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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상주 기자 =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쇼크’에 이은 이탈리아 은행 발(發) 금융위기가 치명적인 ‘유로존 붕괴(eurozone meltdown)’를 낳을 수 있다는 경고가 잇따르고 있다. 악성채무를 잔뜩 안고 있는 유럽의 부실은행들이 브렉시트 사태에 이어 세계경제를 뒤흔들 수 있는 새로운 위기 요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시시간) 브렉시트 사태 이전부터 이미 악성채무에 시달이고 있던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스페인 등 유럽은행들이 브렉시트 쇼크의 직격탄을 맞고 있으며, 이로 인해 유로존 붕괴 가능성까지 대두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 브렉시트로 유럽 은행들 '설상가상' 충격. 

특히 이탈리아 은행의 부실은 브렉시트로 인한 세계경제 위기를 증폭시킬 수 있는 시한폭탄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탈리아 은행주들은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시가총액의 약 3분의 1이 증발했다. 현재 이탈리아의 부실여신은 17%에 달한다. 미국 은행들에 비해 10배 가까이 많은 규모다. 2008~2009년 금융위기 때도 미국 은행의 부실여신 비중은 5%에 불과했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전체 부실 채무의 절반은 이탈리아 금융기관들로 채워져 있다. 

브렉시트 쇼크 이후 이탈리아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당초 1.4%에서 0.8%로 하향 조정됐다. 브렉시트 쇼크는 내년 이탈리아 경제성장률 역시 당초 1.3%에서 0.6%로 끌어 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부실채무에 시달리던 유럽 은행들에게 브렉시트 사태는 설상가상의 충격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이후 유럽은행지수(index of European banks)는 17% 폭락했다. 올해 초 기준으로 하면 30%나 떨어진 것이었다. 1472년 창설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인 ‘방카 몬테 데 이파스키디시에나’(BMPS)의 주가는 지난달 23일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3분의 1 정도 추락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BMPS에게 부실채권(NPL)을 줄이라는 권고를 했다. 

◇ "브렉시트 대응책 없으면 유로존 멜트다운 위험"

일부 분석가들은 이탈리아 은행의 부실이 이탈리아의 경제는 물론 유럽연합(EU) 전체 위협하고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이탈리아 재무부 국장 출신인 로렌조 코도뇨는 “브렉시트는 이탈리아 은행의 총체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만일 브렉시트 파장을 수습하는 즉각적인 대응이 나오지 않을 경우 유로존의 멜트다운 위험을 맞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브렉시트 이전부터 유럽 은행들은 이미 바짝 허리띠를 졸라매는 긴축에 돌입했다. 그러나 많은 은행들이 금융위기에 대비한 충분한 자본 여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포르투갈은 지난 2011년 재정 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 등 국제채권단으로부터 78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지원받았다. 이후 국제 채권단의 요구에 따라 긴축 정책을 추진하면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 결과 2014년 구제금융을 졸업했다. 그러나 여전히 상당한 국가 채무에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6월 스페인의 방코 포퓰라르 에스파뇰은 누적된 부실 자산담보대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5억 유로의 자본을 확충했다. 스페인의 금융기관들은 아직도 2008년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유럽 은행들은 부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14년 ECB가 유럽의 대형은행들에 대한 감사를 실시했다. ECB는 부실채무 판정에 있어서 이탈리아 중앙은행보다 훨씬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다. ECB 감사 결과 이탈리아 은행의 부실대출 규모는 3600억 유로(약 464조원)에 달했다. 2008년 당시에 비해 4배나 늘어난 것이다. 이는 유로존 전체 부실채권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탈리아 국내총생산(GDP)의 4분의 1에 달하는 액수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은행들은 이자가 들어오지 않는 부실채무의 액면가를 44% 감가상각 처리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이들 채무의 실제 액면가액을 20~25% 정도로 평가하고 있다. 

◇ 이탈리아 정부, 52조원 구제금융 투입 고려.

이탈리아 정부는 브렉시트 이후 이들 부실 채권들이 투매로 쏟아져 나올 것을 우려하고 있다. 그럴 경우 이탈리아 은행권 전체를 뒤흔드는 금융위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400억 유로(약 52조원) 규모의 구제금융 투입을 고려하고 있다. 은행 지분을 취득하거나 신규 공채를 발행하는 형식이다. 부실은행구제기금인 '아틀란테'(Atlante)를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탈리아 정부가 구제금융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EU의 허락을 얻어야 한다. EU는 지난 2014년 구제금융 반대 규정을 도입했다. 기업의 부실을 풀기 위한 구제자금은 납세자가 아닌 채권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이다. EU와 독일은 이탈리아 정부에게 EU 규정을 어기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있다. 

마테오 렌치 총리는 지난 주 브뤼셀에서 독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이탈리아 은행에 대한 구제금융 문제를 협의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우리는 은행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2014년) 특정한 규정을 만들었다. 모든 걸 2년마다 바꿀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부와 은행 대표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와 비공식 회의를 열고 이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있는 EU 집행위도 이탈리아 정부의 구제 금융안을 거부했다. EC 관계자들은 이탈리아 정부가 부실은행 문제를 손 놓고 있다가 브렉시트 위기 국면에 편승해 어설픈 해결책을 내놓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렌치 총리는 EU가 끝까지 구제금융안을 반대하고 나설 경우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시사하고 있다. 피에르파올로 바레타 경제 차관은 “브렉시트가 비상상황을 조성했다. 전염병이 돌고 있는 상황이다. 그중 이탈리아가 가장 중환자다. 만일 지금 전염병을 중단시키지 않는다면, 모든 이들의 문제로 번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 이탈리아, 오는 10월 헌법개정안 국민투표 실시

이탈리아는 오는 10월 헌법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한다. 이탈리아는 정치인들의 권한을 대폭 줄이는 파격적인 정치개혁안을 도입하기 위한 시도다. 이탈리아 상원은 지난 2015년 10월 상원 규모를 3분의 1로 축소하고 권한도 대폭 줄이는 개혁안을 통과시켰다. 이어 올해 4월 이탈리아 하원은 상원의 권한 축소를 위한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오는 10월 국민투표를 통해 개헌안이 통과되면 2차 세계대전 이래 60여 년간 유지되던 이탈리아 상원이 3분의 1로 축소되고, 의회의 권한이 하원으로 집중된다. 그간 상·하원 대립으로 법안 하나도 통과시키기도 어려웠던 무력한 이탈리아 의회가 좀 더 생산적인 모습으로 재탄생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탈리아 의회 개혁안은 렌치 총리의 전임자인 엔리코 레타 전 총리가 밑그림을 그린 것이다. 

렌치 총리 역시 이번 국민투표에 정치적 명운을 걸고 있다. 4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푸는 방안 등도 오는 10월 실시된 국민투표를 겨냥한 정치적 민심 행보로 해석되고 있다.