의 해결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예감하게 하고 있다.

    모스크바로의 귀환을 거부하는 전임 외교관들의 공개적인 발언은 나름의 방식으로 관료집단 내부에 모든 색조의 정치 경향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반박의 여지없이 확인시키고 있다. 즉 진정한 볼셰비키인 이그니스 라이스(Ignace Reiss)에서 완벽한 파시스트인 부텐코(Butenko)까지 다양한 정치적 색채들이 관료집단 내부에 존재한다. 여기서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혁명 분자들은 수동적으로나마 노동계급의 사회주의적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반혁명 파시스트 분자들은 그 영향력을 끊임없이 증대하고 있는데 더욱더 일관되게 세계 제국주의 세력의 이해를 표현하고 있다. 매판 자본가의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있는 이들은 새로운 지도부가 `서방 문명' 즉 자본주의에 동화해야 한다고 떠벌리고 있다. 그리고 국유화, 집단화, 외국무역 독점 등 사회주의 정책을 거부하는 것을 통해서만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이 사고는 나름대로 합리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 두 극단적인 정치 경향 사이에 부르주아 민주주의로 경도된 멘셰비키, 사회혁명당, 자유주의 경향들이 여기 저기 산발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스탈린이 강변하고 있는 소위 `무계급'사회에도 관료집단 내부의 정치적 다양성에 정확하게 조응하는 사회 집단들이 당연히 존재한다. 다만 이 집단들의 존재가 확연히 눈에 뜨이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은 관료집단 내부 정치 세력들의 영향력 정도와 반비례하여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의식적으로 자본주의 복귀를 꿈꾸고 있는 경향은 집단농장의 부유층을 구성하고 있으며 전체 인구의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부류는 일반 대중의 빈곤을 대가로 재산을 축적하는 소자본가 경향들을 광범위하게 거느리고 있다. 그리고 관료집단은 이들을 의식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사회의 불안정을 조장하는 갈등들이 계속 증대하고 있다. 이 체제 위에 테르미도르 엘리트 집단이 군림하고 있다. 이 지배집단은 현재 주로 스탈린의 보나파르트 파벌로 구성되어 있는데 테러를 통해서만 자신의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 최근의 모스크바 재판은 완전히 조작된 재판으로 좌파를 공격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우익반대파(the Right Opposition) 지도자들에 대한 싹쓸이도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 볼셰비키당의 우파 그룹은 관료집단의 이해와 경향의 관점에서 보면 좌파적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자기 생존을 도모하는 스탈린 파벌은 부텐코와 같은 우파 동맹자들도 똑같이 경계한다. 그리고 볼셰비키당의 구세대를 거의 한 명도 남기지 않고 처형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은 대중의 증대하는 불만 뿐 아니라 이들이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혁명 전통의 활력을 확실히 증명하고 있다.

    한편 서방의 소자본가 민주주의자들은 어제까지만 해도 모스크바 재판을 소련의 독재체제를 비난하는 이데올로기 공세의 호재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소련에 트로츠키주의나 트로츠키주의자는 전혀 없다'는 주장을 끈질기게 되풀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왜 모든 숙청들이 트로츠키주의자들에 대한 투쟁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지 설명할 수 없다. `트로츠키주의'를 하나의 완성된 강령으로 또는 좀더 적절하게 하나의 조직으로 보고 평가한다면 `트로츠키주의'는 소련 내부의 아주 미약한 세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조직의 파괴할 수 없는 위력은 혁명전통 뿐 아니라 오늘날 러시아 노동계급의 체제에 대한 실제적 저항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노동자들이 관료집단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사회적 증오심 --- 바로 이것이 크렘린궁의 스탈린 파벌에게는 `트로츠키주의'로 인식되고 있다. 골이 깊지만 명확하게 표현되지 못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증오심이 제 4 인터내셔널과 결합하는 것을 이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이 두려움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같으며 사실 합당한 근거가 있다.

    구 볼셰비키 세대 및 청년-중년 세대의 혁명 대표들을 소탕하는 스탈린 파벌의 행위는 관료집단 내부의 정치적 균형을 깨뜨리면서 부르주아 우파와 이들의 동맹 세력들의 지위를 유리한 위치에 올려놓았다. 이 우파 세력은 다음 시기에 소련의 사회 성격을 더욱 단호하게 수정하여 `서구 문명'이 발생시킨 파시스트 체제를 더욱 강력하게 도입할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전망 속에서 `소련 방어'의 문제가 더욱 구체적인 시급성을 띠고 있다. 만약 내일 소위 `부텐코 분파'라고 명명되는 부르조아-파시스트 분파가 정치권력을 넘볼 경우 `라이스 분파'는 불가피하게 바리케이트의 반대편에 서서 이들의 기도에 저항할 것이다. 일시적으로 스탈린의 동맹자가 되더라도 결국 이 분파는 보나파르트 파벌이 아니라 소련의 사회적 기초 즉 자본가로부터 빼앗아 국가소유로 변모시킨 소유체제를 방어할 것이다. `부텐코 분파'가 히틀러와 동맹하고 있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이 `라이스 분파'는 소련 국외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파시스트들의 군사적 개입에 대항하여 소련을 방어할 것이다. 이와 다른 정치 행동은 세계혁명에 대한 배신 행위일 뿐이다.

    소련에 대한 자본주의 반혁명 세력의 공공연한 공격에 대항하여 관료집단의 테르미도르 분파와 제 4 인터내셔널이 `공동전선(united front)'을 수립할 가능성을 미리 엄격하게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소련에서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과제는 아직까지도 이 테르미도르 관료집단을 타도하는 것이다. 이 집단의 지배기간이 하루씩 연장될수록 경제의 사회주의적 요소는 파괴되고 자본주의 반혁명의 성공 가능성은 증대된다. 코민테른이 스탈린 파벌의 하수인이자 공범자가 되어 스페인 혁명을 압살하고 국제 노동계급의 사기를 저하시킨 배신행위는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파시스트 지배집단과 똑같이 소련 관료집단의 가장 강력한 생존력은 대중의 사기저하와 불투명한 혁명 전망에 기초하고 있다. 스탈린 일당의 테러 잔악성은 한이 없다. 이 점 이외에 이들과 파시스트 지배집단과는 전혀 차이가 없다. 따라서 이 엄혹한 상황에서는 혁명을 준비하는 선전작업만이 가능하다. 파시스트 국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소련 노동자의 혁명적 분출은 국제적 상황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많다. 세계 차원에서 코민테른에 대해 투쟁하는 것이 오늘날 스탈린 독재체제에 투쟁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이다. 비밀경찰 기구를 직접 거느리지 못한 코민테른이 스탈린 분파 그리고 크게 말하여 테르미도르 관료집단보다 먼저 붕괴할 것이다. 이 예측을 가능하게 하는 징후들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소련에서 혁명의 물결이 새로이 파도칠 경우 사회적 불평등과 정치적 탄압에 대한 투쟁이 먼저 시작될 것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관료집단의 특권을 폐지하라! 스타하노프 운동을 폐지하라! 소비에트 귀족집단을 타도하자! 모든 형태의 노동에 대한 임금 격차를 줄여라!

    노동조합과 공장위원회 활동의 자유, 집회를 개최할 권리, 언론의 자유 등을 향한 투쟁은 소비에트 민주주의의 부활과 발전을 위한 투쟁이 될 것이다.

    소련 관료집단은 히틀러-괴벨스의 스타일을 모방하여 계급투쟁 기관인 소비에트를 제거하고 대신 보편적 투표권이라는 허구적 제도를 내세웠다. 소비에트의 자유스러운 민주적 형식 뿐 아니라 계급적 내용을 다시 회복시킬 필요가 있다. 과거 자본가 계급과 쿨락에게 소비에트 참여 권리를 박탈했듯이 지금 관료집단과 새로운 귀족층을 소비에트로부터 배제시켜야한다. 소비에트에는 노동자, 집단농장 농민, 기타 농민과 적군 병사 등 각계 각층 인민의 대표자들만이 참여해야 한다.

    소비에트 민주화는 소비에트 정당들의 합법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노동자와 농민들은 자유 의지가 주어질 경우 어떤 정당들을 소비에트의 정당으로 인정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해에 기초하여 계획경제를 철저히 수정하라! 공장위원회는 생산을 통제할 권한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민주적으로 조직된 소비자 협동조합이 제품의 품질과 가격을 통제해야 한다.

    노동자의 의지와 이해에 따라 집단농장을 재조직하라!

    관료집단의 반동적 대외정책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정책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크렘린궁의 모든 외교문서들은 공개되어야 한다. 비밀외교를 폐지하라!

    테르미도르 관료집단이 자행한 모든 정치재판은 완벽한 공개와 개방된 토론 등을 통해 완전히 재평가되어야 한다. 억압받는 대중의 저항 물결이 혁명을 성공시킬 경우에만 소비에트 체제는 다시 살아날 수 있으며 사회주의를 향한 소비에트 체제의 중단 없는 발전이 보장될 것이다. 소비에트 대중을 봉기로 인도할 수 있는 당은 제 4 인터내셔널뿐이다!

    스탈린주의 관료일당을 타도하자!

    소비에트 민주주의 만세!

    국제 사회주의 혁명 만세!

     

     

    기회주의와 무원칙한 수정주의에 대한 투쟁

    개량주의자들은 가장 비극적인 역사의 교훈 앞에서도 아무 것도 배울 수 없다. 이 사실을 프랑스 개량주의자 레옹 블룸의 정당이 새롭게 증명하고 있다. 프랑스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노예처럼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정치를 답습하면서 이들과 같은 운명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몇십 년 전부터 제 2 인터내셔널은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권과 유착하여 그 일부가 되었고 지금은 같이 썩어 들어가고 있다.

    자본주의 위기가 사회주의 혁명을 일정에 명확히 올려놓았으나 제 3 인터내셔널은 개량주의 노선을 걷고 있다. 스페인과 중국에서 `민주적' 그리고 `민족적' 자본가 계급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코민테른의 정책이었다. 이 정책은 코민테른 역시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배울 능력이 없으며 자기변화를 가져올 능력도 없음을 증명하고 있다. 소련의 반동적 관료집단은 세계적 차원에서도 당연히 혁명을 수행할 수 없다.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anarcho-syndicalism) 역시 일반적으로 같은 길을 걸어왔다. 프랑스에서 레옹 주오(Leon Jouhaux)의 조합주의 관료들은 이미 오래 전에 노동계급 운동 내부에 존재하는 자본가 계급의 하수인이었다. 스페인에서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는 겉으로 표방해왔던 혁명노선을 걷어치우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전차(戰車)의 다섯 번째 바퀴가 되었다.

    런던 사무국(London Bureau)을 중심으로 결집한 중도주의 조직들은 사회민주주의 또는 코민테른의 `좌파' 부속물에 지나지 않는다. 정세를 정확하게 판단하고 이로부터 혁명적 결론을 이끌어 낼 능력이 자신들에게 전혀 없음을 이들은 과시하였다. 이들의 도달할 수 있는 최고수준은 스페인의 맑스주의통일노동자당(POUM)이었다. 혁명적 상황에서 혁명노선을 추구할 능력이 자신에게 전혀 없음을 이 정당은 증명하였다.

     

    오랫동안 세계 노동계급이 당한 비극적 패배들은 기존 노동자 조직들을 더욱 보수화 시켰다. 이 현상은 동시에 완전히 기가 죽은 소자본가 `혁명분자'들이 `새로운 길'을 찾게 만들었다. 반동과 부패의 시기에는 늘 그렇듯이 사기꾼들과 약장수들이 모든 곳에서 등장한다. 이들은 혁명 사상의 모든 맥락을 수정하려한다. 과거로부터 교훈을 찾는 대신 이들은 과거를 `거부한다'. 어떤 자들은 맑스주의의 일관성 결여를 발견한다. 또 어떤 자들은 볼셰비키주의의 몰락을 선언한다. 혁명 사상을 배신한 자들의 오류와 범죄행위를 혁명 사상의 잘못이라고 이들은 주장한다. 그리고 또 어떤 자들은 혁명 사상이 즉시 기적을 이루지 못하는 것을 비난한다. 더욱 대담한 자들은 만병통치약을 발견하겠다고 약속하면서 계급투쟁을 중지하고 기다릴 것을 권장한다. `새로운 도덕률'을 선전하는 수많은 예언자들은 도덕률로 노동운동을 부활시키려한다. 그러나 이들 대다수는 싸움터에 나서기도 전에 이미 스스로를 도덕적인 병자로 만들었을 뿐이다. 이 결과 공상적 사회주의의 서적창고에서 썩고 있던 낡은 처방들이 `새로운 길'이라는 이름으로 노동계급에게 제시되고 있다.

    제 2 인터내셔널, 제 3 인터내셔널, 암스테르담 인터내셔널, 무정부주의적 조합주의 인터내셔널과 이들의 중도주의 하수인들에 대해 비타협적으로 투쟁할 것을 제 4 인터내셔널은 선언한다. 그리고 이 인터내셔널들이 주장하는 개량이 없는 개량주의, 소련 비밀경찰과 동맹한 민주주의, 평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평화주의, 자본가 계급에게 봉사하는 무정부주의 등에 대해서도 비타협적인 투쟁을 선언한다. 마지막으로 혁명을 죽음처럼 두려워하는 `혁명분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모든 조직들은 미래를 바라보기는커녕 아직도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썩어빠진 과거의 유물에 불과하다. 전쟁과 혁명의 시대는 이들을 전부 쓸어 없애버릴 것이다.

    제 4 인터내셔널은 만병통치약을 찾지도 않으며 발명하지도 않는다. 다만 유일한 혁명 사상인 맑스주의에만 완전히 기초할 것이다. 맑스주의는 현실을 이해하고 패배의 원인들을 파악하여 의식적으로 승리를 준비할 수 있게 해준다. 제 4 인터내셔널은 볼셰비키주의의 혁명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볼셰비키주의는 노동계급에게 정치권력을 장악하는 방법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제 4 인터내셔널은 사기꾼, 약장수, 무익한 도덕론자들을 쓸어 없애버릴 것이다. 착취 사회에서 가장 높은 도덕률은 사회 혁명이다. 노동자들의 계급의식을 고양시키며 이들이 자신감을 갖고 자기희생 정신으로 투쟁에 나서게 하는 모든 방법들 자체가 선이다. 억압자들 앞에서 피억압자들에게 두려움과 굴종을 심어주고, 저항과 분노의 정신을 압살하고, 대중의 의지를 지도자의 의지로 대체하고, 확신을 강제로 대체하고, 현실 분석을 군중선동과 조작으로 대체하는 모든 방법들은 인정될 수 없다. 맑스주의의 매춘부인 사회민주주의, 볼셰비키주의의 정반대인 스탈린주의 등이 모두 사회주의 혁명과 그 도덕률에 대한 치명적인 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실을 직시하고, 최소 저항선을 찾지 않으며, 사물의 이름을 올바르게 부르며, 아무리 쓰디쓴 진실도 대중에게 있는 그대로 말하며, 난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큰 일 뿐 아니라 작은 일에도 충실하며, 강령을 계급투쟁의 논리에 일치시키며, 행동으로 떨쳐 일어날 시간이 왔을 때 대담성을 발휘하는 것, 이것이 제 4 인터내셔널의 규율이다. 제 4 인터내셔널은 반동적 대세에 저항하며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다가올 역사의 물결은 제 4 인터내셔널을 혁명적 파도의 절정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종파주의에 대한 투쟁

    노동계급의 기존 조직들이 노동계급의 이해를 배신하자 제 4 인터내셔널의 언저리에 다양한 종파주의적 분위기와 조직들이 생기거나 부활하고 있다. 이 현상은 현재 노동대중의 기본적 이해와 요구들 즉 부분적-이행적 요구들을 위해 투쟁하지 않겠다는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종파주의자들은 사회주의 체제의 우월성을 스스로에게 확신시킨다. 그리고 이것이 혁명 준비 활동의 전부이다. `기존' 노동조합들 즉 수백만의 조직 대중을 외면하자고 이들은 제안한다. 마치 대중이 현실 계급투쟁의 바깥에서 살고 있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이들은 개량주의 조직들 내부의 투쟁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 이 조직들의 일상 투쟁에 개입하지 않아도 대중을 획득할 수 있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파시즘의 차이를 이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대중이 이 차이를 즉시 이해한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종파주의자들은 빨간색과 검은색만을 구별한다. 혁명의 유혹에 빠져들기를 거부하는 것처럼 이들은 현실을 단순화한다. 이들은 스페인 내전의 두 적대진영을 똑같이 부르주아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어느 진영을 편들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같은 이유로 이들은 일본과 중국 사이의 전쟁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소련과 제국주의 세력 사이의 원칙적 차이점을 부인한다. 그리고 소련 관료집단의 반동 정책을 이유로 들면서 10월 혁명이 수립한 새로운 소유형태를 제국주의 세력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하기를 거부한다. 이들은 대중을 획득하는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대중이 혁명사상으로 무장할 능력이 없다고 열심히 비난한다.

    일반적으로 이 무미건조한 정치인들에게 이행 요구라는 다리(가교)는 무용지물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혁명의 저편으로 건너갈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편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추상적이고 빈약한 언사들을 반복하는 것으로 만족한다. 이들에게 정치 사건들은 논평거리에 지나지 않으며 행동을 위한 계기가 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모든 종류의 얼간이들과 기적을 기다리는 인간들이 그렇듯이 종파주의자들은 매순간 현실에 의해 패배 당한다. 따라서 이들은 언제나 안달하며 `정권'이나 `방법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사소한 음모들로 시간을 보낸다. 이들은 대개 전제적 조직 운영을 일삼는다. 종파주의의 정치적 무기력은 마치 그림자처럼 기회주의의 무기력을 보충한다. 그리고 혁명 전망을 전혀 제시하지 못한다. 현실정치에서 종파주의자들은 기회주의자들 특히 중도주의자들과 연합하여 언제나 혁명적 맑스주의에 대항한다.

    종파주의 그룹과 파벌 대부분은 제 4 인터내셔널의 식탁에서 우연히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를 먹고살면서 `독립적인'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허풍은 대단하지만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는 조직들이다. 볼셰비키-레닌주의자들은 시간을 낭비할 필요 없이 이들이 자신의 운명을 다하도록 차분한 마음으로 내버려둔다. 그러나 종파주의 경향은 우리 내부에도 나타날 수 있으며 개별 지부에게 파멸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들과는 단 하루도 타협하며 지낼 수 없다. 노동조합과 관련된 올바른 정책은 제 4 인터내셔널 가입의 기본 조건이다. 대중에게 다가가는 길을 찾아낼 노력을 하지 않으며 찾지 못하는 자는 투사가 아니라 당에게 짐이 될 뿐이다. 강령은 토론 그룹의 지도자들이나 편집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수백만 대중의 혁명적 행동을 위해 존재한다. 제 4 인터내셔널 내부에 존재하는 종파주의와 치유 불가능한 종파주의자들을 제거하는 일은 혁명의 성공을 위한 가장 주요한 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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